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지지 않는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지음 | 해냄
이 작가를 아시나요편견의 늪아름다움을 나눈다는 것인도에 물을 긷는 하인이 살고 있었다. 주인집에 물을 길어다 주는 게 그가 맡은 일이었다. 물동이 두 개에 물을 받아서, 어깨에 지게를 메고 양쪽 끝에 물동이를 매달고 주인집과 샘터를 왕복했다. 그런데 물동이 하나만 멀쩡하고 다른 하나는 금이 갔기 때문에 주인집에 도착해 보면, 멀쩡한 물동이는 언제나 물이 가득 담겨 있었지만, 금이 간 물동이에는 물이 반만 담겨 있었다.
하인은 2년 간 매일 같은 길을 오가며 물을 날랐다. 멀쩡한 물동이가 제 몫을 다 한다며 뽐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금이 간 물동이는 속상하고, 자신이 일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물을 가득 담아 주인에게 가야 하건만 매일 해야 할 몫의 반밖에 못해 내니...
어느 날, 너무 오랫동안 그렇게 지냈다고 생각한 금이 간 물동이는 물긷는 하인에게 말을 걸었다. "내 자신이 부끄러워 죽겠어요. 사과 드리고 싶어요." "어째서?" 물긷는 하인이 반문했다. "지난 두 해 동안, 내 몸에 금이 간 부분으로 물이 줄줄 새나갔잖아요. 늘 반밖에 물을 담아 가지 못했어요. 아저씨는 매일 샘에서 주인집까지 나를 날라주지만, 내가 변변치 못해서 아저씨가 수고한 것의 절반밖에 성과가 없어요." 물동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물긷는 하인은 속상해하는 물동이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오늘 우리가 주인댁으로 돌아갈 때, 길가에 핀 예쁜 꽃들을 보렴." 그 날 금이 간 물동이는 길가에 핀 들꽃을 보았다. 햇살을 받아 꽃이 환하게 빛났고, 살랑거리는 바람에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금이 간 물동이는 주인집이 가까워지자 또 속이 상했다. 이번에도 물이 반쯤 흘러버렸으니까. 그래서 물긷는 하인에게 다시 사과했다.
그러나 하인은 이렇게 말했다. "꽃이 네가 있는 쪽으로만 피어 있는 걸 못 봤니? 네가 물을 흘리는 것을 알고, 내가 그쪽 길에 꽃씨를 뿌려두었거든. 매일 샘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너는 그 꽃에 물을 줬던 거야. 그리고 나는 매일 예쁜 꽃을 꺾어서 주인님의 탁자에 올려드렸지. 네 몸에 금이 가지 않았더라면, 주인님 댁이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되지 못했을걸."
- 윌리 맥나마라아빠가 타고난 신체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였다. 아빠는 언청이였는데, 내가 태어날 때부터 그런 모습이었기에 내게는 전혀 이상할 게 없어서, 한 번도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자랐다.
어릴 때 한번은 잠자리에 들기 전 아빠에게 뽀뽀하면서, 혹시 평생 키스를 하면 코가 납작해지느냐고 물었다. 아빠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그때 아빠가 눈물을 글썽거리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당신을 너무도 사랑해서, 수많은 입맞춤으로 얼굴 모양을 바로잡아 주고 싶은 딸의 마음을 아빠는 헤아렸으리라. 서른 세 번의 수술로도 바로잡지 못한 입술 모양을...
아빠는 친절하고 인내심 많고, 사려 깊고 사랑이 많은 분이었다. 나의 영웅이었고 첫사랑이었다. 아빠는 수위든, 비서든, 사장이든, 성이 아닌 이름을 기억해서 불렀다. 사실 사장보다는 수위를 더 좋아하던 분이었다. 수위들에게 늘 가족의 안부를 물었고, 어느 팀이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할 것 같은지 물었으며, 생활 여건이 어떤지를 물었다. 그들의 대답을 귀담아듣고, 분명히 기억하는 분이 아빠였다.
아빠의 인생은 언청이라는 점 때문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 모습으로는 손님을 상대해 물건을 판매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아빠는 자전거를 타고 물건 배달을 하면서 나름대로의 거래선을 구축했다. 군대에서 징집해 주지 않자 자원해서 입대했다. 미스 아메리카에게 데이트를 신청한 적도 있었다. "물어봐야 상대방의 뜻을 알지." 아빠는 그 데이트 신청에 대해서 내게 그렇게 말했다. 입술 모양 때문에 말이 새어나가서 전화 통화할 때는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했으므로, 아빠는 전화 통화보다는 사람들과 직접 만났다. 늘 긍정적인 태도와 환한 미소로 대했기에, 다른 사람들은 아빠의 장애를 문제 삼지 않았다. 아빠는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해서 건강한 일곱 남매를 두었으며, 모두 아빠의 얼굴에서 태양과 달이 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까다로운 10대'와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나는 아빠와 같은 공간에 있는 걸 참지 못했다. 아빠는 면도할 때 내가 옆에 서서 지켜보는 것을 10년이나 참아주었건만... 내 친구들은 모두 세련되고, 유행에 민감했다. 또 나는 또래들에게 인기도 좋았다. 하지만 아빠는 나이 든 구식 사람이었다.
어느 날 밤, 나는 야식을 먹자고 하면서 친구들을 우리 집으로 잔뜩 데리고 왔다. 아빠가 침실에서 내려와 친구들을 맞아주었다. 그리고 음료수를 내오고, 팝콘을 튀겨주었다. 한 친구가 날 한쪽으로 데려가더니 물었다. "너희 아빠 왜 저러셔?" 나는 방 저편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아빠를 편견의 눈으로 보게 되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아빠는 괴물 같았다! 서둘러 친구들을 집으로 보냈다. 나 자신이 너무나 바보 같았다. 전에는 어떻게 그걸 몰랐을까? 어쩜 그럴 수 있단 말인가? 그날 밤늦도록 울었다. 아빠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아서가 아니라, 내가 너무도 속이 얕은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비할 데 없이 다정하고 사랑이 넘치며 무엇이든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여기 있는데, 나는 고작 외모로 그 사람을 평가하다니.
그날 밤, 나는 깨달았다.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무지나 두려움, 경멸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면 편견의 깊은 나락으로 빠지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나는 남모르는 사람들처럼 아빠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나와 다르게 생긴 사람으로, 얼굴에 결함이 있는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그분이 아내와 아이들과 이 세상을 사랑하는 착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분이 즐거움과 슬픔을 갖고 있으며, 외모로 남들에게 경원 당하는 일생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이다. 내가 아빠의 본모습을 먼저 알게 된 것이 정말 다행스러웠다.
이제 아빠는 이 세상에 안 계시다. 아빠는 내게 다른 사람에 대한 동정심과 염려해 주는 마음을 남기고 떠나셨다. 그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다. 그것은 계층이나 인종, 종교, 장애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나는 불굴의 정신과 낙천적인 마음이라는 큰 선물을 받았다. 큰 사랑이라는 높은 목표를 갖고 살면서, 나는 코가 납작하게 될 정도로 많은 입맞춤을 주고받는다.
- 캐럴 다넬1982년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10월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한 친구로부터 네바다 주의 르노에서 사업상 약속이 있다며, 함께 출장을 가자는 부탁을 받았다. 친구가 일하는 동안, 나는 하릴없이 버지니아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 광경을 맞이하게 되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그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누구와도 눈맞춤을 할 수 없었다. 다들 땅바닥만 내려다본 채 걸어다녔던 것이다. 나는 마음이 급해서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계산대에 있는 직원에게 잠시만 나와 같이 밖으로 나가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다른 별에서 온 사람처럼 쳐다봤다. "글쎄요..." "잠깐이면 될 거예요." 백화점 직원은 내키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따라나섰다.
거리로 나오자, 내가 말했다. "일몰 광경 좀 봐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아무도 저걸 보지 않아서요. 누군가와 저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어서 당신을 데리고 나온 거예요." 잠시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내가 입을 열었다. "분명히 신은 계시고,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네요." 내가 함께 봐줘서 고맙다고 인사하자, 직원은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난 그 자리를 떠났다. 아름다움을 나눈다는 것은 역시 즐거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을 까맣게 잊었다.
4년 후, 나의 상황은 심각하게 변했다. 20년 간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나는 혼자가 되었고, 평생 처음으로 혼자 힘으로 살아야 했다. 진창으로 고꾸라진 것 같았다. 게다가 경제적 형편이 나빠져 컨테이너 집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정말 내 인생이 바닥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빨래도 공동 세탁장에서 해야만 했다.
어느 날 세탁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연히 「유니티 매거진」이라는 잡지를 보았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어느 여자의 이야기가 나왔다. 이혼해서 낯선 동네로 이사했는데,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백화점 화장품 판매직뿐, 그녀가 싫어하는 일이었다고 했다. 그녀와 나는 공통점이 많았다. 그녀는 나만큼이나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고, 그 덕분에 모든 게 변했다고 했다. 한 여자가 백화점에 들어와서는 잠깐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는 것이었다. 일몰 광경을 함께 보자고. 그 여자가 "분명히 신은 계시고,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네요."라고 말한 순간, 그 말이 진실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는데, 다만 자신이 그걸 보지 못했을 뿐임을 알았다고. 그때부터 인생이 바뀌었다고.
- 쉐리 매독스
* 편집자의 글: 쉐리가 다시 세탁실에 가봤지만 잡지는 거기 없었다. 「유니티 매거진」에 편지를 썼지만 잡지사가 이사하는 중이어서 도움을 받지 못했다. 쉐리는 르노에서 만난 사람이 그녀에게도 똑같은 일을 해주었음을 알리고 싶어한다. 그 선물이 되돌아왔음을.19세기. 열 살 난 아이가 런던에서 몹시 고단하게 살고 있었다. 아버지가 빚을 지고 감옥에 갇히는 바람에, 아이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지내야 했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쥐가 들끓는 어두운 헛간에서 병에 상표 붙이는 일을 했다. 부랑아 둘과 다락방에서 잠을 자면서도, 아이는 은밀히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학교에 다닌 것은 고작 4년. 작가가 될 가망성은 전혀 없었다.
어느덧 열심히 쓴 첫 원고가 완성되었다.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비웃음이나 살까 봐, 그는 깊은 밤 몰래 나가 우체통에 원고를 넣었다. 그러나 완성된 원고를 계속 출판사에 보냈지만, 늘 거절당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 출판사에서 책을 내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원고료는 못 받았지만, 편집자로부터 글이 훌륭하다는 칭찬을 받았다.
이 책이 출판되자 세인의 주목이 쏟아졌고, 그의 인생에 큰 변화가 생겼다. 그 편집자의 격려가 없었다면, 그는 쥐가 들끓는 공장에서 평생을 보냈으리라. 여러분도 이 소년의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아동과 빈곤 계층을 학대하는 풍토를 개혁하게 만든 책을 쓴 사람. '크리스마스 캐럴'의 작가 찰스 디킨스.
- 윌리 맥나마라몇 세대 전 세상을 풍미한 연예인 지미 두란트에 대한 멋진 이야기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를 위한 쇼에서 공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일정이 몹시 빡빡해서 단 몇 분밖에 참석할 수 없다고 그가 말했지만, 주최측은 상관없다고 했다. 지미 두란트는 쇼 기획자의 동의하에, 간단히 모놀로그를 하고 다음 약속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행사 당일, 지미가 무대에 오른 후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는 짧은 모놀로그를 연기한 후에도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박수 소리는 점점 켜졌고, 그는 계속 무대 위에 있었다. 그의 공연 시간은 길어졌다. 15분, 20분, 30분... 마침내 마지막 인사를 하고 무대에서 내려온 지미.
무대 뒤로 돌아온 그에게 누군가 물었다. "몇 분만 공연하고 떠나시는 걸로 알았는데, 어떻게 된 겁니까?" 지미는 대답했다. "사실 바로 가야 했지만, 계속해야 될 이유를 발견했거든요. 직접 보시죠. 맨 앞줄에 앉은 사람들을 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겁니다." 앞줄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전쟁에서 팔 하나를 잃은 상이용사들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각자의 남은 한쪽 팔을 합해서 신나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 팀 한셀내가 어릴 적, 이웃에 깁스라는 나이 많은 의사가 살았다. 그 분은 여느 의사와는 모습이 좀 달랐다. 볼 때마다 청바지 작업복에 밀짚모자 차림이었는데, 모자 앞 챙은 초록색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어 선글라스 역할을 했다. 닥터 깁스는 잘 웃는 분이었다. 그분의 모자랑 미소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오래되고, 주름이 잡히고, 자주 애용된다는 점! 닥터 깁스는 아이들이 당신의 집 마당에 들어가 놀아도 한 번도 나무란 적이 없었다. 직업이 의사였고 또 노인이었지만, 참 친절하고 좋은 분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닥터 깁스는 병원에서 아픈 사람을 치료하지 않을 때는 늘 나무를 심었다. 집이 10에이커나 되었는데, 닥터 깁스의 인생 목표는 그 넓은 땅을 숲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 마음씨 좋은 의사는 나무 가꾸기에 대해 아주 흥미로운 이론을 갖고 있었다. "고통이 없으면 수확도 없다."라는 원예 법칙이라나. 그분은 새로 심은 나무에는 물을 주지 않았는데, 이것은 전통 원예법과는 정반대였다.
어느 날 그 이유를 물었더니, 닥터 깁스는 식물에 물을 주면 식물을 망치게 된다고 했다. 나무에 물을 주면 나무가 대대로 점점 더 약해진다고. 그러니 처음부터 힘든 상황에 처하게 해서, 약한 나무는 일찌감치 솎아버려야 한다고. 나무에 물을 주면 나무는 뿌리를 얕게 내린다고 했다. 물을 빨아들이지 못하는 나무는 물을 찾아서 깊이 뿌리를 내릴 수밖에 없을 거 아니냐고. 닥터 깁스의 설명을 듣고, 나는 뿌리를 깊게 내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닥터 깁스는 그런 이유로 나무에 물을 주지 않았다. 참나무를 심고 물을 주기는커녕 매일 아침 둘둘 만 신문지 뭉치로 나무를 두들겨 팼다. 딱! 찰싹! 딱! 왜 그렇게 나무를 때리냐고 물으니, 나무의 관심을 끌려고 그런다나, 어쩐다나.
내가 집을 떠난 지 두어 해 될 무렵, 닥터 깁스는 세상을 떠났다. 이따금 그분의 집 앞을 지나며, 25년 전 닥터 깁스가 심은 나무들을 바라본다. 그 분이 심을 때 나도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나무들이다. 이제 그 나무들은 엄청나게 건강하게 자라났다. 크고 튼튼하게. 아침에 일어나 제 가슴을 쾅쾅 두드리고, 땅 깊은 곳에서 블랙 커피를 쭉 빨아 마시는 나무들이 아닌가.
몇 해 전, 나는 나무 두어 그루를 심었다. 더운 여름, 나무에 물을 열심히 주었다. 약도 열심히 뿌려주고, 잘 자라라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2년간 애지중지 보살핀 결과, 그 나무들은 지금도 누군가로부터 알뜰하게 시중 받기를 기대한다. 매서운 바람이 불 때면 이를 딱딱 부딪치며 오들오들 떠는 꼴이라니. 아직도 애기 같다. 닥터 깁스가 심고 가꾼 나무들은 참 우습다. 나무들이 역경과 결핍을 겪으면서, 안락함과 편함으로는 절대 얻지 못할 이득을 듬뿍 누렸다니. 참으로 이상도 하지.
매일 밤 자기 전, 나는 두 아들의 잠자리를 보살핀다. 나란히 누운 아이들의 작은 체구를 바라보며, 앞으로 이 아이들이 겪을 인생의 이런저런 일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가끔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