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보보스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 동방미디어
보보들의 삶에서는 모든 것에 목적이 있다. 가장 동물적인 행위의 하나인 성행위조차도 이제는 학위가 높은 사람들이 만든 안내서, 비디오, 그리고 잡지 기사들에 버젓이 등장한다. 그들은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함께 공유한다. 보보들이 향유하는 향락도 마찬가지다.



성의 혁명은 부르주아의 억압적인 태도에 반항하는 낭만주의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보헤미안의 감각주의가 중산층의 전통을 조롱하며 싸운 전쟁에 대해 피터 게이는 "즐거운 전쟁(pleasure war)"이라고 불렀다. 보헤미안들은 까다롭고 엄격한 보봐리 부인을 비웃었다. 그들은 헨리 밀러의 충격적인 소설을 옹호했고 성적으로 도발적인 예술 작품들의 검열에 대항했다. 보헤미안의 반문화는 자유로운 삶과 즐거움이 있는 곳이었다.



"나는 혁명을 할수록 더 사랑을 한다." 과격파들은 그렇게 외쳤다. 60년대와 70년대의 누드는 그들에게 혁명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섹스와 마약과 로큰롤을 찬양하는 록 스타들은 정말로 과격해 보였다. 이와 같은 삶의 태도에는 낭만적인 논리가 깔려 있었다. 위대한 진실은 위대한 감각에서 나온다. 가장 멋진 삶은 열정적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이러한 해방 운동은 승전에 승전을 거듭했다. 이제 아이들에게 자기 발전의 수단으로 성적인 측면을 탐구하도록 권장하는 곳까지 있을 정도다. 금기들이 무너지고 있었다. 기존의 가족구조는 과거의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으며, 기존의 규범체계는 구석기 시대적인 것으로 비쳤고, 자기 절제는 위선적인 행동으로 여겨졌다. 그 자리에 성의 자유가 적어도 대중적인 토론의 장에서는 힘차게 전진했다.

그러나 오늘날 중상류층의 미국 사회를 보면 혼돈과 비도덕이 난무하고 있지는 않다. 특히 교육받은 계층의 주류 속으로 들어가면, 향락주의의 만연이나 퇴폐성의 징후를 찾기란 쉽지 않다. 흡연이 줄어들고 음주도 줄어들었으며 이혼율도 낮아졌다.



보보들은 부르주아의 자기 통제와 보헤미안의 해방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방식으로 새로운 사회적 규범을 만들었다. 보보들은 새로운 기준으로 가능한 즐거움과 불가능한 즐거움을 구분한다. 새로운 사회적 규범으로 감각을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규범을 가장 쉽게 보려면, 한여름에 공원에 가보면 된다. 여자들은 스포츠 브라와 몸에 착 달라붙는 타이츠를 착용한 채 조깅을 한다. 그러나 그들을 좀더 가까이 살펴보면 얼굴에 퇴폐적인 향락주의의 표정을 찾기가 어렵다. 누드에 가까운 모습이 에로틱한 효과가 있다 해도, 그것은 그들의 결연한 표정 때문에 상쇄된다. 그들은 근육을 튼튼하게 하려는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려 애쓰고 있다. 우리가 공원에서 보는 것은 반나체의 모습이지만 그와 같은 반나체는 일종의 성취를 위한 것이다. 그들은 쾌락의 신인 디오니소스와 근로의 신인 프로메테우스를 절묘하게 결합시켰다.미국의 변화"60년대"라는 말로 통칭되는 교육받은 계층의 반란은 다방면에 걸쳐 나타났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60년대의 문화적 진보주의는 성공에 대한 기존의 인식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기득권층의 파워를 무력화시키는 시도였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워스프의 생활양식과 도덕률에 근거하는 권위를 파괴하고, 영적 및 지적 이상을 추구하는 새로운 사회적 계율로 구 질서를 대체하려는 새로운 계층의 문화적 시도이기도 했다.



60년대의 진보주의자들은 보헤미안적인 자유분방한 자기 표현을 좋아했고, 이전 엘리트들의 무미건조한 자기 통제를 경멸했다. 1968년의 최대 흥행작 영화 "졸업"은 동부 연안의 명문 학교에서 성공적으로 학업을 마치고 캘리포니아의 백인 부자 동네로 막 돌아온 내성적 성격의 한 대학 졸업생에 관한 이야기로, 엄청난 문화적 격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그리고 눈앞에 돈이 있었다풍요로움의 걱정소비4년 반 동안 외국에 나가 있으면서 새로운 안목을 갖추고 미국으로 돌아온 후, 나는 일련의 희한한 현상에 직면했다. 가장 이상한 점은 과거의 기준들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20세기에는 부르주아의 자본주의 세상과 보헤미안의 반문화(counterculture)를 구분하는 것이 쉬운 일이었다. 부르주아는 진지하고 현실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전통과 중산층의 도덕을 옹호했다. 그들은 대기업에서 일하고, 교외 지역에 살고, 교회에 다녔다. 반면에 보헤미안은 전통을 비웃는 자유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술가와 지식인들로 히피족과 비트족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헤미안은 진보적인 1960년대의 가치를 옹호했고 부르주아는 1980년대의 기업 중심적인 여피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돌아온 미국은 보헤미안과 부르주아가 한데 뒤섞여 있었다. 이제는 에스프레소를 홀짝이며 마시는 예술가와 카푸치노를 껄떡대며 마시는 은행가를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어도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저항적인 태도와 세속적인 성공의 태도 모두를 함께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기대에 어긋나고 논리에도 어긋나면서, 반문화적인 60년대의 가치와 성취적인 80년대의 가치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것 같았다.



나는 이것이 정보화 시대의 문화적 현상임을 확신한다. 이 시대에 아이디어와 지식은 천연 자원과 금융 자본 못지 않게 경제적 성공에 필수적이다. 정보의 비가시적 세상이 돈의 가시적인 세상과 합쳐짐으로써 그 둘을 결합하는 새로운 구호(이를테면 '지적 자본'이나 '문화 산업')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따라서 이 시대에 번창하는 사람들은 아이디어와 감정을 제품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교육을 많이 받았으며 한 발은 창의성의 보헤미안 세상에 있고 다른 한 발은 야망과 세속적 성공의 부르주아 영토에 있다. 이들은 새로운 정보 시대의 엘리트 계급으로 '부르주아 보헤미안(Bourgeois Bohemian)'이다. 혹은 양쪽 단어의 첫 두 글자를 따서 말하자면, "보보(Bobo)들이다.1950년대 「뉴욕 타임스」의 웨딩 섹션은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당시의 결혼식 기사에는 직업이나 학위 같은 것은 강조되지 않았다. 신랑의 직업도 가끔 가다 소개되는 정도였고, 신부의 직업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그 대신 가문과 연줄을 강조했다. 선조들의 이름이 거명되었고 신랑측과 신부측의 들러리들이 소개되었다. 출신대학과 함께 출신 사립 학교가 거의 예외 없이 언급되었다. 즉, 당시 「뉴욕 타임스」 웨딩 섹션은 극히 한정된 그룹들만의 세계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달라졌다. 혈통에 의거하던 시대에서 재능과 사교성이 엘리트 계급에 속하는 요소로 꼽히는 시대로 변했다. 오늘날 「뉴욕 타임스」 웨딩 섹션을 보면 MBA가 Ph D와 결혼하고, 폴브라이트 장학생이 로즈 장학생과 결혼하는 식이다. 과거에 비해 혈통을 그다지 따지지 않는다. 오늘날 신문은 지면에 실리는 인물의 출신대학, 대학원학위, 사회경력 그리고 부모의 직업을 강조한다. 바로 이 네 가지가 오늘날 미국의 상류 사회 계급을 특징 짓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50년대 미국의 워스프(WASP: 백인 앵글로 섹슨 종족의 신교도들) 엘리트는 지식인에 대한 반감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들은 종종 "많이 배운 양반(highbrow)" 같은 단어를 써서 정중한 경멸감을 표시했다. 그들은 또한 기득권 계층으로 여전히 반유태주의, 인종주의, 성차별, 그 밖의 좋은 가문 출신이 아닌 사람들의 진입을 막는 수많은 울타리를 쳐놓고 있었다.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지성이 아니라 '동물적인 매력과 돈'에서 나왔다. 재산에 대해 비교적 단순한 태도를 보인 그들은 탐욕은 저속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대체로 검소하게 사는 편이었다. 대부분의 엘리트 지위를 당연하게 여기면서 그러한 지위는 우주의 자연스런 질서라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 귀족의 지위에 맞추어 살려고 했던 그들은 의무와 복무, 그리고 명예를 신봉했고, 그것들을 행동으로 옮기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렇다 할 사회적인 논란이나 공개 토론 없이, 대학입학위원회에 의해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입학 담당자들은 워스프 기득권 계층을 무너뜨려 버렸다. 하버드 대학의 경우가 그러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1952년도 하버드 신입생들의 대부분은 「뉴욕 타임스」의 웨딩 섹션에 소개되는 워스프 엘리트 계층의 자식들로 명문 사립 고등학교를 나온 그들 가운데 2/3가 입학을 허가받았다. 아버지가 하버드 출신인 지원자들은 90%의 진학률을 보였다. 그러나 하버드대의 SAT(대학입학자격시험) 점수가 올라가면서 1960년도 신입생들은 훨씬 더 넓은 사회 경제적 출신으로 구성되었다. 바야흐로 하버드는 주로 북동부의 사회적 엘리트를 위한 학교에서 전국의 영리한 학생들을 받아들이는 학교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변신에 거의 모든 엘리트 학교들이 뒤를 이었다.

이렇게 해서 대학의 문은 혈연보다 재능에 바탕을 두고 활짝 열렸고, 불과 몇 년 만에 대학의 상황은 크게 변했다. 하버드는 이제 출신이 좋은 사람들을 위한 학교에서 두뇌가 뛰어난 젊은이들을 위한 학교로 변신했다. 다른 명문 대학들도 유대인 쿼터를 없앴고, 여성들에 대한 제한을 철폐함으로서 여대생의 수도 증가했다. 무엇보다 교육받은 인구 자체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1960년에 대학 교수의 수는 235,000명이었는데 1980년대에 가서 그 수가 685,000으로 늘어난 것은 대학의 외형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도 좋은 인재를 내보냄으로써 사회에 대한 학교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예전 워스프 출신의 평범한 젊은이들 대신 가문은 좋지 않아도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재능이 뛰어난 젊은이들은 야심과 함께 자신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기득권 계층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상류층 미국문화에 대한 혁명을 잉태하고 있었다.캐서린 로스가 배역을 맡은 엘레인은 산타바바라에 있는 신식 장로교 교회에서 서둘러 준 비된, 그렇지만 전통적인 스타일의 결혼식을 치를 예정이었다. 신랑은 전형적인 워스프 출신의 금발머리 의사였다. 우리는 그의 프로포즈에서 한눈에 그가 구시대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멋진 팀이 될 것이오."



결혼식이 끝나갈 즈음 교회 안으로 뛰어들어온 벤은 발코니에서 엘레인의 이름을 부른다. 엘레인의 어머니인 로빈슨 부인이 낮게 속삭인다. "이제는 너무 늦었어." 하지만 엘리인 은 "나에게는 아니야." 하고 말하고는 벤과 함께 가족과 군중을 제치고 밖으로 뛰어나와 버스에 올라탄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 떠나가는 그들을 지켜보면 기본 좋은 표정에서 우울한 표정으로 그리 고 마침내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바뀐다. 일정하게 정해진 워스프(WASP)식 성공에서는 탈 출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음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오늘날 지식인들이 돈과 대중 문화의 유혹에서 자신을 단절시켜야 한다는 믿음은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 정보 시대의 문화적 요인들이 스스로를 일종의 예술가나 지식인으로 생각하는 사업가들을 만들어낸 것처럼 오늘날 지식인들은 좀더 사업가적인 특성을 갖게 되었다. 이제 '아이디어 시장', '지적재산', '관심경제' 같은 말을 사용해 정신의 영역을 시장의 영역과 결합시켰다. 지식인들은 자신의 직업을 다른 방식으로 보고 있다. 한때는 남들과 거리를 두었던 그들은 이제 교육받은 계층과 어울리면서 새로운 보보 시대에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이 되고 있다.



1950년대를 기준으로, 지식인에게 가장 큰 위협은 돈의 유혹이었다. 상업화는 예술의 적이었다. 노먼 메일러는 『벌거숭이와 죽은 자』가 베스트셀러가 되자 친구 지식인들 사이에서 많은 불화를 겪었다. 상업적으로 성공했다는 것은 그 소설에 뭔가 잘못이 있다는 분명한 증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지식인들은 상업적인 문화는 저속한 금전적 유혹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봤다. 왜냐하면 그것은 중급 문화(대중적이지만 다소 격이 있는 저술, 미술, 음악)로 위장한 트로이 목마의 형태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1950년대의 고급 지식인들은 숨이 넘어갈 정도로 중급 문화를 공격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그보다 수십 년 전에 똑같은 전쟁을 치르면서 중급을 가리켜 "백해무익한 해충"이라고 맹렬하게 비난한 바 있다.지식인 사업가즐거움이전의 미국의 많은 세대들과 마찬가지로 60년대 졸업생들의 가치 체제에서도 핵심은 "성취"에 있었다. 어쨌든 그들은 실력 있는 세대였기 때문에, 성취를 기준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도시를 벗어나 작은 공동체에서 꽃과 돼지를 키우거나 사색을 하면서 지내지 않았다. 더욱이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엄청난 부가 눈앞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처음에 베이비붐 세대 대학 졸업생들의 막대한 인력이 노동 시장에 진입했을 때, 대학 졸업장은 재정적 보상이나 삶의 극적인 변화를 거의 보장해주지 못했다. 그러나 곧 정보화 시대가 시작되었고 그에 따라 교육에 대한 보상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정보 시대는 완전히 새로운 직업군을 창출해 냈는데, 그중 일부는 정말로 웃기는 것들로 봉급만 보고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이를테면 창의성 담당자, 최고 지식 관리자 등이다. 정보화 시대의 경제는 올리버 스톤 같은 괴짜들이 억만장자 갑부가 되고, 빌 게이츠 같은 대학 중퇴생이 세상을 좌우하는 그런 경제를 형성했다.



정보화 시대는 기본적으로 교육에 대해 보상해 주었고, 교육받은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 사이의 소득 격차를 확대시켰다. 더욱이 이제는 중상류층이 중산층의 작은 일부에서 높은 학위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는 뚜렷한 인구 특성 그룹으로 성장했다. 앞으로 몇 년만 있으면 심각한 경제 불황이 없는 한 미국에서 연 수입이 100,000달러 이상인 가구 수가 1,000만에 달할 것이다. 이것은 1982년의 200만 가구에 비하면 크게 증가한 것이다.



교육받은 엘리트는 전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뿐만 아니라 엄청난 책임과 권한이 따르는 자리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과거 워스프들이 차지했던 부분과 과거 근로 계층이 담담했던 직업들까지 넘겨받았기 때문이다. 이제 워싱턴의 기자 회견장에 등장하는 기자들은 대부분 예일, 스탠퍼드, 그리고 하버드 출신들이다. 전에는 이민 출신의 괴짜들이 좌우하던 정당들도 이제는 박사 학위를 보유한 커뮤니케이션 분석가들이 지배하고 있다. 훌륭한 부모를 가진 멍청한 표정의 사람들 대신 끈 없는 구두를 신은 영리하고, 야심 있고, 교육받고, 성취욕이 넘치는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이후 30년 동안 교육받은 계층은 승리에 승리를 거듭했다. 그들은 과거 워스프 엘리트의 문화를 거의 완전히 몰아냈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기술을 푸짐하게 보상해 주는 경제에서 계속적으로 번창했다. 그래서 이제는 그들이 한때 비판했던 바로 그 기관들의 윗자리까지 모두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까다로운 문제를 초래했다. 사다리의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는 동안에도 그들이 아직도 경멸감을 감추지 않는 기존의 대상들과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즉, 자신들의 풍요로움과 자존심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자신들의 성공적 영적인 측면, 엘리트란 지위와 박애주의의 이상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그들은 엘리트에 반대하면서 자란 엘리트들이다. 그들은 풍요로우면서도 물질주의에 반대한다. 그들은 무언가를 팔면서 삶을 영위할 수도 있지만 자신들이 팔리는 것은 싫어한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반기득권적이지만, 이제는 자신들이 새로운 기득권 계층이 되었음을 감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고민은, 다소 거창하게 말하면 세속적인 성공과 내적인 덕목 사이의 갈등이다. 야망 때문에 영혼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