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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만난 링컨

노무현 지음 | 학고재
청소년기의 스승들



링컨이 태어난 곳은 켄터키 주 하딘 카운티의 외진 시골이었다. 아버지 토머스 링컨은 거대한 서부개척의 대열에 포함되어 있었던 이름 없는 개척농부였다. 그는 하딘 카운티의 엘리자베스타운에서 11킬로미터 떨어진 토지를 개간하면서 그곳에 야생 능금나무로 둘러싸인 아늑한 통나무집을 지었는데, 그곳에서 링컨이 태어났다.

성장기 링컨에게 온 첫 번째 충격은 어머니를 여윈 일이었다. 당시 아홉 살이던 에이브러햄과 열 한 살짜리 딸 새러를 남겨둔 채 낸시 행크스는 '우유병(milk sick)'이라는 괴질로 세상을 떴다. 어린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어머니의 죽음이 어떻게 다가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슬픔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링컨과 새러는 추위와 두려움에 떨면서 서로 꼭 껴안고 겨울을 버텨냈으며 배고픔과 질병을 이겨냈다. 또 아내를 잃은 아버지의 슬픈 얼굴과 광기를 참아냈다. 그 고통을 참아낸 어린 링컨은 세상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없었다. 링컨을 만든 첫 번째 스승은 그에게서 너무나 일찍 어머니를 앗아간 운명이라는 이름이었다.

링컨의 어머니 낸시 행크스가 세상을 떠난 후 1년이 지나자 아버지, 토머스 링컨은 재혼하기로 결정하였다. 어느 날 아침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짐마차가 집 앞에 도착했고 아버지 토머스가 새어머니가 될 새러 부시와 세 아이를 데리고 내렸다. "얘들아, 이분이 너희들의 새어머니가 될 분이다." 새러는 링컨에게 사랑을 가르쳤다. 그녀는 어머니를 여윈 어린 남매를 친자식처럼 돌보았고, 아이들이 다섯이나 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사랑에 굶주리지 않도록 정성을 쏟았다. 또 안정적인 삶과 정신적 풍요로움을 제공했다. 링컨은 뒷날 대통령이 된 후, 그때를 감회 어린 목소리로 회상했다. "새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나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었다."

링컨이 그나마 정규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새어머니 새러의 덕이었다. 과거 한국의 농촌이 그러했듯이 미국 개척시대의 서부 농장에서도 아이들은 자기 몫의 일을 해야 했다. 물론 링컨에게도 자기 몫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배움을 더 중요시할 수 있었던 것은 새어머니의 자상한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새어머니 새러는 비록 문맹자였지만 교육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링컨을 학교에 보냈다. 새러는 배움에 열심인 링컨을 각별히 보살폈다. 흔히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이 사랑할 줄 안다고 한다. 링컨이 타인에 대한 믿음과 동정과 연민의 감정을 지닌 따뜻한 인간성의 소유자가 된 것은 바로 새어머니의 감화와 훈육 덕분이었다.

젊은 날의 길 찾기



링컨은 장성하여 오펏이라는 사람이 차린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면서 뉴세일럼에 홀로 정착했다. 그곳에서 1837년 주 의원으로 당선되어 스프링필드로 이사할 때까지 살았다.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던 시골소년 링컨은 이제 가족의 품을 떠나서 스물 두 살의 어엿한 청년으로 삶을 개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링컨은 이야기하는 데 소질이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자리에서 재담꾼의 '끼'를 발휘했다. 그는 논쟁이 있는 자리에서도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펴는 데 훌륭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링컨의 적극적인 성격도 뉴세일럼 사회에 빨리 적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링컨은 마을일에 적극 참여하였고 마을에서 열리는 순회 재판에도 참석했다. 법정이 열리면 빠짐없이 구경하는 링컨에 대해 치안판사인 볼링 그린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링컨이 살던 당시에 주 의원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학력이나 워싱턴 정치인들과의 친분이 아니라 주나 마을의 현안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1832년, 스물 세 살의 점원 링컨에게 주 의원에 입후보하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순회법원 치안판사인 볼링 그린과 토론클럽 운영자인 제임스 러틀리지가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링컨은 제의를 받아들여 주 의원 선거에 입후보하였다. 링컨이 선택한 정당은 휘그당이었으며, '이웃에게 진정한 존경을 받고, 그 존경에 걸맞은 헌신을 하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열심히 뛰었다. 그러나 선거결과는 낙선이었다. 하지만 선거결과가 완전히 실망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뉴세일럼 유권자 300명 가운데 277명이 링컨에게 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1834년에 치러진 주 의원 선거에 링컨이 다시 입후보했을 때 뜻하지 않는 제의가 들어왔다. 민주당이 링컨을 지원하겠다고 제의한 것이다. 휘그당 후보 가운데에 변호사 존 스튜어트가 압도적인 1위로 당선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민주당이 링컨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정치적 야망을 이루기 위해 이번 선거에 꼭 당선되기를 바라고 있던 링컨으로서는 쉽게 거절할 수 없는 제의였다. 하지만 제의를 받아들일 경우 휘그당을 배신하고 상대 정당과 손을 잡았다는 도의적인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된다. 처음으로 자신의 정치적인 역량을 시험하게 된 상황에서 링컨은 동료를 배신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에게 찾아온 이 기회를 허무하게 포기하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링컨은 스튜어트에게 찾아가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만일 스튜어트가 반대한다면 링컨은 민주당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스튜어트는 링컨의 이야기를 듣고는 이 꿈 많은 정치 지망생의 길을 열어주기로 맘먹었다. 이 일 이후 스튜어트는 링컨이 변호사가 되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고 정치가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데에도 조언을 아끼지 않게 된다. 이는 정직을 최선의 정책으로 삼고, 명분과 실리,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링컨의 방식을 보여준 좋은 예이다. 휘그당의 스튜어트와 민주당의 지원을 받게 된 링컨은 2위로 주 의원에 당선되었다. 동료와 의원직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하여야 하는 상황에서 링컨은 정직하면서도 지혜로운 행동으로 둘 다를 얻었던 것이다.

꿈꾸는 지방의원



주 의원 당선으로 용기를 얻은 링컨은 그 동안 해볼 엄두를 내지 못했던 법률공부에 파고들었다. 생활비를 쪼개 법률 책을 사고 변호사의 꿈을 키웠다. 법률공부를 시작한 지 3년째가 되는 1837년 봄, 드디어 연방법원이 공인하는 변호사 자격증을 거머쥐었다. 아무런 보장도 없이 뉴세일럼에 정착했던 청년 링컨은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노력한 결과 자신의 평생직업이 될 변호사와 정치인의 길을 모두 찾게 된 것이다.

1836년 링컨은 주 의원에 재선되었다. 이번 선거에서 링컨은 '수석합격'을 하였다. 일리노이에서 링컨은 이제 더 이상 정치 신인이 아니었다. 링컨은 9명의 젊은 휘그당 의원들로 구성된 '키다리 9인방'의 리더였다. 링컨은 키가 193센티미터였고 그를 따라 다니는 젊은 휘그당원들도 모두 6척이 넘는 장신이었다. 키다리 9인방은 주 수도를 옮기는 문제에서 저력을 발휘했다. 밴덜리아는 주의 수도가 되기에 너무 작았을 뿐만 아니라 일리노이 주 전체를 놓고 볼 때 너무 남쪽에 치우쳐 있었다. 그들은 주의 북부와 남부를 이어주는 중심인 스프링필드로 수도를 옮기기로 결심하였다. 링컨이 정치무대에 뛰어들어 처음으로 정치적인 역량을 과시한 것이 스프링필드로 수도를 옮기는 일이었다.

이후 정치무대에서 링컨은 점점 성장하여 1838년에 3선 의원이 되었다. 일리노이 주 의회에서 휘그당은 소수당이었기 때문에 주 의회 의장 자리에 두 번 도전했다가 모두 실패하기는 했지만 링컨은 당을 정비하여 조직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다. 링컨은 의회 내에 있는 14개 이상의 위원회를 뛰어다니며 맹활약을 했고 이미 일리노이 휘그당 안에서 유명 인물이 되어 있었다.

영광과 그늘



결국 링컨에게 워싱턴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1846년 새로운 연방 하원의원을 뽑는 선거가 실시될 때 링컨이 휘그당의 후보로 공천되었던 것이다. 휘그당 후보가 된 링컨은 민주당 후보인 피터 카트라이트와 경합을 벌였다. 감리교회 목사였던 카트라이트는 링컨이 기독교를 부정하는 불신자라고 맹렬하게 비난하였다. 합동 정견 발표회에서 카트라이트 후보는 청중을 향해 "여러분 가운데 천당에 가고 싶은 분은 손을 들어보세요!"라고 소리쳤다. 모두들 손을 높이 들었으나 링컨은 손을 들지 않았다. 그러자 카트라이트는 링컨을 향해 "링컨씨, 당신은 지옥으로 가고 싶다는 말입니까?"라고 물었다. 링컨은 빙긋이 웃으며 답했다. "천만에요, 나는 지금 천당에도 지옥에도 가고 싶지 않소, 나는 지금 의회 의사당으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오." 청중의 폭소가 쏟아졌다. 이렇듯 링컨은 아무리 난처한 지경에서도 유머감각을 발휘하여 여유롭게 대처해 나갔다. 결국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링컨은 카트라이트를 1,500표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링컨이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을 때 백악관의 주인은 민주당 출신인 제임스 포크였다. 포크 대통령은 오리건과 텍사스 병합에 역점을 두었다. 그 가운데 텍사스를 병합하는 문제는 멕시코와 미국 사이에 첨예한 대립을 불러 일으켰다. 포크 대통령은 텍사스를 미국의 주로 받아들였고 멕시코는 미국과 국교를 단절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리고 이듬해 벌어진 멕시코와 미국 사이의 전쟁은 윈필드 스콧 장군이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를 점령함으로써 승리했다. 그 결과 텍사스뿐만 아니라 뉴멕시코와 캘리포니아 등 광대한 영토를 차지했다.

링컨은 하원에서 포크 대통령이 일으킨 미국과 멕시코와의 전쟁에 공개적인 비판을 가했다. "우리 시민의 피가 쏟아진 그 땅이 정말 우리 땅이었는가?" 텍사스를 비롯한 광범위한 땅이 미국의 손에 들어오는 것이 미국에 이득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불법적이고 정당성이 없는 전쟁은 찬성할 수 없다고 링컨은 생각했다. 휘그당도 멕시코 전쟁의 불법성을 격렬히 성토했다.

멕시코 전쟁은 법적인 정당성 말고도 더 큰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새로 연방에 편입되는 지역에서 노예제를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텍사스는 노예제를 허용하고 있었고 텍사스가 노예 주로 연방에 편입된다면 노예제 자체 혹은 최소한 제도의 확산을 반대하는 북부 주들이 반발할 것이 자명했다. 이미 노예제를 사이에 두고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격렬한 대립이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링컨은 분명 노예제에 반대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노예제를 없애는 것도 법적 절차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헌법 아래서 합중국 의회는 다른 주에 있는 노예제에 간섭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헌법의 범위를 넘어서는 행위는 더 중요한 것을 잃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링컨의 생각이었다.

혹독한 담금질



링컨의 머리에는 한시도 노예제의 문제가 떠나지를 않았다. 그러나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 고민하던 차에 링컨에게는 숙명의 맞수인 더글러스 상원의원이 노예제를 두고 폭발 일보직전으로 가고 있던 미국 사회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 직격탄의 이름은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안'이었다. 더글러스가 제출한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안은 노예제를 허용할 것인지 금지할 것인지 여부는 각 주가 알아서 결정할 문제이지 연방정부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여 미국인 스스로 위대한 타협 가운데 하나라고 자평했던 미주리 타협을 백지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주리 타협이란 1820년 노예제를 인정하고 있었던 미주리가 연방편입을 신청했을 때 일어났다. 당시 11개의 노예 주와 11개의 자유 주가 있었던 상황에서 미주리 주가 편입된다는 것은 노예 주와 자유 주 사이의 균형이 깨지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제시 토머스 상원의원이 미주리 주 남부 경계선인 위도 36도 30분 위쪽에 있는 지역에서는 노예제를 금지하는 수정조항을 내놓았던 것이다. 이 타협안은 상·하원에서 통과되었고, 미국인 스스로 위대한 타협안 가운데 하나라고 자평했던 사안이었다.

한편, 더글러스가 내놓은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안은 격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의회를 통과하여 1854년 5월 30일부터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법안은 더글러스가 소속된 정당인 민주당 안에서도 찬반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캔자스-네브래스카 반대세력들이 노예제 폐지를 강령으로 내세우며 공화당을 결성하였고 링컨을 중앙위원으로 선임하였다. 링컨은 더글러스가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안을 지지하는 연설을 할 때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안을 반대하는 연설을 하고 다녔다.

"더글러스는 흑인이 인간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합중국 헌법에는 모든 인민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씌어 있다. 노예제는 어떠한 도덕적 정당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위선자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제도를 옹호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자유를 사랑한다고 자찬하고 있다."

링컨의 연설은 청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특히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링컨은 여세를 몰아 계속하여 지역을 순회하면서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안에 반대하는 연설을 강행했다. 연설하는 동안 링컨의 수수한 옷차림과 꾸밈없는 태도는 청중에게 '정직한 에이브'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고 논리정연하면서도 확신에 찬 어조로 인해 힘있는 연설가라는 인상을 청중의 머리 속에 새겼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1858년 상원의원 선거. 이 선거전에서 링컨과 더글러스 사이에는 모두 일곱 차례의 공식 논쟁이 있었다. 그리고 치열한 경합을 벌인 결과, 링컨이 125,430표를 더글러스는 121,609표를 얻어 전체적으로 링컨이 유권자의 표에서 다소 앞섰다. 그러나 링컨이 속한 공화당은 주 의회에서 47석밖에 얻지 못한 데 반해 민주당이 53석을 차지했다. 그리고 주의회의 투표결과 더글러스가 54표를 얻은 반면, 링컨이 46표에 그침으로써 결국 링컨은 연방상원에 진출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상원의원이 되지는 못했지만 링컨에게는 이미 또 다른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링컨은 내세울 만한 경력이 없기는 하지만 상원의원 선거 때 더글러스와 벌인 논쟁으로 이미 유명해져 있었다. 그리고 연설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도 누구 못지 않게 강했다. 링컨은 대통령 자리를 한번 노려보기로 했다. 우선 더글러스와 벌인 논쟁의 내용을 책으로 출판했다. 이 책은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어 링컨의 자서전도 발간했다. 강연 연사로 링컨을 초청하는 곳도 생겨났다.

링컨은 대통령 후보 공천을 위한 경선에 출마할 것을 확실하게 결심하였다. 1860년 5월, 드디어 공화당 전당대회가 시작되었다. 수어드, 체이스, 캐머린, 베이츠 등이 링컨의 상대로 경선에서 맞붙었다. 3차 투표에서 링컨은 231.5표를 얻었다. 과반수를 얻기 위해서는 한 표 반이 모자랐다. 이때 오하이오 주의 대의원들이 네 표를 몰아주었다. 그러자 다른 대의원들까지 나서는 바람에 링컨의 표는 갑자기 364표가 되었다. 수어드는 결국 자신의 표까지 모두 링컨에게 넘겨서 링컨이 만장일치로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링컨이 제16대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이다.

민주당에서는 후보 공천과정이 잘 진행되지 않았다. 공천과정에서 계속 혼선을 빚던 민주당은 결국 분열되고 말았다. 북부 민주당은 더글러스를 후보로 공천한 반면 남부 민주당은 존 브레킨리지를 후보로 내세웠다. 이렇게 해서 민주당은 '스스로 분쟁하는 집'의 꼴이 되어 버렸다. 여기에다가 노 너싱스가 아메리카당을 창당하여 존 벨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인단의 총득표 중 링컨이 180표, 브레킨리지가 72표, 벨이 39표, 더글러스가 12표를 얻었다. 링컨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하지만 이 결과 속에는 암울한 현실이 숨어 있었다. 링컨이 확보한 선거인단 표 가운데 남부 노예 주의 표는 단 한 표도 없었다는 점이다. 남부와 북부는 더 이상 화합하기 어려울 정도로 골이 깊어져 있었던 것이다.

갈등이 전쟁으로



대통령에 취임하기 4개월 전인 1860년 12월, 드디어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의회는 다른 주와 맺고 있었던 연방관계를 최초로 파기했다. 그 후 미시시피, 플로리다, 앨라배마, 조지아, 루이지애나 주가 연방을 탈퇴하고, 1861년 2월에 이들 6개 주가 남부연합을 결성하여 별개의 국가임을 선포하고 있었다. 링컨은 대통령 취임 후 제일 먼저 연방정부에서 이탈한 주들이 결성한 남부연합이 무효임을 선언했다. 그리고 다음날 링컨은 섬터 요새에 대한 지원을 요청받았다. 섬터 요새를 지원할 것인가 아니면 철수할 것인가? 첫 번째 기로에서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했다. 거의 한 달 동안이나 심사숙고한 끝에 링컨이 내린 결론은 요새에 식량을 보내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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