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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직전, 맹자를 만났다

판덩 지음 | 이든서재


번아웃 직전, 맹자를 만났다

판덩 지음

이든서재 / 2026년 8월 / 384쪽 / 19,800원





1장. 초심의 힘



고민하라, 무엇을 ‘낙(樂)’으로 삼을 것인가?




군주가 백성의 즐거움을 기뻐하면 백성도 군주의 즐거움을 기뻐하고,

樂民之樂者, 民亦樂其樂,

군주가 백성의 근심을 걱정하면 백성도 군주의 근심을 걱정한다.

憂民之憂者, 民亦憂其憂.

-『맹자·양혜왕 하편』



춘추시대 제나라 왕 경공은 민심을 살피러 순시를 가려 하면서도, 혹여 누군가 자신이 순시를 핑계로 놀러 다닌다고 여길까 걱정했다. 그리하여 재상 안자에게 물었다. “어찌해야 백성들이 나의 순시를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 생각하겠소?” 안자가 답했다. “고대의 군왕들은 순시를 나갔다가 종자나 가축이 부족한 것을 발견하면 곧바로 국고에서 보급해 줬고, 흉작을 겪은 지역에는 부족한 식량을 배급해 줬습니다. 그렇다 보니 백성들은 군왕의 순시 행차가 오기만을 기다렸지요.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군왕이 행차에 나서는 순간 도적 떼가 출몰한 것으로 착각할 만큼 많은 인력이 동원됩니다. 백성의 생사 따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고 그저 행렬이 얼마나 근사해 보일까에만 관심이 있으니 백성의 원성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안자의 요점은 이렇다. 진정 민심을 알아보고 싶다면 백성과 그 지역의 관료들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주면 안 된다는 뜻이다. 또 군왕은 자신의 본분을 다해야지, 사욕을 채우고 향락을 즐기느라 백성의 생사를 뒷전으로 여기면 안 된다는 말이다.

후에 맹자는 제나라 선왕과의 대화에서 이 일화를 인용했는데, 이를 ‘설궁문락(雪宮問樂)’이라 한다. 설궁은 평소 왕이 휴식을 취하러 오는 별궁이다. 선왕이 물었다. “현자도 이러한 휴식이 즐겁다고 여기십니까?” 맹자가 답했다. “당연히 좋아하지요. 그러나 백성들이 이러한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면 그들은 군주를 원망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즐거움을 얻지 못했다고 군주를 원망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행동입니다. 하지만 군주가 자신의 즐거움만 생각하느라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누리지 못한다면 이 또한 잘못입니다.” 이처럼 맹자는 항상 여러 가지 시각으로 문제를 고민했다. 그는 지도자와 구성원 모두 자신의 행동에 적절히 제약을 두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군주는 어떻게 행동해야 마땅할까? 그 답은 이 구절에 있다. “군주가 백성의 즐거움을 기뻐하면 백성도 군주의 즐거움을 기뻐하고, 군주가 백성의 근심을 걱정하면 백성도 군주의 근심을 걱정한다.” 지도자가 진심으로 구성원들이 잘 되길 바란다면 구성원도 한마음이 되어 지도자가 잘 되길 바랄 것이며, 즐거움도 괴로움도 기꺼이 함께하고자 할 것이다.

결국 맹자와 안자의 말은 일맥상통한다. 그들은 군왕이 무엇을 ‘낙(樂)’으로 삼아야 할지 깨닫기를 바란 것이다. 여기서 군왕이 삼아야 할 ‘낙’이란 향락과 주색을 멀리하고 어떤 일이든 정확한 목표를 갖고 임하는 것을 뜻한다. 즉, 군왕이 본분을 이행할 때 가져야 할 초심을 말하는 것이다.

나를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힘, 초심:
사실 많은 경우 우리가 하려는 어떤 일이 절대적으로 맞거나 틀렸다고 규정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나의 ‘초심’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다양한 유혹에 노출될 수 있고, 여러 가지 욕망에 휩싸일 수도 있다. 그때가 바로 초심이 아주 중요한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우리가 욕망을 절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목표에서 빗나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힘은 오직 초심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욕망을 갖고 있다. 욕망은 삶 전체의 방향을 직접 결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삶의 방향을 잃지 않고 걸어가고자 한다면 반드시 자신의 초심을 기억해야 한다. 주변 환경에 끌려다니면서 계속 자신을 바꾸게 되면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2장. 순리에 따르는 인생의 법칙



성장의 불꽃을 지피는 ‘네 가지 심성’




무릇 자신에게 있는 ‘네 가지 심성’을 넓히고 채워나갈 줄 안다면,

처음에는 불이 타오르기 시작할 때나 샘물이 솟아오를 때의 기세와 비슷할 것이다.

凡有四端於我者, 知皆擴而充之矣, 若火之始然, 泉之始達.

‘네 가지 심성’을 넓히고 채워나간다면 천하를 지켜낼 만큼 강해질 것이다.

반면 그렇지 못한다면 자신의 부모조차 섬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苟能充之, 足以保四海, 苟不充之 不足以事父母.

-『맹자·공손추 상편』



맹자는 그 유명한 ‘사단(四端)’, 즉 사람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심성,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제시했다. 여기서 ‘단(端)’이란 새싹, 출발점, 토대를 뜻한다. 맹자는 ‘사단’을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측은지심’은 인(仁)의 시작이고, ‘수오지심’은 의(義)의 시작이다. 또한 ‘사양지심’은 예(禮)의 시작이고, ‘시비지심’은 지(智)의 시작이다. 좀 더 쉽게 풀이하자면,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어짊의 출발점이고, 악을 부끄럽게 여기고 미워하는 마음은 의로움의 출발점이다. 또한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의 출발점이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은 지혜의 출발점이다.”

맹자는 “사람이 ‘인의예지’의 네 가지 덕목을 갖췄다는 것은 신체에 사지가 있는 것과 같으며, 사람은 인의예지를 갖고 있어야 비로소 완전한 사람이 된다. 그런데 이 네 가지 심성을 갖고 있음에도 ‘나는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곧 자신의 본성을 스스로 해치고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결국 맹자가 하려는 말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사람은 두 팔과 두 다리를 갖고 태어난다.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이 네 가지 심성도 사람의 사지와 마찬가지로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다. 사람이 이 네 가지 심성을 꾸준히 키워나가면 처음에는 그 힘이 불이 막 타오르기 시작할 때나 혹은 샘물이 막 지하에서 솟아오를 때의 기세와 비슷하겠지만, 나중에는 천하도 족히 지켜낼 만큼 매우 강해질 것이다.

선의를 장악하는 악의는 결국 나를 향한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가족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보면 부모, 형제 등 한 가족이 등장하고 재산 분할, 돈 문제 등으로 가족끼리 서로 언성을 높이며 싸운다. 이처럼 가족 간에 불화가 생기는 이유는 마음속의 ‘네 가지 심성’을 잘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이 ‘네 가지 심성’을 잘 기르지 못하면 내면에 호연지기 또한 길러낼 수 없으니, 부모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부모를 섬기는 것 역시 어려워진다.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에너지를 퍼뜨리는 일부 인플루언서들 역시 ‘네 가지 심성’을 잘 기르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떤 일을 할 때, 혹은 어떤 말을 할 때 자신의 말과 행동이 남을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규범에 어긋나지는 않았는지, 혹은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는지 따위는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그 밖에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온갖 섬뜩한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가령 실제로 살인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온라인으로 대상을 노려 범죄를 저지르는 사건, 승객이 택시 기사를 살해한 사건, 각종 폭력 사건 등이 그렇다. 맹자의 관점대로 보면 이러한 사회 현상도 사람이 ‘네 가지 심성’을 잘 기르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일들이다. 악의가 선의를 잠식하게 되니 결국 남을 해치고 자신도 해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맹자가 강조한 ‘네 가지 심성’은 나중에 그가 제시한 ‘성선설(性善說)’의 기초가 된다. 맹자가 이렇게 많은 내용을 성선설의 밑바탕으로 삼은 이유는 ‘인정(仁政)’, 즉 어진 정치를 펼치기 위함이었다. 만일 사람의 본성이 악하다면 세상 모든 사람이 나쁜 사람일 테니, 그렇게 되면 어진 정치를 천하에 펼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내면에 ‘네 가지 심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누구든 이 ‘네 가지 심성’을 잘 갈고닦아 천하를 통일할 수도 있고, 또 그렇게 되면 널리 어진 정치를 펼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3장. 선택의 지혜



정(正)과 반(反)의 틈새 속 합(合)을 찾아라




아무 이유 없이 재물을 준다면, 그것은 뇌물이다.

無處而?之, 是貨之也.

군자로서 어찌 뇌물을 받겠는가?

焉有君子而可以貨取乎.

-『맹자·공손추 하편』



어떤 문제가 발생한 뒤 그 문제를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모든 선택에는 각자 나름의 이유가 존재하고, 모두가 각자 자신의 생각을 고수한다. 그 결과, 처음 논쟁의 시발점이 된 문제는 어느새 ‘내 편 아니면 네 편’, ‘내 말은 맞고 네 말은 틀리다’의 문제로 변하게 된다.

맹자 역시 제자와 이런 비슷한 문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어느 날 맹자의 제자 진진이 물었다. “스승님께서는 이전에 제나라에 가셨을 때 제나라 왕이 하사한 황금 100일(鎰; 황금의 무게를 잴 때 사용한 단위)을 거절하셨습니다. 그런데 송나라에 갔을 때 송나라 왕이 하사한 황금 70일은 받으셨습니다. 설읍에 갔을 때도 설후가 하사한 황금 50일을 받으셨습니다. 제나라에서 주는 황금을 거절하는 것이 옳다고 여기셨다면, 송나라와 설읍에서 주는 황금은 어째서 받으셨습니까? 또한 송나라와 설읍에서 주는 황금을 받는 것이 옳다고 여기셨다면, 제나라에서 주는 황금은 왜 마다하셨습니까?”

이것이 바로 ‘이것 아니면 저것’, ‘모 아니면 도’ 식의 논리다. 진진은 전부 다 받든가 아니면 전부 다 안 받든가 해야지, 어느 것은 받고 어느 것은 안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다시 말해 진진은 맹자의 선택 중 어느 하나는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도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쉽다. 예를 들면 “너는 A 전략과 B 전략 중 어느 것이 맞는 것 같아? 두 전략이 모두 맞을 수는 없어.”라고 말이다. 특히 문제를 일차원적으로 사고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이와 같은 딜레마에 빠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를 ‘모 아니면 도’, ‘이것 아니면 저것’ 식의 사고방식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다. 그럼 진진의 물음에 맹자가 내놓은 답을 들어보자.

“내가 내린 두 선택 모두 틀리지 않았다. 송나라에 있을 당시 나는 먼 길을 떠날 예정이었다. 상대가 길을 떠나는 내게 노잣돈을 건넨 것은 예부터 내려오는 예절을 따른 것이니 나 또한 받는 것이 마땅하다. 반면 제나라에서는 아무 이유 없이 내게 재물을 주려 한 것이니 이것은 뇌물이 아니겠나? 군자로서 어찌 재물에 매수될 수 있겠느냐? 그래서 받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맹자가 이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의 차원이다. 반면 진진은 이 문제를 단순히 돈 문제로 인식했기 때문에 전부 다 받는 것과 전부 다 안 받는 것 외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맹자의 행위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논리적 모순은 단순한 수준의 논리적 사고로는 해결할 수 없다. 단순한 수준의 논리적 사고란 ‘이것 아니면 저것’ 식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말한다. 하지만 더 높은 수준의 인식으로 문제를 바라본다면 이 세상은 결코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있지 않으며, 수많은 상황 사이에 꼭 대립만 존재하는 것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렇기에 모든 문제를 꼭 대립 구도로 놓고 볼 필요가 없다. 그 대신 반드시 실제 상황 혹은 서로의 입장 차이에 근거하여 변증법적인 관점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아울러 가장 타당성 있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4장. 친구를 대하듯 세상을 느끼는 마음



천하를 얻기보다 힘든 사람의 마음




공자께서는 나아갈 때는 예를 따르고, 물러설 때는 의를 따랐으며, 벼슬을 얻고 못 얻고는 ‘천명’에 달려있다고 말씀하셨다.孔子進以禮, 退以義, 得之不得曰 “有命.”

그런데 옹저나 척환의 집에 묵으셨다면, 이는 의와 천명을 부정하는 것이다.

而主癰疽與侍人瘠環, 是無義無命也.

-『맹자·만장 상편』



몇 년 전에 굉장히 인기를 끌었던 중국 드라마 「잠복」에는 이런 명대사가 나온다. “직접 듣는 것 말고는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듣고도 믿을 수가 없소.” 사실 이 말은 『여씨춘추』 중 공자와 그의 제자 안회의 대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공자와 안회의 대화를 들어보자.

공자가 안회에게 이렇게 말했다.

“믿는 것은 눈이지만 눈도 온전히 믿을 수가 없구나. 所信者目也, 而目猶不可信.

의지할 곳은 마음이지만 마음도 완전히 믿을 만한 것이 못 되는구나. 所恃者心也, 而心猶不足恃.기억하거라, 사람을 안다는 것은 본디 쉽지 않은 일이다. 弟子記之, 知人固不易矣.”

쉽게 풀어 설명하면 이렇다. 공자가 탄식하며 말하길, “사람은 자신의 눈을 믿지만, 눈으로 본 것을 결코 믿지 못한다. 내가 의지하는 것은 마음이지만, 나의 마음 또한 완전히 믿을 만하지 못하다. 그러니 기억해두거라.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느 날 만장이 맹자에게 말했다. “에휴, 들으셨습니까? 공자께서 위나라에 계셨던 해에 환관 옹저의 집에 머무르며 그 환관을 통해 위나라 왕을 만나려고 하셨답니다. 듣기에는 제나라에 머물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제나라 왕을 만나기 위해 제나라 왕이 가장 총애하는 환관 척환의 집에 머무셨다는군요.” 사실 만장의 말속에는 숨은 의미가 있다. 그는 맹자에게 ‘보십시오, 공자도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하려던 것이다.

만장의 말에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일은 없었네. 그건 호사가들이 꾸며낸 이야기이네. 당시 공자께서는 위나라의 현신 안수유의 집에 머무셨네. 당시 위나라 왕께서 총애하던 신하 미자하의 부인과 자로의 부인은 자매지간이었지. 미자하는 자로에게 공자께서 자기 집에 머물게 하도록 제안했네. 미자하는 공자가 자신의 집에 머물면 위나라 왕을 알현하는 것이 수월해질 테고, 재상에 봉해지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 말했네. 그래서 자로는 미자하의 말을 공자께 전했지. 하지만 공자께서는 관직을 얻고 못 얻고는 하늘의 뜻에 달려 있으며, 벼슬에 오를 때나 물러날 때나 예와 의, 규범을 지켜야 한다고 여기셨네. 그런 분께서 옹저와 척환을 찾아가 문객을 자처하며 벼슬에 오를 기회를 얻으려 하셨겠나?”

중국 정부 조직에는 여론 모니터링이라는 특별한 기능이 있다. 이는 조직 내 간부들에 대한 사회적 여론, 떠도는 소문, 동료 간의 정보 전달을 면밀히 주시하는 것이다. 간부에 대한 평가는 수집한 일차 정보의 진위 여부를 판별하고 분석한 다음 진행한다. 이런 기능은 고대의 군왕들이 조정의 기강을 잡기 위해 누구나 여기저기서 들은 풍문을 왕에게 아뢰도록 한 전략과 비슷하다. 오늘날 각 조직 및 부처에 이런 직능을 부여한 것은 올바른 성품을 가진 사람을 보호하고, 부정적인 사람이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을 막기 위함이다. 부정적인 에너지가 초래하는 피해와 영향은 지금까지 한 이야기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짐작했으리라 본다.



5장. 반성의 깊이



진취적인 인생을 만드는 ‘부끄러움’의 동력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사람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恥之於人大矣.

때에 따라 교묘한 수단을 쓰는 자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쓸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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