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이리의 교사론
파울로 프레이리 지음 | 아침이슬
프레이리의 교사론
- 면접에서 반드시 묻는 질문 180가지! -
파울로 프레이리 지음 교육문화연구회 옮김
아침이슬/2000년 9월/239쪽/10,000원
1. 교육자로서 산다는 것
교육학의 함정
『프레이리의 교사론: 기꺼이 가르치려는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이 책의 제목은 일종의 선언입니다. 제목이 함축적이고 간략해서 제목만으로 어느 정도는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여기서 나의 의도는 학습자이기도 한 교사의 과업이 즐거운 일인 동시에 엄중한 일임을 입증하는 것이라는 말로 확대할 수도 있습니다. 교사의 과업은 진지함과 과학적, 육체적, 정서적, 감성적인 준비를 요구합니다.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사랑은 물론이고 가르치는 일에 포함된 과정에 대한 사랑도 개발해야 합니다. 가르치는 일은 사랑할 용기가 없다면, 포기하기 전에 수천 번 시도해보는 용기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기꺼이 가르치려는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를 붙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어리석고 감상적이라거나 비과학적이라는 말을 듣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용감하게 사랑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온몸으로 공부하고, 배우고, 가르치고, 알게 된다는 것을 단순히 허튼 소리로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느낌, 정서, 소망, 두려움, 의심, 열정과 비판적 이성을 가지고 이 모든 일을 해냅니다. 우리는 인지와 정서는 둘이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 무엇도 가르치는 일을 방임과 길들임으로 이끄는 온정주의적 양육의 형태로 격하해서는 안 됩니다. 학습자를 돌보는 일을 교사의 전형적인 임무로 규정할 경우, 교사의 불복종 행위나 저항, 파업 등은 양육적 입장과 어울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르치는 일은 무엇보다도 전문적인 과업입니다. 이 전문적 과업은 끊임없는 지적 엄격성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인식론적 호기심,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창의성, 과학적 능력 등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하고, 과학적 환원주의를 거부할 것을 요구합니다. 가르치는 일은 또한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능력을 요구합니다. 이런 역량이 없다면 가르치는 일은 무의미한 일이 될 것입니다.
교사를 보모의 지위로 격하시키려는 시도에는 순진한 이데올로기적인 함정이 들어 있습니다. 이 함정에는 교사의 삶을 편하게 한다는 환상 아래 교사들의 투쟁능력을 약화시키거나 고작 일상의 과업을 처리하는 데만 교사들이 몰두하도록 만듭니다. 예컨대 교사의 투쟁능력은 말과 실천 사이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게임이나 이야기, 책읽기를 통해 아이에서 어른까지 모든 학습자들을 고취하는 능력을 포함합니다.
이를테면 말로는 약자, 빈자, 노숙자를 옹호하면서 행동으로는 못 가진 자보다 가진 자를 선호하고, 또 말로는 사회계급과 계급간 갈등을 부정하면서 정치적 실천은 전적으로 권력자 편에 서 있는 것 등 말과 실천간의 모순을 학생들이 파악하도록 도와주는 능력을 포함합니다. 또한 교사는 아이를 돌보는 보모가 아니라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우리 모두가 진정한 교사가 되고, 진실을 선택하고 결정하고 규명할 권리를 위해 싸울 특권과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 편지 - 세계 읽기와 글읽기
가르치고자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처음 편지를 쓸 때 가장 좋은 주제는 가르침과 배움의 진정한 의미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배움이 없이는 결코 가르칠 수 없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이전에 배운 지식을 알게 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가르친 내용에 대해 어떤 식으로 학생들이 호기심을 보이는지 관찰함으로써 가르치는 사람 자신에게 불확실한 것, 옳고 그른 것을 분명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가르치면서 배우려면, 교사들은 겸손하고 개방적인 자세로 끊임없이 이전의 생각을 재고하고, 자기 입장을 기꺼이 수정할 용의가 있어야 합니다. 교사들의 배움은 학생들의 호기심과 그 호기심 때문에 학생들이 어떤 길과 방향으로 가는지 관심을 갖는 데서 일어납니다. 학생들의 순수한 호기심이 흘러가는 방향과 길 중 일부는 교사의 주목을 받지도 못하고 회의와 의심의 대상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사들은 마음의 통제자가 되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호기심 단계를 재구성하면서 가르치기 때문에 교사들은 가르치는 동안 배울 기회를 충분히 갖게 됩니다.
하지만 교사들이 특정한 내용을 가르치는 방법을 배운다고 해서, 가르치는 데 꼭 필요한 능력 없이도 감히 가르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실제로 가르치는 일에 관여하기 전에 스스로 준비하고 능력을 갖추는 것은 교사의 정치적, 윤리적, 직업적 책무입니다. 생생하면서도 누구나 이해할 만한 교수 경험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듯이, 가르치는 일은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끊임없는 준비와 자기 개발을 요구하는 직업입니다. 이러한 개발은 자신의 실천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비판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상식적인 수준의 지식과 더 체계적이고 정교한 지식간의 이분법이 아니라, 상반된 두 가지를 종합시키는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공부하는 행위가 바로 그것입니다. 공부한다는 것은 읽는 행위 자체로 축소될 수는 없지만 읽기의 의미를 포함합니다. 읽기는 읽은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찾는 일이며 새로운 이해를 창조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다른 기본적인 것들 중에서도 읽기와 쓰기를 정확하게 가르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읽기를 가르친다는 것은 참여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해하고 서로 의사 소통하는 이른바 이해를 둘러싼 창조적인 경험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나온 개념들을 이분화하기보다는 종합해 나갈 수 있다면, 이해의 경험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읽기와 쓰기에 꼭 필요한 연습은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감각적인 경험에서 시작해 학교 언어에서 얻어지는 일반화로 그리고 다시 만져볼 수 있을 만큼의 구체적인 것으로 쉽게 옮겨가는 연습입니다. 이 연습을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내가 말한 바 있는 세계에 대해 이미 읽었던 바를 읽는 것입니다. 여기서 세계를 읽는다.고 했을 때 그 읽기는 글읽기에 선행하는 것이며, 대상에 대한 이해와 관련되어 있지만 일상생활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읽기로 이해해야 합니다.
문화에서 읽고 쓰기가 없다면, 공부하고 알고자 하며 사물의 주관성을 배우고 사물의 존재 이유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범하는 실수중의 하나는 읽기와 쓰기를 별개로 분리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아동이 처음 읽고 쓰는 단계에서마저 읽고 쓰는 과정을 일반적인 앎의 과정과 동떨어진 것으로 이해합니다. 읽기와 쓰기의 이런 이분법은 교사든 학생이든 우리를 영원히 따라다닙니다. 논문을 쓰는 시간은 엄청나게 힘들어. 도무지 나는 쓸 수가 없어. 이 말은 내가 참여한 대학원 프로그램에서 무척 자주 들었던 말입니다. 깊이 들여다보면, 가르치고 배우는 것의 의미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것에서 우리가 얼마나 멀어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슬픈 사실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올바르게 읽고 쓰는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보기도 전에, 물질적인 변혁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텍스트와 세계에 대한 비판적 읽기는 그 읽기 안에 들어 있는 진보적인 변화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네 번째 편지 - 진보적인 교사의 자질에 관하여
나는 겸손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겸손은 용기, 자기 확신, 자기와 타인에 대한 존중을 필요로 합니다. 겸손은 모든 것을 아는 사람도 없고, 또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도 없다는 명백한 진리를 이해하게 해줍니다. 겸손하게 스스로를 낮추거나 수치심을 감수할 줄 아는 사람은 언제나 가르치고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겸손은 우리들로 하여금 자신만의 신념에 안주하지 않도록 해줍니다.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교사들이 행하는 겸손함 외에 필요한 자질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교사들의 활동은 의미를 잃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학생들을 향한 것일 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과정을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시인 티아고 데 멜로가 말했듯이, 교육자들에게 일종의 무장된 사랑(armed love)이 없다면, 그들 직업의 부정적인 면들을 견뎌낼 수 없을 것입니다. 무장된 사랑이 없다면 쥐꼬리만한 봉급과 교사들에 대한 홀대 등 정부의 멸시와 모든 부조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내가 싸워 이루고자 하는 꿈이기도 하고, 내 스스로 현실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준비하는 꿈인 무장된 사랑이 이루어지면, 나는 내 자신 안에서, 나의 사회적인 경험 안에서 또 다른 자질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것은 싸우고 사랑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용기는 하나의 미덕으로 나의 외부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용기는 내가 가진 두려움을 정복하는 일을 포함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두려움을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무기력해져서는 안 됩니다. 대신, 우리는 두려움을 통제해야 합니다. 이런 통제를 실행할 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용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관용은 또 다른 미덕입니다. 관용적이라는 것은 도무지 참을 수 없는 것을 묵묵히 따른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무례함을 은폐하는 것도 아니고, 침략자를 너그럽게 봐 주거나 침략행위를 숨기는 것도 아닙니다. 관용은 우리가 서로 다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미덕입니다. 관용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 다른 것에서 배우고 서로 다른 것을 존중하도록 가르칩니다. 우리가 진보적인 교육자가 되려고 한다면, 우리 내면에 품고 키워야 할 자질에다 추가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나는 결단력, 안정감, 인내와 조급함 사이의 긴장, 그리고 삶을 즐겁게 만드는 자질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교육자들의 의사결정 능력은 교육활동에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어떤 교육자가 결단력이라는 이 어려운 미덕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의사결정 능력을 직접 보여줘야 합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의사결정의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교사들은 의사결정을 제 맘대로 해서도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권위적인 인물처럼, 자기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무얼 하든 다 허용한다면, 이는 권위를 남용하는 것보다 교사의 운명을 더 암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안정감과 자신감은 과학적인 능력, 분명한 정치적 입장, 윤리적 결백을 요구합니다. 자기 행위를 과학적으로 어떻게 옹호할지 모르면서 자신들이 무엇을, 왜, 어떤 목표를 가지고 행동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생각도 없으면서, 자신의 행위를 보증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혹은 무엇에 찬성하고 반대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찬성하는 것과 반대하는 것에 영향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행동을 보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육자의 직무에는 학습자들을 고취시키기 위한 비판적 규율이 필요합니다. 이 규율은 학습자들에게 한꺼번에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고 사려 깊게 조금씩 제시되기 때문에 교사의 능력을 반영하며, 교사들이 안전하고 분명하고 확고한 권위를 행사하는 것과 균형을 이루도록 영향을 미칩니다. 진보적인 교육자에게 꼭 필요한 또 다른 기본적인 자질이 있습니다. 교육자는 인내와 조급함 간의 긴장을 경험할 때 지혜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코 인내와 조급함 중 하나만 갖추어서는 안 됩니다. 인내만 있으면, 교육자는 자신의 민주주의의 꿈을 부정하여 체념하거나 지나치게 허용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조급함만 있으면, 교육자들은 맹목적 행동주의에 빠지고, 오직 행동을 위한 행동을 하며, 실천에서 전략과 전술간의 필수적인 관계를 무시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덕은 둘 중 어느 하나만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내와 조급함 간의 지속적인 긴장이 살아있게 하는 데 있습니다. 교육자는 조급함과 인내심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활동해야지, 결코 어느 것 하나에 전적으로 매달려서는 안 됩니다.
끝으로 기본적인 덕목의 하나인 삶을 즐겁게 만드는 자질에 대해 논의하고 싶습니다. 죽음보다는 삶에 내 자신을 완벽하게 맡김으로써 - 이것은 죽음을 부정하는 것도 삶을 신화화하는 것도 아닙니다. - 삶에서 슬픔의 원인을 감추지 않고, 삶을 즐겁게 만드는 일에 내 자신을 내맡길 만큼 나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학교에서 즐거움을 자극하고 성취할 수 있도록 나를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2. 현장에서 가르치고 배우며
다섯 번째 편지 - 초임 교사들에게
부임하는 첫날은 불안하고, 수줍고, 위축되는 걸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교사 본인이 불안하다고 생각한다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사 스스로가 업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두려워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 순간 최선의 방식은 인간적인 것과 그 한계를 분명히 하면서 당시 느끼는 그대로를 학습자들에게 말해주는 것입니다. 학습자들에게 말해줄 것은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권리라는 것과 그 권리를 교육자들이 부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싸울 능력이 없다면 교육자로서 자격이 있는지 반문해봐야 하겠지만, 두려움을 겪는다는 사실 때문에 교사의 자질을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종종 초임교사의 불안감까지도 알아채는 노련한 학생들 앞에서, 교실에서 첫날을 보내면서 교사가 겪는 두려움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초임교사들의 초기 경험과 관련된 또 다른 기본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학생들이 교실을 읽을 수 있도록 교사들을 준비시키는 것으로서, 교사 개인이 미처 준비하지 않고 있을 경우 교사양성 프로그램에서 세심하게 다루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마치 하나의 텍스트처럼 교실을 읽기 위한 지적 훈련 가운데 한 가지 좋은 연습법은, 교사들이 매일 기록하는 습관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의무에서가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학생들의 행동반응, 학생들의 말과 그 의미, 그리고 애정 어린 동작 혹은 거부 동작을 매일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게임으로, 학생들이 언어를 구사할 때 스스로 몸짓, 언어, 유머, 교사와 동료에 대한 행동 등을 관찰하도록 학습자에게 제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 상태를 충실하게 기술하는 것으로 기록이 그쳐서는 안 됩니다. 기록된 모든 자료는 학생들은 물론이고 자료를 만든 교사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분석되어야 합니다. 수집된 자료를 검토하고 재검토하는 모든 단계에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수정하고 확증하게 됩니다. 이런 교실 읽기는 교육자의 실천이 기계적으로 내용을 가르치는 일에 한정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교실 읽기는 또 필요한 내용을 가르치는 일을 할 때도 학습자의 맥락에서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조건에 관한 비판적 지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또한 교사들은 교실에 처음 가는 날부터 학생들에게 삶에 대한 상상력이 가지는 중요성을 보여줘야 합니다. 상상력은 호기심과 독창성을 촉진합니다. 마찬가지로 상상력은 모험심을 고양합니다. 모험심이 없다면 우리는 창조할 수 없습니다. 나는 여기서 상상력이란 자연스러운 자유, 자유롭게 날고, 걷고, 뛰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한 상상력은 우리 몸을 움직이는 모든 동작에서, 즉 춤에서, 리듬에서, 그림에서, 그리고 글을 쓸 때, 심지어 글을 쓰는 초기 단계인 갈겨쓰기에서도 나타나야합니다. 상상력은 말에서도 나타나야 합니다. 상상력은 학습자들의 문화 안에서 생산된 이야기를 말하고 되풀이할 때 나타납니다. 학습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학생들이 꿈꾸는 학교의 청사진을 그릴 때 상상력을 활용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여섯 번째 편지 -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관계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