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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때문에 불안하다는 착각

다우치 마나부 지음 | 부키


돈 때문에 불안하다는 착각

다우치 마나부 지음

부키 / 2026년 6월 / 272쪽 / 20,000원





제1부 정리하기 _ 외부에 침범당하지 않는 내부의 축



그 불안은 누군가의 비즈니스다 _ 불안을 부풀리는 분위기에서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까?


“다들 하고 있어.” 이 한마디에 우리는 ‘나도 빨리 시작해야 하는데’라며 초조해한다. 투자, 재테크, 다이어트 등등. 그중에서도 돈에 관한 초조함은 각별하다. 각종 광고는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돈을 불려야 한다는 초조함을 부추긴다. 그것이 정말 필요한지 생각하기에 앞서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시작했다’라는 분위기에 휩쓸리고, 그렇게 불안은 쌓여간다. 특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은 불안을, 불안은 초조함을 부른다. 저자 역시 금융계에서 일할 때 “국채를 사고 싶어 하는 은행이 많다”는 소문에 초조해져 매입액을 두 배로 늘렸다가 손해를 본 적이 있다. 프로도 초조하면 판단이 흐려진다.

이 초조함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는 방법 중 하나는 ‘자신만의 잣대’를 세우는 것이다. 저자가 학생들에게 내는 ‘멜론 주스’ 퀴즈가 이를 보여준다. 1,000엔짜리 주스를 500엔에 사 마셨는데 다음 날 300엔에 팔고 있다면 나는 이득인가 손해인가?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한 어머니의 “주스가 맛이 없었다면 얼마를 줬든 손해”라는 말이 핵심을 짚는다. 가격보다 맛, 돈의 득실보다 자신의 만족감이 중요하다.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만든다’에서 ‘갖고 싶어 하게 만든다’로:
왜 우리는 가격에만 주목할까? 그 배경에는 사회의 구조적 변화가 있다. 과거에 기업은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만들었으나, 지금은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게 만드는 데’ 힘을 쏟는다. 전후 부흥기부터 고도성장기까지는 동경심이 이끄는 풍요, 곧 기업과 소비자가 함께 미래로 나아가는 선순환이 있었다. 그러나 물건이 충분히 공급되자 관심이 돈(화폐)으로 넘어갔다. 소비자는 가급적 물건을 싸게 사 저축하려 하고, 기업은 판매를 늘리기 위해 가격 경쟁에 휘말린다. ‘물건을 팔고 싶어 하는 기업’과 ‘돈을 모으고 싶어 하는 소비자’가 대립하면서, 구매의 동기는 ‘동경’에서 ‘불안’으로 은근슬쩍 바뀌었다.

돈과 불안을 파는 시대:
2019년 ‘노후 자금 2,000만 엔 부족’ 보고서는 돈에 대한 불안을 부풀렸고, 단순히 모으는 것을 넘어 투자로 불리려는 움직임이 확대되었다. ‘물건을 팔고 싶어 하는 기업’과 ‘투자로 돈을 불리고 싶어 하는 소비자’의 니즈가 일치한 순간이다. 2024년 신 NISA(일본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제도로 ‘투자를 안 하면 손해’라는 분위기가 급물살을 탔다. 그러나 이 ‘돈에 대한 불안’은 만들어진 측면도 있다. 노후 불안은 본래 가족·지역과의 상부상조나 정년 후 기술 습득 같은 해결책도 있지만, ‘노후 자금에 대한 불안’으로 초점이 맞추어지면 돈을 모으고 불리는 데만 눈이 가게 된다. 금융 기관은 “인플레이션으로 현금 가치가 떨어진다”며 투자를 부추기지만, 과거 인플레이션 때는 금리가 올라 예금만으로도 돈을 불릴 수 있었다. 2025년 5월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2.8퍼센트에 도달했다. 견실한 방법이 있어도 잘 알려지지 않는 것은 금융 기관이 팔고 싶어 하는 것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이러한 의도를 알면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다.

‘가격’보다 ‘가치’를 우선하는 삶:
우리가 의식하는 가치는 만족감(사용 가치)과 가격(교환 가치) 두 가지이다. 소비자가 중시해야 할 것은 사용 가치이지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가격이 비쌀수록 가치 있다고 착각한다. 10만 엔짜리 재킷을 2만 엔에 샀다고 좋아하면서도 마음에 안 들어 옷장에 모셔만 둔다면 그 가치는 제로에 가깝다. 진정한 가치는 자신의 내부에만 존재하며 가격표로 측정할 수 없다. 아이가 그린 그림이나 첫사랑의 편지에 가격이 붙지 않는 것처럼, ‘프라이스리스(priceless)’란 그런 것이다.

가치는 각자가 자유롭게 결정하면 되고, 자신의 감각을 믿는 것이 가치관을 키우는 첫걸음이다. 지금 느끼는 불안이나 초조함은 정말 당신 자신의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정한 잣대에서 비롯된 것일까? 불안한 정보를 접하면 “이것은 누가, 무엇을 위해 알리고 있는가?”를 먼저 자신에게 물어보자. 자신의 가치 잣대가 있으면 같은 정보도 냉정하게 취사선택할 수 있지만, 없으면 ‘다들’이라는 가공의 존재에 대한 불안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불안은 타인의 잣대에서 생겨나고, 안심은 자신의 잣대에서 시작된다.

투자와 도박의 경계선 _ 성공한 사람을 따라 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이 불공평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짝사랑하는 사람 옆에 친구가 앉았을 때, 후배가 산 암호화폐가 폭등했을 때…. SNS에서는 “투자로 1,000만 엔을 벌었다” 같은 성공담까지 보게 된다. 그런 게시물을 보면 ‘나도 벌 수 있을지 몰라’라는 기대와 ‘정말 그렇게 간단할까’라는 의심이 교차한다.

‘다들 투자로 돈을 벌고 있다’의 정체:
‘다들 투자로 돈을 벌고 있다’는 느낌은 인간이 품기 쉬운 착각에서 비롯된다. 첫째, 좋은 결과에만 눈이 간다. 이웃집 정원의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이는 것은 ‘이웃집’이 한 채가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웃집 중 시든 잔디도 많지만 더 푸른 잔디만 눈에 들어온다. 둘째, 성공 사례가 많은 장소에 있다. 스키장에서 모두가 자신보다 잘 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상급자가 더 자주 가기 때문이다. 투자에서도 프로일수록 빈번하게 정보를 발신하고, 사람은 성공은 자랑하되 실패는 입을 다물며, SNS 알고리즘이 관심 끄는 게시물을 띄운다. “과거 15년 사이 가격이 세 배 올랐습니다”와 같은 권유도 30년 전으로 거슬러 가면 다른 사실이 보일 수 있다. 거짓말은 하지 않되 유리한 정보만 보여주는 것이다. 셋째, 성공하면 대부분 자신의 노력 덕분이라 생각한다(자기 고양적 편향). 성공하면 능력 덕, 실패하면 운 탓으로 돌리기에, SNS를 볼수록 ‘노력하면 나도 벌 수 있다’고 착각한다.

당신이 번 돈은 누구의 지갑에서 나온 것인가?:
흔히 “돈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 말대로 돈은 늘 누군가의 품에서 다른 누군가의 품으로 이동한다. 그렇다면 투자로 얻은 이익은 대체 누구의 지갑에서 나온 걸까? 이 질문은 투자와 도박의 차이를 파악하는 열쇠가 된다. 주식 투자의 이익은 두 군데에서 온다. 하나는 기업의 지갑, 즉 고객에게 도움이 된 보수이자 사회에 새 가치를 낳은 결과다. 또 하나는 다른 주주의 지갑, 즉 나중에 온 투자자가 비싸게 사 준 결과다. 결국 투자 이익의 출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 것에 대한 보수’와 ‘다른 투자자를 표적으로 삼은 돈’ 두 종류뿐이다. 이 차이가 건전한 투자와 도박을 구별한다.

부동산의 임대료 수입이나 은행 예금의 이자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 보수이므로 건전하다. 반면 “미래의 가격 상승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라는 부동산 투자나, 이익 대부분이 ‘다른 투자자가 비싸게 사 줄 것’에 의존하는 암호자산·FX는 새로운 가치를 거의 만들지 않아 도박성이 강하다. 따라서 ‘그 이익은 누구에게 도움이 된 것에 대한 보수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는 투자는 경계하는 편이 좋다. 타인의 지갑을 노린다는 것은 당신의 지갑도 누군가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투자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도박을 하고 싶은가, 건전한 투자를 하고 싶은가’를 생각해 보자.

왜 노력이 보상받지 못하게 되었는가?:
도박성 높은 투자가 선호되는 배경에는 경제 구조의 변화와 격차의 고정화가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지금의 일본에서 얼마나 현실감이 있을까. 교육 격차와 경제 격차가 결합해 빈곤의 연쇄가 고착되고 있다. 도쿄대생 가정의 과반수는 세대 소득이 950만 엔 이상으로, 육아 세대 평균(722만 엔)보다 훨씬 높다. 저자는 중졸 부모 슬하에서 도쿄대에 진학해 격차를 절감했지만, 교육에 열정적인 부모 덕에 빈곤의 연쇄에서 빠져나온 복 받은 경우다. “옛날에는 다들 가난했지만 노력해서 풍요로워졌다”는 자기 책임론도 있다. 과거 실물 경제 시대에는 원하는 것에 비해 생산 능력이 부족해 노력하면 능력을 발휘할 곳이 있었기에 자기 책임론이 설득력이 있었지만, 화폐 경제로 이행하면서 격차의 성질이 달라졌고 격차가 고착화되었다.



제2부 준비하기 _ 내부에 축적할 자산



사랑과 동료와 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_ 우리는 돈 이외에 무엇에 의지해야 할까?


언젠가 저자는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사랑, 동료, 돈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집계해 보니 사랑은 약 10퍼센트, 동료는 약 40퍼센트, 돈은 약 50퍼센트였다. 어느 학교에서든 사랑을 선택하는 학생이 가장 적었다. “돈은 매일 써야 하고 없으면 살아갈 수 없으니까요”, “사랑은 반년이면 식지만 돈은 배신하지 않아요” 같은 현실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그들은 사랑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손에 넣기 어려운 것에 기대를 갖지 않는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면 이 생각은 더욱 강해진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돈일까?

카레에 깃든 사랑 또는 이기심:
자취를 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이 식사였는데, 근처 카레 가게와 파스타 가게 덕에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돈만 내면 생면부지의 사람도 나를 도와주는 것은 신기한 구조다. 애덤 스미스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심이야말로 화폐 경제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 했다. 돈 덕분에 모르는 사람끼리도 협력하게 되었고, 삼각김밥 하나에도 점원·공장 직원·농부·기사 등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관여한다. 반면 가족에게 카레를 만들거나 친구의 고민을 들어 줄 때는 대가를 청구하지 않는다. 그 원동력은 순수한 마음, 곧 ‘사랑’이다. 누군가에게 협력하는 동기는 사랑(타인을 위해)과 이기심(자신을 위해) 두 가지이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우리는 돈을 매개로 타인에게 의지하게 되었지만, 이는 돈이 없으면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선택할 수 없는 마을’에서 ‘선택할 수 있는 동료’로:
과거 일본에서 생활을 뒷받침한 중심은 동료였다. 시라카와고의 ‘유이’라는 상부상조 시스템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무상으로 초가지붕을 교체해 준다. 저자도 어린 시절 마을 사람들이 장례식을 함께 준비하는 모습을 보았다. 직장과 거주지가 일체화되어 이웃이 곧 직장 동료이자 생활 동료였다. 다만 이런 상부상조에는 의무적 측면, 즉 인류학자인 마르셀 모스가 말한 ‘호혜성’이 있어 거절하면 고립될 위험이 있었다.

근대화로 선택지가 늘자 사람들은 지역의 굴레에서 벗어나 돈에 의지하는 삶을 택했고, 종신고용 시대에는 직장이 새로운 ‘마을’이 되었다. 그러나 종신고용이 무너지면서 직장의 마을도 해체되었고, 자유를 얻은 대가로 인간관계가 옅어져 ‘무엇이든 스스로 하는 사람’을 지향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의지할 동료가 없다면 새로 만들면 된다. 마을처럼 의무에 속박되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동료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동료를 움직이는 원동력 또한 ‘사랑’과 ‘이기심’이다.

‘주사위 6의 남자’가 사랑받은 이유:
회사에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다. 대졸 신입 사원 채용 면접에서 “주사위 두 개의 합이 가장 많이 나오는 눈은?”이라는 질문에 한 지원자가 “12입니다! 저는 필요한 순간에 반드시 6이 나오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도야 유토라는 그 지원자는 이후 합격하여 법인 영업부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런데 까다로운 메가뱅크 고객조차 그를 여러모로 배려하곤 했다. 알고 보니 그에게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성공을 거둬 온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그를 돕기 위해 애쓰곤 했다. 결국 그에게는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힘이 있기에, 그의 주사위는 모든 면이 ‘6’인 것이다.

훗날 패션 브랜드 ‘CLOUDY’를 설립한 그는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비결을 이렇게 말했다. “늘 어떻게 해야 상대방에게 기쁨을 줄지 생각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응원해 주는 사람이 늘어나죠.” 포인트는 ‘관찰력’, 곧 상대의 기분을 알아채고 작은 배려를 쌓는 것이었다. 그가 대가 없이 주변 사람들을 사랑했기에 그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와 응원도 자연스럽게 모여든 것이다.



제3부 직시하기 _ 바꿀 수 없는 외부의 현실



‘당신 탓’이 되어 버린 인구 문제 _ 왜 돈을 버는 사람이 훌륭하다는 인식이 생겼을까?


“엄마보다 연봉이 높은 아빠가 더 훌륭한 사람인 거야?” 한 어머니가 초등학생 아들의 이 질문에 가슴이 뜨끔했다. 아이에게는 악의가 없다. 그저 주변의 분위기를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얼마 전까지 돈 이야기는 터부시되었지만, 지금은 방송과 유튜브에 ‘연봉’, ‘최고 월수입’이 난무하고 젊어서 수천만 엔을 버는 ‘영 앤 리치’가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지만 연봉이 적으면 사회적 지위가 낮아 보일까 걱정”이라는 대학생도 있었다. 소개팅 앱에서도 연봉이 필수 입력 항목이다. 이처럼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시대에 우리는 ‘연봉의 저주’에 묶여 있다.

물론 돈이 없으면 편히 살 수 없다. 그러나 과거의 위인들은 “돈 자체는 본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애덤 스미스는 “화폐는 교환의 도구일 뿐이며 부를 낳는 것은 노동”이라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도 “화폐는 단순한 관습이지 부 자체가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식량을 모으는 것과 돈을 모으는 것은 정말 같은 행위일까? 현대판 《개미와 베짱이》우화를 통해 개미의 ‘저축 신앙’에 숨은 함정을 살펴보자.

현대판 ‘개미와 베짱이’의 교훈:
시간이 흘러 이솝 우화의 세계에도 근대화의 물결이 밀려왔다. 곤충들의 생활도 변화해 비축 대상이 식량에서 돈으로 바뀌었고, 겨울에도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해 기상청이 ‘100년 만의 초강력 한파가 올 것‘이라고 예보하자, 한 평론가가 “200만 엔만 있으면 집에서 겨울나기를 하면 된다”고 발언했다. 그러자 근면한 개미들은 저축에 열을 올린 반면 베짱이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마침내 초강력 한파가 닥치자 개미들은 휴가를 내고 여유를 부렸다. 그런데 전력 수요가 급증해 정전이 발생했다. 발전소에는 베짱이들만 출근해 일손이 모자랐다. 음식 배달도 개미들이 몰려 피자 한 판에 10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이튿날 부유한 개미들이 “돈을 더 줄 테니 먼저 배달해 달라”고 하자, 일을 선택할 수 있는 베짱이들은 배달료를 500엔에서 5,000엔으로 올렸다. “싫으면 주문하지 마. 지금은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어.” 힘의 형세가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결국 개미들은 집에서의 겨울나기를 포기하고 직장으로 돌아갔고, 그제야 생활 기반시설이 정상화되었다. 개미들은 깨달았다. ‘아무리 돈을 모은들, 일해 줄 누군가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구나.‘

모두가 안정된 노후를 누리려고 경쟁하는 날이 온다:
이 우화는 돈이 가치를 지니려면 일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동시에 우리의 미래를 예고한다. 저출산·고령화로 일하는 사람이 줄면 모두가 평등하게 필요한 것을 얻기 어려워지게 되면서, 몇 개 안 되는 의자를 두고 다투는 ‘의자 앉기 게임’ 같은 사회가 된다. ‘노후 자금 2,000만 엔 문제’의 본질도 이것이다. 100명이 2,000만 엔을 모아도 의자가 10개뿐이면 모두 앉을 수 없다. 의자 가격이 3,000만, 4,000만 엔으로 올라 결국 가장 돈 많은 10명만 앉을 수 있게 된다. 이 게임의 승리 조건은 2,000만 엔을 모으는 게 아니라 남보다 더 많이 모으는 것이다. 90명이 앉지 못한 것은 운용이 서툴거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저 의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결국 저축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므로 의자 자체를 늘리는 노력, 곧 인재 부족과 저출산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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