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생쥐, 그리고 인간
프랑수와 자콥 지음 | 궁리
20여 년 전, 모든 신문이 기대 반, 우려 반의 관점에서 시험관 아기의 탄생을 톱뉴스로 보도한 적이 있다.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을 구분해 주는 것 중 하나는, 후자의 경우 무엇을 발견할 지를 미리 안다는 것이고, 전자의 경우는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응용과학은 주어진 과제에 초점을 맞추어 구체적인 것들을 손질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반면 기초과학은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지식에 도달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시험관 아기의 경우는 쥐에서 얻어진 지식을 여자에게 적용하는 조건을 알아낸 것이다. 그런데 이 기상천외한 시험관 아기의 탄생이 처음 보도가 나가고 난 이후 몇몇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흥미를 갖지 않고 있다. 아무도 이에 대하여 말하지 않으며, 언론에서도 더 이상 특별한 사건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생명체의 구조와 기능을 보는 방식과 관점이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명체에 대한 우리들의 견해가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생물학은 일반적인 사실들을 많이 다루고 있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이론은 바로 진화론이다. 우선 진화론은 여러 다양한 분야에서의 무수한 관찰들 즉, 진화론이 아니었으면 각각 독립된 채로 남아 있을 여러 관찰들을 수집한다. 또한 그것은 유기체들의 엄청난 다양성 속에서 하나의 규칙을 끄집어내어 생명계와 그 이질성에 대해 인과적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 이론과 같은 물리학의 이론들은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그것은 논의하지도 반박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진화론은 그와 반대이다. 모든 사람들이 진화론에 대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의도와 상관없이 논박되고 곧잘 거부되기도 한다.
DNA와 게놈 지도의 발견으로 생화학적 진화의 과정이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결국 생화학적 진화는 새로운 분자의 창조와 그들의 선택이라는 두 가지 원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생화학적 진화의 창조적 영역은 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것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많은 종의 세포분열 또는 배에서 관찰되는 것은 바로 유전자 전체를 지배하는 단위 구조이다. 놀랍게도 모든 생물체에서 이 구조가 동일하다. 파리나 쥐나 사람이나 다 마찬가지이다. 5억 년 이상이나 기나긴 진화를 걸치면서도 일부 유전자와 그들 단백질은 거의 손상되지 않고 영속을 지켜온 것이다.
생명계는 일종의 레고 놀이와 유사하다. 생명계는 각각의 요소들이 거대한 조합체로 형성되어, 다양한 배열에 따라 복잡한 작용 방식을 결정하는 유전자나 유전자군의 조각들로 조립되어 있다. 진화에 의해 수반된 복잡성은 이미 존재했던 이 요소들이 새롭게 재정비되어 형성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형태, 새로운 표현형의 출현은 종종 이 동일한 요소들의 참신한 조합에서 형성되는 것이다.오랫동안 생명체는 서로 분리된 것처럼 독립적으로 머물러 있었다. 성장한 각각의 유기체들은 특별한 창조의 결과이며 만일 그들 중에 유사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창조자의 상상적 취향 때문이라고 간주되어 왔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인간의 존재는 진화론에 의해 갑작스럽게 생물계의 일부로 편입되고 말았다. 커다란 원숭이의 작은 사촌이 되어버린 인간이었지만, 인간 스스로는 그래도 역시 다른 모든 생물에 대해 우월하다는 것을 고집하였다. 아니, 단지 우월성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은 전혀 다른 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초파리의 앞 뒤축을 배치하는 것으로, 곤충이 아닌 다른 유기체에서는 도저히 발견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HOM 유전자가 개구리에서, 그리고 생쥐에서, 이어서 사람, 거머리, 히드라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발견되었다. 이 유전자들은 각각 동일한 기능, 즉 동물의 앞뒤 긴 축을 이루는 세포들과 관련하여 위치를 결정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기가 막힐 일이다. 이러한 결과는 생물학자들에게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놀라움과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이 충격적인 발견은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첫째 같은 부류의 유전자가 극단적으로 다른 동물들에서는 완전히 다른 구조의 형성을 결정한다는 사실이고, 둘째 실험한 모든 유기체에 있어서 축을 구성하는 능력을 가진 동일한 체계는 그들의 발생 경로와 상관없이 이 체계가 매우 오래된 것임을 보여 준다. 이 체계는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생물의 조상에 원시적 형태로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는 전혀 다른 기관을 만들기 위해 동일한 유전자 요소를 계속해서 사용하는 자연의 영속성 앞에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모든 생명체는 가장 단순한 것에서 가장 완성된 것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가족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모든 생명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수준의 사촌들이다.
생물계는 동일한 요소, 동일한 단위를 가지고 진화를 거치면서 무한히 다양해져 왔다. 생명체는 마치 지구에서 가장 외딴 구석에 숨어 스스로를 보존해야 하는 운명을 지닌 것처럼 언제나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다양한 구성물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러한 다양성은 종 사이의 차이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같은 종 내의 개체 사이에도 존재했다.
우리는 아주 가까운 가족 같으면서도 동시에 매우 다르다. 종의 세습을 구축하는 유전자는 개체를 이룰 때, 언제나 가변적으로 조합을 형성하면서, 여러 세대를 거쳐 결합되고 분리된다. 우리에게 각각의 독특함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유전자의 무한한 조합이다. 이 조합이 종(種)의 풍요성과 다양성을 제공하는 것이다.인간은 동물, 단순히 하나의 동물이기를 거부한다. 불과 문자, 그리고 숫자를 발견한 이후 인류는 이러한 거부를 계속해 왔다. 과학은 뒤늦게 출현하여 이러한 투쟁의 무기가 되었다. 사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과학의 역사는 천계의 진리에 맞선 이성사의 투쟁사인 것이다.
20세기를 거치면서 과학, 특히 실험과학의 특성은 이제 단순히 지식의 내용을 습득하는 방법 차원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운명을 조종하는 중요한 문화적 힘이 되었다. 과학이 우리의 생활양식을 변화시키는 일련의 과학적 행위, 기술, 기계들을 만들어냈고, 실제로 과학과 기술 사이의 고전적 경계선은 점차 붕괴되었다.
과학과 기술은 서로 의존하고 협력하면서 발전한다. 하지만 과학과 기술은 같지 않다. 그들의 관심과 작용 법칙은 서로 다르다. 하나는 지식생산이 목적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 세계에 작용한다. 전자는 설명과 이해를, 후자는 지배와 통제를 시도한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보완하고 도움을 준다. 오늘날 우리의 삶과 문화에 그토록 영향을 끼치는 것은 과학의 이 새로운 측면, 즉 기술과의 밀접한 관계가 보다 확장되고 보다 구속적으로 변화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20년 사이, 분자유전학의 새로운 기술은 전적으로 획기적이고 놀라운 분석방법을 가져다주었다. 유기체의 생식 주기나 배양에 구애받지 않고, 유전자 서열을 이용하는 DNA의 클론과 증식의 가능성이 열렸다. 어떠한 유기체든 상관없이, 유전적 분석이 상대적으로 간편해졌다. 특히 사람의 경우처럼 고전적인 방식으로 진행시킬 수 없었던 경우에도 분석이 가능해졌다.
또한 DNA를 수선하고, 부위를 절단하여 한 서열을 다른 서열과 이을 수 있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자연에서 진행되던 진화의 작업이 실험실에서 행해진 것이다. 종의 장벽을 넘어서 생물학은 더욱 심오한 단계로 진입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전공학은 적의와 분노를 일으켰다. 유전 공학은 생물학에 대한 불신의 주요 원인 중의 하나가 되었다.
<유전자조작> 또는
이라 불리는 이 개념은 초자연의 성역을 건드린 것으로 간주되었다. 또한 모든 인간의 공포 속에 뿌리 박힌 태고의 신화들을 떠오르게 했다. 상체가 물고기인 인간, 곤충의 모습을 한 고양이, 이처럼 반 자연적인 잡종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유전공학은 불길한 지식들을 불러냈다. 금지된 지식과 같은 유형으로 결코 얻어서는 안될 지식을 말이다. 이로 인하여 유전공학은 과학에 제기되는 가장 심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인간 개량에 대한 생각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유전적 질병을 갖고 있는 부족이나 특정 지역의 사람들에게 검사와 이형접합체를 권장하여 질병을 억제한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가 유전공학에 대해 갖고 있는 두려움은 우생학의 경우인데 완벽하고 최상의 유전자에 의한 복제일 것이다. 이는 열성에 대한 핍박 내지는 제거를 의미하는데 실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방사선 학자들은 X선이 암을 유발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항생제의 광범위한 사용이 내성이 강한 미생물을 출현시킬 것이라고 의심한 의사도 없었고, 더 많은 수확을 거두고 기아를 해결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비료가 무서운 공해의 원인이 되리라고 의심한 화학자도 없었다. 이와 같이 과학과 그 과학의 응용이 일으키는 일부의 해악은 선을 행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되었다.
과학자가 그의 과학에 대한 악용을 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정직이다. 여기서 정직은 과학자가 진실을 말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뜻한다. 요컨대 과학자는 스스로 판단하여 감추지 말고, 혹은 불필요하다고 생략하지 말고, 오직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 인간을 치료하고, 변형시키고, 가공하는 것이 가능해진 오늘날 과학자는 가능성, 이점, 위험성을 포함한 모든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예측 불가능의 중요성동질성과 이질성선과 악결론과학이 행복을 약속했는가? 아니다. 과학은 단지 진리만을 약속했다. 문제는 진리와 더불 어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 1893.5.18 에밀 졸라, 파리의 학생들에게 한 말어떤 단어들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준다. "우생학"이란 단어는 나치수용소나 혹은 열등한 생명체를 낙태하는 장면을 떠오르게 하고, 또한 "인종"이란 단어는 생물적 단어가 문화적으로 쓰이면서 의미가 빗나가 버렸고, "유전학"이란 단어 또한 우리에게 좋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18세기에는, 인간이 제기하는 모든 문제를 과학이 발전하면 한꺼번에 해결될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러서는 과학적 탐구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코끼리와 같은 동물도 무한히 성장할 수 없고 아무리 높은 건물이라도 꼭대기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여기서 무엇을 하는지를 정말 알고 싶다. 과학이 이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학은 특정한 가설들은 제외하라고 신호를 보낼 수 있다. 따라서 과학적 노력의 과정은 우리의 실수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과학적 탐구는 일종의 도박이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들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핵산과 기억, 욕망과 단백질의 놀라운 혼합물이다. 저물어가고 있는 이번 세기에는 핵산과 단백질이 생물학자인 나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다. 다음 세기의 관심사는 기억과 욕망이 될 것이다. 이처럼 수없이 제기되는 미래의 질문에는 과연 누가 대답해 줄 것인가?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일은 내일 일어날 일에 대해서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앞을 내다보는 것이 우리의 가장 일반적이고 중요한 활동 중의 하나인데도 말이다. 단지, 우리가 단호하고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사건은 우리 자신의 죽음뿐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런 불길하고 두려운 생각을 참아낼 수 있는 것도 남아 있는 시간을 전혀 계산하거나 예견할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만일 석기시대에 자르고 써는 기계를 발전시키고자 노력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다양한 형태의 꽤 쓸모 있는 돌도끼를 만들어낼 수 있었겠지만 결코 청동을 찾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또한 19세기 후반에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몸 속에 박힌 탄환의 위치를 찾는 방법을 발전시키고자 노력했다면, 여러 가지 형태의 탐침기를 만들 수는 있었겠지만 결코 X-RAY의 존재와 사용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과학은 예측 불가능하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연구가 진행될지 전혀 알 수 없는 끝없는 과정의 연속이다. 만일 연구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정말 새로운 것이라면, 이는 사전에 몰랐던 어떤 것을 미리 결론의 기초로 삼았기 때문이다. 과학자에게 주어진 연구 분야가 어디로 흘러갈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과학이 어떤 관점을 포기한 채 일부 관점만 선택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과학 연구의 불확실성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은 바로 과학 정책의 입안자들과 정치가들이다. 그들은 인간게놈, 암, 에이즈 등과 같이 뚜렷하고 목적이 있는 프로그램을 선호한다. 또한, 과학 행정가들은 모든 영역에 대해서 연구 계획과 일정표를 수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각 과정의 계획과 일정을 세우고 더군다나 평가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미래를 예측하는 것만큼이나 과거를 재현하는 것 또한 매우 어렵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한 과학적 사고는 정돈된 대답과 혼란스러운 대답을 동시에 제공한다. 생화학자들과 분자생물학자들이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는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하여 다음의 세 가지 가능성에 주목하였다.
우선 몇몇 대가를 비롯한 일부 과학자들은 생명의 씨앗이 우리보다 더 진화된 먼 행성에서 보낸 우주선에 실려왔으리라고 반은 장난삼아 반은 진지하게 일종의 정자설을 내세운다.
지구상의 생명출현이 단 한번에 생성됐다고 간주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지구상에 생명이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과학자들은 우주 안에 의식이 있는 다른 생명체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일부 과학자들은 핵산계의 출현에 이어서 DNA계로 전달되는 것과 연관된 모든 단계가 일반적인 화학 작용이라고 간주하기도 한다. 이 반응들이 생성되는 데는 시간의 소요가 필요하다고 믿으며, 그들에게 있어서 생명은 지구상에 생성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은 우주에 지구와 같은 수많은 행성들과 의식이 있는 생명체가 무수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마지막 두 경우 중의 하나가 유력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세계가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며,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인간사와 무관하게 우주라는 거대한 기계는 냉혹하고 완벽하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이 엄청난 구조물의 종착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레고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