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와 연탄 구루마
엄상익 지음 | 좋은책만들기
15년 동안 감옥 안의 처절한 고통 속에서 정금같이 단련되었던 그의 신앙은 서서히 변질되어가기 시작했으며 실종되었다. 간증을 하는 그에게서 나는 새가 없는 황금새장을 보았다. 그는 나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가장 비참한 모습을 본 유일한 목격자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극단의 고통으로 그의 믿음을 꺾을 수 없었던 사탄은, 이번에는 전략을 바꾸어서 세상의 부귀영화로 그를 유혹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파멸시켰다. 면회실의 두꺼운 아크릴 판을 사이에 두고 조세형과 마주앉았다. 주황색 조끼와 바지를 입은 초췌한 모습이었다. 총에 맞은 오른팔 뼈가 일부 부서져 있었다.
"도대체 왜?" 내가 원망 섞인 어조로 물었다. 그의 재범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범죄자의 참회를 모두 부인하게 하는 상징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냈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짙은 상처를 남겼다.
도벽이란 무서운 질병이었다. 그는 꼬마 거지에서 구멍가게의 두부를 훔치는 도둑 인생으로 시작했다. 석방된 그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뼈를 깎는 고통으로 거기에 박힌 나쁜 인자들을 빼내는 것이었다. 잠재된 도벽의 균이 세상의 조명에 억눌린 채 갇혀 있다가 일본이라는 익명성 속에서 되살아난 것 같았다.
일본에서의 그의 범죄가 보도되자 세상의 태도는 돌변했다.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이 등에 칼을 찌르기도 했다. 나는 도둑을 미화시킨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어떤 일간지에는 내가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는 취지의 기사가 실렸다. 그를 무대 위에 올려놓고 함께 공연하던 사람들은 어디론지 다 사라져버렸다.
이런 때 알곡과 가라지가 가려지는 것 같았다. 진정한 천사는 북 치고 꽹과리를 울리며 그가 춤을 추도록 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무도 모르게 그를 도와준 몇 명이었다. 그의 구명을 호소하고 성금까지 걷어 준 호주 교민들이었다. 그들은 지금도 그의 진정한 참회를 위해 다시 기도하겠다는 연락을 보내오고 있다.
나는 예수 앞에 끌려온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창녀를 생각한다. 다시 죄를 저지르지 말라는 경고를 받지만, 그 여자는 또 음란죄를 범할 지도 모른다. 그럴 때 예수님은 어떻게 할까? 그때도 아마 돌을 던지는 자보다는 맞는 창녀의 편을 드실 것이다. 그리고 일곱 번의 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시리라고 나는 믿는다.1999년 12월 31일, 새 천년을 맞기 하루 전이었다. 아침에 월세 10만 원짜리 단칸방을 나오면서 봉수 씨는 기분이 좋았다. 왠지 오늘은 재수가 좋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섯 살 먹은 딸아이가 아빠를 보고 방글방글 웃었다. 연년생인 다섯 살 난 아들놈은 바지자락을 붙잡으며 "아빠 나가지 마." 하고 잉잉거렸다.
오늘밤엔 요즘 아이들한테 인기 최고인 장난감 로봇을 사 가지고 돌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이들을 보면 그는 사는 보람이 느껴지곤 했다. 30대 한창 시절, 그는 소매치기 사회에서 촉망받는 기술자였다. 늦은 아침을 먹고 버스나 지하철에 올라타 신문을 편다. 펼친 신문으로 옆 사람을 가리고 그 사이에 그 사람의 지갑을 빼낸다. 너무 쉬웠다. 운 좋은 날은 몇 달을 흥청망청 살아도 충분할 만큼 큰돈이 생겼다. 그러다가 15년 전, 가장 믿었던 소매치기 동료의 밀고로 붙잡혔다.
석방 후 봉수 씨는 소매치기 세계에서 손을 끊었다. 처음 6개월은 정말 힘들었다. 수시로 유혹의 손길이 뻗쳐왔다. 스멀거리는 손가락을 끊어내고 싶은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는 충무로를 오가는 지하철 4호선에서 가판대가 생기기 전까지 6년간 신문을 팔았다. 선수가 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그의 눈에 여기저기 소매치기가 눈에 띄었다. 잘 알고 지내던 후배도 보였다. "형님, 쪽팔리게 이런 짓 하지 말고, 우리하고 옛날처럼 멋지게 사십시다." 만나는 후배마다 그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그에게 신문을 건네주던 아가씨가 지금의 아내이다. 그들은 연애를 하다가 단칸방을 얻어 살림을 차렸다. 봉수 씨는 아내를 따라 교회에 나갔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그는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었다. 그러나 교회 사람들은 그를 경계하지 않고 따뜻이 대해줬다. 좋은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까 좋은 향기가 몸에 배는 듯 했다.
그는 부지런히 힐튼호텔 앞으로 갔다. 지하철 안에서 장갑이며 칫솔, 손톱깎이, 중국산 젓가락 등 돈이 되는 것이면 다 팔았다. 지하철 잡상인을 상대로 물건을 대주는 창신동 사무실엔 없는 것이 없었다. 오늘은 낮에 중국산 장갑을 받기로 했다. 밤에는 12시까지 광화문에서 축제가 열린다고 했다. 거기서 축제용품인 형광막대기를 팔면 두 탕을 뛸 수 있는 대목이었다.
"벌써 다 팔았어? 아직 점심 안 먹었지?" 장갑 판 돈 20만 원을 받아든 김 사장의 얼굴에 기쁜 빛이 떠올랐다. 오후 3시쯤 장갑 1백 켤레가 다 나갔다. 운 좋은 날이었다. 물건을 파느라 바빠 점심도 놓쳐버렸다. "이따 광화문에서 하는 행사에 형광 막대기를 가지고 한탕 더 뛰려고 하니까 7시쯤 그리로 3백 개만 갖다줘요." "오늘은 연말인데 그만하고 가서 식구들하고 놀지 그래. 그렇게 돈 벌어서 뭐해?" 김 사장이 놀렸다. "그래도 대목인데 이때 재미 좀 봐야죠." 봉수 씨가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겨울 해가 설핏 지고 있었다. 봉수 씨는 장갑으로 뚱뚱해진 가방을 들고 북아현동 언덕 위에 있는 교회 길을 올라갔다. 목사 사모님이 송년선물로 장갑 1백 켤레를 갖다달라고 부탁했었다. 요즘 교회라 하면 다 기업으로 변질되어 차갑고 냉랭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고달픈 그의 삶에서 교회는 정말 영혼의 안식처였다.
방에 교인 몇몇이 보였다. 그의 아내와 큰 아이의 모습도 보였다. "여보, 오신 김에 아이들하고 같이 주님께 기도해요." 목사 사모님 옆에서 아내가 말했다. "그러지." 교인들이 조용히 앉아 기도하고 있었다. 새 천년을 맞아 소망을 꿈꾸는 것이었다.광화문은 젊은이의 축제 분위기로 들떠 있었다. 해가 지면서 휘황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서치라이트가 밤하늘을 훑고 있었다. '파팍' 소리를 내며 검은 밤하늘로 '슈웅' 올라가 터지는 불꽃놀이는 꿈의 별밭이었다. 해지기 전에 3백 개가 담긴 박스를 들고 왔는데, 9시쯤 되니 벌써 다 팔렸다. 신바람이 났다. 밤 10시에 열리는 송년예배에 참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발 디딜 틈 없는 인파 속을 헤치며 나아갔다. 그때였다. "아저씨! 나 좀 잠깐 봐요." 뒤에서 카랑카랑한 청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왜 내 돈을 가져가요?" 청년이 봉수 씨를 향해 다짜고짜 따지듯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내가 왜 당신 돈을 가져가?" "아저씨가 나를 밀칠 때 주머니 속에 있던 3만 원이 없어졌단 말야, 아저씨가 빼내가지 않았으면 그 돈이 어디로 갔다는 거야?" "무슨 일입니까?" 어느새 의경 두 명이 다가와 청년에게 물었다.
파르스름한 형광등 불빛이 비치고 있는 파출소 안은 밖의 축제와 달리 한산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당신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야." 형사가 느글거렸다. "보긴 어디서 봐요?" "나, 원래는 본서 형사계 근무야, 여기 나온 지 며칠 안 돼, 아무래도 어디선가 당신을 본 기억이 있는 것 같아." "..." 봉수 씨는 기가 막혔다. 저렇게 넘겨짚는 말에 섣불리 대꾸하다가는 정말 늪에 빠져들 것 같았다.
"이거 봐, 여러 말 할 것 없이 3만원 이분에게 돌려드려, 그러면 내가 책임지고 불구속으로 해줄게." 그가 인심쓰듯 소리쳤다. 봉수 씨는 울화가 치밀었다. "아니, 내가 왜 저 사람에게 돈을 거저 줘요?" "가만있어 봐, 컴퓨터로 한 번만 찍어보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오니까." 경찰관은 키보드에 봉수 씨의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입력했다. 전과조회를 하는 것이었다.
그의 입가에 회심이 미소가 어렸다. "틀림없구만, 이 새끼! 내 말이 맞아! 너 임마, 소매치기 전과 있잖아? 이런 새끼들은 잡히기만 하면 다 쑈를 한다니까." 경찰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주머니에 있는 거 다 내놔 봐, 새꺄!" 봉수 씨는 주머니에서 그날 번 돈을 주섬주섬 끄집어냈다. 경찰관이 그중 3만원을 빼서 봉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봉투에 '증거 제1호'라고 검은 사인펜으로 적었다. 그것을 보고 봉수 씨가 소리쳤다. "내 돈인데 무슨 증거요, 증거가?" "그런 건 나중에 판사에게 가서 따져, 짜식아!" 그날 밤 봉수 씨에게 구속 영장이 떨어졌다.
"정말 내가 소매치기를 하면 그깟 3만원을 훔쳤겠어요?" 봉수 씨가 한 맺힌 표정으로 내뱉었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지하철 안에서 소매치기 후배들은 목에 핏대를 올려가며 물건을 파는 그를 보고 "형님, 정말 존경스럽소."라고 말하곤 했던 것이다.
"영장심사 때 판사에게 이런 말들을 해봤어요?" "했죠." "판사님이 뭐라고 그래요?" "잘 들었는데 그래도 피해자의 말이 있으니 재판에서 한번 가려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구속영장에 서명을 했어요." 그의 얼굴에 허탈한 표정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점점 영악해져 가고 있다. 증거만 없으면 누구랄 것 없이 일단 부인하고 본다. 맞은 사람은 있는데, 때린 사람이 없다. 사기 당한 사람은 존재하는데, 그 누구도 속였다는 범인은 없다. 강간을 당했는데 범인은 화간이라고 고집한다. 민·형사소송의 구조는 항상 이분법으로 서로 대립하고 있다. 가해자는 은폐하고 피해자는 날조한다. 조사관은 그대로 적어대고 판사는 그중 하나를 선택한다. 오판의 확률이 반이다. 그 서러운 눈물과 하소연을 들어줄 어머니 품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9급 공무원하고 대법원 판사하고 누가 더 높아요?" 얼굴에 잔뜩 독이 오른 의뢰인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왜 그러시죠?" 나는 그의 무례한 태도에 불쾌감을 참으며 조용히 물었다. 얼마 전 직장에서 해고된 그는 내게 해고 무효소송을 부탁했다. 나는 그의 위임을 받고 대법원까지 승소를 했다. 그리고 확정된 대법원 판결문을 자랑스레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 역시 머리가 땅에 닿도록 고마워하며 변호사료를 지급했다.
공직에서의 해고 처분이 법에서 무효로 확인됐으니 명예를 회복한 셈이었다. 그는 다니던 직장에서 당연히 종전의 보직을 주리라 믿고 기다렸다. 그러나 인사 담당 공무원은 그에게 사법부의 판결을 왜 행정부에 가지고 와서 주장하느냐고 엉뚱한 소리를 했다.
대법원의 해고 무효 확정 판결이 있어도 그가 다니던 행정청에서는 그 동안 밀린 월급조차 주지 않았다. 화가 난 그는 행정청 인사권자에게 복직을 시켜주고 월급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인사 담당자는 판결문에 복직시키라는 말이 없는데 무슨 소리냐며 다시 판결을 받아보라고 느물댔다.
인사 담당 공무원들이 민주 행정의 대원칙을 왜곡시켜도 너무 왜곡시킨 것 같았다. 그들의 논리는 민주사회의 기본적인 법적 원칙을 깔아뭉개는 것이었다. 결국 대법원 판결보다 현실적인 힘이 승리를 거두었다.
승소 판결을 받고도 1년여 동안 직장에 복직하지 못하던 그 의뢰인은 다른 직장에 가기 위해 이력서를 냈다. 그 직장에서는 경력증명서를 요구했다. 그는 다니던 직장에 가서 경력증명서를 요구했다. 그 경력증명서에는 언제 해고됐다는 사실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는 분노했다.
그는 새로운 직장에 경력증명서와 함께 대법원 판결문을 제출했다. 그래도 더 높고 공신력 있는 대법원의 문서를 믿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들어가려는 직장에서는 대법원 판결문을 믿기보다 경력증명서에 해고됐다는 사실을 지워오라고 요구했다.
결국 고등법원과 대법원의 해고 무효 판결문은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그 동안 들인 노력과 변호사 비용이 아까웠다. 증인을 법정에 세우기 위해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행정청의 소송 담당자가 나와서 속 뒤집히는 모함을 할 때는 밤새 한 숨도 자지 못했다. 소송을 하면서 이제나저제나 복직이 되겠지 하는 희망으로 다른 일자리를 구해보지도 못하고 빚만 잔뜩 지게 되었다.
사기를 당했다고 오해한 그는 다시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복직이 되지 않았으니 변호사 비용을 도로 내놔요!" 그가 당당히 소리쳤다. "변호사는 법원의 판결이 나오도록 법정에서 일하는 거지, 현실적으로 행정청에서 인사 명령이 나오는 일까지 맡은 건 아닙니다." 나는 씁쓸한 심정으로 대답했다.
"효력도 없는 판결문을 내가 받아달라고 한 게 아니에요, 변호사비 도로 내놓으쇼!" 내겐 이미 그를 설득시킬 논리도, 힘도 없었다. 판결의 권위는 하급 공무원의 단순 서류보다 약했다. 우리 사회가 진실한 민주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힘과 억지논리가 아닌 법의 지배가 원칙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법의 지배가 현실화되려면 그 효력이 엄격하고 공평하게 지켜져야 한다. 집행될 수 없는 판결문은 오히려 법이 현실적인 불의의 힘에 눌리는 법치주의의 파괴현상이다. 결국 돈 가지고 싸우기 싫어서 이미 받은 정당한 변호사료마저 명분 없이 돌려주면서 나는 표현할 길 없는 자기혐오를 느껴야 했다.바람 같은 여행길에 두 번 만난 노인이 있다. 칠순인 그는 뒤늦게 한을 풀 듯 세상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었다. "돈에 혈안이 되어 사업에만 골몰하다가 나이 오십에 부도가 났어요. 그제야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정말 허망하기 그지없더군요, 인간성도 사람도 재산도 다 잃은 뒤였어요."
그에게 씌워진 멍에는 '부정수표 발행범'. 도망을 가보았지만 딱히 몸을 피할 곳도,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었다. 그제야 비로소 그는 스쿠루지 영감으로 살아왔던 자신의 과거를 깨닫고 크게 뉘우쳤다. 그래서 자수를 하고 감옥에 들어가 6개월을 살았다.
출소 후 그는 낡은 봉고를 몰고 공사판에 다시 뛰어들었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 재기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혀를 찼다. 절망에 도전하려는 그가 측은해 보였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낭떠러지 끝까지 내려갔다. 모든 것을 감수했다. 그리고 기어이 일어섰다.
"망하고 나니까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게 되더라구요." 안경 너머로 보이는 노인의 감긴 듯한 조그만 눈이 반짝 빛났다. "나, 그 동안 교회에서 어떻게 사기 친 줄 아슈? 헌금함이 오면 빈손을 슬쩍 넣어 돈 낸 것처럼 했다오." 그가 멋쩍은 듯이 웃으며 덧붙였다. "이제 언제 죽을지 모르잖소? 그래서 장학금도 조금 내놓고, 이렇게 쫓기듯 여행도 다닌다오."
처음으로 외국 구경을 하고 돌아오면서 그는 인생이 개미처럼 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의 삶의 태도가 달라졌다. 자기가 죽으면 이 세상도 사라지는 것이다. 죽기 전에 실컷 여행이라도 하자. 그래서 노인은 부인과 함께 여행단 여기저기에 끼어 구경을 다니기 시작했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그때그때 인생을 즐기도록 하세요, 시간 역시 마찬가지랍니다. 허송세월하지 마세요.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더라구요." 나는 노인의 쓸쓸한 뒷모습에서 까닭 모를 회한을 느꼈다. 그의 여행은 여행이 아니었다. 기차를 놓친 승객의 안타까운 달음박질이었다.
인생이란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삶은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따사로이 내려 쬐는 햇살아래에서 한 잔의 향기로운 차를 마시며 살아가는 눈부신 행복과 잔잔한 기쁨을 누리고 싶다.범죄자 중에 이따금 독특한 성질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된다. 조직폭력의 두목급으로 기소된 박동민이라는 30대 후반의 남자가 있었다. 새처럼 가냘픈 몸이었다. 하지만 눈에서는 푸른빛이 돌 만큼 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