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것의 의미
이용범 지음 | 도서출판 초당
삼두 정치 시대 로마에 티투스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아테네에 있는 친구 크레메스의 집으로 유학을 보냈다. 그런데 크레메스에게는 티투스와 같은 또래의 지시푸스가 있었다. 두 사람은 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며 형제보다도 돈독한 우정을 맺었다.
어느덧 3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테네의 크레메스가 세상을 떠나자 친척들은 지시푸스에게 어서 결혼하여 대를 이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결국 지시푸스는 열 다섯 살의 아름다운 소녀 소프로니아와 약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티투스가 그만 친구의 약혼녀를 흠모하게 된 것이다. 티투스를 상사병이 들었지만 형제보다도 가까운 지시푸스에게 사정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의 몸은 나뭇가지처럼 말라갔고, 그만 병상에 눕고 말았다. 지시푸스는 티투스에게 그 이유를 물었으나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친구가 계속 보채자 티투스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기에 이르렀다.
가장 가까운 친구가 자신의 약혼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고백을 들은 지시푸스. 그는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그리곤 자신도 그녀를 사랑하지만 티투스가 그녀와 맺어지길 원한다고 말했다. 티투스가 정색을 하고 거절했지만 지시푸스는 결혼식 날, 자기 대신 티투스에게 신방을 차려주었다. 신부는 아무 것도 모른 채 티투스와 신혼 생활을 했다.
그때 마침 로마에 있는 티투스의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연락이 와 가업을 잇기 위해 티투스가 로마로 돌아가야 했다. 결국 티투스는 신부에게 모든 것을 털어 놓고 같이 로마에 가서 살자고 말했다. 아무 것도 몰랐던 신부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고백이었다. 한바탕 소란이 일었지만 지시푸스가 티투스에 대해 그 가문과 사람됨을 설명하고 티투스 역시 늠름한 모습으로 경위와 정당을 설명하자, 두 청년의 우정과 기상에 감동을 받은 신부의 친척들도 두 사람의 결혼을 승낙하게 되었다.
티투스는 신부를 데리고 로마로 향했다. 그는 로마에서 환대를 받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한편 아테네에 남은 지시푸스는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아테네에서 영구 추방되는 수모까지 당해야 했다. 지시푸스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로마로 향했다. 호사스런 티투스의 저택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지시푸스. 흡사 거지처럼 보였던 지시푸스를 티투스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실망한 지시푸스는 친구에게 분노를 느끼며 그곳을 떠났다.
그에게 남은 것은 자살뿐이었다. 그는 커다란 동굴 속에 들어가 밤을 지새웠다. 새벽녘이 되자 도둑 두명이 훔친 물건을 짊어지고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두 도둑은 서로 물건을 차지하려고 싸우더니 이내 한 사람이 상대방을 죽이고 밖으로 도망쳤다. 지시푸스는 내일 아침이면 경찰이 득이닥칠 것이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누명을 쓰고 처형당할 수 있으니 굳이 자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튿날이 되자 그의 예상대로 경찰이 들이닥쳤고 그는 재판관 앞으로 끌려갔다. 살인범 재판이 열린다는 소문을 듣고 재판정에 와 있던 티투스는 죄수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지시푸스가 아닌가. 티투스는 재빨리 재판관 앞으로 나가 외쳤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저입니다." 지시푸스가 고개를 들어보니 친구 티투스였다. 이번엔 지시푸스가 외쳤다. "아닙니다. 사람을 죽인 건 저입니다." 두 사람의 실랑이가 계속되고 있을 때, 구경꾼들 틈에서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저를 아시겠지요? 저는 유명한 악당 푸블리우스입니다. 사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접니다. 두 사람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이 사건이 시끄러워지면서 로마의 권력자인 옥타비아누스의 귀에까지 소식이 알려졌다. 권력자는 사건의 내막을 듣고는 세 사람을 모두 석방시켰다. 집으로 돌아온 티투스는 지시푸스에게 재산의 절반을 나누어주고, 자신의 여동생과 결혼을 시켰다. 그리하여 지시푸스는 로마인이 되어 죽을 때까지 티투스와 변치 않는 우정을 유지했다.
-보카치오, 『데카메론』, <열째 날>세종 때에 영의정을 지낸 황희는 나이가 90세에 이르렀을 때에도 방에 들어앉아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않고 책만 들여다보았다. 하루는 뜰에 복숭아가 벌겋게 익었는데 이웃집 아이들이 몰래 들어와 복숭아를 따먹었다. 아이들이 극성을 부리자 황희는 문 밖을 향해 소리쳤다. "다 따가지는 말아라. 나도 맛 좀 보자꾸나."
끼니때에 이르러 굶주린 아이들이 모여들면 그는 밥을 덜어 내주었다. 하루는 황희가 밥상을 받았는데 누더기를 걸친 아이들이 맨발로 달려들어 수염을 잡아당기고 손으로 음식을 주워 먹었다. 그래도 황희는 "아야, 아야!" 소리칠 뿐 아이들을 꾸짖지 않았다. 그 아이들은 모두 하인의 자식들이었다.-성현, 『용재총화』
조신시대 권안(權晏)의 집이 헐고 무너져 수십 군데 구멍이 났다. 위로는 비개 새고 옆으로는 바람이 스며들었지만, 그는 좀체 집을 수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아들이 사람들을 부려 농사를 지은 결과 많은 수확을 거두어 들였다. 아들이 수확이 많은 것을 자랑하자 권안은 아들을 꾸짖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수확이 많으니 너는 필시 하인들의 껍질을 홀딱 벗겨놓은 게로구나!"
- 남효온, 『추강냉화(秋江冷話)』이런 환경 속에서 살아가면서 전태일은 점차 비인간적인 노동 조건에 분노하게 된다. 그는 늘 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열악한 조건을 개선시키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자각에 이르게 되었다. 마침내 그는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모임을 만들고 각급 관청을 찾아다니며 근로기준법 준수를 촉구했다. 심지어 대통령에게까지 편지를 썼다.
그러나 그것은 쇠귀에 경 읽기였다.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없었다. 근로기준법은 아무 소용도 없었다. 정부조차도 이 법을 지키지 않는 업주들을 비호하고, 오히려 노동자들을 불순세력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시위를 해도 돌아오는 것은 가혹한 탄압뿐이었다. 마침내 그는 죽음을 결심하게 이른다. 분신을 앞두고 그는 비장한 글을 남겼다.
친구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 주게...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내 생애에 다 못 굴린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 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조영래,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아닌 존재를 향해 따스한 시선을 던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나를 해치려는 이에게까지 관용을 베풀고, 그의 악행을 용서하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손을 내밀어라. 증오하는 이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당신의 손에 쥐어지는 것이 곧 사랑이다.이 책의 마지막 이야기로 한 청년의 삶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 청년은 내 청년시절의 귀감이었으며, 삶의 나침반이었다. 청년은 아주 평범하였으나 우리 역사에 고귀한 이름을 남겼다.
1970년 11월 13일. 그 날은 아침부터 옅은 잿빛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동대문 평화시장 일대에 감도는 긴장은 팽팽했다. 경비원들은 더 불어나 있었고, 출동한 경찰대가 삼엄하게 경비를 펼치고 있었다.
이윽고 오후 1시, 평화시장 인근 국민은행 앞에는 500여 명의 노동자가 웅성거리고 있었다. 1시 40분 경, 평화시장 건물 3층에 모여 있던 몇몇이 미리 준비한 플래카드를 펼쳐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플래카드에는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씌어 있었다. 미리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형사 두 사람이 플래카드를 빼앗기 위해 달려드는 바람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노동자들이 들고 있던 플래카드는 금방 찢어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10여 분 후, 담뱃가게 옆의 골목길에서 한 청년이 뛰쳐 나왔다. 그의 몸에서는 벌건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불길은 순식간에 그의 전신을 불살랐다. 그는 불붙은 몸을 이끌고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는 고통에 찬 외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그는 구호 몇 마디를 짐승처럼 외친 후 그 자리에 쓰러졌다. 불길이 청년의 몸을 휩싸고 있는 가운데 그의 입에서 고통에 찬 울부짖음이 새어 나왔다. 불타고 있는 그의 몸 위에 근로기준법 책을 던졌다. 그의 소원대로 근로기준법에 대한 화형식이 이루어진 것이다.
불길이 꺼진 뒤 그는 다시 한 번 벌떡 일어섰다. 참으로 참혹한 모습이었다. 온몸은 시커멓게 타 있었고, 살갗은 화상으로 터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그는 다시 쓰러졌고, 곧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날 밤 10시, 그 청년은 운명했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 둘이었다. 청년의 이름은 전태일, 직업은 평화시장 재단사였다.
전태일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다.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에 입학하지도 못한 그는 당시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운영하던 공민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힘에 부쳐 나중에는 학교를 그만두고, 식모살이를 하러 떠난 어머니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어린 여동생과 함께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전태일은 서울에서 신문을 팔면서 10원짜리 수제비 한 그릇으로 하루를 버텼다. 하지만 여동생이 문제였다. 잠은 시장 바닥에 짚을 깔고 잘 수 있었지만 계속 동생을 업고 다니며 신문을 팔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동생을 복지시설에 맡기고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열 여섯 살에 정착한 곳이 평화시장이었다. 평화시장에는 각종 의류업체들이 밀집해 있었고, 여기서 일하고 잇는 대부분의 종업원들은 어린 여공들이었다. 여공들의 생활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하루 14시간 노동에 일당은 하루 50원. 꼭 커피 한 잔 값이었다. 작업장은 기껏해야 여덟 평 정도인데 그 안에는 재봉틀 열 대여섯 대와 서른 두 명의 종업원이 일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천장까지의 높이는 1.5미터밖에 되지 않아 14시간 동안 허리 한 번 펼 수가 없었다. 열 서너 살의 어린 여공들은 화장실 한 번 가지 못하고 꽉 막힌 좁은 공간 속의 먼지와 함께 생활해야 했다. 더구나 당시는 수출을 독려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잠을 쫓는 약을 먹고 며칠씩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얼마나 아름다운 거짓인가! 부상병은 동료들의 눈길 때문에 차마 물을 마시지 못했다. 그리고 동료들은 정말 물이 필요한 한 사람을 위해 생명보다 귀한 물 한 모금의 유혹을 참아냈다. 또한 그들은 부상병이 마음놓고 물을 마실 수 있도록 거짓으로 물을 마시는 시늉을 했다. 이 거짓 연출이야말로 사랑의 전염이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소대장이 왜 물을 마시지 않았는지를 금세 깨달았다. 그 마음은 전염병처럼 상대방에게 옮아가고, 마침내는 사랑이 넘치는 무언극을 연출했던 것이다. 사랑에는 말이 필요없다. 진정 사랑한다면 사랑은 나로부터 그에게로 스며드는 것이다.동서양을 막론하고 옛 동화에는 계모가 늘 악한 존재로 등장한다. 서양의 동화는 계모가 마지막에 복수를 당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동양은 다르다. '콩쥐팥쥐'나 '장화홍련전'처럼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고생만 하던 전처 소생이 계모의 악(惡)까지 뛰어넘는 사랑을 베풂으로써 못된 계모를 교화시키는 것이다. 더구나 계모는 늘 악한 존재로 등장하지 않는다. 신의를 지키기 위해 계모가 전처의 소생 대신 자신의 자식을 희생시키는 경우도 많다. 인간의 심성으로 볼 때 남의 자식을 제 자식보다 사랑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몸보다 남의 자식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세설신어』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중국 서진 시대에 흉노족이 난을 일으켰다. 그때 치공이라는 사람이 전쟁을 피해 고향에 내려가 살았는데 매우 가난하여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그의 훌륭한 덕망을 생각하여 돌아가며 먹을 것을 나누어주었다. 그때 치공은 형의 아들과 외조카를 데리고 가서 마을 사람들이 주는 음식을 얻어먹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말했다."지금은 전쟁 중이라 우리도 굶주리고 있는 형편이오. 하지만 우리는 당신이 어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 두 아이까지 우리가 먹여 살릴 수는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치공은 어쩔 수 없이 혼자 가서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그는 밥알을 씹지 않고 입안에 물고 있다가 돌아와 두 아이를 먹었다.
사랑이란 언제나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지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내 것이 아닌 것을 지켜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의 뿌리를 끝까지 안고 가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 운명을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사랑은 아름답다. 누군가 당신의 가슴에 뿌리를 내린다면 당신은 날마다 그의 뿌리에 가슴이 쪼개지는 바위가 되더라도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비록 그것이 살을 찢는 고통보다 더한 아픔이라 할지라도 당신은 그를 위해 함께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이별보다는 차라리 죽음의 고통을 선택하는 것... 그러나 사랑이란 늘 곁에 다가와 있는 것이어서 함께 있을 때는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한다. 이별이 시작될 때까지 사랑은 그 깊이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한 여자를 두고 친구가 경쟁을 벌이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경쟁에서 밀리는 사람은 타 들어가는 가슴을 안은 채 친구의 불타는 사랑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친구를 위해 자신의 사랑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랑이란 마력과 같은 것이어서 한 번 불이 붙으면 쉽게 꺼질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우정이 사랑보다 강할 때가 있다. 우정 때문에 연인을 버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목숨까지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라면, 때로는 연인을 버리는 용기도 필요하다. 사랑과 우정은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당신이 처한 상황에서 무엇이 의미 있는 것인지를 판단할 일이다.한 노동자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지식인들은 그의 죽음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토록 절실하게, 우리 사회의 모순에 항거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더구나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재단사 출신의 노동자가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그늘에 비수를 꽂았다는 사실에 지식인들은 좌절과 함께 부끄러움을 느꼈다. 30년 전, 전태일은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지난 300년 동안 이 땅에서 인간을 위해 싸워왔던 어느 누구의 죽음보다 위대했다. 그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몸으로 보여주고 떠난 것이다. 부드러운 것만이 사랑은 아니다. 때로 사랑은 격렬하고, 몸부림치는 고통 속에서 피어난다. 그는 이 땅의 노동자들을 사랑했다. 그 노동자들은 바로 우리의 누이였고, 동생이었으며, 그리고 나 자신이었다. 사랑은 강하다. 그리하여 그것은 역사까지 바꾸어 놓을 수 있다.6. 사랑의 기술
사랑의 기술 27. 무엇을 사랑할 것인가
아름다운 청년내가 입는 옷과 음식에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의 땀이 스며 있다. 모름지기 다른 사람의 힘을 빌어 먹고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수고로움을 알아야 하고, 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다.민손(閔損)은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후처를 맞이하여 두 아들을 낳았다. 민손은 새어머니를 극진히 섬겼으나 계모는 늘 민손을 미워하였다. 계모는 겨울이 닥쳐도 민손에게 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