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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들을 의심하는 100가지 철학

오가와 히토시 지음 | 이든서재


당연한 것들을 의심하는 100가지 철학

오가와 히토시 지음

이든서재 / 2025년 8월 / 272쪽 / 18,800원





Part Ⅰ. 당연함을 의심하는 50가지 방법



기존과 다른 사실을 제시하라 _ 소크라테스의 ‘문답법’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기원전 470년경~기원전 399년경)는 당연함을 의심함으로써 지금까지 없었던 철학 스타일을 확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방식이 바로 ‘문답법’이다. 문답법이란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져 상대가 직접 답을 도출해 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겉으로 보면 상대방의 주장에 끊임없이 반박하는 듯 보이므로 ‘논박술’이라고도 불린다.

구체적으로는 상대방이 어떤 의견을 제시하면 소크라테스는 그 의견이 가설에 불과하다며 반박한다. 이를 위해 상대방 의견의 전제가 되는 근거 자체를 뒤집어 버릴 만한 다른 사실을 제시하여 이를 인정하게 만든다. 그러면 상대방은 자신의 의견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식으로 대화를 반복하다 보면 상대방이 스스로 진리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소 교활해 보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대화이므로 이 과정에는 자신의 주장뿐 아니라 상대의 의견도 경청하게 된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의견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간에 열린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 방식을 자신의 머릿속에서 구현할 수만 있다면 항상 스스로 당연함을 의심할 수 있게 된다. 즉, 머릿속의 소크라테스에게 가설의 전제를 뒤엎을 만한 역설적인 사실을 찾게 하고, 그것을 또 다른 근거로 제시하면 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 이렇게 활용해 보자>

Q. ‘역경은 고통스럽다’는 당연한 사실을 의심해 보시오.

A. 역경은 당연히 고통스럽다. 여기서 머릿속의 소크라테스에게 전제를 뒤엎을 만한 다른 사례를 제시하게 한다. 예컨대 ‘역경’이란 힘든 일이 일어나는 상황을 가리키는데, 인간은 역경을 극복해야만 성장할 수 있으며, 달성의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제시해 보자. 그렇게 생각해 보면, 역경이 반드시 고통스럽기만 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역경을 극복한 후에 얻을 수 있는 성장이나 기쁨으로 눈을 돌린다면 꼭 고통만 따르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굳이 힘든 일에 도전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세상을 거꾸로 보라 _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우리는 일상에서 사물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근대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1804)는 “우리는 우선 감성을 통해 대상을 인식하지만, 그때 그 모습 그대로를 인식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물을 인식할 때 시각이나 청각과 같은 오감을 활용하는데, 인간의 오감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그 한계의 범위 내에서만 사물을 인식하고 있다는 말이다. 놀라운 점은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사물이 우리에게 맞춰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는 지동설을 주창한 코페르니쿠스에게 빗대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불린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눈앞의 고양이를 ‘야옹’ 하고 우는 사족보행의 꼬리가 긴 작은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렇게 인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고양이가 특수한 초음파를 뿜어내거나, 보이지 않는 날개 같은 것을 가졌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적 견해를 의식하면 사물을 반대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인간 관점에서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고 있는 대상의 관점에서 인식하는 것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오감을 초월한 능력으로 대상을 상상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실제로는 인간으로서 인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상상해 본다는 말이다.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이렇게 활용해 보자>

Q. 오감을 초월한 페트병의 실제 모습을 상상해 보시오.

A. 우리는 일반적으로 페트병을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크기의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라고 인식한다. 아마 냄새도 없고 소리도 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가진 오감의 한계다. 사실 페트병의 색깔은 투명하지 않고 빨간색이나 초록색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다. 인간의 시각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후각이 보통의 1만 배 정도로 발달했다면 강력한 화학물질 냄새를 풍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면 어떠한 특징도 없는 물병조차 다른 물건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 결과, 색이나 모양, 또는 활용 방법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가능성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가짜’라고 의심해 보자 _ 플라톤의 ‘이데아’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기원전 427년~기원전 347년)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가짜’라고 의심했다. 모든 것은 ‘이데아’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데아란 무엇일까? 원래 이데아는 사물의 모습이나 형태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형태라고 해도 우리의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닌, 마음의 눈으로만 통찰할 수 있는 사물의 참모습, 또는 사물의 원형을 가리킨다. 시각이나 청각 등 감각을 통해 인식되는 것은 결국 사라져간다. 그러나 이데아는 영원불멸한 존재다. 그렇다면 감각을 통해서는 인식할 수 없는 사물의 참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육체와 분리되어, 영혼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다. 결국, 진심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말이다.

플라톤은 이렇게 이데아를 통해 구성되는 영원불멸한 세계와 감각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현실 세계를 구분했다. 전자를 ‘이데아계’, 후자를 ‘현상계’라고 한다. 버티지 못하고 변하는 현상계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이데아계를 모범으로 삼아 존재하는 셈이다.

이 이데아론 때문에 플라톤의 세계관은 이상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는 아무래도 눈앞에 있는 현실에 시선을 빼앗기기 쉽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물의 본질, 진실을 알고 싶다면 이상을 좇아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보는 모든 것이 가짜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플라톤의 이데아, 이렇게 활용해 보자>

Q. 이 세상 모든 것이 가짜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해 보시오.

A. 이 세상 모든 것이 가짜라면 어딘가 다른 곳에 진실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심지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세상이 있을 수도 있다. 이 사실을 토대로 모든 사물을 발전시킬 수 있는 관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여기 있음에 만족하고 있지만, 앞으로 이상적인 상태로 바뀔 수도 있다. 플라톤이 이데아론을 주장한 것도 이를 통해 인간이 이상을 추구하며 살아가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는 것을 반드시 그러한 눈으로 다시 보기를 바란다.

‘모든 일이 편견 탓’이라고 생각해 보자 _ 베이컨의 ‘아이돌’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은 관찰과 실험을 중시하여 ‘경험론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관찰과 실험을 할 때는 우선 편견이나 선입견을 내려놓아야 한다. 베이컨은 이 같은 편견과 선입견을 ‘아이돌(idol, 우상)’이라고 부르며, 이를 네 가지로 분류하였다.

첫 번째는 ‘종족의 아이돌’이다. 이는 인간이라는 종족 고유의 아이돌로, 감정이나 감각을 통해 지성을 깨닫는다는 점에서 생겨났다. 인간은 결국 착각하는 생물이다.두 번째는 ‘동굴의 아이돌’이다. 이는 마치 좁은 동굴 속에서만 생활해 제한적으로 생겨난 편향 오류를 말한다. 한 사람이 받은 교육, 영향을 받은 인물, 읽어온 책 등으로 인해 편견에 빠진다.세 번째는 ‘시장의 아이돌’이다. 이는 언어로 인해 생겨나는 착각이다. 사람은 말의 힘에 약하다. 마치 시장에서 전해 들은 소문을 그대로 믿는 것은 물론이고, 현대는 인터넷상에 떠돌아다니는 SNS 정보 등을 믿는 것이 전형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네 번째는 ‘극장의 아이돌’이다. 이는 권위나 전통을 맹종함으로써 생겨나는 착각이다. 예를 들어 그 당시에는 연극에 강한 영향을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현대라면 영화나 드라마에 해당할 것이다.

자신의 생각은 모두 어떤 아이돌을 통해 생겨난 것이라고 인식함으로써 비로소 자신 안에 존재하는 편견을 깨달을 수 있다. 반드시 네 가지 아이돌로 시험해 보기 바란다.

<베이컨의 아이돌, 이렇게 활용해 보자>

Q. 자신의 가족관은 어떤 아이돌로부터 영향받아 형성되었는지 생각해 보시오.

A. 이 같은 질문을 받으면 자신의 가족관에도 아이돌이 숨어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내가 자라난 가정에서 받은 영향은 동굴의 아이돌인 것 같다. 우리 집은 끊임없이 다툼이 일어난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다. 나에게 ‘가족’이라는 존재도 늘 갈등이 일어나는 관계라는 생각이 강하다.

또한 현대에는 시장의 아이돌에 해당하는 인터넷상에도 가족에 관한 정보가 넘친다. 더욱이 극장의 아이돌로 인해 가족의 모습을 그려낸 드라마나 만화 등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편견에 과도하게 휘둘리지 말고, 가족의 본질을 제대로 인지해야 한다.

‘불가능은 없다’라고 생각해 보자 _ 헤겔의 ‘변증법’


어떤 사물이건 문제가 생긴다. 그때 우리는 일단 문제를 떨쳐 버리려고 하기 쉽다. 그 방법이 가장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를 제거하기만 한다면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렵다. 근대 독일의 철학자인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의 ‘변증법’은 문제가 생겼을 때 오히려 문제를 수용하고 발전시키려는 논리다.

구체적으로는 ‘정(正)→반(反)→합(合)’ 또는 독일어로 ‘테제(these)→안티테제(antithese)→진테제(synthese)’라고 표현한다. 즉, 어떤 사물(테제)에 대해 모순되는 일, 또는 문제(안티테제)가 존재한다면, 이 부분을 발전시켜 모순과 문제를 극복하고 더 완벽하게 발전된 해결법(진테제)을 탄생시킨다. 이 일련의 과정을 ‘지양’ 또는 독일어로 ‘아우프헤벤(aufheben)’이라고 말한다.

어떤 문제이건 변증법을 사용하면 해결할 수 있으며, 이른바 이 세상에 불가능이란 것이 없어진다. 실제로는 어려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변증법을 활용할 때 중요한 점은 정반대의 발상을 해 보는 것이다.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으니 오히려 좋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부정을 긍정으로 전환하여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꼭 혁신을 일으키기 위한 사상법으로 활용해 보기를 바란다.

<헤겔의 변증법, 이렇게 활용해 보자>

Q. 비주류 서비스로 돈을 버는 방법을 고안해 보시오.

A. 이 경우에는 이미 많이 알려진 서비스가 ‘정’이고, 알려지지 않은 서비스가 ‘반’이 된다. 이럴 때는 알려지지 않은 서비스를 빨리 접는다거나, 어떻게든 유명하게 만드는 방법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결국 문제를 빨리 떨쳐 버리려는 태도다. 널리 알리려는 방법은 언뜻 보기에는 좋은 해결책처럼 보이지만, 그것만이 옳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거기서 변증법적 반전 발상을 활용하여 비주류이기 때문에 더욱 희소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른바 ‘틈새시장’을 노리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단가를 올리는 방법 등을 활용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합(合)’에 해당하며, 발전성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근저에 무엇인가 큰 원리가 있다’라고 생각해 보자 _ 마르크스의 ‘하부구조’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카를 마르크스(1818~1883)는 과학적 사회주의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그 근저에는 경제활동의 발전을 통해 역사가 진전된다는 유물론적 역사관, 또는 ‘사적 유물론’으로 불리는 마르크스의 독자적인 역사관이 존재한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사상과 법, 정치 제도 등을 ‘상부구조(superstructure)’, 생산수단 및 생산활동 등의 경제활동을 ‘하부구조(infrastructure)’라고 부르며 구별하였고, 상부구조는 하부구조를 통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상과 정치 같은 제도가 있고 난 후 비로소 어떤 경제활동을 할지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마르크스는 정반대의 주장을 펼쳤다. 오히려 경제활동을 토대로 모든 사회제도의 내용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는 생산성이 향상되면 제도가 이를 쫓아오지 못하므로, 그 모순을 원동력으로 삼아 역사가 다음 단계로 전진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구체적으로 원시 공산제,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분석했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혁명으로 인해 무너지고, 생산력에 응답하는 사회로 이행해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 사회가 바로 능력에 맞게 일하고 노동에 맞게 분배하는 사회주의였다.

이처럼 세상을 움직이는 근저에 무언가 커다란 원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해 보면,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인식하게 될지도 모른다.

<마르크스의 하부구조, 이렇게 활용해 보자>

Q.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을 움직이는 커다란 원리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오.

A. 이는 엄밀히 말하자면 마르크스가 말했던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 사고법을 응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속한 조직, 예컨대 회사라고 해보자. 이 회사의 성장 배경에는 무엇이 존재할까? 이때 회사의 성장은 상부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세히 분석해 보면 그 배경에는 창업 이후 지속하여 온 도전 정신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도전 정신이야말로 하부구조에 해당할 것이다. 사풍이나 기업문화 같은 것들이 알고 보면 하부구조에 속할 것 같다.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고 생각해 보자 _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1905~1980)는 “인간은 결코 예정된 본질에 지배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실존적 존재”라고 말했다. 사르트르는 이를 “실존은 본질보다 앞선다.”라고 표현했다. ‘실존’은 현재진행형의 자기 존재를 일컫는 것이고, ‘본질’은 예정된 운명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사르트르는 이를 종이를 자르는 칼에 빗대어 설명했다. 종이를 자르는 칼은 정해진 용도가 한정되어 있다. 이른바 정해진 운명이 있는 것과 같다. 이에 비해 인간은 ‘실존이 본질을 앞서는’ 존재다. 즉,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지만, 점차 그 역할이 변화한다. 심지어 그 역할은 스스로 만들어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인간은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일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변하고자 도전할 수는 있다. 눈앞에 가로막힌 벽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 벽에 부딪히고 넘어서고자 노력할 수 있지 않은가. 그 결과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사르트르는 그런 적극적인 태도를 ‘앙가주망(engagement, 참여, 협의로는 학자나 예술가가 사회에 참여하는 것, 광의로는 인간이 사회, 정치 문제에 관계하고 참여하면서, 자유롭게 자기의 실존을 성취하는 일)’이라고 불렀다. 실존적인 존재인 인간은 앙가주망을 통해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이렇게 활용해 보자>

Q. 전쟁이 끝나지 않는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을까?

A. 분명 전쟁은 언제가 되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의 전쟁이 끝나면 지구상 어딘가에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다. 그런데 나약한 인간이 이런 세상을 바꾸겠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과감하게 반전 운동에 참여했다. 이야말로 벽을 넘으려 덤벼드는 앙가주망적 태도가 아닐까? 우리도 기죽지 말고 우리 나름대로 반전 운동에 참여한다면, 세상은 아주 조금이라도 바뀌어 갈 것이다. 전쟁은 없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끝나지 않는 전쟁도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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