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본능
마이클 모리스 지음 | 부키
집단 본능
마이클 모리스 지음
부키 / 2025년 8월 / 452쪽 / 22,000원
1부 우리를 부족주의로 이끄는 3가지 본능
동료 본능, 많은 사람이 하면 나도 따라 한다
투르카나호 호모 에렉투스 발자국 화석의 비밀: 2007년 케냐 투르카나호 근처에서 수십 년 동안 작업해온 고고학자 잭 해리스는 오래된 생명의 흔적을 발견했다. 사람 발자국 97개가 발가락이 전부 보일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탄소 연대 측정 결과 놀랍게도 이 발자국들은 150만 년이나 냉동되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지금까지 발견된 인간의 발자국 중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이 화석화된 발자국들은 초기 석기 시대 내내 지구를 돌아다녔던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직립보행인)의 삶을 어렴풋이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활동을 하던 중에 남긴 발자국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방랑하던 무리가 지나가며 남긴 발자국이었을까? 목마른 호모 에렉투스 한 명이 여러 번 물로 뛰어들었던 걸까?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젊은 과학자들이 정밀한 디지털 측정 도구와 3D 모델링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석기 시대 발자국 주인들의 보행 타이밍과 속도는 물론 성별, 나이, 키까지 파악했다. 이 발자국들은 젊은 남성 무리가 먹이를 쫓는 사냥꾼처럼 호숫가를 뛰어 이동했음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이 모든 증거를 종합하면 사냥꾼 무리가 영양을 뒤쫓았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고고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 거주지에서 영양 뼈가 발견된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어떤 방법으로 영양을 손에 넣었는지는 전혀 몰랐다. 영양은 아주 작은 소리에도 놀라서 시속 80킬로미터로 질주한다. 우사인 볼트도 따라잡을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 칼라하리사막의 산(San)족은 “끈질긴 사냥”이라는 기술로 영양을 쫓는다. 사냥꾼 몇 명이 동물 무리에서 한 마리를 분리한 뒤 쫓고, 추적해 영양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몰고 간다(영양은 마라토너가 아니라 단거리 선수로 진화했다). 이 사냥법의 핵심은 한 가지 목표물을 두고 협력하는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 같은 초기 인류도 이런 방식으로 협력해 영양을 사냥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고고학 증거도 제시되었다.
이후 발견된 유적지들에서 고고학자들은 사냥뿐 아니라 채집에서도 협력 활동의 힌트를 발견했다. 결국 호모 에렉투스는 협동하며 집단생활을 했던 최초의 사람족이었고, 이런 조율된 집단은 부족 생활로 향하는 중요한 단계였다. 곧 마음을 나누고 맞물려 행동하는 것을 통해 호모 에렉투스 집단은 더 효율적으로 먹이를 구했으며 협동 작업으로 연대감을 형성했다. 그들의 진화 돌파구는 직립보행이 아니라 팀을 이룬 활동이었다. 그들의 위대한 혁신은 주먹도끼가 아니라 사냥대, 채집대, 조리팀이었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이었다.
동료 본능, 학습과 모방과 순응으로 초기 인류의 진화를 주도하다: 호모 에렉투스가 이룬 획기적 발전은 부족 심리 체계 중에서 첫 번째 본능인 “동료 본능”에서 주로 기인한다. 이는 다른 사람들의 학습된 반응, 그중에서도 다수의 타인이 공유하는 습성을 모방하기 위한 적응이다. 이 뇌 시스템이 자리를 잡자 초기 인류는 무리 속 다른 사람들이 사냥을 하고, 식물을 채집하고, 포식자를 피하고, 짝을 찾는 방식 등을 인코딩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들은 이런 코드들을 따르려는 충동을 느꼈고, 사냥 등의 활동을 함께할 동료가 옆에 있을 때는 특히 더 그랬다. 먹이를 찾거나 자신을 방어하는 것과 같은 생존 관련 과제에서 집단으로 작업하면 이익은 커지고 위험은 낮아진다. 동료 본능은 초기 인류가 협동 작업의 보상을 얻는 데 도움이 되었다.
동료 코드의 발전은 또 인간의 경험을 근본적으로 더 사회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동료 코드는 집단의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우리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특정 상황에서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것, 정상적으로 행동하는 것, 정상적으로 말하는 것에 관해 무의식이 우리 곁에서 끊임없이 암시한다. 동료 코드는 뇌의 연상 엔진 덕분에 관련 상황이 되면 자동으로 나타난다. 미국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카메라 앞에서 웃는 반응이 대개 인코딩되어 있을 것이다. 굳이 웃으려고 애쓸 필요 없이 자동으로 웃게 되며 단체 사진을 찍을 때는 더 그렇다. 문화 코드를 지키면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다. 반면 러시아의 문화 코드는 다르다. 카메라 앞에서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료들에 대한 관심, 마음 읽기, 관찰을 통한 학습, 순응하려는 동기 등 동료 본능의 심리 과정들은 인류 문화의 토대인데 저평가되고 있다. 우리는 각자가 속한 문화 공동체별로 동료 코드들을 내면화하며, 특정 상황에 맞닥뜨리면 이 코드들이 작동해 우리를 사회적으로 안전한 행동으로 이끈다. 사람들이 교회에 가면 헬스클럽에서와 다르게 행동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하지만 동료 본능이 독창적이거나 최적의 선택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암호화폐 투자가 갑자기 불타올랐다가 식는 것, 뱅크 런이 들불처럼 번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독립적인 이성적 행위자가 아니라 동료 패턴을 따르게끔 배선된 부족적 생물이다.
일반적으로 동료 규범과 순응성은 변화의 장애물로 여겨지지만 잘 활용하면 체인지 메이커의 비밀 무기가 될 수 있다. 동료 코드를 촉발하면 팀, 조직, 나아가 사회 전체의 변화에 불을 붙일 수 있다.
영웅 본능,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기
이타주의와 관용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2012년, 시베리아의 11살 소년이 북극해가 내려다보이는 얼어붙은 절벽을 오르던 중 섬뜩한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툰드라에 묻혀 보존되어 있던 매머드의 다리였다. 발굴이 끝나자 과학자들은 이 거대한 사체가 인간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임을 확인했다. 눈구멍, 갈비뼈, 턱에 돌로 얻어맞은 흔적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몸통 아래쪽에서 던진 돌창에 찔려 광대뼈에 구멍이 나 있었다. 날카롭고 견고한 창을 아주 가까이에서 던진 것이 틀림없었다.
창을 던진 사람은 약 4미터 높이 매머드의 바로 눈앞에서 일격을 날렸다. 선두에 선 그 사냥꾼은 목숨을 걸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냥감이 힘이 빠질 때까지 안전한 거리를 유지한다. 하지만 모두가 안전하게만 행동하려 든다면 결국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주인공 사냥꾼의 영웅적 행동은 인간 심리의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이는 영양을 쫓을 때 협력했던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단순히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팀을 위해 희생한 것이다.
이처럼 용맹한 사냥, 정교한 도구 제작, 은신처 건설, 병약자 돌보기 등 개인이 집단을 위해 희생한 흔적이 약 50만 년 전의 화석 기록에 남아 있다. 새로운 종인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곧 하이델베르크인이 등장한 시기다. 오늘날의 우리와 키가 거의 비슷하고 뇌의 크기는 90%인 그들은 먹이 사슬의 최상위로 올라섰다. 1994년에 독일 쇠닝겐에서 이들의 유물이 나왔다. 대형 사냥감들이 도살된 뼈 무더기 근처에서 정교하게 제작된 투척용 창들이 발견되었다. 조사 결과 사냥감은 30만 년 전의 야생마, 코끼리, 들소였다. 학자들은 사냥꾼들이 한 무리에 필요한 식량보다 훨씬 큰 규모로 사냥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인근 무리들을 하나로 묶는 씨족 수준의 협력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하이델베르크인의 이런 사회적 혁신은 내가 “영웅 본능”이라 부르는 인간 심리의 한 측면을 반영한다. 동료 본능이 집단 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인코딩해 순응을 유도하는 반면, 영웅 본능은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하는 일을 인코딩해 그와 비슷하게 기여하고 싶은 열망을 일으킨다. 이 조상들은 자기 집단에 기여하려면 구성원들이 어떤 행동을 칭찬하는지, 반대로 어떤 행동을 거부하고 경멸하는지 알아차려야 한다. 행동과학자들은 이런 평가적 사회 규범을 “이상(ideal)”, “준거”, “명령적 규범”이라고 하는데 간단히 말해 “영웅 코드”다. 영웅 코드는 문화 공동체에서 존경받는 구성원들이 보인 모범에서 인코딩된 미덕의 이미지로, 비슷한 존경을 얻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을 틀 짓는다.
진화론에서 이타주의는 오랜 수수께끼였다. 자연선택은 “가장 착한 개체(the nicest)”가 아니라 “가장 적합한 개체(the fittest)”의 생존을 선호한다. 그런데 관용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을까? 찰스 다윈 역시 부족을 위해 죽음을 감수하는 “고귀한 야만인”이 그런 친사회적 특성을 어떻게 후대에 전할 수 있었는지 알아내려고 고심했다. 결국 이론가들은 평판을 중시하는 종에서는 친사회성(prosociality)이 보상받는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의 행동을 평가하고, 그 평가를 서로 공유하고, 평판에 따라 남들을 대우한다면 친사회성은 번식 전망에 도움이 되어 선택될 것이다.
석기 시대 조상들도 평판을 중시했을까: 그런데 평판 중시라는 것으로 석기 시대부터 시작된 친사회성을 설명할 수 있을까? 요즘 사람들이 평판에 신경 쓰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인정과 존경을 얻으려고 공동체에 봉사하는 직책에 자원한다. 자기 분야에서 이름을 알리기 위해 애쓰면 직업적인 성공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 여긴다. 결국 평판 중시는 처음부터 인간 본성의 일부였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점차 밝혀지고 있다.
공동체가 수십 명 무리에서 수백 명 규모 씨족으로 확장되면 개개인을 관찰하거나 일일이 물어보면서 배우기가 어려워진다. 가장 사회적 지위가 높은 구성원들의 행동에 집중하는 것이 편리한 지름길이다. 높은 지위를 가진 개인은 공동체가 높이 평가하는 자질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므로 우리는 그 본보기를 통해 배울 수 있다. 이러한 개인은 대중에게 인정받는 길을 보여주는 표지판이다.
영웅 본능은 우리 조상들의 부족 생활에 새로운 차원을 가져왔다. 단순히 동료를 통해 사회 학습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영웅을 통한 학습(지위가 높은 구성원에 대한 관심과 모방)이 이루어졌다. 그저 정상적으로 행동하려는 동기에 규범적으로 행동하려는 동기가 더해졌다. 구성원들은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면서 집단의 선에 기여하는 모범 방식을 찾게 되었다. 그 결과 돌창 같은 새로운 도구, 대규모 사냥과 은신처 건설 같은 새로운 관행이 생겨났다. 이로써 더 큰 집단에서도 협력이 가능해졌고, 하이델베르크인은 이전 인류가 누렸던 것보다 더 사회적이고 정교하고 안전한 생활방식을 갖게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영웅 본능은 공동체를 위한 강력한 힘으로 남아 있다. 기술을 습득하고, 이상을 지키고, 자신을 차별화하려는 열망에 동기를 부여한다. 날마다 자기 이익을 희생할 수는 없지만 “영혼이 움직일 때면” 떨치고 일어나 영웅처럼 행동한다.
부족 상징, 영웅 본능을 촉발하는 방법: 본래 “아이콘(icon)”은 신자들에게 영적 상태를 상기시키는 종교 그림과 성상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아이콘이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너무 강하면 숭배자들은 아이콘을 신이나 성인처럼 공경하기도 한다. 기독교의 십자가는 희생이라는 신앙의 이상과 관련된 아이콘이다. 프랑스의 한 마을에서 이루어진 현장 연구에서는 행인들을 멈춰 세우고 장기 기증자 등록을 요청했는데, 이때 요청하는 사람이 십자가 목걸이를 했을 경우 등록 가능성이 15% 높았다.
국가 아이콘도 비슷한 방식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수 세기 동안 군인들은 깃발을 따라 전장에 나갔고, 죽을 때까지 국기를 수호하는 일이 많았다. 오늘날에도 미국인은 국기에 대해 충성을 맹세한다. 깃발은 전장에서 애국심을 촉발하고, 미국 교실이나 법정에 걸린 성조기는 시민적 이상을 불러일으킨다. 동등한 별들(50개 주를 뜻한다)과 줄무늬들(독립 당시 연방에 가입한 13개 연방 주를 뜻한다)은 평등주의 이상을 상징한다.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연설을 했을 때 바랐던 것처럼 성조기는 미국인들, 특히 자신을 국가와 강하게 동일시하는 사람들에게 평등주의 개념을 활성화하고 포용적인 선택을 하도록 북돋운다.
상징이 집단 정체성과 이상을 촉발하면 우리는 세상을 “우리” 대 “그들”의 관점에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는 우선 평가 차원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팬들은 자기 팀의 기량에 감탄하고 상대 팀의 반칙에 혐오감을 느낀다. 한편 상징은 친사회적 행동을 유도하기도 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 팬들 대상 연구에서 조깅하는 사람으로 가장한 연구원이 넘어져서 발목을 움켜잡았다. 그가 벌 로고가 새겨진 맨체스터 셔츠를 입었을 때 팬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더 많은 도움을 주었다. “우리” 중 한 사람을 도우려는 충동은 “그들” 중 한 명이나 소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을 도우려는 충동보다 강력하다.
조상 본능, 전통을 배우고 잇고 지키는 것의 이로움
선사 시대 동굴 벽화가 알려주는 숨은 의미: 프랑스 남부 론강 지류인 아르데슈강에는 30미터 높이의 자연석 아치인 퐁다르크가 우뚝 솟아 있다. 1994년 공원 관리인인 장마리 쇼베는 동굴 탐험가 2명을 이끌고 퐁다르크 위 절벽을 올랐다. 곡괭이로 구멍을 넓히고 안으로 기어들어 간 그들은 좁은 동굴을 발견했다. 동굴은 30미터 높이의 움푹 들어간 공간으로 이어졌다. 탐험가 엘리엣 브루넬 데샹이 헤드램프를 돌려 멀리 있는 벽을 비추자 매머드의 놀라운 형상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이어 손자국과 더 많은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소리쳤다. “그들이 여기 있었어요!”
“그들”은 선사 시대 인류를 뜻했다.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쇼베동굴의 그림 대부분은 약 3만 6,000년 전 것이었다. 이전까지 알려진 모든 동굴 벽화보다 두 배나 오래된 것이었다. 선사시대에 그들은 횃불에서 숯을 떼어내 백악질의 하얀 벽에 경외감을 일으키는 계곡의 동물들을 스케치했다. 마침내 더 안쪽 공간에 도달하자 뿔을 서로 부딪치는 코뿔소, 신나게 뛰어다니는 말, 주위를 맴도는 사자들을 경계하는 오록스 등 동물의 행동을 잘 이해해 표현해낸 벽화를 그렸다.
고고학자들은 쇼베동굴의 인간 흔적을 조사해 그곳이 거주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일부 고인류학자들은 초기 주술사들이 자신들이 숭배한 애니미즘 정령들과 교감했던 신령스러운 장소라고 추측한다. 이 동굴 벽화는 몇 년에 걸쳐 확장되고 기법이 더 복잡해졌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난 산사태가 일어나 암석이 입구를 막아버리는 바람에 동굴과 의식용 그림들이 파묻히고 말았다.
그런데 6,000년 뒤 이 지역을 뒤흔든 또 다른 지진이 아르데슈 절벽의 모습을 다시 바꾸어놓았다. 지진으로 동굴 입구가 다시 드러나자 당시 계곡 거주자들도 절벽을 올라 탐험에 나섰다. 좁은 통로를 간신히 통과한 그들은 경이로운 석회석 공간에 도달했다. 곧이어 무시무시한 동물들의 이미지가 그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 후기 석기 시대 인간들은 동굴에 머물면서 그림을 연구해 스타일을 익힌 다음 같은 스타일로 기존 벽화에 덧붙이거나 새로운 그림을 그리면서 프로젝트를 계승했다. 음영, 에칭 기법을 사용하고 붉은 황토로 색을 입혔다. 그러다 또다시 산사태가 일어나 절벽이 무너져 3만 년 뒤 쇼베 일행이 들어갈 때까지 동굴은 타임캡슐처럼 봉인되었다.
쇼베동굴에 두 번째로 그려진 그림은 어떤 의미에서는 최초의 벽화보다 더 흥미롭다. 어둡고 외딴 동굴에서 누가 그렸는지 모를 무시무시한 동물들의 고대 이미지와 맞닥뜨린 후기 석기 시대 사람들은 도망치는 대신 경건한 반응을 보였다. 기법을 면밀히 관찰하고 모방해 이 벽화를 동물 이웃들에게 헌정하는 형태로 확장했다. 과거의 방식을 유지하려는 충동, 심지어 불가사의하고 비현실적인 활동까지 고수하려는 이런 충동은 인간 심리의 새로운 층위를 말해준다. 동료 본능의 순응성이나 영웅 본능의 친사회성과는 다른 층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