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 절대로 시키지 마라
노덕임 지음 | 해들누리
제1장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으리
나를 지탱해주고 이끌어 주는 희망나는 이혼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사람들은 내게 아이에게 매달려서 희생만 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행복에 대한 가치 판단은 모두 다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어떤 형태의 삶이건 항상 양면성이 있고, 마음먹기에 달려있지 않을까? 나는 아이들을 키울 수 있음으로 행복하고 지금도 아이들에게서 힘을 얻고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또한 가정을 일궈 아이를 낳았으면 그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 부모된 도리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기회를 놓친 남편남편은 가난하던 시절, 아이들에게 자상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경제적인 안정은 남편에게 외도를 하게 만들었고 급기야는 9남매의 장남, 두 아이의 아빠라는 역할마저 팽개쳐 버린 채 한 달에 두어 번 얼굴을 내미는 것이 전부였다.
남편의 마음을 돌려보고자, 가족을 버리고 떨어져 사는 남편의 비뚤어진 삶을 바로잡기 위해서, 남편이 주유소를 차린 강원도 외딴 곳으로 이사를 가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고, 시간이 지날수록 아들 진영이는 말수가 점점 줄어들고 우울한 표정으로 변해 갔다. 결국 다시 서울로 오기로 결심하고 서초동에 월세 집을 얻어 이사했다. 서울을 떠날 때의 착잡했던 마음보다는 차라리 홀가분했다. 이제부터 정리할 건 정리하고 아이들의 생활에도 많은 정성을 쏟아야 할 것이다.
기대지 않으면 넘어질 일도 없다사람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면서 눈이 짓무르도록 울며 희망을 버렸다가 기대기를 7년, 남편을 믿을수록 고통은 더해갔다. 남편에 대한 수천 번 아니 수만 번의 기대와 좌절이 반복되는 동안 나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도 상처받고 있었던 것이다. 인연의 고리는 온갖 망상을 불러왔지만 내 마음의 혼란과 배신감을 잠재울 수 있는 힘도 길러지는 듯했다. 어차피 내 곁에서 자랄 아이들에게 정성을 쏟을 각오를 하며 마음을 달래다 보니 자신감도 생겼다. 나는 그와의 사진과 필름들을 모두 불에 태우며 이제는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강하고 믿음직한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주리라 다짐했다.
엄마로 인해 눈물 흘리지 않게 하리라부모님의 체면, 결손가정이 된다는 두려움 때문에 몇 번이나 인내하며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져 보았지만 아이들에게 아빠와 갈등하며 사는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는 소중한 엄마라는 위치를 지키며 밝고 건강하게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이혼을 하고 난 후, 나는 가능한 많은 책을 읽으며 꾸준한 운동을 통해 항상 열심히 살고자 하는 욕구를 키웠다. 서점에서 마주치는 젊은 부부가 그들의 아이를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책을 고르는 모습, 응급실에서 서로를 위해주고 염려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가족의 소중한 정이야말로 아이들을 바르게 키워나갈 수 있는 영양소와 같다고 생각했다.
'결손가정'의 엄마나는 아이들만 데리고 명절을 어떻게 보낼까 궁리하다가 시장보기, 음식 만들기 등을 함께 하면서 명절 분위기를 심어주고자 노력했으며 아이들도 매우 흥겨워했다. 설날 아침에는 두 아이한테 세배를 받고 세뱃돈 대신 도서상품권을 주었다. 또한 가족구성원이 단출해서 적극적으로 현장학습을 유도한 덕분에 아이들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저녁시간이면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점점 기분이 나아졌고, 내게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게 되었다. 한낮에는 좋아하는 테니스를 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 눈을 뜨면 생활이 즐거웠다. 테니스에 빠져 늦게 돌아온 어느 날, 집안에 엄마가 없어도 할 일을 찾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대견스러운 한편, 이제는 내가 일자리를 찾아도 될 시기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2장 '엄마출판사' 문제지가 제일 어렵다
육아전서를 읽고 또 읽다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은 기쁨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엄마가 된다는 긴장감도 잠시, 입덧을 시작하면서부터는 혼이 빠져 버렸다. 아이의 태동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태교나 육아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육아전서를 번갈아 읽으며 편한 마음으로, 항상 아이를 생각하며, 무리하지 않는 일상생활을 위해 노력했다. 1981년 3월 10일, 3.8킬로그램의 건강한 아이 진영이가 태어났다. 아이에게 벌어지는 상황을 동화책 읽어주듯 말로 이어갔고 아이를 재우거나 함께 놀 때에도 잔잔한 음악을 많이 들려주었다.
폐품을 이용한 장난감 만들기나는 다양한 '직접경험'을 통해 아이가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하였다. 아이들은 커가면서 호기심이 줄어들어 일하는 걸 싫어하지만, 어려서는 배우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수 있을 때가 초등학생 시절이다. 어디서든 앉아서 손만 뻗으면 책을 잡을 수 있게 한 것이 진영이에게 책을 읽히는 방법이었다. 책을 많이 읽히려면 책을 늘어놓는 것에 대해서도 간섭하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폐품을 이용하여 장난감을 만들게 하였더니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장난감이라며 매우 즐거워했다.
영어 사전에 재미있는 글이 있다니?나는 진영이에게 피아노를 권했지만 진영이는 피아노 대신 컴퓨터 학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진영이는 컴퓨터 학원에 갈 때면 영어사전을 가져가서 모르는 컴퓨터 용어가 나오면 찾아보고 영어 그림책에 나오는 단어나 영어 자습서에 있는 단어도 사전을 뒤져 찾아보면 재미있다고 했다. 수학 공부 역시 생활 자체가 공부의 자료가 되어 주었다. 일찍부터 놀이하듯 익혀온 셈 공부는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서 차츰 수학공부가 재미있다고 했다. 꾸준한 복습과 문제지를 반복하여 푸는 습관을 들여 수학경시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었다. 시험을 의식하지 않는 시기에 복습을 많이 하고 질문을 해서 깨쳐두는 것이 중요한 시험 준비였다.
또 시험 전날의 스트레스를 없애주는 것도 중요한데, 나는 시험 바로 전날에도 진영이를 서점에 데려가거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게 함으로써 부담을 덜어 주고자 노력했다. 고전 과목의 경우에는 진영이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평소 우상으로 여기던 선생님께 부탁하여 고전을 권하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내가 미리 준비해 간 고전책을 포장해서 진영이 앞으로 보냈다. 발신인은 물론 선생님 이름을 적었다. 진영이는 선생님이 보내준 책이니 읽지 않을 수 없다며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그 시기를 놓쳤더라면 어쩌면 진영이는 고전을 영원히 읽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모든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곳, 서점남편이 가정을 굳게 지킬 때는 토요일, 일요일이 기다려졌는데 주말이 괴롭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날이 싫어서 궁리 끝에 찾아간 곳이 시내에 있는 대형서점이었다. 일찍부터 책을 즐겨 보던 진영이에게는 모든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장소로 안성맞춤이었다. 책은 가능한 낱권으로 사게 하고 여러 번 반복해서 읽기를 권했다. 텔레비전 역시 좋은 프로만을 골라서 함께 보면 책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진영이가 아무리 노력해도 잘 할 수 없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달리기였다. 노력으로 쉽게 이룰 수 없는 일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보다 흥미 있고 자신 있는 분야에서 희망을 갖도록 해 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에 달리기를 못하는 건 책을 많이 보고 컴퓨터를 열심히 하라는 뜻이나 다름없다고 격려해주었다. 컴퓨터를 재미있게 배우던 진영이는 영어 사전을 늘 가까이 했으며 팝송을 통해서도 번역 실력을 쌓았다. 영어의 수준이 높아지면서부터는 영자신문을 꾸준히 읽고 AFKN 라디오 방송도 들었다.
나는 진영이가 공부만 하는 것보다 강인한 체력과 정신수양을 하기 바랬기 때문에 학교에서 하는 수련회를 보내 나약하고 편중된 생활습관을 고치는 기회를 가지도록 했다. 또 뼈만 앙상한 체형에 마음까지 여린 진영이를 강하고 다부지게 키우고 싶어 태권도를 권했으나 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억지로 시키다 보니 부작용이 따랐다. 다시는 억지로 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테니스를 권했더니 흥미를 보였다. 테니스를 좋아하는 진영이를 보며 양을 싸움닭처럼 키우려 했던 내 어리석음을 뉘우쳤다.
생을 포기하는 것은 가장 큰 죄악이다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아이들도 탈없이 환경에 적응하고, 일을 해도 될 시기가 온 것 같아서 일자리를 찾던 중이었다. 처음 일을 시작하자 뼈마디가 늘어나는 듯 아프고 주변의 시선도 곱지 않은 듯 해서 갈등이 많았지만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겨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에 무언가 걸려 있는 느낌이 들더니 아침만 되면 헛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곧바로 정밀검사를 받고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내 자신의 건강함에 감사하며 다시는 복에 겨운 망상으로 삶을 낭비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나만 빼고 모두 행복하게 사는 게 아니라, 모두들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며 사는 것이다.
재활용센터에서 주어온 문제지우리 집에서 모아온 폐지를 갖다 주려고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곳에 갔다가 진영이에게 필요하다 싶은 수능 문제지는 물론 논술교재, 월간지, 문학서적 등이 있어서 손수레를 빌려다 실어 날랐다. 거실에 쌓아 놓고 한 권, 한 권 닦아 진영이가 보기 좋게 쌓아 두었다. 진영이는 내가 주워온 책을 닥치는 대로 풀기 시작했다. 외국어고를 낙방한 교훈 덕분인지 헌책이라고 투정 부리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만도 고마운데, 많은 책에 맞춰 공부 계획까지 세우는 진영이가 대견했다.
그러나 고교 입학 후 새로운 세상에 호기심을 갖게 된 진영이는 서클 활동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안 하던 옷 타령은 물론이고 외출이 잦고 귀가 시간이 늦어졌다. '지금까지 잘 자라왔는데 크게 빗나가지는 않겠지...' 스스로 위로하였지만 불안했다. 서클 활동을 시작한지 두 달 가까이 되었을 무렵 진영이의 성적표가 날아들었다. 전과목이 엉망이라고 한숨을 쉬던 진영이는 다음날 머리를 짧게 깎고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긴 방황의 터널을 빠져 나온 진영이에게는 더없이 좋은 인생경험을 한 셈이었다.
학생들은 얼마나 힘들까오늘부터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공부하라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최선을 다해서 꾸준히 하라는 말로 대신해야 할 것이다. 옛날에 비해 지문도 길고 알쏭달쏭 꼬인 문제를 풀려면 애들이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진영이 책상에 줄줄이 꽂혀 있는 문제지를 보면서 학생이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고 힘든지 알 것 같았다. 하루는 진영이가 체육시간에 농구를 하다가 가슴이 아프다며 겨우 수업을 마치고 돌아왔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가 고등학생들이 많이 있어서 놀랐다. 수능시험을 앞두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찾아온 아이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기도 하지만 그 동안 쌓아온 성적을 망치는 역할도 한다.
나는 입시부담을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고3이 되면서 특별히 부담되는 일이나 뚜렷한 목표가 있느냐고 물었다. 진영이는 성적보다는 농구를 잘해서 키 값을 하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에게 "피골이 상접했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농구 연습에 열심이던 진영이는 13개의 자유투를 던져 12개를 성공시켰다며 이제는 체육시간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나는 진영이가 농구를 잘해서 잡념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하면 체력도 좋아지고 성적도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다.
제3장 어떤 과외보다 더 좋은, 혼자 하는 공부
과외 하지 않는다고 대학 못 가나?진영이는 1학기 동안 하고싶은 대로 해보고 수능시험이 가까워지면 틀린 문제 위주로 복습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수능시험 문제지는 눈에 띄는 대로 모두 풀어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나는 스스로 혼자 익혀 나가겠다는 진영이의 선택을 믿었으며, 학교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집에 온 날은 함께 김치를 만들면서 기분전환을 시켜 주기도 했다.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시간에 선생님께서는 진영이가 이 수준을 계속 유지한다면 서울대 원하는 과에 합격할 수 있다고 하시며 체력유지에 신경 쓰기를 권하셨다.
어머니는 부자예요넉넉하게 뒷바라지도 못 해주었는데 진영이는 높은 모의고사 점수를 받아 왔다. 진영이는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좋은 성적'을 가져왔으니 엄마는 부자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정말 큰 부자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진영이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성적이 오르는 재미에 즐겁고 잠자는 모습을 보면 체력이 좋아진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괜찮아, 네가 어려웠으면 모두 어려운 거야1998년 11월 18일, 강추위와 함께 수능시험 날이 되었다. 나는 수험번호 옆에 '높은 숫자'를 적어보며 마음속으로 시험을 잘 치르기를 빌었다. 시험을 보고 돌아온 진영이는 영어와 수학을 잘 못 본 것 같다며 걱정했고 나는 "네가 어려웠으면 모두가 어려운 거야." 하며 위로해 주었다. 최종집계 결과 380.8점이 나와 이 정도면 원하는 학교 진학이 가능하다는 선생님의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낮게 나온 점수로 자신감을 잃고 흐트러지는 진영을 달래며 논술고사 준비를 게을리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낮에 한 편, 저녁에 한 편씩 쓰는 것으로 논술을 준비하기로 했다. 주제는 신문을 보거나 뉴스를 듣거나 생각나는 대로 내가 정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내용에 대해 평가와 지도를 받기 위해 '논술교실'에 첨삭지도를 신청했다.
포항공대 그리고 서울대 입학원서 접수1998년 12월 28일, 논술고사 준비를 하는 진영이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 진영이 대신 내가 원서를 접수시켰다. 진영이와 포항공대 면접을 위해 포항에 갔다. 면접 때, 우리 가정환경에 대한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하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도 자신 있게 말하라고 일렀다. 포항공대에서 진영이의 성적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초조해졌지만 열심히 노력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1월 11일 아침, 서울공대의 논술고사와 면접을 치르는 날이다. 진영이는 비교적 만족스러운 얼굴로 대학입시의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왔고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 합격할 거라고 큰소리를 쳐주었으나 나 역시 내심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혹 진영이가 입시결과에 흔들리더라도 상록수처럼 내 자리를 지키는 엄마가 돼야지, 하고 마음을 다스렸다.
포항공대 합격하다1999년 1월 15일, 드디어 포항공대의 합격자 발표가 시작되고 진영이의 합격소식을 듣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처음으로 내 부모님께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린 것 같았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인지 1월 27일 발표되는 서울공대 합격이 기다려졌다. 친구에게 서울대 합격 소식을 전해들은 진영과 나, 온 식구가 기뻐하며 진영을 축하해 주었다. 진영과 나는 합격증을 받으러 서울대학교로 갔다. 진영이에게 대학을 가서도 글을 많이 읽으며 노력하라고 당부했다. 오늘의 영광이 있기까지 많은 독서를 가능케 해준 대형서점 간판만 봐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제4장 그래, 너대로 열심히 걷고 뛰고 열심히 살아라
아르바이트대학에 입학한 진영이는 좀 너무 한다 싶을 만큼 스타크래프트 게임에 빠져들었다. 게임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도 피로한 줄 모르던 진영이에게 시력이 제동을 걸었다. 눈이 충혈되고 아파서 컴퓨터 게임을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생활습관도 바로 잡아지는 듯했고 즐거운 마음으로 수학공부를 가르쳐 주는 아르바이트도 하게 되었으며 주기적으로 하는 헌혈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