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그리워지는 순간, 여자는 절망하기 시작한다
율리아 온켄 지음 | 자음과모음
경험담
1. 여름이 저물고 있다나는 늘 디자인이 특이하고 복잡한 신발을 선호했다. 대체로 그런 신발들은 아주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물러설 내가 아니었다. 인생의 절반을 나는 한 치수 작은 신발과 함께 보냈다. 나는 너무 작아서 편하게 걸을 수 있기는커녕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신발들만 계속해서 열심히 사 모았다. 힘든 일들을 수없이 겪으면서도 나는 꿋꿋하게 작은 신발을 고수했다. 최근까지만 해도 나는 개성 있고 예쁜 신발들을 많이 진열해 놓는 길모퉁이의 신발가게를 고집했다. 아줌마 스타일의 신발에는 도통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겉으로는 강력한 거부감을 표출하면서도 언제부턴가 내 눈길이 자꾸만 문제의 그 곤돌라 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독설을 퍼부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폭신폭신한 털이 깔린 편한 신발을 신어보고 싶다는 열망이 불쑥불쑥 솟구쳤던 것이다. 그렇지만 한번 편한 맛을 보고 나면 내 발이 다시는 꽉 죄는 불편한 신발 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 같아 두려웠다. 나는 운명의 그날을 하루하루 미뤘다.
그러나 마침내 비 내리던 시월의 어느 아침 나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갈색 생가죽 신발 240! 정말 발이 편안했다. 너무 편해 춤을 추며 날아다녀도 될 것만 같았다. 내 나이 마흔 두 살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타인의 시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살아왔다. 그런데 신발을 바꾸고 나자 놀랍게도 타인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었다.
동시에 다른 부분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났다. 나는 지난 25년 동안 꾸준히 다이어트를 하며 칼로리를 따져 밥을 굶고 절식해 왔다. 또한 온갖 다이어트법과 여성 잡지에 우후죽순으로 소개되는 패션 강좌를 하나도 빠짐없이 기웃거리고 다녔다. 참으로 가련한 존재였다. 1그램의 몸무게가 줄 때마다 다시는 그 살이 몸에 달라붙지 않았으면 하는 가망 없는 희망과 다시 찔지도 모른다는 걱정 속에서 살았다. 끝없는 악순환이었다. 끝없는 투쟁이었다. 치명적이고 모욕적인 투쟁이었다.
내 옷장에는 세 가지 치수의 옷이 걸려 있었다. 제일 자주 입는 옷은 큰 치수였고 중간 치수는 다이어트의 중간 단계에서 입는 옷이었다. 구색이 제일 많은 작은 치수의 옷은 입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한 번도 걸쳐 보지 못한 옷도 몇 벌 있었다.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나는 진실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매일 몸무게를 달았다. 더구나 이런 종류의 고통은 홀로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같은 체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저울은 내 삶의 나침반이었고, 북극성이었으며 저주였다. 저울에게 물어보기 전에는 내 몸의 느낌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판단력이 완전히 상실된 상태였다. 귀찮은 칼로리 계산이 끝나고 나서야 겨우 제정신이 돌아오곤 했다. 배고픔이나 포만감 같은 신체감각은 없어진 지 이미 오래였다.
나는 날씬해져야 한다는 피상적인 목표만 보고 있었다. 그런 태도는 진지한 자세가 아니었다. 증상만 제거하려고 목표 주위만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그런 식으로 피상적인 목표만 쫓다보면 절대로 진짜 원인을 찾지 못할 것이며, 문제 해결도 하지 못할 거라는 것을 말이다. 갑자기 내가 말할 수 없이 어리석고 멍청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나는 내 자신을, 나의 신체를 세상의 중심으로 삼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이제라도 내 신체의 내부를 정리 정돈하고 청소하여 될 수 있는 대로 편안한 실내 환경을 꾸미고 싶었다. 나의 중심을 저울과 칼로리 계산이라는 외부에서 내면으로 옮기고 싶었다.
나는 제일 먼저 저울을 몽땅 낡은 박스에 집어넣고 밖에 내다놓았다. 때마침 폭우가 내리는 바람에 그 다음 주가 돼서야 쓰레기차가 와서 그것들을 실어갔다. 하지만 비가 내려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잔인 무도한 고문기구가 비에 젖어 곰팡이 쓴 쓰레기와 함께 실려갈 날을 기다리는 그 짜릿한 기분이라니!
그 후 나는 이 사실을 '그이'에게 보고했다. 나쁘지 않았다. 그는 원래 통통한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였다. 늘 입버릇처럼 "나도 말랐는데 당신까지 말라서야 되겠어?"라고 했었다. 그렇지만 막상 내가 진짜로 공기를 꽉 채운 고무보트처럼 뚱뚱해졌을 때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모를 일이다.
나는 아주 침착하게 그에게 말했다. 앞으로 몇 달 안에 내가 이스트를 넣은 밀가루 반죽처럼 부풀어오를 확률이 높다.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식욕을 억제하고 사는 다른 여자를 찾아봐라. 더 이상은 그런 멍청한 짓을 못하겠다. 이제 비만을 신체의 불균형을 지적해주는 신중한 친구로 여기기로 했다. 나는 문제의 진짜 배경을 찾아 원인 제거에 노력하겠다. 그러면 나머지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나는 이 멍청한 단식에 진력이 났다. 이제 원래의 나로 되돌아가서 나를 찾고 나를 중심으로 삼겠다 등등.
난 정말 확신을 가지고 해방의 기분을 마음껏 즐겼다. 대단한 존재라도 된 기분이었다. 난생 처음 나 자신과 나의 개성을 느꼈으며, 한 남자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가 지금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없다면 미련 없이 떠나보내리라 마음먹었다.
나에게는 다른 사람의 요구에 나를 맞춰 나를 잊어버리고, 타인의 바램을 내 것인 양 받아들여 들어주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그러면서 정작 내 자신의 욕구는 새겨보지 않았다. 심정의 변화는 패션에도 신속하게 영향을 미쳤다. 그 동안 나는 옷을 입을 때마다 야단법석을 떨었다. 무엇이든 내 몸에 걸치는 것은 독특해야 했다. 누군가의 초대를 받으면 제대로 앉을 수도 없는 꽉 끼는 옷을 입었고, 엎어질 듯 굽 높은 구두를 신었다. 번쩍거리는 것은 정신 못 차리고 좋아하여 온갖 종류의 쓰레기와 넝마를 주렁주렁 달고 다녔다.
그러나 이제 뻣뻣하고 꽉 끼는 통기성 나쁜 섬유에는 질렸다. 불편하고 몸에 조이는 옷은 모두 내 옷장에서 사라졌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갑자기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일까? 바깥에서만 나를 바라보고 규정하던 습관이 변하여 나의 내부를 바라보게 된 것 같았다.
그런 차에 생리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찾아오는 불안, 빌어먹을 임신일까? 하필이면 지금,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혼자서 아이들을 보살펴야 하는 이런 때에. 아니면 칼과 포크로 잘라내야 하는 근종일까? 혹시 암? 생리를 목매달고 기다리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 남자들은 정말 상상도 못 할 것이다. 그럼에도 여자들은 매번 이런 고통스런 복권에 몸을 던진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불이익을 당하는 쪽이다.
나는 의사(물론 여의사!)를 찾아갔다. 혹시 모를 사형선고를 받으러 갔던 것이다. 나는 요즈음 내가 겪고 있는 발작적인 발열증상에 대해서도 호소했다. 그녀는 폐경 증상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슨 증상이요?" "갱년기 말입니다. 혈중 호르몬 함량을 측정해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하긴 임신이나 암보다는 갱년기가 낫겠지.
며칠 후 결과가 나왔다. "정말 갱년기시군요". 그 순간 '저런 말을 여자한테 들어서 다행이야'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심한 충격을 받았고, 여성으로서의 자존심에 매우 큰 상처를 받았다. 끝없는 수치심이 스멀스멀 기어 들어오는 느낌, 그 순간부터 나는 가치 없는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헌신짝 같이 닳아 야유의 대상이 된 자격 없는 여자. 그렇게 엇비슷한 나이의 두 여자가 환자와 의사의 입장이 되어 서로 마주 앉아 있었다. 만일 남자에게 이런 선고를 받았더라면...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남자 산부인과 의사가 여자에 대해 뭘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여의사 앞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감사했다. 적어도 자기가 전달하고 있는 말의 의미는 완전히 파악하고 있을 테니까.
발열과 여타 증상을 치유할 여성 호르몬을 핸드백에 넣고 나는 멍한 상태로 병원을 나섰다. 머리가 텅 빈 것 같은 느낌으로 늦여름의 거리를 달렸다. 나, 누구나 입에 올리기를 꺼리는 나이의 나. 제대로 날아보기도 전에 동체착륙을 강요당한 나. 아, 생체의 무자비함이여!
"나 갱년기래." 나는 그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움직임 하나 하나까지 가슴에 새기며 그를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눈썹의 작은 떨림, 동공의 작은 변화까지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된다. 만일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을 시에는 당장 보따리를 꾸려 쫓아낼 판이었다. "내 눈앞에서 사라져!" 그 한 마디를 멋있게 내뱉으면서. 그런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동문서답, 그냥 커피를 마시겠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한 번 더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갱년기래." "그래서?" "갱년기라니까." "그것 뿐이야?" "그것 뿐이야?" 나는 그의 말투를 흉내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당신은 이제 늙은 노파하고 자는 거란 말이야." 나는 꽥꽥 소리를 질렀다. 여전히 그는 반응이 없었다. "아주 자극적인 소식인데."
그는 나를 끌어당겨 내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쥐고 물빛 눈동자로 내 눈을 뜨겁게 바라보더니 내 코끝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부드러우면서도 힘있게 나를 안고 내 귓불을 깨물며 속삭였다. "내 작은 강아지가 한창 나이의 성숙한 여자가 되다니, 뻔뻔스럽게도..." 그는 갑자기 정열적인 애정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흥분하여 내게 키스를 퍼부었다. 갱년기에 접어든 바로 나에게 말이다. 그는 나보다 열 한 살 아래로 젊고 생기 발랄하고 힘이 넘치는 잘생긴 남자였다. 바로 그 남자가 갱년기의 나를 사랑스러운 듯 품에 안고서, 뻔뻔스럽게도 그가 서른 하나고 내가 마흔 둘이라는 사실을 매력적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여성 잡지의 여성 편집자들이야말로 가장 무자비한 남성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설문지를 받아보았다. 잔뜩 기대를 하고 대답을 살펴보았다. 그중 가장 충격적인 결과는 갱년기를 경험하지 않은 젊은 여성들의 답변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갱년기를 장례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광고와 매체의 영향 때문이었다. 광고 매니저들이야 오직 판매전술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여성잡지의 행각은 이미 범죄 수준이었다. 그럴싸한 포장으로 보디빌딩, 에어로빅, 최신 다이어트 강좌와 연구소를 소개한다. 젊고 날씬하고 (여드름 없는) 비단 같은 피부에, 예쁜 코, 딱 붙은 귀, 하얀 이빨, 완벽한 매니큐어, 면도한 겨드랑이와 다리, 팽팽한 가슴과 배와 힙을 갖춘 사람만이 여성이 될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 잡지의 여성 편집자들이야말로 가장 무자비한 남성이다. 그들은 인정사정 없이 가축시장의 가격표에 대해 토론을 한다. 그러니 젊은 여성들이 주름진 피부의 인생을 상상할 수 없다 해도, 그것을 삶이 아니라 죽음으로 부른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래서 오로지 껍데기를 잘 가꾸는 일에 온 에너지를 쏟아 붓는 것이다. 노화라는 막을 수 없는 사실을 막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말이다.
한편 가장 의외의(희망적인) 대답은 36세 이하 남성들의 설문지였다. 그들은 여자들에게 아기 피부를 바라지 않았다. 젊은 남성들은 파트너에게서 다른 특성, 즉 정신적인 것과 관련된 특성을 원했다. 그들은 나이든 여자를 무시하지 않았다. 25퍼센트 이상이 40대의 여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다고 답했다. 여성잡지가 인간관계를 더 포괄적으로 담아내려면 젊은 남성들에게 편집을 맡겨야 할 것 같았다.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남자들의 대답은 아주 다양했다. 몇몇은 아내의 갱년기 여부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또 다른 부류는 아내가 갱년기에 접어든 이후 변덕스러워졌고 짜증이 잦아졌다고 답했다. 외적인 변화에 관해서도 다양한 대답이 있었다. 자신이 늙는 것을 두려워하는 남자들은 여자들이 늙어가는 것을 싫어하며, 때로 젊은 여자를 탐하기도 한다고 답했다. 그래서 나는 여자들에 대해 부정적이고 모욕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남자들은 바로 자신의 노화를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남성들의 설문지를 분석하면서, 나는 내가 아주 행복한 사람이며 파트너를 잘 골랐다는 느낌을 받았다. 펠릭스는 자신도 언젠가는 늙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기에는 아직 젊다. 그래서 나의 노화현상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외적인 노화 과정을 흥미와 호기심으로 지켜보았다.
내가 가장 집중적으로 분석한 대상은 갱년기를 겪고 있거나 갱년기를 이미 경험한 여성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원칙적으로 두 가지의 체험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는 시간을 되돌리려 절망적으로 몸부림치는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시간과 돈을 있는 대로 투자하여 볼륨 있는 신체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물론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그들은 어디를 가나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는 찬사를 받는다. 그러나 그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패배감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또 다른 그룹은 슬픔과 고통을 겪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감정을 딛고 내면의 새로운 영역을 발견하였다고 대답했다.
나는 여성들의 설문지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나 역시 같은 경험을 거친 후였기 때문에 자연적인 인생행로를 저지하려는 노력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 그것이 바로 갱년기가 아니던가! 변화의 시기, 이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무언가 변화했다는 것이다. 변화의 시기라는 말은 가치평가를 담고 있지 않다. 그것은 동등한 가치의 교환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이 죽음을 준비하고 내면을 들여다보며 내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면 인생의 목표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경우 갱년기가 있어 남성보다 확실하게 그 시기를 알 수 있다. 그런 시기가 오면 우리는 인생의 목표를 육체에서 정신으로 바꾸어야 한다. 갱년기는 이런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오로지 육체적인 정체성에만 집착하는 여성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들은 일정한 단계에서 발전을 멈추고 존재의 외적인 측면에만 집착하고 있다. 하지만 원한다면 생각을 180도 뒤집을 수 있다. 갱년기에 나타나는 육체적 변화는 외부 인생곡선을 내부로 전환시킬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외모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육체의 가장 상석, 나머지 부분보다 하늘과 빛에 가까이 있는 머리는 세월이 갈수록 밝아진다. 연주회에 갔을 때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 중에서 흰머리를 발견하면, 나는 어둠 속에서도 밝은 불빛이 비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겉보기에도 흰머리는 지혜를 듬뿍 담고 있다. 불굴의 의지로 천지만물의 원리를 고치고 조작하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지혜를 담은 머리를 갖게 될 것이다.
한번은 계산대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 틈에 끼어 서 있었다. 펠릭스가 갑자기 나를 유심히 살폈다. "당신, 피곤해 보여!" 나는 신경이 곤두서고 초조한 상태여서 싸움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늙어 보인다는 말이지?" "아니, 그런 말이 아니야." "그 말이잖아.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거잖아. 나도 내 나이만큼 늙어 보일 권리가 있어. 주름살을 감추려고 버둥거릴 마음은 추호도 없어. 주름살은 소중한 거야. 이 빌어먹을 쇼핑세상을 살아온 연륜 아니겠어."
나는 점점 열이 올랐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흘깃거렸다. 펠릭스는 나를 진정시켜 보려고 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결국 그는 쓰레기 더미로 넘쳐나는 쇼핑센터 한가운데에서 나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내 말을 막았다. 그리고는 귀에 대고 음란한 소리를 지껄이다가 내 귀고리를 건드렸다. 나는 화를 벌컥 내며 욕을 퍼부었다. 당신 때문에 남아나는 것이 없어. 콩알만한 보석 하나 남은 것마저 먹어치우려고 그래 등등.
갱년기의 일곱 가지 원칙현대인은 자신의 내면과 절연되어 있다. 병의 모습을 띠고 육체적인 증상으로 그 사실을 알려주어도 무조건 무시하거나, 더 심한 경우 그 증상만을 없애려고 사력을 다한다. 육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진실을 요구한다.
병으로 치부되곤 하는 갱년기 증상도 마찬가지다. 갱년기는 받아들이고 배태하며 베풀고 지켜주는 달의 여성적 원칙에서, 침입하여 뚫고 들어가고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태양의 남성적 원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상징한다. 갱년기의 우리는 뜨겁다. '발열'은 덤으로 얻은 새로운 태양의 특징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멋진 순간 아닌가! 얼굴의 불빛 신호! 우리 신체의 가장 위 부분이 태양을 닮아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