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무 과수원
황헌식 지음 | 청년정신
창녀와 철학자1인간은 철저히 혼자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젊은 철학자가 있었다. 그 누구도 자기의 실존적 고독을 근본적으로 해소해 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그는 독신으로 살아 왔다. 그런데 그에게 주체하기 어려운 고통이 있었는데, 넘치는 성적 욕구를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문제였다. 그는 가장 떳떳하게 이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가끔 사창가를 찾았다. 어느 날 성관계를 끝낸 창녀와 철학자가 오랫동안 말없이 누워 있었는데, 창녀가 먼저 침묵을 깨며 철학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지금 무슨 생각하고 계셨어요." 철학자가 천천히 대답했다. "삶의 허무를 생각하고 있었지... 그런데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 창녀는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오늘 하루 동안 얼마를 벌었는가 계산하고 있었어요."
'인생은 고독하다... 허무하다...'는 생각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하다. 하루 의 삶을 걱정하고 한 달의 생계를 염려하는 사람들에겐 인생길 저 멀리에 있는 허무의 수 평선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창녀는, 철학자와는 또 다른 방법으로 허무의 바다를 건너 고 있었다.
쳇바퀴 속의 다람쥐는 왜 뛸까?소년에게 잡혀온 다람쥐가 쳇바퀴 속에 처음 갇혔을 때, 그는 산으로 돌아가기 위해 쳇바퀴 속을 계속 뛰었다. 이를 보고 있던 개가 물었다. "왜 그렇게 계속해서 뛰지?" 다람쥐가 대답했다. "자유를 위해서야. 나는 자유롭게 뛰놀던 그 산으로 돌아갈 거야." 개는 아무리 뛰어도 제자리걸음일 뿐이라는 것을 다람쥐에게 알려주었다. 그 사실을 안 다음부터 다람쥐는 더 이상 뛰지 않았다. 소년은 화가 나서 며칠 동안 다람쥐에게 먹이를 주지 않았다. 다람쥐는 배고픔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다시 쳇바퀴 속을 뛰었다. 개가 다시 다람쥐에게 물었다. "왜 다시 뛰는 거지?" 다람쥐가 대답했다. "생존을 위해서야. 뛰지 않으면 먹을 것을 얻을 수 없거든." 배를 채운 다람쥐는 더 이상 뛸 필요가 없어 다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소년은 또 애를 태웠다. 한참 동안 죽은 듯이 앉아 있던 다람쥐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자기가 살아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는 것 같았다.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이 좁은 쳇바퀴 안에서, 자기가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은 뛰는 일 외엔 어떤 방법도 없었다. 그래서 다람쥐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개가 다시 다람쥐에게 묻자 다람쥐가 대답했다. "내 존재의 확인을 위해서야."
인간의 실존은 어쩌면, 쳇바퀴 속의 다람쥐와도 같다. 인간은 행동의 멍에를 진 존재이 다. 어떤 경우는 자유를 위해, 어떤 경우는 생존을 위해, 어떤 경우는 존재의 확인을 위 해 살아 있는 한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두 개의 십자가형제 크리스찬이 있었다. 형의 신앙은 광신적이고 고행의 연속이었으며, 동생의 신앙은 평범했다. 형은 잠자는 시간외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교회나 부흥회가 열리는 곳에서 보냈다. 그는 생업이 없었다. 그에게는 최소한의 경제적 물질만이 필요했기 때문에 육신을 위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주로 교회나 기도원에서 잤으므로 주거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먹을 때보다 금식할 때가 많으니 끼니 때우는 문제도 그리 심각한 것은 못 되었다. 옷이야 가끔 갈아입으면 되니 매일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매년 아주 중요하고 힘든 신앙행사가 있었다. 형은 해마다 부활절이 오면, 예수 그리스도가 겪은 십자가의 고난을 그대로 재현했다. 그는 나무로 만든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마을 뒷산 위에 올라가 스스로 그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혔다. 손바닥과 발바닥에 날카로운 못을 박으면 그는 고통을 못 이겨 "주여...주여...구원해 주소서..."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는 이 고통에서 그리스도의 아픔에 동참하는 엑스터시(ecstasy)를 맛보았다. 그에겐 이제 이 체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그 다음은 동생의 차례였다. 유혈이 낭자한 형을 업고 산을 내려와 병원에 입원시키는 일은 십자가를 지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형제는 함께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형이 완치되어 퇴원하는 데는 꼬박 2개월이 걸렸다. 간호와 치료비는 언제나 동생의 몫이었다. 그리고 형은 다시 다음 해의 십자가 고행을 무사히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철야기도와 금식기도를 시작했고, 동생은 형의 다음 입원비를 벌기 위해 철야 연장근무와 금식을 시작했다.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 르라."고 했다. 형이 짊어졌던 보이는 십자가와 동생이 짊어진 보이지 않는 십자가 중 어 떤 것이 참 십자가일까?
민족주의도시 한복판에서 청년 십여 명이 패싸움을 하고 있었다. 치고 받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육탄전을 벌였지만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양쪽 모두가 지쳐 내심 싸움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어느 편도 먼저 휴전을 제의할 수 없었다. 이때 길을 가던 서너 명의 외국인이 신기한 듯 잠시 구경꾼 사이에 끼여 싸움을 지켜봤다. 그러자 싸움하던 패거리 중 한 청년이 나서며 시비를 걸었다. "이 짜식들아, 싸움하는 거 처음 봐!" 그는 갑자기 그 외국인들에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고, 외국인들은 불의의 폭력에 대항하여 방어태세를 취했다. 그러자 청년이 소리쳤다. "야, 이 양코배기들! 오늘 잘 만났다. 다들 뭐 하는 거야"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서로 싸우던 두 패거리가 하나가 되어 외국인들을 쓰러뜨린 다음 무참히 짓밟았다. 외국인들은 저항다운 저항 한 번 못한 채 피투성이가 되어 늘어졌다. 피를 본 청년들은 승리감에 젖어, 언제 싸웠냐는 듯 악수를 나누며 유유히 사라졌다.
역사를 보면, 민족주의는 너무나 자주 타민족에 대한 이유 없는 적개심을 통해 내부를 통 합해 왔다.
위대한 착각카리스마적인 이미지를 가진 국회의원과 재벌 총수와 목사가 호텔 레스토랑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목사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 교회 교인이 1만 명인데, 내 말 한 마디면 무조건 '아멘' 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목사야말로 존경받는 지도자가 아니겠습니까." 재벌 총수 역시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 회사 종업원이 3만 명인데, 내 말 한 마디면 전직원이 기계처럼 움직여 주지요. 재벌이야말로 사람과 돈을 함께 가진 지도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정치인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가 지난 선거에서 받은 지지표가 5만 아닙니까. 그러니 나에겐 자발적으로 열렬히 나를 따르는 5만 명의 추종자가 있지요. 국회의원이야말로 권력과 추종자를 함께 가진 지도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나서 그들은 통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위대한 지도자란 점에서 닮은꼴이군요."
10년 후 세 사람은 도시 변두리의 허름한 다방에서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목사가 하소연했다. "병이 나서 드러누운 지 1년도 채 안 되었는데, 교인들이 나를 강단에서 밀어내더라구요. 그들은 나를 존경해서 모인 것이 아니라 자기네 종교적 필요성 때문에 모인 것에 불과하더군요." 재벌이 하소연했다. "회사가 망하자, 사원들이 언제 보았냐는 듯 임금 내놓으라고 소리소리 지르더군요. 사원들은 나에게 복종한 것이 아니라 내 돈에 복종한 것에 불과하더군요." 정치인이 말했다. "선거에서 떨어지고 나니 주민들이 나를 불쌍한 거지 대하듯 하더라구요. 그들은 나를 존경한 것이 아니라 휴지에 낙서하는 기분으로 내게 한 표 찍어준 데 불과하더군요." 그러고 나서 그들은 쓸쓸히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위대한 착각 속에 살아왔다는 점에서 닮은꼴이군요."
진정한 인간이란 위대한 지배가 아니라 참다운 만남에서 비롯된다. 자기가 타인을 지배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한, 그는 참다운 사람과 만날 수 없다.
왜 사느냐고 묻거든할아버지가 열 살 된 손자아이를 아랫마을 작은할아버지 집에 심부름을 보냈다. 아이는 심부름을 가다가 개미집을 발견하고 재미있게 구경하다가 뽕나무에 달린 까만 오디를 맛있게 따먹었다. 다시 길을 가다가 돌다리가 놓인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물고기를 잡느라 흠뻑 젖은 바지를 바위에 널어 말렸다. 그러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무릎에서 피가 나자 풀숲에 앉아 고운 흙을 상처에 발랐다.
해질 무렵에야 아이는 작은할아버지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아니, 네가 이 먼 길을 어떻게 왔느냐?" 작은할아버지는 무척 반가워하며 물었다. "할아버지 심부름을 왔습니다." "그래, 무슨 심부름이냐?" "..." 아이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기가 무슨 심부름으로 여기에 왔는지 생각이 안 났다. 오는 사이 잊어버린 것이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아이는 울상이 되었다. 작은할아버지는 아이의 등을 다독거리며 말했다. "얘야, 나는 너보다 더 먼 길을 왔는데, 왜 여기까지 왔는지 아직도 생각이 나지 않는단다."
사람은, 그가 살아온 기쁘거나 슬픈 순간을 오래도록 잊지 못한다. 그러나 왜 사는지는 이미 잊은 지 오래다. 현대인은 이제 더 이상 왜 사느냐고 물으려 하지조차 않는다.
팬터마임전위예술가, 화가, 연예담당 기자가 팬터마임을 구경하러 갔다. 막이 오르자, 젊은 미녀와 추남이 무대 가운데서 우산을 쓰고 서 있었다. 잠시 후, 한 미남 청년이 그녀에게 다가가서 귀엣말을 주고받더니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우산 속으로 다정히 들어섰다. 그리고는 셋이 함께 한 우산을 함께 쓰고 다정하게 무대 뒤로 사라졌다. 막이 내리자, 전위예술가가 말했다. "저것은 한 여자와 두 남자 사이에 복수 성관계(혼음)를 표현한 것 같은데." 화가가 말했다. "아니야, 여자는 화가이고 두 남자는 모델인 것 같애. 미남과 추남의 극명한 대비는 아주 좋은 작품이 될 거야." 그러자 연예기자가 말했다. "그게 아닐 거야. 미녀는 유명한 영화배우이고 미남은 매니저, 추남은 보디가드일 거야."
인간사는 팬터마임과 같다. 사람들은 각자 직업의 안경, 지식의 안경, 문화의 안경, 인종 의 안경, 성(性)의 안경...등을 쓰고 자기 방식으로 세상을 본다.
가장무도회이 도시에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재미있는 축제가 있다. 매년 5월 1일 온 도시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이상한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와 함께 어울려 춤추고 노래하며 대화를 즐긴다. 이 날을 가장 즐겁게 즐기는 방법은 어떻게 하면 서로가 서로를 못 알아보게 철저히 가면을 쓰느냐에 달려 있다. 5년 동안 혼자서 외롭게 살아 온 여인이 있었다. 이 여인은 누구보다도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 숨기고 억제해 왔던 자기의 감정을 숨김없이 발산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가면축제의 날이 돌아왔다. 여인은 새 가면을 쓰고 새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가 춤추고 소리치며 자유로움을 즐겼다. 가면을 쓰니 모두가 새롭고, 친근했다.
여인은 한 남자를 만나 춤을 추었다. 그는 춤 솜씨가 좋았다. 그의 가슴은 포근했고, 허리를 감은 팔은 부드러웠으며, 체취는 향기로웠다. 두 사람은 춤을 추다 지쳐 벤치에 나란히 앉아 담소를 즐겼다. 그들은 이성에 대해, 사랑에 대해, 결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로 이런 남자다. 이 사람이야말로 그녀가 찾고 있던 이상적인 남성이었다. 그녀는 참으로 오랜만에 그에게서 남성을 느꼈다. 그래서 난생 처음 남자에게 먼저 프로포즈를 했다. 가면축제 다음 날 저녁, 그들은 한 카페에서 가면을 벗고 다시 만났다. 그런데 그 남자는 5년 전에 이혼한 그녀의 남편이었다.
사람들은 같이 살면서도 서로의 참모습을 알지 못한다. 관습, 교양, 지식, 외모, 체면, 자존심, 눈치... 이런 숱한 가면 때문에 서로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는 게 아닐까?
노처녀돈과 미모와 학벌을 갖춘 노처녀가 있었다. 그녀는 그 동안 수도 없이 맞선을 봤으나 그 누구도 순수하게 그녀를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아 지금까지 혼자였다. 어떤 남자는 재물 때문에, 어떤 남자는 미모 때문에, 또 어떤 남자는 학벌 때문에 자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자 사랑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다 그녀는 조건 없이 자기를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어느 날 저녁 그녀는 촌스런 옷차림에 천박스런 화장을 하고,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번잡한 도시의 뒷골목을 헤매고 다녔다. 그녀의 모습 어디를 봐도 돈과 미모와 학벌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변신이었다.
밤 12시가 가까울 무렵 기분 좋을 만큼 술에 취한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아가씨, 나 당신이 좋소. 우리 사랑 한번 나눕시다." 그녀는 언제나 그러하듯 남자에게 물었다. "저의 어떤 면을 좋아하세요." 그러자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자체가 좋다는데, 뭐 그리 따지는 게 많소." '바로 이 남자다...' 생각하는 순간, 그녀는 온몸을 스치는 희열의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그 남자와 손을 잡고 호텔로 향했다. 그녀는 남자가 골아 떨어진 새벽에도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행복한 미래에 잠겼다. 그리고 그녀가 행복한 꿈을 꾸다 늦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의 머리맡엔 지폐 몇 장이 놓여 있었고 그 남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일수록 남을 많이 의심한다. 그들은 그 교활한 의심 때문에 많은 것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그 의심 때문에 인생에서 정말로 소중한 것을 잃는다.
경기와 룰평균신장 2미터가 넘는 미국의 유명한 농구팀이 친선경기를 위해 아프리카의 난쟁이 나라에 방문했다. 평균신장 1.45미터인 난쟁이 나라 팀은 최선을 다해 뛰었으나 경기는 미국 팀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경기가 끝나자 미국 팀은 한 수 가르쳐 주었다는 듯이 강자의 여유를 뽐내며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다음 날, 두 팀은 난쟁이 나라에서 인기 절정인 '신농구' 게임을 했다. '신농구' 게임이란 높은 나무의 나뭇가지 끝에 바구니를 달아 놓고, 선수들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 바구니에다 공을 넣는 게임이었다. 제한된 시간에 어느 팀이 더 많은 공을 넣느냐에 따라 승부를 가렸는데 난쟁이 선수들은 비호처럼 나무를 타고 올라가, 곡예를 하듯 흔들리는 가지 끝에 접근하여 공을 넣고는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들의 기량은 신기에 가까웠다. 그러나 미국 팀은 한 골도 넣을 수가 없었다. 나무를 오르는 것도 어려웠지만, 무거운 체중 때문에 도저히 가지 끝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나무 위에서 바구니를 향해 공을 던져 어쩌다 공이 바구니 안에 들어가도, 가지가 심하게 흔들려 공은 밖으로 흘러 내렸다. 경기가 끝나자 난쟁이 팀은 한 수 가르쳐 주었다는 강자의 여유를 뽐내며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은 자기가 절대적으로 잘나서 이겼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경쟁의 룰이 상대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해서 승리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한다.
홀로 의로운 청년아주 정직하고 성실한 청년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신문의 사원모집 광고를 보고 한 회사를 찾아가 일자리를 얻었다. 그가 배치된 곳은 총무부였는데, 그가 하는 일은 출퇴근 점검과 회사 내의 비품관리였다. 그는 매우 성실하여 단 하루도 지각하거나 결근하는 일이 없었고, 종이 한 장, 전화 한 통화도 결코 개인 일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사장과 회사 간부들로부터 늘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 그 회사는 무역회사 간판을 걸어 놓고 실제로는 폭력으로 사건을 해결해 주는 폭력청부회사였다. 청년도 곧 이 사실을 알았지만, 단 한 번도 폭력에 가담하지 않았으며, 그런 업무는 자기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매달 받는 월급의 일부를 어김없이 저축했고, 월급날이면 늙은 어머니와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아들을 위해 작지만 정성어린 선물을 사 들고 일찍 귀가했다. 그는 늘 자신의 정직함과 성실함에 보람을 느꼈고, 행복한 삶에 기쁨을 느꼈다. 그는 모범적인 샐러리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