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한 마지막 수업
모리 슈워츠 지음 | 부키
모리와 함께한 마지막 수업
모리 슈워츠 지음
부키 / 2025년 12월 / 304쪽 / 22,000원
Part 1 지금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Chapter 1 언젠가는 내 몸에 한계가 찾아옴을 기억하자
몸이 약해지고 고장 날 수 있다는 것을 늘 명심하고 대비하자: 1994년 내가 루게릭병(근위축성측삭경화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난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이대로 죽어야 할까, 아니면 그래도 살아봐야 할까?”
나 같은 상황에 부닥친 사람 대부분이 그러하듯 너무 끔찍한 병이어서 그냥 단념하고 죽을지, 아니면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쓸지 고민했습니다. 결국 나는 살아보기로 결심했습니다.“그렇지만 존엄성, 용기, 유머, 관계를 계속 유지하면서 내가 살고 싶은 방식대로 살 수 있을까?”그럴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다짐했습니다.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보자.”
나는 능력이 되는 한 평정심을 유지한 채 살아가기로 굳게 결심했고, 다행히 지금까지는 잘해오고 있습니다.
그날 이후로 신경이 망가지면서 근육이 시들고 굳는 바람에 신체 기능이 하염없이 떨어지는 걸 지켜봐야 했습니다. 혼자 뭔가를 하기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아침에 면도할 때나 밥을 먹을 때 손을 끝까지 들어 올릴 수가 없었죠. 마치 손에 커다란 쇳덩어리가 매달린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음식 삼키기조차 힘듭니다. 기침도 심하고요. 가끔 음식을 넘겨보려고 하면 아주 오랫동안 잘게 씹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음식 공급 튜브 없이 내 힘으로 양분 섭취를 할 수 있을지 막막합니다. 다시는 걸을 수 없게 되었을 때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음식을 삼키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상실로 다가옵니다.
두 번째로 큰 상실은 언어 장애입니다. “오” 소리를 내면 목에서 턱 걸립니다. 그리고 말이 자꾸만 어눌해지고 있습니다. 말하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마주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뭔가를 분명히 표현하지 못할 때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고 있어요. 뭔가를 요청하거나 마음속 감정이나 머릿속 생각을 드러낼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침묵을 활용하는 법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진짜 내 목소리를 듣는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침묵 활용은 흥미로운 도전이 될 것 같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이미 말해두었어요.“여러분의 생각과 감정을 말하면 내 대답을 느낌으로 알 수 있을 거예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해도 내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아직 얼굴 근육은 잘 움직여서 표정을 지을 수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뭔가를 의논하고 내 피드백이나 도움받으려고 할 때는 내가 “예”, “아니요”로 대답할 수 있는 단답형 질문으로 바꿔 말해주셔야 할 겁니다. 이것이 내가 앞으로 닥칠 언어 상실에 대비하는 방식입니다. 그래도 실제로 목소리를 잃었을 때 새로운 기계 장치나 도구가 나와 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물론 예측한다고 해서 신체 능력 소멸에 완벽히 대비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런 상실은 너무나 강력해서 경험해보지 않고는 절대 모르기 때문이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생각해볼 수는 있어도 실제로 닥치기 전까지는 경험해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할지 결정이 달라질 수밖에 없죠. 틀림없이 나는 한동안 우울에 시달릴 겁니다. 얼마나 그럴진 모르지만 그게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하지만 아마 이삼일쯤 지나면 다시 좋아지기 시작할 겁니다. 걷기나 말하기 같은 능력을 잃든, 이전보다 정신이 흐려지든, 더 많은 상실을 예측하고 대비하십시오. 그럴수록 적응하기가 훨씬 더 쉬워질 것입니다.
몸이나 질병은 나의 일부일 뿐이니 거기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심각한 병에 걸리면 자신의 몸과 질병에 온통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나 역시 그랬습니다. 예전에 나는 집단 치료를 진행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어떤 치료 집단에 자신의 병명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남성 환자가 속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남성은 모임에 나올 때마다 자신의 병이 얼마나 심각한지, 병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런 신세 한탄은 당사자를 더 괴롭고 비참하게 만들었고, 더 나아가 모임에 속한 다른 사람들까지 불안하게 만들었죠. 결국 그는 치료 모임에서 퇴출당하고 말았습니다.
몸이 아프면 다른 뭔가에 초점을 맞추기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안 그러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질병에 집착하면 몸의 포로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러면 몸이 모든 삶을 지배하게 되고, 결국에는 삶 전체가 부상이나 기능 장애, 결핍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명심하십시오. 몸이 아프더라도 세상에는 노력과 에너지를 쏟아부을 다른 건강하고 즐거운 일이 얼마든지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몸을 다치면 마치 자아가 상처 입은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몸은 나 자신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각 신체 부위를 전부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선악 개념과 가치관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며, 바로 이런 것들이 모여서 나라는 자아를 이룹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감정, 통찰력, 직관이 있습니다.
요컨대 내 견해는 이렇습니다. 정서, 심리, 직관을 비롯한 여러 능력이 있는 한 자아는 잃어버리기는커녕 줄어들지조차 않습니다. 신체 제약이나 기능 장애가 있다고 해서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그런 몸 상태 때문에 자신이 더 나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실제로 나는 루게릭병에 걸리고 난 뒤 심리와 정서 면에서 많은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루게릭병에 걸리기 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나 자신답다고 생각합니다.
Chapter 2 절망이 나를 뒤흔들어도 꿈을 잃지 말자
좌절감에 휘둘려 필요 이상으로 인생을 어렵게 만들지 말자: 병세가 나빠지면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지나친 좌절감에 시달리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인내심을 발휘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래서 나는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으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자고 스스로 다독입니다. 이처럼 속상하게 만드는 무슨 일이든 나름의 대안을 마련해두어야 합니다.
목이 몹시 마른데 주변에 물을 가져다줄 사람이 없다고 해봅시다. 팔에 힘이 없어서 혼자 휠체어를 밀고 물을 마시러 부엌에 갈 수 없습니다. 대안은 무엇일까요? 바로 물을 포기하는 겁니다. 물을 마시지 않기로 받아들여보세요. 처음에는 그러기가 무척 힘들지만 일단 해보면 다음부터는 그다지 힘들지 않습니다. 좌절감을 관리할 줄 모르면 자꾸 쌓여 결국은 늘 불안 속에서 살게 될 겁니다. 자신을 위해서라도 필요 이상으로 인생을 어렵게 만들지 마십시오.
때때로 불평을 늘어놓고 화내고 우는 것은 아주 건강한 행동이다: 좌절하고 화가 날 때 감정 표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남에게 화풀이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힘들면 혼잣말로 욕할 수도 있고 상황이 허락하면 큰소리로 욕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감정을 터트린다고 해서 평정심이 깨지는 건 아닙니다. 사실 주기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길게 보면 좌절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때때로 불평을 늘어놓고 화내고 우는 건 아주 건강한 행동입니다. 내 감정을 이해해줄 사람에게 큰소리로 분노를 표출할 때, 잔소리나 비난을 하지 않고 내 불평을 있는 그대로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입니다.
나는 화나고 불만스러우면 화내고 불평합니다. 불만과 좌절감을 털어놓으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고, 또 그런 기분이 오래 가지 않으리란 걸 알기 때문이죠. 나는 곧 평소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내 감정을 일일이 검열하고, 그런 감정에 내가 잡아먹히도록 내버려두느니 이편이 훨씬 낫습니다. 잔소리나 비난은 일절 하지 않으면서 내 불평을 들어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면 글로 쓰거나 녹음을 해보세요. 글로 적으면 지금 내 마음속에 몰아치는 감정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내 경험을 글로 적다 보면 그것이 나한테서 빠져나와 종이 위에 자리 잡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다 쓴 글을 읽으면 마치 그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것처럼 여겨지면서 그 “다른 사람”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유머 역시 좌절감을 물리치는 유용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상황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돕습니다. 할 수 있을 때마다 한 발짝 물러나 자신을 지켜보며 웃어보세요. 웃는 것은 건강에 좋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유머를 자신을 깎아내리는 수단으로 삼지는 마십시오.
질병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 중에는 분노와 좌절감을 표현하기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불평이 눈덩이처럼 불어날까 봐 겁내기 때문이죠.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감정이 가는 대로 내버려두세요.”
좌절감이 많이 쌓여왔다면 어서 털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야기를 하다가 감정이 격해지면서 다른 일에까지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면 이 또한 자신이 하는 행동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세요.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품고, 감정을 다 표출했으니 이제 나아질 일만 남았음을 깨달으세요.
Chapter 3 내게 닥친 상실을 마음껏 슬퍼하자
나와 남과 세상을 위해 마음껏 슬퍼하고 가슴 아파하자: 슬픔, 비통, 울음은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문화적인 금지나 요구, 왜곡이 없다면 이런 감정은 당연하게 일어납니다. 슬픔은 인생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누구나 살면서 상실을 겪기 때문이죠. 나이가 들면 더 많은 상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슬픔을 다루는 법을 알아두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유롭게 상실을 슬퍼하고 가슴 아파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마음껏 울게 내버려둘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풀지 않으면 상실의 경험은 내면에 고통으로 남아 여러 면에서 우리 인생에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우리는 보통 부모님이나 사랑하는 사람 등 다른 사람을 위해 애도한다는 생각은 하지, 자신을 위해 애도한다는 생각은 잘 안 합니다. 그러나 나는 나를 애도함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얻었습니다. 나를 위해 애도한다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요? 나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비통함, 슬픔, 절망, 괴로움, 분노, 공포, 후회 같은 감정들을 내가 고스란히 느끼도록 내버려둡니다. 그리고 원 없이 실컷 웁니다. 울음이 그치면 내가 무엇 때문에 울었는지 생각해봅니다. 나의 죽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 못다 이룬 일들과 이 아름다운 세상을 떠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울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울고 나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결국 죽는다는 진리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런데 슬픔은 한 번 쏟아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울고, 가슴 아파하고, 앓는 소리를 내고, 흐느끼고 싶은 순간은 몇 번이고 다시 찾아옵니다. 그럴 때 생겨나는 속 깊은 눈물, 상실감, 고통, 공허함을 고스란히 느끼게 그냥 내버려두세요. 이런 감정이 얼마나 많이 찾아오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나는 정말 많이 웁니다. 훌쩍거리기도 하고, 펑펑 울기도 하고, 티 안 나게 울기도 합니다. 혼자 울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울기도 합니다. 애도는 우리 인간이 죽은 사람, 떠난 사람, 잃어버린 사람에게 조의를 표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나는 애도란 우리의 유한한 삶에 경의를 표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나는 나를 위해 울고, 앞으로 다가올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가슴 아파하고, 과거 어머니와의 이별을 애도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세상의 잔혹함, 비열함, 살인과 같은 고통을 위해 눈물을 흘립니다. 내 개인적인 상실과 주변의 죽음 말고도 이 세상에는 함께 애도하고 슬퍼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한참을 울면서 이런 깊은 감정을 표출하고 나면 나는 위안을 얻습니다. 내가 이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서, 다시 말해 이런 감정이 존재하며, 이런 감정을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다는 것에서 나는 위안을 얻습니다. 이렇듯 내 감정은 나를 약하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강하게 만듭니다. 이런 식으로 마음껏 슬퍼하고 나면 하루를 마주하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가족, 친구들과 함께 해야 할 일을 하기가 한결 수월해집니다. 어떤 일이든 기꺼이 받아들이고 좋아하며 즐기게 됩니다.
지금 남아 있는 신체 기능과 삶을 소중히 여기자: 슬퍼하기는 한 바퀴 원을 도는 것과 같습니다. 슬퍼하기를 겪고 나면 상실을 받아들이고 현실로 돌아가 지금의 인생을 소중하게 여기는 지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런데 애도의 대상이 당신에게 너무나 대단하고 중요하다면 슬퍼한다고 해서 절대 애도가 끝나지는 않습니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덜 자주 그리고 덜 깊이 애도합니다. 그렇다고 슬퍼하기를 피하거나 멈추는 것이 내 목표는 아닙니다. 슬퍼하기는 감정 표출을 위한 건강한 배출구로 활용되어야 합니다.
자기연민과 슬퍼하기의 차이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하필 나지? 신은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한 거야?”
이렇게 말한다면 자기연민입니다. 반면에 이렇게 말한다면 내 슬픔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한테 끔찍한 일이 일어났어. 너무 슬프고 괴로워.”
자기연민은 슬퍼하기의 과정에서 보면 시작 단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평범한 삶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자기연민을 넘어서야 합니다. 내가 이 병에 왜 걸렸는지, 이 병이 어디서 왔는지, 신이 이 병과 관련이 있는지 누가 알 수 있을까요? 대신에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내가 소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음을 인정해보십시오. 그러면 나의 잃어버린 기능을 애도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죽음으로 가는 길에서 무척 멀리까지 왔다는 사실을 애도할 수 있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것을 슬퍼합니다. 바로 이런 상실에 대한 슬픔과 애도가 유한한 삶의 본질을 잘 드러내 보여줍니다. 슬픔으로 이런 삶에 경의를 표하고 나면 내가 빼앗긴 것에 대해 곱씹기를 멈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돕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비롯해 내가 지금 가진 것에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Chapter 4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자
내가 언젠가는 장애와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자기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왜일까요? 우리의 공통된 운명인 죽음을 받아들이기를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부정하거나,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거나, 자신에게는 죽음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비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죽음의 불가피성을 받아들이면 불치병이나 장애를 초래하는 질병에 맞서기가 좀 더 쉬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으며, 뭐가 잘못되든 과학기술이 해결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이런 신조를 고수하죠.“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면 고칠 방법을 찾아낼 거야.”
보통 상황에서는 이런 신조가 적합합니다. 당신의 상태를 더 좋게 바꿀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됩니다. 그러나 회복이나 치유가 당신 선택지에 없다면 어떨까요? 이럴 때는 받아들임이 중요합니다. 20년 후에는 루게릭병 치료법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치료법이 없으니 나는 장애와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진실을 명확하게 보려면 현실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꿀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바꿀 수 없다고 판명 나면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헛된 희망을 품고 몸부림치다가 늘 좌절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현실 받아들이기는 단번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나도 인정했다가 부정하기를 반복했습니다.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도 마음이 흔들렸고, 그러다가 다시 인정했습니다. 오락가락했죠. 한동안 그러고 난 후 불신과 거부가 줄어드는 지점에 이르렀고, 마침내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