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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것의 의미

이용범 지음 | 도서출판 초당
1. 문제의 제기



왜 내게 쓰레기를 던지지 않는가




이슬람의 예언자 마호메트는 새벽 일찍 일어나 산책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데 마을에서 오아시스가 있는 곳까지 산책하려면 반드시 유대인들이 사는 거리를 지나야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처음 이슬람교가 탄생하던 시절에도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의 반목이 무척 심했다.

새벽마다 유대인 마을을 지나가는 마호메트를 곱게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한 유대인이 마호메트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자신의 2층 창문을 열고는 마호메트를 향해 쓰레기를 쏟아 부었다. 그 유대인은 마호메트가 화를 내면 한바탕 붙어볼 속셈이었다. 하지만 마호메트는 잠시 2층 창문을 바라본 다음 머리에 쏟아진 오물들을 툭툭 털어 버리고 깊은 명상에 잠긴 채 산책을 계속했다. 그 유대인은 마호메트가 화를 내지 않자 더욱 약이 올랐다. "저런 겁쟁이 같으니..." 다음 날 새벽, 유대인은 마호메트가 지나가는 시간에 맞춰 다시 쓰레기를 쏟았다. 이번에도 마호메트는 태연히 오물을 털어 내고 묵묵히 산책을 계속했다. 화가 치민 유대인은 날마다 마호메트를 향해 오물을 쏟았고, 이 일은 한 달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호메트는 산책을 하다가 그 유대인의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마땅히 그 시간이면 쏟아져야 할 오물이 그 날따라 쏟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사하게 여긴 마호메트는 산책을 멈추고 유대인의 집으로 들어갔다. 유대인의 방 앞에 이르자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유대인은 병이 들어 침대에 누운 채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호메트는 침대에 누워 있는 유대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오늘은 쓰레기를 던지지 않았습니까?" 병든 몸으로 누워 있던 유대인은 마호메트의 말 한 마디에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훗날 이 유대인은 마호메트의 제자가 되어 이슬람교를 전파하는 데 불멸의 공헌을 했다고 한다.-전재성, 『거지 성자』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아닌 존재를 향해 따스한 시선을 던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나를 해치려는 이에게까지 관용을 베풀고, 그의 악행을 용서하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손을 내밀어라. 증오하는 이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당신의 손에 쥐어지는 것이 곧 사랑이다.

2.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



사랑도 때로는 거짓이 필요하다




전쟁터에서 한 병사가 심한 부상을 입었다. 그는 갈증을 호소하며 동료들에게 애타게 물을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병사들의 수통 텅 비어 있었다. 그때 한 병사가 한 모금밖에 남아 있지 않은 자신의 수통을 부상병에게 건네주었다. 부상병은 얼른 수통을 받아들고 입으로 가져갔다. 문득 그는 물을 마시려다 말고 주위의 전우들을 둘러보았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전우들 역시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우들은 한 모금밖에 남지 않은 수통을 바라보며 부러운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부상병은 목이 타는 듯한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차마 혼자서 물을 마실 수가 없었다. 너무나 미안한 나머지 부상병은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않고 소대장에게 그 수통을 넘겼다. 소대장은 한동안 부상병을 바라보다가 그가 건네준 수통에 입을 대고 꿀꺽꿀꺽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다시 부상병에게 수통을 건넸다. 수통을 받아든 부상병은 깜짝 놀랐다. 그 수통 속에는 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부상병은 소대장의 마음 씀씀이에 감사하며 자신도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다시 다른 전우에게 수통을 넘겼다. 그도 꿀꺽꿀꺽 물을 마시고는 다른 사람에게 수통을 건네주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소대원들이 수통을 돌려가며 물을 마셨다. 마지막으로 그 수통은 다시 부상병에게 전해졌다. 모든 병사들이 물을 마셨지만 그 수통에는 처음 그대로 한 모금 정도의 물이 들어 있었다. 아마도 그 물을 마시지 않은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부상병의 갈증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부상병은 수통을 들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전우들을 바라보았다. 전우들의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지만 표정만큼은 맑고 시원했다. 그들은 서로의 땀을 닦아주며 웃고 있었다. 갈증이 있던 자리에 깊은 전우애가 뜨겁게 불타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거짓인가! 부상병은 동료들의 눈길 때문에 차마 물을 마시지 못했다. 그리고 동료들은 정말 물이 필요한 한 사람을 위해 생명보다 귀한 물 한 모금의 유혹을 참아냈다. 또한 그들은 부상병이 마음놓고 물을 마실 수 있도록 거짓으로 물을 마시는 시늉을 했다. 이 거짓 연출이야말로 사랑의 전염이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소대장이 왜 물을 마시지 않았는지를 금세 깨달았다. 그 마음은 전염병처럼 상대방에게 옮아가고, 마침내는 사랑이 넘치는 무언극을 연출했던 것이다. 사랑에는 말이 필요없다. 진정 사랑한다면 사랑은 나로부터 그에게로 스며드는 것이다.

3. 가족에 대한 사랑



계모는 밉다?




민손(閔損)은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후처를 맞이하여 두 아들을 낳았다. 민손은 새어머니를 극진히 섬겼으나 계모는 늘 민손을 미워하였다. 계모는 겨울이 닥쳐도 민손에게 갈대로 만든 옷을 입히고, 자기가 낳은 두 아들에게는 솜옷을 만들어 입혔다.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아버지가 민손에게 수레를 몰게 했는데 몸이 너무 추워서 그만 고삐를 놓치고 말았다. 아버지가 버럭 화를 내며 야단쳤지만 민손을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새로 얻은 부인이 민손에게 가혹하게 대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부인을 쫓아내려 했다. 그때 민손이 아버지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어머니가 계실 때는 저 혼자만 추우면 됩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집을 나가면 세 자식이 추위에 떨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또한 민손의 말을 듣고 크게 뉘우쳐 세 자식에게 고루 사랑을 나누어주게 되었다.-이한, 『몽구(蒙求)』

중국 제나라 선왕 때의 일이다. 거리에서 싸움이 벌어져 한 사람이 죽었다. 발견된 흉기는 하나인데 살해현장에는 형제 두 사람이 있었다. 형리가 두 사람을 불러 심문하니 형제가 서로 자기가 죽였다고 우겼다. 마침내 형리는 죄인을 가릴 수 없어 사건을 왕에게 보고했다. 사건을 접한 왕은 고민을 거듭하다가 그 어미를 불러 물어보기로 했다. 어미야말로 자식의 심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마침내 왕은 재상에게 어미를 불러 심문하도록 했다. 재상은 그 어미를 불러들인 후 이렇게 말했다."폐하께서 자비를 베풀어 두 형제가 모두 죽는 것을 원하지 않소. 그대는 어느 아들을 살리고 싶소?"그 얘기를 들은 어미는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꼭 한 사람을 죽여야 한다면 작은아들을 죽이십시오." 재상은 어미의 대답을 이상히 여겨 물었다. "어린 아들이 더 귀여운 법이거늘, 그대는 어찌 생각해보지도 않고 작은아들을 죽이라 하시오?" 어미는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작은아들은 저의 소생이고, 큰아들은 전처의 소생이기 때문입니다."

재상은 더 이상히 여겼다. 전처의 소생을 살리고 제 아들을 죽이겠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어미는 눈물을 흘리며 계속 말을 이었다. "남편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이 병이 들어 죽음에 이르렀을 때, 저에게 각별히 큰아들을 부탁했고 저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니 지금 큰아들을 죽이면 장차 이 몸이 죽어 어찌 남편의 얼굴을 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남편과의 신의를 저버리는 일입니다." 재상은 궁중으로 들어가 어미의 이야기를 왕에게 아뢰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감동하여 두 아들을 모두 풀어주었다고 한다.-유향, 『열녀전(烈女傳)』, 『제의계모(齊義繼母)』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 동화에는 계모가 늘 악한 존재로 등장한다. 서양의 동화는 계모가 마지막에 복수를 당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동양은 다르다. '콩쥐팥쥐'나 '장화홍련전'처럼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고생만 하던 전처 소생이 계모의 악(惡)까지 뛰어넘는 사랑을 베풂으로써 못된 계모를 교화시키는 것이다. 더구나 계모는 늘 악한 존재로 등장하지 않는다. 신의를 지키기 위해 계모가 전처의 소생 대신 자신의 자식을 희생시키는 경우도 많다. 인간의 심성으로 볼 때 남의 자식을 제 자식보다 사랑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몸보다 남의 자식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세설신어』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중국 서진 시대에 흉노족이 난을 일으켰다. 그때 치공이라는 사람이 전쟁을 피해 고향에 내려가 살았는데 매우 가난하여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그의 훌륭한 덕망을 생각하여 돌아가며 먹을 것을 나누어주었다. 그때 치공은 형의 아들과 외조카를 데리고 가서 마을 사람들이 주는 음식을 얻어먹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말했다."지금은 전쟁 중이라 우리도 굶주리고 있는 형편이오. 하지만 우리는 당신이 어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 두 아이까지 우리가 먹여 살릴 수는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치공은 어쩔 수 없이 혼자 가서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그는 밥알을 씹지 않고 입안에 물고 있다가 돌아와 두 아이를 먹었다.

사랑이란 언제나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지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내 것이 아닌 것을 지켜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4. 연인의 사랑



사랑의 운명




어느 바닷가에 깎아지른 절벽이 있었다. 절벽의 바위는 오랜 풍화작용을 견디다 못해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져 바다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바람에 실려온 씨앗 하나가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작고 여린 싹을 피웠다. 어린 싹이 바위에게 물었다. "나 여기서 살아도 돼?" "위험해. 여긴 네가 살만한 곳이 못돼." 바위는 냉정하게 말했다. 어린 싹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너무 늦었어. 이미 난 뿌리를 내렸는걸." "그건 나도 몰라. 아마도 운명이겠지. 바람이 이곳으로 데리고 왔는걸."

좁고 험한 바위틈에서도 작은 싹은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나무가 되었다. 바위는 나무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뿌리가 아프지 않니? 바닷바람 때문에 몹시 힘들겠지? 다른 곳에 뿌리를 내렸으면 넌 정말 멋진 나무가 되었을 텐데." 나무는 바위의 고운 마음씨에 너무나 행복했다. "아냐. 난 이곳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무는 점점 고통스러웠다. 몸집이 커갈수록 물이 부족했고, 뿌리를 내리기도 힘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뿌리를 깊이 내려봐." 바위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무의 무게를 점점 버티기가 힘들어져만 갔다. 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리면 내릴수록 바위에 작은 균열들이 생겼고, 거기에는 뼈를 부수는 고통이 뒤따랐다. 하지만 나무와 바위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바위가 나무에게 말했다. "나무야, 난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난 이곳에서 수억 년을 살아왔어.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난 너를 만나기 위해 기다려 왔던 거야. 네가 오기 전에 난 아무 것도 아니었어. 네가 오고 나서야 난 기쁨이 뭔지 알았어." "나도 그래. 난 이곳에 살면서 한번도 외로워하지 않았어. 너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지. 네가 내 뿌리를 단단히 쥐어주고 있으니까." 그날 밤, 바다에서 심한 폭풍우가 몰아쳤다. 나무와 바위는 폭풍우를 견디기 위해 서로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하지만 거대한 파도가 몰려왔을 때 둘은 서로의 운명을 알아차렸다. 바위가 부서지면서 나무는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의 뿌리를 끝까지 안고 가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 운명을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사랑은 아름답다. 누군가 당신의 가슴에 뿌리를 내린다면 당신은 날마다 그의 뿌리에 가슴이 쪼개지는 바위가 되더라도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비록 그것이 살을 찢는 고통보다 더한 아픔이라 할지라도 당신은 그를 위해 함께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이별보다는 차라리 죽음의 고통을 선택하는 것... 그러나 사랑이란 늘 곁에 다가와 있는 것이어서 함께 있을 때는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한다. 이별이 시작될 때까지 사랑은 그 깊이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5. 친구의 우정



사랑보다 강한 우정




삼두 정치 시대 로마에 티투스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아테네에 있는 친구 크레메스의 집으로 유학을 보냈다. 그런데 크레메스에게는 티투스와 같은 또래의 지시푸스가 있었다. 두 사람은 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며 형제보다도 돈독한 우정을 맺었다.

어느덧 3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테네의 크레메스가 세상을 떠나자 친척들은 지시푸스에게 어서 결혼하여 대를 이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결국 지시푸스는 열 다섯 살의 아름다운 소녀 소프로니아와 약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티투스가 그만 친구의 약혼녀를 흠모하게 된 것이다. 티투스를 상사병이 들었지만 형제보다도 가까운 지시푸스에게 사정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의 몸은 나뭇가지처럼 말라갔고, 그만 병상에 눕고 말았다. 지시푸스는 티투스에게 그 이유를 물었으나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친구가 계속 보채자 티투스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기에 이르렀다.

가장 가까운 친구가 자신의 약혼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고백을 들은 지시푸스. 그는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그리곤 자신도 그녀를 사랑하지만 티투스가 그녀와 맺어지길 원한다고 말했다. 티투스가 정색을 하고 거절했지만 지시푸스는 결혼식 날, 자기 대신 티투스에게 신방을 차려주었다. 신부는 아무 것도 모른 채 티투스와 신혼 생활을 했다.

그때 마침 로마에 있는 티투스의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연락이 와 가업을 잇기 위해 티투스가 로마로 돌아가야 했다. 결국 티투스는 신부에게 모든 것을 털어 놓고 같이 로마에 가서 살자고 말했다. 아무 것도 몰랐던 신부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고백이었다. 한바탕 소란이 일었지만 지시푸스가 티투스에 대해 그 가문과 사람됨을 설명하고 티투스 역시 늠름한 모습으로 경위와 정당을 설명하자, 두 청년의 우정과 기상에 감동을 받은 신부의 친척들도 두 사람의 결혼을 승낙하게 되었다.

티투스는 신부를 데리고 로마로 향했다. 그는 로마에서 환대를 받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한편 아테네에 남은 지시푸스는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아테네에서 영구 추방되는 수모까지 당해야 했다. 지시푸스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로마로 향했다. 호사스런 티투스의 저택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지시푸스. 흡사 거지처럼 보였던 지시푸스를 티투스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실망한 지시푸스는 친구에게 분노를 느끼며 그곳을 떠났다.

그에게 남은 것은 자살뿐이었다. 그는 커다란 동굴 속에 들어가 밤을 지새웠다. 새벽녘이 되자 도둑 두명이 훔친 물건을 짊어지고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두 도둑은 서로 물건을 차지하려고 싸우더니 이내 한 사람이 상대방을 죽이고 밖으로 도망쳤다. 지시푸스는 내일 아침이면 경찰이 득이닥칠 것이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누명을 쓰고 처형당할 수 있으니 굳이 자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튿날이 되자 그의 예상대로 경찰이 들이닥쳤고 그는 재판관 앞으로 끌려갔다. 살인범 재판이 열린다는 소문을 듣고 재판정에 와 있던 티투스는 죄수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지시푸스가 아닌가. 티투스는 재빨리 재판관 앞으로 나가 외쳤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저입니다." 지시푸스가 고개를 들어보니 친구 티투스였다. 이번엔 지시푸스가 외쳤다. "아닙니다. 사람을 죽인 건 저입니다." 두 사람의 실랑이가 계속되고 있을 때, 구경꾼들 틈에서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저를 아시겠지요? 저는 유명한 악당 푸블리우스입니다. 사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접니다. 두 사람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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