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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그리워지는 순간, 여자는 절망하기 시작한다

율리아 온켄 지음 | 자음과모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설문지를 받아보았다. 잔뜩 기대를 하고 대답을 살펴보았다. 그중 가장 충격적인 결과는 갱년기를 경험하지 않은 젊은 여성들의 답변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갱년기를 장례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광고와 매체의 영향 때문이었다. 광고 매니저들이야 오직 판매전술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여성잡지의 행각은 이미 범죄 수준이었다. 그럴싸한 포장으로 보디빌딩, 에어로빅, 최신 다이어트 강좌와 연구소를 소개한다. 젊고 날씬하고 (여드름 없는) 비단 같은 피부에, 예쁜 코, 딱 붙은 귀, 하얀 이빨, 완벽한 매니큐어, 면도한 겨드랑이와 다리, 팽팽한 가슴과 배와 힙을 갖춘 사람만이 여성이 될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 잡지의 여성 편집자들이야말로 가장 무자비한 남성이다. 그들은 인정사정 없이 가축시장의 가격표에 대해 토론을 한다. 그러니 젊은 여성들이 주름진 피부의 인생을 상상할 수 없다 해도, 그것을 삶이 아니라 죽음으로 부른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래서 오로지 껍데기를 잘 가꾸는 일에 온 에너지를 쏟아 붓는 것이다. 노화라는 막을 수 없는 사실을 막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말이다.



한편 가장 의외의(희망적인) 대답은 36세 이하 남성들의 설문지였다. 그들은 여자들에게 아기 피부를 바라지 않았다. 젊은 남성들은 파트너에게서 다른 특성, 즉 정신적인 것과 관련된 특성을 원했다. 그들은 나이든 여자를 무시하지 않았다. 25퍼센트 이상이 40대의 여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다고 답했다. 여성잡지가 인간관계를 더 포괄적으로 담아내려면 젊은 남성들에게 편집을 맡겨야 할 것 같았다.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남자들의 대답은 아주 다양했다. 몇몇은 아내의 갱년기 여부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또 다른 부류는 아내가 갱년기에 접어든 이후 변덕스러워졌고 짜증이 잦아졌다고 답했다. 외적인 변화에 관해서도 다양한 대답이 있었다. 자신이 늙는 것을 두려워하는 남자들은 여자들이 늙어가는 것을 싫어하며, 때로 젊은 여자를 탐하기도 한다고 답했다. 그래서 나는 여자들에 대해 부정적이고 모욕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남자들은 바로 자신의 노화를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남성들의 설문지를 분석하면서, 나는 내가 아주 행복한 사람이며 파트너를 잘 골랐다는 느낌을 받았다. 펠릭스는 자신도 언젠가는 늙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기에는 아직 젊다. 그래서 나의 노화현상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외적인 노화 과정을 흥미와 호기심으로 지켜보았다.



내가 가장 집중적으로 분석한 대상은 갱년기를 겪고 있거나 갱년기를 이미 경험한 여성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원칙적으로 두 가지의 체험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는 시간을 되돌리려 절망적으로 몸부림치는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시간과 돈을 있는 대로 투자하여 볼륨 있는 신체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물론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그들은 어디를 가나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는 찬사를 받는다. 그러나 그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패배감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또 다른 그룹은 슬픔과 고통을 겪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감정을 딛고 내면의 새로운 영역을 발견하였다고 대답했다.



나는 여성들의 설문지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나 역시 같은 경험을 거친 후였기 때문에 자연적인 인생행로를 저지하려는 노력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 그것이 바로 갱년기가 아니던가! 변화의 시기, 이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무언가 변화했다는 것이다. 변화의 시기라는 말은 가치평가를 담고 있지 않다. 그것은 동등한 가치의 교환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이 죽음을 준비하고 내면을 들여다보며 내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면 인생의 목표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경우 갱년기가 있어 남성보다 확실하게 그 시기를 알 수 있다. 그런 시기가 오면 우리는 인생의 목표를 육체에서 정신으로 바꾸어야 한다. 갱년기는 이런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오로지 육체적인 정체성에만 집착하는 여성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들은 일정한 단계에서 발전을 멈추고 존재의 외적인 측면에만 집착하고 있다. 하지만 원한다면 생각을 180도 뒤집을 수 있다. 갱년기에 나타나는 육체적 변화는 외부 인생곡선을 내부로 전환시킬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외모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육체의 가장 상석, 나머지 부분보다 하늘과 빛에 가까이 있는 머리는 세월이 갈수록 밝아진다. 연주회에 갔을 때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 중에서 흰머리를 발견하면, 나는 어둠 속에서도 밝은 불빛이 비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겉보기에도 흰머리는 지혜를 듬뿍 담고 있다. 불굴의 의지로 천지만물의 원리를 고치고 조작하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지혜를 담은 머리를 갖게 될 것이다.



한번은 계산대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 틈에 끼어 서 있었다. 펠릭스가 갑자기 나를 유심히 살폈다. "당신, 피곤해 보여!" 나는 신경이 곤두서고 초조한 상태여서 싸움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늙어 보인다는 말이지?" "아니, 그런 말이 아니야." "그 말이잖아.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거잖아. 나도 내 나이만큼 늙어 보일 권리가 있어. 주름살을 감추려고 버둥거릴 마음은 추호도 없어. 주름살은 소중한 거야. 이 빌어먹을 쇼핑세상을 살아온 연륜 아니겠어."



나는 점점 열이 올랐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흘깃거렸다. 펠릭스는 나를 진정시켜 보려고 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결국 그는 쓰레기 더미로 넘쳐나는 쇼핑센터 한가운데에서 나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내 말을 막았다. 그리고는 귀에 대고 음란한 소리를 지껄이다가 내 귀고리를 건드렸다. 나는 화를 벌컥 내며 욕을 퍼부었다. 당신 때문에 남아나는 것이 없어. 콩알만한 보석 하나 남은 것마저 먹어치우려고 그래 등등.갱년기의 일곱 가지 원칙현대인은 자신의 내면과 절연되어 있다. 병의 모습을 띠고 육체적인 증상으로 그 사실을 알려주어도 무조건 무시하거나, 더 심한 경우 그 증상만을 없애려고 사력을 다한다. 육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진실을 요구한다.



병으로 치부되곤 하는 갱년기 증상도 마찬가지다. 갱년기는 받아들이고 배태하며 베풀고 지켜주는 달의 여성적 원칙에서, 침입하여 뚫고 들어가고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태양의 남성적 원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상징한다. 갱년기의 우리는 뜨겁다. '발열'은 덤으로 얻은 새로운 태양의 특징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멋진 순간 아닌가! 얼굴의 불빛 신호! 우리 신체의 가장 위 부분이 태양을 닮아 가는 것이다.



'발생' 역시 암시하는 바가 크다. 발생은 발생을 낳는다. 그리고 다시 굳어지면 새로운 발생이 일어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새로운 방향설정을 위해 낡은 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잠 못 드는 밤, 나는 갱년기와 관련된 일곱 가지 원칙을 만들었다.

1. 갱년기는 생물학적 비극이 아니라 창조적이고 정신적인 새로운 단계로의 도약이다.

2. 갱년기는 육체적 모성이라는 생물학적 의무로부터 벗어나 정신적 모성을 이룩하도록 우리를 해방 시켜 준다.

3. 갱년기의 육체적 변화는 내적 변화의 허상이다.

4. 갱년기에는 태양의 남성원칙이 보충되므로 우리는 달의 여성 원칙에서 해방될 수 있다.

5. 갱년기는 방향설정과 정체성 확인이 육체에서 정신으로 넘어가는 시기이다.

6. 갱년기는 육체라는 '반쪽이'에서 인간이라는 완전한 존재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이다.

7. 갱년기에는 외부 인생곡선이 내부 인생곡선과 교차된다. 외부 곡선은 점차 하강하는 반면 내부곡 선은 지속적으로 상승한다.오로지 껍데기에만 신경을 집중하는 건 스스로 자신의 가격을 동물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짓이다. 잘 알다시피 인간의 육체적 능력은 동물보다 못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동물과의 경쟁에 뛰어들어 육체적 능력을 향상시키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다. 왜 하필이면 자연이 만들어 놓은 이런 역할 분배를 뒤집고 바꾸려는 걸까? 왜 우리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정신력, 자유 의지, 의식, 정신을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가?



이처럼 인간이 가진 능력을 깨닫지 못하는 곳에 현대인간의 비극이 있다. 시간과 세월을 거스르려는 노력은 결국 우울증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육체적 차원은 인간 존재의 가장 바깥에 있는 층일 뿐이다. 인간의 본체를 담고 있는 용기, 껍데기, 포장이다. 물론 껍데기를 예쁘게 꾸미는 것도 의미 있고 재미있다. 하지만 우리의 정체성과 가치를 오로지 껍데기에서만 확인하려 한다면 우리의 삶을 살찌우는 내부의 풍성한 자산은 모두 사장되고 말 것이다.



인생이란 이 세상 모든 만물이 그러하듯 유한하다. 이런 법칙을 무시하는 것은 도도한 인생의 강물을 거스르며 상류를 향해 열심히 헤엄치지만, 항상 똑같은 자리에서 발버둥치다가 만물의 질서를 따르지 못하는 것과 같다. 한 마디로 말해 인생의 초반기는 '자신'의 개발, 인생 후반기는 '자아'의 성장에 힘써야 한다.



자신의 개발은 인생의 초기 단계에 해당되며 개인의 희망과 욕구를 포함한 인격 전반의 형성을 그 내용으로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관심사에 전력을 쏟고 자신의 욕구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자아는 물질이 아닌 정신적 원칙을 따르며, 그럼으로써 인간의 완전함, 인간의 신성함을 핵심으로 하는 정신적 흐름에 몸을 맡긴다.



그러므로 자아의 성장은 직접 인간 내부를 향하는 운동이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운동이다. 그것은 개개인의 책임감과 이기심 극복을 향해 내딛는 중요한 행보이지만, 또한 진정한 독립선언이기도 하다. 나는 동반자 없이 혼자 걸어가고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우주 만물 속에 깃들어 있다. 그래서 자아를 향한다는 말은 개인의 한계를 극복함과 동시에 모든 존재와 결합되어 있는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심리치료 그룹에서는 자신의 발전과 욕망 실현, 욕구 해소를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인간들을 만날 수 있다. 정신을 추구하는 종교집단에서는 그 반대 현상을 볼 수 있다. 그곳에서는 자아의 성장을 지고의 목표로 삼기 때문에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차원을 경멸하며 열등한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둘은 어느 정도 짝을 이룬다.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도 불가능하다. 쇠약하고 굶주린 자신을 발판으로 자아의 완전한 성장은 있을 수 없다. 자신은 꽃이다. 꽃이 활짝 피어 꽃망울을 터뜨려야만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정신의 향기가 흘러나오는 것이다.



세미나에 참석한 여성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그 동안 얼마나 자신을 등한시했으며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것을 참아왔는지 깨달았다는 고백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문득 자기 자신을 인식하게 되고 거울 속을 들여다보듯 당장 해야 할 일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은 남에게 요구해서도 안 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우선 우리 스스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면서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노력을 거듭해도 사회적인 규범과 가치가 여성의 노화에 부정적이라면 결국은 허사로 돌아가지 않을까? 나는 이런 두려움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자주 만났다. 나 역시 수많은 일을 겪어 왔다. 오랫동안 나는 세계가 변해야 한다고, 사회와 내 남편이 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싸웠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멀고도 먼 사회의 변화를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실행에 옮기고 있다. 우선 나 자신부터 나이 든 여성을 깎아 내리거나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고 있지는 않은지 검토해 보곤 한다. 내가 먼저 변화하여 내 운명의 책임을 스스로 떠맡았던 것이다.인간에게는 두 가지 인생곡선이 있다. 그 하나는 신체의 변화를 나타내는 외부 곡선으로, 인생 중반기인 38세를 기점으로 점차 하강하며, 또 하나는 내면의 변화를 나타내는 내부 곡선으로 중반기 이후 점차 상승한다. 인생의 곡선에는 의미가 있다. 인생의 각 단계는 심오한 삶의 의미를 깨닫고 각 단계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도와주는 협력자이다.



나이가 들수록 각성과 포용력, 지혜가 풍부해질 가능성도 커진다. 뿌리를 땅 속 깊이 뻗치고 가지를 빛을 향해 뻗는 거대한 나무처럼 말이다. 갱년기에는 인생의 양 곡선이 교차한다. 우리는 그 교차점에서 육체의 곡선으로부터 정신의 곡선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것이 갱년기의 메시지이다. 미래는 이미 결정되었고, 그 미래의 계획을 완수할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내부 곡선의 흐름은 외부 곡선과는 전혀 다르다. 인생의 중반기가 지나면 깨어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외부보다 내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 내면의 소리를 보다 정확히 읽어낸다. 육체의 속도가 떨어져서 에너지 소비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점차 상승하다가 하강하는 외부 곡선과 내부 곡선이 교차된다. 에너지 방출 위치도 바뀐다. 육체의 힘이 감소될수록 내면의 발전과 성숙에 필요한 에너지가 보다 많이 방출된다. 그 결과 우리는 인생의 지혜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인생의 의미는 단 하나 인간이 되는 것, 즉 인간화이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성공을 하거나, 아름다운 피부와 두둑한 지갑을 소유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영화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투자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은 우리의 내면을 개발하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존재의 가장 위대한 순간을 체험하게 하고, 육신이라는 답답한 껍질을 벗어 던질 인생의 고지를 향해 차곡차곡 계단을 쌓아주기 때문이다. 마치 나비가 답답한 고치를 뚫고 나와 날개를 펼치고 아침 햇살을 향해 날아오르는 것과 같다.



늙어간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다. 희망과 욕망이라는 급행열차의 속도를 천천히 줄이고, 멈추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언제든지 멈추었다가 어느 순간 목표도 미래도 없이 다시 떠날 수 있는 완행열차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죽음의 순간, 또렷하고 맑은 정신으로 크리스탈 같은 화려한 빛 속으로 뛰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여성 잡지의 여성 편집자들이야말로 가장 무자비한 남성이다나는 늘 디자인이 특이하고 복잡한 신발을 선호했다. 대체로 그런 신발들은 아주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물러설 내가 아니었다. 인생의 절반을 나는 한 치수 작은 신발과 함께 보냈다. 나는 너무 작아서 편하게 걸을 수 있기는커녕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신발들만 계속해서 열심히 사 모았다. 힘든 일들을 수없이 겪으면서도 나는 꿋꿋하게 작은 신발을 고수했다. 최근까지만 해도 나는 개성 있고 예쁜 신발들을 많이 진열해 놓는 길모퉁이의 신발가게를 고집했다. 아줌마 스타일의 신발에는 도통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겉으로는 강력한 거부감을 표출하면서도 언제부턴가 내 눈길이 자꾸만 문제의 그 곤돌라 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독설을 퍼부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폭신폭신한 털이 깔린 편한 신발을 신어보고 싶다는 열망이 불쑥불쑥 솟구쳤던 것이다. 그렇지만 한번 편한 맛을 보고 나면 내 발이 다시는 꽉 죄는 불편한 신발 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 같아 두려웠다. 나는 운명의 그날을 하루하루 미뤘다.



그러나 마침내 비 내리던 시월의 어느 아침 나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갈색 생가죽 신발 240! 정말 발이 편안했다. 너무 편해 춤을 추며 날아다녀도 될 것만 같았다. 내 나이 마흔 두 살이었다. 그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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