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인생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세종대왕 지음 | 모티브
그대는 인생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세종대왕 지음
모티브 / 2026년 3월 / 242쪽 / 17,800원
Chapter 01 왜 사람부터 볼 줄 알아야 하는가
‘누가 예민한가’가 아니라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보라어느 날 형조(법무부)가 형벌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한두 대 더 때린 일이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를 문제 삼아 신문고를 울리며 고발했다. 이에 형조판서인 김점은 부하를 감싸고 사건을 끝내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때 김점은 실수는 사소한 일이라 말하고,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과한 사람으로 몰아갔다. 그때 세종대왕은 이렇게 말했다. “비록 한두 대의 형벌일지라도 그릇되었다면 책임이 없을 수는 없다. 또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일이라면 감정이나 체면이 아니라 사실을 끝까지 살펴 마무리하라.” 세종대왕이 이 사건에서 기준으로 한 것은 ‘누가 예민한가’가 아니라,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였다. 사소해 보여도 잘못은 잘못이며, 불편함을 느꼈다는 사실 자체를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자기 잘못을 사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잘못을 실수라 말하고, 타인을 예민한 사람으로 치부해 논점을 흐린다. 그러나 내가 농담하거나, 장난을 쳤을 때 상대방이 싫어한다면 그것을 예민함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다음부터 조심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사고방식이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계속 설명해야 하고, 스스로를 낮추게 된다면 구태여 그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하지는 말자. 이런 관계에서 멀어지는 것은 예민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감정을 가볍게 여겨온 관계를 바로잡는 것이다.
변하는 것이 아니라 물드는 것이다세종이 회의에서 신하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사신으로 온 ‘범영’ 같은 자들의 태도를 보니 참으로 못났다. 황제가 굳이 내관(황제를 보좌하던 남성 시종)까지 보내지 않고, 이들에게 직접 전달하게 한 것은 쓸데없는 폐단을 줄이려는 배려였는데, 이들은 이 뜻을 돌아보지 않고 조그마한 이익을 위하여 여러 번 입을 여니, 참으로 저잣거리의 경박한 무리 같도다.” 이에 허조가 이렇게 답했다. “옛 기록인 《사기》에 보면, 조선은 원래 도둑이 없는 나라였지만, 요동과 맞닿은 변경 지역은 그 영향으로 점점 물들어 도둑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대체로 요동 사람들은 예부터 탐욕스럽고 인색한 성향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세종은 “그렇다. 나도 《사기》에 그런 말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근묵자흑(近墨者黑)’, 먹(墨)을 가까이하면 나 또한 검어진다. 부정적인 말이 가득한 곳에 머물면 생각이 거칠어지고, 냉소적인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된다. 이는 변한 것이 아니라 물든 것이다. 우리는 “나는 달라”라고 생각하지만, 물은 결국 담긴 그릇의 모양을 따른다. 사람의 성품과 생각도 주변의 흐름 속에서 형태가 바뀌게 된다. 그래서 그곳에 물들고 싶지 않다면 ‘내 곁의 사람들은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지, 낮은 곳으로 끌어내리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낮은 곳으로 끌어내리고 있다면 떠나야 한다. 자신과 맞지 않는 곳에서 버틴다면 물들다가 결국 자신을 잃게 될 것이다.
Chapter 02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얻는가
상처를 입히면서까지 지켜야 할 법은 없다나라의 관리들을 감찰하던 사헌부가 건의를 올린 적이 있었다. 양반가 부녀자들이 외출할 때 얼굴과 체면을 가리기 위해 쓰던 물건인 ‘화금 입자’가 법에 맞는지 가려내기 위해, 길거리에서도 입자를 벗겨 검사할 수 있도록 표식을 붙이자는 내용이었다. 화금 입자는 비단으로 만들어졌고, 금박·금분으로 장식을 더해 신분과 예법을 드러냈다. 그러나 당시 조선은 사치에 관한 규정이 엄격한 나라였고, 사헌부의 건의 역시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이 건의를 문제 삼으며 이렇게 말했다.
“양반집 부녀들이 쓰고 있는 입자를 길거리에서 벗겨 내어 검사한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법을 지킨다는 명분이 있다 해도 그 과정에서 사람의 체면과 존엄을 훼손한다면, 그것은 옳은 행정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할 때 공개적인 곳에서 여성을 검사하는 행위는 모욕하는 일이 될 수 있었다. 세종에게 법은 사람 위에 군림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세종대왕의 판단은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잘못된 것이 있다면, 공개적인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부끄러움을 준다. 그 과정에서 마음이 다치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리더가 된다면 효율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존엄을 벗겨 내는 실수를 하지 않길 바란다. 또한 사람마다 부끄러워하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에 사실 여부보다 사람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 자신이 궁금하다는 이유로 상대가 불편해하는 것을 묻는다면, 그건 모욕에 가깝다. 진실보다 먼저 지켜야 할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한순간의 자신만의 옳음으로 타인의 마음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자.
결과만 벌하면 거짓이 자란다경상도에서 풍년이라는 보고가 올라왔다. 그러나 세금 자료를 다시 확인하자 다른 결과가 나왔다. 피해는 많고 실제 수확이 적게 나타난 것이다. 이를 본 담당 관청은 세종대왕에게 조사를 청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만약 피해는 많고 실제 성과는 적다는 이유로 처벌하기 시작하면, 앞으로는 피해를 숨기거나 손해를 성과로 꾸며 보고하는 일이 늘어날 것이다. 그로 인해 생길 폐단이 훨씬 더 클 텐데, 그게 더 걱정이다.” 세종이 걱정한 건 처벌 방식이 만들어낼 구조적 왜곡이었다. 성과만을 기준으로 책임을 묻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거짓 보고를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처벌만으로 유지되는 도덕성은 감시가 약해지거나 누군가 선을 넘는 순간 너도나도 선을 넘게 된다. 반대로 칭찬, 인정, 소속감 같은 보상은 누가 보지 않아도 지키게 하는 힘을 만든다. 그래서 건강한 조직이나 사회는 대개 처벌로 바닥을 만들고, 보상과 존중으로 천장을 만든다. 즉, 성과에 따라 처벌이 된다면, 사람들은 결과를 좋아 보이게 만드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처벌의 강도가 아니라 과정과 맥락을 함께 살피는 것이다. 허위 보고나 은닉, 그리고 절차 위반과 같은 거짓된 행동을 문제 삼아야 할 것이지, 성과가 좋지 못하다고 처벌한다면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러니 만약 무언가를 처벌했을 때 폐단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면, 결과만 놓고 처벌하기보다는 세종대왕처럼 그 과정을 보고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을 것이다.
Chapter 03 얻은 인재는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좋은 인재는 어떤 사람인가세종은 국가의 근본을 사람에게서 찾았고, 인재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세종대왕이 사람을 보는 기준이 드러난 장면이 있다. 어느 날 지방 관청의 실무 책임자였던 이사철이 하직 인사를 올리자, 세종대왕은 이렇게 말했다. “나의 족속은 대체로 학문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너는 학문에 힘쓰는 바가 있어 내가 이를 기특하게 여겨 집현전에 두고자 하였다. 그러나 네가 시종한 지 오래되어 나의 뜻을 잘 알고 있으므로, 특별히 너를 보내어 그 일을 전적으로 맡기려 한다. 부디 가서 게을리하지 말라.” 그러자, 이사철은 대답했다. “소신은 본래 행정 실무를 깊이 알지 못하여, 혹 일을 그르칠까 두렵습니다.” 그 직분이 얼마나 무거운 자리인지 알고 있는 그를 보자 세종은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자질은 아름답다. 하지 않으면 그만이겠지만, 만일 마음과 힘을 다한다면 무슨 일이든 능히 해내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세종대왕은 능력보다 자질을 먼저 보았다.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더 신중해지는 사람, 한 번 맡으면 책임지려는 사람. 그런 사람은 가르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사람을 볼 때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대하느냐를 먼저 보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재능과 자질이 골고루 갖춰진다면 좋겠지만,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자질이 좋은 사람을 골라야 한다. 재능은 타고난 능력이지만 자질은 태도에 가깝다. 지속성, 책임감, 판단력, 감정 조절, 성실함 같은 요소들이다. 재능이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는가를 본다면, 자질은 얼마나 오래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는가이다. 자질은 비록 더딜 수 있지만 완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질을 보려면 어려워졌을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재능이 없다면, 자질이 좋은 사람을 곁에 둬라. 작은 것이라도 계속해서 해내는 사람을 보며 그 태도를 본받아 끝까지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자. 인생에 실패가 없고 과정만 있다고 하지만, 결국 끝까지 해내지 못하면 과정 또한 큰 의미를 주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본분을 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면 사람들은 성장을 멈추고 정체기가 찾아온다. 조선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세종은 정체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직감했고, 신하들에게 말했다. “나라가 무사태평해지자, 무사들은 활쏘기와 말타기를 본분으로 여기지 않고, 학문하는 유생들은 경서를 깊이 읽지 않으며, 국학은 형식만 남은 공간이 되어 가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에 신하들 사이에서는 “과거 시험에서 경서를 외우게 하면 학문이 살아난다”라는 주장과 “암기만 하는 것은 진짜 학문이 아니다”라는 반론이 엇갈렸다. 세종은 이렇게 말했다. “경서를 외우게 하는 것이 어찌 학문을 일으키는 것이겠는가. 총명한 사람은 깊이 공부하지 않아도, 그때그때 훑어보면 우연히 성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요행이 어떻게 진짜 학문을 쌓는 방법이 될 수 있겠는가. 무예와 강무(군사 훈련)도 평소에 연습하지 않으면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물론, 강무가 백성에게 부담이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반찬 수를 줄였고, 올리는 물품도 줄였으며, 비용 역시 미리 준비해 백성들이 분주해지는 일이 없도록 했다. 그러나 불편함이 있다고 해서 중요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언제가 적절한 때란 말인가.”
세종은 사람들에게 강제로 주입시키는 공부와 훈련보다, 평소에 스스로 준비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지금 당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가만히 있는 사람과,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스스로를 단련하는 사람의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벌어진다. 준비한다고 해서 즉각적인 보상이 주어지지는 않지만, 불편함을 미루는 대가는 가장 불리한 순간에 찾아온다. 그래서 진짜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실패나 위기가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으며 스스로를 점점 느슨하게 만드는 태도다. 그 방심이야말로, 가장 조용하게 나의 삶을 무너뜨리는 시작일지 모른다.
Chapter 04 힘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불신은 악의가 아니라, 기다림에서 자란다조선에서는 억울한 백성이 북을 쳐 임금에게 호소할 수 있는 ’격고 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이 격고 제도에는 억울함을 호소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 이유는 백성의 격고가 이루어지면 국가 중대 사건을 전담하던 의금부가 사건을 맡아 판단했는데, 관행적으로 전원이 모여야만 결정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수사가 지체되는 일이 잦았다. 세종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말했다. “사건이 모두 관계된 것이 아니라면, 한 사람만이라도 결정을 내릴 수 있지 않느냐.” 억울한 일을 판단하는 데 형식과 절차를 이유로 시간을 끌지 말라는 뜻이었다. 세종대왕이 가장 염려한 것은 국가가 침묵하는 시간만큼, 백성의 마음에서는 신뢰가 빠르게 무너진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이 조직이나 관계를 불신하게 되는 이유는 대개 악의 때문이 아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자” “상황 봐서” 같은 애매한 말들로 희망 고문을 하는 것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믿음을 얻기 위해 중요한 것은 확실함이다. 불확실하다면 불확실하다고, 어렵다면 어렵다고 말해주는 것이 상대방의 시간을 존중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이는 약속할 때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약속할 때 할 것처럼 희망을 주며 결정을 미루는 행위는 상대의 시간을 담보로 잡는 것과 다름없다. 세종이 의금부의 관행을 문제 삼은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형식과 절차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의 억울함이 방치되어 있었고, 그 방치의 시간이 불신의 씨앗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답을 줘야 하는 일이 있다면, 나중에 다시 말해보더라도, 정직하고 확실한 답을 먼저 건네는 것이 불신을 만들지 않는 가장 빠른 방법일 것이다.
입을 닫게 만들지 마라어떤 리더들은 리더라면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하고, 틀리지 않아야 한다고 착각한다. 사실 이런 편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모른다는 말과 사과를 잘 하지 못한다. 이런 모습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고집불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세종대왕도 이런 말을 했다. “윗사람이 듣기 싫어하면, 아랫사람은 반드시 입을 닫는다.” 윗사람이 듣지 않으려고 하면 아랫사람들은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게 되고, 잘못을 알아도 눈치부터 보게 된다. 그러니 리더라면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고, 틀렸으면 인정하며, 필요할 때는 아랫사람들의 말도 들어야 한다. 세종대왕도 이 점을 알고 이렇게 말했다. “임금이라 하여 어찌 허물이 없겠는가. 과오가 있다면 마땅히 말해 바로잡게 해야 한다.”
부족함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큰일을 해낼 수 있는 그릇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을 존중한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자리에 있다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위대한 리더는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가 아니라 남이 나에게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오늘부터 위대한 리더의 자세로 살아가길 바란다.
Chapter 05 성장하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넘어야 할 벽은 사라지지 않는다어느 날 외교 사절인 동지사들이 모두 결석해 경연을 쉬자고 청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은 일정이 맞지 않아 한 번쯤은 쉬어도 될 법한 날이었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좌부대언 윤회에게 《대학연의》를 읽게 하며 경연을 이어가게 했다. 《대학연의》는 임금이 어떤 마음과 태도로 권력을 써야 하는지, 욕망과 두려움에 끌려가면 어떤 결말을 맞는지를 다룬 책이다. 그날 읽은 글에서는 왕길이라는 신하가 창읍왕에게 잘못을 바로잡으라고 간언하다 죽게 된 이야기가 나온다. 창읍왕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간언을 피했다. 그는 눈앞의 위기만 넘기려는 선택을 반복하다 파멸한 인물이었다. 이 내용을 읽고 세종은 말했다. “들짐승이 아무리 달아나도 사냥꾼은 반드시 잡고 만다. 그 짐승이 험한 곳으로만 내달리며 넘어져 죽게 될 것은 생각하지 않으니, 지극히 어리석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 말은 책임이 두렵거나 불편한 말을 듣기 싫어서 도망간다면, 결국 스스로를 더 위험한 길로 몰아넣는다는 뜻이다. 또한 신하들에게 “책임을 피해 요령을 부리지 말라”는 경고이자, “왕인 나부터 도망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인생을 살다 보면 상황이나 관계에 따라 저마다 다른 책임감을 지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회피하고 떠나는 사람이 있다. 같은 상황 앞에서도 누군가는 돌아서고, 누군가는 버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선택의 문제에 가깝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현실을 직시할 것인가, 잠시 편해지기 위해 눈을 돌릴 것인가의 차이일 뿐이다. 책임은 등가교환이라고 할 수 있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주는 것이다. 내가 지금 책임지면 시간이 걸려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주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불편하고 무겁더라도 회피보다는 책임을 지는 선택지를 먼저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망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도망가려는 곳이 어디인지 아는 것이다. 사냥꾼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곳이라면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것이고, 더 험한 곳으로 내달리고 있다면 안전한 선택지를 찾아보아야 한다. 무작정 낙원을 찾아 떠난다면 도망간 그곳에서 벽을 또다시 마주하게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