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고 기억하는가
곽준명 지음 | 현대지성
식물은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고 기억하는가
곽준명 지음
현대지성 / 2026년 6월 / 340쪽 / 18,800원
1장 식물의 생존법: 위기를 돌파하는 민첩함을 배우다
식물이 언제나 살아남는 비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소설 『내 여자의 열매』에 등장하는 여자처럼 우리가 지금 있는 곳에서 식물이 되어간다고 상상해보자. 다리는 뿌리가 되어 바닥을 뚫고 들어가고 몸은 단단한 줄기가 되며 팔은 가지가 되어 잎을 만들고 있다. 그런데 저 멀리서 내 잎과 줄기를 갉아 먹어 치울지도 모르는 애벌레 수백 마리가 달려오고 있다. 여전히 인간이라면 그다음 상황을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눈으로 애벌레 군단을 발견하고, 시신경이 이 정보를 뇌로 전달하고, 뇌는 위험성을 판단하여, 우리는 피하거나 퇴치할 도구를 찾는다. 하지만 온몸이 식물로 변해버린 뒤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다가오는 위험을 발견할 눈도, 이를 보고 판단할 뇌도, 신호를 받아 움직일 수 있는 팔다리도 사라진다.
세포가 행동을 결정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식물이 고작 이런 일로 허망하게 죽는 일은 거의 없다. 단순히 식물이 애벌레보다 커서가 아니라, 위험을 감지해서 민첩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한 덕분이다. 한 가지 예로, 애벌레가 몸을 갉아 먹기 시작하면 애벌레가 싫어하는 화학물질을 만들어내는 식물이 있다. 애벌레는 처음 한 입 먹을 때는 더없는 별미처럼 느끼지만, 식물이 특정한 화학물질을 만들어내고 나면 같은 잎을 먹고도 죽음에 이른다. 그렇다면 뇌가 없는 식물은 어떻게 애벌레의 공격을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는 것일까? 답은 식물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 그 자체에 있다.
세포는 모든 생명 활동의 기본 단위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전체 생물종의 약 70퍼센트 이상이 단세포 생명체일 것으로 추정되니, 오히려 다세포 생명체가 더 드문 셈이다. 생명과학에서는 세포가 되기 위해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본다. 유전물질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 복제를 할 수 있을 것, 막을 통해 외부와 구분되는 형태를 유지할 것, 생존을 위해 에너지를 생성하고 사용하는 대사 활동을 보일 것. 이 조건에 따르면 세균은 그 자체로 완벽한 세포이자 생명체이지만, 바이러스는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성할 수 없어 세포가 아니다.
세포가 갖추어야 하는 요소는 기본적으로 비슷하지만, 동물과 식물의 차이를 가르는 것도 결국 세포의 차이다. 식물 세포는 단단한 세포벽과 엽록체, 액포를 추가적으로 지니고 있으며, 기능적으로 가장 큰 차이는 광합성을 할 수 있는지 여부다. 완전히 성장한 사람의 신체는 약 30~4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시작 지점에는 오직 단 하나의 세포가 있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눈 깜짝할 사이에 반응하는 식물: 식물은 자신에게 이로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할 때 세포의 반응을 이용한다. 각각의 세포는 자극이나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적절한 신호를 보내서 최종적으로 세포 분열이나 사멸, 유전자 발현과 같은 반응을 이끌어내는데, 이를 세포 신호전달 체계라고 부른다. 해바라기가 햇빛을 인식하고 꽃의 방향을 조정하는 것이 그 예다. 감각기관도 신경계도 뇌도 없는 식물이 언제나 살아남는 비밀은 바로 여기에 숨어 있다.세포 자체에는 의식에 기반한 인지 능력이 없다. 그러나 외부의 자극이나 내부의 신호를 감지하는 단백질은 있는데, 이를 신호 수용체라고 한다. 신호 수용체는 말하자면 정보 수집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세균이 신호 수용체와 결합하면 곧바로 세포질에서 반응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연쇄적으로 세포소기관과 세포핵도 반응을 보인다. 마치 산 위에서 구르기 시작한 작은 눈덩이가 아래로 가면서 급속하게 커지는 것과 같다.
여러 단계를 거치면 비효율적일 것 같지만, 놀랍게도 단계적으로 반응하는 과정이 훨씬 효과적이다. 같은 수준의 자극이라도 신호를 엄청나게 증폭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에 끝나면 최종 반응 산물이 1만 개에 그치지만, 다섯 단계를 거치면 1조 개가 만들어진다. 게다가 신호 수용체가 세균을 인식한 순간부터 최종 산물이 만들어지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고작 수 초에 불과하다.
동물보다 신속하고 정교한 신호들: 세포 신호전달 과정은 빠르게 일어나야 하지만 동시에 매우 정확하고 정교해야 한다. 그래서 세포는 신호전달 체계를 촉진하는 단백질과 억제하는 단백질을 함께 가지고 있다. 콜레라균이 하는 일은 세포 신호전달 체계의 특정한 단백질 한 가지를 변형시키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이 단백질의 형태가 달라지면 전체 신진대사가 엉망이 되어 사망에 이른다.
동물과 식물 세포에서 일어나는 세포 신호전달 체계의 기본 원리는 놀랍도록 유사하다. 다만 그 결과가 다를 뿐이다. 동물은 광수용체를 이용하여 주위의 모습을 눈으로 보는 반면, 식물은 빛의 유무를 감지하여 싹을 발아시키거나 잎의 기공을 조절한다. 게다가 식물은 한번 뿌리 내린 곳에 고정되어 살아야 한다는 특성 때문에 환경 변화에 따라 세포 신호전달 체계를 탄력적으로 바꾸거나 우회하는 능력이 동물보다 더 발달했다. 식물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스스로를 최적화하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존재이며, 우리가 주위에서 일상적으로 보는 모든 식물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런 능력을 습득하면서 진화를 거듭한 결과물이다.
세균과 싸우는 식물들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몸을 씻는 행위에는 피부 표면의 해로운 세균을 제거한다는 근본적인 목적이 있다. 즉, 세수는 질병을 억제하는 적극적인 행동이다.
식물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법: 식물도 살아 있는 생명체이므로 끊임없이 세균의 침입을 받는다. 세균은 동물의 눈, 코, 입처럼 체내로 이어지는 빈틈을 찾아내는 데 전문가이며, 식물에게도 그와 유사한 작은 틈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잎과 줄기, 꽃의 표면에 있는 기공이라는 숨구멍이 그것이다. 공변세포 두 개로 이루어진 이 구멍은 필요에 따라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하면서 광합성에 필요한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고 그 부산물인 산소와 수증기를 내보낸다.
문제는 식물이 우리처럼 몸을 씻거나 세균이 많은 곳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나마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기공을 막는 것뿐이고, 실제로 식물은 표피세포의 신호 수용체에 세균이 감지되면 그 즉시 기공을 닫는다. 그러나 우리가 숨을 참는 데 한계가 있는 것처럼 식물도 양분을 합성하려면 반드시 언젠가는 기공을 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세균의 침입은 불가피하다. 식물에 침입하기 위한 세균과 세균을 차단하기 위한 식물 간의 전쟁은 실로 까마득한 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결코 멈춘 적이 없다.
식물이 수동적인 존재라고 생각해왔다면 세균에 대처하는 방어 수단을 보는 순간 고정관념이 완전히 깨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식물은 끝내 세균이 체내로 들어오면 적극적으로 감염된 세포를 죽이는 세포자살에 돌입한다. 감염된 세포와 함께 세균을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동시에 같은 세균이 다시 침입할 경우에 대비하여 면역 유전자들을 신속히 준비시킨다. 이처럼 식물은 일부 세포 혹은 작은 기관을 버리더라도 몸 전체에 세균이 퍼지지 못하도록 막아 장기적인 생존을 도모한다.
그러나 세균이라고 손 놓고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세균은 식물의 면역 유전자들을 회피하거나 그 기능을 방해하는 단백질을 주입하며 우위를 점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같은 세균에 감염되어도 어떤 식물은 고사하고 어떤 식물은 살아남는데,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은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감염 당시 식물의 나이와 영양 상태, 스트레스 여부 등 종합적인 건강 상태가 더 중요하다.
실제로 식물의 면역 기능을 강화하는 호르몬인 살리실산이 우리의 피부 질환 치료제로 사용된다는 점만 보아도 인간과 식물의 유사성을 짐작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통증과 열을 가라앉히는 데 쓴 버드나무 껍질 추출물이 바로 살리실산이며, 여기에 간단한 화학 처리를 하면 아스피린이 된다. 또한 타미플루의 주요 성분인 오셀타미비르도 팔각에서 추출한 것으로, 바이러스가 다른 세포로 번지는 것을 막는다. 바이러스와 세균을 막아내는 식물의 힘을 엿볼 수 있는 강력한 사례다.
뇌 없이도 학습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뇌가 없는 식물도 ‘학습’을 할 수 있을까? 독일 킬대학교 연구진에 따르면 카리브해에 사는 한 해파리는 중앙집중식 뇌는 없지만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늪지대에서 장애물을 피해 다닐 수 있다고 한다. 뇌가 없는 동물도 학습할 수 있다면 뇌가 없는 식물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그렇게 터무니없는 생각은 아니지 않을까?
미국 듀크대학교 연구진은 식물이 기공을 열어야 하는 일출 직전에 밤 사이 꺼져 있던 면역 유전자들을 활성화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기공을 열면 세균이 침입할 것을 예상하고 막을 수단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식물은 생체 시계와 연관된 조절 단백질을 이용해 일출 직전이 언제인지를 ‘알고’ 행동한다. 단순히 세균에 대항하기만 하는 것이라면 항상 면역 유전자를 활성 상태로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이는 식물이 오랜 시간 세균의 공격을 경험하면서 효과적인 대응 방법을 알아냈고 이를 생존 전략으로 확립했다는 의미다.
초록 세포의 판단력: 불행하게도 식물을 위협하는 요인은 세균의 공격만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물이 부족해지는 상황을 들 수 있는데, 물이 없다고 세균도 함께 없어지지는 않는다. 두 가지 위협이 동시에 닥쳐올 때 식물은 어떻게 대응할까?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의 연구에 따르면 식물은 가뭄보다 세균에 저항하는 반응을 더욱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균을 막기 위해 면역 반응이 활성화되면 그 영향으로 가뭄에 대응하는 호르몬 신호가 억제되는 현상이 관찰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영리한 결정이다. 물이 없어도 며칠 정도는 버텨낼 수 있는 반면 체내로 침투한 세균은 지금 즉시 대응하지 않으면 개체의 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생물은 자신이 지닌 자원에 의해서 제한을 받기 때문에 설령 동물이라 하더라도 한 번에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여러 문제를 동시에 맞닥뜨렸을 때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더욱 시급한 일에 자원과 에너지를 투입할 줄 아는 식물의 모습을 보면 비록 우리와는 다른 방식일지 몰라도 식물들 또한 그들만의 판단력과 현명함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장 대화하는 식물: 함께하는 삶의 가치를 아는 존재들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동맹공원이나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개와 함께 걷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사람은 개를 기르며 교감을 경험하고 반대급부로 개에게 먹을 것과 잠잘 곳을 마련해준다. 주는 것과 받는 것의 형태는 서로 다르지만 개와 사람을 서로 공생하는 관계로 정의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공생이란 서로 다른 종의 생명체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뜻하는데, 사람과 개처럼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를 상리공생이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공생관계가 항상 쌍방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불러오는 것만은 아니다. 어느 한쪽만 이익을 얻는 편리공생이나 어느 한쪽만 해를 입는 편해공생 방식도 있기 때문이다. 자연에는 수많은 상리공생 관계가 존재하는데, 어떤 식물은 오로지 공생에서 얻는 이점만으로도 다른 식물은 도무지 생존하기 힘든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는다.
식물이 세균을 향해 손을 내밀 때: 특히 대두, 완두를 비롯해 토끼풀까지 포함하는 콩과식물은 가장 효과적으로 공생의 이점을 얻는 식물이다. 공생관계에서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인 질소를 공급받기 때문이다. 질소는 식물의 몸을 이루는 단백질뿐만 아니라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와 RNA, 광합성을 하는 엽록소의 핵심 구성 성분이다. 사실 질소는 대기의 약 78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매우 흔한 원소다. 그러나 공기 중의 질소는 불활성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식물이 이를 영양소로 이용하려면 먼저 질소고정이라는 과정을 거쳐 암모니아나 산화질소의 형태로 전환해야만 한다. 식물이 대기 중의 질소를 얻는 경로는 주로 비를 통해서다. 불활성 상태의 질소는 번개를 맞으면 산소와 반응하여 산화질소로 바뀌는데, 이것이 비에 녹아 토양으로 스며들어 식물의 양분이 된다. ‘빗물이 보약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콩과식물은 따로 질소를 공급받지 않아도 알아서 공기 중의 질소를 영양분으로 사용할 수 있다. 뿌리에 공기 중의 질소를 암모니아로 전환해주는 세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콩과식물의 뿌리를 캐보면 뿌리 조직이 혹처럼 발달한 뿌리혹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콩과식물은 질소를 공급받는 대가로 세균에게 자신이 합성한 탄수화물과 양분을 제공해준다. 완벽한 상리공생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생 관계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콩과식물과 질소고정 세균은 공생하지 않고서도 각자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토양에 질소가 부족해지면 콩과식물은 뿌리에서 질소고정 세균을 유인하는 화학물질을 방출해 세균을 부른다. 부름을 받은 질소고정 세균은 뿌리혹화 유전자를 활성화하여 결절 형성 인자를 식물에게 전달하고, 그 결과 식물은 뿌리 세포의 형태를 바꾸어 뿌리혹을 만든다. 이 과정을 바탕으로 추론해보면 까마득한 옛날에 상대에게 먼저 손을 내민 쪽은 아마도 콩과식물이었을 것이다. 그 첫 번째 부름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절박한 구조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콩과식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작물은 비료를 통해 질소를 받아들인다. 다만 벼, 옥수수, 보리 등도 뿌리혹은 만들지 못해도 질소고정 세균과 연합 관계를 형성하며, 사탕수수는 줄기의 전세포벽에 질소고정 세균을 살게 함으로써 필요한 질소의 약 30퍼센트를 얻는다. 만약 모든 곡물이 콩과식물처럼 질소고정 세균과 공생할 수 있다면 물과 햇빛만 있으면 쑥쑥 자라나는 작물을 만드는 것도 꿈은 아닐 것이다. 전통적으로도 이 공생은 농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콩과식물을 심으면 땅에 질소가 풍부해지기 때문에 조선 전기의 농서인 『농사직설』에도 그루갈이 작물로 콩을 심을 것을 권했다.
콩의 비밀을 밝히는 모험: 공생은 콩과식물이 질소 부족을 감지한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식물은 토양에 질소가 어느 정도인지 어떻게 판단할까? 생산력 높은 작물을 찾기 위해 노력하던 식물과학자들에게 이 질문은 무엇보다도 커다란 과제였다. 2009년에 이르러서야 대만 중앙연구원의 차이 이팡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일부나마 답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식물은 일반적으로 토양의 질산염에서 질소를 얻는데, 질산염은 세포질과 엽록체를 거쳐 암모늄으로 전환되고 최종적으로 아미노산으로 합성되어 단백질이나 DNA, 엽록소의 기반이 된다. 또한 질산염은 성장과 개화, 발아 등 다양한 단계에서 신호 물질로도 작용한다. 20세기 중반 이매뉴얼 엡스타인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식물은 같은 영양소라도 농도가 높을 때와 낮을 때 각각 다른 수송 시스템을 이용하며, 애기장대는 질산염 흡수 수송체를 만드는 유전자를 70개나 가지고 있다.
그런데 차이 이팡 박사의 연구팀은 그중 CHL1이라는 수송체가 독특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수송체는 토양 내 질산염의 농도가 높든 낮든 상관없이 질산염을 뿌리 세포로 수송하고 있었다. 전천후로 작동하는 수송체를 발견한 거의 최초의 사례이자, 오랫동안 이어져온 통념을 깨뜨린 놀라운 연구였다. 또한 CHL1은 전천후 질산염 수송체이면서 동시에 토양 내 질산염 수준을 감지하는 센서 역할까지도 담당하는 팔방미인이었다.
다만 이것이 답의 ‘일부’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CHL1 유전자가 없는 콩과식물이라도 여전히 질산염이 부족할 때 뿌리혹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외에도 다른 단백질이 질소 부족을 감지하는 역할을 함께 담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직 미지의 영역에 남아 있는 다른 경로까지 모조리 알 수 있다면 토양 속의 질산염을 훨씬 더 잘 흡수하는 강인한 식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