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두렵지 않은 어른이 된다는 것
김이섭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P
말이 두렵지 않은 어른이 된다는 것
김이섭 지음
스노우폭스북스P / 2026년 1월 / 224쪽 / 16,800원
1부 근본과 진실 _ 말에는 그 사람의 품격이 담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우리가 하는 말은 하늘에서 느닷없이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무언가가 어느 순간 밖으로 툭 튀어나올 뿐입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행복해서 웃을 수 있고 웃어서 행복해지는 것처럼,
말도 따뜻한 마음에서 나오고 따뜻한 말로 인해 마음도 더불어 따뜻해지는 것입니다.
말은 마음의 소리입니다. 지금부터 내가 건네는 말 한마디에 마음을 조금 더 보태보세요.
그러면 나도, 내 말을 듣는 사람도, 나아가 이 세상도 조금은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마음에서 울려 나오는 말의 힘을 믿습니다.
말은 마음의 소리이고, 말은 그 사람을 닮는다. (言爲心聲 言如其人)
- 사마천(BC 145?~BC 86?), 『사기史記』 「항우본기」
말이 아름다우면 울림도 아름답다말이 번거로운 사람이나 거친 사람이나, 미덥지 않기는 같습니다.
거친 마음에서는 거친 말이 나오고, 불순한 마음에서는 불순한 말이 나옵니다.
장황하게 말하지 않아도 진심이 담긴 말은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말이 아름다우면 울림도 아름답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인성과 품격이 그대로 말에 배어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은 억지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가꾸어지는 것입니다.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며서는 안 되고, 마음 안에서 정성을 들여 가다듬어야 말 역시 단정해집니다.
말은 소중합니다. 아무렇게나 내뱉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하기 전에 마음을 먼저 다스리면, 말은 절로 간결해지고 부드러워집니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마음의 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인 뒤에 입을 열어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말이 아름다우면 울림도 아름답고, 말이 거칠면 울림도 거칠다. (言美則響美 言惡則響惡)
- 열자(BC 400?~?), 『열자列子』 「설부說符」
말재주보다 말의 품격이 먼저다말을 그럴듯하게 늘어놓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말만 번지르르할 뿐, 품격이나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말을 잘한다고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말을 잘한다고 인생을 잘 사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말을 잘해도 언행이 일치하지 않으면, 결국 ‘말짱 도루묵’에 불과합니다.
말을 잘하는 것과 말을 바르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사실과 진실에 부합하는 말, 남을 존중하는 말, 바르고 아름다운 말을 해야 합니다.
덕이 없는 사람이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꼴불견’입니다.
말만 잘하는 사람보다는 말도 바르게 하는 사람이 아무래도 좋습니다.
말이 행동을 앞서는 사람보다, 말로 행동을 책임지는 사람이 좋습니다.
어진 사람은 결국 어진 말을 합니다.
말을 잘 꾸미는 재주보다 마음을 드러내는 말의 품격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개가 잘 짖는다고 훌륭하다 할 수 없고, 사람이 말을 잘한다고 어질다 할 수 없다. (狗不以善吠爲良 人不以善言爲賢)
- 장자(BC 369?~BC 286?), 『장자』 「서무귀」
겸손한 말로 남을 존중하라‘말이 씨가 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말하던 것이 언젠가는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은 모두 자기 예언과도 같은 것입니다.
‘언참(言讖)’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미래를 맞추어 예언하는 말을 가리키는 것인데,
생각해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말도 언참처럼 작용합니다.
말이 씨가 되면 언젠가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 씨를 심으면 좋은 열매를, 나쁜 씨를 심으면 나쁜 열매를 맺기 마련입니다.
말의 씨는 마음의 씨와도 같습니다.
사랑하는 마음도 미워하는 마음도 결국 말로써 드러납니다.
덕담을 하면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악담을 하면 마음이 사나워집니다.
내가 하는 말은 내가 가장 먼저 듣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존중하십시오. 남을 높인다고 내가 낮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남을 높이면 나도 함께 높아집니다.
공손하고 유순한 말로 남을 존중하고, 번뇌를 버리고 악을 참아내면, 미움과 원망이 저절로 사라진다. (遜言順辭 尊敬於人 棄結忍惡 疾怨自滅)
- 법구(法救, BC 200?~?), 『법구경』 「언어품」
남을 위하는 말이 옳은 말이다누군가 눈을 감고 있다면, 졸린 것일 수도 있고 생각에 깊이 잠긴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배를 움켜쥐고 있다면, 배가 아파서일 수도 있고 배가 고파서일 수도 있습니다.
배가 아픈 사람에게는 약을 주어야 하고, 배가 고픈 사람에게는 밥을 주어야 합니다.
소의 먹이는 고기가 아닌 풀이듯, 상대에게 맞지 않는 배려는 배려가 아닙니다.
말도 그렇습니다. 말은 내가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이는 상대방입니다.
그래서 말은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건네야 합니다.
잘하는 사람에게는 칭찬을, 중요한 일을 앞둔 사람에게는 응원을,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하게도 위로와 격려를 전해야 합니다.
대화에서 생기는 많은 문제는 상대 때문이 아니라 나를 위한 말을 하려 할 때 생깁니다.
내 마음을 풀기 위한 말이 아닌 말을 건넬 때, 비로소 그 말이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을 할 때 상대의 마음에 맞게 하여 기쁘게 하고, 나쁜 의도가 없어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한다. (言使投意可 亦令得歡喜 不使至惡意 出言衆悉可)
- 법구(法救, BC 200?~?), 『법구경』 「언어품」
2부 분별과 가치 _ 말을 금처럼 소중히 여겨라
말로 정곡을 찌르기 어렵다면 사격에서는 과녁을 정확하게 맞혀야 합니다.
과녁에 가까울수록 좋은 점수를 얻고, 멀어질수록 소득이 없습니다.
정곡(正鵠)은 과녁의 한가운데로, 가장 중요한 요점이자 핵심을 가리킵니다.
정곡을 찌른다는 건 문제의 중심을 바르게 겨눈다는 뜻이지요.
상대에게 건네는 조언이나 위로도 같습니다.
부드러운 말이라도 핵심을 짚으면, 상대의 마음은 얼마든지 움직입니다.
오히려 완곡한 말이 더 깊고 따뜻하게 와닿기도 합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정곡을 피한 말을 한다는 데 있습니다.
주제에서 벗어난 말, 끝까지 자기주장을 밀어붙이는 말,
핵심은 비껴두고 주변부만 맴도는 말들 말입니다.
정곡을 찌르지 못할 것 같다면 차라리 입을 다무십시오.
그럴 땐 입을 다물어야 실없는 말이 허투루 튀어나오지 않습니다.
단번에 정곡을 찌르기 어렵다면 차라리 말을 봉하는 것이 낫다. (難施一針 可法三緘)
- 조관빈(1691~1757), 『회헌집』 「신구잠」
말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염화시중(拈華示衆)’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뜻을 전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영산회에서 석가모니가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보였을 때,
오직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깨닫고 미소 지었다는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최고의 소통은 ‘이심전심(以心傳心)’입니다.
마음과 마음으로 서로 뜻이 통하는 순간, 그때는 더 많은 말이 필요치 않습니다.
노자와 장자는 무위자연을 도덕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겉으로 드러난 현상과 현실에 불과합니다.
절대적인 진리는 쉽게 말로 담아낼 수 없습니다.
말의 영역과 진리의 영역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 본연의 의미는 조금씩 희미해지고
말로 규정된 ‘부분적 진실’만이 남을 뿐입니다.
말하지 않으면 곧 가지런해진다. (不言則齊)
- 장자(莊子, BC 369?~BC 286?), 『장자』 「외편」
한 마디 말도 가볍지 않다‘구정(九鼎)’은 중국 하(夏)나라 우왕이 당시 아홉 주에서 거둬들인 금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솥입니다. 나라의 상징이자 지극히 귀중한 보물로 여겨졌지요.
‘일언구정(一言九鼎)’은 한 마디 말이 구정만큼 무겁다는 뜻입니다. 말의 책임, 말의 무게를 이보다 선명하게 드러내는 표현도 드물 것입니다.
‘일낙백금(一諾百金)’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한 번 한 약속이 백금처럼 값지다는 뜻입니다.
약속은 지켜질 때 의미가 있습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애초에 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말의 무게는 저울로 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깊이로는 얼마든지 잴 수 있습니다.
가벼운 말은 삶도 가벼워 보이게 합니다.
무게 있는 말은 그 사람의 믿음과 품격도 묵직하게 드러냅니다.
그래서 한 마디 말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내뱉는 말이 생각보다 훨씬 멀리, 훨씬 깊게 닿습니다.
말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입니다.
마음이 편안한 사람은 그 말이 찬찬하여 무게가 있고, 마음이 불안한 사람은 그 말이 급하여 가볍다. (心定者 其言重以舒 不定者 其言輕以疾)
- 주희(朱熹, 1130~1200), 『근사록』 「존양」
최고의 말은 물과 같다‘상선약수(上善若水)’, 즉 가장 높은 선(善)은 물과 같다는 뜻입니다.
노자는 물을 세상에서 가장 완전한 ‘선의 표본’으로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노자가 말하는 물의 본질이란 무엇일까요?
물은 널리 이롭게 합니다(弘益). 모든 생명을 차별하지 않고 길러냅니다.
물은 다투지 않습니다(不爭). 자기 갈 길을 찾아갈 뿐, 어느 것과도 겨루지 않습니다.
물은 포용합니다(包容). 흙도, 돌도, 오물도 마다하지 않고 감싸안습니다.
물은 부드럽지만 지혜롭습니다(柔軟). 막히면 돌아가고, 흐름을 멈추지 않습니다.
물은 깨끗하게 씻어냅니다(洗淨). 닿는 곳마다 때를 벗기며 새로움을 남깁니다.
물은 스스로를 낮춥니다(謙虛). 언제나 아래로 흐르고,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걸 품습니다.
물은 기울지 않습니다(平衡). 어딘가에 쏠리지 않고 항상 제자리를 찾습니다.
말도 이와 같습니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말, 스스로를 낮추는 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말, 부드러우면서 지혜로운 말, 상대를 감싸고 보듬는 말. 이런 말이 바로 ‘물 같은 말’입니다.
좋은 말은 물과 같습니다. 흐르되 다투지 않고, 머물되 높아지려 하지 않으며,
닿는 곳마다 생명과 평화를 남깁니다.
노자가 말한 ‘상선약수’가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장 좋은 말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으니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도 머문다. 그렇기에 도에 가까운 것이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 노자(老子, BC 571?~471?), 『도덕경』
3부 신중과 절제 _ 말로써 만나고 말로써 멀어진다
입속에 든 도끼‘설저유부(舌底有斧)’, 즉 혀 아래에 도끼가 있다는 말입니다.
말을 잘못 내뱉으면 곧바로 해가 되니, 늘 말을 삼가라는 뜻이지요.
그 도끼로 남을 베고, 결국에는 나 자신까지 베어버리는 것이 말의 무서움입니다.
막말에는 가시가 돋아 있습니다.
가시는 쉽게 빠지지도 않고, 때로 가시 속에 독이 묻어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시 돋친 말은 애초에 내지 않는 것이 가장 지혜롭습니다.
한순간의 말이 평생의 상처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길 바랍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그 입안에는 도끼를 지니고 있다. 자기 자신을 베는 것은 바로 그 나쁜 말 때문이다. (夫士之生 斧在口中 所以斬身 由其惡言)
- 법구(法救, BC 200?~?), 『법구경』 「언어품」
세상에 말보다 빠른 것은 없다 ‘일언기출 사마난추(一言旣出 駟馬難追)’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이 한 번 나가면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도 그 말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말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라는 속담과도 맞닿아 있지요.
지금처럼 실시간으로 정보가 오가는 시대에는 말이 퍼져 나가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습니다.
세상에 말보다 빠른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이 어디로, 무엇을 싣고 달려가는가 하는 점입니다.
거짓 정보와 선동이 순식간에 퍼져 버리는 시대일수록 말이 빨리 퍼지는 것보다 바르게 퍼지는 것, 즉 올바른 말, 사실에 맞는 말이 더 소중합니다.
말은 속도보다 방향입니다.
바른 말은 멀리까지 가도 누군가를 세우지만,
그릇된 말은 멀리까지 가서 누군가를 무너뜨립니다.
그래서 말은 늘 신중해야 하고,
입 밖에 나오는 한마디에 책임을 실어야 합니다.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도 사람의 혀에는 미치지 못한다. (駟不及舌)
- 공자(孔子, BC 551~BC 479) 『논어』 「안연」
스스로 불러들이는 화복‘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즉 입은 재앙이 드나드는 문이라는 뜻입니다.
중국 후당의 정치인 풍도는 다섯 왕조, 열한 명의 임금을 섬기며 권세의 한가운데서도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입을 가볍게 놀리지 않은 것이 그 비결이었다고 전해집니다.
한편 ‘곰은 쓸개 때문에 죽고, 사람은 혀 때문에 죽는다’라는 우리말도 있습니다.
말이 많은 사람은 그 말 때문에 얼마든지 화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많은 입이 모이면 돌도 뜨게 하고, 단단한 뼈도 녹일 만큼 파괴력이 커진다고 합니다.
지금 시대의 ‘여론’, ‘댓글’, ‘루머’가 가진 힘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나오는 말의 양이 많아질수록 그 말은 더 멀리, 더 빠르게 번져 나갑니다.
결국 말은 ‘스스로 불러들이는 화복(禍福)’인 셈입니다.
입을 조심하면 몸이 편안하고, 입을 함부로 열면 뜻하지 않은 화가 찾아옵니다.
결국 말은 늘 우리 자신을 향해 돌아오는 법입니다.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어디서든 몸이 편안해진다. (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閉口深藏舌 安身處處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