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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세상을 움직이는 5가지 연결

김일룡 지음 | 동아시아


네트워크, 세상을 움직이는 5가지 연결

김일룡 지음

동아시아 / 2026년 1월 / 468쪽 / 22,000원





0장 세 가지 생각 도구: 원인, 전환, 예측




이 책이 다루는 주제 중 하나는 예측이다. 나는 100억 년 후 우주의 미래나 내일의 주가 변동 같은 거창한 답을 내놓기보다는, 무엇이 예측 가능한가라는 더 기초적인 물음에 집중하고자 한다. 무언가를 예측하려면 그것을 둘러싼 환경이나 우주의 원리를 알고 이를 문제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근본이 되는 동역학적 원리를 1종 원리라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예측을 1종 예측이라 부르자. 1,000년 후 은하계 내 태양이나 지구의 위치를 결정하는 원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사자에게 쫓기는 얼룩말이 방향을 왼쪽으로 틀지 오른쪽으로 틀지를 결정하는 원리나 CEO가 비즈니스에 관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원리처럼, 1종 원리만으로는 예측 불가능한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다음 층인 2종 원리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쪽에는 산소만 있고 다른 쪽에는 질소만 있는 방을 상상해 보자. 기체들이 제한 없이 움직인다고 가정했을 때, 특정 산소 분자 하나의 위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특정 영역에 산소가 50% 존재할 것이라는 통계적 예측은 가능하다. 동역학의 집단적 결과에 대한 이러한 통계적 예측을 2종 예측이라 부른다. 인간 사회에서도 호모 사피엔스 한 명의 행동을 결정짓는 1종 원리를 찾기는 어렵지만, 인류 역사가 생산력 발전의 역사라거나 대중의 지위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식의 주장은 꽤 그럴듯한 2종 예측의 사례가 된다.

물론 1종 원리가 존재해도 예측은 별개의 문제다. 카지노 룰렛 위 공의 움직임처럼 초기 조건을 무한히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도 있고, 전자 하나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처럼 양자역학에 따라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이때 2종 원리로 예측 가능한 대표적인 사례가 무질서도가 증가한다는 엔트로피 증가 법칙이다. 특히 나는 생명체에 주목한다. 어림잡아 계산해 보면 우주에서 생명체가 차지하는 질량은 해운대 모래사장에서 모래알 하나가 차지하는 양에 불과하다. 나머지 99.99999퍼센트의 우주는 물리학과 화학의 원리로 설명되지만, 이 작은 모래알인 생명체가 등장하면 기존의 원리만으로는 말끔히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발생한다.

이 모래알은 외부의 힘이 아니라 우주의 진화 과정에서 물리학과 화학의 원리를 위배하지 않으며 자발적으로 생겨났다. 이는 다윈의 자연선택과 카우프만의 자기 조직화가 맞서는 지점이기도 한데, 나는 이 두 주장이 근사 방법의 차이일 뿐 근본적으로 같음을 보이려 한다. 기존의 빅 사이언스는 우주와 생명의 관계를 큰 규모에서 조명했지만 생명 자체나 그 복잡성에 대한 설명은 간과했다. 나는 근본 원리에서 시작해 계층을 오르며 생명과 인간 사회의 복잡성을 결정하는 원리를 찾아내고,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그 답을 하나둘 찾아가 보려 한다.

원인과 결과 ~ 예측


원인과 결과는 단순한 주제로 보이지만, 방대한 철학적, 과학적 논쟁의 대상이다. 우리는 흔히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오해하곤 한다. 내 아이가 중학생 때 국어 학원에서 테스트를 받았을 때의 일이다. 학원 원장은 국어 점수와 수학 점수가 비례하는 상관 그래프를 근거로 제시하며 국어를 잘하는 아이가 수학도 잘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사이비 과학에 가깝다. 단순히 축을 바꾸어 수학을 잘하는 아이가 국어도 잘한다고 말해도 그래프는 성립하기 때문이다. 두 점수는 서로의 원인이 아니라 지능지수(IQ) 같은 공통의 원인에 의해 나타나는 상관관계일 뿐이다. 국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점수를 올린다고 수학 점수가 따라 오르지 않는 것은 둘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인과관계에는 결과가 다시 원인에 영향을 주는 피드백 효과도 존재한다. 0이 입력되면 1을 출력하는 NOT 게이트를 예로 들어보자. NOT 게이트 두 개를 연결하고 그 출력을 다시 입력에 연결하면 시스템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 하지만 이때 왼쪽 노드가 0인 이유는 가운데 노드가 1이기 때문이고, 가운데 노드가 1인 이유는 왼쪽 노드가 0이기 때문이 된다.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완결된 구조가 되는 것이다. 인간과 장내 세균의 관계도 이와 같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뿐만 아니라 오늘의 세균 상태에 영향을 받으며, 세균 역시 인간이 살아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 이들은 함께 진화하며 살아가는 전체 시스템일 뿐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의 일방적인 원인이라 할 수 없다.

이러한 내적 원인과 외적 원인의 관계는 동자승과 스님의 대화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어느 여름날 바람이 불어 연못에 물결이 일자 동자승은 바람 때문이라 답하고, 나뭇잎이 떨어져 물결이 일자 나뭇잎 때문이라 답한다. 그러나 겨울이 되어 연못이 얼어붙자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져도 물결은 일지 않는다. 여기서 깨달아야 할 점은 물결이 이는 본질적인 원인이 외부의 바람이나 낙엽이 아니라 물이라는 내적 속성에 있다는 것이다. 외부 요인은 우연한 부차적 원인일 뿐이며, 시스템의 변화는 그 시스템의 본질적 특성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원리 위에서 양적인 변화가 질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양질 전환, 즉 창발이 일어난다. 개별 요소에서는 보이지 않던 성질이 연결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물리학적으로 보면 다이아몬드와 흑연의 차이는 구성 원자가 아니라 그 원자들의 연결 방식에 있다. 정보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사과라는 글자를 구성하는 자음과 모음은 그 자체로 의미가 없지만, 적절히 배치되어 연결될 때 비로소 사물 사과를 의미하는 정보가 창발한다. 인간의 뇌세포 역시 복잡하게 연결됨으로써 개별 세포에는 없는 과학, 철학, 예술이라는 상위 계층의 특성을 만들어낸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예측 가능성을 생각해보자.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시몽 드 라플라스는 초기 조건만 알면 우주의 미래를 계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우주를 시뮬레이션하려면 우주의 모든 정보를 저장할 장치가 필요한데, 원자 하나의 정보를 온전히 담으려면 적어도 그와 동일한 원자 하나가 필요하다. 즉 우주를 완벽히 시뮬레이션하려면 우주와 똑같은 크기의 또 다른 우주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설령 그런 장치가 있더라도 시뮬레이션 속도는 실제 시간보다 빠를 수 없으므로, 결과가 나왔을 때는 이미 미래가 아닌 과거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시스템 내부의 존재인 인간은 우주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우리는 다만 상위 계층에서의 통계적이고 집단적인 예측을 통해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는 동역학적 법칙의 한계를 넘어, 우리는 통계적 원인을 통해 거시적인 세계를 이해해 나가는 것이다.



1장 물질: 기본 블록과 그 연결 원리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이다. 137억 년 전의 빅뱅부터 시작된 물리학과 화학의 영역에서 출발해 보자. 우주가 시작되고 약 100억 년이 지나면 유기물과 세포라는 특이한 물질이 나타난다. 이것이 양질 전환의 결과다. 세포는 물리와 화학의 원리를 위배하지 않으면서도 그 계층만의 독특한 원리를 보여주는 생물학의 영역이다. 여기서 한 차례 더 양질 전환이 발생하며 의식과 지능을 의미하는 뇌가 등장하고, 이어 수많은 뇌가 상호작용하는 사회가 나타난다. 본질적으로 전체는 부분과 그것들의 연결일 뿐이며, 상층의 원리는 결코 하층의 원리를 위배할 수 없다. 현대 물리학에 따르면 우주에는 오직 네 종류의 힘, 즉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만이 존재할 뿐이며, 과학과 양립할 수 없는 신비한 힘을 가정하는 것은 반과학일 뿐이다.

과학은 역사적으로 신비주의와의 싸움에서 패한 적이 없다. 첫 번째 대규모 전쟁은 천동설과 지동설을 둘러싼 싸움이었는데, 지동설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지동설의 이론적 근거는 뉴턴의 역학 법칙과 중력 법칙이었다. 지금은 어느 누구도 태양과 달이 신의 영역이라고 믿지 않으며, 어떤 과학자도 뉴턴 역학, 상대성이론, 양자역학이 아닌 신의 마음에서 시작해 우주를 연구하지 않는다. 두 번째 대규모 전장은 이제야 그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 진화론이다. 이는 첫 번째 양질 전환인 세포의 등장과 관련이 있다. 20세기 초까지도 진화론을 거부하던 가톨릭도 이제는 진화론을 부정하지 않는다. 성경과 양립 가능한지를 두고 여러 스펙트럼으로 나뉘기는 하지만, 쏟아지는 과학적 증거들을 거부할 방법은 없기에 이 전쟁은 이미 끝났다.

이제 세 번째 전쟁은 의식과 지능이라는 두 번째 양질 전환의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실 지금도 한창 싸우는 중이다. 인간의 의식과 지능은 어느 쪽도 쉽사리 물러나기 어려운 핵심적인 전장이며, 특히나 일부 종교는 그 존재 의의가 부정될 수 있기에 이 전쟁은 꽤나 오랜 시간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답은 이미 주어져 있다. 신경과학자나 심리학자 중에서도 종교를 믿는 이들이 있지만, 이들도 뇌와 의식을 연구할 때는 유물론자가 된다. fMRI나 뇌파 측정기 같은 과학 장비들을 사용해 의식과 꿈을 연구하며 그것과 뇌라는 물질의 연관성을 탐구한다. 우리 역시 진화생물학이나 컴퓨터과학과 같은 과학의 관점에서 뇌라는 하드웨어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의식과 지능을 가질 수 있는지, 마음의 갖가지 모듈이 어떻게 계산되는지에 관해 알아볼 것이다.

뉴턴의 세계관 ~ 확률과 통계


아이작 뉴턴이 등장하기 전, 근대 이전 물리학을 대표하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을 지상의 직선 운동인 자연적인 운동과 그 외의 인위적인 운동으로 구분했다. 하지만 뉴턴은 그의 역학 법칙과 중력 이론을 통해 달이 움직이는 하늘의 운동과 사과가 떨어지는 지상의 운동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즉 신의 영역이 인간의 영역과 동일하다는 것을 드러냈다. 뉴턴은 이로써 신을 지상으로 끌어내린 인류 역사 최고의 과학자가 되었으며, 그의 이론은 최초의 계몽 이론으로서 지위를 갖는다.

뉴턴의 세계관은 철저히 결정론적이다. 어떤 대상의 핵심을 표현하는 인자인 오메가가 질량과 위치로 주어지고, 여기에 초기 조건과 힘이 더해지면 미래의 위치는 수학적으로 산출된다. 이는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설사 우리가 초기 조건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결과가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다. 요컨대 뉴턴의 식은 특정 점입자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기술하는 결정론적 세계관의 토대다. 이러한 결정론적 토대 위에 루트비히 볼츠만은 통계라는 개념을 도입해 열역학을 뉴턴 역학으로 설명하며 통합했다. 볼츠만 이전의 열역학은 온도나 엔트로피 같은 거시적 물리량을 현상적으로만 정의했을 뿐 그 미시적 구조를 밝히지 못했다. 볼츠만은 이러한 거시적 특성들이 결국 뉴턴 역학의 통계적 해석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볼츠만 세계관의 핵심인 양질 전환과 통계적 예측은 윷놀이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인 4개의 윷을 던질 때는 개가 나올 확률이 3/8으로 가장 높기는 하지만, 도나 걸, 모나 윷도 적당히 나올 만한 확률이기에 놀이가 성립한다. 그러나 윷의 개수를 99개로 늘리는 변형 윷놀이를 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99개의 윷을 던질 때 모나 윷이 나올 확률은 거의 0에 수렴하며, 개의 확률이 96%에 달하게 된다. 1억 개의 윷으로 놀이를 한다면 결과는 거의 무조건 개가 나올 것이므로 매우 지루해질 것이다. 입자 수가 아보가드로 수(약 10의 23승)만큼 늘어나는 현실의 기체 시스템에서는 에너지가 균등하게 배분될 확률이 사실상 1이 된다. 볼츠만은 S=klnW라는 엔트로피 정의를 통해 미시적 상태의 수(W)와 거시적 엔트로피(S)를 연결했다. 엔트로피 증가 법칙은 결국 압도적인 확률을 가진 상태로 시스템이 옮겨가는 통계적 필연성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입자 하나하나의 궤적을 추적하는 1종 예측의 한계를 넘어, 온도나 엔트로피 같은 거시적 파라미터를 통해 시스템의 미래를 내다보는 2종 예측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점입자의 수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면 개별 오메가를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 의미도 사라진다. 대신 우리는 평균값과 같은 집단적 특성에 주목하게 된다. 볼츠만은 뉴턴의 환원주의적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수많은 미시적 요소들이 모여 거시 세계의 새로운 질서로 도약하는 양질 전환의 원리를 명확히 밝혔다. 이는 뉴턴의 세계관을 보존하면서도 통계적 필연성을 통해 진화의 방향성을 포착해낸 이성적 승리라 할 수 있다.



2장 컴퓨터: 트랜지스터로 짜인 작은 우주




물질 세계를 알아보았으니 이제 유기물과 세포의 세계를 설명할 차례지만, 잠시 길을 돌아가려고 한다. 양질 전환의 원리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리고 이것이 세포와 의식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좋은 사례가 바로 컴퓨터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실리콘이라는 돌덩어리에서 인공지능이 탄생하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수많은 양질 전환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뒤에서 세포와 뇌, 사회를 이해하는 데 크나큰 도움이 된다. 컴퓨터는 원자 단위부터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모든 구성 단계가 환원주의적 관점에서 완전히 이해되어 있기에 세계를 이해하는 정교한 모형 역할을 수행한다.

인공지능의 복잡한 결정을 실리콘 수준까지 내려가 분석할 수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록 우리가 원자에서 인간의 뇌로 이어지는 모든 단계를 다 파악하지는 못했으나, 원리적으로는 우리 뇌가 내린 결론 역시 뉴런이나 원자 수준에서 해석하지 못할 이유가 없음을 깨닫게 해준다. 이것이 세포를 공부하기에 앞서 반도체와 컴퓨터를 먼저 살피려는 이유다. 실리콘에서 트랜지스터, 트랜지스터에서 셀, 셀에서 기능 블록, 그리고 CPU에서 소프트웨어로 이어지는 도약들이 있다. 이 과정에서 아날로그는 디지털로, 전류는 시간으로, 시간은 기능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기능은 지능으로 변모하는 다양한 양질 전환이 개입한다. 실리콘에서 인공지능으로 이어지는 전체 지도 가운데, 우선은 가장 기초적인 단계인 실리콘에서 트랜지스터로 나아가는 길목을 간략하게 살펴보며 지능 탄생의 서막을 확인해보겠다.

실리콘에서 트랜지스터로 ~ 반도체 환원주의


실리콘은 지구상에 매우 흔한 모래의 성분이자 반도체다. 반도체는 기본적으로 저항이 크지만 불순물을 섞거나 전기장을 가하면 저항이 극적으로 변하는 특성을 갖는다. 트랜지스터의 대표적 구조인 MOSFET은 게이트에 가해지는 전압에 따라 채널의 저항값을 조절하여 전류를 흐르게 하거나 차단하는데, 이는 디지털 회로에서 스위치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트랜지스터의 특성을 나타내는 전압과 전류의 관계가 바로 트랜지스터의 오메가이며, 우리는 이외의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트랜지스터들이 모여 인버터와 같은 스탠더드 셀을 구성하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첫 번째 양질 전환이 일어난다. 무한한 정보를 담은 아날로그 전압 신호는 셀을 거치며 0과 1이라는 디지털 정보로 압축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정보가 소실되지만, 디지털 방식은 역설적으로 정확한 정보 전달을 가능케 한다. 자연 또한 이러한 원리를 이미 활용해 왔다. 유전 정보를 저장하는 DNA에는 환경 변동에 안정적인 디지털 방식을, 막대한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뇌에는 에너지 효율적인 아날로그 방식을 택하며 진화해 온 것이다.

양질 전환의 가장 극적인 단계는 트랜지스터의 기계적 조합에 인간이 의미와 기능을 부여하는 지점이다. 2개의 입력 A, B와 2개의 출력 C, S를 가진 특정 셀을 예로 들어보자. 이 장치는 물리적으로 보면 트랜지스터들이 연결되어 전압에 따라 전류를 흘릴 뿐인 기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간은 여기에 숫자 0과 1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이진법 더하기로 해석한다. 0+0=00, 1+1=10과 같은 연산 결과가 도출될 때, 1+1=2라는 고차원적 지능의 산물은 트랜지스터라는 물질 자체에 담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트랜지스터들이 연결된 형식적 구조에서 창발한다. 즉, 더하기라는 의미는 트랜지스터 자체가 아니라 트랜지스터를 연결하는 구리선의 배치, 즉 구조에 부여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능 블록들이 조립되어 연산기인 ALU를 이루고, 조건에 따라 경로를 바꾸는 MUX와 DEMUX를 통해 복합적인 시스템으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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