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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보다 3

김범준, 우주먼지(지웅배), 이대한, 정영진 지음 | 알파미디어


과학을 보다 3: 지식과 흥미를 한 번에 채우는 기발하고 수상한 과학책

김범준 외 지음

알파미디어 / 2025년 2월 / 312쪽 / 19,800원





Part 1. 신비하고 경이로운 생명의 진화



판다의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은?


Q: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동물로 판다가 빠지지 않을 것 같은데요. 우리나라에서도 에버랜드에서 태어난 푸바오가 중국으로 가야 한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죠. 그런데 판다가 곰이 아니라 너구리라는 말이 있던데요. 이게 사실인가요? 그리고 왜 그렇게 판다는 대나무만 먹는 건가요? 그리고 푸바오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는데 중국으로 꼭 보내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A: 판다는 곰이 맞습니다. 판다가 곰이 아니라 너구리과에 속한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오해는 아마도 판다라는 이름을 가진 또 다른 동물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바로 레서판다(lesser panda)인데요. 푸바오는 정확히는 대왕판다(giant panda)입니다. 영화 <쿵푸 팬더>(2008)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푸가 대왕판다이고, 스승으로 나오는 시푸가 바로 레서판다입니다. 실제 레서판다의 모습을 보면 대왕판다 못지않게 귀여운 자태를 뽐내는데요. 생물학적 분류 체계상 이 레서판다가 예전에는 미국너구리과에 속한 동물이었습니다. 지금은 독립적으로 레서판다과로 분류하지만요. 이름이 같은 판다라서 대왕판다까지 이러한 오해를 받은 건데, 분명히 판다는 곰과에 속하는 동물이죠.

그렇다면 생물학적 분류 체계상 엄연히 다른 과에 속한 이 두 동물을 왜 판다라는 같은 이름으로 부를까요? 아마도 식성이 비슷해서일 거로 추정됩니다. 판다(panda)는 ‘폰야(ponya)’라는 네팔어에서 유래했는데 ‘대나무를 먹는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유럽인들이 대나무를 주로 먹는 작고 귀여운 동물을 처음으로 발견한 뒤, 현지인이 부르는 이름을 본떠서 판다라고 기록했는데, 나중에 같은 식성의 거대한 동물이 또 발견되자 크기에 따라 ‘더 작은’이라는 뜻의 레서(lesser)와 거대한(giant)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구분한 것이죠.

귀여운 외모와 몸짓으로 인해 대왕판다가 그저 온순한 동물일 거라 생각하지만, 맹수의 본성을 지닌 곰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습니다. 불안을 느끼거나 위협을 받으면 언제든지 공격성을 보일 수 있습니다. 식성 또한 원래는 다른 곰들처럼 육식과 채식을 가리지 않는 잡식동물이었죠. 소화기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소, 낙타, 사슴 같은 초식동물은 식물의 주성분인 셀룰로스를 소화하기 위해 3~4개의 위가 있습니다. 하지만 판다의 소화기관은 다른 육식동물처럼 간단히 위장과 짧은 소장으로만 이루어져 있죠. 그렇다면 판다는 어떤 이유로 대나무가 주식이 되었을까요?

대략 600만 년 전의 기후변화로 먹잇감이 부족해진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거로 추정됩니다. 처음에는 달리 먹을 것이 없어서 서식지 주변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대나무를 먹기 시작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이빨이나 턱의 구조, 소화기관 속의 미생물까지 대나무를 주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진화한 거죠. 그리고 이후에 다시 지구의 기후가 바뀌어 예전처럼 육식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지만 이미 고기 맛을 느끼는 미각 기능이 퇴화하여 대나무를 더 선호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실제로 판다의 유전자를 조사해봤더니 고기의 감칠맛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체내의 TAS1R 수용체가 420만 년 전에 퇴화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2021년 중국에서 동물 뼈에 붙은 살점을 뜯어먹는 야생 대왕판다의 모습이 여러 번 목격되었습니다. 사실 대왕판다가 대나무를 주로 먹고 더 좋아하긴 하지만 가끔 설치류나 곤충 따위를 잡아먹기도 합니다.

대왕판다의 소위 ‘여섯 번째 손가락’ 또는 ‘가짜 엄지’는 진화생물학의 대표적 상징으로 거론되곤 합니다. 대왕판다가 대나무를 먹는 모습을 보면 마치 사람처럼 대나무 줄기를 꼭 쥐고 이빨로 껍질을 벗겨내는데요. 대왕판다의 앞발 뼈를 살펴보면 마치 발가락이 6개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중 사람의 엄지 역할을 하는 하나가 원래 발가락을 만드는 뼈가 아닌데도 필요에 맞춰 길게 늘어나면서 대나무 줄기를 잘 잡을 수 있도록 진화했습니다.

푸바오를 중국으로 보내야 했던 이유는 전 세계 모든 대왕판다의 소유권이 중국에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모든 판다를 ‘대여’하는 형식으로만 해외에 내보내는데, 푸바오의 부모 역시 2014년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방한하면서 빌려준 대왕판다 아이바오와 러바오입니다. 물론 중국이 오로지 소유권만을 내세우면서 대왕판다를 데려가는 건 아닙니다. 멸종위기종인 관계로 새로 태어난 대왕판다가 만 4세가 되기 전에 중국 쓰촨성 자이언트판다보전연구센터로 옮겨 짝을 찾아 번식을 시키고 보호하겠다는 거죠. 현재 전 세계의 대왕판다 개체 수는 겨우 2,500마리가량이고 실제 야생 대왕판다는 1,800마리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수백만 년이 넘는 세월을 지구 위에서 공존했던 이 경이로운 생명체가 멸종 위기라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독특하게 진화한 동물은?


Q: 지금 지구상에 생존하는 동물 중에서 가장 독특하게 진화한 것은 어떤 종일까요? 만약 인간을 제외한다면 과학자들을 가장 놀라게 한 동물은 누구일까요?

A: 생물학자들을 가장 놀라게 한 독특한 동물을 꼽으라면, 오리너구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1700년대 후반 호주에서 오리너구리가 발견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유럽의 생물학자들은 이를 믿기 어려워했습니다. 누군가 서로 다른 동물들을 조합해 장난을 친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죠. 그럴 만도 했던 것이, 주둥이는 오리를, 꼬리는 비버를, 발은 수달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당시까지 모든 생물 분류학적 상식을 완전히 뒤흔드는 동물이 나타난 거죠.

심지어 젖을 먹여 새끼를 키우는 포유류인데도 새끼를 낳는 것이 아니라 알을 낳습니다. 젖꼭지가 없어서 젖은 복부에서 땀처럼 스며 나옵니다. 새끼가 알에서 태어나니까 엄마 뱃속에서 영양분을 받는 통로인 배꼽도 없죠. 수컷의 뒷발에는 강력한 독을 내뿜는 가시가 있으며, 이 독은 개도 죽일 만큼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심지어 갈색 털은 자외선 아래에서 청록색 빛이 났죠. 이후 확인해보니 인간에게는 2개뿐인 성염색체가 오리너구리에게는 10개나 있었습니다.

오리너구리는 단공류로 분류되는데요. 단공은 구멍이 하나라는 뜻으로, 쉽게 말해서 대·소변과 알이 한 구멍에서 나온다는 뜻입니다. 대개 다른 포유류는 항문과 요도, 새끼를 낳는 생식공이 다 따로 있거든요. 단공류가 과거에는 번성한 적이 있었으나 현재 발견되는 건 오리너구리 1종과 가시두더지 4종뿐입니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모든 생물은 공통 조상으로부터 진화계통학적으로 갈라져 나왔습니다. 과학적으로 엄밀한 분류는 아니지만, 척추동물이라고 하면 파충류, 포유류, 양서류와 같은 이름으로 구분해서 부르죠. 이들이 지금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지만 과거로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어느 시점에서는 같은 집단이었겠죠. 기나긴 세월이 흐르면서 커다란 진화적 흐름으로 서로 분기하는데, 그보다 한참 앞서서 샛길로 갈라진 종이 있는 겁니다. 이런 종은 큰 흐름으로 진화한 종들의 중간 정도의 특징, 달리 말하자면 예전 공통 조상과 더 비슷한 특징을 보일 수 있죠. 그래서 오리너구리에게는 포유류, 조류, 파충류의 특징이 모두 보이는 겁니다.

그런데 오리너구리가 특이하게 진화했다고 말하는 것은 부정확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포유류와 파충류를 굳이 따져보자면 둘의 공통 조상과 더 가까운 것은 파충류이고, 오리너구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포유류보다 앞서 갈라진 양서류도 알을 낳는 난생동물이고요. 따지고 보면 포유류가 조상에게는 없던 새로운 특징을 가진 동물로, 다시 말해 더 특이한 동물로 진화한 거죠. 조류처럼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몸에서 나오는 젖을 먹이는, 과거에는 없던 독특한 진화를 한 겁니다. 모유를 분비하는 유선(젖샘)은 피지선(기름샘)이 진화한 결과고, 피지선은 모공(털구멍)과 연결된 분비샘으로, 원래는 피부 보호를 위한 기름을 분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포유류의 조상에서 이 분비샘이 유선으로 발전한 거죠. 포유류는 모공으로 새끼에게 영양분을 전달하는 진화적 혁신을 일구어낸 겁니다.



Part 2.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



우리 몸의 원소들이 별에서 왔다고?


Q: 우주의 모든 것은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몸도 원소로 구성되었다는 이야기인데요. 태양이나 지구 같은 천체뿐만 아니라 돌이나 물 같은 무생물도 원소로 이루어졌고, 살아 움직이고 생각까지 하는 인간을 포함해 동물의 몸도 같은 원소로 이루어졌다니 정말 신기한데요. 그렇다면 우리 몸을 이루는 원소는 도대체 어디에서 왔고, 몇 종류나 되나요?

A: 빅뱅 직후 우주에서 탄생한 최초의 원자는 원자번호 1번인 수소였습니다. 양성자 1개와 전자 1개로 이루어진 가장 가볍고 간단한 구조이기 때문이죠. 또 수소는 우주 전체 질량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가장 풍부한 원소이죠. 수소(水素)라는 이름은 한자로 물의 구성 요소라는 뜻입니다. Hydrogen이라는 영어 명칭도 물을 뜻하는 그리스어 ‘hydro’와 ‘되다’라는 뜻의 접미사 ‘gen’이 합성된 것이죠. 물 분자의 화학식은 H2O로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가 결합한 결과이니까요. 그러니까 수소가 우주 최초의 원자이자 생명과 만물의 근원인 셈이죠. 끊임없이 에너지를 보내서 지구에 생명의 꽃을 피워낸 태양의 연료도 수소이고요.

태양 내부에서 수소 원자핵이 고온고압으로 핵융합하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냅니다. 핵융합 반응 이전의 수소 원자가 가진 질량의 합보다 이들이 융합해서 탄생하는 헬륨 원자의 질량이 더 작은데, 그 차이만큼의 질량이 에너지로 발산하는 거죠. 이런 원리를 방정식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E=mc2’입니다.

대략 138억 년 전에 빅뱅으로 우주가 팽창하기 시작하면서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인 쿼크(quark)와 전자(electron) 같은 렙톤(lepton)들이 생성됐습니다. 쿼크들이 결합하여 양성자와 중성자가 만들어지고, 뜨거웠던 우주의 열기가 점차 식어가면서 양성자와 중성자가 결합하여 중수소 원자핵과 헬륨 원자핵 역시 만들어지죠. 마침내 우주 온도가 약 3000℃까지 낮아지자 전자의 운동이 느려지면서 수소 원자핵과 헬륨 원자핵에 붙잡혀 비로소 전기적으로 중성인 원자가 탄생합니다. 그리고 원자번호가 낮은, 가벼운 원자들인 리튬과 베릴륨, 보론 등이 아주 조금씩 생성되기 시작합니다. 이런 개별 원자들이 다시 융합하면서 분자가 되고, 분자들은 다시 모여 짙은 우주 먼지와 가스를 형성하죠. 다시 그중에서 밀도가 높은 부분을 중심으로 점점 더 조밀해지다가 항성, 즉 별이 탄생합니다.

우주는 균일하게 팽창하는 것 같지만 극히 미세한 온도 차이에 따라 밀도가 높고 낮은 곳이 만들어집니다. 질량이 모일수록 더 큰 중력이 작용하면서 주변의 물질들이 뭉치기 시작하고, 이런 과정이 수억 년 계속되자 마침내 별들이 탄생합니다. 이렇게 탄생한 별들이 서로 끌어당기며 작은 은하를 이루고, 작은 은하들은 서로 충돌하고 합해지면서 커다란 은하가 되고 이들이 모여서 은하단이 형성됩니다. 별의 내부에서는 새로운 원소들이 만들어지죠. 원자번호가 낮은 탄소, 질소, 산소, 칼슘과 같은 원자는 비교적 작은 항성, 예를 들어 태양과 같은 별에서도 핵융합 과정을 통해 생성될 수 있습니다. 태양보다 큰 별에서는 더 큰 원자들도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별 내부에서 핵융합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원자는 철(Fe)까지죠. 우라늄처럼 원자번호가 큰 무거운 원자들은, 거대한 질량을 가진 항성이 생애 마지막에 초신성 폭발을 일으킬 때 발생하는 엄청난 에너지를 통해서만 합성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몸에는 꽤 많은 종류의 원소가 들어있습니다. 아주 조금 있는 원소까지 통틀어 수를 세면 대략 60여 종류가 검출됩니다. 이 중에서 상당수가 미량 원소로 불립니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으로 몸속에 머무르지 않고, 일시적으로 유입되는 원소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하지만 특정 기능이 있다고 알려진 필수 원소 역시 20여 종류가 넘으며 그중에서도 여섯 종류가 전체 질량의 98.5%를 차지합니다. 또 그 가운데서도 산소가 60% 이상을 차지하는 압도적 주인공입니다. 그럴 만한 게 우리 몸의 70%가 물로 구성되었는데, 물의 화학식이 H2O니까요. 게다가 산소의 원자량이 수소보다 16배나 더 크거든요. 그다음으로 탄소가 대략 20%, 수소가 10% 정도를 차지합니다.

그 외에도 단백질에 들어가는 질소, 뼈를 구성하는 칼슘, DNA, RNA에 중요한 원소인 인 등이 중요한 원소들이죠. 그 아래로도 꽤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 예를 들어 빈혈 증상이 나타나면 철분제를 먹듯이, 철도 중요합니다. 구리 역시 필수 원소인데, 철분이 우리 몸에 흡수되고 헤모글로빈을 합성하는 것을 도와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죠. 신경계에서는 소금을 통해 섭취하는 나트륨이 중요하고요. 이들은 중량으로 따지면 극히 적지만 우리 몸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원소들입니다.

수소는 우주가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던 원소입니다. 과학자들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수소가 그때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죠. 우리 몸에는 그 당시, 즉 138억 년 전에 만들어진 수소가 10%가량 들어 있습니다. 우리 몸의 구성 요소 중 하나가 우주의 역사만큼 나이가 든 거죠.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이 사실을 떠올리면서 우주와의 일체감을 한번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1억 년 전으로 돌아가면 인류가 다시 출현할까?


Q: 만약 생물 진화의 역사를 1억 년 전으로 되돌린 다음, 그때부터 다시 시간이 흐른다면 과연 호모 사피엔스가 탄생하고 현생인류처럼 고도의 문명을 이루는 과정이 반복될까요? 인류의 탄생에 어떤 소중한 의미가 깃들어 있다면 결국 진화의 마지막에는 필연적으로 우리가 존재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정말 궁금합니다.

A: 진화생물학에서 가장 핵심 키워드 중 하나를 꼽으라면 ‘우연과 필연’일 겁니다. 그 질문을 해결하려면 지구상 생물체의 진화 과정에서 우연과 필연 중 어느 쪽이 더 강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따져봐야겠죠. 만약 우연보다 필연이 더 강력하게 작용했다면 다시 현재의 지구 생태계와 비슷한 광경이 펼쳐지겠죠.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각 생물 개체가 아니라 유전자이며, 우리 인간 개개인 역시 생명 진화의 관점에서는 유전자를 보존하고 증식하기 위해 프로그램된 수단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도킨스는 자연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진화를 ‘눈먼 시계공’이 시계를 조립하는 과정에 비유합니다. 생물의 진화 과정은 숙련된 시계공이 설계도에 따라 정확하게 부품을 조립하는 것처럼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더듬어 부속을 끼워 맞추는 것처럼 변수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거죠.

리처드 도킨스와 생명체의 진화가 점진적이었는지, 단속적이었는지를 다투었던 진화생물학자가 스티븐 제이굴드 교수인데요. 그는 생명체들이 변이 없이 안정적으로 상당 기간을 살아가다가 특정한 시기에 급격하게 진화 과정을 겪는다는 ‘단속평형설’을 주장했죠. 그 방향 또한 진보가 아니라, 그러니까 더 좋게 발달하는 게 아니라 그저 다양성의 증가라고 말했습니다.

제이굴드 교수는 자신이 저술한 『원더풀 라이프』라는 책에서 이런 비유를 합니다. 디지털 음원이 나오기 전에 우리는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즐겼잖아요. 그는 “지구 생명 진화의 40억 년 역사를 카세트 테이프처럼 되감아서 다시 재생하면 인간을 포함해서 지금과 비슷한 생물들이 출현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사고실험을 하는데요. 그의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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