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식물학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 사람과나무사이
방구석 식물학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사람과나무사이 / 2026년 4월 / 228쪽 / 17,500원
제1장. 이름도 사연도 제각각, 들판의 풀꽃
큰개불알풀 - 여인은 왜 처형장으로 향하던 예수에게 손수건을 건넸을까대학 입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작고 파란 큰개불알풀이 길가에 피어 있었습니다. 유럽 원산의 귀화식물인 큰개불알풀은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도 꽃을 피워 봄이 머지않았음을 알려주는 기특한 식물입니다. 큰개불알풀의 학명은 Veronica(베로니카: 기독교 전승에 등장하는 여성.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고 전해진다_옮긴이)입니다. 형장으로 끌려가는 예수에게 손수건을 건넨 여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여인이 건넨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자 그리스도의 얼굴이 천 위에 선명히 새겨지는 기적이 일어났고, 이 이야기는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작은 풀꽃 하나에 이토록 깊은 사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제비꽃 - 천재 수학자가 제비꽃에서 찾은 답, 피어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조용히 피어나는 들꽃인 제비꽃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에 수수하게 피어나면서도 묵묵히 제 몫을 다하고,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천재 수학자 오카 기요시(1901~1978, 다변수 복소함수론 분야에서 세계적 업적을 남긴 일본의 수학자_옮긴이)는 수학이 “인류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무슨 역할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제비꽃처럼 피어 있으면 됩니다”라고. 사람들은 저마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무슨 역할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합니다. 그러다 결국 ‘자신은 아무 의미 없는 존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제비꽃은 그런 고민 따위 하지 않습니다. 제비꽃이기 때문에 제비꽃을 피웁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제비꽃이 아름다운 것은 그래서입니다.
유채 - 그 노란 꽃밭, 유채일까 아닐까봄이 되면 어디선가 펼쳐지는 샛노란 꽃밭. 우리는 으레 그것을 유채꽃이라 부르지만 사실 도감에는 ‘유채꽃’이라는 식물이 따로 없습니다. 유채는 배추속(Brassica) 식물에 피는 노란 꽃을 두루 일컫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종류가 워낙 다양해서 식물명으로는 특정하기 어렵고, 길가나 빈 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귀화식물입니다. 봄 들판을 가득 채운 노란 꽃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양유채·서양배추·양배추·콜라비·갓 등 저마다 잎을 활짝 펼친 꽃들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모두 넓은 의미의 유채꽃입니다. 유채는 오래전부터 등잔 기름을 짜는 작물로 재배되어왔고, 봄을 노래하는 시와 노래에도 자주 등장하는 친근한 식물입니다. 샛노란 꽃빛처럼 밝고 활기찬 봄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냉이 - 잡초라 불리지만 그 이름엔 사랑이 담겨 있다“집안이 망하면 지붕 위에 냉이가 자란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냉이는 생명력이 강한 풀로 알려져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마저도 자라지 못할 만큼 황폐한 땅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심한 경우 빈정거림의 표현으로도 사용됩니다. 그런데 냉이(ナズナ)라는 이름의 유래는 사뭇 다릅니다. ‘애지중지 여기는 채소’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실제로 냉이는 예나 지금이나 식용채소로 사랑받는 식물입니다. 강인한 생명력 덕분에 잡초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그 이름 안에는 오래전 사람들이 냉이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민들레 - 옆으로 눕는 뜻밖의 이유민들레가 옆으로 눕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민들레는 꽃을 피울 때 줄기를 곧게 세웁니다. 그러나 꽃이 지고 나면 줄기를 눕혀 꽃을 땅에 바짝 붙입니다. 그러다 씨앗이 여물 무렵이 되면 줄기가 다시 일어나 홀씨를 바람에 날려 보냅니다. 이 일련의 움직임을 ‘민들레 체조’라고 부릅니다. 줄기가 한 단 높이 솟는 것은 홀씨를 멀리 날려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땅 위를 옆으로 기듯 눕는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강풍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서라고도 하고 씨앗이 여물 때까지 새로운 꽃을 피워 곤충을 불러들이기 위해서라고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민들레가 옆으로 눕는 것은 결국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입니다. 민들레의 꽃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 피고 지며 마침내 땅으로 돌아갑니다.
쇠뜨기 - 3억 년 전부터 지구를 지켜온 살아 있는 화석쇠뜨기는 꽃이 피지 않는 양치식물입니다. 봄에 흔히 볼 수 있는 앙증맞은 쇠뜨기 새순은 포자를 날리기 위해 내보내는 포자줄기입니다. 꽃 대신 포자로 번식하는 식물인 겁니다. 쇠뜨기는 약 3억 년 전 석탄기(고생대 후기에 해당하는 지질시대로 지금으로부터 약 3억 6,000만 년 전~3억 년 전에 해당한다_옮긴이)에 크게 번성했습니다. 당시에는 높이가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쇠뜨기 무리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쇠뜨기들이 땅에 쓰러져 쌓인 것이 오늘날 석탄의 원료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발밑에서 소박하게 자라는 쇠뜨기를 내려다보고 있자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의 울창한 숲속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쑥 - 탈모를 해결하는 쑥의 놀라운 기술쑥은 잎 뒷면이 하얗게 보입니다. 잎 뒷면에 가느다란 솜털이 빽빽하게 나 있기 때문입니다. 쑥은 예로부터 쑥떡의 재료로 쓰여왔는데, 바로 이 솜털 덕분에 떡에 찰기가 생깁니다. 쑥잎을 떡 반죽에 넣으면 솜털이 반죽과 얽히면서 찰지고 부드러운 식감을 만들어냅니다. 쑥의 솜털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한 가닥의 털이 중간에서 두 가닥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한 가닥의 머리카락이 여러 가닥으로 갈라지는 원리와 같습니다. 실제로 탈모로 고민하는 사람들의 발모를 돕는 방법도 이와 같은 원리를 활용한다고 합니다. 쑥도 같은 방식으로 털의 수를 늘려가는 것입니다.
엉겅퀴 - 아담과 이브의 죄에서 태어난 잡초인류가 맨 처음 만난 잡초는 무엇이었을까요? 성경에 따르면 아담과 이브는 신의 가르침을 어기고 에덴동산에서 금단의 열매를 먹었다가 낙원에서 쫓겨납니다. 그렇게 에덴을 떠난 그들 앞에 가시 돋힌 이바라(イバラ: 가시가 있는 덤불식물을 통칭하는 말_옮긴이)와 엉겅퀴가 자라고 있었고, 들의 풀을 먹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인류에게 처음으로 만난 잡초는 엉겅퀴였는지도 모릅니다.
끈끈이대나물 -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자꾸 벌레들을 잡아두는 이상한 식물끈끈이대나물은 원래 원예종이었지만 지금은 야생화되어 들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름에 ‘벌레잡이(ムシトリ)’가 붙어 있지만 실제로 식충식물은 아닙니다. 줄기에서 끈끈한 점착물질이 분비되어 벌레가 달라붙는 점이 주목을 받아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영어로는 ‘캐치플라이(Catchfly)’라고 불립니다. 우리말로는 ‘파리잡이’ 정도 됩니다. 꽃말은 ‘덧’과 ‘배신’. 먹히는 것도 아닌데 꼼짝없이 붙잡혀 움직이지 못하게 된 벌레들의 원망이 담긴 꽃말인 듯합니다. 좋아하지도 않는데 자꾸만 잡아두는 식물. 끈끈이대나물은 그런 꽃입니다.
토끼풀 - 밟히면서 자라는 불굴의 식물네잎클로버(토끼풀의 잎이 돌연변이로 네 장이 된 것_옮긴이)는 ‘행운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네잎클로버가 길가나 자주 밟히는 곳에서 잘 발견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사실 네잎클로버는 잘 밟히는 곳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잘 밟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토끼풀은 성장점이 땅 가까이에 있어서 밟혀 상처를 입으면 네잎클로버가 나오기 쉽습니다. 그래서 길가나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곳에서 유독 네잎클로버가 잘 보이는 것입니다. 행운은 토끼풀처럼 밟히고 또 밟히면서 자라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괭이밥 - 그 잎으로 거울을 닦으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비친다?!괭이밥의 꽃말은 ‘빛나는 마음’. 그 이름에 걸맞게 옛날에는 귀한 물건을 닦는 데 괭이밥 잎을 사용했습니다. 괭이밥 잎에는 수산(蓚酸: 식물에 함유된 유기산의 일종으로 금속 표면의 산화물을 제거하는 성질이 있다_옮긴이)이 들어 있어 금속을 닦는 데 효과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동전을 닦아보면 놀랄 만큼 반짝반짝해집니다. 괭이밥 잎으로 거울을 닦으면 거울 속에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비친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아름다운 하트 모양의 잎에 그런 전설이 깃들어 있다니 참으로 낭만적인 식물입니다.
꽃무릇 - 묘지에 피는 꽃에 담긴 뜻밖의 사연꽃무릇은 추분 무렵 피어나는 꽃입니다. 꽃무릇은 씨앗이 생기지 않아 스스로 분포를 넓힐 수 없습니다. 각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예로부터 사람들이 이 식물을 귀하게 여겨 꾸준히 심어왔기 때문입니다. 구근에는 독성이 있지만 물에 헹궈 독을 제거하면 풍부한 전분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근이 들 때를 대비해 비상식량으로 심어온 것입니다. 흔히 묘지에 주로 피어 있어 불길한 꽃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사실 절이나 고지대의 묘지는 마을 사람들의 마지막 피난처였습니다. 꽃무릇은 굶주림으로부터 사람을 구해주는 귀한 식물이었던 셈입니다. 꽃무릇은 두더지, 들쥐를 쫓아 묘지를 보호하고 강한 뿌리로 제방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붉게 수놓인 꽃길 아래에는 그 땅을 지키고자 했던 옛사람들의 깊은 배려가 담겨 있습니다.
겨우살이 - 크리스마스에 이 식물 아래서 키스를 하면?잎을 다 떨궈낸 공원 나무의 앙상한 가지 위로 푸른 빛을 띠는 식물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바로 겨우살이입니다. 다른 나무의 가지에 뿌리를 내리고 영양분을 조금씩 얻어 쓰는 기생 식물이라 겨울에도 시드는 일이 없습니다. 영화 <토이 스토리>의 마지막 장면에서 우디와 양치기 소녀 보가 크리스마스 키스를 나눌 때 양들이 입에 물고 있던 것이 겨우살이였습니다. 또한 영화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에서도 해리와 그가 동경하던 소녀 초 챙이 첫 키스를 할 때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신비롭게 늘어져 있던 식물 역시 겨우살이였습니다. 서양에서는 예로부터 겨우살이 아래에서 만난 남녀는 키스해도 좋다는 낭만적인 관습이 전해 내려옵니다. 남성들은 사랑을 고백하고 싶은 여성을 겨우살이 아래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밤 이 나무 아래에서 남녀가 키스하면 영원히 행복해진다는 전설 덕분에 겨우살이는 로맨틱한 영화나 드라마에 빠지지 않는 소재가 되었습니다.
제2장. 신화와 전설이 꽃이 되어 정원에 피다
팬지 - 처음 본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마법의 꽃팬지를 영어권에서는 ‘Love-in-idleness(한가로운 사랑)’라고 합니다. 또 ‘Kiss me at the garden gate(정원 문가에서 키스해줘)’, ‘Jump and kiss me(달려와 키스해줘)’, ‘Kiss me(키스해줘)’라는 별칭으로도 불립니다. 팬지 꽃의 중심부를 꽃잎이 감싸는 모양이 키스를 연상시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서양의 전설에 따르면 천사들이 꽃에 세 번 키스를 한 덕분에 지금의 팬지가 세 가지 색을 띠게 되었다고 합니다. 19세기에는 사색하는 사람을 연상시키는 사람의 얼굴을 닮은 품종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팬지라는 이름은 프랑스어로 ‘생각’을 의미하는 ‘팡세(Pensee)’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에서 팬지꽃의 즙은 사랑의 묘약으로 등장합니다. 팬지의 즙을 눈꺼풀에 바르면 잠에서 깬 사람은 눈을 떠서 처음으로 본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강력한 사랑의 마법을 깨뜨리는 해독제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쑥이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반전입니다.
수선화 -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진 미소년의 이야기수선화의 학명은 나르키소스(Narcissus)입니다. 자기 자신에 도취된 사람을 ‘나르시시스트’라고 부르는데 나르키소스가 그 말의 어원입니다. 수선화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소년 나르키소스의 이름을 딴 식물입니다. 많은 여성이 나르키소스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에게 상처 입은 이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은 복수의 여신은 나르키소스가 다른 누군가가 아닌 오직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게 하는 저주를 내립니다. 샘물에 비친 제 모습과 지독한 사랑에 빠진 그는 수면에 비친 자신의 환상을 갈망하다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맙니다. 그가 떠난 자리에 피어난 꽃이 바로 수선화입니다. 수선화가 물가에서 고개를 숙인 채 피어나는 모습은 마치 지금도 수면을 들여다보며 제 모습에 넋을 잃은 소년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편 고대 중국에서는 물가에 핀 이 꽃의 고고한 아름다움을 두고 ‘물의 신선’이라는 의미의 수선(水仙)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수레국화 - 꽃점으로 사랑을 확인하는 식물수레국화는 수줍은 남성의 꽃점으로 유명합니다. 꽃의 여신 플로라에게 헌신한 꽃으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키아노스(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청년으로 플로라를 사랑하다 죽은 뒤 수레국화로 변했다고 전해진다_옮긴이)가 죽은 뒤 꽃으로 변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꽃말은 “독신 생활”. 영국에서는 미혼 남성이 이 꽃을 옷깃에 달고 다니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꽃점은 보통 여성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수레국화의 꽃점은 남성이 합니다. 남성이 주머니에 넣어둔 꽃이 살아 있으면 상대 여성과 결혼하고, 시들어버리면 그 여성은 다른 남성과 결혼한다고 점치는 것입니다.
철쭉 - 아름다운 꽃에 어울리지 않는 한자의 비밀철쭉은 한자어로 척촉이라고 쓰기도 합니다. 장미(薔薇)나 포도(葡萄), 창포(菖蒲) 등 식물 이름에 읽기 어려운 한자가 쓰이는 일은 종종 있지만 대개는 풀을 의미하는 초두머리가 붙어 있어 식물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런데 철쭉은 두 글자 모두에 발을 의미하는 ‘발 족’ 변이 붙어 있습니다. 본래 이 글자는 식물 이름이기 이전에 ‘제자리에서 머뭇거리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주저(躊躇)하다’와 일맥상통하는 말입니다. 꽃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길 가던 이가 무심코 발걸음을 멈추고 머뭇거렸을까요.
작약 - <해리 포터>에도 등장하는 전설의 약초영화 <해리 포터>에는 뽑으려고 하면 무시무시한 비명을 지르는 식물이 등장합니다. 그 소리를 들은 자는 반드시 죽게 된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가짓과의 만드라고라입니다. 사실 작약(芍藥)에도 이와 비슷한 전설이 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작약을 뽑을 때 꽃이 내뱉는 엄청난 소리를 들으면 죽음에 이른다는 괴담이 돌았습니다. 사람들이 작약을 채취할 때 개를 줄기에 묶은 뒤 고기로 유인해 대신 뿌리를 뽑게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물론 이는 전설일 뿐이지만 이런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만들어질 만큼 작약이 구하기 어렵고 값비싼 약재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작약은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의술의 신 패온(Paeon)은 저승 세계 왕의 상처까지 치료했다고 전해지는데 작약의 학명인 파에오니아(Paeonia) 역시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동양에서도 작약은 한자로 ‘좋고 즐거운 약’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본래는 이처럼 귀한 약초로 대접받았으나 이후 꽃의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한 관상용 품종으로도 널리 사랑받게 되었습니다.
글라디올러스 - 검투사들이 시합이나 전투에 나갈 때 품었던 꽃글라디올러스는 잎이 검처럼 생겼습니다. 구근은 방패와 비슷합니다.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들이 무기로 쓰던 검을 라틴어로 ‘글라디우스(gladius)’라 했고, 이 꽃의 이름도 이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검투사들은 ‘글라디에이터(gladiator)’로 불렸습니다. 이 글라디우스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 글라디올러스입니다. 잎의 모양이 검을 닮은 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구근은 방패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여 ‘편물무늬의 방패’로도 불렸습니다. 중세 병사들은 출정할 때 이 구근을 부적으로 몸에 지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