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농사꾼 이야기
이영문 지음 | 양문
논 안 갈고, 모 안 만들고, 모 안 심고, 제초제 안 뿌리고, 비료 안 주고 그야말로 남들이 하는 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태평하게 농사를 짓기 때문에 내 방식의 농법을 태평농법이라 부른다. 그러나 여태껏 관행대로 농사를 지었던 땅에 곧바로 적용시키는 것은 무리다. 태평농사를 짓기로 뜻을 세웠으면 먼저 흙을 살리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벼를 수확한 자리에 보리나 밀을 파종하고 볏짚으로 덮어주는 것은 흙을 살리는 첫 걸음이다. 화학농법으로 농사를 지은 땅은 완전히 죽은 상태이기 때문에 식물이 먹을 것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첫해에는 축산 유기물 등 식물이 먹고 살아갈 축산 유기물 등을 공급해 주어야 한다. 단 유기물은 가을철에 공급을 해주어야 피해를 방지할 수 있다. 보리나 밀이 습기에 약하기 때문에 습해를 우려할 수도 있다.
관행대로 씨앗을 땅속에 묻을 경우에는 비가 조금만 내려도 습기가 영향을 미치나 흙 위에 종자를 앉히는 식으로 파종할 경우에는 그다지 큰 피해가 없다. 종자가 알아서 뿌리를 내리기 때문이다. 이듬해 수확기에 보면 땅이 눈에 띄게 부드러워진 것을 알 수 있다. 기계보다 보리나 밀이 더 효과적으로 써레질을 해준 결과이다. 수확기가 되면 보리나 밀을 거둔 자리에 볍씨를 파종하고 다시 보릿짚, 밀짚을 덮어준다. 보리나 밀짚을 덮어주면 흔히 거름이 너무 많아 벼농사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그건 거름이 아니라 미생물의 먹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미생물은 짚을 먹고 벼는 또 미생물의 분비물이나 시체를 먹고 자라는 것이다. 가을에 반드시 보리와 밀을 파종하는 이유는 바로 이처럼 짚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다.예나 지금이나 농민들은 논에 모를 심고 나서는 논두렁에도 콩을 심는다. 좁은 논두렁에 심은 콩은 땅이 모자라서도 아니고 배가 고파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처음에야 그런 목적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가면서 논두렁에 콩을 심은 데는 조상들의 뚜렷한 의도가 있었다. 조상들은 콩을 심으면서 콩에게 병충해를 막는 파수꾼의 임무를 맡겼다. 논두렁에 심은 콩은 때로는 소에게 잎을 뜯기기도 하고 논에 들어가 피해를 입힐 초식충 등을 가로막으며 스스로 환경에 적응하며 종족을 번식시킬 능력을 갖춰간 것이다. 그렇게 조상들이 몸소 체험 끝에 내놓은 꾀를 요즈음 사람들은 이용하려 들지 않는다. 벌레 한 마리만 보여도 재빨리 살충제 분무기를 지고 논두렁에 나간다. 하지만 그건 결코 콩을 위한 일이 아니다. 누군가 잎을 뜯어먹어 주지 않으면 잎만 무성할 뿐 열매를 힘있게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논두렁에서 콩이 하는 역할은 농사꾼을 대신하여 해충을 유인하는 것이다. 그냥 내버려두면 혼자 들판을 지키고 앉아서 새경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주인에게 갖다 바치면서 일하는 상머슴이다. 이제는 제발 콩이 논두렁에서 제 맘대로 살 수 있도록 내버려 두라.잃어버린 종자를 찾아서식물이 무얼 먹고 사는지 관찰해보기로 했다. 먼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물과 먹을 수 없는 식물로 종류를 나누었다. 관찰결과 그들이 먹는 것은 서로 조금씩 달랐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물은 기본적으로 산소, 물, 온도를 필요로 한다. 산소와 물, 온도가 필수조건이라면 무기물은 충분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미생물의 분비물이나 시체가 바로 무기물이다. 무기물을 만들어내는 미생물은 호기성 미생물과 혐기성 미생물로 나눌 수 있다. 호기성 미생물은 물을 싫어한다. 그래서 여름가뭄이 오래가면 땅 속에는 호기성 미생물이 포화상태에 이르도록 번식한다. 그러다가 소나기가 시원하게 내리면 그 미생물은 전멸한다. 그 시체들이 바로 식물이 좋아하는 무기물이다. 호기성 미생물이 죽으면 그 자리에 혐기성 미생물이 대신 살아간다. 그러다가 비가 그치고 상황이 바뀌면 이번에는 혐기성 미생물이 죽는다.
이렇게 미생물만 있으면 식물은 먹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친절하게 화학 무기물인 비료를 내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살아간다. 아니, 친절을 베푸는 그 순간부터 숨이 막힌 흙이 먼저 죽고, 흙이 죽으니 미생물이 죽고, 미생물이 죽으니 식물도 죽는다. 다만 식물만은 사람이 넣어주는 무기물을 받아먹고 근근히 살아갈 수 있다.
이번에는 사람이 먹지 않는 식물, 곧 잡초의 특성을 알아보자. 잡초성장의 필수조건은 빛, 물, 온도로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빛이다. 산소는 없어도 상관없지만 빛이 없으면 잡초는 맥을 못 춘다. 그래서 아무리 질긴 놈이라고 해도 빛이 들어갈 틈만 막아주면 살지 못한다. 논이나 밭에서 김을 맨 다음 그것들을 다시 벼 포기 밑에 살포시 올려놓았던 옛사람들은 그런 특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뽑은 잡초로 빛을 막아 다른 잡초의 성장을 억제시켰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식물의 성장조건을 이해하면 농사는 훨씬 쉽게 지을 수 있다. 잡초 때문에 골치를 썩거나 제초제를 뿌리느라 고생할 필요도 없다. 태평농법으로 농사를 지을 때 수확기에 볏짚이나 보릿짚, 밀짚으로 토양을 덮어주는 이유는 그런 효과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식물의 특성을 이용하기도 하고 역이용하기도 하여 작물들은 저희들끼리 크도록 내버려두고 잡초의 성장은 억제시킨다. 그렇게 키운 알곡을 관행농법으로 키운 것과 비교를 하기 위해 알곡의 세포를 잘라놓고 도열병, 문고병 접종을 시켜보았다. 그런데 저희끼리 자생력으로 자란 태평알곡은 세포가 어찌나 촘촘한지 접종시킨 병균이 침투할 틈을 못 찾고 물러난 반면 관행 알곡세포에서는 접종시키자마자 균이 퍼져 나가는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병균 퍼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이제 식물의 삶에 간섭하지 말자 사람이 빵을 먹든 고기를 먹든 식물이 간섭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그들에게 비료 먹어라, 농약 먹어라 간섭하지 말자.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저희끼리 내버려두면 물 속에서든 산 속에서든 스스로 먹이를 찾아내 잘 살아간다. 때로는 가만히 손놓고 지켜보는 게 진짜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해마다 발생하는 산불 때문에 여의도 면적의 몇 십 배에 달하는 생태계가 파괴되어 가고, 초목과 함께 사라진 다람쥐, 토끼를 다시 보려면 5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산불예방 공익광고가 있다. 산불이 난 뒤 생태계는 초토화하여 나무와 풀은 말할 것도 없고 토양 속에 살던 미생물까지 전멸한다. 대규모 산불이 날 때마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인공조림을 해야 한다는 의견과 자연이 스스로 복원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는 산불로 황폐해진 땅에 곡물 씨앗을 뿌리라고 권하고 싶다. 즉 식물의 특성을 적용시키면 자연상태로 방치하거나 인공조림을 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복원된다.
식물은 무기물을 먹고 자란다. 미생물의 분비물이나 시체가 바로 무기물이다. 그렇다면 산불이 난 곳에는 무기물이 풍부할 수밖에 없다. 산에 자생하는 나무나 식물은 초기 생육과정이 느려 인공조림으로는 그다지 빠른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반면 농산물은 초기 생육이 매우 빠른 식물이다. 수수, 옥수수, 조 같은 씨앗을 뿌리면 삭막하던 땅이 금세 무성해질 것이다. 그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면 외부에서 날아온 잡초나 나무 씨앗들이 바로 이듬해부터 발아 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는 것이다. 이 예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식물의 먹이는 유기물이 아니라 무기물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유기물이 식물의 먹이인 것으로 알고 유기농법의 우수성을 강조한다. 유기농법이 과학 농법보다는 그래도 자연을 덜 괴롭히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덜 괴롭힐 뿐으로 식물의 성장조건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간섭하는 것이므로 자연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그리 내세울 만한 농법이 못 되는 것이다. 목초액이니 유기질 비료니 하는 것도 식물처지에서는 전혀 달가워할 수 없는 먹이들이다. 평화롭게 공존하는 미생물과 식물의 관계를 깨트리는 농법이기 때문이다.요즈음 과일의 맛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배고프던 시절이기 때문에 무엇이나 맛이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도 그럴 듯하나 실제로 과일 맛은 무언가 변한 게 사실이다. 그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 첫 번째 원인은 비료 때문이다. 비료를 주면 식물은 세포 수를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고 단일 세포의 크기를 키우고 부피가 커진 세포의 공간은 내실 없이 더 넓어지고 이들 공간은 수분이 채운다. 사람으로 치면 쓸 데 없이 물살만 찐 형상으로 싱거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대책 없이 넓어진 공간은 성긴 그물망처럼 허술해서 벌레가 침투하기 쉽다. 그러다 보니 또 농약이 필요해지고 그 양이 점점 증가하면서 이제는 약을 치지 않으면 열매가 다 떨어지고 만다.
맛이 변한 두 번째 이유는 이식 수술, 즉 접목을 한 나무 자체에 있다. 언제부터인가 품종을 개량한다고 나무에 접을 붙이기 시작했는데 어디를 가도 순종을 찾기 힘들다. 접붙인 나무가 순종보다 더 튼튼할까? 더 맛 좋고 큰 과일을 생산해 낼까 ?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장기이식 수술을 받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건강하다고 평가하지 않는 경우와 같다. 나무도 이와 같이 접붙인 나무는 양적으로 품종개량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열매를 받아 심으면 전혀 다른 나무가 자란다. 이제 나무에 가했던 폭력을 멈출 때가 되었다. 쉽지는 않지만 꺾꽂이를 하면 제 뿌리에 제 줄기를 가진 나무를 되살려낼 수 있다. 내 경험으로는 유자, 귤, 복숭아, 감, 밤 할 것 없이 꺾꽂이가 가능하다.보라색, 분홍색 등 색깔도 예쁘고 모양도 예쁜 고구마 꽃을 기억하는가? 한때 우리 나라에 고구마 꽃이 피면 나라가 또는 집안이 망한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돌아 꽃만 피면 행여 남이 볼세라 따서 없애기 바빴다. 꽃이 없어지니 씨앗도 당연히 없어져 지금은 아예 수입한 고구마 뿌리에서 자란 순을 잘라 심는다. 근거 없는 소문 하나가 우리 땅에서 고구마 씨를 전부 말리고 만 것이다. 누가 그런 소문을 퍼뜨렸을까? 고구마 씨가 없어져 이득을 보는, 우리에게 고구마 순을 팔아먹는 일본인들일 게다.
우리 땅에서 사라진 것은 고구마 씨앗만이 아니다. 예전에는 농가 처마마다 잘 익은 고추가 매달려 있었다. 고추 하나에서 받아낸 씨앗들은 온 밭을 채울 수 있도록 고추가 열렸다. 그러나 이제는 고추 씨앗을 받아도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해마다 고추 씨앗을 산다. 돈 주고 산 씨앗은 약하기 짝이 없어 한 달만 지나면 반드시 탄저병 예방약을 쳐야 한다. 그 부실한 고추씨를 팔아먹는 나라도 일본이다. 고추는 우리가 훨씬 많이 먹는데 씨앗은 죄다 일본이 쥐고 있다. 사정이 여기까지 이르렀는데도 우리는 아직 실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씨앗은 다 죽여놓고 유전자 변형 농산물에 대해서 성토한다. 어차피 매년 씨앗을 수입하는 형편인데 새삼스럽게 그런 논쟁을 벌일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우리 씨앗 한 톨이라도 되살릴 연구를 해야 하지 않을까.태평 농법에서 모든 농사가 가을에 시작되듯이 채소 농사도 마찬가지다. 마늘 농사를 짓기 위해 흙을 부드럽게 한다는 핑계로 로터리를 칠 필요는 없다. 마늘밭으로 가서 이랑을 높여 산소를 더 들어가게 해 주고 마늘쪽 한 배 반쯤 깊이로 구멍을 뚫어 주고 그 자리에 마늘쪽을 넣는다. 그게 끝이다. 흙을 덮어 줄 필요도 없다. 흙을 덮으면 산소가 부족해 순이 못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냥 구멍 속에 넣어 두기만 하면 마늘은 혼자 뿌리를 내리고 겨울을 보낼 것이다. 한가지 걱정은 비닐을 덮지 않았기 때문에 이듬해 봄에 잡초가 무성해질 염려가 있다. 그러나 밭에 물을 조금 준 뒤 상추씨를 뿌리면 그 사태를 미리 막을 수 있다.
겨울에 심은 상추밭에는 절대 잡초가 자라지 못한다. 잡초 때문에 귀찮을 일 없이 잘 자란 마늘을 수확해서 좋고, 곁들여 상추까지 푸짐하게 먹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이다. 혹 마늘 대신 양파를 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심는 방법은 마늘과 다르지 않다. 구멍만 뚫어 주고 흙은 덮지 말아야 한다. 이번에는 상추 씨 대신에 시금치 씨를 뿌린다. 시금치가 하는 역할은 상추와 비슷하다. 마늘을 뽑은 자리에 감자를 심을 경우에도 그냥 빈자리에 감자를 올리기만 하면 된다. 감자를 심지 않은 빈자리가 아까우면 콩을 심는다. 감자 사이에 콩을 심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감자 잎에는 벌레가 유난히 많다. 그런데 그 옆에 콩을 심어주면 벌레가 온통 콩잎으로 모여든다. 벌레에게 감자 잎 대신 콩잎을 내 주는 것이다. 콩은 벌레가 먹든 소가 먹든 잎을 뜯길수록 많이 열린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마늘이나 양파를 뽑아낸 자리에 감자 대신 고구마를 심어도 좋다. 단, 고구마는 자외선에 약해서 누군가 양산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참깨는 키가 큰 작물이라 자외선을 충분히 막아 준다. 농약을 칠 필요도 비료를 줄 필요도 없이 기다리다 때가 되면 밭에 나가 이들을 걷고 이번에는 무나 배추를 심는다.한번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는 무척 힘들다. 종자도 처마 끝에 매달려 있을 때는 흔한 것이었지만 그 자리를 떠난 후에는 수십 년이 지난 오늘까지 자취를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무조건 옛 것 그대로 복원시키는 작업은 의미가 없다. 시대와 환경이 달라졌으므로 그에 걸맞는 새로운 종자를 찾아야 한다. 정책당국과 대다수 농민들은 비료를 많이 줘도 썩지 않는 것을 우량 품종이라 하지만 나는 화학비료를 전혀 주지 않아도 잘 자라는 것을 우량품종으로 생각한다.
아주 오래 전에는 벼도 고추나 옥수수와 같이 한 묶음씩 종자용으로 처마 밑에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아버지가 선택한 벼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논두렁에 심었던 옥수수 밑에서 자란 벼였다. 옥수수와 벼는 같은 화본과이기는 하나 서로 교잡시킬 수 없는 작물로 실험을 해보니 아무리 옥수수와 벼꽃을 수정시켜도 옥수수 닮은 벼나 벼 닮은 옥수수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수정시킨 벼에서 나온 씨앗을 계속해서 심어 보니 삼대가 계속되어도 단일 종자 상태에서 변화가 없이 알곡의 크기나 수분 함량 정도, 밥 맛 모두가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개발한 품종에 나는 '이공벼'라는 이름을 붙여 이웃들에 보급하기 이르렀다.
거꾸로 옥수수 품종 실험도 했다. 벼 근처에서 자라고 있는 옥수수의 수꽃을 잘라 버리면 벼꽃이 수정 기능을 하지 않는 한 옥수수가 열리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열매는 열렸고 이렇게 얻은 옥수수 씨앗을 심어보았더니 예전의 옥수수처럼 마디마다 옥수수가 두어 개씩, 많을 때는 네다섯 개까지 열렸다. 맛도 좋았고 당도 또한 거의 25%에 달했다. 옥수수와 벼는 교잡이 안 되는 품종이나 적어도 서로 상승 작용을 하는 관계라는 결론을 얻었다. 고추 종자도 옛 기억을 떠올려 고추 밭 근처에 어김없이 서 있던 가지를 이용하여 개발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실험은 농사를 지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만 있다면 누구든 실험을 통해 새로운 종자를 개발하고 보급할 수 있다. 그런 이들이 많아질수록 씨앗까지 수입하여 심어야 하는 오늘의 한국 농업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가끔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농사를 지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천석꾼 소리를 들었던 대농들은 그 많은 전답을 어떻게 가꾸었을까 추측해 보기도 한다. 천석꾼이면 천마지기의 논을 가졌다는 뜻 일 게다. 그 가운데 농사짓기 힘든 논 오백 마지기쯤은 소작을 맡겼을 터이고 나머지는 머슴 대여섯을 데리고 직접 관리했을 것이다. 그래도 엄청난 면적인데 우선 걸리는 부분이 써레질이었다. 머슴 다섯이 다섯 마리의 소와 함께 잠을 자지 않고 교대로 갈아도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우리 조상들은 써레질에 그렇게 큰 힘을 들이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오늘날의 땅은 인위적으로 비료를 너무 많이 주어서 오히려 생흙을 보충해 주어야 할 만큼 영양분이 넘친다. 그런 땅은 풍화작용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은데도 해마다 땅을 갈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헛수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트랙터로 논을 깊이 가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흡사 야채믹서를 돌리다가 딱 꺼버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트랙터로 논을 갈고 난 뒤 표면에서 숨쉬던 흙이 밑으로 한꺼번에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