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나라에 사는 거인
권민 지음 | InsightBooks
새벽 거인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새벽에 일어나는 것보다 먼저 지금 흘려 보내고 있는 시간들에 대해서 이전과는 달리 안타까운 심정으로 용서를 구해야 한다. 어떤 용서를 구해야 하는가? 바로 나의 육체를 위해서 즐겼던 그리고 내 비계 덩어리들을 위해서 살았던 시간의 사치에 대해서 우리 영혼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시간에는 두 가지 정의가 있다. 하나는 흘러가는 시간이고 또 하나는 의미 있는 시간을 말한다. 흘러가는 시간을 헬라어로 '크로노스'라 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카이로스'라 한다. '크로노스'는 연대기적인 시간을 말하며 '카이로스'는 특정한 시간 또는 정해진 시간을 말한다. 시간은 비록 흘러가는 것이지만, 시간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을 때에 이 의미 있는 시간을 '카이로스'라 부르는 것이다.
새벽 시간을 크로노스처럼 쓰는 사람들이 있다. 직장에 일찍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여기저기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는 사람들. 스포츠 신문부터 시작해서 4대 일간지를 모두 읽어버리는 사람들, 어제 점심에 미루다가 저녁에 끝내지 못한 일을 새벽부터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새벽 시간은 추가된 '냉면 사리'처럼 2시간 덤으로 쓰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거인과 평범한 사람과의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거인들은 하루의 30%에 해당하는 새벽 시간을 카이로스로 만들어 사용한다. 카이로스에 의한 새벽 성장 그리고 성숙. 나는 이 새벽에 가장 겸손한 사람이 된다. 작가들의 책을 읽거나 거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들에게 인생을 배우고 그에 따르는 고통을 배운다. 낮 시간 동안 배우는 것이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새벽에 배우는 것은 나의 영혼을 위한 것이다.
중국속담에 "내일의 모든 꽃은 오늘의 씨앗에 근거한다."는 말이 있다. 새벽은 하루의 씨앗이며 1년의 씨앗이며 평생의 씨앗이다. 새벽은 꿈이 없는 사람은 결코 볼 수 없는 씨앗이며 게으른 자는 받을 수 없는 씨앗이다. 사과 안에 있는 씨앗은 알 수 있지만 씨앗 안에 있는 사과를 알 수는 없는 것처럼 24시간에서 새벽을 나눌 수는 있지만 새벽이 품고 있는 또 다른 시간에 대해서는 측정할 수 없다.
이렇듯 새벽을 소중히 여긴다면 새벽도 당신을 소중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새벽을 깨우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 안에서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새벽은 침묵을 품고 있는 시간이다. 침묵은 고독과는 별개의 영역으로 고독이 감정의 몰입이라면 침묵은 이성의 명상이다. 만약 고독이 인간적이라면 침묵은 신(神)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고독이 외부와의 단절이라고 말한다면 침묵은 내부로부터의 독립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침묵 속에서 우리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듣게 된다면 현대인이 결코 가기 어려운 '절대 침묵'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런 침묵을 통해 우리가 배우는 것은 '절대'의 영역이다.
외부와의 단절로 시계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새벽이야말로 침묵을 위한 가장 적합한 시간이다. 새벽마다 내면의 세계에서 들려오는 소리인 침묵의 외침에 대해서 귀 기울여야 한다. 나는 침묵을 얻기 위해 새벽에 일어난다. 침묵은 과학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영의 영역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그 영역의 깊음과 넓음을 보여준다.
새벽침묵은 거인들의 힘이다. 모든 거인들은 침묵을 통해 성장했다. 우리도 처음에는 침묵을 이기는 노력에서 출발하여, 그 다음은 침묵과 함께 하는 명상으로, 마침내 침묵을 즐기는 창조의 힘을 배워가게 될 것이다. 침묵을 두려워하지 말자. 나를 또 다시 새로운 창조물로 만드는 기적의 시간이 바로 새벽 침묵의 시간인 것이다."아동복의 핵심은 예쁜 아기입니다. 궁극적으로 부모는 브랜드보다는 예쁜 아기를 원합니 다. 따라서 우리 브랜드의 솔루션은 부모에게 저렴한 가격의 옷을 통해서 예쁜 아기를 만 들어 주는 것입니다."
"아기가 있습니까?" 아기가 아직 없는 내게 이 말은 공습경보와 같다. 이제부터 내가 말 할 수 없는 영역에서 '너는 경험이 없다.'는 톤으로 몰아 부침을 당하게 될 것이다. 물론 내게는 300명의 소비자 분석결과가 있지만 아마 신규 브랜드 기획차장은 내가 경험이 없 다고 몰아 붙일 것이다. "없습니다."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까?" "설문지 분석에 의해서 알았습니다." "설문지를 100% 믿습니까?"
눈치채지 못하게 긴 호흡을 가다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나는 웃음을 지으면 서 이렇게 말했다. "95%는 믿습니다." "5%는 무엇입니까?" "저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직 관입니다." "좋습니다. 다시 한번 내용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 주십시오."아프리카에 스프링 벅이라는 사슴이 있다. 처음에는 10마리 정도가 무리를 지어 살다가 여기저기서 스프링 벅 한두 무리가 모여들면서 점차 큰 무리가 되면 스프링 벅은 갑자기 뛰기 시작하고 어딘가를 향하여 돌진한다. 목표는 없다. 앞으로, 앞으로 계속 돌진하다 벼랑이나 늪을 만나게 되어 상당수가 죽음을 당한다. 이 같은 현상은 욕심에서 기인한 것 으로 다른 사슴들보다 먼저 달콤한 풀을 먹고자 한 발 앞서려고 했던 것이 원인이다. 다 른 사슴들도 보다 앞에 있는 풀을 먹기 위해 뛰어가고, 또 다른 사슴들도 뛰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죽음의 질주는 시작되는 것이다."사람들은 너나없이 보물을 찾기 위해 혈안이다. 그러나 보물은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시간이 가장 소중한 보물이며, 미래는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을 어떻게 노 력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만약 하루를 허송했으면 하루의 보물을 잃은 것이며, 하루를 값지게 보냈다면 하루의 보물을 캐낸 것이다."회의 시간은 무려 8시간 지나서야 끝났다. 200페이지가 넘는 마케팅 기획서와 광고 기획서가 만들어졌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2월에 태어날 신규 브랜드는 아마도 3년 동안은 경쟁 브랜드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브랜드가 될 것이다.
오늘은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쳤다. 영혼도 지쳐버린 것 같다. 직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오늘도 피터 드러커를 비롯한 수십 명의 전문가를 통해 전수 받은 지식을 이용했다. 게임처럼 살았다. 게임을 잘 하기 위해서는 첫째, 규칙을 알아야 한다. 둘째, 항상 이기는 규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을 패턴이라고 부르는데 게임의 승부는 결국 누가 더 유리하게 규칙을 가지고 가는가와 어느 쪽이 더 많은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새벽 안내인은 터벅거리면서 걸어오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피곤해 보이네요."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무슨 걱정이 있습니까?" "걱정이라기보다는 풀지 못하는 숙제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풀지 못했습니까?" 그는 마치 내 문제를 모두 알고 있고, 풀어줄 수 있을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문제를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도 중요합니다. 문제를 정확히 알면 내가 풀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를 알 수 있죠. 권민 씨, 지식보다 지혜를 구하십시오." 지혜라뇨?" "권민 씨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입니다."
나는 더 이상 지혜에 관해서 물을 수 없었다. 지혜가 무엇인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지혜는 단순히 IQ를 말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영리함을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나에게 지혜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어했다.
"겸손해지면 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지혜를 누가 주나요?" 나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지혜를 받을 수도 있고 찾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차분한 미소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잊지 마세요, 권민 씨. 지혜의 열쇠는 겸손입니다."
"당신의 친구들에게, 당신의 부인에게, 당신의 상관에게 자신에 대해 물어 보십시오. 좋은 말을 들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비춰진 당신의 모습과 당신이 숨기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비교해 보십시오. 만약에 부끄러워졌다면 당신은 겸손해진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겸손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교만해질 만큼 상승된 위치에 올라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내게 말하는 겸손은 단지 교만의 반대말이 아닌 것 같았다. 그것은 또 다른 세계에서 필요한 성품이고 그 세계에서 필요한 삶의 지혜인 것 같았다.새벽은 인생과 영혼의 깊이를 측량할 수 있는 지혜의 지팡이를 준다. 우리는 이 지팡이를 사용해서 우리를 휘감아 흘러가는 시간의 물살과 깊이를 파악할 수 있고, 많은 어려움과 시련의 풀숲을 보다 쉽게 지나갈 수 있다. 이런 새벽 지혜는 생존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낮의 전략적 사고의 지식과는 다른 온유하고 겸손한 묵상과의 대화이다.
그래서 새벽에 얻는 지혜는 신에게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주기도 한다. 그리고 새벽에 얻는 지혜는 삶의 기준과 가치를 명확하게 해주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새벽을 맞이하는 것도 인생과 영혼의 깊음 밑에 숨겨진 큰 지혜라는 것이다.
빌 게이츠는 『생각의 속도』라는 책에서 모든 것을 디지털 체제로 바꾸어서 소비자에게 더 빠른 서비스와 상품을 공급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문명 진화론의 대세에 의해 자연 도태가 된다고 그는 경고한다. 그의 경고대로 사회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디지털인지 돼지털(?)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컴퓨터를 못하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컴퓨터를 아는 것과 그것을 통해서 회사를 만드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최고 선망의 지혜가 되어 버렸다. 특히 지식 자본화가 되면서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지혜보다는 지갑을 풍족히 하는 지식이 우세하게 되었고 우리 안에 있는 영혼과 성품 또한 그렇게 변질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검색 엔진을 통해서는 '나'를 결코 찾을 수 없다."
새벽은 사람을 지혜롭게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생각'을 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생각하는 주제에 대해 좀더 많은 책을 읽는다면 '감상'을 할 수 있게 된다. '감상의 마음'에 '가치'를 품게 되면 '묵상'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묵상 가운데 새벽 지혜를 얻게 된다. 물론 새벽 지혜가 IQ의 향상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보다 넓고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제3의 눈'을 열어주는 것을 말한다.
세상에서 한발만 물러서서 바라보아도 우리는 제3의 눈으로 또 다른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이는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대중'이 되지 말자는 것이다. 상업성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대중 문화는 소비와 향락의 결정체이며 결론이다. 이 안에서 대중은 트렌드에 의해 움직이면서 자기의 눈앞에 있는 이익과 재미에 의해 가치를 결정한다.
우리는 생각 없이 아침에 일어난다. 습관적으로 TV를 켜거나 신문을 읽는다. TV와 신문을 보면서 그렇게 깊이 있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언론들이 우매한 대중을 위해서 보다 쉽게 전달하기 위한 정보를 언제든지 먹기 쉽게 가공해서 주기 때문이다.
습관에 따라서 아침 출근을 준비한다. 습관적으로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막히고 있다는 라디오 보도를 따라 긴장하며, 출근을 해서 습관적으로 업무를 처리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창의적 사고보다는 매뉴얼에 따른 그리고 인스턴트화 되어 버린 전문서적에 기초해서 판단을 하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동료들과 지내다가 집으로 들어온다. 습관적으로 하루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든다.
우리는 과연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인가? 점심 메뉴 선택에 대한 갈등? 오늘 퇴근 후 2차로 갈곳에 대한 장소 물색? 대부분 생각 없이 선택을 한다. 생각할 수고를 주지 않는 것이 바로 대중 소비문화의 힘이다. 이처럼 우리는 '생각'이라는 생산보다는 '선택'이라는 소비에 길들여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서 한발 물러서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아인슈타인이 '현시대의 문제는 현시대 사람이 풀지 못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우리가 만약 현시대의 문화에 빠져 있다면 현시대를 판단하지 못할 것이다. 한 발만이라도 뒤로 빼고 우리가 살고 있는 대중문화를 바라보아야 한다. 생각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반면에 한발 앞서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 있다.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한 앞선 마음으로 무시당하고 유린당하고 황폐화되어 가는 것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가족, 부부, 이웃, 친구, 신앙, 죽음, 인생... 이런 것들에 대해서 하루에 30분만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1시간이라도 진지하게 그들을 위해서 시간을 주어본 적이 있는가?
핸드폰 사용료를 내기 위해, 친구들과 춤추기 위해, 요즘 뜨는 옷을 사기 위해 청소년들은 원조교제를 한다. 한국에서 4쌍 중에 한 쌍 정도가 결혼한지 한 달이 채 못되어 이혼을 한다. 가정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보려면 새벽 2시에 신촌에 나가면 된다. 이것이 디지털 사회로 진화되는 모습들인가?일반적으로 국가를 주권, 영토, 국민 등의 조건에 따라 호주, 일본, 대만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간적인 덩어리의 개념이다. 그러나 머리를 크게 열어 또 다른 통찰력을 가지고 시간 중심으로 살펴보면 새로운 국가를 볼 수 있다. 아침나라, 점심나라, 저녁나라 그리고 새벽나라가 그것이다.
나는 새벽을 좋아하지 않았다. 적어도 5년 전만 해도 새벽이라는 것은 나를 힘겹게 하는 부담스러운 단어였다. 대학시절에는 아예 새벽이라는 시간을 몰랐다. 나에게는 노는 시간과 자는 시간 그리고 나머지 것들을 하는 시간만 있었을 뿐이었다.
몇몇 회사를 전전하다가 나는 새벽을 알게 해준 직장으로 옮기게 되었다. 새벽에 근무하는 회사는 아니었지만 집과 직장의 만만치 않은 거리 탓에 어쩔 수 없이 새벽에 출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 버스는 지옥이다. 그래서 나는 5시에 일어나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집을 나서서 아침 7시쯤이면 회사에 도착했다. 그러나 처음 2년 동안은 나에게 새벽이 없었다. 단지 이른 아침이었고 짜증나는 출근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새벽 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비자를 받게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민을 준비하고 재산을 모으고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갑자기 비자와 비행기표가 생겨버렸다. 그리고 나는 지금 새벽 나라에 작은 정원이 있는 30평짜리 집에 살고 있다. 아직까지 시민권은 나오지 않았지만 영주권을 가지고 그런 대로 꽤 잘 살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주었던 사람들은 모두가 새벽 거인들이다.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10명을 꼽아본다면 그 중에 9명은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두 가지의 가설을 세울 수 있다. 하나는 모든 위인들은 새벽에 일어난다는 것과 또 하나는 새벽에 위인들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거인들은 새벽에 일어나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물론 새벽부터 회의를 하거나 인터넷을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주로 혼자서 책을 읽거나 명상을 했다. 그들은 조용한 시간 동안 자신의 꿈에 대한 각오를 다지기 위해 마치 무사가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칼날을 세우는 것처럼 '기도와 명상'으로 내면의 깊이를 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