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차이 모르거나 혹은 오해이거나
스즈키 히로부미 지음 | 글담
남녀차이, 모르거나 혹은 오해이거나
스즈키 히로부미 지음/윤명현 옮김
글담/2001년 6월/229쪽/7,800원
1. 남자와 여자에 대한 몇 가지 오해 그리고 편견
부엌에서 나오는 여자, 부엌으로 들어가는 남자
병원을 찾은 중년의 남자 환자가 한 얘기다. “어느 날 저녁 집에 들어갔더니 아내가 외출하고 없는 거예요. 저녁식사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하도 출출해서 냉장고에 있는 감자 조림을 안주 삼아 맥주를 한 잔 했는데 한밤중에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해서 밤새도록 화장실을 들락거렸어요. 그 이후로는 냉장고에 있는 음식은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어느 가정이나 있을 법한 너무나 슬픈 이야기이다. 이 책임이 여자에게만 있다고 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결혼생활을 장미화원으로 만들고 유지하는 데 여자들만의 노력을 요구하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 바야흐로 남자들이 ‘꿈 깰’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 식구들은 음식점 음식을 먹은 적이 없다.’고 하는 것이 집안의 자랑이었지만 이제 여자들은 부엌에서 도망치고 있다. 그렇다면 장미화원을 가꾸기 위해 부엌문으로 들어갈 사람은 누구인가.
매일 세 번, 세 끼니의 메뉴를 생각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는 남편으로서 한심한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직접 부엌으로 들어가는 남자도 많이 늘고 있다. 아내로부터 “당신 요리 솜씨도 썩 나쁘지는 않네요.”라는 칭찬을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자처럼 요리를 의무로 생각하면 고통이 되지만 사실 요리는 창의와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에 뇌에 큰 자극을 준다. 회사 일에서 해방되어 잠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데 전념하면 쌓였던 스트레스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부엌에서 아내가 나온다면 한 번쯤 남편이 에이프런을 두르고 일일주부로서의 역할을 해줄 때가 되었다.
남자는 잡은 고기에 먹이를 주지 않는다
남편과 아내가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남편 왈, “미녀 아나운서가 TV에서 섹스다, 정사다 이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걸 보면 믿어지지가 않아. 여자라면 그런 단어들을 들먹이는 데 부끄러움을 타야 하는 것 아냐?” 그러자 아내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을 받아친다. “요즘 그런 여자가 어디 있어요?”
멋 부리고 치장하는 데 온통 신경 쓰던 여자도 남자를 낚아채 결혼을 하는 순간 뻔뻔스러워진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잠옷바람으로 주방을 누비는 것은 다반사고 날씨가 더우면 아무 곳에서나 옷을 벗어버린다. 남자는 남자대로 ‘잡은 고기에 먹이’를 주려고 하지 않는다. 정복한 산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이다. 다만 그 산꼭대기에 올라서서 다른 어떤 산이 훌륭한가 내다볼 뿐이다.
여자가 접촉으로 느끼는 쾌감은 남자보다 10배나 크다. 이 사실을 안다면 남자들의 태만은 이제 좀 없어져도 좋을 텐데, 일단 섹스에 대해서 오케이가 떨어지면 더 이상 쓸데없는 노력은 버리고 ‘하는 일’에만 전념해 버리는 것이 남자이다. 그러나 잡은 고기도 먹이를 주지 않으면 언제 다른 연못으로 도망칠지 모르는 세상이다. 남자가 자기 욕망만을 채우고 여자가 원하는 기쁨은 망각한 채 “튼튼한 몸으로 뭐하니, 집이나 봐라.” 한다면 여자들도 지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남자의 책임, 여자의 노력, 서로에 대한 부끄러움, 상대를 어려워하는 마음. 남자나 여자나 이런 마음들을 재정비해야 한다. 사랑도 결혼도 결국은 남녀간의 문제이고 남녀간의 문제도 결국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2. 뇌의 구조로 설명하는 재미있는 남녀 차이
여자들은 밥으로 실연의 아픔을 달랜다
남자는 실연하면 술을 퍼마시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여자가 실연을 하면 ‘폭식’을 한다. 큰 양푼에 밥을 몇 그릇이나 넣고 온갖 야채들을 털어 넣은 뒤 사정없이 비벼서 마구 퍼먹는다. 연애하는 동안에는 기분이 붕 떠서 식욕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어차피 애인도 없으니 이제는 다이어트 따위는 할 필요도 없어.’ 하고 생각한 것인지. 어쨌든 그때까지의 성적(性的) 매력에 대한 관심에서 갑자기 식욕으로 의식이 바뀌어 버린다.
그렇다면 식욕을 초래하는 ‘식욕중추’와 성적 매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성욕중추’는 뇌의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인간의 뇌에서는 대략 세 부분이 욕구를 컨트롤한다. 우선,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뇌간(腦幹)이다. 여기에서는 공기를 몸으로 받아들이는 호흡욕, 뇌세포를 쾌적하게 유지하기 위해 작용하는 수면욕, 배설행위를 유발시키는 배설욕 등을 관장한다.
그 다음이 대뇌변역계로 이곳은 본능적인 욕구의 자리이다. 즉, 식욕과 성욕, 그리고 무리 속에 있고 싶어하는 집단욕이 여기서 발생한다. 뇌 속은 그리 넓지 않아 ‘먹는다’와 ‘성행위를 한다’라는 두 개의 본능적 욕구는 매우 가까운 부분에서 발생한다. 두 본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모두 굉장히 복잡한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식욕은 시상하부 외추부로 이곳은 공복감을 발생시키는 ‘섭식 중추’와 만복감을 일으켜 식욕에 브레이크를 거는 시상하부 내측부의 ‘만복 중추’, 이렇게 두 개의 중추를 가지고 있다. 혈액 속의 포도당 농도가 낮아지면 섭식 중추의 활동이 활발해진다. 이것이 공복감을 초래한다.
이번에는 성욕 중추를 살펴보자. 성욕은 시상하부의 성적 이형액에서 일어난다. 여기에서 분비된 발정 호르몬이 시상하부에 자극을 주고 이것을 받은 시상하부는 대뇌변역계에 신호를 보낸다. 성적 이형액에서 분비된 호르몬에 의한 신호는 이렇게 도미노 식으로 전달되어 대뇌변역계에 도달하면 드디어 성욕이 된다.
이렇듯 식욕과 성욕의 근원은 아주 가까운 위치에 있다. 그 간격은 몇 밀리미터 정도. 거의 인접해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식욕중추와 성욕중추가 가깝다면 두 욕구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경험적으로 볼 때 이 둘 사이에 관련이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남자들은 식사 중에 성욕을 느끼는 일이 별로 없다. 반대로 섹스 도중에 식욕을 느끼는 일도 없다.
식욕․성욕은 시상하부에서 발생하지만 이들은 대뇌변역게에서 각각 욕구로서의 형태를 취하고 또 한 단계 높은 대뇌신피질로부터 흥분과 억제의 지배를 받는다. 정말 복잡한 시스템이다. 그런 만큼 이 둘의 균형은 깨지기 쉽다. 예를 들어 계속 심적인 스트레스를 받아 대뇌변역계가 억제되면 혈액 속의 포도당 농도가 저하되어도 공복 중추가 제대로 활동하지 않기 때문에 공복감을 느낄 수 없다. 혹은 먹어도 만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후자가 ‘폭식’이 아닐까.
스트레스가 태아를 동성애자로 만든다
자란 환경은 남녀의 성에 큰 영향을 준다. 그 극단적인 예는 전쟁과 여성의 관계에서 볼 수 있다. ‘전쟁 무월경증’이라는 증상이 그중 하나이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식료품이나 생활의 불안에 처해 있던 여성들에게서 생리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은 생활고라는 스트레스가 시상하부에 영향을 주어 생리를 촉진시키는 고나드트로핀의 분비를 감소시킨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는 전쟁이 태아에게 주는 영향이다. 전쟁 중, 그리고 패전 후에는 동성애자의 탄생이 늘어난다고 한다. 동독(당시)의 더너 교수팀은 동성애에 대해 연구하는 가운데 기묘한 사실을 발견했다. 더너의 연구팀은 34년에서 53년에 걸쳐 태어난 세대를 연구해 왔는데 42년부터 45년에 걸쳐 태어난 남자들이 이 경향이 강해서 인구 10만 명당 약 70명이 동성애자였다고 한다. 평균 동성애자 탄생률이 10만 명당 20명에서 30명 정도이므로 2, 3배나 높은 수치이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우선 태아의 뇌가 어떻게 남자 혹은 여자의 뇌로 분화되어 가는지를 알아야 한다. 태아가 여자일 경우는 같은 여성의 태내에 있는 것이므로 별다른 문제가 없다. 그러나 남자아이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임신 56일째 정도가 되면 성 결정 유전자의 하나인 Y염색체가 남성 호르몬의 분비를 지령한다. 여성 호르몬은 모체로부터 태반을 통해서 태아에게 제공된다. 그러나 남성 호르몬은 태아가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이 남성호르몬을 뒤집어쓰는 것은 태아의 뇌이다. 여자와 똑같이 분화되던 뇌는 이때부터 방침을 변경하여 남자의 뇌로 형태를 만들어 간다. 뇌는 남성화를 진행해 가면서 자기의 몸을 남자의 것으로 만들도록 지령한다. 이렇게 해서 생식기가 남성의 형태를 취해 나간다. 여자의 뇌가 되면 남성 호르몬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남성 호르몬이 전혀 없거나 일정량에 달하지 않아 남성화가 일어나지 않게 된다.
동성애자의 뇌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성애의 남자와 동성애 남자의 사체(死體)를 이용해서 해부학적으로 뇌를 비교한 91년의 보고서가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시상하부 앞쪽의 제3간 질핵(質核)이라는 부분의 크기에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이성애 남자의 제3간 질핵은 0.1에서 0.2 입방 밀리미터의 크기였는데 동성애 남자의 경우는 0.02에서 0.04 입방 미리미터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평균적으로 이성애 남성의 대략 2분의 1정도의 체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여자의 수치와 아주 가깝다.
밤낮없는 연합군의 폭격과 패전의 혼란, 전쟁의 공포는 임산부들에게 심한 스트레스를 주었고 그것이 작용하여 태아의 정소에 충분한 양의 남성 호르몬이 만들어지지 못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 그들의 뇌는 유전자적으로는 남자의 뇌이지만 기능적으로는 여자의 뇌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인류사상 보기 드문 스트레스 사회가 되었다. 따라서 스트레스가 동성애자를 양성한다는 이론이 옳다면 앞으로 우리 나라의 동성애자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3. 남자는 죽어도 모르는 여자 몸, 여자 마음
‘불 좀 꺼주세요’에 담긴 여자들의 속마음
연인과 뜨거운 키스를 할 때 사람들은 왜 눈을 감는 것일까. 두 사람의 얼굴이 접근해 있을 때 초점을 상대의 얼굴에 맞추기는 굉장히 어렵다.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런 사팔뜨기 얼굴을 만약 상대가 본다면 그야말로 백년 동안의 사랑도 순간 싸늘하게 식어버릴 것이다.
동물에게 있어 주위를 경계하여 자기의 몸을 보호하는 데 가장 유효한 감각이 시각이다. 청각도 중요하지만 시각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연인의 기분이 고조될 때까지는 시각정보가 도움이 된다. 상대방의 모습을 보면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기 쉽다. 이때 상대의 어디를 보느냐 하면 바로 눈이다. 서로 바라보는 두 사람에게 있어 그야말로 눈은 입보다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그러나 막상 성행위를 시작하려는 단계가 되면 시각정보는 불필요한 것이 된다.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량이 너무 많기 때문에 눈을 뜨고 있으면 신경이 분산되어 행위에 집중할 수 없다. 모처럼 큰 쾌감을 느끼려고 할 때 이렇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즉 사람이 성행위를 할 때 눈을 감는 것은 감각을 차단하여 행위에 집중해서 쾌감을 맛보기 위해서이다. 키스나 섹스 도중에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눈을 감아 버리면 성적인 시각정보는 줄어들지만 상대가 가까이 있는 만큼 후각․촉각․청각에 의한 정보가 증가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상대의 목소리를 듣는 청각, 상대의 냄새를 맡는 후각, 서로의 몸에 닿는 촉각도 모두 성적 쾌감을 높이는 효과가 크다.
성행위를 할 때 여자가 불을 꺼 달라고 하는 것도 ‘알몸을 보이기가 부끄럽다.’는 감정의 표명일 뿐 아니라 ‘앞으로 할 일에 전념하고 싶다.’는 의지표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 앞으로 여자가 ‘불 좀 꺼주세요.’라고 속살일 때 ‘부끄러워 할 것 없어. 사랑하는 사이에는 부끄러움이란 없는 거야.’ 이렇게 철딱서니 없는 이야기는 하지 말아주길 바란다.
여자는 허스키 보이스를 좋아한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여자와 인연이 없는 독신남자가 있다. 얼굴도 준수하고 능력도 있는 데다 눈치도 빨라서 여자들에게 친절하기까지 하다. 이렇다 할 결점이 없는데 왜 그런지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다. 남의 일이지만 걱정스러워서 한 여자에게 물어보았다. 그녀의 대답은 의외로 명쾌했다. “목소리가 너무 하이톤이에요.”
여자들은 왜 소프라노 보이스를 싫어하는 것일까. 한 심리학자가 이에 대해 조사를 했는데 여자들은 낮고 굵은 목소리를 들으면 적응력 있는 세련된 인품을 연상한다. 이에 비해 콧소리에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은 적다고 한다. 이 결과를 기준으로 볼 때 이성으로서 여자를 설득할 때는 평상시보다 목소리 톤을 낮추어 말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낮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성대가 길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보자. 키가 큰 사람일수록 상대적으로 성대가 길고 그만큼 목소리가 낮다. 즉 여자들은 낮은 목소리 그 자체보다 키가 큰 남성에게 끌리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세상에는 키도 작고 덩치도 왜소한 남자들이 많다. 이렇게 신체적인 매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면 인간적인 매력을 갈고 닦아서 그것을 평가해 줄 괜찮은 여자를 만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하고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보곤 한다. 물론 나도 남자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다.
4. 여자는 죽어도 모르는 남자 몸, 남자 마음
바람기는 남자의 숙명이다
환자를 보다 보면 정말로 신기하게 생각되는 것이 섹스의 궁합이다. 최근 들어 성격차이로 이혼한다는 부부들이 많이 늘어나는데 나는 이것이 ‘성격차이’가 아닌 ‘성 격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성욕에 관한 남자와 여자의 결정적인 차이를 흔히 ‘클리지 현상’이라고 부른다.
제30대 미국 대통령 클리지가 부인과 함께 농업촉진정책을 위해 각지를 순회하던 때의 일이다. 어느 양계장에 갔을 때 달걀의 생산이 순조로와 기뻐하고 있는 주인에게 부인이 물었다. “그렇게 달걀을 낳는 것을 보니 닭들이 아주 자주 하는 모양이군요.” “물론입니다. 미세스 클리지. 저기를 보세요.” 양계장에서는 암탉과 수탉이 떠들썩하게 그리고 아주 즐거운 듯이 교미를 하고 있었다. “수탉은 저렇게 하루에 한 번, 암탉을 사랑해 주는군요.” 하고 부인이 부러운 듯이 말하자 “아이구, 웬 걸요, 하루 한 번이 아니랍니다. 미세스 클리지. 무려 열 번이나 한답니다.” 그 말을 들은 부인은 얼굴을 붉히며 흥분한 듯이 “남편에게 그 얘기를 좀 해 주세요.” 하고 웃었다. 대통령이 양계장에 나타나자 주인은 부인의 부탁대로 얼른 닭들이 열심히 교미한다는 말을 전했다. “하루에 열 번이나요?” 대통령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다시 물었다. “그럼 매번 같은 암컷을 상대로 하는 겁니까?” 하고 묻자 “아니요, 매번 상대가 다릅니다.” 주인은 정직하게 대답했다. 대통령은 그 대답에 크게 감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 얘기를 아내에게 꼭 해 주시오.”
이상은 남자의 생리와 여자의 생리 차이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일화이다. 여자는 일정한 상대에게 여러 번 사랑을 받고 싶어하고 남자는 상대가 바뀌면 더욱 성욕이 일어서 무진장으로 정자를 뿌리고 싶어한다. 클리지 현상은 포유류 수컷에게서 두드러진다. 같은 암컷에 대해서는 교미의 횟수가 날이 갈수록 감소하는데 상대가 바뀌면 다시 성욕도 교미의 횟수도 원래의 왕성한 상태로 복귀한다.
남자는 새로운 여자에게서 끊임없이 시각적인 자극을 받아 흥분한다. 정감이 풍부하며 섬세한 여자의 뇌와는 달리 같은 대상과 깊은 관계를 맺기보다는 늘 새로운 대상과 만나고 싶어하고 섹스하고 싶어한다. 그것은 남자 뇌의 숙명으로 ‘호색’이나 ‘바람둥이’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범주이다.
5. 연애, 섹스, 결혼에 대한 남녀의 생각 차이
만나서 섹스까지의 남녀 시간차
남자는 여자를 만나서 평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섹스를 원하게 되는 것일까. 혹은 여자는 남자와 만나면 얼마 정도 지나야 몸을 허락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미혼의 인턴들을 모아놓고 성생활에 대한 앙케트 조사를 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