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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인생을 배우다

김종욱 지음 | 미다스북스


숲에서 인생을 배우다

김종욱 지음

미다스북스 / 2025년 9월 / 320쪽 / 21,000원





제1장 나무는 스스로 살아간다



나무는 주변에 흔들리지 않는다 _ 욕심과 비교를 버리고 함께하는 삶


어느 날 문득 ‘나는 왜 이렇게 가진 게 적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의 눈부신 성취를 볼 때면 나의 부족함이 부각되어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한다. 경쟁이 치열한 현대 사회에서 이런 감정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잠시 일상을 멈추고 숲길로 발걸음을 돌리면, 묵묵히 뿌리 내린 나무들이 질투나 경쟁심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평온하게 서 있는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과도한 소유욕은 나를 불편하게 한다:
사람들은 보통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고 산다. 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겠고, 돈이 더 많았으면 좋겠고, 능력이 더 뛰어났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더’에 대한 갈망은 끝이 없어서 때때로 스스로를 지치게 만든다. 미국의 자연주의 작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호화로운 상자를 빌려 살면서 그 대금을 치르느라 죽을 고생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웃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정도의 집은 나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가난하게 살지 않아도 될 것을 평생 가난에 쪼들리며 살고 있다.”

실제로 그렇다. 우리는 집에 억눌려 살고 있다. 집에 있는 수많은 물건을 보다 보면 ‘과연 이 물건들이 모두 다 내게 필요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사실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가 집에 쌓아 놓고 있는 물건 대부분은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평생 나의 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장롱 속에 들어있는 나도 모르는 옷들, 평생 한 번도 읽지 않을 것 같은 수많은 책들, 심지어 냉장고 깊숙이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는 식품들, 그리고 쓰임새도 잊어버린 크고 작은 전자 기기들, 너무나 많은 것들을 쟁여 놓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부족함을 탓한다.

하지만 나무는 우리와 다르다. 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환경이 그리 좋지 않아도 묵묵히 거기에 맞춰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광합성에 필요한 빛이 부족한 그늘진 지역에 자리 잡은 나무라면 잎의 면적을 좀 더 넓히거나 뿌리를 깊게 내려 조금이라도 많은 양분을 흡수하려 노력한다.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렸다면 그 제한된 양분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척박한 땅에서도 꽃피우는 생존 전략:
결국 중요한 것은 ‘부족함’ 자체가 아니라 그 부족함을 받아들이며 살아갈 방도를 찾는 태도일 것이다.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살아가는 나무들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적응에 능숙한지 새삼 감탄하게 된다. 사막에서 만날 수 있는 선인장류는 잎을 가시 형태로 바꿔 물 손실을 최소화하고 줄기나 몸체를 두껍게 만들어 내부에 수분을 저장한다. 거칠고 건조한 땅에서도 ‘이 환경이 나쁘니 안 되겠다’라고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몸의 구조를 바꾸어 가며 살아남는다. 북극권의 왜소한 관목들도 마찬가지다. 혹독한 추위와 짧은 여름이라는 제약 속에서 극도로 낮은 키를 유지해 지면의 열기를 조금이라도 더 활용하고 또 잎을 적게 만들어 겨울철에 에너지를 아끼며 버텨낸다. 이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한탄하기보다는 그 조건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생을 이어갈 전략을 마련한다.

숲속을 산책하다 보면 무수히 많은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팔을 뻗고 서 있지만, 그 누구도 이웃의 잎사귀를 시기 어린 눈으로 바라보거나 더 높이 자라려고 발버둥 치지 않는다. 물론 식물들도 햇살 한 줄기, 빗방울 한 방울, 흙 속 영양분 한 톨을 놓고 조용한 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이들의 경쟁은 상대를 뿌리째 뽑아 버리거나 자신을 태워 없애는 치열한 전쟁이 아니다. 숲의 모습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들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조화로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공존의 예술이다. 진정한 승리는 홀로 우뚝 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숲을 이루며 더 큰 생명의 교향곡을 완성하는 것임을 나무들은 알고 있는 것 같다.

파괴가 아닌 상생을 선택하다:
숲속의 세계에는 키 큰 나무가 작은 나무를 내려다보는 위압적인 위계질서나 침엽수와 활엽수가 서로 등을 돌리는 다툼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오직 함께 평화로운 숲을 가꾸어 가는 공존만이 있을 뿐이다. 숲속 나무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뿌리를 내리고 자리 잡으며 서로가 만들어 내는 그늘과 습도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곤충이나 미생물을 함께 공유한다. 한편으로 나무들은 곰팡이나 뿌리 세균과 같은 미생물과 공생하여 양분을 얻고 곤충이나 새들을 유인해 꽃가루를 옮기거나 씨앗을 퍼뜨리며 삶의 터전을 확장한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 ‘네 것이면 내 것이고 내 것도 결국 언젠가는 네 것이 될 수 있다’는 자연의 순환 원리가 순리대로 흘러가고 있는 모습이 느껴진다.

다양성이 건강한 공동체를 만든다:
현대 사회에서는 ‘경쟁’을 마치 생존의 필수 요건처럼 강조한다. 그러나 지나친 경쟁은 결국 일부 사람들을 낙오시키고 그 폐해가 곧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로 돌아오기도 한다. 만약 숲속 나무들이 지나친 경쟁으로 특정 종만 살아남게 된다면 숲은 점차 생물다양성을 잃어버리고 결국 황폐화될 것이다. 오히려 다양한 종이 어우러지고 서로 다른 높이와 역할을 맡아줌으로써 숲이 건강하고 풍요롭게 유지된다.

인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재능과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협력하고 때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는 관계가 만들어질 때 비로소 ‘함께 자라는’ 공동체가 형성된다. 한 격언에 따르면 ‘비교는 기쁨의 도둑’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순간 우리는 고유한 빛깔과 가치를 잃어버리고 외부 기준에 더욱 쉽게 휘둘리게 된다. 소셜 미디어가 등장한 이후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타인의 삶을 엿볼 수 있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비교의 늪에 빠져들기 쉬워졌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것은 사실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몇 장면만 골라 편집한 장면에 불과하다. 진정한 만족은 남과의 경주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오늘의 나를 발견하는 데 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
나무가 한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은 그리 독특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나무가 그 자리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사계절을 견디는 과정은 엄청난 노력이 뒤따르는 일이다. 땅속으로 뿌리를 깊이 뻗어야 넘어지지 않고 태풍이나 폭우가 와도 견딜 수 있다. 봄이 오면 순을 틔우고 여름에는 왕성히 광합성을 하며 가을이 되면 잎을 물들이고 겨울에 에너지를 비축해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인생에서도 비슷한 단계를 거치며 ‘나만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잠시 화려해 보이는 선택지에 현혹되지 말고 내게 맞는 길을 더듬어 가며 꾸준히 경험과 지식을 쌓는 것이다. 그 과정은 때때로 지루해 보이기도 하지만 땅속으로 뻗은 뿌리가 깊을수록 겉으로 드러나는 삶도 안정되고 풍성해지는 법이다. 하루 중 단 30분 만이라도 내가 진정 원하는 목표나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도움에 투자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의 질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제2장 식물은 자신만의 때를 기다린다



더불어 살아가는 숲의 지혜 _ 에너지 순환으로 완성하는 숲 생태계


지구생태계에서 식물이 맡고 있는 역할을 생각해 보면 그 특별함과 중요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각자의 방식으로 생태계에 존재감을 과시하지만 식물만큼은 생명의 근간을 이루는 존재로 더욱 각별하다. 대부분의 동물과 곤충 그리고 인간까지도 식물이 만들어 내는 에너지에 의존하여 살아가기 때문이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물 그리고 햇빛을 합성해 새로운 유기물을 만들고 이 과정에서 산소를 배출한다.

나뭇잎과 줄기, 뿌리에 저장된 식물이 만들어 낸 에너지가 없었다면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식량은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식물은 지구생태계에서 ‘최초의 에너지원’을 생산 공급하는 존재다. 게다가 식물은 자신이 쓸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소비하고 남은 부분을 잎과 뿌리 열매 등에 저장한다. 이런 잉여분을 곤충이나 동물이 섭취하여 생존할 수 있으니 식물의 나눔은 생명계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지탱하는 토대가 된다.

곤충을 부르기 위한 허니가이드:
식물의 배려와 희생은 꽃을 통해 더욱 극적으로 드러난다. 봄철 숲이나 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눈부시게 피어난 다양한 꽃마다 곤충들을 위한 ‘허니가이드’가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허니가이드는 꽃 속에 있는 꿀이 어디에 있는지 벌과 나비 같은 작은 곤충들에게 알려주는 무늬나 선을 의미한다. 얼핏 곤충들을 위한 자비로운 안내 표지처럼 보이지만 사실 식물도 분명한 목적이 있다. 곤충이 꽃 속에서 꿀을 먹는 동안 꽃가루를 몸에 묻혀 다른 꽃으로 옮겨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식물은 자가수분 즉 근친결혼이 반복될 경우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지며 더 건강한 후손을 얻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 장구한 세월 속에서 깨달았다.

그래서 서로 다른 개체끼리 수분을 주기 위해 온갖 전략을 동원한다. 그 과정에서 곤충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수분 효율을 한층 높이기 위해 꽃의 구조나 개화 시기까지 치밀하게 조정한다. 근친교배를 피하려는 식물들의 전략은 놀랍도록 정교하다. 어떤 식물은 암술과 수술이 서로 다른 시기에 성숙되도록 하여 한 꽃 안에서도 자가수분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다. 소나무는 암꽃과 수꽃을 아예 다른 위치에 놓여있게 해서 바람에 의해 꽃가루가 흩날리더라도 최대한 섞여 받도록 유도한다. 누리장나무처럼 꽃의 구조가 독특해 암·수술이 구부러지는 방향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완전히 다른 시기에 개화해 자가수분을 피하기도 한다. 이러한 식물의 행동은 후손을 위한 배려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희생에 가깝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그 안에는 엄청난 시행착오와 오랜 세대에 걸친 지혜가 담겨 있다.

상사화가 보여주는 이타적 사랑:
상사화의 사례는 식물의 배려가 얼마나 세밀한지를 보여준다. 상사화는 봄이 되면 무성한 잎을 내어 광합성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러고는 알뿌리에 그 에너지를 고스란히 보관한 뒤 잎은 제 역할이 끝나면 시들고 사라진다. 그 뒤 꽃대가 올라오면서 화사한 꽃을 피운다. 이때 잎은 이미 자취를 감춰서 꽃이 만개해도 둘이 함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마치 잎과 꽃이 서로 보고 싶어 하는 듯한 ‘그리움’을 상징하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이런 시차를 두는 전략은 식물 입장에선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는 선택이기도 하다. 잎이 할 일을 다 하고 물러나면 그 자리를 꽃이 이어받아 번식이라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산수국이 보여주는 지혜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 중심부의 작은 꽃들만이 실제로 번식 기능을 수행하고 가장자리에 있는 화려한 헛꽃은 일종의 ‘미끼’나 ‘간판’ 역할을 한다. 산수국의 가짜 꽃은 자신이 담당하는 진짜 꽃의 수분이 이루어지면 꽃잎을 뒤집어 혹시나 주변 다른 꽃들의 수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한다. 이 예쁜 가짜 꽃이 없으면 벌과 나비가 잘 찾아오지 않으니 산수국은 커다란 헛꽃을 만들고 그 안쪽에 진짜 꽃을 숨긴다. 동물들을 위해 넉넉한 식량을 준비해 주면서도 정작 번식은 자기에게 꼭 필요한 부분에서만 이뤄지도록 설계한 것이다. 벌이나 나비 입장에서는 감미로운 꿀을 얻고 식물은 수분을 성사시켜 유전자를 퍼뜨릴 기회를 얻는다. 결국 산수국의 헛꽃은 ‘자신의 번식’과 ‘곤충을 향한 나눔’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이룬 셈이다. 자연은 이렇게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서로 손해를 보지 않는 방향을 찾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 배후에는 배려와 공존을 가능케 하는 진화의 힘이 작동한다.

경쟁보다 공존과 나눔을 선택한 생태계:
자연에서 벌어지는 나눔과 배려, 희생은 우리 인간 세상과 대비되는 측면이 많다. 현대인들은 도시 아파트 단지에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흔하고 서로를 돕기보다는 경쟁하는 데 익숙해진 듯하다. 가난하고 불행한 이웃을 돕는 온정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은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삭막해졌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우리에게 식물이 보여주는 조화로운 공존은 ‘서로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한 그루의 나무가 숲 전체에 영향을 주듯 ‘한 개인의 배려가 결국 공동체의 건강성에 기여한다’는 것을 식물들은 증명하고 있다.

자연은 경쟁과 약육강식의 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공존과 상호 의존의 장이기도 하다. 사람들 시선에는 목소리도 몸짓도 없는 것으로 보이는 식물이 수백만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구 환경에 적응하면서 마련해 온 방식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무조건 자기 것만 챙기거나 독점을 추구했다면 아마 지금처럼 풍성한 숲을 이루진 못했을 것이다.

진정한 풍요는 나눔에서 시작: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조금 나누어 주면 내 것이 줄어들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진정한 풍요는 바로 그 나눔에서 시작된다. 숲도 마찬가지다. 개체 하나만 잘난다고 해서 전체가 유지되지 않는다. 땅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영양분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숲은 수천 년간 그 자리를 지키며 이어져 왔다.

인간 사회 역시 제도나 정책 이전에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누구든 약자를 보살피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마음이 모일 때 비로소 한 사회의 근본적 토양이 풍성해지고 위기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식물의 세상은 언제나 넉넉하고도 신비롭다. 겉으로는 경쟁하며 자라지만 빛과 물 영양분을 오랜 세월 돌려주고 보충해 주면서 결국 숲 전체가 건강을 유지한다. 스스로 이동할 수 없기에 더욱 긴밀한 방식으로 연결되고 다양한 진화를 거듭하며 오늘까지 살아남았다. 그 배후에는 ‘내가 곧 너이고 우리가 같이 살아야 한다’는 단순하고도 깊은 진리가 숨겨져 있다.



제3장 다양성이 만드는 아름다운 세상



익숙함을 벗어나야 비로소 성장한다 -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어느 정도 자란 나무들의 경우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씨앗들이 달린다. 식물들이 수많은 씨앗을 만들어 내는 것은 모두 다 후손을 남기기 위해서이다. 국립수목원 정문 앞에는 커다란 갈참나무와 신나무가 멋진 모습으로 탐방객들을 반긴다. 이 나무들은 가을이 되면 정말 많은 도토리가 열린다. 수목원 정문을 통과해서 조금 더 들어가면 계수나무가 한 그루 있다. 이 계수나무도 가을이 되면 많은 씨앗이 달려 있다. 실제로 숲 해설을 하다 보면 단풍나무와 느티나무, 버드나무, 물푸레나무 등에서 수많은 씨앗들이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이 많은 씨앗들이 모두 다 나무로 자라는 것은 아니다. 어미나무 바로 아래 떨어진 씨앗들은 그늘에 가려져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일생을 마감할 것이다. 하지만 바람을 따라 먼 곳까지 이동한 씨앗들은 햇빛이 풍부한 새로운 터전에서 싹을 틔울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씨앗은 왜 엄마의 품을 벗어나야 하는가:
자연계에서 씨앗의 이동은 단순한 번식 행위를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어미 나무 주변에 떨어진 씨앗은 이미 확보된 자원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불리한 상황에 놓인다. 수십 년 동안 뿌리를 깊이 내린 거대한 나무가 햇빛과 물 토양의 영양분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아무리 좋은 유전자를 가진 씨앗이라도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다. 반면 바람이나 동물의 도움으로 멀리 이동한 씨앗은 완전히 다른 기회를 얻는다. 경쟁자가 없는 새로운 공간에서 충분한 자원을 확보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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