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잠복수사
박경미 지음 | 메디치미디어
사춘기 잠복수사
박경미 지음
메디치미디어 / 2026년 7월 / 200쪽 / 18,000원
강력범보다 어려운 사춘기
냄새를 삼키고 걷는 아이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터전을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지역만 바뀌었을 뿐 공부라는 뜨거운 냄비는 여전히 테이블 중앙에 놓여 있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죠?” 학원과 학교 정보는 테이블 위를 연신 오갔다. 질문 속 ‘어디’에 아이 생각은 없었다. 특목고, 명문대 그리고 전문직. 아이가 도달해야 할 등급과 직업만이 중요했다.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인지, 부모가 정해준 길인지를 묻는 사람은 없었다.
우울증을 앓는 중학생 아이가 있었다. 지각 한 번 없는 성실함과 부족함 없는 환경을 갖춘 단정한 아이였으나, 그 입에서 나온 진심은 서글퍼 가슴이 죄어왔다. “학원에서 다른 학원으로 갈 때요, 고기랑 빵 냄새를 맡으면 배가 너무 고파요.” 학원으로 향하는 길목에 피어오른 고소한 냄새에도, 아이의 발은 오차 없는 시계처럼 다음 학원으로 향했다. “학원 안 가고 부모님이랑 고깃집에서 밥 먹는 상상을 자주 했어요.” 아이의 손에는 언제든 긁을 수 있는 부모의 신용카드가 들려 있었다. 그러나 혼자 고깃집 문을 열고 들어가 1인분을 주문할 수 있는 아이는 없다. 아이가 삼킨 것은 배고픔보다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부모는 아이의 스케줄을 관리했지만, 아이가 어떤 유혹을 견디며 걷는지는 알지 못했다.
나 역시 현실에 치이는 워킹맘이다. 바쁜 일정 때문에 “편의점에서 대충 사 먹어”라 말해놓고, 수없이 후회한다. 아이가 어릴 적, 야간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현관문 앞에 새우깡 한 봉지가 매달려 있었다. 삐뚤삐뚤한 글씨로 적힌 ‘수고하셨어요. 엄마’라는 메모를 발견했던 뭉클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 기억을 떠올려 포스트잇 한 장에 미안한 마음을 담아 책상 위에 두었다. ‘배고팠지? 주말에 다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사랑해.’ 종이 한 장으로 아이가 삼킨 냄새를 채워주지 못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아이가 말했다. 자신의 고단함을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을 얻는다고. 아이에게는 처음 겪는 이 길을 같이 걸어줄 누군가가 필요할 뿐이었다. 다행히 그것은 부모인 우리가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부모의 작은 수신호만으로도 다시 웃어 보였다. 그저 아이가 필요한 순간에 응답하고, 항상 옆에 있다고 신호를 보내는 일이면 충분했다. 아이의 사춘기 여정은 홀로 감당해야 할 몫이다. 길 위에서 그 고단한 보폭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만 있다면, 아이가 있는 곳은 더 이상 고립된 유배지가 아니다. 나는 오늘도 아이의 책상 위에 노란 포스트잇 한 장을 놓아둔다. 오늘 네가 삼킨 그 냄새를, 나는 충분히 알고 있다고.
얼어붙은 잉크영하 10도 이하였던 밤. 순찰차의 유리창 안쪽은 김이 서리다 못해 물줄기가 되어 흐르던 날이었다. 놀이터 구석에서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발견했다. 손끝이 벌겋게 얼어 있었다. “학생 집이 어디니? 추운데 데려다줄게.”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동자만 미세하게 떨릴 뿐이었다. 미동도 없는 모습에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부모가 찾으리란 생각에 인상착의를 적으려 수첩을 펼쳤지만, 볼펜 잉크가 나오지 않았다. 몹시 추운 날에는 볼펜 잉크마저 얼어붙곤 하는데 그날이 그랬다.
현장에서 만난 아동 심리 전문가들은 사춘기 아이들이 말을 잃는 것을 언어 능력이 잠시 정지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감정이 임계치를 넘으면 언어 회로는 뒤로 밀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쩌면 아이는 부모님의 “왜 그랬어?”라는 추궁에 대응할 답을 찾지 못한 채, 영하의 놀이터로 떠밀려 온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이의 대답을 기다리기로 했다. 무전기 잡음 속 긴 정적이 이어졌다. 기다림도 기술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러나 나는 그 기술을 집에서는 쓰지 못하고 있었다. 며칠 전 저녁 식사 후 첫째 아이가 동생에게 소리를 지르며 물건을 내리쳤다. “그렇게 화낼 일이니? 도대체 이유가 뭐야?” 숨 막히는 다그침에 아이는 눈물만 뚝뚝 흘렸다. “잘 모르겠어, 나도.” 그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반성하기 싫거나, 사과하지 않으려고 회피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날 이후로 한참을 똑같이 했다. “왜 그랬어”라고 다그치고, 대답이 없으면 회피한다고 단정했다. 얼어붙은 잉크로 계속 글씨를 쓰라고 강요한 셈이다. 써지지 않는 글씨를 두고, 왜 엉망이냐고 다그쳤다. 어쩌면 아이는 정말로 자신의 상태를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사춘기의 감정 폭발은 생각을 단어로 치환하지 못하는 언어의 미숙함에서 비롯된다. 어른들이 다그칠수록 판단받는 것이 두려운 아이는 입을 닫고 탈주하려고 한다. 어른들은 반항이라 부르지만 아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대피를 선택했다. 그 아이는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떼며 체념 섞인 목소리로 주소를 불러주었다. 나는 순찰차 뒷좌석에 앉은 아이를 보며 다짐했다. ‘방황과 반항을 혼동하지 말자.’ 아이가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할 때 투정이라 단정 짓지 않기로 한다. 그것은 간절한 구조 요청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얼어붙은 잉크가 녹을 때까지 체온을 전하는 일이다. 진을 쏙 뺀 채 돌아오는 아이를 안아주며 부축하는 일이다.
가시를 품은 나의 선인장닫힌 방 너머로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 진짜! 그런 거 아니거든?” 정작 우리와 마주 앉은 밥상 앞에서는 말이 없는 아이.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언제부터 우리가 네 삶의 바깥에 서 있게 되었을까. 묻고 싶은 것이 넘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느새 사춘기 아이는 선인장을 닮아간다. 보드랍던 살결 위로 가시가 돋고, 누군가 다가오면 몸을 바짝 세운다. 우리는 밀어내는 것이라 단정 짓기 쉽지만, 가만히 보면 모든 가시가 상처를 입히기 위해 돋아난 것은 아니었다. 어떤 것은 가까이 다가가야 보일 만큼 작았고, 어떤 것은 손끝에 닿아도 아프지 않았다. 그것은 더 이상 다치지 않기 위해 내민 것임이 분명했다. 사춘기는 미처 여물지 않아서 풋내가 나고, 가시 아래 살은 연약한 시기다. 아직 다 자라지 않았는데 더는 아이도 아닌 시간, 그 경계에서 아이는 스스로를 지키려 애쓴다.
지난 주말, 지하철 안에서 아이의 옆얼굴을 보았다. 짙게 내려앉은 구레나룻, 각이 잡힌 턱선. 인중 위로 희미하게 돋아난 수염까지. 기억 속 소년은 온데간데없고 낯선 사내 하나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릴 때는 작은 크기의 손톱 하나로도 나를 미소 짓게 했다. 이유 없이 이름을 불러 돌아보는 아이의 손을 꼬옥 잡고 다녔다. 아이가 하는 말이면 다 좋았다. “엄마, 저기 봐. 구름이 지렁이 같아.” 너무 집중한 나머지 혀를 내밀고 접은 종이 팽이를 내 핸드백에 넣어주기도 했다. “회사에 갖고 가서 놀아.” 그 오색 팽이는 한참 동안 내 모니터 앞을 지켰다. 사소한 일에 기쁨을 느끼던 여유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이제는 아이를 보면 해야 할 일들이 먼저 스쳐 지나간다. 저녁을 먹고 나서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아이는 헤드셋을 쓰고 있었고, 나는 내일 챙겨야 할 것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핸드폰이 울려서 보니 이번 달 학원비 결제 안내 문자였다. 옆에 앉은 아이의 교복 바지 밑단이 발목 위로 한참 올라와 있었다. 메모장에 ‘바지 구입’이라고 적었다. 마침, 다음 주 학원 상담 예약을 하려던 게 생각났다. ‘학원 상담’도 추가했다. 아이가 보던 책을 덮고 제 방으로 갔다.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걸, 아이가 사라진 뒤에야 알았다. 그때 학원비 결제 완료 문자가 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하루가 가고 계절을 지나왔다.
언제부터 아이가 감당할 ‘목록’이 되었을까. 나는 오랫동안 아이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 또 마중 나가도 돼?” 놀이터에서 놀다가 자전거를 끌고 퇴근길 중간까지 마중을 나오던 아이였다. 집 앞 사거리에서 나를 발견하면 어서 신호가 바뀌기를 바라며 통통 뛰던 모습. 그 얼굴이 생생한데 어느새 훌쩍 자란 외모에 나는 좋으면서도 쓰라렸다. 가시를 보고 비켜선 것은 나였다. 그 사이에 아이가 외로웠다면, 그건 내 몫이었다. 늦은 밤, 건조기에서 아이 옷을 꺼낸다. 따뜻한 김이 남아 있는 셔츠를 털어 뒤집힌 깃을 바로잡고, 구겨진 소매를 펴서 반듯이 접는다. 오늘 아이는 이 교복을 입고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기분은 어땠을까. 아이의 옷을 개는 지금이 오늘 아이를 가장 오래 본 시간이었다.
경찰관이 마주한 사춘기
눈 뒤집기 연습부모들의 하소연 속에는 공통적인 아이들의 모습이 하나 있다. 엄마의 말을 가로막으며 검은자를 위로 치켜올리는 표정이다. 요즘 사춘기 소녀들 사이에서는 일명 ‘눈 뒤집는 연습’이 유행이라고 한다. 흰자를 80% 넘게 드러낸 후 입술 사이로 “참나”라는 탄식을 뱉으면 된다. 여기에 팔짱을 끼고 상대를 내려다보는 태도까지 더하면 완벽한 반항의 얼굴이 완성된다. 이 부단한 연습의 결과물은 부모의 훈계 앞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말 한마디를 건네면 아이는 열 마디 공격을 퍼붓고, 감정이 격해지면 눈알을 하얗게 뒤집는다. 더는 간섭하지 말라는 압박의 표현이다.
눈빛이 변한 자녀를 보며 부모는 당황한다. 조언은 불필요한 참견으로 치부되고, 지속되는 대립을 참다못해 아빠마저 매를 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꼬인다. 울음과 고성이 섞인 집 안에서 갈등은 뫼비우스 띠를 그린다. 안타깝게도 사춘기는 외부의 어떤 경고도 제대로 닿지 않는 시기다. 눈을 뒤집지 않는다 해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부모를 애먹인다. 소통을 거부하는 아이에게 따지려다 이내 입을 닫는다. 직업병은 무섭다. 아이의 거친 말투에 죄명을 붙이고, 옳고 그름을 따져 처벌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다. 그래서 탐문을 멈추고 본심을 살펴보는 일은 유독 어렵다. 그렇다고 대화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대화가 사라진 가정에서는 아이가 정말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문을 두드릴 곳을 알지 못한다. 수시로 몰아치는 잔소리가 통하지 않는 걸 배웠기 때문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가령, ‘분기에 한 번, 제대로 대화’처럼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서 시도해 보기로 했다. 평소 말을 아끼던 부모가 건네는 진심을 외면할 아이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언젠가 그런 아이가 있었다. 건물 옥상에 아이들이 모여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숨을 헐떡이며 올라간 옥상 위에는 남녀 청소년이 섞여 있었고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멀리 서울의 다리를 가득 채운 자동차의 불빛들이 장관을 이룬, 나름 멋진 아지트였다. 막다른 곳이라 어디로 도망칠 수 없는 상황에서 옥상 문을 막아선 나를 보자, 한 여자아이가 작지만 분명하게 읊조렸다. “시발, 짜증 나는 년이.” 아이들을 모아 신분을 확인하고 수첩에 적어 내려갔다. 그 아이는 끝까지 팔짱을 끼고 있었다. 보호자 연락처를 묻는데 머뭇거리더니 외할머니 번호를 불러줬다. 그러다 엄마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외할머니 집에서 사는데 엄마가 연락을 안 해요. 실은 엄마 집에서 살고 싶은데 받아주지 않을 것 같아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분노를 유발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나조차 울컥하는 마음을 겨우 참아냈다. 애는 애였다. 엄마와 함께 하고 싶은 본심을 숨긴 채 밖으로만 나돌던 그 속은 얼마나 시리고 외로웠을까. 녀석을 외할머니에게 인계하고 돌아오는 길, 차창 너머로 흩어지는 가로등 불빛을 보며 자문했다. 우리 아이가 눈을 뒤집고 입을 닫을 때, 나는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을까. 센 척 뒤에 숨었던 아이가 슬쩍 손을 내밀었을 때, 내가 먼저 뒤돌아선 적은 없었을까. 눈을 뒤집고 팔짱을 끼고 서 있어도, 그 안에는 여전히 아이가 있다. 사춘기 아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센 척’을 한다. 어떤 아이는 패싸움으로, 어떤 아이는 가출로, 또 어떤 아이는 눈을 뒤집는 것으로. 현장에서 마주친 아이들 중에서 마지막까지 거칠게 행동하는 아이는 드물었다. 팔짱을 풀고 나면 대부분 그 옥상의 아이처럼 울먹이는 얼굴이 되었다. 누구도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서툰 몸짓으로 꾸몄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그 눈빛은 이전과 조금 다르게 보인다.
우리 엄마는 미쳤어진주 목걸이와 트위드 재킷, 빈티지 진에 반짝이는 운동화. 카페 옆자리에 앉은 그녀는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매료되어 자꾸 시선이 갔다. 그런데 일행이 도착하자마자 그녀의 무드는 소리 없이 깨졌다. 여자는 고개를 떨궜고, 손등으로 입을 막은 채 울음을 터뜨렸다. 짧은 흐느낌 끝에 들려온 말은 내 귀를 의심케 했다. 딸아이의 일기장에서 ‘우리 엄마는 미친년이다’라는 문장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애지중지 키운 자식의 욕설은 어디에 신고할 수도 없다. 그 엄마에게는 공들여 쌓아온 탑을 단번에 허물어뜨리는 치명상이었다. 현실의 부모는 대부분 입을 닫는다. 가해자를 감싸며 사건을 스스로 덮는다. 그래서 이 범죄는 늘 기록되지 않는다.
근무 중 부모 얼굴에 대고 막말을 퍼붓는 아이들을 자주 만난다. 한번은 출동한 집의 안방에서 자신을 나무라는 엄마를 가리키며 당당히 외치던 남학생이 있었다. “저 여자 좀 치워주세요.” 말문이 막혔다. 치워달라고 말하는 표정이 태연했다. 그에 반해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숨조차 몰래 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평생 그런 말을 듣고 살아온 사람의 모습 같았다. 자식이 던지는 칼날 같은 말 앞에 무너지지 않을 부모는 없다. 그러나 수많은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실무 끝에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아이들의 말은 무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소리는 크고 화약 냄새는 진동하지만 정작 겨냥할 의도는 없다. 부모는 그 소리에 쓰러지지만, 사실 아이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가출 혹은 비행 청소년들은 하나같이 집을 증오했을까. 아니다. 부모의 관심을 갈구했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아이가 다수였다. 욕을 퍼붓고, 문을 닫고, 연락을 차단해도 끝까지 버티지 못하는 쪽은 의외로 아이였다. 그 모진 독설은 나 좀 봐달라는 호소의 치환이었다.
오히려 빗장을 걸어 잠그고 열어주지 않는 쪽은 부모인 경우가 꽤 많았다. 아이는 제 감정이 풀리면 금세 순한 양이 되어 손을 내밀지만, 거듭된 내상을 입은 부모는 아이의 돌발적인 다정함을 믿지 못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세워진 방어벽은 견고해지고, 아이를 남처럼 대하며 거리를 둔다. 깊은 상처가 남긴 후유증이었다. 그녀가 충격 속에서 일기장을 덮은 뒤, 아이는 죄책감에 스스로 그 문장을 지워버렸을지도 모른다. 아이 역시 안다. 자신의 글자가 엄마 가슴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길지 말이다. 하지만 그런 후회도 오래가지 않는다. 아이들은 때때로 독설을 던지고 곧 잊는다. 오직 부모만이 그 말을 한참 동안 삭일 뿐이다. 잠시 스쳐가는 사춘기의 모진 문장에 부모의 일생을 걸고 아파할 필요는 없다.
증발하는 아이들11월의 아파트 단지는 분주했다. 분실물 신고가 들어와 주인을 찾아주고 잠시 아파트 입구에 서서 주민들의 움직임을 바라봤다. 평온한 일상을 보며 덩달아 내 마음도 편안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동료가 불쑥 꺼낸 한마디는 단숨에 비극의 현장 속 통제 구역으로 밀어 넣었다. “참 많이도 떨어졌는데…” “뭐가요?” 내 물음에 동료는 아파트 건물을 턱 끝으로 가리켰다. “이 아파트 말이야. 수능만 치르고 나면 저 동에서 하나, 다음 날은 옆 동에서 또 하나, 그렇게 이 단지에서만 셋이 죽었어. 참 기막힌 노릇이지.”
평범한 건물의 꼭대기가 어느새 절벽처럼 아찔하게 변해 있었다. 동시에 나는 목숨 걸고 날아왔다 죽은 철새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언젠가 천수만에서 만난 해설사는 휴식 없이 먼 길을 날아온 철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목숨 건 비행 끝에 철새들이 마주한 현실은 개발로 인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도래지였다. 믿었던 안식처는 거기에 없었다. 하늘을 수십 차례 빙빙 돌던 철새들은 거짓말처럼 동시에 추락해 버렸다. 뼈만 남아 앙상한 수백 마리 철새가 다 함께. 수능이라는 인고의 종착지, 풍족한 먹이와 안락한 휴식만을 믿고 쉼 없이 날아왔다. 하지만 아이들이 마주한 현실은 차디찬 아스팔트뿐이었다. 수능이 인생의 끝이며, 공부를 못하면 낙오자가 되리란 잔인한 논리가 세상에서 여전히 정답처럼 군림하고 있다. 견고한 오답은 아이들의 추락을 비웃기라도 하듯 또 다른 추락자를 찾아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