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인가, 라이벌인가 여자와 여자
셰어 하이트 지음 | 롱셀러
여성간의 관계에서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지난 수년
동안 거듭해 온 연구를 통해 나는 놀라운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이 결과에 의하면, 어 머니와 딸 사이에는 상당히 뿌리 깊은 성적(性的) 터부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이 지금 까지 발표된 어떤 이론보다도 중요하고 핵심적임을 알 수 있다. 프로이트도 이 터부에 대 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며, 그 중요성조차 인식하지 못했다.1. 여성과의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긴박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는 어쩔 수 없지만)2. 상대방의 옷차림, 우정, 매너, 외견, 건강상태 등에 대해 칭찬해준다.
3. 정기적으로 전화를 건다. 그렇게 하면 친구는 당신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올 때 할 얘기를 준비한다 든지 당신과 만날 계획을 미리 생각해놓을 수 있다.
4. 적어도 3주일에 두 시간 정도는 정기적으로 실속 있는 대화를 나눈다. 그 외의 시간은 쇼핑을 하 거나 일상적인 일로 편안하게 보내도 상관없다.
5. 먼 장래에 대한 계획을 세워, 서로의 관계를 발전시킨다. 그리고 당신이 현실적으로 그 계획을 옮 기는 게 중요하다. 계획의 변경이 필요한 경우에는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주어야 한다.6. 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우정을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물어본다. 당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친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나중에 얘기해 준다.7. 친구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친구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간파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를테 면, "그 사람에 대해선 벌써 세 번이나 얘기했어. 근데 그(혹은 그녀)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알려 줘."라는 식으로 얘기해 준다.
8. 심각한 얘기를 할 때는 "애정은 충분히 느끼고 있니? 잠자리에선 좀 어때?"라는 식으로 물어볼 수 도 있다.
9. 당신이 생각하고 있거나 느끼고 있는 바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한다.
10. 친구를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을 밖으로 표현한다."전 언니를 무척 좋아해요. 서로 싸우지도 않아요. 사실, 맘에 안 드는 점도 있지만 언니 니까 미워할 수 없잖아요." "동생하곤 3년 전부터 말도 하지 않아요. 동생은 제 남자친구 를 가로채, 지금은 그와 함께 살고 있어요. 제게는 너무나 충격적이었죠. 그런데, 부모님 은 절 위로해주기는커녕 빈정대기만 했어요." "우린 어렸을 적부터 서로 으르렁대며 자랐 어요. 그 후 언니는 결혼하면서 집을 나갔고, 저도 진학 때문에 집을 떠났어요. 지금은 서로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사이 좋은 자매가 되었어요."제8장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 여성의 가치가 사회를 변화시킨다어머니에게도 프라이버시가 있는데, 그것은 어린 딸에게 일련의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채 다섯 살도 되지 않은 어린 딸조차도 엄마의 성기를 만지면 큰일나는 것으로 알게 되며, 따라서 자신의 '그곳' 역시 만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터부의 시초이며, 딸이 어머니에게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 된다. 이 터부는 딸의 마음에 매우 강한 이미지를 남기게 된다. 남자아이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른들이 하는 행위를 배워 나가지만, 여자아이는 여성의 몸이 본래 여성 자신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몸에 친숙해져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통념을 따르게 된다. 이것이 '여성의 몸은 남성을 위해 존재한다.'라는 관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념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크게 잘못된 것이다.
여자아이는 마스터베이션을 하면, 성기에 쾌감이 느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쾌감과 동시에 불안도 느끼게 된다. 1976년, 그리고 1994년부터 1995년에 걸쳐 실시한 조사에서 여자아이들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빨리 마스터베이션을 시작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여자아이 중 45%는 여덟 살이 되기 전에 이미 마스터베이션을 통해 오르가즘을 느꼈으며, 열두 살의 경우 60%가 경험이 있다.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은 혼자서 마스터베이션을 배웠으며 숨어서 행위를 한다. 마스터베이션을 통해 쾌감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생리의 시작은 어머니와 딸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의 어머니들은 딸의 생리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몇몇 극소수의 가족만이 특별한 저녁식사 등으로 딸의 '변화'를 축하해주고 있다. 그렇게 축복해주지 않으면 딸은 생리는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는 마이너스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축하해 주기는커녕, 딸의 생리에 대해 거의 언급하려 하지도 않는다.
요즘도 첫 생리 때 축하 받은 소녀의 수는 전체의 10%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은 여성의 신체에 대해 현실적인 감각을 인식하지 못한 채, 여성의 신체적 변화는 대단한 게 아니라고 여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말하자면 너무나 소극적인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다. 첫 생리는 소녀의 인생에서나 신체적으로 매우 소중한 변화임을 알려주어야 한다. 딸의 첫 생리를 축하해주고 그것에 대해 올바르게 가르쳐주면, 딸은 가족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여성,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또한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육체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갖게 된다.
아들이 어머니를 에로틱한 존재로 본다든지(남자아이가 어머니를 차지하려는 것 = 오이디푸스는 '정상적인 것'이며, '정상적인 남성은 여성을 갈구한다'는 것), 혹은 어머니가 동세대의 남성들에게 에로틱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문화적으로 인정된 사항이다. 그런데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서는 이와 같은 사항이 거의 인정되지 않고 있다. 어머니와 딸 모두 서로를 섹슈얼한 존재로 여기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문화적으로 여성의 성적 주체성에 대해서는 모른 체 외면한다. 이와 같은 터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여성은 서로 충실하지 못하고, 불신감을 품은 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 여성은 서로를 전인격적인 존재로 봐야 하며, 인생에서 성실한 친구나 동료 관계를 유지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여성이 지니고 있는 성적인 아름다움을 비난한다든지, 보거나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만약 우리가 그런 것에 대해 침묵한다면 여성들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사회구조는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다. 우리 여성에게는 다른 여성과 인생을 서로 나누며 기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직장 내의 여성 관계는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매스컴에서는 여성의 변화라 하면 결혼생 활의 변화를 들고 있지만, 실제로 남성 관계뿐만이 아니라 사생활이나 직장 내에서의 여 성 관계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여성은 직장에서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여성이 비서를 두는 일도 이전에 비하면 상당히 많아졌으며, 여성을 상사로 모시는 경우도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물론 여성 동료들도 많이 늘어났다.
직장에서 여성 관계가 중요하게 자리잡은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통계적으로 보면, 아직까지 임금은 남성보다 낮지만 이전보다 좋은 자리에서 일하고 있으며, 여성의 구매력도 높아졌다. 따라서 여성은 쇼핑이라는 행위로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여 성이 차지하는 비즈니스도 그 수가 부쩍 늘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서로 협력하며 진행해 간다면 기업의 대외적인 이미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 이것이 세상을 바꾸는 첫 단계이다.사회를 효과적으로 구성하고 있다는 계급이라는 개념에 안도감을 느끼는 여성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사회는 스포츠 팀처럼 군대식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은 그런 계급 속에서 다른 여성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불안해한다. 직장의 동료 여성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을까? 적대 관계가 되기 쉬운 건 아닐까? 그녀들을 어머니나 딸처럼 대해야 하는 걸까?
여성은 다른 여성과의 연대와 우정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욕구는 계급으로 나누어진 직장과는 어울리는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여성은 새로운 방법(이것 역시 계급이긴 하지만)으로 직장관계를 구성하려고 한다. 그러나 "여자는 논쟁만 하고 있다. 특히 비즈니스 사회에서는 서로 협력할 생각은 하지 않으며, 심각한 문제의 결정은 모두 남성에게 맡겨버린다."는 식의 고정관념이 나도는 분위기에서는 어쩔 수 없이 부단한 노력을 필요로 하게 된다.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와중에서도 여성들은 조금씩 자각하여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다. 여성들 자신이 변하면 사회가 변하는 법이다. 여성의 변화는 업무 면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여성들이 연대를 통해 새로운 힘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 힘은 파괴적이 아닌, 지극히 건설적인 것으로, 세계적으로 퍼져 가고 있다. 새로운 힘이 창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 힘은 비즈니스 분야에서 다음 세기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여성의 유산이다. 그것은 19세기의 여성 참정권 운동이 20세기에 열매를 거둔 것처럼, 21세기에 활짝 꽃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목표로 살아가야 한다.제7장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들
- 우리는 여자끼리 결혼했다텔레비전을 켠다. 드라마가 있다. 뉴스, 토크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도 있다. 거기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여성 두 사람이 함께 화면에 비치는 경우는 극히 드물 다. 한 통계에 따르면 남성들끼리 등장하는 장면에 비해 여성들끼리 등장하는 경우는 겨 우 6%에 불과하다고 한다. 어째서 매스컴에서는 여성간의 우정을 다루지 않는 걸까? 여성 간의 관계를 얘기하면 "여자는 다른 여자에게 심술을 부릴 뿐이다."라든가 "여자의 우정 이라니? 레즈비언이냐!"라는 식으로 왠지 부정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사실 여성 사이에는 수많은 우정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도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어져 내려왔다. 그리고 지난 20년 사이에 여성의 우정에 대한 견해도 크게 바뀌었다. 경 제적으로 독립한 여성들은 우정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커다란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매 스컴에서는 여전히 그러한 변화를 찾아보기 어렵다. 매스컴은 여성간의 관계에 대해서 거 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의 매스컴에서도 여전히 '여자는 골치 아픈 존재'라는 전형적인 사고방식이 일반화 되어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정말 골치 아픈 풍자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은 자신 의 개성을 드러내면 안 되는 걸까? 남성 역시 여성 이상으로 골치 아픈 존재라는 사실은 정치 세계만 보더라도 한눈에 알 수 있다. 여성의 골치 아픈 면만을 내세워 왈가왈부하는 것은 여성을 왜소화시키는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오늘날의 여성은 서로 상대방을 애정과 배려로 감싸주고 있으며, 남성과 마찬가지로 질투나 욕망과 같은 격정을 밖으로 드러낼 뿐이다. 현재 여성간의 우정에 대한 중요성은 이전보다 한층 더 커지고 있으며, 이제는 좀더 분명해져야 할 시기가 되었다.여성에게는 분노를 표출할 권리가 있다. 화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은 아니겠지만, 분노나 싸움이 분위기를 정화시키고 사물의 본질이나 문제의 핵심에 접근토록 만드는 경우도 있 다. 하찮은 일로 싸운 뒤에 그것을 꼼꼼하게 검토해 보니 실태가 분명히 드러났던 경험은 누구라도 있을 것이다. 여성의 싸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여성의 심리에 관한 이제 까지의 모든 지식을 버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보봐르는 "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로이트를 잊어야 한다."라고 했다. 나는 이와 더불어 프로이트가 남긴 유산도 함께 버 릴 것을 제안하고 싶다. 프로이트가 여성의 행동에 대해 내린 결정은 20세기 초반의 사회 체제가 초래한 편견을 그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일방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나이를 먹음에 따라 출산에 곤란을 겪기 때문에 어느 연령까지는 결혼하는 게 좋다는 '생물학적 시간 개념'을 바탕으로 여성에게 결혼을 재촉한다. 그러나 나는 "여성은 결혼하면서 비로소 어엿한 어른이 되는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경험론이 여성에게 열등감을 심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추구하는 여성상에 따르자면, 여성은 결혼하기 전까지는 사회에서 설자리가 없다.
여성이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1997년, 이란 정부는 강제적으로 행해진 결혼은 무효이며, 그와 같이 행동하는 자는 이슬람교도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여성에게는 자신이 결혼하고 싶은 남성과 결혼할 권리가 있는 것이며, 서구의 여성들은 오래 전부터 이 권리를 획득하고 있다. 그것을 역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남성을 선택하지 않을 권리, 즉 결혼하지 않을 권리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획득하지 못한 것 같다. 우리 여성이 남성과의 관계에 의해 평가되는 상황은 과연 변했을까? 대답은 '글쎄'이다.자매는 특수한 관계다. 일반적인 여성간의 관계와는 다른 특별한 사이다, 말하자면,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된 것으로,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오늘날의 사회에는 '자매는 항상 사이가 안 좋다.'든지 '자매는 서로 질투하는 법이다.'라는 식의 고정관념이 나돌고 있다. 오래 전부터 그런 사고 방식을 지니고 있는 사회 환경에서 자매가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또한, 여성들을 전반적으로 비협조적인 존재라고 단정짓는 것도 바로 이 사회다.
즉, 사이가 나쁜 자매를 만들어내는 요인 중 하나는 그녀들이 살고 있는 사회적 환경이다. 여자아이는 어렸을 적부터 사내아이가 태어났을 때 가족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사회적 통념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런 사고방식이 존재하는 한, 여성은 자신들의 가치를 정상적으로 되돌려놓기 위해 이 사회에 대항해야 한다. 왜 자매들은 형제들보다 다툼이 잦은 걸까? 자매는 적은 자원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고 있는 듯싶다. 이른바, 딸들에게 주어지는 제한된 애정이나 소액의 교육비, 의상비 등과 같은 지출을 가능한 한 자신의 몫으로 만들려고 서로 다투는 것이다.
여성은 마음속 깊이 다른 여성과의 교제를 원하고 있다. 그래서 현대사회에서 '두 여성'은 가장 일반적인 여성간의 관계라는 사실을 이론화시킬 필요가 있다. 여성은 비밀을 공유하고 싶어한다. 이것은 '세상'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 상관없이, 여성은 자신의 눈으로 사물을 보거나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밀'과 '내적 사고'의 공유는 여성의 우정과 주체성에 불가결한 요소이다. 서로 공유하면서 만들어낸 '진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사회와 삶을 제공해준다. 이것이 우리가 다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사람에게는 따스한 애정과 육체적 접촉이 필요하다. 포옹이나 스킨십을 받지 못한 아기는 최악의 경우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어른들은 이에 대한 필요성을 섹스라는 행위로 해결하고 있다. 신체적 접촉이라 하면, 흔히 성적인 것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포옹하고, 키스하고, 함께 잠자고, 함께 외출하고, 목욕탕에 들어 가 함께 인테리어를 의논하는 식의 우정 관계도 있다. 이런 관계는 '성적'일 필요가 없으 면서도 상당히 친밀하고 쾌락적이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이 이런 관계를 가질 기회를 저 지 당하고 있다.
신체적 애정이 결여되면 여성간의 우정을 장기적으로 이어나갈 연대감이 생기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