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척학전집 : 싸움의 교양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세계척학전집 : 싸움의 교양
이클립스 지음
모티브 / 2026년 5월 / 368쪽 / 22,000원
PART 1 간파 - 깨어나 판을 보라
배신이 합리적인 세상에서 협력이 이기는 조건 : 액설로드의 팃포탯배신당했을 때 항상 용서하면 이용당하고 한 번에 끊으면 관계가 남지 않는다. 그 사이 최적의 지점이 있을 텐데, 그것은 어디인가? 1980년, 한 정치학자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상한 대회를 열었다.
가장 짧은 코드 / 이기는 법을 아는데 또 졌다: 로버트 액설로드. 그는 게임이론 전문가들에게 컴퓨터 프로그램을 제출하라고 했다. 반복되는 죄수의 딜레마에서 최선의 전략을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모든 프로그램이 서로 200번씩 리그전을 치른다. 총점이 가장 높은 전략이 우승이다. 우승한 전략은 아주 단순한 전략이었다. 수학자 아나톨 라포포트가 제출한 ‘팃포탯(Tit for Tat).’ 규칙은 단순하다. 처음에는 협력한다. 그 다음부터는 상대가 직전에 한 것을 따라 한다. 액설로드는 결과를 공개하고 두 번째 대회를 열었지만 우승은 다시 팃포탯이었다. 팃포탯은 반복되는 게임에서 읽히는 것으로 이긴 것이다.
먼저 배신하지 않는 자 / 착하지만 만만하지 않은 / 조건부 용서 / 읽히는 것이 강함이다: 팃포탯이 이긴 첫 번째 이유는 선량함. 먼저 배신하지 않는다. 먼저 배신하면 상대도 배신하고, 서로 배신을 반복하면 점수가 곤두박질친다. 먼저 배신해서 얻는 단기 이익이 그 이후의 보복으로 인한 장기 손실보다 작다. 두 번째 이유는 보복.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항상 협력’ 전략은 배신하는 전략들이 달려들어 처참하게 졌다. 당신 주변에 있을 것이다. 항상 져줘서 착하지만 만만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 팃포탯은 착하지만 만만하지 않다. 배신당하면 가만히 있지 않는다. 세 번째 이유. 조건부 용서. ‘영원한 보복’ 전략은 상대가 한 번이라도 배신하면 이후 영원히 배신한다. 이후의 협력 기회를 모두 잃는다. 팃포탯의 용서는 조건부 용서이다. 상대가 행동을 바꾸면 용서하지만, 계속 배신하면 계속 갚아준다. 네 번째 이유. 명확성. 상대가 읽을 수 있다. 규칙이 단순하기 때문에 상대가 몇 번 경험하면 파악한다. “내가 협력하면 협력하고, 배신하면 배신하는구나.” 예측 가능하면 상대는 협력을 선택할 동기가 생긴다. 반면 복잡한 전략은 상대가 읽기 어렵다. 불안하고 방어적으로 된다. 방어적으로 되면 배신한다.
미래의 그림자 / 미래를 발명한 사람들: 한 번의 게임에서는 배신이 이긴다. 관광지의 상인은 당신을 다시 볼 일이 없기에 비싸게 받는 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동네 식당에서는 바가지를 씌우면 다시 안 오기에 정직하게 장사하는 게 합리적이다. 액설로드는 이것을 ‘미래의 그림자’라고 불렀다. 미래가 길면 오늘의 배신으로 돈을 벌어도 내일부터 거래가 끊겨 큰 돈을 잃는다. 미래의 그림자가 현재의 유혹을 억제한다. 이베이의 판매자 평점, 당근마켓 매너 온도 등은 이 구조를 뒤집은 예시이다. 이번 거래의 결과가 다음 거래에 영향을 주게 한 것이다.
소수의 침투: 배신자가 다수인 세상에 착한 사람 한 명이 들어가면 먹잇감이 된다. 하지만 소수의 팃포탯이 무리 지어 들어간다면? 팃포탯이 배신자를 만나면 첫 판에서만 밑지고, 둘째 판부터는 배신자끼리 만난 것과 같아진다. 여기까지는 팃포탯이 불리하지만, 팃포탯끼리 만나면 첫 판부터 끝까지 협력하여 높은 점수를 받는다. 이 이득이 첫 판 손해를 넘어서면 팃포탯의 평균 점수가 배신자를 추월한다. 조건이 하나 있다. 팃포탯끼리 만날 확률이 충분히 높아야 한다. 뭉쳐 있어야 협력의 이득을 쌓을 수 있다.
뒤집힌 판은 다시 안 뒤집힌다: 팃포탯이 퍼지기 시작하면 가속이 붙는다. 임계점을 넘으면 집단 전체가 뒤집힌다. 그리고 한번 뒤집히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협력이 지배적으로 된 집단에 배신자 소수가 들어와도 둘째 판부터 보복당한다. 단기 이익이 장기 손실을 이기지 못한다. 두 개의 안정 상태가 있다. 모두가 배신하는 상태와 모두 협력하는 상태이다. 어느 쪽이든 한번 자리 잡으면 쉽게 뒤집히지 않는다.
공유지를 살린 사람들: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문제가 있다. 공동의 자원을 각자 합리적으로 쓰면 전체가 망가진다. 해법은 두 가지이다. 국가 규제 혹은 공유지의 사유화. 엘리너 오스트롬은 세 번째 길을 발견했다. 그녀가 연구했을 때 국가 규제나 사유화 없이 공유지가 유지되는 곳들이 있었다. 공통점은 공동체 규칙을 만들고, 위반하면 제재하고, 구성원이 규칙 제정에 참여하는 구조였다. 미래의 그림자(같은 마을에서 거주), 보복(위반 시 제재), 용서(복귀 가능), 명확성(투명한 규칙)이 갖춰져 있었다. 오스트롬은 이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녀가 보여준 것은 협력이 조건이 갖춰질 때 자연발생한다는 것이다.
오해의 무한 루프: 팃포탯의 약점은 오해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서로 팃포탯을 쓰고 있던 어느 날, 상대가 당신이 배신했다고 오해하여 보복한다. 당신은 의아하지만 보복한다. 끝없는 보복의 루프. 부부 싸움이 이 구조를 닮았다. 후속 연구자들은 ‘관대한 팃포탯’을 제안했다. 상대가 배신해도 열 번 중 한 번은 용서한다. 이 작은 관대함이 보복의 연쇄를 끊어준다. 하지만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 선량하되 만만하지 않고, 보복하되 용서할 줄 아는 것.
이기려는 자는 끝내고, 계속하려는 자는 바꾼다 : 카스의 무한 게임
두 개의 게임: 뉴욕대의 종교학 교수 제임스 카스가 책 한 권을 냈다. 첫 문장은 이렇다. “유한 게임은 이기기 위해 하고, 무한 게임은 계속하기 위해 한다.” 유한 게임에는 정해진 규칙, 참가자, 명확한 시작과 끝이 있다. 축구 90분, 수능 하루. 끝나면 승자가 결정된다. 무한 게임은 다르다. 규칙과 참가자가 변하고, 끝이 없다. 사업, 커리어, 관계. “이겼다”고 선언할 수 있는 순간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무한 게임을 유한 게임처럼 플레이하고 있다. 끝이 없는 게임에서 이기려고 한다.
1등의 몰락: 2007년, 노키아는 휴대폰 시장 점유율 1위였다. 그러나 6년 후 노키아는 전성기 시가총액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으로 휴대폰 사업부를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긴다. 노키아는 ‘더 좋은 휴대폰 만들기’ 게임을 하고 있었고, 애플은 ‘휴대폰이 무엇인지 다시 정의하기’ 게임을 하고 있었다. 2007년, 잡스가 아이폰을 발표했다. 노키아는 기존 게임의 1등이었지만, 애플은 게임을 바꿨다.
이기려는 자가 먼저 지친다: 유한 플레이어와 무한 플레이어가 만나면 시간이 길어질수록 무한 플레이어가 유리해진다. 유한 플레이어는 이기려고 자원을 쏟고, 무한 플레이어는 계속하려고 자원을 아낀다. 시간이 지나면 이기려는 쪽이 먼저 지친다. 전쟁도 그렇다. 이기려고 막대한 자원을 쏟아붓는 나라는 버티는 나라를 상대하며 지치게 된다.
끝나지 않는 전쟁의 승자: 같은 구조가 비즈니스에서도 작동한다. 대기업이 성장하는 스타트업을 시장에서 밀어내려 한다. 가격을 내린다. “이겨서 끝내겠다”는 유한 플레이어의 반응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죽지 않는 한 계속한다. 시장과 제품, 그리고 고객층을 바꾼다. 대기업이 가격 전쟁에 쏟는 자원은 매 분기 비용으로 잡히고, 주주가 압박하고, 이사회가 묻는다. “언제 끝나는 거요?” 끝나지 않는다. 무한 게임이니까. 이기려는 쪽이 먼저 “수지가 안 맞는다”고 판단하는 순간, 게임에서 빠진다.
자기가 만든 미래를 죽인 회사: 1975년, 코닥의 엔지니어 스티브 새슨이 경영진에게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공개했다. 그러나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면 필름 수익이 사라질까 봐 그 기술을 묻었다. 결국 코닥은 파산했다. 기존 게임의 수익이 너무 크면 새 게임으로의 전환을 스스로 막는다. 경영학자 크리스텐슨이 ‘혁신가의 딜레마’라고 부른 구조다. 그런데 반대로 움직인 회사가 있다. 이기고 있는 게임을 스스로 버린 회사다.
이익을 버린 자: 아마존은 수년간 이익을 내지 않았다. 이익을 물류, 클라우드, AI에 재투자해 인프라를 쌓았다. 경쟁사들이 실적 발표가 심판인 유한 게임을 하고 있을 때 아마존은 끝을 요구받지 않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경쟁사들이 지쳤다. 가격 전쟁을 버틸 수 없었고, 투자를 따라갈 수 없었다. 아마존은 현재 이익을 포기함으로써 미래를 샀다. 유한 게임의 이익은 무한 게임으로의 전환을 막기도 하고, 무한 게임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 차이는 이익을 지키느냐, 쓰느냐다.
사다리와 벽: 승진, 더 높은 직급, 더 많은 돈…. 유한 게임을 끝없이 이어 붙이는 것은 방향이 아니다. 사다리를 오르는 것과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는 것은 다른 문제다. 연애할 때도 같은 착각을 한다. 그 사람의 마음을 얻었다. 그런데 관계는 끝나지 않는다. ‘얻었다’고 느끼는 순간 노력이 줄어든다. 하지만 관계에 끝이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은 다르게 움직인다.
목표와 방향: 유한 게임에는 목표가 있어서 그것을 달성하면 끝이다. 그런데 무한 게임에는 방향이 있다. 달성 가능한 것이 아니다. 별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별을 보고 항해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노키아의 목표는 점유율 1위였다. 목표를 달성했지만 그 너머를 보지 못했다.
등을 맡길 사람: 최정예 특수부대 네이비씰은 대원을 선발할 때 성과와 신뢰를 축으로 평가한다. 당연히 둘 다 높은 사람을 뽑는다. 문제는 성과는 높은데 신뢰가 낮은 사람과, 성과는 보통인데 신뢰가 높은 사람이다. 대부분의 조직은 성과를 택하지만 네이비씰은 신뢰를 택한다. 전장에서 등을 맡겨야 하니까. 옆의 사람이 총은 잘 쏘지만 믿을 수 없다면? 단기 성과로 평가하는 조직에서는 이런 사람이 스타이지만 오래 살아남아야 하는 조직에서는 위험하다. 숫자(성과)를 내면서 팀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끝이 없는 게임의 전략가: 당장 이번 달 월세를 내야 하는 사람에게 “무한 게임을 하라”는 말은 공허하다. 무한 게임은 유한 게임에서 살아남은 후에야 가능하다. 시장이 제로섬에 가까울 때는 경쟁사를 이기는 것이 생존의 조건이다. 현실은 유한 게임과 무한 게임의 혼합이다. 먼저 살아남아야 다음 게임을 할 수 있다. 유한 게임에서 살아남는 것이 무한 게임을 계속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다.
PART 2 장악 - 네가 판을 움직여라
사람을 믿지 마라, 시스템을 믿어라 : 한비자의 법술세
자율이 감시가 된 날: 회사에 유연근무제가 도입됐다. 처음에는 생산성이 올랐지만 시간이 지나자 회의를 잡을 수 없고, 급한 일이 생겨도 연락이 안 되었다. 불안해진 팀장은 메신저 접속 여부를 체크하게 되었다. 1년 후, 유연근무제는 폐지됐다. 사람들 대부분은 성실하게 일했다. 하지만 일부가 안 하면 잘 하는 사람들은 불공정을 느끼고 멈춘다. 선의에 의존한 제도는 한 명의 이탈자가 전체를 무너뜨린다.
수레장이와 관 짜는 사람: 수레장이는 수레가 잘 팔리도록 사람들이 부자가 되길 바란다. 관을 짜는 장인은 관이 팔리도록 사람이 죽기를 바란다. 인간은 이익을 따라 움직인다. 선의에 의존하지 말고, 이익의 방향을 설계하라. 조직이 원하는 행동과 개인의 이익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면, 강요하지 않아도 사람은 움직인다. 영업 사원에게 “고객을 위해 헌신하라”고 말하는 것과, 고객 만족도가 보너스에 연동되는 구조의 결과는 같을 수 있다. 하지만 전자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고, 후자는 사람이 바뀌어도 유지된다.
법(法), 규칙이 사람을 대신한다: “성과를 내라”는 법이 아니다. “이번 분기 매출 목표 1억”이 법이다. 명확하지 않으면 해석 권한이 사람에게 넘어간다. 그러면 기분과 친소 관계, 그리고 편견이 개입한다. 같은 행동을 해도 어떤 사람은 칭찬받고 어떤 사람은 질책받는다. 규칙이 명확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권력자의 기분을 읽는 데 에너지를 쓴다.
술(術), 리더가 좋아하는 것을 보이면: 법이 공개된 규칙이라면, 술은 리더만 쓰는 비공개 기술이다. 핵심은 “순명이책실(循名而責實)”, 이름에 따라 실적을 요구하는 것이다. 마케팅 팀장이면 마케팅 성과를, 영업 부장이면 매출을 올리라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대부분의 조직에서 지켜지지 않는다. 말 잘하고 보고서를 잘 쓰는 사람이 결과를 내고 실제 일 잘하는 사람보다 인정받는다. 한비자는 리더에게 경고한다. “군주가 좋아하는 것을 보이면, 신하는 그 좋아하는 것에 맞춰 자신을 꾸밀 것이다.” 리더가 “나는 혁신을 좋아해”라고 말하면 모든 보고서에 “혁신”이 들어간다. 진짜 혁신이 아니라 혁신의 연기. 리더의 선호가 공개되는 순간, 조직은 리더가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데 에너지를 쓴다. 진실은 숨겨진다.
두 자루의 칼: 리더에게는 두 가지 도구가 있다. 상(賞)과 벌(罰). 핵심은 두 칼을 모두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만 주고 벌을 못 하는 리더는 만만해진다. 벌만 주고 상을 안 주는 리더는 미움을 산다. 더 위험한 것은 칼을 남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팀장이 인사 평가를 하는데, 특정 임원이 “이 사람은 내가 챙길게”라고 말한다. 평가를 임원에게 맡기는 순간, 해당 팀원은 임원을 따르기 시작한다.
먼저 말하는 리더, 나중에 말하는 리더: 리더가 먼저 말하면 팀원들은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한다. 맞추거나, 반대하거나. 자기 생각이 아닌 리더의 의견에 대한 반응을 말하는 것이다. 리더가 마지막에 말하면 팀원들은 자기 생각을 말한다. 정보의 다양성이 달라지고, 조직이 읽는 현실의 정확도가 달라진다.
세(勢), 자리가 만드는 힘: 유능한 과장이 있다. 하지만 결재권·예산 편성권·인사권이 없어서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할 수 없다. 반대로 실력이 보통인 임원이 있다. 하지만 결재권·예산 편성권·인사권이 있어서 모두가 이 사람의 말을 듣는다. 리더십은 개인의 자질에서만 오지 않는다. 자리가 만드는 것이다.
좋은 의도는 작동하지 않는다: 아마존에서 고객 불만이 접수되면, 시스템이 자동으로 환불 프로세스를 시작한다. 담당자가 친절한 사람이든 아니든 결과가 같다. 유연근무제가 실패한 이유로 돌아가면, 자율이 작동하는 시스템을 설계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코어 타임을 정하고, 성과 측정 기준을 명확히 하고, 결과로 평가하는 구조를 만들었으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시스템의 그림자: 이 시스템에는 그림자가 있다. 상벌에 반응하는 존재. 그것이 한비자가 본 인간이다. 단기적으로 효율적이지만, 오래가면 규칙 이상의 헌신이 사라진다. 시키는 것만 하면 되니 창의성은 나오지 않는다. 리더는 고독해진다. 신하를 믿지 말고, 속마음을 보이지 않고, 항상 의심하면 효과적일 수는 있지만 진심으로 조언해주는 사람이 사라진다. 시스템은 필요하지만 인간을 대체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