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신창원 지음 | 엘 샤다이
1999년 12월 14일안녕하세요? 모르는 분에게서 온 두 권의 책, 무심코 펼쳐 본 시집에서 가장 처음 만난 것은 '구토'였습니다. 솔직한 표현에 빠져들어 처음부터 다시 보게 되었고, 금방 책 두 권의 끝장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시를 쓰지는 못하지만 보고 듣는 것은 좋아합니다. 친구들이 그러더군요. "얌마! 시는 너한테 안 어울려. 생긴 대로 살아!" 그래요. 시는 저에게 어울리지 않죠.
그러나 "짧은 시 한 편엔 시인의 일생이 담겨져 있다."는 말처럼 시를 대하다 보면 시인과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선생님은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시를 쓰시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구토'를 봤기에 저는 선생님이 운동권 아니면 전교조 노조 활동을 하시는 분인 줄 알았어요. 여류시인이 선생님처럼 솔직하게 시를 쓰는 분은 아마 없는 것 같아요. 이곳에서 여러 권의 책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종교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본 것은 거의 없습니다. 책을 좋아하는데 아직 재판중이고
저 자신의 정리가 끝나지 않아 정신을 집중하기가 쉽지 않은 게 이유인 것 같아요.
선생님, 저는 종교인이 아닙니다.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선 아직 잘 알지 못하고 신 자체를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밖에 있을 때 크리스찬 두 분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정신적으로 정말 힘들 때였습니다. 죽는 날까지 그 분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그 분들이 없었다면 저는 악마가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때 그 분들처럼 될 수 있다면 그 분들이 모시고 있는 예수님을 믿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책 속의 '함께 생각해 봅시다'에서 선생님이 종교 지도자의 변질된 모습을 언급하셨는데, 제가 종교를 갖지 않은 게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100평, 120평 고급빌라에 들어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직업을 보면 목사가 가장 많더군요. 그 다음이 변호사, 의사, 대학교수 순이었어요. 교육을 받을 때 목사가 하는 말과 그들이 사는 현실을 보면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구요. 극소수이겠지만...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불신자들보다 더 안 좋게 행동하는 것도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더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곳에 와서 성경책은 힘들어서 성서(주-천주교의 공동번역 성서를 말하는 듯)를 처음부터 끝까지 봤습니다. 구약에서는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고, 신약에서는 좋은 말씀이 너무 많아 신약만 몇 번 더 봤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분이 링컨 대통령입니다. 그 분은 고통 당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어요. 그들이 인간 대접을 받으면서 살게 해주려고 전쟁까지 했습니다. 그 분이 있었기에 노예도 인간이 될 수 있었고, 인권이란 말이 탄생한 것입니다. 저는 그 분에 관한 책을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서 그 분과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예수님도 정말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소외된 자들과 빈민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그들을 위해서 살다가 결국은 그들 때문에 돌아가셨잖아요. 솔직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아직까지 예수님이 신으로 느껴지진 않습니다. 그러나 그 분을 인간으로서 존경합니다.
오래 전에 교육을 받을 때 어느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을 믿지 마십시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전할 수도 있습니다. 진짜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뵙고 말씀을 듣고 싶거든 성경을 보십시오. 성경은 하나님과 당신 둘만의 대화입니다." 그 분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우리가 목사가 말하는 것을 듣거나 행동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판단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예수님과 말씀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시잖아요. 일부 목사와 신자들이 욕먹을 행동을 하지만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지 예수님이 아닙니다.
선생님, 저도 예수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스승님처럼. 죽어 마땅한 죄인이 기도만 한다고 천국에 갈 수 있다면 그건 조금 잘못된 것이지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행동으로 죄값을 조금이나마 갚고 싶습니다. 지금이라도 예수님을 모시고 싶지만 혹시 동정을 받기 위한 행동으로 오해될 수도 있고 예수님을 욕되게 할 지도 몰라 재판이 끝나면 모시려고 합니다. 아직 제 모든 것을 정리하지 못했거든요. 무슨 형을 받더라도 항소는 하지 않겠습니다. 지은 죄가 많은 놈이 무슨 억울한 게 있겠어요. 하루 빨리 재판을 끝내고 몇 달 아니면 몇 년을 살게 될지 모르지만 세상에 남아있는 날까지 예수님을 욕되게 하지 않고 진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제가 너무 많은 말씀을 드린 것 같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는데 건강에 유념하시고 선생님의 가정에 항상 웃음과 밝음이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창원 드림
PS. 손이 불편해서 글이 엉망입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그리고 부탁드립니다. 이 편지를 책이나 언론 에 공개하지 말아주십시오.
1999년 12월 22일답장 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을 보내면서도 책과 엽서가 형제님에게 전달이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마음이 쓰였는데 제대로 전달되었더군요. 거기다 생각도 못했던 긴 편지를 받게 되니 정말 기쁩니다. 형제님이 저를 믿고 마음을 열어주신 것이요. 형제님이 손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편지를 길게 써 준 정성 때문에 저도 직접 글을 쓰려고 했어요.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시간은 부족해서 이렇게 기계를 빌려 시작합니다.
형제님의 편지를 받고 나서부터 형제님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9절 이하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주일인 19일 오후에 편지를 받았는데, 편지를 쓰는 지금까지 급한 일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야 편지를 쓰는군요. 하지만 일을 하면서도 세수를 하면서도 형제님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그 중에 제일 많이 떠오른 말은 형제님이 말한 "죽어 마땅한 죄인이 기도만 한다고 천국에 갈 수 있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겠지요."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겠습니다.
제가 형제님의 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형제님의 탈옥 기간이 2년도 넘은 99년도였습니다. 그때 형제님은 동거녀의 실수인지 배신(?)에서 비롯된 일인지 모르지만 씁쓸한 마음을 안고 급히 도망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물샐틈없이 쳐진 포위망... 그것을 빠져나간다 하더라도 차가운 곳에서 먹을 것도 이불도 없이 보내야 할 무서운 밤. 물밀 듯 밀려올 서러움과 두려움, 회한과 마음의 많은 상처들...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제가 이런 말을 한다고 남들은 흉을 볼지도 모르지만, 그때 저는 형제님이 어긴 규범보다 형제님의 처지가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입장을 바꿔서 제가 그런 처지에 놓여 있다면 너무 슬프고 두려울 것 같았습니다. 산짐승 한 마리 잡자고 온 산에 포수들이 쭉 깔린 셈이니, 그 산짐승의 허둥지둥 쫓기는 심정이 가련하게 생각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했습니다. 형제님이 검거되고 안 되고는 하나님의 뜻이지만, 형제님의 마음에 평안을 주십사고요. 또 어떤 경우에도 자폭을 선택하지는 말게 해 달라고요.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러면 영원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언젠가 제가 신경성 위염을 앓은 적이 있기에 형제님이 위염을 앓고 있다는 점에서 더 마음이 쓰였는지 모릅니다. 위염은 심한 긴장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욱 악화되는 것이며, 그럴 때의 위염 증세가 어떻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요. 그런데 형제님은 그런 상황에서도 병원이나 약국에도 갈 수 없는 입장이니... 그런 제 마음을 두고 동병상련이라고 하는 거겠지요.
그렇게 며칠 동안 기도 시간이면 형제님을 위해서도 기도했어요. 하지만 형제님 사건이 또 미궁에 빠지자, 대부분의 세인들이 그러했듯 저 역시 형제님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형제님이 검거되는 장면을 TV뉴스를 통해 보았습니다. 형사들에게 둘러싸여 나와서는 모여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는 순간 한숨을 한 번 쉬더군요. 눈빛이 생각보다 진실해 보였습니다. 그때도 기도를 했지요. 형제님 마음에 평안을 주시고 두려움을 제해 주십사고, 비록 범죄자라 하더라도 수사 과정에 인권이 짓밟히는 일은 당하지 않게 해 달라고요.
형제님이 읽은 제 책에 나오듯이 저는 변두리 지역의 남자 중학교에서 5년간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60여 명 학생들 중에는 별별 아이들이 다 많았지요. 형제님 나이를 잘 모르지만 30세 전후라면 제가 가르친 그 남학생들과 비슷한 연배일 것입니다. 그런데 학생들 중에는 힘 좀 쓴다고 은근히 폼 잡는 학생들이 있었지요. 하지만 그런 학생들도 교사의 눈에는 다른 학생들처럼 똑같이 소중한 제자일 뿐입니다. 지금 제게 모범생 제자가 찾아오나, 그 반대의 제자가 찾아오나 반가운 정도는 마찬가지라는 거죠. 내가 가르친 학생들 중에는 환경이 어려워서 죄를 짓는 학생들도 있었어요. 저는 그 학생들에게 돌을 던질 수가 없습니다. 저도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면 그랬을지 모르니까요.
물론 사람들은 그리 말하겠죠. 환경이 어렵다고 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되는 사람이 있고, 좋은 환경에서도 방탕한 사람이 있다고요. 하지만 그것은 환경을 가정 환경만 국한시켜 말한 것이지요. 넓은 의미에서 환경은 더 많은 것을 포함합니다. 한 사람이 자라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사물들이 다 환경이죠. 그래서 훌륭한 교사나 목회자, 또는 친척, 이웃, 선배, 친구들을 만나 끊임없이 격려와 사랑과 충고를 받으며 산다면, 하다 못해 좋은 책이라도 꾸준히 접할 환경이 된다면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가족 관계에 문제가 있어도 바르게 자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만남을 갖지 못한 채 한 번 형성된 환경이 계속 더 나쁜 환경들과의 만남을 이끄는 경우도 있지요.
형제님 하나님은 과거를 보시지 않고 현재와 미래만 보신대요. 저도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주셨는지 형제님의 현재와 미래만 보입니다. 형제님을 재판하고 정죄할 사람은 제가 아니라도 많습니다. 다만 제 눈에는 현재 추운 가운데서 고생하는, 심적으로도 너무나 어려운 한 사람이, 그리고 그에게 남겨진 인생이 보일 뿐입니다.
형제님, 특별히 요 며칠간은 날씨가 무척 추워서 그런 문제로 형제님을 위해 수시로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마음에 영접하여 죄 사함과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해 주십사고요. 영의 눈을 열어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하나님께서 형제님을 어떠한 마음으로 사랑하는지 알게 하시며, 삶의 의미도 알게 하십사고요. 위염과 손도 낫게 해 주십사고 기도했습니다. 마음에 평안을 주시고, 지혜를 주셔서 모든 일을 잘 처리해 나갈 수 있게 해 주십사고요.
형제님, 아까 다시 말하겠다고 했던 얘기를 하지요. 기도만 한다고 해서 천국에 간다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형제님의 말에 대한 대답 말입니다. 그 말은 앞 뒤 문장에서 행위를 강조해 놓은 것으로 보아, 선행 없이 예수님을 믿기만 한다고 해서 천국에 간다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뜻으로 사용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형제님이 하나님보다 더 훌륭하다는 뜻이 됩니다.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형제님은 그 말씀이 잘못되었다고 하니까요. 그래요. 선행이 없어도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는 것은 잘못되어 보인다는 것이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이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도 십자가의 도가 미련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어요. 그러나 미련하다며 거부하면 멸망하고, 미련해 보여도 믿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도 했지요.
성경에는 "의인은 없나니 한 명도 없다."고 했어요.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미워한 자는 살인자라고 했으니 마음의 죄도 다룰진대 한 번쯤 살인 안 한 자가 어른들 중에는 없을 거예요.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누더기 같다는 성경 구절도 있어요. 로마 교황께선 죄가 없으실 것 같습니까? 하나님처럼 완전무결 하실까요? 유명하신 불교계의 대두, 성철 스님은요? 그분께선 돌아가시기 전에 "한 평생 많은 사람을 속인 죄, 수미산보다 더 높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지니 그 한이 만 갈래라. 한 덩이 붉은 해, 서산에 걸려 있다."라는 열반송을 남기셨어요.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천국에 갈 수도 없는,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말함으로써 사람들이 바른 진리를 찾지 못하도록 한 죄가 불교에서 말하는 가장 높은 산보다 더 높을 정도로 크다는 뜻이죠. 영성이 높은 분이시니 당신께서 가는 곳도 알고 열반송을 지으신 것이고요. (열반송이란 승려가 타계를 앞두고 지은 노래를 말해요.)
성경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선언했어요. 그래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막혀 있다고도 했고요. 그러니 죄인인 우리 인간이 하는 선행이 있다고 해도 결국 죄인의 선행입니다. 온전히 의로울 수는 없어요. 성경엔 또한 죄의 삯은 사망이고, 그 후에 심판이 있다고 하였어요. 그러니 모든 인간은 죄 때문에 심판을 받아 영영 꺼지지 않는 불구덩이라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어요. 그것이 우리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죠. 교도소의 높은 담 안에 있거나 밖에 있거나를 막론하고요.
그러나 하나님께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영원한 심판을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세요. 그래서 하신 일이 있어요. 바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거죠.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 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베드로후서 3:18)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 53:5-6)
하나님의 아들이라 비유되는, 하나님 자신이시기도 하신 예수님께서 육신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의 죗값을 대신 감당하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 앞, 즉 천국으로 인도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율 법은 다만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율법과 관 계없이 하나님께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것은 율법과 예언자 들에 의해 증거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차별 없이 하나님께 의롭다는 인정을 받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표준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신 구원의 길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 다는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로마서 3:20-24)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니 우리 죄를 묵과할 수는 없으세요. 하지만 또한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용서해야 하시겠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붙잡혀서 조롱과 침 뱉음을 당하고 매와 채찍을 맞을 때에도, 십자가에서 참혹한 고통 속에 죽어 가면서 하나님께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절규하실 때도, 침묵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하나님...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제한하지 마세요.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시편 103편 11-14)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 좌우편의 십자가에 같이 달렸던 사람들(주-강도였음)의 이야기를 신약에서 읽으셨죠? 예수님께선 당신께 자비를 구한 우편 사람에게는 낙원을 허락하셨어요. 그 사람이 무슨 선행을 했기에 낙원에 갔습니까?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께 대한 믿음으로 갔습니다. 큰 죄를 지어 십자가에서 죽어가고 있는, 그래서 선행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죄인도 예수님을 믿을 때에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죠. 이보다 더 복된 소식이 이 세상에 있을까요? 예로부터 복이란 하늘에서 그저 주어진 것을 말해요. 자신이 노력해서 성취한 것을 우리는 복이라고 하지 않지요. 그러기에 기독교의 진리를 복음, 즉 복된 소식이라고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