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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로 보는 세계사

최희성 지음 | 아이템하우스


신화로 보는 세계사

최희성 엮음

아이템하우스 / 2026년 1월 / 448쪽 / 20,000원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신화를 찾아서



길가메시 신화


우루크는 몸의 3분의 2가 신이고 3분의 1은 인간인 길가메시 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길가메시 왕은 매우 잘생기고 총명한 데다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늘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강하다는 자만에 빠져 싸움을 잘한다는 남자들을 찾아가서 두들겨 패고, 초야권을 발동시켜 결혼하는 처녀들의 첫날밤을 자신이 치르는 등 갖은 악행을 일삼았다.

그의 행패에 백성들은 하늘의 신 아누에게 길가메시를 벌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자 아누는 신들과 의논을 했는데, 신들은 길가메시가 너무 강해서 반대로 자신들이 당할 수도 있으니 길가메시보다 더 강한 초인을 만들어 벌하고자 했다. 아누는 창조의 여신 아루루에게 초인을 만들 것을 명했다. 이에 아루루는 점토로 초인 엔키두를 만들었다. 엔키두는 강한 괴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온몸은 털로 덮여 있었고 여인처럼 긴 머리칼이 소의 몸 같은 그의 신체를 덮고 있었다.

문명화된 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던 엔키두는 짐승들과 같이 풀을 뜯고 물웅덩이 근처에서 살았다. 하지만 얼마 안 가 희한한 짐승이 있다는 이야기가 우루크에 퍼졌다. 길가메시는 그 희한한 동물이 신들이 자신을 벌하려고 보낸 녀석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그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이슈타르 신전의 무녀 샴하트를 엔키두에게 보내 그를 유혹하게 하였다.

엔키두는 하트와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동침하였고, 샴하트는 엔키두와 동침하면서 그의 야수성을 벗겨내었다. 샴하트와 일주일간 쉬지도 않고 관계를 맺은 엔키두가 본래 친구들인 짐승들에게 다가가자 짐승들은 엔키두를 피했다. 이제 엔키두는 짐승들의 말도 알아들을 수 없었으며 예전처럼 그들을 쫓아갈 만큼 잘 달릴 수도 없게 되었다. 하지만 짐승의 탈을 벗자 인간처럼 지혜로워졌다.

우루크에 도착한 엔키두는 백성들의 호소를 듣고 분노하여 길가메시와 결투를 하게 된다. 두 사람의 승부는 판본에 따라 엔키두가 이기기도 하고, 길가메시가 이기기도 하고, 서로 비기기도 하는 등 그 유형이 무척 다양할 정도로 둘의 승부는 치열했다. 하지만 치열하게 싸우면서 서로 교감을 느꼈기 때문인지 둘은 친한 친구가 되었고, 길가메시도 이때부터 마음을 고쳐먹고 백성을 생각하는 좋은 왕이 되었다. 이후 두 영웅은 함께 다니며 많은 영웅담을 남기는데 그중 하나가 홍바바 퇴치이다.

태양신 우투는 엘림 산에 자신의 신전을 짓고 싶었으나 그곳에는 엔릴 신이 삼목을 보호하기 위해 산을 지킬 것을 명한 괴물 훔바바가 있었다. 훔바바는 숲속에서 움직이는 생명체를 보호하거나 잠들게 하는 능력이 있으며, 자신의 눈을 보는 자를 돌로 만드는 마력까지 갖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거대한 체구에 야성적이고 거친 소의 뿔이 있으며 꼬리와 성기는 뱀인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다.

태양신 우투는 길가메시라면 훔바바를 퇴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길가메시에게 “우루크의 백성들에게 나무가 필요한데 숲에 괴물이 있으니 가서 괴물을 퇴치하고 나무를 베어오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길가메시는 엘림 산으로 가려고 했지만, 엔키두가 훔바바는 자신이 야수일 때 함께 뛰어놀던 친구라며 그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친구여, 당신과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삼나무 숲속으로 들어간단 말이오? 엔릴 신이 삼나무숲을 지키려고 사람들을 겁주기 위해서 훔바바를 임명한 거요. 엔릴 신이 일곱 후광이라는 무서운 운명을 그에게 주었단 말이오. 그곳에 가서는 안 되오.”

엔키두는 길가메시를 뜯어말렸지만 길가메시는 엔키두와 같이 간다면 홈바바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함께 산으로 갔다. 엔키두와 길가메시가 산에 가자 일곱 후광을 두른 훔바바가 나타났다. 그 후광의 힘에 길가메시와 엔키두 역시 벌벌 떨면서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도 길가메시는 기지를 발휘하여 훔바바에게 “나의 누이와 여동생을 주어 그대를 가족으로 맞이하고 싶으니 후광을 잠시 거두어주게”라고 부탁했다. 이에 훔바바가 잠시 일곱 후광을 거두는 틈을 타 엔키두와 협공하여 순식간에 훔바바를 제압하였다.

훔바바는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이를 불쌍히 여긴 길가메시는 자비를 베풀까 생각했지만 엔키두가 훔바바를 살려두면 그가 다시 일곱 후광을 두르고 우리를 공격해 승산이 없다며 훔바바를 죽일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옛 친구의 야속한 말에 화가 난 훔바바는 엔키두에게 욕을 퍼부었고 이에 화가 난 엔키두는 훔바바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후 그 산에는 우투의 신전이 만들어졌고 훔바바의 죽음에 분노한 엔릴은 일곱 후광을 빼앗아 여기저기에 나누어 주었다.

두 사람의 명성이 하늘에까지 알려지자 풍요의 여신 이슈타르가 길가메시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하지만 길가메시는 “그대는 나에게 부를 주겠다고 말하면서 그 대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나에게 요구할 것이다. 그대가 먹는 음식과 옷은 여신의 것과 걸맞은 것을, 집은 여왕의 궁전과 같은 것을, 그리고 옷감도 최상의 것을 바랄 것이다. 내가 왜 그대에게 그런 것을 바쳐야 하는가? 그대는 낡아빠진 문짝, 허물어져 가는 엉성한 궁전, 머리에 쓸 수도 없는 터번, 손에 달라붙는 송진과 깨진 항아리, 거기에다 발에 맞지도 않는 헌신짝 같은 한 푼의 가치도 없는 존재가 아닌가”라고 말하면서 매몰차게 여신을 거절했다.

여신의 몸으로 인간에게 차이는 수모를 당한 이슈타르는 아버지인 아누 신에게 자신을 돕지 않으면 지하의 망자들을 내보내 산 자들을 뜯어먹게 하여 세상을 멸망시키겠다고 협박하며 하늘의 황소 구갈안나를 지상에 풀어놓았다. 하늘의 황소는 우루크 땅을 황폐화시키고 백성들을 죽였다. 이에 분노한 길가메시는 엔키두와 함께 구갈안나를 처치하러 나섰다. 먼저 엔키두가 어마어마한 힘으로 구갈안나를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고, 그 틈에 길가메시가 황소를 찔러 죽이려고 했다.

아누 신에게 빌린 구갈안나를 두 영웅이 죽이려고 하자 당황한 이슈타르는 어린 신들을 데리고 두 영웅을 말리러 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구갈안나는 죽어 버렸고 엔키두는 “내 친구에게 손끝 하나 대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황소의 넓적다리를 잘라 이슈타르에게 던져 그녀를 모욕했다.

이에 분노한 이슈타르는 신들을 모아 엔릴이 숲의 수호자로 임명한 훔바바와 아누의 소인 구갈안나를 죽인 두 영웅을 벌해야 한다는 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길가메시는 애초에 신들이 어떻게 할 수 없어 엔키두를 보낸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벌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신들은 긴 회의 끝에 자신들의 피조물인 엔키두를 죽이기로 결정하였다.

결국 엔키두는 병에 걸려 12일에 걸쳐 죽어갔고, 죽어가면서 자신을 인간으로 만든 무녀 샴하트를 저주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태양신 우투가 샴하트가 아니었으면 엔키두는 길가메시와 친구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고 지금까지의 영화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그를 설득했다. 그 말에 엔키두는 자신의 저주를 거두고 길가메시의 품에 안겨서 죽었다. 길가메시는 그의 시체가 썩어 벌레가 나올 때까지 그를 안고 있었다고 한다.

엔키두의 죽음을 목격한 길가메시는 죽음이 두려웠던지 불로불사의 비법을 손에 넣겠다고 결심하고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인류의 조상이자 불사의 존재가 된 우트나피쉬팀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계속해서 길을 가던 길가메시는 이 세상 끝에 존재하는 마슈 산에 다다르게 되었다. 마슈 산에는 두 개의 커다란 문이 있는데, 아침에 동쪽 문에서 태양이 떠서 밤에 서쪽 문으로 지게 되는 곳이었으며, 우트나피쉬팀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문을 지나 태양의 길목으로 들어서야만 했다.

불멸을 찾아 마슈 산에 도착한 길가메시는 그곳을 지키는 반인반전갈 파빌사그에게 문을 열어 달라 간청했다. 다행히 파빌사그는 말이 통하는 상대였기 때문에 서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길가메시의 말을 들은 파빌사그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우트나피쉬팀이 있는 곳에 가서 돌아온 적이 없었으니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하며 타일렀다.

하지만 길가메시는 용기를 내어 어떤 고난이나 슬픔도 다 견딜 자신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문을 열어 달라며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길가메시의 끈기를 인정한 파빌사그는 마침내 “가라, 길가메시여. 마슈 산을 넘는 것을 허락한다. 산들과 산지를 넘어서 가라! 아무쪼록 너의 두 다리가 무사히 너를 돌아오게 할 것을 빌겠다. 널 위해 산의 입구가 열린다”라고 격려해 주며 문을 열어주었다. 길가메시는 그 말을 듣고는 암흑 속을 힘차게 나아갔고 마침내 우트나피쉬팀이 살고 있는 행복의 섬에 도착했다.

불로불사의 비법을 알려 달라는 길가메시의 간청에 우트나피쉬팀은 처음에는 당연히 거절하였지만 그가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7일 동안 잠을 자지 않으면 영생의 비법을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길가메시는 그 조건을 받아들여 6일까지는 잘 참아냈으나 7일이 되기 직전에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이에 우트나피쉬팀은 “잠도 이기지 못하면서 어떻게 죽음을 이기려고 하느냐?”라며 길가메시에게 돌아가라고 했다. 그런데 우트나피쉬팀의 아내는 길가메시가 불쌍해 보였는지 여기까지 찾아온 성의를 봐서 선물을 주라고 남편에게 부탁했다.

아내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던 우트나피쉬팀은 할 수 없이 그에게 이 세상에 마지막 남은 불로초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었다. 길가메시는 심연에서 불로초를 손에 넣지만 그걸 그 자리에서 먹지 않고 우루크로 가져가서 재배하면 모든 국민들이 함께 영생을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는 불로초를 가지고 우루크로 돌아갔다.

하지만 돌아오던 길에 길가메시가 연못에서 목욕을 하는 틈을 타서 늙은 뱀이 그 귀한 불로초를 먹어 버린 뒤 껍질을 벗고 젊어져 기운차게 달아나 버렸다. 그로 인해 뱀은 해마다 허물을 벗고 새 생명을 얻게 되었지만 인간은 죽음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빈손으로 우루크에 돌아온 길가메시는 자신의 지난 과오를 한탄하다 잠들어 버린다. 그리고 꿈속에 신들이 나타나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죽으면 저승의 왕이 될 수 있으니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말해 주었다. 꿈에서 깬 그는 자신의 행적을 돌에 새긴 뒤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였다.



중국 문명의 신화를 찾아서



반고 창조 신화


아주 먼 옛날, 이 세상은 검고 흐린 상태의 하나의 알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안에 한 사람이 웅크리고 있었으니 그가 바로 반고이다. 깜깜한 알 속이 싫었던 반고는 어느 날 알을 깨어 버렸다. 이때 알 속에 있던 무거운 것들은 가라앉고 가벼운 것들은 위로 치솟았다. 하지만 다시 무거운 것들과 가벼운 것들이 모여 혼돈의 상태로 가려고 하자 반고는 자신의 두 다리와 두 팔로 무거운 것들과 가벼운 것들을 떼어놓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때부터 반고의 키가 하루에 한 자씩 자랐으며, 이로 인해 하늘과 땅이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반고가 울 때 그의 눈물은 강이 되고 숨결은 바람이 되었다. 목소리는 천둥, 눈빛은 번개가 되었다. 그가 기쁠 때는 하늘도 맑았고, 슬플 때는 하늘빛이 온통 흐려졌다. 이렇게 애를 쓴 것이 무려 18,000년이었고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이 서로 9만 리의 거리로 멀어지자 드디어 반고는 혼돈을 막았다고 안심하며 대지에 누워 휴식을 취했고 그 상태로 죽게 된다. 그가 죽을 때 두 눈동자는 태양과 달이 되었고, 사지는 산, 피는 강, 혈관과 근육은 길, 살은 논밭, 수염은 벼, 피부는 초목이 되었다. 또한 반고가 죽을 때 그의 몸에서 생겨난 구더기가 바람을 만나 인간이 되었다.

이렇게 반고의 온 정성과 헌신을 다한 희생으로 세상이 만들어졌다. 옛날 사람들은 이처럼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온몸을 바친 반고를 기념하기 위하여 남해에 반고 무덤을 세웠으며 계림(桂林)에는 사당까지 세웠다고 한다.

복희와 여와


금방이라도 큰비가 퍼부을 듯이 하늘은 온통 검은 구름으로 뒤덮이고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가운데 먼 하늘에서 우레 소리가 요란스레 들려왔다. 그때 집 밖에서 일을 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평소에 계곡에서 거두어들인 푸른 이끼를 엮어 만든 이엉을 지붕 위에 얹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큰비가 쏟아져 내려도 집안으로 빗물이 샐 염려가 없었다.

아직 열 살도 안 된 그의 아들과 딸은 천진난만하게 집 밖에서 뛰어놀며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구경하였다. 그가 지붕에 푸른 이끼를 다 깔고 나서 아이들을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비가 쏟아붓기 시작했다. 어린 자식들과 아버지는 재빨리 창문을 닫고 온기가 어린 따스한 작은방 안에서 단란한 한때를 즐겼다.

그렇게 오순도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것도 잠깐, 빗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굵어지고 바람 또한 거세어졌으며 뇌성도 점차 요란해져 갔다. 마치 하늘의 뇌공이 진노하여 인간들에게 커다란 재앙을 내리려는 듯싶었다. 이때 그 남자는 커다란 재앙이 눈앞에 닥쳐오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미리 만들어두었던 쇠망태기를 가져와 처마 밑에 두었다. 그는 쇠망태기의 입구를 열어 두고 손에는 호랑이를 사냥할 때 쓰는 창을 움켜쥔 채 서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은 시커먼 먹구름으로 뒤덮이고 가끔씩 번갯불이 번쩍거리는 가운데 뇌성이 잇달아 울려 퍼졌다. 이윽고 시퍼런 얼굴을 한 뇌공이 손에 도끼를 들고 비호처럼 하늘에서 내려왔다.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느닷없이 지붕으로 내려온 뇌공은 지붕 위에 깔아 놓은 푸른 이끼에 미끄러져 곤두박질을 치며 처마 밑으로 떨어졌다.

이때 처마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는 뇌공이 떨어질 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호랑이를 사냥할 때 쓰는 창으로 힘껏 찔렀다. 창은 정확히 뇌공의 허리에 내리꽂혔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창에 찔려 고꾸라지는 뇌공을 아버지는 놓치지 않고 재빨리 낚아채 쇠망태기 속에 쳐 넣고 망태기를 등에 짊어진 채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이번에야말로 정말 네 놈을 잡고 말았구나! 이제 네 놈은 아무런 수작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뇌공을 잘 지키라고 일렀다. 뇌공의 괴이한 모습을 본 아이들은 처음에는 무서워 어쩔 줄을 몰라 했으나 점차 시간이 감에 따라 익숙해져서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아버지는 향료를 사러 시장에 갔다. 뇌공을 죽여서 절여 반찬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집을 떠나면서 아이들에게 단단히 일렀다.“얘들아, 절대로 저 녀석에게 물을 주어서는 안 된다!”



아버지가 집을 나서자 쇠망태기 속에 갇혀 있던 뇌공은 거짓으로 신음소리를 내며 몹시 아픈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에게 물을 달라고 애원했다.“목이 말라 죽겠구나. 제발 물 한 사발만 다오.”

그러나 사내아이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물 한 사발이 안 된다면 물 한 잔만이라도 다오. 정말로 목이 말라 죽겠다.”

그러나 사내아이는 또다시 뇌공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부뚜막의 수세미를 가져와서 물 몇 방울만이라도 떨어뜨려다오. 정말 목이 타 죽겠다.”말을 마친 뇌공은 눈을 감고 입을 쩍 벌리고 일부러 훨씬 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의 처분을 기다렸다. 그러자 여동생인 여자아이가 뇌공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정말 불쌍하기도 해라. 아빠에게 잡혀 저 쇠망태기 속에 갇혀 있는 하루 동안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오빠, 시험 삼아 물 몇 방울만 떨어뜨려 주면 어떨까?”

오빠는 잠시 생각하더니 물 몇 방울쯤이야 괜찮을 것 같아 동생의 말에 따랐다. 오누이는 부엌으로 가서 수세미에 물을 적신 다음 이를 가져와 뇌공의 입에 물 몇 방울을 떨어뜨려 주었다. 물을 마시고 난 뇌공은 아이들에게 말했다.“정말 고맙구나! 내가 이 방을 빠져나갈 터이니 자리를 좀 비켜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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