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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의 인생수업

김옥림 지음 | 미래북


김구의 인생수업(백범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 기념 에디션)

김옥림 지음

미래북 / 2026년 2월 / 320쪽 / 18,900원





Chapter 1. 배움에 힘쓰고 스스로를 강하게 하다



스스로 힘쓰고 가다듬어 열심히 하다


어려움 속에서 더욱 강해지고 단단해졌던 김구:
김구는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점차 강해졌다.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하고 싶은 공부를 제대로 하지는 못했지만, 서너 번에 걸쳐 서당 공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공부해 학문을 익혔다. 또한 과거시험에도 응시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김구는 동학에 눈을 뜨게 되어 접주가 되었고, 해주성을 공격하다 실패했다. 실패의 충격은 그에게 좌절감을 주기도 했으나, 강한 신념과 의지를 길러야 한다는 자각을 심어주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 용의자인 왜인을 죽이고 감옥에 투옥되어 고문을 당하면서도 기개가 꺾이지 않고 더욱더 강해졌다.

이후 김구는 감옥을 탈옥하여 전국 각지를 떠돌며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가졌다. 그러는 동안 김구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겪고, 느낌으로써 삶을 성찰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 후 안악에서 교육에 치중하던 중 일본 경찰에 의해 민족주의자로 지목되어 또다시 투옥되었다. 세 번에 걸친 투옥에도 김구의 신념과 의지는 더욱 강해졌고, 이는 훗날 임시정부 수반으로 일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김구는 감옥생활에서도 스스로를 단련시키며 앞날을 생각했다. 다음 글은 그러한 그의 의지를 잘 보여준다.

“나는 나라가 망하기 전 구국사업에 성심성력을 다하지 못한 죄를 받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어려운 때를 당해 응당 지켜야 할 신조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했다. ‘드센 바람에 억센 풀을 알고, 나라가 어지러울 때 참된 신하를 안다’고 한 옛 가르침과 죽어도 꺾이지 않았다는 사육신과 삼학사에 대해 가르쳐 주신 고능선 선생의 말씀을 다시금 생각했다.”

김구는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며 힘들 때마다 자신을 스스로 강하게 하기 위해서 스승 고능선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자신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사람은 같은 환경에서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인다. 좋은 결과는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차근차근 노력이 더해지고, 주변의 도움이 더해질 때 오는 것이다. 김구는 치하포 사건으로 투옥된 뒤 그의 기개를 본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인천감옥을 탈옥한 후 숨어 지내는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앞날을 기약할 수 있었다.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을 행하라


일찍이 맹자(孟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모구존 형제무고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득천하영재 이교육지

(父母俱存 兄弟無故 仰不傀於天 俯不?於人 得天下英才 而敎育之)



이는 군자삼락(君子三樂)이라는 말로 ‘첫째는 부모가 건재하고, 형제가 무고한 것, 둘째는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보아도 남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 셋째는 천하의 재주 있는 젊은이를 모아 교육하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물론 이는 지금과는 삶의 구조가 상대적으로 지극히 단순한 시대에 한 말이지만, 삶의 근본에 있어서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하겠다.

가치 있는 일을 통해 가치 있는 삶을 살기:
“가장 귀중한 사랑의 가치는 희생과 헌신이다.” 이는 스페인의 철학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한 말로,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 ‘사랑’은 ‘희생과 헌신’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김구의 삶은 조국과 민족에 대한 희생과 헌신이었다. 가난한 나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스스로 읽고 쓰고, 스승 고능선을 통해 배움의 갈증을 풀며 인격을 닦았던 김구는 자신의 인생에서 정작 자신은 없었다. 가족 또한 조국과 민족의 뒷자리에 두었다.

“첫째도 대한독립이오, 그다음도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세 번째 물음에도 더욱 소리 높여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이는 김구가 ‘나의 소원’이라는 글에서 한 말이다. 이 말에서도 알 수 있듯 김구에겐 조국의 독립만이 전부였고 민족의 자유와 평화만이 전부였다. 조국의 독립이라는 목표가 김구의 가슴에 불타고 있었기에 그는 어떤 고난과 시련에도 두려움 없이 실행해 나갈 수 있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김구가 이봉창을 통해 히로히토 일본 천황을 제거하기 위해 의거한 것이나, 윤봉길을 통해 홍구공원에서 상해 파견 일본군 사령관 시라카와 대장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을 제거하기 위해 벌인 의거, 상해에서 벌인 수많은 거사들과 광복 후 민주 진영과 공산 진영으로 갈라진 조국을 통일시키기 위해 반대를 무릅쓰고 담판을 짓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일은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희생과 헌신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어디 이뿐이랴. 김구가 임시정부의 문지기라도 하기 위해 상해로 가기 전 국내에서 벌인 치하포 사건이나, 동학군 접주로 해주성을 공격한 것이나, 나라의 발전을 위해 교육의 절실함을 느껴 교육에 헌신한 것 등은 오직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였다. 김구는 어느 한순간도 자신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생각하고 행동한 적이 없을 만큼, 오로지 조국의 독립과 민족을 위하는 일에만 절대적이었다.

“칠십 평생 잘하나 못하나 독립운동을 해왔다. 이제 마지막으로 독립운동을 하려는데 너희들은 왜 길을 막느냐. 내가 가려는 것은 바로 나라와 여러분들을 위해 가려는 것이다. 내가 가면 공산당에 붙들려서 오지 못할까 염려해서인 줄로 안다. 그러나 내가 살면 얼마를 사느냐. 제발 나의 길을 막지 말라.”

이는 김구가 평양으로 가는 날 그를 가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을 향해 김구가 한 말이다. 김구는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의 바람을 뒤로한 채 자신의 신념대로 평양에 갔다. 자신의 안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김구의 의기가 잘 나타난 말이라 하겠다.

“앞으로 통일된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 박사가 되어야 한다.”



김구가 한 이 말에는 자신의 영예보다는 이승만에게 양보하는 그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이처럼 김구는 사심 없이 오직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했다. 또한 김구는 독재나 공산주의를 싫어했다. 그것은 인간의 자유와 평화를 억압하는 것이기에 강하게 배격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독재의 나라가 되기를 원치 아니한다. 독재의 나라에서는 정권에 참여하는 계급을 제외하고 다른 국민은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다. 독재 중에서 가장 무서운 독재는 어떤 주의, 즉 철학을 기초로 하는 계급 독재이다. 군주나 기타 개인 독재자의 독재는 그 개인만 제거하면 그만이지만, 다수의 개인으로 조직된 한 계급이 독재의 주체일 때 이것을 제거하기는 심히 어렵다. 이러한 독재는 그보다도 큰 조직의 힘이나 국제적 압력이 아니고는 깨뜨리기 어려운 것이다.”

김구의 말을 보면 그가 독재의 위험성에 대해 세심히 꿰뚫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김구의 말대로 공산주의의 계급 독재는 많은 문제점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김구가 원하는 우리나라는 민주국가였다. 민주국가야말로 자유와 평화가 보장되는 나라로 국민이 인간답게 사는 나라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듯 김구는 평생을 조국의 독립과 민족을 위한 가치 있는 일을 통해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

자긍심을 갖고 매사에 빈틈없이 행하다


주체의식을 갖고 매사에 빈틈없이 행하다:
김구는 주체의식이 매우 강했다. 그의 글은 그가 얼마나 자기 주관이 분명하고 주체의식이 강한지를 면밀히 보여주고 있다.

“독립이 없는 나라의 백성으로 칠십 평생에 설움과 부끄러움과 애탐을 받은 나에게는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보다가 죽는 일이다. 나는 일찍이 우리 독립정부 문지기가 되기를 원했거니와 그것은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의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왜 그런고 하면 독립한 제 나라의 빈천이 남의 밑에 사는 부귀보다 기쁘고 영광스럽고 희망이 많기 때문이다. (…) 근래에 우리 동포 중에는 우리나라를 어느 큰 이웃 나라의 연방에 편입하기를 소원하는 자가 있다 하니, 나는 그 말을 차마 믿지 않으려 하거니와 만일 진실로 그런 자가 있다 하면, 그는 제정신을 잃은 미친놈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 말엔 김구의 주체의식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을 뿜어대고 있다. 그 정도가 너무 강해 그 어떤 것으로도 돌릴 수 없을 만큼 주체의식이 확고하다. 특히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의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말은 가슴을 찡하게 한다.

“일부 소위 좌익의 무리는 혈통의 조국을 부인하고 소위 사상의 조국을 운운하며 혈족의 동포를 무시하고 소위 사상의 동무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계급을 주장해 민족주의가 마치 이미 진리에서 벗어난 것 같이 말하고 있다.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철학도 변하고 정치, 경제 학설도 일시적인 것이나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

이 말에는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일부 사람들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김구는 공산주의를 강력하게 배격했다. 공산주의 사상이란 것은 모든 것이 평등하다는 원리지만 사실은 사람들을 계급으로 차등을 두는 독재정권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민족주의를 버리고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것은 엄연히 매국의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김구는 철저한 민족주의자이며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민주주의자이다. 그러니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이 김구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나라는 내 나라요, 남들의 나라가 아니다. 독립은 내가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 삼천만이 저마다 이 이치를 깨달아 행한다면, 우리나라가 완전한 독립이 아니 될 수 없고, 또 좋은 나라 큰 나라로 길이 보존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말엔 자주독립을 향한 김구의 열망이 진하게 묻어난다. 남의 손을 빌려서 하는 것은 자주정신에 어긋난다는 이 말의 의미는 그가 얼마나 우리 민족의 힘으로 자주독립하는 것을 갈망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갈망하는 김구의 염원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뼛속까지 철저한 독립주의자이자 주체의식으로 똘똘 뭉쳐진 김구의 민족정신에 힘입어, 오늘의 우리나라가 될 수 있었음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의 영원한 등불이며 철학이며 사상이다.



Chapter 2.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관계를 중요히 하다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진실한 마음으로 인간을 존중하고 사랑하라:
마음이 진실한 사람은 거짓이 없다. 언제나 있는 것만 말하고 정직하게 행동한다. 진실한 마음은 결이 곧고 반듯하기 때문인데 김구는 마음에 흐트러짐이 없고, 그 이면은 따뜻한 인간미를 품고 있었다. 진실은 사랑을 통해서 증명된다. 아무리 자신이 진실하다고 말한다고 해도 진실한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면 진실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또 나아가 이런 사람은 진실한 사랑을 한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입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포에게 주는 것으로 낙을 삼는 사람이다. 우리말에 이른바 선비요, 점잖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사랑하는 처자를 가진 가장은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한없이 주기 위함이다. 힘든 일은 내가 앞에서 하니 사랑하는 동포를 아낌이요, 즐거운 것은 남에게 권하니 사랑하는 자를 위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인후지덕(仁厚之德)이다.”

이는 김구의 말로,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잘 드러낸 말이다. 특히 ‘힘든 일은 내가 앞에서 하니 사랑하는 동포를 아낌이요, 즐거운 것은 남에게 권하니 사랑하는 자를 위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은 김구의 애민사상을 엿볼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말이라고 하겠다. 이처럼 김구는 인간과 인간의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사랑과 사랑으로 맺어진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랬기에 조국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함으로써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목숨 바쳐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믿음과 신뢰를 중요히 하다


믿음과 신뢰는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소중한 마인드이다:
김구는 믿음과 신뢰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인간관계에서 믿음과 신뢰가 깨지면 나와 너, 우리라는 울타리가 무너진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특히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함께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있어 믿음과 신뢰는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김구는 사람을 대할 때 늘 믿음과 신뢰로써 대했다. 처음 본 사람들 중에도 이 사람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믿음의 눈으로 사람들을 대하면 상대에 대한 그의 믿음과 신뢰는 그대로 적중했다. 다음 일화는 김구의 이런 믿음과 신뢰의 원칙을 잘 보여준다.

어느 날 임시정부로 한 청년이 찾아왔다. 그는 김구에게 조국을 위해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구는 그 청년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 청년은 상해 홍구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한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채소 장사를 하는 이유는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지도해달라고 간청했다. 그 청년의 굳은 의지에서 믿음과 신뢰를 본 김구는 그의 요청을 수락했다. 그리고 홍구공원에서 천황의 생일을 맞아 경축식을 하는 날을 거사일로 정해 철저히 준비했다. 청년은 거사를 성공시키기 위해 날마다 홍구공원으로 가서 거사를 벌일 위치를 이리저리 바꿔 가며 연습을 했다. 드디어 거사 날이 되었다. 청년은 그동안 연습한 대로 침착하게 거사의 기회를 엿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폭음과 함께 폭탄이 터지면서 경축장은 쑥대밭이 되었다. 이날 거사로 상해 파견 사령관인 시라카와 대장은 사망하고, 9사단장 우에다 중장은 발가락을 잘리고, 거류민 단장은 사망했으며,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는 오른쪽 눈을 잃었다. 이 사건으로 임시정부의 위상은 높아졌고, 조국에 있는 국민들과 해외동포들에게 큰 희망과 위안이 되었다. 또한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위상을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홍구공원 거사의 주인공 청년은 윤봉길 의사이다.

“나는 이번 일이 확실히 성공할 것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소. 군이 일전에 내 말을 듣고 나서 하신 말씀 중에 ‘이제는 가슴속의 번민이 가라앉고 편안해진다’고 한 것은 성공의 철석같은 증거라 믿소. 내가 치하포에서 쓰치다를 죽이려 할 때 가슴이 울렁거렸으나, 고능선 선생이 가르쳐 주신 ‘가지 잡고 나무에 오르는 것은 그다지 대단할 것은 없으나,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을 수 있어야 장부라 할 수 있다’는 구절을 떠올리고 마음이 가라앉았소. 군과 나의 결심 행동이 서로 같은 까닭이 아니겠소.”

이는 김구가 윤봉길에게 한 말로, 그가 거사에 반드시 성공할 것을 믿고 신뢰한다는 것을 확고하게 보여준 말이다. 결국 윤봉길은 김구의 믿음처럼 거사에 성공해 대한 남아의 기개를 세계만방에 떨쳤던 것이다. 역시 김구는 큰 도량을 가진 대인이자 현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Chapter 3. 신념과 의기로 흔들림 없이 행하다



의기와 의욕을 품고 열정적으로 실행하다


의지와 기개로 대한의 기상을 떨치다:
의기충천(意氣衝天)은 ‘의지와 기개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라는 뜻으로 의로운 기상이 넘쳐남을 말한다. 김구의 의기는 하늘을 찌르고, 땅을 뒤흔들 정도로 기백이 넘쳤다. 그는 가장 두려운 순간에도 절대 자신의 의기를 꺾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위급한 순간이나 두려움이 극에 달하는 순간 더욱 의기충천했다. 다음 일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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