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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왜 바흐를 좋아할까?

차윤정 지음 | 중앙M&B
살아가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식물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전날까지 멀쩡하던 나무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고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나무의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어서 멀쩡했던 때와 뭔가 잘못되기 시작한 때를 명확히 구분하기는 사실상 어렵지만 분명 그 나무의 경우에는 어떤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 삶을 포기하거나 자신을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을 느꼈을 것이다.



1960년대 미국의 거짓말 탐지기 전문가인 백스터는 검류계를 이용한 식물의 자극-반응 실험에 몰두해 있었다. 이 실험은 주로 식물에게 위협적인 자극을 가하고 자극에 대한 반응을 읽어냄으로써 식물도 사람과 같이 생각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대체로 식물을 죽이는 직업을 가진 사람(식물생리학자)과 대면했을 때 식물들은 자극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다가, 그가 떠난 뒤에야 반응을 보였다. 백스터는 이 사실을 바탕으로 식물도 사람과 같이 아예 극단적인 상황에 직면했을 때는 잠시 기절하거나 아예 실신함으로써 일종의 자기 방어와 같은 조치를 취한다고 결론 내렸다.



이는 물론 식물생리학적으로 완전히 정립된 이론은 아니지만 일부에서는 식물세포가 활성 전위를 가지고 주변의 미세한 자기장을 갖는다는 설명으로 이해되고 있다. 식물세포는 무기 이온에 의한 전위 차이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동물의 신경 전달 과정과 유사하다. 미모사 잎의 순간적인 수축 역시 일종의 실신현상으로 볼 수 있다. 미모사 이파리는 평상시에는 작은 잎들이 평평하게 달려 있다가 자극을 받으면 잎이 모이면서 탄력을 잃고 아래로 처진다. 미모사는 외부의 충격을 받으면 체내 수분의 이동을 통해 순간적인 전류를 방출하고 이파리들은 재빠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식물에게도 어려움 앞에서 잠시 삶을 비껴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풍이나 낙엽은 이런 의미에서 일종의 구조조정인 것이다. 한창 생육기에 비가 제대로 내리지 않아 어려움을 당하면 잎, 꽃, 열매가 빨리 떨어진다. 나무도 신경쇠약이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나뭇잎이 하도 예뻐 한 장 뜯으려 하면 줄기까지 쭉 찢겨질 정도로 연결되어 있던 잎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주 쉽게 떨어져 나간다. 이때는 분열 조직으로부터 생장을 정지하고 몸의 소모 기관을 제거하라는 신호 물질, 애브시스산(Abscisic Acid)이라는 생장조절 물질이 만들어진 것이다. 애브시스산은 일종의 자살 기구인 셈이다.



이 현상은 외부로부터 충격이 가해지거나 혹은 직접 상처가 난 조직이 있을 경우에도 해당된다. 이때는 해충이나 병원균으로부터 공격받은 부위를 덩이 조직처럼 키워 괴사시켜 버린다. 즉 상처가 난 부위를 적극적으로 제거함으로써 피해가 커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요즈음 가축들은 좋은 음악을 들으며 좋은 환경에서 사육된다. 인간의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기는 하나, 소나 가축뿐만 아니라 식물도 사람들이 가꾸어 놓은 따뜻한 온실에서 좋은 음악을 들으며 자라는 것들이 많다. 그들은 마치 뱃속의 아기처럼 좋은 환경 속에서 좋은 음악만을 들으며 자라는 것이다. 실제로 온실 속에서 음악을 듣고 자란 채소의 생장량이 좋다는 것은 눈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다윈은 미모사의 수축 반응을 알아보는 실험에 나팔을 이용하였다. 1960~70년대에는 미국의 식물학자들이 옥수수나 다른 작물의 수확을 높이기 위해 음악을 이용한 몇 차례의 실험을 하기도 하였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식물에게 끼치는 음향을 연구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실험결과를 보면 놀랍게도 식물들은 분명히 음악에 영향을 받으며 사람에게 좋은 음악이 식물에게도 좋은 음악이 된다는 것이었다.

실례로 옥수수, 호박, 백일홍, 금잔화 등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클래식 음악과 록 음악을 식물에게 지속적으로 들려준 결과 클래식 방송을 틀어 준 쪽으로 줄기가 이동하여 자라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일련의 실험적 성공에 힘입어 미국의 한 음반 회사는 식물의 생장 촉진용 음반을 제작하기도 했다. 오늘날 어린이들은 비디오나 TV의 과도한 시청으로 인해 뇌가 비정상적으로 발달해 있다고 한다. 좌우 뇌가 동일하게 성장하지 못하고 한쪽 뇌만 특이하게 비중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사람이 이 정도라면 환경에 예민한 식물의 반응은 더욱 강도 높은 것이 될 것이다.



소리는 결국 진동으로 전달되는데 사람에게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악은 식물에게도 역시 부드럽고 감미로울 수 있으며, 록 음악은 식물에게도 역시 소음으로 세포 전위나 활성 전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분명하다. 아프리카의 한 부족은 온 주민이 나무 주위에 빙 둘러서서 사흘 밤낮을 소리지른다. 그러면 나무가 혼이 빠져 쓰러진다는 것이다.



사람 역시 연속적인 고음에는 쉽게 지쳐 결국 신경질적이 된다. 고성에서 나오는 진동의 격렬함은 역시 과도한 자극이 아닐 수 없다. 비행장이 있는 곳의 인근 숲에는 나무들의 성장이 느리고 꽃도 제대로 피지 않는다. 식물이 갖고 있는 소리에 대한 반응은 사람에 비하면 아주 초보적인 수준으로 이는 곧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감성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식물들도 특정 작곡가를 선호한다고 한다. 많은 실험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식물들은 바흐의 오르간 음악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음의 묵직한 소리가 만들어 내는 진동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인도의 전통 음악 앞에서는 바흐도 별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인도의 종교적 색채는 생물이 가지는 근원적 힘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종교도 철학도 음악도 동양의 전통 쪽으로 세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는 오늘의 추세는 어쩌면 생명의 근원에 대한 눈뜨기의 시작이 아닐까.

우리네 농부들은 모심기나 타작, 김매기 등 농사를 지을 때 노래를 불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농사를 지을 때 노래는 대개 음조가 단순하고 낮게 깔리는 특성이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 일종의 자극으로, 일종의 위안으로, 작물들에게 영향을 주었음을 상상할 수 있다.사람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기상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식물 역시 이를 감지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발달되어 있다. 다만 사람들의 사고로 이해되지 않을 뿐이다. 번개가 많은 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말이 있다. 대기중의 질소가 번개 에너지에 의해 고정되어 토양의 질소 상태가 호전되기 때문이다. 질소는 식물의 생장에 가장 빠르고 확실한 효과를 보여 주는 양분이다.



인디언 감초는 모든 형태의 전기나 자기에 대단히 민감하여 날씨를 예상하는 데 이용되며, 영국의 큐 가든은 이 식물을 이용하여 태풍이나 지진, 화산의 활동 등을 예측하였다.



대나무의 꽃은 생애 한번 대량으로 꽃을 피우고 고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나무의 일종인 오죽은 거의 60년마다 꽃이 피는데 이 대나무의 꽃이 핀 다음 해에는 어김없이 기근이 온다. 대나무의 개화 주기가 어느 정도 기상이변 주기와 맞아떨어졌는지, 아니면 기상이변의 전조를 읽은 대나무가 서둘러 생을 마감하기로 작정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농경 사회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 나라의 이팝나무 역시 그 해 농사의 길흉을 점치는 나무로 유명하다. 이 나무는 봄에 하얀 쌀알 같은 꽃을 피우는데 그 해 꽃이 많이 피면 풍년이 들고 꽃이 형편없으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미국 로키 산맥 일대의 초원 지대는 숲과 초원의 멋진 모자이크를 이루고 있는데, 해마다 4월이면 건조한 대기는 불꽃을 방전시켜 건조한 풀더미에 불길을 일군다. 어지간한 나무들은 이 불길에 살아남지 못한다. 오로지 수피(樹皮)에 코르크 방화복으로 무장한 굴참나무만이 이 재앙에서 견뎌낸다.

반면 이미 산불에 이골이 난 풀들은 아예 눈을 지하에 만든다. 산불이 지나가고 난 뒤 지상부가 소거되면서 풀들은 일시에 짧은 영화를 노래한다. 이처럼 산불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곳의 식물들은 산불에 대응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일부 식물은 아예 산불을 신호로 싹을 내기도 한다. 산불이 나무들을 불태우는 동안 발생한 가스 성분이 땅 속으로 스며들면서 일종의 신호와 같은 작용을 하여 씨앗들을 깨우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무에서 발생하는 에틸렌 가스는 나무와 공존하는 초본들에게 개화를 자극하는 신호로 이용되기도 한다. 나무들이 산불로 인해 일시적으로 세력을 잃은 동안 꽃을 피우고 씨앗을 퍼트리기 위해서다. 방크스 소나무의 솔방울 역시 산불과 같은 고온에서만 터지도록 만들어졌다.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끊임없는 경쟁과 투쟁의 연속이다. 어느 생물이건 이러한 투쟁과 경쟁으로부터 한 순간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숲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생명들의 유토피아인가. 결코 아니다. 숲 역시 생존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사는 세상보다 더 심한 무법 천지가 바로 숲인지도 모른다.



숲에도 악당이 있고 악당 때문에 괴로워하는 식물이 있는가 하면, 나름대로 그에 맞서 전투를 벌이는 식물도 있다. 식물마다 나름대로 전략과 전술이 있으며, 무기도 있다. 식물들은 자신의 적이 누구인지, 적의 습성은 어떠한 지를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무기를 이용하거나 회유책을 쓰기도 하고 또 때로는 교란 작전을 펴며 살아가고 있다.



식물 사회에서는 사람 사는 사회와 같이 절대적 동지도, 절대적 적군도 없다. 그만큼 시시각각 상호 관계성이 변하는 곳이 바로 식물 사회이다. 또 하나의 원칙은 적군이 아군은 되지 않지만 아군이 적군으로 변할 가능성은 크다는 점이다. 그래서 식물들은 기본적으로 한 가지씩 전력(戰力)을 지니고 있다. 전투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곧 식물세계에서 밀려남을 의미한다.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야생의 장미의 연하고 단물이 흐르는 잎이 애벌레의 무자비한 공격을 받고 있다.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장미의 잎이란 잎은 모두 애벌레의 위장에서 녹아버릴 것이다. 그때 장미는 제3자를 끌어들이는 작전을 쓴다. 애벌레를 공격하는 제3자를 전쟁에 개입시키는 것이다. 장미는 애벌레가 먹어치우는 이파리에 특수한 휘발성 기체를 만들어 공기중으로 신호를 보낸다. 다른 장미들은 이 가스를 신호탄으로 방어 태세를 갖춘다. 장미의 구조요청 신호를 접수한 말벌 일당은 가스의 근원지를 찾아 모여들고 애벌레는 이내 소탕되고 만다.



무궁화는 수액이 지나가는 길목마다 지키고 서서 식물의 수액을 빨아먹는 아주 성가신 약탈자 진딧물을 소탕하기 위해 유인책을 쓴다. 식물체의 가장 바깥쪽의 잎에 여분의 수액을 몰아주는 것이다. 유난히 진하고 맛난 수액을 찾아 모여든 진딧물은 곧 먹이를 찾아 유랑하는 무당벌레 무리에게 발각되고 만다.



참나무는 공격자들을 교란하는 작전을 쓴다. 벌레가 참나무 가지에 알을 낳으면 애벌레들은 새잎이 돋아나는 시기에 맞추어 알에서 깨어난다. 이때 봄날에 돋아나는 새잎은 애벌레들의 보약이 될 것이다. 이 사실을 눈치챈 참나무가 제 시간에 잎을 피우지 않고 지연작전을 쓰거나 아예 일찍 잎을 피운다. 그러면 벌레들은 언제 알에서 나와야 할지 몰라 혼란에 빠진다. 너무 일찍 깨어나면 죽기 십상이고 너무 늦게 태어나면 이미 잎에서 고약한 물질을 만들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종에 따라 위장술을 이용하는 식물도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전투의 극치는 대역습이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처럼 식물이 곤충을 공격하는 것이다.



늪이나 습지의 토양은 일반 토양에 비해 산소가 부족하고 공기의 유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유입되는 유기물은 많지만 이를 분해시키는 호기성 미생물, 즉 산소 호흡을 하는 미생물의 활동이 저조하여 유기 물질이 잘 썩지 않는다. 유기물의 분해는 식물의 필수 영양 물질인 질소 공급원이라는 점에서 볼 때, 질소가 부족한 이런 곳에 사는 식물은 만성적인 질소 부족으로 고통받기 일쑤다. 결국 일부 식물들은 부족한 질소 섭취를 위해 직접 곤충을 잡아먹는 실로 놀라운 방법을 택하게 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식충식물은 7백여 종이 있으며, 우리 나라에도 12종이 자란다.농부의 손길이 멈춘 논은 이내 쑥을 비롯한 잡풀들이 무성해지고 사람이 떠나 버린 집터에도 이내 쑥이 자라 오른다. 그다지 영광스런 비유가 아닌 '쑥밭'은 우리의 기후 풍토와 생태적 속성을 너무도 잘 함축하고 있는 말이다.



쑥은 국화과의 쑥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쑥은 뜯겨도 새순이 잘 돋고 흔히 무리를 이룬다. 또한 이파리가 잘게 갈라져 건조에 강하고 특히 온몸을 하얗게 덮고 있는 솜털은 과다한 증산 작용을 억제할 뿐 아니라 내한성을 높여 준다. 넓고 깊게 뻗는 뿌리는 땅 속의 세력을 장악하기에 충분하다. 많은 양의 종자 생산은 왕성한 번식력을 보장한다. 이는 쑥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세력을 형성하는 힘이 된다.



휴경지는 볕이 많이 들어 한낮에는 건조해지기 쉽다. 겨울에는 숲보다 일교차가 크며 특히 밤의 기온이 매우 낮은 곳이다. 쑥의 외형적 조건은 그러한 조건을 잘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우리 나라에서 쑥은 흔히 사람의 간섭이 심한 곳, 자연이 파괴된 곳에 나타나는 식물로 경작지의 확대와 더불어 증가했다고 한다. 지나칠 정도로 자신의 범위를 넓히는 쑥의 세력은 자칫 염려스러울 수 있지만 우리 나라와 같은 산림기후에서는 쉽게 뿌리내리지 못한다.



일시적으로 노출된 지역에서의 건조는 쑥과 같은 잡풀들이 채워지는 데 유리하지만 쑥의 자체적 생물량은 대기중의 수분을 고정시켜 점차 습한 환경으로 바꾸어간다. 또한, 쑥의 엄청난 사체는 토양을 비옥한 흙으로 변화시킨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쑥 자신에게는 불리한 환경이지만 억새나 고사리 같은 산림 초본이 들어오고 어디선가 소나무 씨가 이 지역을 진짜 숲으로 만들 토대를 잡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나무 숲은 온대 낙엽수림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바뀐다. 이러한 숲의 변화과정을 천이(遷移)라고 한다.



쑥은 이 과정에서 숲을 개척하는 식물군단이다. 우리에게 쑥밭이 없었다면 울창한 숲의 발달은 더디어졌을지도 모른다. 우리 나라에는 참으로 개척 정신이 강한 식물들이 많다. 우리 나라는 단위 면적 당 식물종 수가 많은 축에 속한다. 약 4,500종으로 영국의 고유 식물종 수가 불과 수백여 종이라는 것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많은 수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숲을 차지하는 종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숲의 생태계가 안정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이렇듯 복잡하게 얽힌 구조는 어느 한 곳에 조금만 틈이 생기더라도 주변의 것들로 금세 채워지고 만다.



몇 해 전 발생한 고성의 산불은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하지만 여의도 몇 배 규모의 면적이 시커멓게 타 죽음의 땅이 되어 버린 지금의 고성은 자연의 놀라운 치유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개척자 식물 군단의 위력을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다. 무엇보다도 반가운 것은 이제 막 씨앗의 껍질을 뚫고 나오는 소나무의 새순들이었다. 새순이 그곳에 자리잡기까지의 과정이 눈에 선하다. 열기로 터져 버린 솔방울에서 나온 작은 씨앗들이 부러진 등걸 속으로 내려앉는다.



숲을 이루는 나무들이 불에 타 하늘이 열리고 햇빛이 숲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햇빛은 열기로 물기에 부푼 씨앗을 따뜻하게 감싸준다. 드디어 깍지를 뚫고 가는 침엽의 다발로 소나무의 삶이 터진다. 부러진 등걸 속이라면 비가 와도 씻겨 나갈 염려가 없다. 이처럼 소나무의 원래 특성은 개척자 식물이었다. 소나무는 빛이 풍부하고 자유로운 곳에서 숲의 토양을 만들어 가는 개척종인 것이다.



같은 쑥이지만 미국의 쑥은 오히려 나무에 가깝다. 로키산맥의 한 자락인 와이오밍 주 일대의 초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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