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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알프레드 랜싱 지음 | 뜨인돌
오후 5시, 배를 탈출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대원들에게 명령 따윈 필요 없었다. 이미 '인듀어런스'호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려움이나 불안한 기색도 없었다. 지난 사흘 동안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결국 지고 만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패배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너무도 지쳐 있어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배는 파괴되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천만 톤의 얼음에서 가해지는 거대한 압력이 배의 양측을 조이고 있었고, 배는 죽어가면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개인 소지품을 챙긴 대원들은 며칠 전부터 준비한 보트에 오르고, 부대장 와일드와 매클린이 다시 배로 돌아가서 미처 챙기지 못한 물건들을 가지고 가까스로 임시 캠프에 도착했다.



마지막 대원이 떠나고 1시간 뒤, 얼음은 결국 배의 양쪽에 구멍을 내고 말았다. 처음에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길게 금이 갔고, 그 틈새가 벌어지면서 커다란 얼음 덩어리들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배의 중앙부가 물 속에 푹 잠기면서, 갑판실 오른쪽 뱃머리 전체가 얼음에 부딪혀 부서졌다.



임시캠프가 완전히 정리되자 대원들 몇몇이 한때 자신들의 보금자리였던, 그러나 지금은 처참히 버려진 배를 보러 갔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원들은 한동안 자신들의 처지도 잊은 채 추위와 피곤에 지쳐, 그리고 긴 악몽에서 깨어난 것에 안도하며 텐트에 모여 웅크리고 있었다.



배를 탈출하는 동안에도 짐과 개와 사람들이 모두 내릴 때까지 섀클턴 경은 멀찍이 서서 그 모습을 묵묵히, 절망적인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그토록 참담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상처 입은 배를 함께 떠나게 된 스물 일곱 명의 남자들은 그의 '남극 횡단 탐험대' 대원들이었다.



때는 1915년 10월 27일, 배의 이름은 '인듀어런스'호. 위치는 남위 69도 5부, 서경 51도 30부. 살얼음으로 덮인 남극 웨들해의 황무지 한복판, 사람이 살고 있는 가장 가까운 전초기지에서 약 1,900km 떨어진, 전초기지와 남극의 중간 지점이었다. 1914년 12월 5일 사우스 조지아를 떠난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 갈 무렵이었다. 배를 떠나서 거대한 부빙에 임시 텐트를 친 대원들은 섀클턴의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섀클턴에게는 이번이 세 번째 남극탐험이었다. 그는 남극을 동서로 횡단하는 것이 자신의 일생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라 생각했다. 이미 로버트 피어리가 미국팀을 이끌고 1909년 북극에 도달했고, 노르웨이 탐험가인 로알 아문젠이 영국 탐험가 스콧과 경주하여 먼저 남극점에 도착해서 세계의 이목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영국은 탐험가 스콧의 불의의 죽음으로 남아있는 단 한 명, 어니스트 섀클턴에 의해 구겨진 자존심을 되찾고 싶었던 것이다.



남극은 빙산과 부빙에 의해 죽음의 공포가 상존하는 지구의 변방이었지만, 모험과 도전을 즐기는 섀클턴에게는 흥미 있는 장소임에 틀림없었다. '남극 횡단 탐험대'가 돛을 올리고 항해를 시작했을 때 남극은 거대한 부빙들이 표류하며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엄청난 두려움을 안은 채 충돌을 감행했다.



섀클턴 일행은 결국 커드해안 앞에서 거대한 부빙에 포위당하게 됐다. 그들은 인간의 힘이 얼마나 나약한 지를 깨달으며, 세 번에 걸친 무자비한 부빙 군의 공격에서 배를 버리고 밖으로 탈출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이제 대원들은 오션 캠프라고 불리는 2m 두께의 얼음 덩어리 위에 있었다. 그들은 557km 떨어진 폴렛 섬을 향해 행군할 예정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곳에는 1902년 섀클턴 경이 남극탐험대원들 중 조난자, 낙오자들을 위해 준비해 둔 필수품이 있었는데, 그것들이 바로 자신에게 절실하게 필요하게 될 줄은 몰랐다. 배를 탈출하기 전 며칠간의 끔찍한 작업과 불안감에 비하면 이제 대원들은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섀클턴은 전 대원을 불러, 텐트 안에 둘러 앉혔다. 그의 표정은 무거웠고, 짐을 최소한 가볍게 줄여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섀클턴은 결의에 찬 목소리로 그들의 생존에 지장을 주는 물건은 아무 것도 쓸모가 없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물건들이 눈 위에 산더미처럼 쌓였고 출발은 다음날 아침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출발하기 전날 밤 섀클턴은 일기에 "전 대원을 전초기지까지 무사히 인도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적었다.



부빙 군이 단단해져 썰매로 건너는 것이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희망이었으나, 남극의 여름은 그들의 기대를 무산시켰고 질퍽거리는 얼음 늪을 통과한다는 것은 힘들고도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두 번째 가능성은 부빙 군의 흐름이 육지 쪽으로 가다가 멈춰 선다면 보트를 이용해 건널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은 최악의 가능성인데 겨울이 끝날 때까지 얼음 위에서 지내는 것이다. 이 모든 가능성이 여름의 정점인 1월이면 판가름나게 될 것이다.



인듀어런스 호가 완전히 얼음 속으로 사라진 지 한달 후 대원들은 얼음 위의 상황에 익숙해져 있었다. 물개사냥도 능숙해지고 면도를 하지 않은 얼굴들은 지구상의 가장 남쪽에 버려진 표류자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들은 낙관적이었고 언제나 쾌활했다. 섀클턴은 서쪽으로 320km지점에 육지가 있으니 가능하다면 서쪽으로 가서 얼음이 단단히 얼 때까지 기다렸다가 기회를 봐서 행군을 하자고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계획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답사 팀은 오전 9시에 출발하여 10km 정도 갔다가 오후 3시에 돌아왔다. 답사 팀으로부터 긍정적인 보고를 받은 섀클턴은 5시에 전대원을 불러모아 "서쪽으로 갈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36시간 뒤인 12월 23일 새벽에 출발할 것이다. 기온이 떨어져 얼음 표면이 단단해지는 밤에만 이동할 것이다. 크리스마스에는 이미 여행중일 테니 떠나기 전에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고, 이틀 동안 먹고 싶은 음식을 실컷 먹자. 어차피 엄청난 양의 음식을 남겨 두고 가야 할 테니까."라고 발표했다.



섀클턴은 그들이 머물렀던 오션캠프에 메모지가 들어 있는 병을 하나 남겨 두었다. 메모지에는 "인듀어런스 호가 남위 69도...에서 난파되어 버려졌으며, 남극탐험대는 현재 남위 67도...위치에서 육지에 도달한다는 희망을 안고 얼음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진행중"이라고 적혀 있었다. 일시 1915년 12월 23일 서명은 어니스트 섀클턴, 메시지는 '이상 무'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자신들의 리더가 살아남을 수 있을 지 의심하고 있다고 해석할까 봐 대원들에게는 의도적으로 쪽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어스름한 빛 아래 초라한 행군 대열을 이끌고 섀클턴은 앞장을 섰다. 그 뒤로 개들이 끄는 일곱 대의 썰매, 취사도구를 실은 작은 썰매, 그리고 맨 마지막엔 열 일곱 명의 대원들이 워슬리의 지휘 아래 보트를 끌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단단해 보이는 얼음은 체중이 실리면 금새 깨져 버렸고 방수 부츠는 어느덧 질퍽거렸다.



4시간 동안 갈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는 고작 800m였다. 1시간의 휴식 뒤 다시 행군을 계속했고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1915년 12월 31일 대원들은 물길 속에 날카롭게 쪼개진 얼음 조각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거대한 십자형의 얼음벽에 가로막혔다. 절망한 섀클턴 일행은 편평하고 단단한 부빙이 있는 곳으로 다시 후퇴해야만 했다.닷새 동안 기진맥진하도록 힘겨운 행군을 마친 그들에게 이젠 할 일이 없어졌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에 떠올랐는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들의 무기력함에 대한 생각과 죽음에의 공포였다. 자신들만의 힘으로 이 곳을 빠져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제 모든 것은 부빙 군에 달려 있다는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최악의 조건에 놓여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대원들이 명랑해지려고 애를 썼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대원 한 명은 새해 첫날 일기에 "우리에게 어려운 시기가 시작되고 있다. 부빙이 열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깨진 얼음 진창으로는 보트를 띄울 수가 없다. 빨리 빠져나가지 않는다면 현재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가을에 썰매를 타고 폴렛 섬까지 간다고 해도 그곳에 비축된 식량이 없다면, 우리는 어디서 우리와 개가 먹을 것을 구한단 말인가? 겨울에는 물개도 나타나지 않을 텐데, 그렇게 되면 우리는 구조선이 도착하기 전에 굶어 죽고 말 것이다."라고 적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대부분의 대원들은 희망을 버리기 시작했다. 부빙 군에서는 아무 변화도 읽을 수 없었다. 캠프에는 체념의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대원들은 적당히 분주했다. 새로 옮긴 캠프에는 사냥감이 풍부했고, 대원들은 물개를 사냥하고 그것들을 썰매에 실어 캠프로 나르느라 바빴다. 어느 날 섀클턴은 2명의 대원에게 오션캠프로 돌아가서 쓸 만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가져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오션캠프까지 19km의 왕복여행을 하면서 그들은 얼음이 예전과 다르게 촘촘해진 것을 발견했다. 희망적인 나날은 끝이 났고, 이젠 앉아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북서풍이나 북풍을 기다리며 식량을 절약하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청어통조림 한 꾸러미와 소고기 조미료 30g, 담배와 잡동사니들은 대원들에게 잠시나마 화젯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아무 일도 없이 무미건조하게 지나갔다.



대원중 한 명은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바람 착란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 병은 두 가지 증세로 나타난다. 첫째는 바람의 방향에 관해 지나치게 민감해져서 내내 바람 얘기만 하거나, 아니면 이 병에 걸린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일종의 정신착란을 일으킨다. 두 번째 증세의 특징은 늘 귀를 곤두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난 이 두 가지 증세를 다 가지고 있다."



남풍이 불어온 지도 한 달이 지났다 전반적인 방향은 북서쪽이었지만 매일 반복되는 표류는 변덕스럽고 짐작할 수가 없어서 어떤 때는 동서남북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3월 9일, 대원들은 물결이 이는 것을 느꼈다. 틀림없는 바닷물의 출렁거림이었다. 이번에는 환상이 아니었다. 대원들은 흥분했고 가슴 저편에 묻어 두었던 희망이 얼굴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식량이 떨어질만 하면 물개와 바다표범이 나타났고, 어쨌든 목숨은 유지하고 있었다.



빙산에 포위되어 두 번씩이나 섬을 지나쳤으나 보트를 띄울 수 있는 수로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섀클턴은 북쪽의 거대한 빙산이 클래런스 섬이라고 추측했다. 만일 저 섬을 지나친다면 대원들은 막막한 남극 해에 표류하다가 언젠가는 모두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1916년 4월 9일. 밤새 부딪혔다가 또 멀어졌다가 하기를 수십 차례, 마침내 그들 앞에 수로가 열리기 시작했다. 12시 40분, 섀클턴은 차분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보트를 띄워."처음에는 무척 힘이 들었다. 미칠 것만 같았다. 대원들 모두 최선을 다 했지만 노를 저어 본 경험이 부족했던 탓에 서툴기 짝이 없었고, 너무도 신경을 쓴 나머지 행동이 부자연스러웠다. 주위를 에워싼 얼음이 노에 휘감겼고 얼음과의 충돌 또한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각 보트가 지날 때마다 얼음의 사슬이 저절로 풀리는 것 같았다.



잔뜩 찌푸린 하늘은 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새똥이 보트 위로 마치 빗물처럼 후드득 쏟아지는 바람에 대원들은 고개를 잔뜩 수그린 채 노를 저어야 했다. 고래들은 사방에서 불쑥불쑥 올라왔고 가끔은 너무 가까이 다가와 대원들을 놀라게 했다. 노를 잡은 대원들이 거센 조류에 부딪혀 체력이 급속히 떨어지면 새 대원들이 노를 잡았다. 마침 남동쪽으로 선회한 바람이 배의 뒤쪽에서 불어온 덕분에 배가 쉽사리 전진할 수 있었다.



대원들은 윌스 호에 8명, 더커 호에 9명, 그리고 커드호에 11명으로 나누어 힘차게 노를 젓고 있었다. 5시가 지나자 해가 지기 시작했고 200여m 너머에 있는 두텁고 편평한 부빙에 텐트를 치기 위해 접근했다. 그러나 그날 밤 대원들은 편안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계속되는 균열 때문에 바다에 빠진 대원을 얼음 틈 사이에서 건져 올려야 했고 소지품들이 바다 속으로 사라지기 일쑤였다.



대원들은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보트에 올라야 했다. 항해중 심한 눈보라가 몰아치면 보트를 벽 삼아 잠시 쉬고, 다시 전진하기를 계속했다. 섀클턴이 커드호를 더커호 옆으로 바짝 갖다댔을 때 워슬리는 그에게 위치를 보여 주었다. 남위 62도 15부, 서경 53도 7부였다. 사흘 전 보트를 띄워 출발했을 때보다 오히려 35km나 더 멀어진 것이었다.



그들은 강한 동풍에 밀려 계속 서쪽으로 항해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소식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몇몇 대원들은 아예 믿으려 하질 않았다. 도저히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워슬리가 뭔가 착각을 일으켰던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건 아니었다. 섀클턴은 세 번째로 그들의 목적지가 바뀌었음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조인빌 섬을 지나 파머 반도 끝단에서 109km 떨어진 호프만이었다.



오후 늦게부터 북서풍이 점차 강하게 불어왔고, 보트들은 흩어져 있는 얼음과 맞닥뜨렸다. 부빙은 이제 더 이상 그들의 피난처가 아니었다. 잠도 자지 않은 채 꼬박 이틀을 달렸다. 대원들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란 부둥켜안는 것이 고작이었다. 날씨는 살을 에일 만큼 추웠다. 대원들이 입고 있는 옷은 딱딱하게 얼어붙어 바삭바삭 소리를 냈고, 얼음은 물결이 일어날 때마다 쇳소리를 냈다.



동상에 걸려 발이 썩고 있는 블랙보로에게 섀클턴이 외쳤다 "내일은 엘리펀트섬에 도착한다. 거긴 사람의 발이 한 번도 닿지 않은 곳이야. 네가 최초로 상륙하게 될 거야." 블랙보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1916년 4월 15일 그들은 모두 육지에 도착했다. 그것은 단지 폭 30m에 길이 15m의 좁은 땅에 불과했다. 하지만 어쨌든 육지에 올라와 있었다. 497일 만에 처음으로 육지를 밟은 것이다. 단단하고 가라앉지도 않으며 움직이지도 않는 축복의 땅을.대원들은 땅바닥을 발로 질질 끌며 이리저리 비틀거리다가 허리를 굽혀 한 손 가득 돌멩이를 집어들기도 하며, 땅의 견고함을 느끼기 위해 땅바닥에 일자로 눕기도 했다. 몇몇 대원들은 몸을 덜덜 떨면서 영문도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며 앉아 있기도 했다. 바로 그때 해가 나왔다. 햇볕에 비친 그들의 얼굴은 피로와 동상으로 인해, 그리고 끊임없이 바닷물에 젖어 있던 탓에 시체처럼 창백했다. 두 눈은 움푹 패여 마치 얼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따뜻한 우유 한잔은 얼어있던 피들을 한꺼번에 일으켜 온몸을 돌게 했고, 그 날은 온 종일 먹고 자고 또 먹고 또 잤다. 다음날 섀클턴은 해변 끝에 있는 벼랑이 높은 조수와 폭풍으로 인해 망가진 흔적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이따금 벼랑 전체가 완전히 물에 잠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섀클턴은 대원들에게 텐트를 걷어 뭍 쪽으로 더 깊숙이 옮기도록 지시했고, 비상식량도 갑작스러운 폭우에 대비해 더 높이 쌓아 올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은 엘리펀트 섬에게 속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 앞에 드러난 섬의 진짜 얼굴은 실로 험악한 것이었다. 섬 안쪽은 바위투성이의 곶으로서 거대한 빙하가 마치 혀를 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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