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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밖의 이름들

서혜진 지음 | 흐름출판


법정 밖의 이름들

서혜진 지음

흐름출판 / 2025년 8월 / 256쪽 / 18,000원





1부 침묵을 여는 법



피해자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


“여러분은 어느 정도가 되어야 성폭력이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강의 중 종종 이렇게 묻는다. 청중들의 표정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무언가가 생각난 듯 침묵하고, 누군가는 이미 나와 어떤 이야기라도 나눈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 표정들 속에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성폭력 피해를 얼마나 불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는지가 담겨 있다. 나야 매일 밥 먹듯이 경찰서와 법원에 드나들고, 성폭력을 비롯한 수많은 피해자를 만난다. 그들의 피해를 직접 목격하고 듣는 것이 나에게는 일상이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이 질문에 모든 사람이 같은 답을 하지는 않는다. 저마다의 주관과 경험, 가치관이 대답에서 드러난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인식이 개선되는 것도 보인다. 피해자가 우리와 똑같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인식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져 개선될 여지가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이 인식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다.

범죄와 사건을 바라볼 때 피해자를 중심에 두고 서사를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이어진 가해자 중심 서사의 주어가 변화하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변화는 더디다. 여전히 성폭력과 관련한 사건,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오래된 편견의 벽이 적용된다.

술에 취하지 않은 젊고, 평범하고, 매력적인 여성이 한밤중에 귀가하고 있다. 이 여성은 처음 보는 남성에 의해 기습적으로 위협을 받아 성폭력 피해를 입는다. 피해를 당하는 순간, 여성은 사력을 다해 피해 현장에서 벗어나고자 소리를 지르거나 발버둥 친다. 그 과정에서 신체 일부를 다친다. 피해가 종료된 후 여성은 곧장 병원이나 경찰서로 향한다. 이 사건 이후 여성은 집에 틀어박혀 우울하게 일상을 보낸다. 친구를 만나지 않고, 맛집을 가지 않고, 여행도 가지 않고, 행복한 척하는 SNS 활동을 일체 하지 않는다. 당연히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고, 회사 생활에도 어려움이 생긴다. 결과적으로 회사로 복귀하지 못한다. 따라서 여성은 평생 성폭력 피해로 고통받을 것이다.

위 글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모은 것이다. 최소한 이 기준에는 부합해야 사회적 피해자성을 획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틀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언행을 하거나,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면 어떻게 될까? 그 의심은 피해자 개인에게 향한다. ‘쟤 좀 이상해.’ ‘피해자가 어떻게 저래? 피해자였으면 못 저러지.’ ‘정말 피해자 맞아?’ 등의 의심으로 피해의 본질을 흐린다. 이것이 바로 성폭력 피해자의 왜곡된 상이자,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의한 ‘피해자다움’이다. 피해자다움의 인식은 성폭력 사건에 잘못된 사회적 통념을 만든다.

변호사가 되고 처음 접한 성폭력 사건은 중학생 수미의 피해였다. 수미는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폭력에 노출되어 어느 곳에도 마음 붙이지 못하고 방황하던 중에, 학교에서 심한 따돌림을 당했다. 그로 인해 전학을 하는 과정에서 부모의 불화마저 깊어졌고 결국 가출했다. 수미는 처음 만난 또래들과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어느 날은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만취해 길거리에 그대로 늘어져 잠들었다. 그리고 함께 술을 마셨던 남학생들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나는 이 사건의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해바라기센터로부터 조사 일정을 전달받았다. 그리고 수미를 만나기로 했다. 약속 전날, 나는 잠을 설쳤다. 변호사가 된 후 처음으로 성폭력 피해자를 만나 법률 조력하기로 한 것이었다. 머릿속에는 ‘어떻게 대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내가 공감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해야 할까? 아니면 변호사답게 냉철하게 딱 할 말만 할까? 중학생 피해자에게는 어떤 첫 마디를 건네야 하지? 그나저나 수미는 괜찮을까?’

그런데 수미를 만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피해자에 대한 나의 태도가 결국, 그들을 나와 같은 사람으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또 다른 장벽이었다. 수미는 성폭력 피해를 입은 불운한 중학생이 아닌 ‘그냥 수미’였다.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변호사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얼굴을 마주하니, 잠까지 설치며 고민하느라 초췌해진 몰골이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졌다.“네가 수미구나? 만나서 반가워.”

있는 그대로 수미를 받아들이자 나 역시 편해졌다. 수미는 이어지는 경찰의 피해자 진술 조사 과정에서도 똑 부러지게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기억하는 대로 이야기했다. 그 과정에서 위축되거나, 울거나,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거나, 누군가를 탓하지도 않았다. 덕분에 진술 조사는 매우 순조롭게 끝났다. 가해자들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수미에게서 받아 경찰에 전달했고, 엄벌을 바라는 수미의 의견을 담은 의견서도 전달했다.

수미는 내가 가진 피해자에 대한 통념, 편견의 무용함을 깨닫게 했다. 성폭력 피해자도 그저 수많은 사람 중 하나라는 당연한 사실을 인식하게 했다. ‘피해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은 그들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아닌, 또 다른 편견의 발로였다.

피해자 역시 각자의 개성과 취향을 가진 개개인이다. 이들 모두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다르고, 성격은 더더욱 다르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상황과 과정도 제각각이다. 피해자들 중에는 여성도 있고 남성도 있고, 또 다른 사회적 성별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나이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피해에 대처하는 방식도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들을 모두 ‘성폭력 피해자’라는 범주에 억지로 집어넣고, 똑같이 행동하고 말하기를 바랄까? 이런 태도는 피해자 개개인의 경험이나 가치관, 성격, 환경 등을 전부 무시하는 처사이자 피해자를 향한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수사기관과 법원이 피해자를 부적절하게 대해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이들도 사회적 통념에서 사고하고 판단한다. 그 통념이 가장 짙게 드러날 뿐이다. 과거의 사실을 밝히고 기존의 법률을 적용하는 그들에게, 사회의 통념을 벗어나 선진적이고 이상적인 판단을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무리이다. 즉, 우리가 만든 사회, 우리의 인식부터 바뀌지 않으면 어떤 제도적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2부 존재를 증명하는 말들



그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고 나는 그 왕이 끔찍했다


이윤택 연극 감독은 한국 연극계의 거장이었다. 1980년대부터 극작가와 연출을 병행하며 엄청난 명성을 쌓았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감독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연극계에서 이윤택의 지위는 말 그대로 독보적이었다. 2018년 2월,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가 소셜 미디어에 글 하나를 게시했다.

10년도 전의 일이다. 지방 공연에 전 부치는 아낙으로 캐스팅이 됐다. 여관방을 배정받고 후배들과 같이 짐을 푸는데 여관방 인터폰이 울렸다. 전화 건 이는 연출이었다. 자기 방 호수를 말하며 지금 오라고 했다. 왜 부르는지 단박에 알았다. 안마를 하러 오라는 것이다. 안 갈 수 없었다. 그 당시 그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다. -김수희 대표의 게시글 일부



그 글은 십여 년 전 이윤택이 이끄는 극단 ‘연희단 거리패’ 단원 시절에 이윤택 감독에게 입은 성추행 피해 내용을 상세히 다루고 있었다. 이윤택 감독에 대한 최초의 미투였다. 이후 “같은 피해를 입었다.”는 연극인들이 줄줄이 나왔다.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입은 피해가 상당히 유사했다는 점이다. 이윤택 감독은 여성 단원들에게 안마를 해달라고 강제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신체 부위를 만지게 하거나 피해자들의 신체부위를 만지는 방식으로 강제추행을 했다. 일부 피해자들은 연극연습을 빌미로 강제추행 이상의 피해를 입기도 했다.

연일 각종 미디어가 들썩였다. 언론의 보도는 더욱더 집요해졌다. 그럴수록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불편해졌다. 한 가지 질문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어쩌고 있지?’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고통에 내가 함부로 접근해도 될까?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일까? 나는 고민했다. 피해자의 고백은 대체로 오랜 침묵 끝에 겨우 흘러나온 한 줌의 말인데, 그 말을 법률적으로 해석하는 순간 다시 상처를 줄 수도 있었다.

결국 나는 이윤택에 대한 고소를 돕기로 했다. 고소 의사를 밝힌 피해자들은 대략 스무 명 남짓이었다. 일회성 피해는 드물었고, 한 사람이 여러 번의 피해를 입었다. 여러 명의 피해자, 여러 건의 피해…. 이런 사건을 혼자 변호하기는 힘들었다. 다행히도 이들을 돕기로 뜻을 모아준 변호사들이 있었고, 변호인단이 꾸려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변호사는 의뢰인과 함께한다. 나는 하루 종일 그들과 함께였다.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연극 이야기를 하다가 가끔은 세상 이야기를 했다.“생년월일에서 일자 한 자리만 나랑 다르네요?”

“그 연극에 출연하셨던 거예요? 저 그 연극 보러 갔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진다. 그때는 피해의 겉면만이 아닌 속이 보이고, 알지 못했던 내용들도 속속 알게 된다.

이윤택 사건도 그랬다. 수많은 대화 속에서 내가 가장 분노했던 이유는 안마할 대상을 ‘선택’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부당한 요구를 단박에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처음부터 안마 대상에서 제외했다. 배역 하나가 소중한 사람, 즉 간절한 연극인의 처지를 자신의 권력으로 이용했다.

2018년 9월 10일, 이윤택에게 징역 6년이 선고되었다. 첫 미투 글이 게시되고 7개월 만, 제1심 재판이 시작된 지 5개월 만이었다. 2018년, 미투 운동으로 시작된 사건에 관한 최초의 판결이었다.

예술은 창조활동으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결국 인간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예술작품이 인간의 인권을 말살하고 범죄로 탄생한 것이라면 과연 이것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지 피고인에게 묻고 싶습니다. -법원에 제출한 변호사 의견서 중



검찰과 이윤택 모두 항소했다. 양쪽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했다는 뜻이다. 검찰은 1심의 판결이 너무 가볍다고 판단했고, 이윤택은 무겁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항소심에서 이윤택의 형량은 1년 더 높아졌고, 최종적으로 7년형을 선고받았다.

‘권력형 성폭력’은 정치계·법조계·문화예술계·학계·의료계와 같은 특정한 영역에서만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다. 비대칭적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지극히 보편적인 사건이다.

우리 사회에서 권력형 성폭력의 발생 원인은 꽤나 복합적이다. 가해자들이 자신의 권력이 성적 괴롭힘과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들이 오랜 시간 권력을 다지며 체화해 온 가부장적 의식 구조는, 자신의 행동이 어떠한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지 인식할 최소한의 능력조차 마비시킨다. 여기에 권력자의 비위에 맞추며 행위를 합리화해 주는 조력자, 침묵하는 방관자까지 더해지면 권력형 성폭력은 체계적으로 은폐되고 고착화된다. 체계화된 성폭력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장기간 지속되고 반복되며 피해 수준, 피해의 수가 예측 불가능해진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겪는 가해자의 위력과 폭력은 일상화되며, 피해자의 노동과 생존을 포함한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재판이 끝나도 그들의 삶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이윤택 사건은 연극인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움직였다. 그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는 피해자들이 오랫동안 묵혀온 목소리를 낼 수 있게 앞장섰다. 불평등하고 안전하지 못한 환경, 권력의 비대칭에서 오는 약자를 향한 폭력, 피해자의 권리 보호 장치의 현실적 부재를 지적하며 문화예술 종사자들이 더 나은 창작환경을 만들 수 있게 목소리를 높였다. 많은 예술가가 잘못된 관행과 병폐를 바로 잡기 위해 연대했다. 이런 자성적 노력이 피해자들을 하루라도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시킨다.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회복과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투 운동으로 온 세상이 뜨거웠던 2018년은 나에게도 뜨거웠던 해였다. 그해 1월 29일에는 현직 검사가 생방송 뉴스에 출연해, 검찰 간부의 강제추행과 그로 인한 불이익을 덤덤히 전했다. 미투 운동이 이렇게 뜨겁지 않았다면, 어떤 피해는 영원히 파묻혔을 것이다. 세상 모든 피해, 그리고 피해자는 균질하게 회복될 수 없다. 어떤 피해자는 피해를 잊기도 하고, 어떤 피해자는 피해를 마음속 어딘가에 못 본 척 구겨둔다. 어떤 피해는 잊히고, 어떤 피해는 멸각된다. 하지만 끄집어내고 싶은 피해가 있다면, 그것이 세상에 알리고 싶은 피해라면, 그 피해가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언제든 제대로 돕는 것이 나의 일이자 직업이다. 2018년은 나에게 그 사실을 명확히 알려준 해였다.

이윤택 사건뿐만 아니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 고은 시인과 최영미 시인 간의 사건에서도 나는 주저 없이 피해자의 편에 섰다.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왜 피해자를 위한 변론을 하게 되었냐고 묻는다. 그들은 나에게 거창한 답변을 기대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내 답변은 조촐하기 짝이 없다. 그저 그 사람들의 옆에서 그들의 삶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버텨낸 자들의 이야기


나는 나보다 앞선 세대를 살고, 여전히 왕성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선배들의 이야기가 언제나 흥미롭다. 컴퓨터가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에 경찰에서 이루어진 타자기 조사부터, 한 땀 한 땀 손으로 엮은 각종 수사와 재판 서류, 과거 법정의 분위기 등 선배들이 전해주는 젊은 날의 이야기는 나에게도 소중히 남는다. 특히 버텨낸 ‘언니’들의 이야기는 조용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내가 가장 오래 품는 이야기이다. 일터에 여성이 많지 않았던 시절, 모든 환경이 여성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시절의 척박한 환경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성희롱과 괴롭힘에 관한 인식조차 없었으므로 틀린 것이 틀린 게 아니었던 시절이 있었다.

최신영은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공무원이 되었다. 그는 안정된 직장을 꿈꾸었고, 그런 이유에서 공무원이 되었지만 사무실에서는 “최양”으로 통칭되었다. 최신영 또한 다른 남직원들처럼 똑같이 시험을 보고 공무원이 된 것인데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이가 단 하나도 없었다. 그 최신영은 몇 년 후 결혼했다. 그때부터는 ‘최양’이 아닌 ‘최여사’로 불렸다. 최양이건 최여사건 하는 일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남자 상사에게 커피를 타서 대령하는 것. 그것이 최신영의 ‘일’이었다.

당시 최신영은 아이를 낳고 모유 수유 중이었고, 돌도 되지 않은 아이를 두고 출퇴근하느라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극한까지 몰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이해받기는커녕 오히려 질책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최여사 젖 나왔어요!”

전화를 받은 한 남성 동료가 아주 큰 소리로 최신영에게 외쳤다. “전화 왔어요.”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젖 나왔어요.”라고 발음한 것이다. 모유 수유 중인 최신영을 희롱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하지만 이를 비판하지는 않고 다들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다음의 전화도, 그다음 다음의 전화도, 다른 남자 동료 모두 최신영에게 전화를 돌려줄 때 “젖 나왔어요.”라고 말했다.

그 척박한 상황이 하루아침에 급변하지는 않았다. 다만 느리게, 아주 조금씩 나아졌다. 그 시간을 최신영은 오롯이 견뎠다. 견디다 보니 이 이상하고 기괴한 문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겼고, 그들의 문제 제기로 견고한 문화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법률도 마찬가지였다. 더디지만 멈추어있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최신영이 당한 일에 이름이 붙는다. ‘성희롱’ 그리고 ‘직장 내 괴롭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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