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뒤집은 과학기술의 역사
시라토리 케이 지음 | 시그마북스
세상을 뒤집은 과학기술의 역사
시라토리 케이 지음
시그마북스 / 2025년 9월 / 260쪽 / 18,000원
제1장. 근대 과학의 시작 - 16세기부터 17세기까지
과학에서 기술로 - 관측과 실험
중세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다: 과학은 객관적인 관측과 관찰을 바탕으로 현상의 본질과 법칙성을 밝히는 학문으로, 다른 사람이 실험해도 똑같은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재현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중세부터 근대 초기까지는 관측과 실험으로 자연 현상의 본질에 다가가려 한 근대적 연구자들이 등장한 시대였다.
14~15세기에 걸쳐 유럽에서 르네상스라는 문예부흥 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를 기점으로 중세가 막을 내리고 근대가 시작되었다. 과학기술사에서는 미신에서 벗어나 자연 현상을 객관적이고 이론적으로 바라보게 된 시기를 근대의 시작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는 이성과 논리가 기독교적 가치관과 충돌한 시대이기도 했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넘어가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대표적이다. 2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 클라우디우스 프톨레마이오스는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저서 『알마게스트』에서 천체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주위를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천체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던 과학자들에 의해 천동설로는 설명되지 않는 모순점이 하나둘씩 발견되기 시작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15세기 폴란드의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약 1,400년 동안 정설로 여겨졌다.
오랫동안 천동설이 올바른 우주관으로 여겨졌던 이유는 기독교의 교리와 어느 정도 일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천상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지상은 하나님이 창조한 절대 불변의 세계라는 종교관은 천동설과 일맥상통했다. 종교는 과학적 근거보다 철학과 교리를 우선시했던 만큼, 1,400여 년에 걸쳐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 천동설을 뒤집기란 매우 어려웠다.
코페르니쿠스는 성직자였지만, 자신이 관측하고 분석한 바를 토대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면 행성의 순행과 역행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저서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1543)에서 지동설을 자세히 설명했다. 정밀한 관측을 바탕으로 한 코페르니쿠스의 논리적인 이론은 기독교의 신학 사상에서 벗어나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를 개척했다. 그리고 코페르니쿠스의 뒤를 이어 요하네스 케플러,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이작 뉴턴 등 관측과 수학을 바탕으로 사고하는 과학자들의 시대가 열렸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세계관이 바뀌면서 사상 역시 맹목적 믿음이 지배하던 중세와 결별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갔다.
나침반, 항해술, 지도 - 메르카토르
항해술의 3대 신기: 석기 시대에도 통나무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을 정도이니 인류가 최초로 바다를 건넌 시기는 아마 상당히 오래전이었을 터이다. 이들은 목숨을 건 항해에 나섰다. 운이 좋아 태풍을 피하고 방향을 똑바로 잡은 사람들만이 살아남아 바다를 건너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나침반의 등장으로 정확하고 확실한 항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방위 자석을 이용한 나침반이 발명되면서 선원들은 배가 아무리 흔들려도 방향을 똑바로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어디가 북쪽인지만 알면 이를 기준으로 바늘의 각도가 90°면 동쪽, 180°면 남쪽, 270°면 서쪽이라는 식으로 나침반의 각도를 보고 침로를 정할 수 있었다. 자석은 자철광의 형태로 자연에 존재했고, 인류는 오래전부터 자력이 있는 돌의 존재를 인지하고 사용해왔다. 방위 자석을 실용적으로 쓰기 시작한 시초는 11세기 중국이라고 한다. 자철광에 문질러 자성을 띠게 한 가느다란 쇠바늘을 나뭇잎이나 가죽에 끼워 물에 띄우면 바늘 한쪽 끝이 북극성을 가리킨다. 북극성이 정북 방향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들은 별의 일주운동을 관찰했던 고대 이집트인들이었다.
바늘을 나뭇잎에 끼워 물에 띄우면 주변에서 진동이 생길 때 수면도 함께 흔들렸기 때문에, 흔들리는 배 위에서는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중심에 지지대를 세워 바늘이 잘 흔들리지 않도록 개량한 나침반이 13세기에 등장했다.
그런데 자석이 가리키는 북쪽(북)과 실제 지구상의 북쪽(진북)은 완전히 똑같지 않으며, 이 둘의 편차는 나침반을 사용하는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게다가 위치가 같아도 편차는 매해 달라졌다. 15세기에서 16세기에 걸친 대항해 시대 당시 사람들은 이미 자기 편차, 즉 진북과 자북의 차이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항해 중 나침반을 활용하면 북극성이 보이지 않는 낮에도,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에도 헤매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항법의 정확도를 높이려면 나침반뿐만 아니라 지도도 필요했다. 오늘날에도 쓰이는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작성된 지도는 원래 항해를 위해 고안되었다. 메르카토르 도법은 1569년에 플랑드르(오늘날의 벨기에) 태생의 게라르두스 메르카토르가 고안했다. 이 지도는 지구에 적도와 맞닿은 원통을 씌우고 중심에 빛을 두었을 때 생기는 투영 그림자를 종이에 옮긴 것이다. 이때 경도선과 위도선이 직각으로 교차한다. 따라서 출발 지점에서 목표 지점까지 직선을 긋고 경도선과 항로가 이루는 각도를 구한 다음 배의 침로를 따라가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지도에 정해진 선을 긋기만 해도 항로를 구할 수 있기에 항해에 매우 유용했다.
나침반, 지도와 함께 빠져서는 안 될 또 다른 발명품이 있으니, 바로 정밀한 시계이다. 태양이 정남 방향에 위치할 때의 고도(앙각)와 밤에 보이는 북극성의 고도를 통해 구할 수 있는 위도와 달리 경도는 계산하기 까다로웠다. 험난한 항해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정밀 시계는 경도의 계산을 간단하게 만든 주역이었다. 배가 난파하거나 좌초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효율적으로 항해하려면 정밀한 항법이 필요했고, 1714년에 영국 정부는 경도를 측정할 수 있는 시계를 개발한 사람에게 상금을 주겠다는 법안까지 발표할 정도였다.
경도를 측정할 때 쓰이는 정밀 시계는 영국의 기술자 존 해리슨이 1735년에 발명했다. 경도는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본초자오선(0)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 각각 180°씩 총 360°로 나뉘며, 1시간당 15°씩 차이 난다. 항해 중 현재 위치와 그리니치의 시차를 알면 별의 위치를 통해 현재의 경도를 구할 수 있다.
대항해 시대를 개척한 위대한 발명: 나침반과 지도와 정밀 시계의 발명으로 안전하고 효율적인 항해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이로써 대항해 시대라는 세계사에 남을 시대가 열렸다. 대항해 시대는 대규모 교역으로 발생한 막대한 이익에 의해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탄생한 시대이기도 했다. 그러나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식민지를 확장한 유럽 각국 사이에는 경쟁이 점점 심해졌고,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대항해 시대의 태동기부터 시작된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의 식민지화는 국가 간 격차라는 형태로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대항해 시대는 사상 최초로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국제화 시대이기도 했다. 그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신대륙이 발견되어 지도에 새로 그려졌다. 스페인 함대를 이끈 이탈리아 출신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1492년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 포르투갈 출신의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최초로 세계 일주에 성공했으며, 같은 포르투갈 출신인 바스쿠 다 가마는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 인도 항로를 발견했다. 이처럼 수많은 인물의 활약으로 인류의 활동 무대는 전 세계로 넓어졌다. 항해술의 발달로 사람들의 세계는 한층 넓어졌고, 새로운 시대의 막이 열렸다.
제2장. 산업혁명과 사회의 변혁 - 18세기
새로운 동력, 증기기관 - 뉴커먼, 와트
상하 운동을 회전 운동으로 변환하는 장치: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영국의 산업혁명은 사회에 변혁을 불러왔다. 증기기관이라는 새로운 동력원의 등장으로 공업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생산성까지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증기기관은 열에너지를 기계적인 에너지로 바꾸는 장치이다. 석탄을 태워서 얻은 에너지로 보일러에서 물을 끓이고, 만들어진 고온의 증기를 피스톤으로 보내 왕복 운동으로 바꾼 힘을 축의 회전 운동으로 변환하는 원리를 활용한다. 회전하는 힘으로 변환할 수 있게 되면서 응용 범위가 매우 넓어졌다.
최초의 증기기관은 18세기 초, 영국의 기술자 토머스 뉴커먼에 의해 탄생했다. 이 증기기관은 증기가 들어오고 나가는 실린더에 직접 물을 주입하여 냉각하는 방식 때문에 열효율이 낮다는 단점이 있었다. 1776년, 영국의 제임스 와트는 실린더에 직접 물을 분사하는 대신 외부에 응축기를 설치하여 물을 냉각하도록 뉴커먼의 증기기관을 개량했다. 그로써 효율이 크게 향상된 증기기관은 면직물공업과 제철 산업을 비롯하여 수많은 산업에 도입되었다.
증기기관은 철도에도 이용되었다. 1804년에는 영국의 기술자 리처드 트레비식이 최초의 증기기관차를 발명했다. 그리고 조지 스티븐슨이 1825년에 발명한 증기기관차 로코모션 1호가 1830년부터 상업 운행을 시작했다. 증기기관은 제조업의 판도를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공장에서 만든 제품을 유통하고 원재료를 대량으로 수송하는 운송업과 교통 분야에서도 영향을 발휘했다.
해상 교통에서도 증기기관이 탑재된 증기선이 등장했다. 상업 운항에 나선 최초의 증기선은 미국의 공학자 로버트 풀턴이 1807년에 건조한 클레르몽호이다. 1819년에는 증기선으로 대서양을 횡단했으며, 1853년에는 매튜 페리 제독이 이끄는 쿠로네 함대가 당시 쇄국 중이던 일본에 입항하는 사건도 있었다. 증기선의 발명은 상업뿐만 아니라 군사 기술의 판도까지 바꿨다. 기술은 한번 흐름을 타자 가속하듯이 발전해나갔다.
자본주의를 이끈 증기기관: 증기기관의 발명은 전기의 발명과 함께 사회에 큰 변화를 불러온 주역이었다. 흔히 증기기관의 발명을 계기로 시작된 사회 구조와 산업 기술의 변화를 ‘제1차 산업혁명’이라고 한다. 이어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전기에너지의 활용이 가져온 변화를 ‘제2차 산업혁명’, 그리고 20세기 중반에 등장한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정보 기술의 발달이 이끈 변화를 ‘제3차 산업혁명’이라고 한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회 구조도 바뀌었다. 증기기관으로 생산성이 향상되자 자본가에게 부가 집중되었고,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 구도가 형성되었다. 산업혁명을 계기로 본격적인 자본주의의 시대가 열렸다고도 할 수 있다. 공장에서 일할 노동자가 매우 많이 필요해지자 지방에서 농사를 짓던 젊은이들이 대거 도시로 몰렸고, 소비가 활발해지면서 경제가 발전했다. 그러나 자본가가 이윤을 독점하려 하면서 노동 환경이 열악해졌고, 치안마저 나빠졌다. 현대 사회가 끌어안고 있는 문제의 대다수가 이때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유럽 각국으로 퍼졌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과 함께 중심 산업도 섬유 산업 같은 경공업에서 제철 산업을 비롯한 중공업으로 옮겨갔다. 일본 역시 1860년대 메이지 유신 시대에 유럽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의 영향을 받았는데, 메이지 정부는 식산흥업과 부국강병을 기치로 내세워 산업 발전에 힘을 쏟았다.
전기의 발견
탈레스의 정전기: 전기 에너지는 인류의 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역사상 가장 큰 변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 최초로 전기의 존재를 발견한 인물은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이다. 호박을 천으로 문지르면 미세한 먼지 같은 것이 달라붙은 현상을 보고 전기의 존재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가 발견한 현상은 정전기였다. 이후 16세기 영국의 물리학자 윌리엄 길버트는 정전기를 연구하여 마찰했을 때 전기를 띠는 물질과 전기를 띠지 않는 물질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8세기 유럽에서는 서로 다른 두 물질을 손잡이로 회전시켜 마찰로 정전기를 일으키고, 이를 금속막대 끝으로 방전시키는 쇼가 등장했다. 1752년, 벤저민 프랭클린은 천둥 번개가 치는 날 연을 날려 번개의 전기를 라이덴병에 담는 데 성공했다. 라이덴병은 네덜란드 라이덴대학의 피터 반 뮈센브루크가 1746년에 발명했는데, 유리병 안쪽과 바깥쪽에 금속박을 둘러 두 장의 금속박 사이에 전기를 담을 수 있었다. 오늘날 전자 부품으로 쓰이는 콘덴서와 같은 원리이다.
개구리 다리에서 출발한 전지의 발명: 이탈리아의 과학자 루이지 갈바니는 해부한 개구리의 다리에 전류를 흘리면 다리가 움직이는 현상, 그리고 다리와 몸통에 서로 다른 전극(구리철사와 철 핀셋)을 갖다 대면 다리가 움직이는 현상을 1786년에서 1791년까지 5년에 걸쳐 연구했다. 갈바니는 처음에는 동물이 전기를 발생시킨다고 생각하고 이를 ‘동물 전기’라고 불렀으나, 이후 서로 다른 금속에 의해 전기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개구리 다리의 역할은 전해질이었다.
1789년에 갈바니가 발견한 현상에서 힌트를 얻은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알레산드로 볼타는 개구리 다리가 전기 자극을 받으면 움직이는 현상에서 영감을 얻어 전기가 발생하는 원리를 연구했고, 1800년에는 최초의 전지인 볼타전지를 발명했다. 전압의 단위 V(볼트)는 알레산드로 볼타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볼타전지의 등장으로 인류는 전기를 상황에 맞게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후대 물리학과 생명과학의 발전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볼타전지는 금방 열화되었기에 실용적이지는 않았다. 1836년, 영국의 화학자 존 프레더릭 대니얼은 이를 개량한 대니얼 전지를 고안했다. 볼타전지와 대니얼 전지는 모두 수용액 또는 수용액을 적신 천을 사용했기에 취급이 번거로웠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전해질을 고체로 만든 전지가 발명되었다. 1866년, 프랑스의 조르주 르클랑셰가 발명한 이 전지는 오늘날의 망가니즈 건전지와 거의 흡사했다. 르클랑셰 전지는 사용이 간편하다는 장점 덕에 빠르게 대중에게 보급되었다. 내부가 습하지 않아 ‘건전지’라고 부른다.
전기 연구의 시초, 외르스테드: 최초의 전기 에너지는 전지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시초는 볼타 전지였다. 그렇다면 전기는 어떻게 전등이나 모터 같은 것에 에너지로 쓰이게 되었을까?
1820년, 덴마크의 물리학자 한스 크리스티안 외르스테드는 책상 위에 올려둔 전선에 전류를 흘리자 옆에 있던 방위 자석의 바늘이 움직이는 현상을 발견하고, 전기와 자기에 어떤 관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전류가 흐르는 동시에 자기장이 발생한 셈인데, 여기서 자기장은 자기력이 미치는 범위를 가리킨다. 외르스테드는 방위 자석의 위치를 바꿔가며 전류를 흘렸다가 끊기를 반복하면서 규칙성을 찾았다. 그 결과, 전류의 방향과 자기장 사이의 연관성이 밝혀졌다.
프랑스의 물리학자 앙드레 마리 앙페르는 이 현상을 자세히 연구했다. 앙페르는 도선에 전류가 흐를 때 주위에 생기는 자기력선의 방향이 전류의 방향 기준으로 시계 방향임을 발견했다. 이를 ‘오른 나사법칙’ 또는 ‘앙페르의 법칙’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물리학자 장 바티스트 비오는 이 현상을 수식으로 정의했고, 이로써 전기와 자기를 연구하는 물리학 분야인 전자기학이 확립되었다.
이후 1831년에는 영국의 물리학자 마이클 패러데이가 전자기 유도 법칙을 발견했다. ‘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 법칙’ 혹은 ‘패러데이의 법칙’이라고도 하는 이 법칙은 전기장과 자기장의 관계를 나타낸 법칙으로, 오늘날 전자기학의 바탕이 되었다. 도선을 감은 코일 내부에 자기력선이 흐르면 코일에 전류가 발생한다. 그리고 자기 다발, 즉 자기력선의 수가 많을수록 전류의 세기가 강하다. 그리고 코일에 전류를 흘리면 코일 주위에 자기장이 생기면서 가까이에 있는 방위 자석의 바늘이 움직인다. 이 현상을 ‘전자기 유도’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