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시, 일본 정독
이창민 지음 | 더숲
지금 다시, 일본 정독
이창민 지음
더숲 / 2022년 6월 / 332쪽 / 18,000원
1부 과거의 일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일본인의 상인혼
마그레브 상인이 대리인에게 거금을 맡긴 이유: 스탠퍼드대학 경제사학자 애브너 그레이프는 이집트 카이로의 자료실에서 11세기 지중해를 무대로 무역하던 마그레브(아프리카 북서부 일대) 상인들이 주고받은 히브리어 편지 몇 통을 발견했다. 편지의 내용은 부정을 저지른 대리인과는 앞으로 어떤 거래도 하지 말자는 내용이었다. 당시 마그레브 상인들은 항구 도시마다 지점을 두고 거래를 대리인에게 일임했는데, 예를 들면 예루살렘 지점 대리인에게 1년치 운영 자금을 전액 맡기고 다음 지점으로 떠나 1년 후에야 다시 오는 식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감시도 불가능하고 지중해 전체를 아우르는 통일적 정부나 사법 체계도 없어 부정행위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었는데도, 대부분의 대리인이 거금을 들고 도망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한몫 챙겨 달아날 수 있었지만 그런 대리인은 거의 없었다. 왜일까? 그레이프의 답은 그 편지에 있었다. 마그레브 상인들은 중세 유럽의 길드와 비슷한 상인 공동체를 결성해, 부정을 저지른 대리인의 정보를 공유하고 한 번 부정한 자는 누구도 다시 고용하지 않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한 번 낙인찍힌 대리인을 대리인 시장에서 영영 퇴출시키는 것으로 게임 이론에서는 이것을 ‘다각적 징벌 전략’이라 부른다.
이 시스템이 잘 기능했기에 대리인들은 야반도주 전에 두 시나리오를 놓고 고민하게 된다. 도망가면 거금은 내 몫이 되지만 이 세계로 돌아올 수 없고, 성실히 일하면 올해 소득을 내년에도, 그 이후에도 계속 기대할 수 있다. 결국 일확천금이 클지, 성실히 일할 때의 생애 소득 현재 가치가 클지를 따져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 반면 상인들은 이런 고민을 잘 이해하기에, 야반도주의 일확천금보다 성실히 일했을 때의 생애 소득 현재 가치가 더 크도록 고용 계약을 맺어야 했다. 이렇게 적절한 균형을 찾은 덕분에 11세기 지중해 시장 경제는 오랫동안 번영을 누렸다는 그레이프의 주장은 학계에서 널리 인정받았다.
일본 상인의 길드 조직, 가부나카마: 도쿄대학 경제사학자 오카자키 데쓰지는 그레이프의 연구를 보며 궁금증이 생겼다. 왜 11세기 지중해에서만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사실 전근대 사회 어디에나 상인 조직은 있었고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다. 연구에 착수한 오카자키는 에도 시대 일본에 가부나카마(株仲間)라는 상인 조직이 있었음을 알아냈다. 가부나카마는 일종의 상인 길드로 동업자 수를 제한하고 가격·판매 수량을 결정했는데, 예를 들어 오사카의 소금 가부나카마는 소금을 누가 얼마에 얼마만큼 팔지를 정하는 독점적 공급 권한을 가졌다. 가부나카마 연구의 1인자 미야모토 마타지는 그 기능을 독점·권익 옹호·조정·신용 유지 네 가지로 구분했고, 멤버들은 ‘나카마(仲間)’라는 글자가 새겨진 나무 표찰을 나눠 가져 동업자 관계를 확인했다. ‘가부(株; 독점적 영업권)’는 양도·상속이 가능했고, 신규 등록에는 구성원 전체의 승인과 가입 비용이 필요했다.
중세 지중해 상인들이 대리인을 고용했듯, 근세 일본의 가부나카마도 중개인들과 거래했고 부정행위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중개인들도 부정한 이익을 취하려 하지 않았는데, 그 증거가 고문서에서 발견되었다. 상인들이 중개인에게 입은 피해를 가부나카마에 보고한 문서, 그리고 그 피해를 다른 구성원에게 알리는 문서였다. 근세 일본 상인들도 다각적 징벌 전략으로 상거래의 안전성을 확보한 것이다. 일본 상인들은 가부나카마를 조직해 거래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부를 축적했다. 흔히 근세 일본을 사농공상의 봉건적 신분 질서가 공고한 사회로 인식하지만, 현실의 주인공은 무사가 아닌 상인이었다. 상인들은 수요와 공급의 시간적 불일치를 절묘하게 이용해 일본 열도를 유통망으로 엮었고, 연공미가 모이는 오사카 쌀 시장을 중심으로 전국적 금융망을 운영했다. 쌀 기반 어음과 수표 발행이 활발했던 오사카 도지마(堂島) 쌀 시장이 세계 최초의 선물 시장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대代를 잇는다는 것
무형적 자산까지 물려받는 슈메이 전통: 2021년 제100대 수상으로 취임한 기시다 후미오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중의원을 지낸 3세 의원이다. 아버지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해 아버지 사망 후 지역구 히로시마 1구를 물려받았고, 1993년 당선 이후 한 번도 낙선하지 않고 내리 9번 승리했다. 일본에서 가업 계승은 정치만이 아니다. 가부키나 라쿠고 같은 전통 예술에서는 오히려 가업을 계승하지 않는 경우를 찾기가 더 힘들고, 슈메이(襲名)라 해서 선대의 이름을 계승하는 전통이 있다. 가장이 된 사람이 선대의 이름을 계승하는 이 슈메이 풍습은 14~15세기 무가·상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전통 예능·다도·꽃꽂이·스모 등으로 자리 잡았다.
경제 제도라는 측면에서 슈메이 문화는 전근대 사회의 평판 형성이라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다. 오늘날 인터넷으로 맛집 평점을 확인하듯, 전근대 일본에서는 대대로 내려오는 이름을 통해 상인·장인의 제품과 서비스 질을 평가할 수 있었다. 상인들은 야고(屋?)라는 가게 상호를 물려받았는데,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없던 에도 시대에 대대로 내려오는 이름만큼 확실한 광고 효과는 없었다. 슈메이는 세대가 바뀌어도 높은 직능을 보유하고 있음을 알리는 장치였고, 그 가문이 획득한 사회적 신용·고객·동업자 등 무형적 자산을 계승하는 의미를 내포했다.
장수 기업 최다 보유국의 비밀, 아토쓰기 문화: 일본에는 아토쓰기 문화도 있다. 슈메이와 같은 의미지만 이름 계승이라는 형식보다 가업 계승 행위를 강조하는 표현으로, 오늘날에는 상속자의 의미로 많이 쓰인다. 보통 장남이 되지만 차남 이하나 딸, 사위·조카가 양자로 입적되기도 하며, 점포를 물려주거나 기술을 전수할 경우 비혈연 후계자로까지 확장된다. 이 아토쓰기 문화 덕분에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장수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100년 이상 장수 기업이 2019년 기준 33,076개, 200년 넘은 기업도 1,340개에 이르는데, 2위 미국과 3위 독일의 200년 이상 기업이 200개가 조금 넘는 점을 감안하면 압도적 차이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노포는 절·신사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목조 건축 회사 곤고구미(金剛組)로, 서기 578년 창업해 무려 1400년 동안 지속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창업 1000년이 넘은 기업도 7개나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두산(1896년)이 125년 역사인 것과 비교하면, 곤고 가문이 40대에 걸쳐 1400년 넘게 경영해 왔다는 사실은 믿기 힘든 이야기다.
일본의 질주를 막은 ‘게임의 룰’
라스트 히어로, 제로센: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된 태평양 전쟁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끝났다.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일본은 처음부터 미국의 적수가 못 되었지만,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배할 때까지 6개월간 크고 작은 전투에서 일본은 승리를 거두었다. 그 주역이 일본 해군의 함상 전투기 제로센이었다. 미쓰비시중공업이 개발하고 나카지마항공이 생산한 제로센은 뛰어난 기동성, 빠른 상승 속도, 긴 항속 거리로 미군 주력기 와일드캣을 압도해, 급기야 미군이 ‘제로센과 일대일 교전을 피하라’는 교전 수칙을 하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군의 장점은 목표가 정해지면 궁극의 수준까지 연마하는 것이었는데, 제로센의 첫 번째 목표는 기동성이었다. 당시 공중전은 빠르게 선회해 적기 후미를 공격하는 도그파이트였기에, 일본군은 기체를 최대한 가볍게 하고 선회 반경을 극단까지 단축했다. 제로센은 90도 회전에 200m면 충분했지만 미군기는 그 두 배인 400m가 필요했다. 두 번째 목표는 조종술이었다. 중일전쟁으로 풍부한 실전 경험을 쌓은 일류 파일럿들을 엄청난 강도로 훈련시켜 ‘전쟁의 달인’을 양성했는데, 이들은 한밤중 8,000m 밖에서도 적함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어 신예로 구성된 미군 파일럿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소니를 추락시킨 과잉 기술에의 집착: 목표가 정해지면 궁극까지 연마하는 일본군의 특기는 일본인의 DNA로 각인되어 전후 고도성장기 기업들의 성공 신화로 재탄생했다. 그 대표적 기업이 소니다. 소니는 1979년 워크맨을 출시해 ‘걸으면서 음악을 듣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유행하며 1980년대 전 세계적 히트 상품이 되었다. 이때부터 워크맨의 목표는 소형화, 구체적으로는 ‘워크맨을 카세트테이프 크기까지 줄이는 것’이 되었다. 이 목표를 위해 ‘껌전지’라 불리는 얇은 충전지, 초소형·초절전 모터가 발명되었고, 오토리버스·방수·리모컨 기능까지 담아내며 초소형 워크맨 WM-20이 개발되어 목표를 달성했다. 소니의 노력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카세트테이프를 1/4로 축소한 미니 카세트테이프와 그에 맞는 초소형 워크맨 개발에 돌입했다.
그런데 이 노력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컴팩트디스크(CD)라는 새로운 매체가 등장한 것이다. 소니는 부랴부랴 CD 플레이어를 내놓았지만, 시장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적응할 틈을 주지 않았다. CD가 등장한 지 얼마 안 되어 음악을 파일로 재생하는 MP3가 등장했고, 결국 소니는 빠르게 새 제품을 내놓지 못해 워크맨은 추억의 물건으로 남았다. 소니는 여전히 굴지의 기업이지만 더 이상 최첨단 가전을 주력으로 하지 않고, 은행·보험·게임·엔터테인먼트 등으로 사업이 바뀌었다.
소니뿐 아니라 한때 전 세계를 호령한 일본 전자제품 기업 중 현재 그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은 하나도 없다. 그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과잉 기술, 과잉 품질 문제다. ‘장인 정신 기반 제조 문화(모노즈쿠리)’는 일본 기업을 품질 제일주의의 세계적 기업으로 키웠지만, 한편으로 우물 안 개구리로 변질시켰다. 일본 기업들은 10년 품질을 보증하는 반도체를 만들었지만 시장은 값싼 반도체를 원했고, 100년 가도 고장 안 나는 컴퓨터를 만들었지만 5년 지난 컴퓨터는 성능 문제로 쓸 수 없었다. 장인 정신에 매몰되어 앞만 보고 달렸지만 정작 시장의 요구에는 둔감했던 것이다.
다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 제로센은 어떻게 되었을까? 연전연패하던 미군은 불시착한 제로센을 발견해 본토로 싣고 가 철저히 연구한 뒤 무력화 방안을 생각해 냈다. 먼저 제로센에게 유리한 기동성으로 겨루는 대신, 쉽게 격추되지 않도록 방어 설비를 갖춘 헬캣을 개발했다. 속도는 느리지만 쉽게 격추되지 않아 시간을 끌 수 있었고, 한 대가 제로센을 유인하는 사이 다른 한 대가 공격하는 협공 방식으로 제로센을 격추했다. 또 레이더 개발은 전쟁을 완전히 새로운 양상으로 바꿨다. 100km 밖에서도 적군 움직임을 파악하는 레이더 덕에 전세는 완전히 미군 쪽으로 기울었다. 제로센의 기동성과 파일럿 숙련도를 궁극까지 끌어올린 일본군이 초기에 승기를 잡았지만, 미군은 전투 방식을 바꿔 상대의 능력을 무력화하고 승리했다.
현재로 눈을 돌리면,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디지털 패권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들은 생산자와 소비자 그룹을 연결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수익을 창출하는데, 빠르게 진화하는 생태계 속에서 일본 기업의 존재감은 희미해져 간다. 좋은 물건을 만드는 일본 기업은 많지만 게임 체인저가 될 기업은 찾기 어렵다. 게임에서 이기려면 전략과 연습이 필요하지만, 게임의 룰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꿀 수 있다면 이길 확률을 기하급수적으로 올릴 수 있다. 반대로 룰이 바뀌었는데도 전략과 연습만 고집하는 것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개전 초기 혁혁한 전과를 올렸던 제로센이 무기력하게 패배한 것처럼, 세계적 히트 상품이던 워크맨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처럼.
2부 현대의 일본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왕년의 일본
경제 호황에 대한 추억: 2007년 일본에서 <버블로 GO!!>라는 코미디 영화가 개봉해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는 일본의 국채 발행액이 800조 엔을 돌파해 곧 재정 파탄에 빠질 것이라는 걱정으로 시작된다. 실제로 2007년 일반 정부 총 채무액이 932조 엔, 명목 GDP가 539조 엔이어서 나라 빚이 GDP의 두 배가 넘을 것이라는 공포감이 감지될 때였다. 그런데 당시 일본 정부는 버블에 대해 티끌만큼의 걱정도 하지 않았다. 1989년 경제 백서는 ‘내수가 내수를 확대하는 자율적 성장 패턴이 형성되었다’고 호평했고, 거시 변수들도 나무랄 데 없이 좋았다. 다만 ‘하나미자케 경제’를 경계하라는 이야기가 양치기 소년의 울부짖음처럼 공허하게 떠돌았다.
하나미자케 경제의 빛과 그림자: 일본의 전통 공연 예술인 라쿠고의 레퍼토리 중 하나미자케(꽃놀이 술)의 줄거리는 이렇다. 벚꽃 철에 구마 씨와 다쓰 씨는 한 통에 천 엔인 술 열 통을 사서, 됫박에 천 엔씩 팔면 십만 엔을 벌 수 있다는 계산으로 공원으로 향한다. 그런데 목이 마른 구마 씨가 천 엔을 주고 다쓰 씨에게 한 됫박을 사 마시고, 이번엔 다쓰 씨가 똑같이 천 엔을 주고 한 됫박을 사 마시며, 둘이 천 엔과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공원에 도착하니 술통은 비었고 수중엔 천 엔짜리 한 장뿐이었다. 류 신타로는 1962년 저서 『하나미자케 경제』에서 고도성장의 이면에 이런 위태로움이 있다고 경고했다. 땅값이 오르면 땅을 담보로 대출이 늘고, 그 돈으로 땅을 더 사 수요가 늘어 땅값이 더 오르고, 투기 수요까지 몰려 천정부지로 솟는 것을 류는 하나미자케에 빗대 허울 좋은 환상이라 비판했다.
다만 엄밀히 말해 하나미자케 경제가 아무런 부가 가치도 창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상춘객에게 팔든 둘이 마셔 없애든 GDP는 최종 판매 가격의 합인 10만 엔으로 동일하다. 두 사람이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만족감이야말로 경제학에서 말하는 효용으로, 누가 만족했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십만 엔의 부가 가치가 창출된 것은 틀림없다. 일본 버블 경제도 마찬가지여서, 자산 효과로 민간 소비와 주택 투자가 늘고 수도권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리조트가 우후죽순 생겨났으며, 지가 상승으로 기업의 차입 능력이 커져 설비 투자와 고용이 확대되었다. 1986년 2.8%이던 실업률은 1990년 2.1%까지 하락해 일손 부족으로 도산하는 기업마저 생겼다.
‘답정너’ 정책이 위험한 이유
모두의 예상을 깬 주가와 지가의 하락: 1989년 12월 29일, 도쿄 주식 시장은 3만 8,915엔이라는 역대 최고 주가를 기록하며 흥분과 열기로 가득했다. 1990년 1월 《월스트리트저널》은 “아무리 보수적으로 예상해도 올해 주가는 4만 5,000엔을 돌파할 것”이라고 실었고, 모든 이코노미스트와 애널리스트 중 주가 하락을 예측하는 사람은 없었다. 관심사는 언제 4만 엔을 돌파하느냐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주가는 하락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정장이라는 설명이 설득력 있었지만, 2월이 되어도 회복되지 않고 연초보다 5,000엔 이상 하락한 3만 3,000엔대로 내려앉자 불안이 퍼졌다. 결국 1990년 9월 30일 주가는 연중 최저치 2만 222엔까지, 불과 9개월 만에 반토막(-48%)이 났다. 이후 추세적 하락을 면치 못하다 2002년 종가는 1982년 수준인 8,579엔까지 떨어져 20년간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었다. 주가가 다시 장기 상승 기조로 돌아선 것은 2012년 11월 자민당으로의 정권 교체와 함께 대담한 금융 완화·디플레이션 탈피·엔고 시정을 내세운 제2차 아베 내각이 출범하려는 시점, 곧 아베노믹스가 가동된 2013년부터였다. 그 사이 일본의 경제 사정이 크게 나아졌다고 보긴 어렵지만 2012년 11월 이후 주가는 장기 상승 기조를 이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