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엄마가 아이도 잘 키운다
레기네 슈나이더 지음 | 글담
일하는 엄마가 아이도 잘 키운다
- 성공과 결혼생활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들에게 -
레기네 슈나이더 지음/김순화 옮김
글담출판사/2000년/223쪽/8,000원
출근하는 엄마는 모두 계모인가?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만의 개성이 있고 때로는 이것으로 인해 주위환경과 마찰이 생긴다는 당연한 사실을 사람들은 무시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부정적인 일을 하면 우선 엄마를 탓한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고 자신의 개인적 욕구는 무시해야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통념 때문에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달리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환경이 웬만한 가정의 경우 생후 18개월 된 아이들의 25%가 5명 내지 그 이상의 심리적 의탁인을 설정할 수도 있다는 이론이 실증되었다.
아이들은 사회적 존재이므로 적응력과 생명력이 있으며 호기심 또한 대단하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일찍부터 다른 아이들과 접촉하는 것이 중요하며, 만일 한 어른이 한 아이하고만 생활할 경우 두 사람 모두에게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엄마들은 더 이상 사회적인 접촉을 하지 않는, '엄마 노릇'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엄마들은 이 생활이 가장 성스러운 것이라고 세뇌 당한다. 여성들이 반복적이고 힘든 일과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갓난아이의 욕구를 즉시 충족시켜 줘야 한다고 무의식중에 배워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로 인해 피곤에 지친 엄마가 머지않아 바닥에 주저앉게 되면 누가 그 속사정을 이해해 줄까? 물론 아이들의 욕구는 충족되어야 하고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성장해야 하지만 한 성인이 한 아이에게 완전히 매달려 다른 성인과의 접촉이 거의 단절된 생활은 무모하고 극단적인 행동이다. 부엌데기 엄마들이 집안 일로 느끼는 불만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는 직장여성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장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 없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불행하거나 자기 중심적인 여자라고 생각한다. 또 '아이들을 위해 집에 있지도 않으면서 왜 아이는 낳았을까?' 하는 비난에 시달린다.
지금부터라도 직장여성이면서 엄마가 될 수 없는 사회적 상황에 비난의 초점을 맞추고 직장여성에게는 오히려 '직업과 아이를 동시에 가진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격려가 주어져야 한다. 아이는 하나의 인격체이므로 부모는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과보호나 무리한 교육이 아닌 합리적인 방법으로 아이들을 배려해야 한다. 아이의 성장을 위해 엄마의 보호와 보살핌만이 절대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마 역할에 대한 소설화 및 이상화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많은 여성들이 이로 인해 압박을 받고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가장 좋은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 할 때 진심으로 즐거워할 수 있도록 스스로의 생활에 만족하는 엄마이다. 엄마로서의 죄책감은 아이에게 소홀했다는 느낌에서 오는 것이지 직업을 갖고 안 갖고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엄마가 좋은 엄마인가?
'좋은 엄마'의 개념은 사회 흐름에 따라 항상 변화하므로 고정적인 개념의 좋은 엄마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 시대의 어머니상은 그 사회에서의 여성의 역할과 그 시대가 부여한 여성상에 따라 변한다. 심리학 교수 산드라 스카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아이와 아동교육에 대한 모든 토론에서는 다음의 질문이 항상 제기된다. 아이의 천성이 근본적으로 선한가, 악한가 하는 문제와 아이에게 세심하고 엄격한 교육이 필요한가 아니면 아이의 성장이 본질적으로 자연에 의해 확정된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중세에는 아이들을 불완전하고 미개한 존재로 인식했다. 그래서 개개인의 정신생활에서 아이들을 제외시키고, 아이들의 놀이 역시 귀찮은 것으로 여겨 신경을 쓰지 않았다. 18세기에도 아이들에 대한 견해가 많이 호전되지는 않았지만 계몽된 의사들은 엄마가 자녀를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18세기말에 이르자 신중하고 관대하게 자녀를 대하는 부모가 점점 더 많아졌다. 따라서 '억압'이나 '엄한 교육'이 중단되었으며 20세기초부터 아동심리 교육학과 함께 아이들에 대한 '학대'도 중단되었다.
그래서 엄마는 아이를 위해 항상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상처받기 쉽고 순수한 존재인 아이에게 세심하게 배려하는 사람도 당연히 엄마여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엄마들은 아이들에 대한 '헌신'을 소명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히틀러 시대 출범으로 이런 어머니상은 더욱 강요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엄마 세대는 직장을 가지지 않고 집에 남아 있게 되었다. 그 시대 주부들에게 좋은 엄마란 집에 남아서 두 명 내지는 그 이상의 아이를 기르는 사람이라고 받아들여졌다.
20세기 중반에서 현재까지 거의 모든 엄마들의 머릿속에는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박혀 있다. 프로이드는 아동교육을 매우 난해한 과제로 보고 아이들의 심리 상태가 매우 중요하며 엄마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서 정신적 장애를 비껴가야 하는지를 제시했다. 프로이드는 잘못된 엄마의 행동은 곧바로 아이의 비뚤어진 인간 형성에 원인이 된다는 이론을 통해 엄마들은 자신의 어머니들의 무능력함과 부족함을 비판할 수 있었고 자신의 어머니들로부터 야기된 결핍된 행위를 비난해 왔다. 영국의 아동학자 존 보울비 역시 엄마가 아이와 함께 최소한 3년은 같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처음 3년 동안에 엄마와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면 그 후에도 다른 사람과 인간적 유대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슈퍼우먼이 된다는 것은 사회와 가족의 모든 기대에 부응하는 지름길이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이 해낼 수 없는 고행의 길이다.
* 현대의 엄마들은 지나치게 많이 알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엘리자베트 백 게른스하임은 수백 년 동안 아이들에게 중요하다고 여기던 것과 시대에 따라 엄마들이 아이에게 해 주었던 것을 토대로 결정적인 네 단계를 제시했다. 각 단계는 일반적으로 시민층 여성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교육, 건강, 심리, 상태, 환경 등의 주제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 단계(18세기)는 자기 능력으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기 시작하면서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좋은 엄마, 현명한 엄마는 사회에서 가장 능력 있는 남자보다 더 중요하다는 중심사상이 바로 의식적인 아동교육이었다.
두 번째 단계(19세기)는 의학의 발전과 함께 건강이 우선적인 순위를 차지하면서 위생관리와 식생활에 신경 쓰는 것이 엄마들의 과제가 되었다.
세 번째 단계(20세기)는 프로이드, 리들로프, 엘리스 밀러에 의한 '천재아이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이 시대의 엄마들은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 받은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에 대해 잘 이해하고 아이들을 금이야 옥이야 조심조심 다룬다.
네 번째 단계는 생태학적 주제에 대한 의식이 그 특징이다. 파괴된 환경으로 인해 새로운 병이 속출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모두가 우려하고 있다.
우리는 아이를 관찰하면서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엄마 탓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은 모든 사회의 과제가 결국은 엄마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엄마들이 환경을 파괴했는가, 아니면 생태계를 위협했는가? 아니다. 엄마들이 각 시대마다 짊어져야 했던 것은 사회의 과제였지 한 역할집단의 과제가 아니었다. 이미 언급된 이 네 가지 경향은 교대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점 더 강화되면서 덧붙여져 왔다. 만일 엄마들이 교육학자, 심리학자, 교육상담자가 지시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려 한다면 아이는 기쁨이 아니라 엄마가 평생 짊어져야 할 과제가 되고 만다.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위해 끝까지 희생할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 지치고 말 것이다.
모성은 본능이 아니라 키워 가는 것이다
자연은 소위 친엄마와 자녀 사이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한다는 엄마상의 틀을 제공하고 있다. 프로이드와 영국의 심리학자 존 보울비 역시 출생 후에도 탯줄 연결이 계속 존재한다며 엄마와 아이의 공생을 주장했다. 그리하여 아이에 대한 모든 문제가 엄마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하여 엄마의 역할만을 강조했으며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곧 엄마의 만족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철학교수 엘리자베스 바틴터는 이 주장을 극단적으로 비판했으며 모성본능은 하나의 신화라고 주장한다.
엄마의 감정은 교육의 정도와 야심, 좌절 등에 따라 매우 변화무쌍하며 사람들은 모성애가 단지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좌우된다는 매정한 결론을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한다. 이런 감정은 존재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며 표현될 수도 있고 사라질 수도 있으며 강하게 나타날 수도 있고 약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
첫아이를 낳고 여성들은 모성본능의 신화를 깨는 첫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다. 갓난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순간 넘치는 모성애가 직접적이고 자동적으로 발동하지 않을 때 여성은 당황해 한다. 모성본능 신화는 엄마가 아이를 팔로 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다는 것을 무언중에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여성들은 아기에 대한 사랑은 키워가야 한다는 사실을 자주 경험한다. 즉, 모성애는 두 사람이 서로 친숙해지면서 생기는 것이다.
함부르크의 심리학자 미하엘 틸은 자신의 연구논문에서 '모성본능은 하나의 의도적 고안물'이라고 결론지었다. 엄마와 아이, 또는 아빠와 아이의 관계는 철저히 대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와의 관계에서 아빠는 완전히 제외 대상이었다. 그의 '상황실험'에 의하면 반드시 친엄마가 아니더라도 아이가 감정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아빠, 일일보모, 할머니 등)이 아이가 뭘 원하는지 잘 이해하고 즉시 행동을 취하면 아기는 안정적인 결속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위해 옆에 있을 거라는 믿음이다.
엄마를 괴롭히는 몇 가지 강박관념
고정된 엄마상으로 엄마를 볼 때 그 자녀를 통해 평가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엄마는 아이에 의해서 정의되는 것 같다. 여성에게 자녀는 곧 개인적인 성패를 의미한다. 따라서 '훌륭한 자녀 →좋은 엄마 →좋은 여자'라는 논리가 성립한다.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과 물리적 정신적 건강과 가족의 단합, 이 모든 책임감이 엄마들을 죄책감으로 몰고 간다. 어떤 여성도 해낼 수 없는 이런 엄마상 외에도 두 개의 신화가 더 있는데 하나는 행복한 아이이고, 다른 하나는 행복한 가정이다.
* 엄마들의 첫 번째 부담, '행복한 어린 시절'
오늘날의 교육이 시도하는 '행복한 아이'는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고 있을 수도 없다. 아이들 역시 삶에 속하는 행복, 기쁨, 두려움, 무기력과 실망을 느낀다. 모든 아이들은 모든 시대에 걸쳐 실수, 약점, 부족함에 있어서 언제나 엄마와 관련이 있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배우는 것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예전에도 항상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순수한 어린 시절에 대한 신화는 현대에 와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행복한 어린 시절에 대한 신화를 지나치게 신봉하고 있다. 엄마들은 그것을 하나의 지상과제로 삼고 끊임없이 추구한다. 그러나 이 신화는 실제 생활과는 관계가 없다.
* 엄마의 두 번째 부담, '행복한 가족'
이는 조화로운 가족상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아빠 엄마가 서로 사랑하고 싸우지 않으면서 의견 차이가 있어도 이성적으로 상의해서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행복한 가족'은 일체감을 우선으로 하며 서로 뜻을 같이 하여 이해하는 분위기에서 함께 뭉치고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이상향을 실생활에 옮기려는 가정에서는 가족 구성원이 자주 병이 난다. 구성원의 나쁜 면을 억누르는 과정에서 생기는 고통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이상향은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반면 정상적인 가족환경에서는 구성원에게 부정적인 면도 표현할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은 건강한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슈퍼우먼 신드롬'
여성의 사회 참여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여성들은 직장에서 인정받는 직장여성이면서 동시에 좋은 엄마, 완벽한 주부가 되기를 원한다. 능력 있는 여성이고 싶고, 감정이 풍부하길 바라고, 열심히 일하고 싶고, 성공하려는 여성일수록 자기를 의심하면서 죄책감에 사로잡히며, 대인관계에서 문제를 느낀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만족하려면 포기할 줄도 알고 항상 자신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직장여성은 전업주부가 단지 가족의 장식품이자 하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이에 반해 전업주부는 직장여성이 무자비한 엄마라고 말한다. 이런 무의식적인 경쟁심보다는 이 두 가지 유형의 여성이 서로 조직화되어 연대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
*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엄마들은 자신이 아이에게만 몰입하지 않았을 때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잘못된 일이 생기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이 장밋빛으로 채워지는 것을 꿈꾸는 임산부는 이런 계율을 가슴 깊이 새기며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엄마가 될 것을 결심한다. 그러나 실험 결과 무직여성 가족의 자녀들이 불안감, 불안정한 학습태도, 거짓말, 늦은 소변 가림, 원만치 못한 대인관계, 공격적인 성격, 폭력성이 직장여성의 자녀보다 세 배나 높게 나왔다. 이는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관계의 품질에 관한 것이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집에서 소모하느냐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직장여성이 자녀를 더 잘 보살피고, 책임의식이 강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아이들은 강하다
아이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갖고 태어나므로 부모는 아이를 자신의 이상에 따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의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도록 엄마가 아이들에게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어린이는 좋고 나쁜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동시에 매우 유연하게 반응한다. 아이는 쉽게 부서지는 사기그릇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성장을 위한 독립적인 삶의 의지, 독자적인 개성과 육감이 있으며 중요한 일이 생기면 자신의 내적 요소, 성격, 부모의 영향력을 적용시킨다. 현대의 아빠는 엄마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돌보고 사랑한다. 이것은 모성애가 부성애와 마찬가지이며, 더 이상 모성애만 특별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미국의 애미 워너 교수는 행복하고 슬기로운 아이들은 결코 소위 '완전한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이론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엄마의 양심을 가볍게 해 주고 아이들을 다시금 더욱 신뢰하면서 양육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신뢰할 수 있는 다른 사람과의 결속을 형성하는 것이다. 모든 아이는 신뢰할 수 있고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어른을 최소한 한 명은 필요로 하는데 이런 사람은 아빠 엄마일 수도 있고 완전히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아이가 커갈수록 부모와의 친밀한 관계보다 같은 또래친구와의 관계가 아이들에게는 더 중요하다. 어른이 관여할 수 있는 것은 어린이와 함께 그의 길을 어느 시점까지 동행하다 나중에는 혼자 갈 수 있게 하는 것뿐이며 아름답고 보기 좋은 완성품을 만드는 것이 아이를 갖는 이유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 '직업을 가진 엄마'와 '그냥 엄마'
자신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엄마가 좋은 엄마이다. 만일 엄마가 우선 자신을 생각하고 그 다음에 언제 어떻게 자녀를 위해 존재할 것인가를 결정한다면 자녀들에게 해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유익하게 작용할 것이며 자녀들 또한 엄마가 자립적이고 엄마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심리학자 에바 블로다렉은 자녀의 성장발달은 엄마가 일을 하느냐, 안 하느냐라는 사실보다 엄마의 만족이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업주부도 삶의 감정을 자녀들에게 바로 전달하지만 개방적이고 활동적인 직장여성은 불만족한 전업주부보다 자녀에게 확실히 좀더 많은 것을 준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직업 외에 자녀와 가사일과 동반자까지 돌봐야 하는 여성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은 자녀와 가사 일을 위해 직장을 그만 둔 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