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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단백질

샤히르 S. 리즈크, 매기 M. 핑크 지음 | 흐름출판


춤추는 단백질

샤히르 S. 리즈크, 매기 M. 핑크 지음

흐름출판 / 2026년 6월 / 388쪽 / 23,000원





기원, 태초에 단백질이 있었으니



DNA는 레시피, 단백질은 요리사


할머니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태어나셨고 초등학교는 4학년까지만 다니셨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카이로를 덮쳤던 독일의 공습에서 살아남았을 때는 이미 결혼해 자녀를 여럿 두셨다. 할머니는 실험대나 책에서 배우지 않고도 과학에 뿌리를 둔 수많은 비밀을 알고 계셨다. 마늘을 찧으면 향이 퍼지고, 스튜를 끓인 뒤 뚜껑을 덮어두면 며칠 동안 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과 전례로 익히셨다. 오늘날 우리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마늘 세포가 깨지며 효소가 방출되어 향 분자가 생기고, 끓이는 과정은 독성 단백질을 변성시켜 박테리아를 죽인다. 단백질을 몰랐지만 할머니는 세대를 걸쳐 내려온 지혜에 의존하셨고, 그렇게 우리는 DNA로 물려받는 유전 정보만큼이나 중요한 정보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다.

대대로 전해오는 레시피처럼, 우리가 물려받은 DNA는 단백질을 만들기 위한 설명서다. DNA의 모든 유전자는 하나의 단백질을 암호화하며, 단백질 구성의 미세한 차이만으로 곱슬머리가 되거나 키가 달라진다. 단백질은 숨 쉬고 심장이 뛰고 눈을 깜빡이는 모든 순간에 관여하며, 빛·향기·맛의 신호를 분자 언어로 전환해 우리가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단백질은 말 그대로 우리 주변 환경을 해석해주는 존재다.

인간은 약 2만 5,000개의 유전자를 지니며, 대부분은 고유한 기능을 가진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를 담고 있다. 거의 모든 세포가 동일한 유전 물질을 갖지만 모든 단백질이 다 만들어지진 않는다. 간세포와 뇌세포의 차이는 어떤 유전자를 지녔느냐가 아니라 어떤 유전자를 ‘읽느냐’에 달려 있다. 모든 세포는 같은 악보를 가지지만 각자 자신에게 맞는 악기만 골라 연주하는 셈이다. DNA가 그 세포가 누구의 것인지 알려준다면, 단백질은 그 세포가 어떤 세포인지 알려준다. DNA가 대본이라면 단백질은 그 이야기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주인공이다.

다만 단백질이 DNA로부터 직접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간에 RNA가 등장해 DNA의 정보를 읽어, 요리사가 레시피를 보고 재료를 순서대로 넣듯 단백질의 구성 단위를 이어 붙인다. DNA에서 RNA를 거쳐 단백질로 이어지는 이 흐름을 생물학의 중심 원리라 하며, 유전 정보는 이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설계도(DNA)가 있고, 그것을 읽는 컴퓨터(RNA)가 있고, 실제로 일하는 일꾼(단백질)이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진화를 주로 DNA 돌연변이의 관점에서 봐 왔지만, 단백질로 시선을 돌리면 모든 생명체의 이야기가 한층 선명해진다.

단백질에 의존하지 않는 생명체는 발견된 적이 없으니, 단백질이 어떻게 생명에 필수적이 되었는지를 묻는 것은 곧 생명의 기원을 묻는 것이다. 원시 지구는 화산 분출로 메테인·암모니아 같은 유독 가스가 뿜어지고 자외선이 쏟아지는 가혹한 환경이었는데, 이 속에서 단순한 유기 분자들이 결합해 DNA·RNA·단백질의 구성 단위가 되었다. 1950년대 스탠리 밀러와 해럴드 유리는 약 35억~40억 년 전 환경을 재현해, 소금물 위에 화산 가스를 주입하고 전기 스파크로 번개를 모방했다. 하루 만에 용액이 분홍색으로, 일주일 뒤 짙은 붉은색으로 변했고, 용기를 열자 단백질의 구성 요소인 다섯 가지 아미노산이 들어 있었다. 원시 지구의 기본 물질만으로 생명에 필요한 분자가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 획기적 시도였다. 다만 최초의 단백질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아직 답할 도구가 없다.

단백질은 생명체 안에서 다양한 일을 한다. 음식을 소화하는 데 쓰는 단백질 상당수는 박테리아가 쓰는 것과 거의 같고, DNA를 복제하는 단백질도 마찬가지다. 생명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단백질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으며, 수십억 년 진화에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생명에 꼭 필요하다는 뜻이다. 단백질은 하는 일에 따라 효소는 화학 반응을 돕고 에너지를 뽑아내며, 구조 단백질은 피부·뼈·근육을 이루고, 수송 단백질은 영양분과 노폐물을 실어 나르며, 신호 단백질은 세포 간 메신저로 호르몬 상당수가 여기 속하고, 수용체 단백질은 빛·맛·냄새를 감지하며, 면역 반응 단백질은 침입자를 무력화한다.

그러나 단백질이 제 역할을 벗어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장 치명적인 사례가 암이다. 암 유발 단백질은 세포 분열을 지나치게 촉진하거나 세포 사멸을 막고, 증식에 브레이크를 거는 종양 억제 단백질이 기능을 잃으면 암세포가 제동 없이 증식한다. 뇌에서도 알츠하이머·파킨슨병처럼 잘못 만들어진 단백질이 뭉쳐 독성 덩어리를 만들고 주변 세포를 방해한다. 감염성 질환에서도 결정적인데,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스파이크 단백질은 바이러스가 인간 세포에 침입하게 하고, 세포 안으로 들어온 바이러스는 세포의 단백질 합성 기구로 스스로를 복제한다. 따라서 단백질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은 효과적인 치료제 개발의 핵심 열쇠다.

많은 단백질이 진화를 거치고도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일부는 상상을 뛰어넘는 특성을 발전시켰다. 박테리아가 원자로의 강한 방사선 속에서, 미생물이 심해 열수구의 엄청난 압력과 고온에서 버티는 것도 단백질 덕분이다. 철새가 수천 킬로미터를 날면서도 길을 잃지 않는 것은 지구 자기장을 감지하는 단백질이 나침반 역할을 하기 때문이고, 반딧불이가 반짝이는 것도 빛을 만드는 단백질 덕분이다. 이처럼 극한의 환경에서 기적처럼 작용하는 단백질들을 들여다보면, 단백질이 수억 년의 시간 동안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해 왔는지 이해할 수 있다.

진화의 수레바퀴


연약한 인간 세포는 결빙 방지 단백질을 만들 능력이 없어 추위에 맞설 수 없고 결국 동상이라는 손상을 입는다. 그러나 우리가 추위에 완전히 무력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독창성을 발휘해, 짐승 가죽으로 만든 옷을 발명하고 가장 독특한 기술인 불을 다루는 능력을 터득해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번성했다. 이에 반해 불을 피울 능력이 없는 다른 생물들은 겨울잠을 자거나 지방층을 축적하거나 결빙 방지 단백질로 얼음 결정의 손상을 막는 식으로 추위에 대처한다.

하지만 일부 생물은 훨씬 특이한 전략을 개발했다. 캐나다 북쪽 숲의 송장개구리는 혈류가 얼어붙는 것을 막지 않고, 대신 꽁꽁 얼어붙은 채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송장개구리는 안쪽부터 바깥쪽까지 완전히 얼어붙어 얼음덩어리처럼 변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개구리는 빙핵 형성 단백질의 도움을 받는다. 결빙 방지 단백질이 얼음 결정의 성장을 막는 것과 정반대로, 이 단백질은 오히려 결빙을 촉진하되 세포 바깥쪽을 향해서만 얼음이 자라도록 유도해 각 세포를 얼음 껍질로 감싼다. 덕분에 세포 안의 내용물은 혹독한 겨울 내내 안전하게 보존된다.

하지만 단백질만으로는 부족하다. 개구리에게는 포도당의 도움도 필요하다. 대부분의 생명체에게 포도당은 에너지원이지만, 송장개구리에게는 세포를 지키는 보호제다. 겨울이 오면 개구리는 세포 안에 엄청난 양의 포도당을 쌓아두는데, 높은 포도당 농도는 세포 내부를 메이플 시럽처럼 걸쭉하게 만들어 물이 어는 온도를 크게 낮춘다. 세포 밖에서는 빙핵 형성 단백질이 세포를 얼음 껍질로 감싸고, 세포 안에서는 포도당이 내용물을 지킨다. 이 둘의 협력으로 몸 전체는 얼어붙지만 세포는 살아있는 채로 봄을 기다린다. 날이 풀리면 모든 과정이 역으로 일어나고, 개구리는 다시 펄쩍 뛰며 짝을 찾을 준비를 한다.

최근 분자생물학자들은 다양한 결빙 방지 단백질의 구조를 해독해 이 단백질들이 극한 환경에서 생물을 살아있게 하는 방식을 밝혀내고 있다. 하지만 이 단백질이 흥미로운 이유는 생존을 돕기 때문만이 아니다. 결빙 방지 단백질은 식량·기후·의료 등 가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쥐고 있다. 동결방지제로 활용하는 연구가 활발하며, 미래에는 냉동 보관 중 과일·채소가 시드는 것을 막거나, 추위에 약한 식물의 서리 내성을 높여 불안정한 기후에서도 안정적인 수확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식품 신선도를 오래 유지하면 버려지는 식품을 줄여 식량 안보를 강화할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소중한 변화는 따로 있을지 모른다. 바로 기증 장기의 보존 기간을 늘려,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것이다.



탄생, 춤추는 질서



모든 생명은 같은 춤을 춘다


고배율 현미경이 나오기 수백 년 전, 네덜란드의 포목상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이 박테리아를 처음으로 목격했다. 정식 과학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끝없는 호기심을 가진 그는, 리넨 천의 품질을 확인하던 확대경을 출발점으로 1660년대에 직접 현미경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는 호기심으로 사흘간 이를 닦지 않은 뒤 치태를 긁어내 관찰하고는, 왕립 학회에 보낸 편지에서 “아주 작은 살아있는 극미동물들이 수없이 많았고, 아주 앙증맞게 움직이고 있었다”라고 묘사했다. 그는 아내의 치태, 연못물, 으깬 후추, 심지어 자신의 정액까지 탐구했고, 훗날 미생물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로베르트 코흐의 세균설이 받아들여지고 미생물학이 학문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수백 년이 더 걸렸다. 오늘날 우리는 그가 관찰한 극미동물을 춤추게 했던 단백질이 인간 세포골격을 이루는 단백질과 많은 특성과 구조를 공유한다는 것을 안다.

극미동물들은 편모를 이용해 헤엄쳤을 것이다. 박테리아에서 채찍처럼 뻗어 나온 편모는 단백질로 이루어진 생체 모터로, 박테리아는 이 덕분에 헤엄치고 방향을 바꾸며 먹이와 짝을 찾고 적을 피한다. 엔진에서는 플라젤린 단백질로 이루어진 속이 빈 꼬인 관이 뻗어 나오는데, 플라젤린은 나선형 구조와 화학적 성질 덕분에 이런 부속기관을 스스로 조립한다. 그런데 편모는 3만 개가 넘는 플라젤린으로 이루어진 데다 박테리아 자체보다 길어, 안에서 다 만들면 세포가 터질 수 있으므로 세포 밖에서 조립된다. 플라젤린은 세포 안에서 풀린 상태로 있다가 세포막의 작은 터널을 통해 밖으로 나오고, 다른 단백질이 보모처럼 따라붙어 목적지까지 안내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편모가 완전한 길이로 자라면 박테리아는 비로소 달리기와 뒹굴기의 삶을 시작한다. 편모는 박테리아 종류에 상관없이 하나의 공통된 구조적 틀을 따르며, 플라젤린에서 편모를 조립하는 영역은 종이 달라도 거의 변하지 않는다. 반면 외부 환경과 맞닿는 영역은 종마다 조금씩 달라, 작동 방식은 같아도 환경을 감지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이 변이가 쌓이며 박테리아는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에 맞춰 진화해 왔다.



각성, 감각이라는 착각 혹은 기적



빛은 보는 것일까, 느끼는 것일까


세상을 지각하고 대응하는 능력은 생명체의 근본적 특성이며, 그중 시각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감각이다. 두 눈은 뇌가 받아들이는 정보의 약 80퍼센트를 수집하며, 완전한 어둠 속에서도 광자 하나까지 감지할 만큼 민감하다. 빛이 수정체를 통과하면 동공 가장자리 근육들이 초점을 맞추고, 그 빛줄기는 안구 뒤쪽 망막에 부딪힌다. 망막의 약 700만 개 원뿔세포 표면에는 옵신이라는 단백질이 박혀 빛과 직접 상호작용하며 수많은 작은 눈처럼 기능한다. 옵신은 원뿔세포보다 약 1억 배나 작아, 충분한 빛을 모으려면 엄청난 수가 동시에 작용해야 한다. 바구니를 닮은 옵신은 빛을 받아 색소의 형태가 바뀌면 비틀리는데, 이 정보를 원뿔세포 깊숙한 단백질에 전달하고 이웃 세포로 이어 신호가 뇌에 도달한다. 단계마다 작은 신호가 다음 단백질로 전해지고 증폭되어, 일부는 형태를 바꾸고 일부는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또 일부는 이온을 옮겨 미세한 전기 신호를 만든다. 불과 몇 분의 1초 만에 이 신호들이 시신경을 타고 뇌에 도달해 형태·명암·색상을 가진 이미지로 번역된다.

오늘날 우리는 옵신이 사물에서 반사된 빛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지만, 천 년이 넘도록 사람들은 눈에서 광선이 방출되어 주변을 스캔한다고 믿었다. 이는 플라톤과 프톨레마이오스 등이 주장한 방출 이론으로, 유클리드는 이를 정교한 수학 모델로 다듬기도 했다. 이 통념은 서기 1000년경 아랍 과학자 이븐 알하이삼이 결정적 실험을 하기 전까지 검증되지 않은 채 통용되어왔다. 알하이삼은 어두운 방의 작은 구멍을 통해 바깥 등불의 빛이 반대편 벽에 맺히는 것을 발견하고, 등불 두 개를 다른 높이에 놓아보았다. 눈에서 빛이 나간다면 두 상이 뒤섞여야 했지만, 두 상은 각각 자기 등불의 높이에 따로 맺혔다. 그러니까 사물에서 출발한 빛이 눈으로 들어오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었다. 이 단순한 관찰이 천 년 넘게 이어오던 통념을 뒤집었다. 그는 핀홀 카메라의 원리를 처음 실증하고 눈도 동공이라는 작은 구멍으로 빛을 받아 상을 맺는다는 가설을 『광학의 서』에 정리했는데, 이 책은 케플러와 갈릴레오에게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그는 관찰하고 질문하고 실험으로 검증하는, 오늘날 과학적 방법론이라 부르는 과정의 토대를 세웠다.

20세기에 옵신의 분자 구조가 밝혀지며 바구니 구조가 발견됐다. 빛이 바구니 안 색소에 닿으면 구부러진 구조가 곧게 펴지고, 이 변화가 옵신 전체를 비틀어 ‘빛이 들어왔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수십억 개의 옵신은 사실 빨강·초록·파랑에 반응하는 단 세 종류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천만 가지 색을 볼 수 있을까? 비결은 세 옵신이 함께 작동한다는 데 있다. 뇌는 세 신호를 종합해 그 조합을 특정 색으로 해석한다. 나무를 보면 초록 옵신이, 사과를 보면 빨간 옵신이 강하게 반응하고, 노란 바나나는 빨강·초록을 거의 같은 강도로, 귤은 빨강을 조금 더 강하게 자극해 주황으로 인식된다. 옵신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균형이 깨지는데, 빨강이나 초록 옵신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것이 색맹의 가장 흔한 원인이다. 세 옵신이 멀쩡해도 우리가 보는 빛은 전체 전자기 스펙트럼의 극히 일부다. 엑스선·자외선·적외선은 보이지 않으며, 동물마다 보는 범위가 다르다. 호랑이의 주황 줄무늬가 가젤 눈에는 초록풀과 구별되지 않고, 많은 새와 곤충은 자외선을 감지한다. 벌은 빨강을 못 보지만 꽃의 자외선을 따라 꿀을 찾고, 까마귀는 자외선 아래에서 독특한 패턴을 드러내 동료와 짝을 알아본다.

많은 생물이 세 가지 이상의 옵신을 지니는데, 최다 기록은 열두 개를 가진 갯가재다. 갯가재는 자외선뿐 아니라 편광까지 감지한다. 인간은 빛이 얼마나 빠르게 진동하는지로 색을 구별하지만, 갯가재의 단백질은 빛이 위아래로 진동하는지 좌우로 진동하는지까지 구별한다. 인간보다 훨씬 적은 뇌세포로 그 방대한 빛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갯가재가 왜 그렇게 많은 색과 편광 각도까지 구별해야 하는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물속에서는 빛의 방향 정보가 더 선명하게 남기에 두 눈을 독립적으로 회전시켜 형태·색·거리 정보를 한꺼번에 수집하는 것이 사냥과 위험 회피에 유리한 것으로 보인다.

빛 감지 능력은 위장 능력과도 연관된다. 위장술의 절대 강자는 문어다. 보호용 껍질이 없어 쉬운 먹잇감 같지만, 문어는 약 3억 3000만 년을 살아남았다. 문어 피부에는 색소세포가 빽빽하고 그 안에 발색단이라는 색소 분자가 채워져 있다. 근육이 색소세포를 조이면 넓게 펼쳐져 밝아지고, 이완하면 오그라들어 어두워진다. 여기에 리플렉틴이라는 단백질이 층층이 쌓인 구조를 바꿔 빛을 산란시켜 흰색이나 파란 색조를 만든다. 그렇게 해서 문어는 몇 초 만에 주변의 색과 질감을 그대로 재현한다.

감쪽같은 위장을 하려면 주변의 색을 지각해야 하는데, 정작 문어의 눈은 대부분 색맹에 가까워 몇 가지 색만 구분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토록 정교한 위장이 가능할까? 비밀은 피부에 있다. 문어 피부의 옵신이 주로 푸른 계열의 빛을 받아들여 색소세포가 얼마나 늘어나거나 수축할지를 조절한다. 문어의 촉수에는 수십억 개의 옵신이 있어 일종의 나노 크기 눈처럼 작용하는데, 이미지를 형성하기보다 빛을 감지하고 반응하는 것에 가깝다. 결국 문어는 피부 전체로 환경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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