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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가족에게 읽어주고 싶은 이야기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지음 | 두란노
사랑하는 가족에게 읽어주고 싶은 이야기

잭 캔필드․빅터 한센 지음

두란노/2001년/374쪽/9,800원



하나님과 나의 특별한 아이들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실 수 없어서 어머니를 창조하셨다 - 작자미상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아이를 양육하다 보면 특별한 어려움이 따른다. 지난 여름 다운증후군이 있는 내 딸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어느 더운 7월의 아침, 더운 바람을 얼굴로 보내고 있는 부러진 선풍기의 날개 소리에 잠을 깼다. 그 소리는 나로 하여금 내 인생에 있어서 부러진 것들을 떠올리게 했다. 사라의 심장 수술과 심각한 감염증은 지나갔지만 우리에게는 어마어마한 병원 빚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몇 주 후면 남편이 일자리를 잃고 집도 날릴 상황이었다.

아침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는데 팔에 매달리는 작은 손을 느꼈다. “엄마!” 사라였다. “내-애-가 호-오-온자서 여-어르음 서-엉 경 하-악교 가-아-알 주-우-운-비해-앴어-요.” 침대 옆에 다섯 살 짜리 사라가 두꺼운 핑크빛 안경 너머로 두 눈을 반짝거리며 서 있었다. 혼자 해냈다는 자부심에 두 손바닥을 위로 쳐들며 “짜-잔!” 하고 외치기까지 했다. 자세히 보니 빨간 체크 무늬 마 반바지를 거꾸로 입고 역시 거꾸로 입은 초록색 물방울무늬의 새 윗도리에는 가격표까지 붙어 있었다. 옷에 맞춰 빨간 양말과 초록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있었다. 운동화는 발을 바꿔 신었고 야구 모자는 뒤집어썼다.

“내-애 가 가-아-바-앙도 채-앵겨-어-었어.” 내가 가방을 열어 안에 뭐가 들었는지 보는 동안 사라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가방 속에는 레고 조각 5개, 아직 뜯지 않은 종이 클립 한 통, 포크 한 개, 발가벗은 양배추 인형, 퍼즐 조각 3개와 옷장에서 꺼낸 아기 침대 시트까지 들어있었다.

나는 사라의 턱을 손으로 들어올려 눈과 눈이 마주치자 나는 천천히 말했다. “정말 예쁘다.” “고-오아-우-어-요.” 마치 발레리나처럼 빙빙 돌면서 사라가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때 거실의 시계가 8시를 알렸다. 나는 사라의 옷을 바꿔 입힐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을 유아 시트에 앉히고 사라를 설득했다. “아가, 여름 성경 학교에는 배낭을 가져갈 필요가 없단다. 엄마가 차에다 네 가방 잘 보관해 둘게.” “아-안-돼. 가-아-져-가-아-알래!”

나는 포기했다. 사람들이 필요 없는 물건이 잔뜩 든 배낭을 가져온 사라를 어떻게 생각할지 염려하는 것보다 사라의 자존감이 더 중요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교회에 도착해서 한 손에는 아기를 안은 채 사라의 옷을 잘 입히려고 했지만, 사라는 막무가내로 몸을 빼며 내가 아침에 한 말을 내게 들려주었다. “괘-앤-차-않아. 나-아-느-은 이-이-뻐.”

사라가 성경 학교에 있는 동안 다른 두 아이를 데리고 여러 가지 용무를 보면서도 내내 이런저런 걱정으로 생각이 복잡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 세 아이를 어떻게 양육하지? 우리 집은 어떻게 될까?’ 이런 고통스런 질문을 하는 동안 과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가에 와서 질문이 멈췄다.

나는 마치는 시간보다 조금 일찍 교회에 다시 도착했다. 햇빛이 가득 찬 예배당은 문이 반쯤 열려 있었고, 벌어진 틈 사이로 반원으로 둘러앉아 성경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사라는 내게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는데 여전히 배낭을 메고 있었다. 모자도 반바지도 윗도리도 모두 거꾸로 입은 채. 먼발치에서 사라를 보고 있는데 가슴속에서 따뜻한 느낌이 샘솟듯이 솟아올랐다. 내 마음에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주 간단한 한 문장이었다. ‘사라를 정말 사랑해.’

바로 그때 내가 서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잔잔한 음성이 내 귀에 들렸다. “나도 너를 사랑한단다.” 나는 눈을 감고 창조주 되신 하나님이 먼발치에서 나를 보고 계신 상상을 했다. 내 삶도 마치 사라의 거꾸로 입은 옷처럼 부조화에 엉망인데... ‘왜 너는 걱정과 의심과 두려움을 가득 찬 쓸모 없는 배낭을 메고 있니?’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내가 그 배낭을 대신 메 주마.’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이사야 43장4절). 우리가 가장 약한 순간이야말로 이런 말씀을 하신 그분께 두려움으로 가득 찬 우리의 배낭을 드려야 할 때이다. 그날 밤 다시 부러진 선풍기를 틀었을 때 나는 사라를 양육하는 특권을 내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 사라를 통해 하나님이 내게 새로운 방법으로 당신을 나타내신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낸시 설리번 젱

우리 집이 제일 좋아

내게는 어린 시절 우리 부모님에 대한 아름답고도 생생한 추억이 많다. 두 분이 손을 잡은 채 텔레비전 앞에 앉아 계시다가 간지럼을 태우시는 아버지의 손길에 웃음을 터뜨리며 소리를 지르는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침실에서 들리는 간간이 웃음 섞인 다정한 대화 소리도 기억이 난다. 그런데 한 번은 부모님이 하와이로 여행을 떠나기 몇 시간을 앞두고 갑자기 어머니가 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 여행을 손꼽아 기다리시던 아버지는 당연히 화를 내셨다. 그 이후로 몇 주 동안 두 분 사이에는 팽팽하고 우울한 긴장이 감돌았다. 결국 두 분은 화해를 하셨고 사랑으로 이겨내셨다.

그로부터 일 년쯤 지난 후,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으셨다. 방사능 및 화학 치료를 받으셨지만 암을 이기지 못하고 계시는 것이 역력했다. 그러던 어느 늦은 가을날 오후 어머니와 나는 뒷마당에 앉아 그 여행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한 가지를 다시 바꿀 수 있다면 그때 하와이 여행을 가는 거란다.” 어머니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하와이를 관광하는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야. 하와이 여행 따위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내가 후회하는 건 그 여행으로 인해 내가 네 아빠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거야.” 한숨을 쉬시며 어머니는 곁에 있던 강아지를 안으셨다.

“근데, 비키야, 나는 우리 집이 너무 좋아. 만일 전세계에서 내가 있고 싶은 곳 딱 한 군데를 선택하라면 나는 가족과 함께 집에 있겠다고 할 거야. 직장을 갖고 바깥일 하는 것을 싫어한 건 아니지만 집에 있고 싶은 만큼 집에 있을 수 없으니까 싫었던 거야. 그렇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니 아빠를 위해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면 그때 하와이에 함께 가는 거였어.”

오빠와 언니, 그리고 나 이렇게 3남매를 키우시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어머니는 항상 일을 하셨다. 어머니는 한 번도 불평하시지 않았고 우리가 필요할 때는 두 분 중 한 분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을 수 있도록 서로의 일정을 조정하곤 하셨다. 어머니는 야간 근무를 하셨을 때도 우리가 옷을 입고 아침을 먹고 학교 버스를 타기 위해 문을 나서기 전까지 잠자러 가신 적이 없었다. 피곤하신 것이 역력했지만 우리가 하루를 시작하러 문을 나설 때까지 피곤을 못 이기신 적은 결코 없었다.투병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담당 의사는 어머니를 전문 요양원으로 모시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어머니의 건강이 많이 악화되어 누군가 끊임없이 곁에서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우리 가족의 말에 의사는 우리가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담당 의사였다.

어머니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평생을 희생하신 분이었다. 게다가 어머니가 내게 했던 말씀도 있지 않은가. “만일 누가 전세계에서 내가 있고 싶은 곳 한 곳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가족과 함께 집에 있겠다고 할거야.” 마치 그 선택의 기로에 우리가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어머니께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은 어머니가 소중하게 여기시는 모든 것들에 둘러싸여 삶의 마지막 순간을 집에서 보내실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고 우리는 모두 이번이 어머니와 함께 하는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집안에 무겁게 드리운 슬픔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서 아버지가 고를 수 있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 오셨다. 그 트리에 두 분이 수년간 모아 오신 장식들을 매달았다. 그 중에는 우리가 학교에서 처음 만든 장식도 있었다. 둥지에 앉은 새 장식, 손바닥이 가운데 찍힌 진흙으로 만든 둥근 판, 색판지로 만든 리스에 붉은 반짝이로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쓰여져 있는 장식도 있었다.

벽난로가 활활 타오르고 라디오에서 캐롤이 나지막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우리 가족은 가슴 아픈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다. 어머니는 트리 앞에 몇 시간이고 앉아서 그 장식을 하나하나 음미하셨다. 그 장식들은 우리가 볼 수 없는 어머니만의 마음속 추억의 장소로 어머니를 데려가는 것 같았다. 가족에게 헌신한 삶을 증명하는 하나 하나의 추억들이 있는 곳으로.

눈 덮인 새해 첫날 아침 마흔 일곱의 나이로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자신의 침대에서 그토록 사랑하시던 집의 익숙한 소리에 둘러싸인 채 가족과 침대 위에 올라앉은 애완견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머니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러나 떠나시면서 어머니는 마지막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다. 내 침대 발치에 서서 밝고 흰 빛에 둘러싸인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마지막으로 나와 언니를 바라보시는 어머니에게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사랑과 함께 주체할 수 없는 슬픔 같은 것이 뿜어져 나왔다. 그때 내가 본 어머니는 불과 몇 시간 전 내가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키스했던, 병으로 찌들고 쇠약해진 모습이 아니라 온전하고 건강한 지난날의 어머니였다.

마지막 날들을 집에서 보내도록 해준 대가로 어머니는 우리에게 선물을 주신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이 영원히 산다는 증거였다. 나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절대 의심하지 않는다. 천국으로 가시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어머니의 크신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 비키 키치너

테레사 수녀, 주정뱅이 그리고 나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 고린도전서13장13절

테레사 수녀를 만난 그날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녀가 보여 준 다른 사람,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가르침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나는 당시 로드 아일랜드 주의 한 카톨릭 신문의 편집장이었고 테레사 수녀가 보스톤에 강연차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가기로 했다.

좋은 자리에 앉으려고 일찍 강당에 도착한 나는 이미 기자단 석에 내 좌석이 배정되어 있음을 알았다. 기다리는 동안 옆에 앉은 기자와 이야기했는데 그 기자는 테레사 수녀의 고국인 알바니아 출신이었다. 한참 후 한 신부가 다가오더니 그 기자에게 말했다. “테레사 수녀께서 지금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는 평소 나답지 않은 용기를 내어 벌떡 일어나서 다른 기자들과 함께 그 기자를 따라갔다. 우리는 한 방으로 안내되었는데 그곳에는 인도의 전통 의상인 하얗고 파란 사리를 입은 작은 노구의 테레사 수녀가 당시 보스톤의 대주교이던 훔베르또 메데이로스 추기경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테레사 수녀는 정말 작았다. 하지만 내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은 그녀의 미소와 주름진 얼굴과 내가 소개되었을 때 마치 왕족에게 하듯 내게 절하던 모습이다. 그곳에 모인 모두에게 그녀는 그렇게 똑같이 인사했다. 예수님이 그 방에 걸어 들어오셨다 해도 그녀는 우리에게 했듯이 그렇게 인사 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인사를 통해 테레사 수녀가 우리에게 이런 메시지를 주는 느낌이 들었다. “여러분은 거룩합니다.”

그녀를 직접 만난 일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그녀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날 이전까지 나는 사랑이란 그저 사람들에게 잘 대해주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테레사 수녀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그 이상이었다.

강연을 통해 테레사 수녀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봉사 단체의 회원들이 빈민 중의 빈민인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소개해 주었다. 캘커타 시내에서 데려온, 죽음을 앞둔 한 거지의 상처를 닦아 내느라 온종일 수고한 수녀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 수녀는 예수님의 상처를 닦는 심정으로 그 거지를 돌보았다고 나지막하게 이야기하자 그 큰 강당은 고요함으로 휩싸였다. 그녀는 또한,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가 끔찍한 모습으로 가장한 예수님을 여전히 알아볼 수 있는지 보기 위해 시험하신다는 말도 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 어둠이 깔린 사무실을 나서는데 낯선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 왔다. 그는 더러웠고 남루한 모습에 악취까지 풍겼다. “버스가 벌써 떠났소?” 그가 물었다. 그곳에서는 유일한 버스인 부랑자들을 급식소로 데려다 주는 차량에 대해 묻는 것이 분명했다. “아마 그런 것 같은데요.” 대답을 하는 내 머리에 테레사 수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의 말대로 내 앞에 나타난 이 거지 남자가 예수님이 변장하신 것이라고 믿을 수는 없었지만 그 사람에게 한 끼 식사가 절실한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마침 그 급식소는 내가 가는 길목에 있었다.

“타세요. 제가 태워다 드릴게요.” 나는 그 주정뱅이가 차에서 멀미를 하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말했다. 그 말에 그는 놀라는 듯 보였지만 기뻐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흐릿한 눈으로 나를 찬찬히 보던 그 사람이 내뱉은 다음 한마디는 테레사 수녀가 가르쳐 준 것을 내게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었다. “댁은 나를 잘 알고 있나 보군요.” - 로버트 볼드윈

누군가 널 위하여

낯선 사람이란 당신이 아직 만나지 않은 친구이다. - 로버타 리버만

해마다 크리스마스 이브 밤이 되면 노바스코샤 주에 있는 렌셔의 동네 여인들은 기차 정거장에 모여들었다. 아이들을 재운 후 역에 나와서 시내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쇼핑하고 돌아올 아버지나 남편을 기다리는 것이다. 에밀리 샌더스라는 여성도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렌셔 역에 서서 추운 겨울날 별빛을 받으며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내가 할 이야기는 바로 그 남편에 대해서이다. 본명도 가명으로 바꿨고 상황도 조금 바꾸긴 했지만 오래 전에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다.

때는 어느 해 유월이었다. 당시 신학생이던 나는 과수원이 많기로 유명하던 이반젤린이라는 지방에서 하계 설교 실습을 하고 있었다. 중고 자전거로 울퉁불퉁한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던 나는 천둥소리와 함께 소나기를 만났다. 비가 마구 쏟아지는데 앞을 보니, 맨발의 어린 소녀가 곧 무너질 듯 생긴 나무 다리 위에서 물을 첨벙거리고 있었다.

“얘야, 다리에서 내려오는 것이 좋지 않겠니? 다리가 벌써 물에 잠기고 있잖아.” 나는 빨간 머리의 여자아이에게 소리쳤다. 그리고는 자전거 뒷자리에 묶어 둔 접는 우산을 풀고 내 앞에 그 아이를 태웠다. 한 손으로는 우산을 힘겹게 바치고 다른 손으로는 자전거를 운전하며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어디 사니?” 나는 아이에게 들리도록 큰소리로 물었다. “저 길 밑에서 두 번째 집에요.” “이름이 뭐지?” “메리. 우리 아빠는 프랭크 샌더스예요.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아셨으니까 이제 자전거 그만 태워주실 건가요?”

아이의 질문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이가 사는 집 앞에 도착했다. 현관에는 키가 크고 마른 여인이 나와 서 있었고 그녀의 외모 중 단정한 부분은 잘 땋아 올린 금발의 머리뿐이었다. “하루 종일 해가 쨍쨍했는데 어떻게 우산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녀가 수상하다는 듯이 내게 물으며 다른 세 아이와 함께 메리를 집안으로 들여보냈다. “저는 크로스웨이 교회에 여름 설교 실습을 하러 와 있는 신학생입니다.” 내가 웃으며 설명했다. “지난 밤 기도 모임 때 하나님께 비를 달라고 기도했거든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 우산을 챙겨 나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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