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과 권력
이정모 지음 | 부키
달력과 권력
이정모 지음
부키 / 2015년 7월 / 262쪽 / 15,000원
달력의 구성 요소시간과 관련해서 사람이 어찌할 바 없이 꽉 정해져 있는 것이 세 가지 있다. 바로 다음 세 가지다.
- 하루를 결정해 주는 지구의 자전
- 한 달을 가르쳐 주는 달의 공전
- 한 해를 알려 주는 지구의 공전이다.
달력의 최소 단위 - 하루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_창세기 1장 5절
지구에 생명체가 생겨난 이후로 지금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경험하고 있는 사건은 해가 뜨고 지는 것이다. 이런 일출과 일몰은 물론 지구가 자전축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 바퀴씩 돌기 때문에 일어난다. 지구가 자전함으로써 해뿐 아니라 달과 별도 떴다가 지게 된다. 지구의 자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크로노미터(측시기, 測時機)라고 할 수 있다.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하루란 지구의 한 호흡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지구의 자전이라는 가장 오래된 크로노미터는 매우 부정확한 계기이다. 다시 말하면 지구의 자전으로 생기는 하루의 길이가 매일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구가 항상 같은 모양으로 자전축을 돌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준 시간을 얻기 위하여 보조 수단을 사용하였다. 사람들은 태양이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고 가정하여 ‘평균시간’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다. 이것을 바탕으로 시계가 나타내고 있는 시간을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2월 15일경의 태양일은 24시간 15분에 이르며, 11월 1일경의 태양일은 23시간 44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런 태양일의 부정확성은 달력을 만드는 데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달력을 만드는 사람은 1년에 며칠이 있는가 하는 것만을 알면 되기 때문이다.
이제 ‘하루’ 또는 ‘날’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자. ‘하루’ 또는 ‘날’이란 지구가 축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도는 데 걸린 시간이다. 따라서 하루는 ‘일출과 일출 사이’ 또는 ‘일몰과 일몰 사이’ 또는 ‘두 번의 태양의 최고점 사이’에 놓여 있다. 이렇게 정의된 하루는 정확한 길이를 갖고 있지는 않다.
우리가 사용하는 ‘날’이라는 단어는 일상생활에서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밝음의 의미이다. 우리는 흔히 “날이 밝았다”라고 말한다. 둘째는 낮과 밤을 합한 시간의 길이를 말한다. 이 두 번째 의미의 ‘날’이 달력에서 사용되는 개념이다. 그런데 이 ‘날’ 또는 ‘하루’는 나라와 문화마다 그 시작점이 달랐다.
국제표준기구는 하루를 0시 0분에서 24시 0분까지의 24시간으로 정하고 있다. 우리는 앞에서 하루의 길이가 줄었다 늘었다 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하루의 길이는 수백만 년 동안 조금씩 길어져 왔다. 지구의 자전 속도가 점차 느려지고 있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약 4억 년 전에는 하루가 겨우 21시간뿐이었다. 만약 당시에 사람이 살았다면 그들은 매년 402번의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화석으로도 증명이 가능하다. 바닷속에 사는 산호에는 나무처럼 나이테가 있는데, 이 나이테 사이에는 날테가 있다. 이 날테를 통해 한 해에 며칠이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실루리아기에서 데본기로 넘어가던 시기(약 4억 4천만 년 전에서 3억 5천만 1년 전 사이)에는 약 410개의 날테가 있어서 계산값과 근접한 결과를 보여 주고 있다.
사실 시, 분, 초의 개념은 자연이 우리에게 준 것이 아니다. 사람이 마음대로 하루를 24시간, 1,440분, 그리고 86,400초로 쪼개 놓은 것일 뿐이다. 그런데 하루의 길이가 매일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실제적인 하루의 길이와는 상관없는 길이를 1초로 정하였다. 세슘(Cs)이 방출하는 파장의 진동수를 따라서 1초를 정한 것이다. 현재의 기술로는 1조 분의 1초까지 측정할 수 있다. 그리고 하루가 실제로는 86,400초가 아님에도 하루를 86,400초로 나누었기 때문에 실제적인 지구의 하루와 맞추어 주기 위해 사람들은 대략 3년마다 2초의 윤초를 두고 있다. 윤초는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시간국(BIH)에서 결정한다.
인위적인 단위 - 일주일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_창세기 2장 2절
주일은 하루보다는 큰 시공간이다. 주일의 기원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달의 모양이 변화하는 것에서 주일이 기원한 것은 아닐까 쉽게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믐달(어둠) 상현달(커지는 반달) 보름달 하현달(작아지는 반달) 그믐달(어둠), 이렇게 한 달을 약 4개의 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7일 주일은 언제 도입되었을까? 7일 주일은 칼데아 사람들이 가장 먼저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바빌로니아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환한 사람들이 기록한 창세기가 그 사실을 보여 준다. 7일 주일은 기원전 1세기경에는 이미 로마인들 사이에서는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곧 그리스와 알렉산드리아에도 도입되었다. 중앙 유럽에 도입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려서 고트 족은 4세기경에, 게르만족은 5세기경에나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등과 같은 요일의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요일 이름은 옛 사람들이 맨눈으로 관찰할 수 있던 별들의 이름에서 왔다. 그리고 요일의 순서가 왜 이렇게 정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별에서 따온 요일 이름은 기원전 1세기경에는 로마에서 이미 일반적이었다.
달의 모양을 따라서 - 한 달때를 가늠하도록 달을 지으시고, 해에게는 그 지는 때를 알려 주셨습니다.
_시편 104편 19절(표준새번역)
태양의 일출과 일몰은 우리에게 너무나 짧은 시간의 간격만을 가르쳐 주며, 반면에 1년의 길이는 너무 길어서 정확히 재기가 어렵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태양 이외의 다른 측시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태양이란 측시기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한 두 번째 크로노미터는 바로 달이다. 달은 비교적 긴 시간 간격을 우리에게 쉽게 알려 준다. 지구 주위를 공전하고 있는 달이 태양과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비치는 달의 모양이 크게 달라지므로 우리가 때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고대 문화권에서는 달의 모양 변화에 따라 달력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달은 태양과는 달리 눈에 쉽게 보이고 그 변화도 명확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저위도 지방에 살고 있던 민족들에게는 태양에 의한 계절 변화가 그리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실제로 인류는 문명 시대에 이르기 훨씬 이전 석기 시대부터 태음력을 만들어 사용하였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5천 년 전에 인류가 동물의 뼈에 달의 모양과 위치의 변화를 기록한 유물이 남아 있다. 크로마뇽인들이 살던 때라고 생각하면 된다.
태양을 한 바퀴 돌면 - 한 해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78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969세를 살고 죽었더라. _창세기 7장 25~27절
언제 봄이 오는가 하는 문제는 인류에게 대단히 중요한 현안이었다. 특히 4계절이 뚜렷한 곳에서 살던 사람들은 언제 농사를 지어야 하고 언제 물난리를 피해야 하며 또 언제부터 겨울 준비를 해야 할지 알고 싶었다. 그러므로 왜 태양력보다 태음력이 더 많은 문명권에서 사용되었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인류 문명과 달력은 기후적으로 유리한 지역, 즉 추운 겨울이 없는 지역에서 기원하였다. 이러한 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은 달이 몇 번이나 바뀌어야 한 해가 되는지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개월 수로부터 ‘해’의 수를 셀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이런 추측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해 볼 수도 있다.
성서의 기록으로부터 추리를 시작해 보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빠르게 지나가니, 마치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시편 90장 10절, 표준새번역). 이에 따라 성서에 기록된 인물들의 실제 나이는 약 75세라고 가정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성서에 기록된 비상식적으로 긴 수명에 대한 기독교의 정통 교리는 “인간의 수명은 원래 그렇게 길었으나 죄의 대가로 하나님이 홍수를 통하여 인간을 벌하였고 그 이후 수명이 급격히 감소하였다.”라는 것이다. 성서 시대 인물의 나이를 중심으로 본문에 소개하는 계산법은 단지 필자의 생각일 뿐이다.
1달 = 1년
선사 시대에 나이는 ‘달’의 수와 같았다. 즉 처음에는 1달=1살인 셈이었다. 창세기 5장에 나타난 인류의 계보는 다음과 같다. 아담(930세), 마할랄렐(910세), 라멕(777세) 므두셀라(969세).
이 중 가장 오래 산 사람은 노아의 할아버지인 므두셀라로서 969세이다. 이제 그의 나이를 다시 계산해 보자. 요즘 계산으로 1달은 29.53일이며 1년은 365.24일이다. 따라서 969살×29.53일=28,614.57일. 28,614.57일÷365.24일=78.39년. 그러면 므두셀라는 약 79년을 산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인류가 12달이 1년인 것을 알고 사용하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5달 = 1년
1달=1년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5달=1년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이 생각은 한 손의 손가락 수가 5개이고 사람들이 처음에는 손가락을 가지고 계산했을 것이라는 점에 근거한다. 창세기에서는 노아의 후손들로부터 야곱에 이르는 시기에 이 계산법이 사용되었다고 추정한다. 아브라함은 175세에 세상을 떠났다(창세기 25장 7절). 아브라함의 나이를 이 방법으로 다시 계산해 보면 175×5÷ 12=72.91로서 약 73세에 해당하며, 그의 아들 이삭(180세)의 실제 나이는 약 75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6달 = 1년
다음 단계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6달 1년이라는 체계이다. 창세기는 25장부터 끝장인 50장까지 야곱과 요셉을 비롯한 그 아들들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그즈음에 사람들이 춘분과 추분, 그리고 하지와 동지를 인식함으로써 6달이라는 새로운 리듬을 도입하였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이렇게 가정하면 창세기에 기록된 야곱의 나이 147세(창세기 47장 28절)와 그 아들 요셉의 나이 110세(창세기 50장 26절)는 각각 약 74세와 55세라고 계산할 수 있다.
12달 = 1년
이집트 문명은 12달=1년의 역법을 갖고 있었다. 히브리 인들의 이집트 탈출을 인도한 모세는 자신이 이집트에서 태어났던 만큼 이 방식을 잘 알고 있었다. 이때부터, 즉 출애굽기부터 성서에 기록된 나이는 오늘날 우리가 세는 나이와 같아진다. 모세는 120살을 살았다(신명기 34장 7절).
현대 달력의 기원현대 달력이란 우리가 오늘날 쓰고 있는 달력이다. 다른 제도나 기구와 마찬가지로 달력도 전쟁과 무역을 통한 문화권 사이의 교류, 민중의 일상적인 요구, 그리고 정치권력자들의 야심에 의한 무수한 개혁의 산물이다. 현대 달력의 이력을 한 발자국씩 되짚어 가다 보면 그 근원에 다다르게 되는데, 고대 이집트가 바로 그곳이다.
고대 이집트 달력고대 이집트의 달력이야말로 태양력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달의 움직임과 무관하고 윤년도 없는 달력인 것이다. 추정에 의하면 이집트인들은 기원전 6000년경부터 태양력을 사용하였다.
나일강의 범람과 3계절: 이집트 나일 강은 1년마다 정기적으로 범람하여 농부들에게 농사시기를 알려 주었다. 에티오피아 고산 지대의 눈이 녹아 흐르고 동시에 몬순 장마가 지면 나일 강의 수위가 급격히 올라갔다. 이때는 바로 여름이 시작된 직후이다. 홍수는 비옥한 진흙을 상류로부터 옮겨와 나일 강 유역에 쌓아 놓았다.
오랜 세대에 걸친 경험을 통해 고대 이집트인들은 홍수로부터 다음 홍수까지 평균 365일이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실제로 1년은 이보다 약 4분의 1일 정도 더 길다는 사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 작은 오차와 상관없이 홍수는 365일 만에 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40년을 살다 보면 이 오차가 자그마치 10일에 이르게 되지만, 농사를 짓는 데는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다. 또 나일 강이 꼭 365일 만에 범람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고대 이집트인들로서는 365일을 같은 조각으로 나누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자투리를 떼어 내고 1년을 그냥 360일로 정하였다. 1년을 360일로 정한 것에서 착안하여 그들은 원을 360°로 나누었는데, 이 개념은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면 1년을 360일로 정한 다음에 나머지 5일은 어떻게 하였는가. 여기서 이집트인들은 1년의 마지막에 5일 만으로 된 열세 번째 달 에파고메네(Epagomene)를 두어, 축제와 제사의 기간으로 보냈다. 에파고메네는 나일 강이 범람함으로써 시작되는 새해의 바로 전으로 축제를 위해서는 이상적인 시점이었다. 나일 강이 범람하여 새로운 옥토를 가져다준 후에야 농사를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농사일에 착수하기 전에 제방을 쌓고 수로를 닦는 등 관개 사업을 제식과 결합시켰다.
율리우스 달력기원전 48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로마 군대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상륙하였다. 패주하는 폼페이우스를 추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폼페이우스는 상륙하기도 전에 암살당하였고 대신에 이집트 왕위 계승 전쟁에 휘말린다. 연전연승의 카이사르 군대도 이집트에서는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쟁 영웅 카이사르는 마침내 전세를 뒤엎고,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왕위 다툼을 벌이고 있던 클레오파트라를 이집트 여왕으로 봉하였다.
카이사르는 몇 개월 동안 알렉산드리아에서 머물렀을 뿐이고 소아시아와 아프리카를 거쳐 다시 로마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 짧은 기간은 세계의 역사를 다시 쓸 준비를 하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이기도 하였다. 카이사르는 이집트에서 4년마다 한 번씩 윤달을 집어넣는 이집트 달력을 알게 된 것이다.
BC 46년 - 1년 445일의 해: 폼페이우스를 무찌른 후 소아시아와 아프리카 원정에서 많은 전과를 올림으로써 권력을 장악하게 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전 46년 로마로 귀환하였다. 그의 개선행진을 보기 위해 모든 로마 시민들이 도로로 나와 그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화려한 개선 행진 이면에 가려져 있는 사회적 위험에 대해 주의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우선 그 위험부터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위험이란 바로 혼란스러운 달력 체계로 인한 사회 질서의 혼란이었다.
로마 공화정 말기에 대제관들은 달력과 태양의 운행을 일치시킬 수 있도록 윤년의 도입을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많은 관리들이 자신의 임기를 어떻게든 연장하고 싶어 하였는가 하면, 새 임기가 좀 더 일찍 시작되기를 원하는 관리들도 있었다. 대제관들은 뇌물을 갖다 바친 관리들이 원하는 바에 따라서 한 해를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였다. 이로써 달력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카이사르가 화려하게 개선한 기원전 46년은 거의 3개월이나 연장되어 445일이나 되기에 이르렀고, 이 해는 역사상 가장 긴 해로 기록되었다. 날짜가 이렇게 길어진 것은 카이사르가 달력을 개혁할 때 축제와 계절을 맞추기 위하여 33일과 34일짜리 두 달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역사에서는 기원전 46년을 ‘혼돈의 해’로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