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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린다

요쉬카 피셔 지음 | 궁리
막다른 골목에서



1996년 여름, 나는 181센티미터의 키에 112킬로그램이나 나가는 거대한 몸을 이끌고 다녔다. 숨이 찬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난 후 저울은 75킬로그램을 가리켰다. 호흡도 편해졌다. 나는 그 사이 어떤 체중 감량 치료도 받지 않았고, 어떤 약물도 복용하지 않았으며, 특별한 식이요법이나 그밖에 날씬해지기 위해 사람을 고용하는 데 돈을 쓰지 않았다.

나는 공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고 대중의 관심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한 급격한 신체변화를 숨길 수가 없었다. 나의 신체 변화는 대중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나는 언론의 관심을 피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비만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질문과 편지를 받았다. "피셔 씨, 당신의 다이어트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 질문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밖에 없다. 어떤 비결도 없다. 요쉬카 피셔의 기적과 같은 다이어트 비결은 존재하지 않는다.

1996년 나는 갑자기 개인적인 위기를 맞게 되었다. 거의 파국 상태라고 느낄 정도였다. 나는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파멸할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결혼 생활이 깨진 것 말고도, 개인적인 생활태도, 나의 외모, 생각까지 완전히 무너질 것 같은 절박한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나는 무엇인가 근본적인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50살의 문턱에서 나는 나의 삶 전체를 변화시켜야만 했고,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 자포자기 상태에 빠질 수는 없었다. 그런 결심을 하고 실천하자 생활이 제대로 되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놀랄 정도로 말이다.

전문가들과 전문 지식이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결심을 실행에 옮기는 과정을 거치면서 관심을 갖게 된 후에야 도움이 되었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은 나 자신의 개인적인 결심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내 자신의 의지가 이런 길을 실행하고 끝까지 어떤 결실을 볼 수 있게 만든 근본 힘이라는 것이다. 전문적인 조언이나 충고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결심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추진력이다. 필요 이상의 몸무게로 겪는 고통만으로는 그런 결심을 하기에 충분치 않다. 더 근본적인 것이 필요하다.

닥치는 대로 먹었다



내 몸무게가 결정적으로 빠르게 늘어나는 쪽으로 자리잡은 것은 1985년 12월 헤센 주의 환경부 장관으로 공직에 처음 취임하면서부터다. 내가 1985년 환경부 장관으로 지명되었을 때 내가 소속되어 있었던 녹색당은 정권 참여 문제로 심하게 분열되어 있었다. 반면 연립정권 파트너였던 사민당은 산업과 노동정책에 대해 거의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1986년 4월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에서 핵 누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연립정권은 의견 충돌을 심하게 일으키고 난 후 상호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다. 당시 나는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녹색당 출신 환경부 장관이었다. 녹색당은 반핵 정당이다. 그러므로 나는 공적인 관점에서나 당의 입장에서도 핵구름이 몰고 올 결과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방사능으로부터의 보호는 사민당의 사회부 장관 소관이었고, 핵 감시와 에너지정책 역시 경제부 장관 소관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권한이 없었다. 나는 생태학 관련 전문성 때문에 당원들이 환경부 장관으로 선출한 것이 아니라 녹색당이 처음으로 정권에 참여한다는 현실적인 이유에서 나온 정치적 포스트임을 잘 알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이 끊이질 않았다. 문제 해결에 대한 압박감은 계속 커지고, 책임감도 점점 무거워졌다. 스트레스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쌓이고, 어디에도 탈출구는 보이질 않았다. 도망갈 비상구도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을 공격하는 여러 요소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무장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먹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나는 정신과 육체를 위해 항상 팽팽하게 불룩해진 배를 지닌 모습을 한 철갑 옷을 입게 되었다.

나의 살찐 시절의 끝 무렵, 나는 이제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 개인적으로 자포자기하는 시점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단식과 폭식을 오가는 사이 몸무게가 줄었다 늘었다를 반복하는 요요 현상이 일어났다. 굶을 때는 몸무게가 천천히 빠지지만 고통에 찬 단식의 기간이 끝난 후에는 항상 그래 왔듯이 급격하게 다시 살이 찐다. 금식을 했다가 중단했다가 하는 것을 반복하는 동안 내 몸무게의 최고치는 매년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지옥에 떨어지는 것 같은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위기의 폭발



내게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아내가 나와의 결혼 생활 13년을 청산하고 결별을 선언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는 것 같았다. 정서적으로 위기감이 몰려왔고 짧은 기간 동안 나의 모든 생활이 깨져 버렸다. 이혼이라는 현실이 눈앞에 놓여 있고 이제 나에게 길고 혹독한 고통의 시간이 닥쳐올 것이라는 것을 감지하는 순간, 나는 나의 생활 전반에 대해 중대한 결정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느꼈다.

계속 이런 식으로 살다가 결국 파멸할 것인가?, 아니면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하여 내 개인 생활의 모든 프로그램을 완전히 변화시키고 나를 되찾기 위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할 것인가? 나는 후자를 택했다. 나는 아주 짧은 순간에 엄청난 결정을 했다. 그 순간 나는 1985년 젊은 시절의 이상적인 체형으로 되돌아갈 것을 결심했다. 커다란 와이셔츠를 벗어버리고 야구모자를 뒤로 썼다. 오래 전에 했던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다시 실천하기 시작했다. 우선 수영장 주변에서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는데 몇 번 못하고 바닥에 엎어졌다. 그러나 의미는 있었다. 정말 몇 년 만에 내가 다시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제 실천적인 발걸음을 내딛는 것은 내 자신에게 달려 있었다. 선택 대상에 오른 운동은 자전거, 수영, 달리기였다. 이 중에서도 달리기는 장비와 기술이 거의 필요 없기 때문에 나에게 딱 들어맞는 운동이었다. 단지 조금 문제가 되는 것은 내가 그때까지 한 번도 달리기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가지만 해도 단순한 달리기는 너무나 지루한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달리기를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달리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달리기는 기술적인 어려움이 거의 없다. 또한 장비도 운동화와 운동복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운동이고 게다가 엄청난 칼로리 소비를 보장해 준다. 이런 모든 이유에서 나는 달리기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운동화를 신고 새벽의 여명 속으로 뛰어나가면서 나의 새로운 인생은 시작되었다.

인생을 건강하고 날씬하게



1996년 9월말인가 10월초인가, 나는 처음으로 조깅을 하기 시작했다. 첫 발걸음은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너무나 많은 비곗덩어리를 매달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슬금슬금 기다시피 뛰었다. 나는 아주 천천히 시작했다. 그러나 백여 미터 뛰고 나면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나의 달리기는 이렇게 시작했다. 시작이 가장 중요했다. 거리나 시간, 자세 등 다른 어떤 것도 그 시점에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것의 초점은 시작과 지속하는 것에 있었다. 일단 시작하고 나자 이제는 마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흔들리지 않도록 그리고 포기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다. 참아야 한다. 참아내자. 다시 한 번 참아내자!

술 한잔이 다음 날 아침운동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를 느끼고 나자, 나는 점점 시원한 생수를 마시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러면서 술 마시는 양과 횟수가 조금씩 줄어들어 나중에는 거의 안 마시게 되었다. 또한 음식도 과일, 샐러드, 채소 등 채식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채식 위주의 식사로 변해 가는 데는 다른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단지 고기 맛을 잃었기 때문이다.

물론 배고픔이 나를 힘들게 하였다. 예전에 마음껏 먹고 마셔대던 시절이 절실하게 그리워졌다. 포도주 한 잔 맛보았으면, 싶은 유혹도 생겼다. 그러나 몇 주가 더 지나자 그런 것에 대한 욕구도 사라졌다. 아침부터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항상 자명종이 울리고 나면 아침부터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같은 과정을 밟았다. 결코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나는 새벽부터 이를 악물고 매일 나 자신과 싸웠다. 이런 새벽운동을 하면서도 나는 내 자신에게 조금의 관용도 베풀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을 밀고 나가도록 만드는 내적인 힘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서 조금 게으름을 피우게 된다면 나는 꺾일 것이 분명했다. 리듬을 타려면 어떤 경우라도 예외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특정한, 자기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프로그램에 따라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 프로그램은 상황마다 표현되는 개인의 인격적 특성과 자신이 살아온 삶의 우연과 주어진 환경이 결합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또한 의식적인 결정의 결과가 아니라 대부분 개인과 집단을 둘러싼 생활환경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우연의 결과다. 우리는 매일같이 이런 프로그램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솔직히 나는 뚱뚱해질 수밖에 없었던 나의 뿌리 깊은 프로그램을 변화시킬 용기와 추진력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의 생활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하루 일과인 양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고, 나의 전체 생활 태도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적인 생활 리듬을 바꾸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세우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급속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살을 빼는 데 성공했다. 이전에 수없이 시도한 살빼기는 항상 고통스럽게 실패로 끝났지만 이젠 성공한 것이다. 생활 습관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만이 살빼기에 성공할 수 있고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다. 진탕 마시고 엄청나게 먹던 나의 급한 성격을 운동할 때마다 매번 거리를 늘려 가는 쪽으로 활용하였다. 요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달리면 즐겁다!

달리고 또 달리고 계속 달린다



오늘도 아침 8시부터 밤늦게까지 여러 일정에 쫓겼다. 국빈을 맞고 각종 회의를 하고, 사무실에서 잡다한 협의와 인터뷰를 하고, 마지막에는 조그만 방에서 연방총리와 만나 의논하는 일 등, 밤 10시 반쯤이 되어서야 겨우 하루 일과가 끝났다. 이 시간이면 다른 사람들은 포도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지만 나는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거의 자정이 다 된 시간에 본의 거리를 1시간 가량 뛰기 위해 거리로 나서는 것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잠을 많이 자지 못했다. 독일 외무장관으로서 하루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미 몇 시간 전부터 계속 기진맥진한 상태이고, 마치 김빠진 맥주처럼 몸이 너무 피곤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휴식이다. 예전에는 술집을 가거나 단지 잠을 자는 것이 휴식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자정이 다 되었더라도 거리로 뛰어나가는 것을 휴식이라고 생각한다. 약 1시간 정도 10킬로미터를 뛰고 나서 땀에 젖어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새로 태어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생각과 피곤함이 완전히 사라진다. 골치 아픈 정치적인 문제가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다. 달리는 중에 때때로 머릿속에 놀라운 생각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사람들은 1시간 정도 달리고 나면 지칠 대로 지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로 좋은 휴식이 될 수 있다. 최소한 나도 이런 것을 경험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생각했다. 달리기는 사실 힘든 일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몸 전체를 긴장시키는 일이다. 몸 속의 모든 내장기관들이 활발히 움직이게 되고 산소를 가장 말단의 모세혈관까지 보내주기 위해 허파와 심장은 더욱 심하게 활동하게 된다. 그럴 때 머리는 명상을 할 수 있는 평정 상태에 놓인다. 바로 이때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생각들이 마치 스스로 기어 나오듯 연속적으로 떠오른다.

1997년 2월과 3월 사이에 나는 나의 달리기 생활의 가장 어려운 장애물 하나를 극복했다. 고통의 단계가 끝난 것이다. 이제 달리기는 몇 개월 전처럼 힘을 소진하는 육체적 고통이 아니었다. 이제 나는 달리기를 즐기기에 충분한 기본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달리기를 하는 동안 내 몸의 어느 부분도 고통 받을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장거리 달리기라는 다른 차원을 열어 젖힐 수 있게 되었다. 내 몸 상태는 점점 더 좋아졌고 거리는 계속해서 늘어갔다.

나의 달리기 성과와 내가 설정한 제한 시간 이전에 목표를 달성했다는 사실을 나는 상당히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성공이라고 하는 것은 동시에 한 단계를 종결짓는 것이다. 그럼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라인 강이 나에게 답을 주었다. 눈앞에 보이는 저 먼 곳을 새로운 도달 목표로 세운 것이다.

1997년 부활절 무렵, 「함부르크 일러스트」에서 연락이 왔다. 한 편집인이 나와 함께 달리고 싶다는 말과 함께 건강 특집기사를 쓰겠다고 했다. 아주 날씨 좋은 봄날 그 편집인과 함께 라인 강변을 달렸다. 사진기자 한 명이 자전거를 타고 우리를 쫓아왔다.

달리기가 끝나자 기자는 예상했던 질문을 던졌다. "마라톤에 한번 도전해 볼 생각이 있는가?" 나는 "못할 것 없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나의 야심찬 달리기 목표는 기자를 증인으로 발표된 셈이 되었다. 이미 말한 것은 엎질러진 물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완전히 달랐다. 왜냐하면 성급하게 말해버린 내 의도가 2주 후, 스포츠 잡지에 실렸기 때문이다. 그 스포츠 잡지는 다음 해에 마라톤에 도전하는 것이 나의 계획이라고 실었다.

나의 첫 번째 마라톤



나는 요즘 편안한 마음으로 건강하게 살고 있다. 내가 육체적으로 나 자신을 포기했던 시절은 이제 과거가 되었다. 만약 일년 전에 누군가가 요쉬카 피셔는 50세 생일에 몸무게가 단지 75킬로그램밖에 안 될 것이고 마라톤 대회에 나갈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그 사람을 심하게 비웃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젠 어떤가? 나 자신에 대해 진심으로 자부심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나는 성공했다. 늪에서 혼자 힘으로 기어 나온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다시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이제 달리기는 살빼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다른 생활 스타일을 추구하고자 하는 활동이다. 달리기는 나의 생활에 있어 최우선 순위가 되었다. 달리기는 또한 나의 새로운 생활에 분명한 틀을 만들어주었고 방향과 받침대를 마련해 주었다. 나는 새로운 생활 리듬을 발견했고 이제 이러한 리듬을 깨는 그 어떤 것도 내 일상생활에 끼여들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나의 거의 완벽한 성공은 주변 사람들에게 점점 위협적인 것이 되기 시작하였다. 나에 대해 자꾸만 병을 언급하는 것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자기방어가 숨어 있었다. 진지하게 나를 걱정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급격한 육체의 변화가 계속 유지되고, 50살 먹은 정치가가 매일 스트레스 받는 생활 속에서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면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비만을 보다 진지하게 생각할 것이다. '왜 나는 그렇게 살을 빼지 못할까?'라고.

나는 드디어 나의 50회 생일 일주일 후에 열리는 함부르크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기로 했다. 트레이너는 반드시 훈련일지를 쓸 것을 강조했다. 나의 훈련일지에는 몇 가지 특이한 경험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1997년 12월 15일, 나는 눈이 퍼붓는 날 밤에 빈의 프라터 공원을 달렸다. 16일에는 베른에서, 17일에는 취리히에서 눈 속을 달렸다. 12월 30일에는 10킬로미터 내 최고 기록인 53분을 기록했다. 1998년 2월 1일 일요일, 25킬로미터 장거리를 2시간 14분에 뛴 것으로 적혀 있다. 칼날같이 추운 바람, 혹독한 날씨, 영하 2도. 나는 이 날의 달리기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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