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길들이기
요제프 폰 베스트팔렌 지음 | 살림
못생긴 강아지 등을 꼴불견이라고 한다. 꽉 막힌 우리 삼촌 빌헬름은 찢어진 청바지를 보면 꼴불견이라고 한다. 하지만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내 동생 울리케는 일곱 가닥밖에 남지 않은 앞머리로 넓은 이마를 가려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빌헬름 삼촌의 헤어스타일을 가리켜 꼴불견이라고 한다. 나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공부 다 했냐, 숙제 다 했냐?" 하는 엄마의 잔소리가 꼴불견이다.
해수욕장에 가서 내리 다섯 시간이 넘도록 일광욕을 하면서 아이들이 함께 물에 들어가자고 할라치면 귀찮다는 듯 "조용히 좀 해." 하고 면박을 주는 어른들과, 자신은 선크림을 잔뜩 바르고 일광욕을 즐기면서 선크림도 못 바른 아이들이 잠시 햇볕이라도 쬐어볼까 하면 "햇볕에 화상 입으면 어쩌려고 그러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어른들 역시 꼴불견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엄마, 아빠 앞에서 "우리 부모는 정말 꼴불견이라니까!"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 그렇게 말했다간 불벼락이 떨어질 것이다. 나 같으면 그 자리에서는 꾹 참고 있다가, 나중에 엄마의 기분이 좋아졌을 때 제삼자를 빗대어 "이러저러한 사람은 정말 꼴불견이에요." 하면서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엄마, 아빠의 행동을 나열할 것이다. 그러면 엄마, 아빠는 속으로 찔끔하겠지.꼴불견"이제 그만 자라!" 우리 엄마의 십팔번 잔소리.엄마, 아빠 : (내일이 일요일인 것도 모르고) 그만 자거라. 내일 아침에 늦잠 자겠다. 슈테판 : 내일 일요일이에요. 걱정 마세요.
엄마 : (어떻게 하면 이 녀석을 잠자리로 보내 버릴까 궁리하며) 내일 바닷가에 가기로 했잖니. 아침 일찍 출발할 거야.
슈테판 : 가면서 차안에서 자면 돼요. 참 그렇지. 아빠가 주무셔야 되겠네요. 운전하려면 피곤하실 테니까요.
아빠 : 걱정 마라! 나는 내가 알아서 잔다.
슈테판 : 지난번에도 졸면서 운전하셨잖아요. 얼마나 조마조마했다구요. 피곤한 부모는 피곤한 아이보다 더 위험한 법이죠.
아빠 : (기가 팍 꺾인다)
엄마 : 하지만 너도 차안에서 잠자면 손해일 거야. 가는 길 경치가 얼마나 좋은지 아니? 슈테판 : 지난번에 다 봤어요.
아빠 : (드디어 반격의 말을 찾아내어) 그땐 봄이었잖아. 지금은 가을이야.
슈테판 : (히든 카드를 꺼낸다) 제가 뭐 늙은이인가요. 경치를 좋아하게
엄마, 아빠 : (얼굴이 벌게진다. 경치를 좋아하면 늙었다는 증거라구?)
슈테판 : (혼잣말로, 하지만 분명히 들리게) 엄마, 아빠가 알아서 주무시는 것처럼 저도 제가 다 알아서 잔다구요.말씨름통쾌한 말씨름. 시기를 고려한 설득력 있는 말은 엄청난 효과를 가져온다. 보통은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말발이 세다. 하지만 엄마, 아빠를 당황하게 하고 화만 돋우는 건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어른들은 화가 나면 고집이 세져서 제아무리 옳은 이야기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말씨름을 위해서는 말뿐만 아니라 전략이 중요하다.
엄마, 아빠는 특히 기분이 안 좋을 때면 무턱대고 "자라."고 한다. 그럴 때 잘못 대꾸하면 아빠로부터 맞기 십상이고, 한 대 맞았다고 "걸핏하면 때리기나 하고." 등의 말을 입에 담았다간 설상가상으로 더욱 궁지에 몰릴 게 뻔하므로... 엄마나 아빠가 손찌검을 할 낌새가 보이면 부드러운 목소리로 "원래 말이 막히면 손이 올라가는 법이지요."라고 말하면 어떨까? (그러다 자칫 한 대 맞을 걸 두 대 맞게 되나?)"두목이 인사를 전하라 하셨네." 마피아 깡패는 권총을 사랑스럽게 쓰다듬는다. "매달 천 달러씩 순순히 기부하지 않으면 이 피자 가게는 한 방에 날아갈 거야. 흐흐흐." 끔찍한 협박. 야만적인 태도. 협박은 분명 그리 좋은 수단은 아니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자신도 모르게 끊임없이 우리를 협박한다. "수학 성적을 올리지 않으면 스타워즈 시리즈는 없어."
부모 길들이기 역시 협박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목하 협박중이라는 것을 엄마, 아빠로 하여금 느끼게 해서는 곤란하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면 어떻게 하겠다.' 하는 식의 판에 박힌 협박은 피하는 게 좋다. "새 자전거를 안 사주시면 다음 학기에 저 때문에 골치 좀 아프실 걸요." 이런 식의 협박은 절대 금물이다!
가장 세련된 협박은 먼저 행동으로 엄마의 마음을 살살 녹이고, 그 후에 살며시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게 거래의 기본이다. 하지만 이때 중대한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즉 어떤 행동이 대가를 바라고 한 일임을 알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면 엄마는 모든 일을 대가와 연결해서 생각하고 모종의 압박감을 느끼게 되어 절대 우리가 원하는 것을 호락호락 들어주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다양한 트릭과 교양으로 부모의 마음을 녹여 부드러운 분위기를 조성한 다음 슬그머니 원하는 것을 말할 것. 그래도 안 넘어가면? 그때는 할 수 없지. 엄마 눈앞에서 책을 싫어하는 무위도식가로 돌변하는 수밖에.자고로 칭찬은 약이 된다. 개나 고양이한테도 그렇다. "그래 그래! 해피야, 착하지. 그래 그래, 많이 먹어라 응." 이런 식으로 칭찬을 받지 못하면 애완 동물들은 사료 먹기를 거절할 것이다. 그런데 불만스러운 것은 엄마가 가끔 나를 애완 동물로 착각하는 듯하다는 것이다. 엄마가 내게 하는 칭찬은 애완 동물에게 하는 것과 별다를 것이 없다. 나는 접시를 깨끗이 비우는 것 따위로 칭찬을 듣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차라리 엄마가 나의 패션 감각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러나 엄마는 반짝반짝 빛나는 내 비닐 바지가 너무 튄다고 잔소리한다. 우리 엄마는 도대체 안목이 없다.
그래서 생각해 낸 아이디어! 칭찬을 받기보다 칭찬을 하자! 엄마, 아빠를 내가 먼저 칭찬하자. 누구나 칭찬을 받으면 칭찬대로 길들여지게 마련이다.부모 협박(?)하기부모 칭찬해 주기슈테판 : 엄마, 지난번에 내가 친구들과 자전거 하이킹 갔을 때 많이 걱정하셨어요? 엄마 : 아니, 별로 걱정이 안 되던 걸
슈테판 : 그러면 그렇죠. 우리 엄마가 누구라고.
아빠가 뱃살을 빼려고 러닝머신 위에서 열심히 운동을 할 때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아빠, 배가 훨씬 들어간 것 같아요.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하시면 되겠어요."우리 엄마, 아빠는 프로 싸움꾼이 아닌지라 따귀 때리는 솜씨가 그리 능란하지는 않다. 그들의 손은 미적거리며 나의 뺨으로 날아온다. 고개만 살짝 돌리면 그 손이 허공을 치게 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데..., 하지만 나는 약간 양보하는(?) 심정으로 나의 볼에 엄마, 아빠의 손바닥 도장이 선명하게 찍히도록 한다.
따귀를 때리는 건 말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맞는 횟수가 점점 잦아진다면 무슨 조치라도 취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님께 공식 서한을 보내 특별 가족회의를 소집하는 것이다.* 일시 : 일요일 오전 11시-12시 * 안건 : 체벌금지와 체벌의 정신적 결과
* 장소 : 거실
* 회의 음료 : 종합 비타민 주스정리 정돈시위끊임없이 새로운 유행어가 등장한다. 누군가가 어떤 말을 계속 써댐으로써 주위 사람을 전염시키고 그 말이 계속 퍼져나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유행어로 발전한다. 아이들은 조금 더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유행어를 쓰고 어른들은 조금 더 젊은 기분을 느끼려고 유행어를 쓴다.
때로는 유행어를 사용하는 것도 재미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집단적으로 쓰는 유행어가 때로는 지겹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나만의 단어를 좋아한다. 자신만의 단어를 쓰면서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통용되는지 시험해 보는 건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다. 그것은 부모 길들이기에도 중요하다. 엄마, 아빠는 내게 말을 가르쳐 준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제 내가 그들에게 새로운 단어를 전수해 주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일 수밖에.
나는 수학을 잘 못한다. 그러나 세 글자를 이용하여 수천 개의 단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쯤은 안다. 네 글자를 이용하여 만들 수 있는 단어들은 정말 무궁무진할 것이다. 단어를 고안하는 놀이에 몰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컴퓨터에 입력된 모든 자료가 바이러스 때문에 다 날아가 버렸을 때의 심정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막힌 단어는 없을까?
나는 조깅을 하거나 테니스를 치고 땀에 흠뻑 젖은 채 집으로 들어서는 아빠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주 메리나예요, 지금 모습." 그러면 아빠는 되묻는다. "아주 뭐하다고?" 엄마 역시 내가 자신이 모르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그 말뜻을 궁금해 할 것이다. 하지만 메리나라는 말은 별 뜻 없는 말이다. 세 글자로 된 단어라는 것 외에는. 물론 아빠를 위해 즉흥적으로 의미를 지어낼 수도 있다. "늘 진보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에요."라고 말이다."볼륨 좀 낮춰! 시끄러워 죽겠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그룹의 최신곡을 듣고 있는데 엄마가 이렇게 소리친다. 엄마는 내가 볼륨을 조금만 높여도 정신 사납다고 야단이다. 그나마 나의 황량한 하루를 위로해 주는 것은 이런 최신 음악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 엄마는 소리만 낮추라고 할 뿐 음악의 종류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엄마 역시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이건 음악이 아니라 소음이다 소음!" 하는 잔소리를 들으면서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나 티나 터너의 노래를 미치도록 좋아했던 기억이 있어서일까?
엄마는 내가 듣는 음악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음악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어 말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고리짝 같은 어른으로 비치는 것이 두려워서 말이다. 나는 이런 약점을 알고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씀하세요."라고 선수를 친다.
그런데 이렇게 음악을 계속 틀어대다 보면 어느 순간 엄마, 아빠가 내 음악에 장단을 맞출 때가 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내 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어떤 노래에 푹 빠져 있다가 이제 서서히 진력이 나고 있는 판에 엄마가 그 노래를 좋아하게 되어 시도 때도 없이 그 노래를 틀어달라고 졸라댈 때는 정말 난감하다.
요즘 나는 집에 있는 옛날 판들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부모님이 좋아했던 음악을 나도 좋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마음이 든 것은 바로 며칠 전이었다. 그날 나는 친구들을 한 무리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서 놀고 있었다. 아빠가 외출해 주었으면 했지만 아빠는 서재에 앉아 꼼짝하지 않았다. 우리는 음악을 점점 크게 틀었다. 그러다가 아빠 서재로 가서 아빠가 옛날부터 갖고 있던 판을 들어보겠다고 했다.
그러자 아빠는 상당히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20분간 우리 방으로 와서 DJ 노릇까지 해주었다. 40년대의 록으로 시작해서 50년대의 블루스, 70년대의 재즈를 거쳐 80년대의 팝송까지. 완전 성공이었다. 나와 아이들은 음악에 매료되었다. 아빠가 비발디의 '사계'를 틀자 우리는 환호성을 올렸다.
아빠는 이날 전혀 구세대로 생각되지 않았다. 아니 우리 자신이 신세대로 여겨지지 않은 것인가? 우리는 20분간 같은 음악을 즐겼다. 정말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오늘 저녁부터 곧장 엄마, 아빠와 손을 잡고 함께 추억의 팝 콘서트에 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가끔 엄마, 아빠와 함께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 같은 옛날 음악을 듣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일 것이다.엄마, 아빠가 어쩌다 한 번씩, 그리고 별로 아프지 않게 체벌을 가한다면 이 정도로 될 것이다. 하지만 매를 맞는 횟수가 상당히 잦고 참기 힘들 정도로 강도가 세진다면 친구나 친척과 상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가물에 콩 나듯 어쩌다 맞는 매는 그리 나쁘지 않다. 왜냐하면 매를 때리고 나면 엄마, 아빠가 으레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때문이다. 죄책감을 느끼는 부모는 고액권과도 같다. 방금 전까지는 내가 나쁜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부모님이 나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후회를 한다. 사과라도 할 것 같은 기세다.
그러므로 나는 "에잇! 걸핏하면 때리기나 하고!" 등의 말을 던짐으로써 부모님의 죄책감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손찌검을 한 걸 막 후회하려던 참에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면 엄마, 아빠는 '잘 때렸다. 저 녀석은 맞아야 마땅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오래 전부터 우리 선배들이 애용해 왔던 방법을 잘 써먹는다. 그것은 따귀를 때려놓고 조금 무안해진 엄마, 아빠를 '당신들이 나를 아프게 했어.'라는 뜻이 담긴 슬픈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다. 엄마, 아빠의 폐부를 관통하는 눈길. 5분 후, 재수 좋으면 내가 원하는 고액권이 손에 쥐어질 것이다.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들 한다. 하지만 늘 고개를 숙여야 하는지, 그게 아니라면 언제 고개를 숙이고 언제 고개를 빳빳이 세워야 하는지 판단하기가 쉽지는 않다. 두 살배기 아기가 버둥거린다. 책장에 놓여 있는 꽃병을 쓰러뜨리고 싶어서다. 엄마는 이런 행동을 도와줄 수 없다. 그러므로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다. 결국 아기는 울부짖으며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다.
엄마가 내게 "생일을 맞으신 할아버지께 카드를 써라!"며 다그친다. 정말 내키지 않는다. 그러나 며칠 계속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괴롭기 짝이 없다. 그래서 판에 박힌 내용의 카드를 쓴다. 더 이상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양보하는 것이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엄마, 아빠는 우리에게 더 자주 양보한다. 그것이 우리보다 한 수 위여서든, 마음이 약해서든, 우유부단해서든, 기분이 좋아서든, 약간 취해서든... "엤다. 10마르크. 하지만 열 시까지는 들어와야 한다." 하지만 이제까지 나는 엄마가 그렇게 말씀하실 때도 엄마가 지금 내게 양보하고 있다는 걸 느끼지 못했다. 엄마 역시 내가 그런 사실을 눈치채는 걸 원치 않으셨을 지도 모르겠다. 물렁물렁하게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다.
보통 나는 양보하지 않으려고 버티며 고집을 피우지만 너무 많은 대가가 따를 것 같으면 양보한다. 그런 경우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린다. 너무 내 고집을 세우다가 일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다. 고모 댁에 가지 않으려고 계속 고집을 피우면 최신 팬티엄 컴퓨터나 48단짜리 기어 자전거를 사는 데 지장이 많을 것이므로.
하지만 너무 일찍 고집을 꺾는 것도 과히 좋지는 않다. 너무 줏대 없어 보이고 자존심 상하니까. 그러므로 나는 양보를 하더라도 자존심 회복 차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번에는 양보할게요. 하지만 저는 늘 익은 벼가 될 생각은 없다는 걸 기억해 주셨으면 해요."밑창에 흙이 덕지덕지 낀 운동화 두 켤레, 아무 데나 처박힌 티셔츠들, 제 짝을 잃어버리고 따로따로 뒹굴고 있는 양말들, 읽지도 않았는데 벌써 너덜너덜해진 책들, 반쯤 먹다 만 팝콘 세 봉지, 껌 종이, 말라비틀어진 수채화용 붓, 음식 찌꺼기가 남아 있는 접시들, 콜라가 찐득찐득하게 말라붙은 유리컵 여섯 개. 나는 이런 장면에 익숙하다. 아 참, 빼먹은 것이 있다. CD와 CD 케이스, 무릎 부분을 일부러 찢어놓은 청바지와 고장난 스케이트보드, 내 방은 이런 것들이 믹스된 거대한 샐러드다.
엄마 역시 이런 장면에 익숙해 있다. 그래서 가끔은 잔소리를 하다 지치면 한동안 그냥 넘어가고, 때로는 "내일까지 방을 치워놓지 않으면 영화표고 뭐고 없어!" 하면서 협박해 보기도 하고, 그러다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