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농사꾼 이야기
이영문 지음 | 양문
1. 게으른 농사꾼의 자연 이야기
게으른 농부, 부지런한 자연다른 사람들의 논에는 전부 농약을 치는데 내 논만 태평하게 방치하니 사람들은 해충에 의한 피해가 많을 것이라고 걱정을 많이 한다. 실제로 농약을 치지 않은 내 논에는 벼멸구 등 해충이 들어와 벼 잎을 갉아먹는 일이 있다. 그러나 해충의 수가 많아질수록 거미, 무당벌레 등 온갖 익충의 먹이도 많아지므로 자연히 해충이 힘을 쓸 겨를이 없다. 무궁화는 나라꽃이라는 감투 때문에 근근히 명맥만을 유지할 뿐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무궁화는 우리 땅을 지키는 데 단단히 한 몫을 한 훌륭한 농사꾼이었다. 무궁화는 진딧물을 유난히 탄다. 그 점 때문에 사람들이 무궁화를 우습게 여기는지 모르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진딧물이야말로 농사를 도와주는 무당벌레 유충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이기 때문이다. 진딧물이 많을수록 힘 좋은 성충으로 자라서 논으로 날아와서 해충을 없애는 좋은 농사꾼이 되는 것이다.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던 조상들은 논가에 무궁화를 많이 심어 천적의 먹이를 제공해 주었다.
내 논은 곤충뿐만 아니라 너구리도, 청둥오리도 터를 잡고 삶의 공간을 꾸려가는 공간이다. 지금과 같은 건강한 생태계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있는 내가 농약과 비료라는 무기를 미련 없이 버리면서 실현되었다. 그 대가는 기대 이상이었다. 나를 대신해서 논을 갈고 작물을 가꿔주는 능력 있는 농사꾼을 얻었다는 사실이 흡족하고 든든하다.
요 이쁜 청개구리우리 논의 일꾼들 중에 나는 청개구리를 가장 좋아한다. 청개구리가 하는 일이라야 다른 녀석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이 해충을 잡아먹는 역할을 한다. 다만 몸이 작기 때문에 벼멸구나 흑명나방 등 작은 놈들을 주로 잡아먹는다. 내가 청개구리를 좋아하는 것은 그 녀석의 특유의 배짱과 고집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 추수도 끝나고 살얼음이 얼기 시작한 날 얇은 얼음장 밑으로 헤엄을 치고있는 올챙이를 발견하고 신기하여 파충류 전문가에게 그 연유를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올챙이가 돌연변이 종으로, 개구리로 바뀌지 못하고 올챙이로 죽을 것이라는 답변을 들은 이후 그 올챙이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 결과 겨울을 올챙이 상태로 보내고 이듬해 봄이 되어서야 개구리로 바뀌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청개구리가 알을 낳고 올챙이가 되는 시기는 다른 개구리와 비슷하나 개구리로 변하는 시기는 제 각각이다. 다른 개구리와 달리 청개구리는 먹이가 부족할 경우 치열한 경쟁에 뛰어 들어 아귀다툼을 하는 모험을 피해 올챙이 상태로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는 것이다. 이외에 청개구리는 세상의 모든 새끼들이 어미보다 몸집이 작은 원칙을 깨고 어미보다 새끼가 큰 몸집을 하고 있는 외에 가을이 되어 갈색으로 보호색을 바꿔야 할 시기가 한참 지나서야 보호색을 바꾸는 등 반항아적 기질과 나름대로의 줏대와 고집을 보여준다. 조상들이 왜 말 안 듣는 청개구리 이야기를 만들었는지를 이해하고 감탄하였다.
어머니와 박 속 이야기나와 늘 마주치는 농촌여성은 유난히 골다공증을 두려워한다. 평생 치장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허리 굽혀 땅만 파면서 늙어온 심성 고운 사람들이 노후를 치명적인 골다공증에 시달리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다. 아낙네들은 그 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해 보겠다고 우유도 사 마시고 멸치도 상자째 사 들고 온다. 알파벳도 제대로 모르는 그이들이 칼슘이 많이 들어 있다기에 먹는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 그만 가슴이 싸해진다. 그러나 우유나 멸치가 아무리 칼슘 성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해도 사람 몸 속에 들어가 그대로 온전하게 칼슘 성분으로 흡수되는 것이 아니고 소화 과정을 거치면서 분해되고 합성되는 변형 과정을 거칠 것이므로, 먹기 전 형태는 어떻든 몸 속에 들어간 뒤 비로소 칼슘으로 변할 수 있는 음식을 찾아서 먹어야 옳다.
그러면 어떤 먹거리가 몸 속에 들어가 칼슘을 만들어 내는가 ? 나는 우선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을 비교해 보았다. 육식동물은 초식동물보다 뼈 성분을 많이 흡수할 테니 칼슘 성분을 더 풍부하게 지니고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육식을 하는 호랑이와 풀을 먹는 토끼의 이빨을 비교해 보면 풀만 먹는 토끼의 이빨이 훨씬 단단한 것을 알 수 있다. 초식 동물 가운데 이빨이 시원찮아서 늙어 고생하는 놈은 없다. 하지만 육식동물 가운데는 이빨이 상해서 굶어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간의 경우를 보면 평생 채식만을 하는 스님들이 칼슘 부족으로 병이 나는 건 보지 못했다. 우리 어머니, 할머니 시대는 정말 찢어지게 가난해서 굶기를 밥 먹 듯이 했지만 골다공증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생도 열 배는 더 했을 것이고, 먹을 것도 지금보다 열 배쯤 못 먹었을 텐데 어떻게 지금보다 뼈가 더 튼튼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해답은 어머니, 할머니들이 드시던 음식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박이었다!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은 먹을 것이 너무 없다 보니 남편과 자식들 상을 차리고 나면 남는 게 없어 어머니는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박 속을 드셨다. 어머니들의 거친 먹거리가 박뿐만은 아니었겠으나 유독 박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사람의 이처럼 생긴 박씨 때문이었다. 뇌 모양으로 생긴 호두가 머리를 좋게 하듯 치아 모양의 씨를 가진 박에 칼슘과 연관된 비밀이 숨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음양관에 의하면 밤과 여성을 '음'으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밤에 꽃을 피우는 박 또한 음의 기운을 가지고 있어 여성에게 이로울 것이 틀림없다. 박 주위를 어른거리는 곤충을 관찰해 봐도 그들은 다른 종에 비해 뼈나 껍질이 훨씬 단단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학자나 전문가가 들으면 성분을 분석해서 근거를 대라고 할지 모르나 나는 분석 같은 것을 할 능력이 없는 농사꾼이다. 다만 다른 사람보다 자연을 조금 더 유심히 관찰한 결과이고, 자연은 웬만해서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골다공증을 두려워하는 여성에게 박 속을 들라고 자신 있게 권할 뿐이다.
공기 좋고 물 맑은 농촌 만들기농촌에서 사용하는 생활용품도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아 집집마다 자동차, 세탁기 등 가전제품은 물론 입식 부엌에, 수세식 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가정에서 배출되는 생활 하수가 도시 못지 않으나, 도시에 비해 하수 처리 시설이나 환경에 대한 인식이 크게 부족하여 생활 하수가 거의 여과 없이 하천과 토양 속으로 흘러든다. 지하로 스민 생활 하수는 지하수를 오염시켜 오염된 물을 마시는 농민의 건강을 크게 위협한다. 진정한 정화는 하수가 다시 깨끗한 식수로 바뀔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나 지금의 정화조는 찌꺼기나 오염 물질을 일시적으로 저장시키는 구조일 뿐 근본적인 정화 시설은 아닌 셈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역시 자연에서 찾는 수밖에 없다. 내가 고안한 하수처리 시설은 흙과 식물을 이용한 것이다. 흙은 흙 속에 사는 풍부한 미생물로 인해 훌륭한 정화 작용을 수행하며, 식물 역시 식물 뿌리에 공생하는 미생물이 정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하수가 빠져나가는 곳을 깊게 파고 모래를 깐 다음 그곳에 식물을 심으면 이들 식물에 공생하는 미생물에 의해 일차 정수가 가능하다. 생활 하수가 많을 경우 모래만으로 100% 정화는 어렵다. 이 경우 모래밭 다음에 미나리 밭을 만들거나 조그만 양어장을 설치하면 거의 완벽한 정화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미나리 뿌리에는 더러운 물을 정화시키는 풍부한 미생물이 살고 있으며, 양어장도 미나리 밭과 비슷한 정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단, 반드시 물가에 식물을 심어 미생물이 살도록 해야 한다. 나는 아직 미나리 밭이나 양어장 시설까지 갖춰서 실험을 해 보지는 못했으나, 이들 모두가 자연의 산물이므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자연의 특성을 잘 활용하기만 하면 언제나 부작용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경험을 믿기 때문이다.
2.게으른 농사꾼의 흙 이야기
자연, 최고의 항생제어느 날 들판을 걷다 논에 퇴비를 내는 농부를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농부는 장갑도 끼지 않은 맨 손으로 거름을 듬뿍듬뿍 움켜쥐었다가 논에 뿌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농부의 부인이 내온 새참 막걸리를 한 잔 가득 부어 놓자, 농부는 씻지도 않은 퇴비 만지던 손가락이 그릇에 담기는 것에 개의치 않고 맛있게 먹는 것이 아닌가. 세균에 감염되어 큰 탈이 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농부는 곧 나무 밑에 누워 단잠에 빠져들었다.
20년 전만 해도 이 같은 풍경은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이른 아침의 빈들에서는 안개 같은 퇴비 훈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농부들은 그 속에서 먹고 마시고 잠을 잤지만 세균에 감염되어 죽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알고 보면 그때의 산천은 지금보다 훨씬 건강해서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기는커녕 작은 상처쯤은 치료해 줄 수 있는 항생제를 품고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농부들은 손이라도 벨라치면 논두렁 옆 도랑물에 상처를 흔들어 씻고 논흙을 그 자리에 바르곤 했다. 그것이 건강한 자연의 모습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까지 각자 서로의 몫을 주고받으며 평화롭게 사는 곳에는 목숨을 위협하는 질병도 건강 염려증 환자도 생길 수 없는 것이다.
흙은 말기 암에 시달린다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풍년 들판은 황금을 펼쳐 놓은 것보다 아름답다. 그런데 5년째 나는 그 아름다운 황금들판을 보지 못하고 있다. 들판은 흡사 윤기 없이 듬성듬성 빠져나간 중병환자의 머리카락 같았고, 그나마 쓰러지지 않고 버틴 벼마저도 푸석푸석하게 병든 꼴이기 일쑤이다. 행정기관에서는 태풍의 영양이라고 발표했으나, 1999년만 해도 태풍이 육지에 상륙한 일은 한 차례도 없었다. 그런데도 비가 조금만 내려도,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벼는 속절없이 쓰러지곤 했다. 그 원인은 벼도 약해지고 논도 약해졌다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벼보다는 땅이 약해졌다는 게 옳다.
병든 땅은 이제 산들바람에도 견디지 못하는 나약한 벼밖에 생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땅이 앓고 있는 병은 말기 증상을 보이는 암 환자의 모습이다. 사람이 먹는 식물을 길러내고 있는 땅은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가. 대표적인 것이 비료와 농약이다. 인간으로 치면 비료는 영양제고 농약은 항생제라고 할 수 있다. 처음 비료를 넣었을 때 평소에 약을 잘 먹지 않던 사람이 약을 먹으면 효과가 금새 나타나듯 우리 논도 처음에는 비료를 준 만큼 수확량이 늘었다. 하지만 1985년 무렵부터는 토양 상태가 두드러지게 나빠지면서 수확량도 점점 줄어들었다. 지나치게 비료를 넣은 결과 부실해진 토양에서는 전에 없이 병충에 피해도 많아졌다. 따라서 스스로 해충을 이겨낼 힘을 잃은 논에는 농약이 무자비하게 살포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해충은커녕 익충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연약한 땅이 되고 말았다.
인간과 땅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원인으로 인해 암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우리 국민들이 화학조미료를 먹기 시작하고 온갖 영양제와 항생제에 의지할 무렵 토양도 비료와 농약의 포로가 되어 갔다. 그때부터 암 환자가 기아 급수적으로 증가하고 토양도 약해지기 시작했다. 치료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산소를 많이 공급해 주는 것이다. 무 산소 상태에서 증식하는 암세포에게 산소를 공급해주면 증식조건이 너무 좋다 보니 짧은 시간동안 급격한 노화 현상을 보일 수도 있다. 나는 그 방법으로 나의 논을 살렸다. 화학 비료와 농약을 전혀 주지 않고 기계로 논을 갈지도 않은 태평한 농법을 썼더니 없어졌던 산소가 풍부하게 돌아왔고 산소가 많은 토양에 뿌리를 내린 벼는 건강하게 잘 자라서 태풍이 상륙할 때에도 별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인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산소를 더 많이 흡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우리의 논처럼 암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울창한 숲을 찾아가 산림욕을 하거나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건강한 먹거리를 먹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것이다.
절대로 논을 갈지 않는 농부가끔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농사를 지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천석꾼 소리를 들었던 대농들은 그 많은 전답을 어떻게 가꾸었을까 추측해 보기도 한다. 천석꾼이면 천마지기의 논을 가졌다는 뜻 일 게다. 그 가운데 농사짓기 힘든 논 오백 마지기쯤은 소작을 맡겼을 터이고 나머지는 머슴 대여섯을 데리고 직접 관리했을 것이다. 그래도 엄청난 면적인데 우선 걸리는 부분이 써레질이었다. 머슴 다섯이 다섯 마리의 소와 함께 잠을 자지 않고 교대로 갈아도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우리 조상들은 써레질에 그렇게 큰 힘을 들이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오늘날의 땅은 인위적으로 비료를 너무 많이 주어서 오히려 생흙을 보충해 주어야 할 만큼 영양분이 넘친다. 그런 땅은 풍화작용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은데도 해마다 땅을 갈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헛수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트랙터로 논을 깊이 가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흡사 야채믹서를 돌리다가 딱 꺼버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트랙터로 논을 갈고 난 뒤 표면에서 숨쉬던 흙이 밑으로 한꺼번에 가라앉고 그 위로는 흙보다 가벼운 잡초 씨들이 올라앉아 얼마 후 잡초가 일제히 싹을 틔우면 논은 온통 잡초 밭으로 변해 버린다. 손으로 김을 매주는 일은 엄두도 못 낼만큼 무성한 잡초 밭이 되어 독성이 강한 제초제를 뿌려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다.
한편 조상들의 쟁기질에는 또 다른 지혜가 담겨 있다. 지금과 달리 써레질 깊이는 고작 10cm 안팎이었다. 모를 심을 때에 아무리 깊이 심어도 손가락 하나 길이를 넘지 않았다. 모를 심고 나서 며칠이 지나면 부드럽게 갈아놓은 흙이 천천히 가라앉으면서 모 뿌리는 점점 더 위로 올라와 얕아지며 뿌리가 산소를 호흡할 수 있는 조건이 조성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기계를 이용하여 깊숙이 갈아엎은 논에는 모를 아무리 얕게 심어 놓아도 며칠만 지나면 무거운 흙 때문에 모가 더 깊이 파묻혀 뿌리가 산소를 호흡하기 힘든 조건이 되어 따라서 줄기도 나약해질 수밖에 없으므로 하는 수 없이 비료를 줘야 한다. 이처럼 어리석은 일이 반복되는 것은 얄팍한 상업주위와 탁상행정 때문이다.
기계화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농촌 일손이 가벼워지고 다수확이 보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난 뒤 나는 절대로 논을 갈지 않았다. 조금 숨 쉴 만하면 도로 깊이 묻어버리고 또 간신히 숨 쉴 만하면 갈아 엎어버리던 짓을 그만두니 흙이 이게 웬일이냐고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신나게 산소를 들이마신 땅은 건강한 벼를 길러냈다. 힘들게 논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니 나 역시 손뼉을 치고 좋아할 일이었다.
식물은 무얼 먹고 살까식물이 무얼 먹고 사는지 관찰해보기로 했다. 먼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물과 먹을 수 없는 식물로 종류를 나누었다. 관찰결과 그들이 먹는 것은 서로 조금씩 달랐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물은 기본적으로 산소, 물, 온도를 필요로 한다. 산소와 물, 온도가 필수조건이라면 무기물은 충분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미생물의 분비물이나 시체가 바로 무기물이다. 무기물을 만들어내는 미생물은 호기성 미생물과 혐기성 미생물로 나눌 수 있다. 호기성 미생물은 물을 싫어한다. 그래서 여름가뭄이 오래가면 땅 속에는 호기성 미생물이 포화상태에 이르도록 번식한다. 그러다가 소나기가 시원하게 내리면 그 미생물은 전멸한다. 그 시체들이 바로 식물이 좋아하는 무기물이다. 호기성 미생물이 죽으면 그 자리에 혐기성 미생물이 대신 살아간다. 그러다가 비가 그치고 상황이 바뀌면 이번에는 혐기성 미생물이 죽는다.
이렇게 미생물만 있으면 식물은 먹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친절하게 화학 무기물인 비료를 내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살아간다. 아니, 친절을 베푸는 그 순간부터 숨이 막힌 흙이 먼저 죽고, 흙이 죽으니 미생물이 죽고, 미생물이 죽으니 식물도 죽는다. 다만 식물만은 사람이 넣어주는 무기물을 받아먹고 근근히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