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성경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 작가정신
서문이 요약 복음서는 제목에서 보듯이 네 개의 복음서를 정리한 것이다. 나는 복음서의 원래 순서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전해주었던 가르침의 의미를 기준으로 복음서를 재정리하고자 한다. 따라서 복음서를 모두 12장으로 나누어 정리한 것은 가르침의 의미에 따른 것이다. 각 장이 지닌 의미는 목차의 내용과 다르지 않다. 또한 나는 각 장이 서로 인과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애썼다.
나는 복음서에 담긴 모든 것을 하나도 빼놓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정통으로 인정하는 복음서를 나름대로 해석한 이 책에서 약간의 모순이 발견되더라도, 네 복음서 자체를 오류가 없는 성서로 인정하는 관습 자체가 커다란 오류라는 사실을 독자는 잊지 말아야만 한다. 예수는 플라톤이나 필로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는 달리 어떤 저술도 남기지 않았다. 또한 소크라테스가 그랬던 것처럼, 학식이 뛰어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가르쳤고, 사람들은 그가 죽고 난 후에야 예수에 대해 들었던 바를 기억하여 글로 남기기 시작했다.
나는 기독교 정신을 포괄적인 신의 계시로 해석하지도 않으며, 역사적 현상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주었던 가르침으로 해석할 따름이다. 내가 기독교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바로 이런 해석 때문이었다. 기독교 정신의 핵심은 네 복음서에 담겨 있었다. 네 복음서에서, 나는 진실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을 인도해주는 성령의 설명을 발견했다.
과거에는 그런 성령의 빛을 알지 못했고, 우리의 삶에서 진리의 빛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사람이 그 빛에 의존하며 살아간다는 확신을 얻은 후, 나는 그 빛의 근원을 찾기 시작했고 마침내 복음서에서 그 근원을 찾았다. 그 빛의 근원에 이르렀을 때, 내 자신의 삶과 다른 사람들의 삶이 지닌 의미에 대해 오랫동안 품어왔던 의미에 완전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따라서 독자가 기독교의 믿음 속에서 자랐지만 상식과 과학에 어긋났던 까닭에 그 믿음을 포기했던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담긴 사랑과 존중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거나, 아니면 벼룩을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워버리듯이 모든 기독교 교리를 불필요한 미신으로 생각하던 간에 -, 그를 기독교에서 멀리하게 만들고 미신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던 부분들은 결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의 가르침을 짜깁기하여 만들어낸 괴물 같은 전통을 기독교 교리라고 내세우는 현재의 기독교에 그리스도가 책임져야 할 이유는 없다. 또한 편견에 찬 기독교 교리도 그리스도의 진정한 가르침에는 모순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이런 방향에서 다시 읽어보면, 독자는 기독교 교리가 저급한 것과 고상한 것을 뒤섞어 놓은 것이나 미신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를 수 없는 너무도 순수하고 정확하며 완전한 형이상학과 윤리를 담고 있음을 몸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실천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될 것이다.
제1장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자손으로서, 인간은 육신으로는 연약하나 영혼으로는 자유롭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요한의 가르침을 듣고, 예수는 광야로 나가 인간의 삶이 지닌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또한 하나님이라 불리는 모든 것의 무한한 근본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예수는 요한이 하나님이라 부르는 모든 존재의 무한한 근본을 그의 아버지로서 받아들였다.
광야에서 금식하며 며칠을 보낸 후, 예수는 배고픔의 고통을 이겨내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도 그 분만큼이나 전능해져야만 한다. 그러나 당장 무엇인가를 먹고 싶고, 배고픔을 채울 빵 조각조차 창조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전능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의 생각은 계속되었다. '그래, 나는 돌로 빵을 만들 수 없다. 하지만 배고픔을 이겨낼 수는 있다. 따라서 내가 비록 육체적으로는 전능하지 못하더라도, 정신으로는 전능하여 육신의 고통을 억누를 수 있다. 결국 나는 육신이 아닌 정신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성령의 아들이다. 따라서 육신을 포기할 것이며, 육신을 버릴 것이다." "나는 성령으로 사람의 몸으로 태어났다. 그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다. 아버지의 뜻을 거역해서는 안 된다." 나는 육신의 욕망을 채울 수 없으며, 육신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그러나 내 생명은 내 아버지의 성령이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사람의 몸으로 성령을 섬겨야만 하고, 오직 아버지만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
이렇게 사람의 참된 생명이 하나님의 성령에만 있다는 확신을 얻은 후, 예수는 광야를 떠나 사람들에게 그런 가르침을 전하기 시작했다. 예수는 이렇게 가르쳤다. 성령이 사람의 마음속에 계시고, 이제부터 하늘의 문이 열렸으며, 하늘의 권세가 사람들을 찾아오면서 자유롭고 무한한 생명이 사람들을 위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사람이 비록 육신에서는 불행할지라도, 하늘의 왕국에서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 가르쳤다.
제2장 하나님을 섬기는 법- 그러므로 사람은 육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하늘에 계신 분이시여!"
올바른 믿음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은 피상적인 하나님을 숭배할 따름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을 숭배한다면 그들을 도와주실 것이라 약속했던 피상적인 하나님이었다. 그런 약속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달리 말했다. "안식일은 사람이 만든 제도일 따름이다. 사람이 성령으로 살아야만 한다는 것은 어떤 외형적 제사보다도 중요하다. 종교의 모든 외형적 형식과 마찬가지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잘못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너희는 안식일에 어떤 일도 하지 못하도록 금한다. 그러나 선한 행동은 때를 가리지 말고 행해져야만 한다. 만약 안식일이란 이유로 선한 행동을 금한다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잘못이다."
유대의 바리새파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나님과의 약속에는 또 다른 조건이 있었다.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피하라는 것이었다. 그런 조건에 대해서 예수는 "하나님은 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사람이 서로 사랑하기를 바라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약속의 조건에는 몸을 깨끗이 하라는 것도 있었다. 예수는 이 조건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겉으로 깨끗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다."고 말했다.
덧붙여 예수는 외형만을 따지는 율법은 해로운 것이며 교회의 관습 자체가 악이라고 말했다. 교회의 관습은 부모에 대한 사랑과 같은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고, 그런 관습을 전통이란 울타리 속에서 정당화시키고 있었다. 또한 사람을 스스로 더럽혔던 존재로 생각하게 만들던 옛 율법의 법규에 대해서도, 예수는 "너희 모두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밖에서 비롯되는 것은 어떤 것도 사람을 더럽힐 수 없다. 오직 생각과 행동만이 사람을 더럽힐 따름이다."고 말했다.
그후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곳은 성지로 여겨지던 도시였다. 예수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라 생각하던 성전으로 들어갔다. 성전에서 예수는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것은 불필요한 짓이며, 성전보다 사람이 더욱 중요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의무는 이웃을 사랑하며 돕는 것이라 말했다.
덧붙여 예수는 어떤 특정한 장소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이 아니며, 성령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가르쳤다. 성령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며 겉으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성령은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됨을 깨닫는 것에서 주어진다. 성전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다. 참된 성전은 사랑으로 맺어진 사람들의 모임이다. 예수는 하나님을 겉으로 섬기는 것은 거짓일 뿐 아니라 나쁜 결과를 낳게 되므로 해로운 것이라 말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형벌이란 핑계로 살인을 저질렀고, 부모를 무시하도록 부추겼다. 겉만 화려한 제사를 행하는 사람은 스스로 정의로운 사람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사랑이 요구하는 것을 행해야 하는 의무마저 잊고 말았다. 그러나 예수는 선한 것만을 추구하고, 선한 행동만을 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불완전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선한 행동을 하기 위해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야만 한다.
그러나 외형적 믿음은 거짓된 자기 만족을 안겨줄 따름이다. 외형적 믿음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외형적 믿음을 버려야만 한다. 사랑으로 충만한 행위는 제사란 형식과 양립될 수 없다. 선을 그런 식으로는 이룰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적인 아들이므로, 성령으로 아버지를 섬겨야만 한다.
제3장 생명의 원천- 우리 모두의 생명은 하나님의 성령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를 찾아서 "하늘의 왕국"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고, 예수는 그들에게 "내가 가르치는 하늘은 요한이 가르쳤던 하늘과 똑같다. 이 땅에서 비록 가난했던 사람이더라도, 하늘의 왕국에서는 모두가 행복하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예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요한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이 외부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 속에 있는 것이라 가르쳤던 최초의 예언자였다. 바라새파 사람들도 요한의 설교를 들었지만, 아무 것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외형의 하나님에 대해서만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 외형적인 것만을 가르치면서, 아무도 그들의 가르침에 귀기울이지 않는 것에 놀라워한다. 하지만 요한은 하나님의 왕국이 우리 안에 있다는 진리를 가르쳤다. 그러므로 요한은 예전의 어떤 예언자보다 많은 일을 해냈다. 그의 가르침이 있었던 까닭에, 하나님의 왕국이 사람의 영혼 안에 있다는 것이 더욱 확실해졌다."
사람의 영혼은 모든 것의 시작이며 끝이다. 사람들은 육신의 아버지에 의해서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임신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자유롭고 지적이며 육신과는 독립된 성령이 그의 안에 있다는 사실도 깨달아야만 한다.
무한한 공간에서 비롯된 영원한 성령은 모든 것의 근본이며, 우리가 하나님이라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내면 세계에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 성령은 우리 생명의 원천이다. 우리는 성령을 무엇보다 높이 두어야 하며, 성령으로써 살아야만 한다. 성령을 우리 삶의 근본으로 삼을 때, 우리는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아버지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런 성령을 주신 것은 우리를 속이기 위함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의식하면서 그런 생명을 잃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이처럼 무한하신 성령이 사람에게 주어진 것은 성령을 통해서 사람이 무한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이 성령을 자신의 생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무한한 생명을 갖게 되겠지만, 그 성령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은 참된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생명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삶과 육신에서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삶은 선이고 빛이다. 그러나 육신의 삶은 악이고 어둠이다. 성령을 믿는다는 것은 선한 행동을 한다는 뜻이며, 믿지 않는다는 것은 악을 행한다는 뜻이다. 선은 생명이며, 악은 죽음이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모든 시작 중의 시작이지만, 우리는 그 분을 알지 못한다.
우리가 그 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렇다. 밭에서 씨뿌리는 사람이 가리지 않고 모든 곳에 씨를 뿌리듯이, 하나님도 사람들에게 성령을 뿌리셨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잘 자라겠지만, 척박한 땅에 떨어진 씨앗은 죽고 말 것이다. 성령만이 사람에게 생명을 주신다. 성령을 보존하느냐 잃느냐 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렸다.
성령 앞에서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악은 삶의 망령이다. 이 세상에는 생명이 있는 것과 생명이 없는 것이 있을 따름이다. 세상은 이렇게 사람들 앞에 주어진다. 모두가 자신의 영혼 안에 하늘의 왕국에 대한 깨달음을 간직해야 한다. 하늘의 왕국에 들어갈 것이냐, 아니냐는 누구나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령의 생명을 믿어야만 한다. 그런 생명을 믿는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이다.
제4장 하나님의 왕국-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생명이요, 우리는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당신의 왕국이 오고 있다."
예수는 사람들이 참된 행복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을 불쌍히 여겨 가르침을 주었다. "재산과 명예가 없는 사람들, 그런 것들을 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축복이 있으리라! 재물과 명예를 탐하는 사람들은 불행하리라!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 안에 있지만, 부자와 명예를 가진 사람은 짧은 삶 속에서 사람들에게 보상을 탐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가난하고 경멸받는 것을 두려워 말라.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라.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과 행복을 주시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다섯 가지 계명을 지켜야 한다. 첫째, 누구에게도 욕하지 말라. 이는 화나게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며, 악은 악을 낳기 때문이다. 둘째, 여자를 탐하지 말며, 한번 결혼한 여자를 내쫓지 말라. 아내를 내쫓고 바꾼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방종을 일으키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셋째, 어떤 종류의 맹세도 하지 말라. 사람은 어떤 약속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권세 안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맹세는 나쁜 목적으로 행해지기도 한다. 넷째, 악에게 저항하지 말며, 남을 심판하지 말며, 법정으로 달려가지 말라. 나쁜 것은 참아 넘기고, 사람들이 요구하는 이상의 것을 해주어라.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이며, 다른 사람을 끌어갈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복수를 하게 되면, 당한 사람도 우리에게 똑같이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내 이웃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말라. 모두가 한 하나님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이 다섯 가지 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칭찬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너희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거나 금식하지 말라.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아신다. 필요한 것은 아버지의 뜻 안에 있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은 우리가 누구에게도 증오심을 품지 않는 것이다. 금식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에게 칭찬 받기 위해 금식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아버지의 뜻 안에서 살 수 있기를 간구해야 한다. 그러면 나머지는 저절로 찾아올 것이다.
육신의 일로 걱정하는 사람들은 하늘의 왕국에 들어올 수 없다. 사람은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 아버지께서 생명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현재의 시간에 아버지의 뜻 안에 있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성령의 힘을 주시기를 원하라. 5계명은 하늘의 왕국으로 가는 길을 보여준다. 그 좁은 길만이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줄 것이다.
양의 탈을 쓴 거짓된 선생들을 조심해라! 거짓된 선생들은 선의 이름으로 악을 가르치기 때문에 쉽게 구분할 수 있다. 폭력과 형벌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거짓된 선생들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아버지의 뜻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선한 것을 행하는 사람이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5계명을 행하는 사람은 그에게서 어떤 것도 빼앗을 수 없는 안전하고 참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5계명을 행하지 않는 사람은 그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가고 아무 것도 남겨놓지 않는 불안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제5장 진실된 삶- 사람의 뜻을 만족시키면 죽음에 이를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만족시키면 진실된 삶을 얻을 것이다.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