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컴퓨터 게임들
볼프강 베르크만 지음 | 북라인
제1장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며 배우는가
1. 파자마 샘, 두려움을 모르는 용감한 소년파자마 샘은 두려움을 모르는 작은 소년이다. 파자마를 입은 샘은 적들이 두려워하는, 커 다란 S자를 가슴에 단 빨간 옷을 입은 슈퍼맨이 되어 나타날 때마다 두려움을 모르는 소 년이 된다.
게임의 주인공 파자마 샘은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책에 몰입하며 파자마맨으로 변신한다. 이를테면 잠자리에 들어 엄마가 불을 끌 바로 그 시각에 말이다. 아이들은 『파자마 샘』을 좋아한다. 『파자마 샘』은 아이들이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뛰어난 그래픽 영상으로 보여주며, 어른들도 쉽게 풀 수 없는 복잡한 사고를 요하는 매우 성공적인 게임이다.
2. 아이들의 지능은 어떻게 형성되는가아이들은 파도처럼 배운다. 아이의 발달과정은 물결치는 파도를 닮아 있다. 그리고 아이의 정신과 마음을 발달시키는 힘은 바로 아이 안에 있다. 이 힘을 네 개의 파도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이 네 단계들은 아이가 가진 일종의 '내면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자립의 첫 단계(파도)는 움직임에서 규칙을 감지하는 것이다. 아이가 사건과 운동은 그냥 우연히 한 번 일어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어떤 규칙성이 있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서 상징적 질서에 들어서게 된다.
두 번째 단계(파도)에서 아이는 실제 사물들의 간격과 크기, 거리 등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일단 공간과 위상학적인 질서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아이의 정신과 감각은 계속해서 발달한다. 아이는 자기의 몸으로부터 세계의 질서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아이는 이제 세상으로부터 자율적이 되며, 말 그대로 독립하여 스스로 설 수 있게 된다.
세 번째 단계(파도)는 숫자와 관련되어 있다. 실제로 네 살에서 여섯 살 사이의 아이들은 사물들을 숫자로 이해하려는, 억제할 수 없는 성향을 보여준다. 수를 센다는 것은 사물들을 어떤 연관 관계로 파악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단계는 놀라운 정신적 성취이자 발달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수를 세는 아이는 '양'을 이해한다. 양을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주변 세계에 구조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수를 세는 단계를 지나면 아이들은 '문자의 발견'이라는 마지막 파도를 타게 된다. 원칙적으로 문자는 세상의 모든 것, 어른과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아이들은 문자가 가진 이런 힘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의 문자에 대한 호기심을 빼앗아 버린다. 일단 학교에 들어가면 문자는 학습 교재로서 아이들을 평가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글이 아이들에게 주었던 비밀스러운 기쁨도 사라지고 만다. 대부분의 교육자들은 읽고 쓰는 일의 마술적인 기쁨을 되살려 줄 능력이 없다. 하지만 컴퓨터라면 그 일을 할 수 있다.
컴퓨터 모니터 속의 전파 역시 일종의 물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인위적으로 구성된 컴퓨터 이미지들은 특유의 매끄러움과 운동감을 지니고 있어 그 영상들을 보고 있으면 그 속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아이들은 표현 기술만으로도 비현실적인 느낌을 생성해 내는 이러한 컴퓨터 이미지의 특성들을 사랑한다.
아이들은 첫 '내면세계'에서 상징(숫자와 문자) 단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낯설음을 느끼는데 <파자마 샘> 같은 컴퓨터 게임은 발달의 네 단계를 함께 활성화시켜 준다. 아이는 게임을 하면서 하나의 세계 체험의 단계로부터 또 다른 단계로 넘어가고, 마지막 단계에서 처음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넘어오곤 하는 것이다.
3. 생생한 지식: 좋은 게임은 학습을 돕는다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에 그토록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어떤 문제를 풀어 제대로 해결할 때마다 즉시 새로운 화면,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는 것이다. 한편, 학교에서는 문제를 풀고 정답을 맞추고 나면 그만이다. 학교에서 문제를 푸는 일은 통제의 한 방편이 되고, 아이는 매번 시험대에 올라서는 셈이다. 하지만 컴퓨터 게임에서는 아이가 정답을 맞추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것으로써 보상이 된다.
컴퓨터는 또한 시각적인 매체인 동시에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 매체이다. 사용자가 어떤 기능을 실행시켜 움직일 수 있는 그림이 있다면, 그 그림은 단순치 않은 깊이를 지니게 된다. 마우스로 클릭해서 대상이 움직이도록 하려면 최소한의 공간이 요구되고, 또 이 그림은 아이를 끌어들일 만한 특성이 있어야 한다. 즉 상호작용의 측면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고, 그래픽은 그 자체로서 효과적이고 인상적이어야 한다. 영상 이미지에 대해 무한한 욕구를 가진 매체가 컴퓨터 게임이니 만큼 이를 이용한 학습 교재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활용은, 단지 학생들이 기존의 교재를 완전히 정복할 수 있도록 추가적으로 동기를 유발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는 오히려 지식과 사고, 배우는 행위까지 총체적으로 새롭게 규정하는 일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컴퓨터 게임은 우선 화상이 뛰어나고 다양한 방식의 과제 제시를 통해 지식 개념과 지식 전달의 획일성을 탈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상 매체의 수준과 가능성이 높아짐으로써 오늘날에는 단순히 '맞고 틀림'이라는 형태의 지식은 지식이라 할 수 없게 되었다. 게임 속에서 체험된 현실은 단편적 사건이나 지식이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전체로서 아이와 생생하게 교류한다. 디지털 기술이 아이들 앞에 영상을 펼쳐놓으며 주인공이 되도록 초대하면, 이런 방식만으로도 얼마만큼 학습적 내용이 다루어졌는가와는 상관없이 이미 하나의 질적인 도약이 이루어질 것이다.
4. 학습장애아도 할 수 있는 컴퓨터 게임학습 장애를 가진 아이도 컴퓨터 게임을 통해 중요한 체험과 의미를 얻을 수 있다. 학습 장애가 있다는 것은 집중력이 약하다는 뜻이다. 이런 아이들은 '나는 못해! 다른 아이들이 다 하는 것을 나는 못하는구나.' 혹은 '나는 원래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구나.'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들의 괴로움을 덜어 주는 대신 오히려 더욱 힘들게 하는 경향이 있다. 학습장애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나 과잉 보호가 아니다. 만일 그렇게 대할 경우 아이들은 자기만 다르게 취급받는 데서 괴로움을 느끼고 더욱 더 자신감을 잃을 뿐이다.
컴퓨터 게임은 학습장애아들이 일상적 과제의 무거움을 벗어 던지고 환상적인 세계에서 자신들의 약점을 극복하도록 도와준다. 사이버 공간의 세상은 현실과는 전혀 다른 규칙이 통하는 세상이다. 모든 것이 가능한 이곳에는 아이들을 주눅들게 만들었던 실수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은 쓰기와 읽기에 도전하고 또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컴퓨터 게임을 통해 불안감에서 해방되는 체험을 했을 때의 감정은 게임이 끝나도 일상 생활에 그대로 이어진다. 긍정적인 경험이 더 오래 지속되며, 이러한 경험은 연약한 자아에 스며들어 자아를 강하게 만든다. 또한 컴퓨터의 상징 세계는 현실에서의 부정적인 체험을 지울 수 있게 만든다. 적어도 과거의 부정적 체험에 대하여 긍정적인 체험으로 맞서게 하는 가장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학습장애아들은 뭔가를 쓰는 것을 힘들어한다. 그러나 컴퓨터의 마우스와 자판을 다룰 때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사람들이 컴퓨터를 어떻게 대하건, 글씨를 쓰는 문제만큼은 너무도 쉽게 해결되는 것이다. 또한 컴퓨터 게임의 세계에서 문자와 기호들은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는다. 거꾸로 쓰인 글자들도 쉽게 해결할 수 있고, 어떤 때는 미학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사이버 공간에서는 실수나 잘못을 해도 심각한 일이 아니며, 따라서 아이들도 불안한 기분을 덜 느끼게 된다.
5. 읽고 쓰기와 지능에 관하여지능이란 어떤 심각한 것을 주제로 탐구해야 생기는 것이 아니다. 지능은 무엇보다도 기호를 조합하고 의미의 차이나 유사점을 분별하면서, 직관적인 파악과 아울러 정확한 관찰과 분간을 연습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한 마디로 아이들이 게임을 하며 시도하고 배운 것과 같은 방식으로 형성된다.
읽고 쓰기 위해서는 글자를 통해서 인식하고, 다시 인식을 통해 분간할 수 있어야 하며, 이 과정을 기억하는 지각-분간-기억의 연계가 필요하다. 글자를 배우는 아이가 해내는 일이 바로 이것이며, 이는 상당히 노력이 드는 일이다. 잘 만들어진 어드벤처 게임은 지각-분간-기억이 서로 잘 연계되어야만 풀 수 있는 과제를 제시한다. 이런 능력이 없으면 읽고 쓰기를 배울 수 없고 컴퓨터 게임 과제도 해결할 수 없다. 학습 효과가 있는 게임을 하게 되면 은연중에 학교 공부를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게임이 학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아이들을 무미건조한 학습 과제로 괴롭힐 이유는 없다. 또한 동일한 학습 효과를 낼 수 있는 컴퓨터 게임에 흥미를 보인다면 이 또한 막을 이유가 없다. 컴퓨터는 아이들의 학습을 방해하지 않는다. 좋은 게임은 학습 그 자체이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칼 포퍼는 이렇게 말했다, "배움이란 문 제를 푼다는 것이다." 이것은 좋은 컴퓨터 게임에도 정확히 들어맞는 말이다.
6. 사이버 공간에선 내가 최고!게임은 어른용이건 어린이용이건 기본적인 바탕은 동일하다. 어떤 경우든 컴퓨터 게임 속에는 주인공이 존재하고, 이 주인공들은 미지의 영역을 존재하면서 점점 강하고 민첩하고 똑똑해진다. 게임의 심리적 효과는 바로 "나를 앞설 자가 없다!"는 '나르시스적'인 것이다. 모든 사람 안에는 나르시시즘이 있다. 크거나 작은 영웅들의 활약상도 나르시스적 감정을 일깨우는 것들이다.
여러 영역들에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해 기존 방식의 읽기 문화가 사라져가고 있으며 그 결과 커다란 파장이 일고 있다.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책 속의 환상적인 이야기와 컴퓨터 게임의 환영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선 눈의 움직임이 달라지게 된다. 즉 감각이 다르게 구성되는 것이다. 게임을 할 때 시선을 집중하는 양상은 독서할 때와는 다르다. 책을 읽는 사람은 행과 단락이 정연한, 엄격한 문자 상징의 규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책이라는 매체를 접할 때는 문자의 형식과 독자의 꿈 사이에 내면적 긴장이 생긴다. 책의 순차적 질서를 무시하고서는 독서의 즐거움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컴퓨터 게임은 이에 반해 전혀 다른 질서, 즉 디지털 공학의 질서를 갖고 있다. 일관되게 선(線)적인 질서가 아닌 동시적인 질서이다. 모니터를 앞에 놓고 컴퓨터 게임을 하는 아이는 상상의 세계에 푹 빠져들면서 방심할 수 없게 된다. 아이는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많은 것을 동시에 감지하면서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변화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컴퓨터 게임을 하며 감각을 동원하는 일들 모두가 아이들에게는 재미있게 느껴진다.
컴퓨터 게임의 주인공들이 오래도록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컴퓨터 영상이 기본적으로 빛으로 그려진 그림이기 때문이다. 빛으로 그려진 그림은 꿈에 가까워서 환상적인 표현에 적당하다. 꿈 같으면서도 현실적으로 체험한다는 점에서 컴퓨터 체험에는 특별한 성질이 있다. 현실적 가능성에 상관없이 마음껏 영웅과 창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파자마 샘은 뛰어난 상상력이 돋보이는 컴퓨터 게임이 제공할 수 있는 환상이 어떤 것인 가를 보여 준다. 우리의 파자마 샘은 "어둠을 잡아라" 편에서 장롱 속을 지나 환상의 나 라로 들어간다. '어디에도 없는 나라이지만 그 속을 마음껏 누비고 다닐 수 있다.'는 컴 퓨터 게임의 원칙이 기발하고 환상적으로 변주된다.
컴퓨터 영상은 꿈같은 현실 체험을 통해 나르시스적 감정을 일깨운다. 게임을 하는 동안 아이의 영웅적 자아는 단지 공상을 하는 수준이 아니라, 체험을 하는 것이며, 심지어는 영웅적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아이는 나르시스적, 자애적 감정에 빠진 채 논리력, 언어력, 수리력을 스스로 확장하며 훈련한다. 이렇게 배운 것들이 아이에게 오래 남는 것은 당연하다. 게임을 통해 받아들인 것은 아이의 전체 의식과 자발적인 기억에 각인된다. 이보다 나은 학습 효과가 어디 있겠는가?
7. 과잉행동 장애아를 위한 행동 훈련요즘 심리학자들과 부모들이 마치 유행처럼 호소하는 문제가 있다. 아이들이 늘 산만하고 잠시도 가만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약 60%의 아이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과잉행동 장애 증상을 보인다. 그런데 과잉행동 장애 어린이도 컴퓨터 게임을 할 때만은 정돈된 태도를 보여 준다.
나는 과잉행동 장애 증세를 심하게 보였던 마크라는 아이에게 <그림 판당고>란 게임을 하게 해보았다. 마크는 처음에는 해결책을 찾지도 않고 집중하지도 않으며 그저 게임 속을 돌아다니기만 하더니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어느 순간 태도를 바꾸어 음울한 지하세계를 빠져 나오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기 시작했다.
행동 치료에서 '성찰을 통한 자기 조정'이 이루어지려면 굉장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고, 그 과정을 추구해도 실패할 때가 참 많다. 마크는 과거의 중압감 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싶은 욕구를 게임을 통해 느꼈다. "좀 다르게 살아보겠어!" 하고 스스로 태도를 바꾸는 것은 미래는 아직도 열려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과잉행동 장애아들은 그들의 행동에 예외 없이 어떤 경고와 만류를 받기 마련이다. 이에 맞서 좀더 목소리를 높이고 행동도 강하게 하면, 이에 대한 주위의 반응도 강화되고 다시 이에 맞선 아이들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악순환에 가속도를 붙여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을 억제하기 위해 '충동 조절'이 필요한 것이다.
아동심리학이 제시하는 프로그램은 '충동 조절'을 연습하도록 마련된 것이다. 이 연습 과정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건조하고 고되기만 하다. 그런데 컴퓨터 게임과 사이버 공간은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자유공간이 주어지고, 아이들은 미루지 않고 또 끊임없이 제지당하지도 않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신의 행동을 시험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끈기를 보인다. 시도가 잘못되었을 때는 성이 나 소리를 지르기도 하지만, 어쨌든 목표에 도달해 마침내 과제를 풀기 전까지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계속 노력한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한 단계를 완수할 때마다 화려하게 펼쳐지는 영상세계이다.
아이들은 이 과정을 통해 단지 개인적인 체험뿐 아니라 사회 생활에 참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스스로 체험한다. 컴퓨터가 조정하고 구조를 부여하는 세계 속에서 소외되지 않고 중심에 서는 체험을 한다. 게다가 컴퓨터의 사회적, 정치 경제적 의미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8. 미래를 위해 배운다컴퓨터 게임의 장점은,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으로 항상 한 가지 이상을 설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학교에서 푸는 문제들의 대부분이 정답 하나만을 두는 것과는 다르다. 즉 컴퓨터 게임은 대안적 사고를 허용한다. 대안적 사고는 복합적이고 복잡한 사고로 발전할 수 있는 사고를 뜻한다.
또한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컴퓨터 게임은 아이들에게 위험을 감당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내가 내린 결정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많은 상황들을 결정짓는다. 그 책임을 전적으로 자신이 져야 한다는 것은 게임의 법칙인 동시에 인생의 법칙이다.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아이들은 책임을 지고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며 자기 원칙에 충실한 가운데 과제를 끝까지 완수하는 법을 배운다. 이것은 지금까지 학교교육에서 해내지 못하던 부분이다.
학교에서는 자율학습 시간이나 특별 활동과 같이 가장 개성화 되어야 할 시간마저도 관료적이고 기계적인 계획에 맞추어 객관적 평가가 가능하도록 짜여져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컴퓨터 게임을 제외하고는 연령에 맞는 개성적인 행동을 할 기회,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고 책임을 지는 훈련을 할 기회와 가능성이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미래 사회는 그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