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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의 팡세

블레즈 파스칼 지음 | 메이트북스


파스칼의 팡세

블레즈 파스칼 지음

메이트북스 / 2025년 7월 / 220쪽 / 12,000원





1장 인간은 누구보다 비참하고, 그래서 덧없다



■ 모두가 차례를 기다리는 형장의 사슬이다


사슬에 묶인 수많은 사람들을 상상해보라.

그들은 모두 사형 선고를 받았고, 매일 몇몇이 다른 이들의 눈앞에서 차례로 참수를 당한다. 남은 사람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자신도 곧 같은 운명을 맞이하리라는 것을 절망 속에 받아들인다. 그들은 슬픔에 잠겨 아무런 희망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말없이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이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상태다.



■ 인간의 행복과 불행, 모두 비참함을 증언한다


솔로몬과 욥, 이 두 사람은 인간의 비참함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고, 가장 분명히 말한 이들이다. 솔로몬은 세상의 온갖 쾌락을 누린 끝에 그것이 얼마나 헛된지를 깨달았다.

욥은 극한의 고통 속에서 불행의 실체를 뼈저리게 체험했다.

솔로몬은 가장 행복한 자였고, 욥은 가장 불행한 자였다.

그러나 그들 모두, 인간이 얼마나 비참한 존재인지를 증언했다.



■ 사람은 모두 자기 위에 누구도 두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과 행복, 생명을 남의 것보다 더 소중히 여긴다.

이 얼마나 뿌리 깊은 착각인가! 바로 이 착각 때문에,

세상에는 자신을 타인보다 낮게 두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하나의 전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하나의 ‘전부’다.

자신이 죽는 순간,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이 일시에 함께 사라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세상의 모든 일 앞에서 언제나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을 인간의 관점이 아닌, 자연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 인간은 불안, 권태, 그리고 근심 속에 있다


우리는 애착을 가졌던 일을 그만두었을 때, 그 자리에 권태가 스며드는 것을 경험한다.

예컨대 한 사람이 가정에서 나름 평온하게 지내다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거나,

며칠 동안 유쾌하게 시간을 보낸 뒤 다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는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허무와 비참함을 갑작스레 마주하게 된다.

이렇듯 인간의 삶은 언제나 불안과 권태, 그리고 근심 속에 놓여 있다.

이런 일은 결코 드물지 않다.



■ 생각을 멈춰야 행복할 수 있다


인간은 죽음과 비참함, 그리고 무지를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없다.

그래서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선택했다.



■ 세상을 바꾼 건 아주 작은 것들이었다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원인과 결과를 들여다보라. 그 원인은 대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어떤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실로 끔찍하다.사람들이 알아차릴 수도 없는 미세한 ‘어떤 것’이 온 땅과 군주들, 군대와 세계를 뒤흔들기도 한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세상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 우리와 영원 사이엔 연약한 생명 하나뿐이다


우리와 천국 혹은 우리와 지옥 사이에는

단지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생명 하나만이 있을 뿐이다.

인간의 오만은 비참함을 앗아가는 괴물이다

인간은 어떤 자리에 자신을 두어야 하는지 모른다.

인간은 분명 길을 잃었고, 본래 자리에서 떨어져 그 자리를 되찾을 수 없다.

헤아릴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불안하게 여기저기를 찾아 헤매지만, 아무 성과도 없다.



인간은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길을 잃었고, 본래 있어야 할 자리에서 벗어나 다시 그 자리를 찾아갈 수도 없다.

결국 인간은 헤아릴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불안하게 방황하며 이곳저곳을 더듬는다.

하지만 인간은 끝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 스스로 죄인이라 여기는 이가 의로운 사람이다


인간은 단 두 부류뿐이다.

하나는 스스로 죄인이라 생각하는 의로운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죄인이다.





2장 인간은 왜 늘 현재의 자기와 어긋나 멀어지는가?



■ 인간의 욕망은 늘 현재를 불행하게 한다


자연은 어떤 상태에 있든 우리로 하여금 만족하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의 욕망은 우리에게 ‘행복할 법한 상태’를 보여줄 뿐이다.

왜냐하면 욕망은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에,

우리가 누리지 못하고 있는 쾌락을 덧붙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우리가 그 쾌락을 실제로 얻게 되더라도, 그것이 곧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곧 그 새로운 상태에 익숙해지고, 거기에 또 다른 욕망을 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편적인 진리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확인해보아야 한다.



■ 시간은 상처와 분노를 서서히 치유한다


시간은 고통과 다툼을 천천히 치유한다. 왜냐하면 시간 속에서 우리는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우리와 같지 않다.

공격했던 사람도, 공격받았던 사람도 모두 달라져 있다.

마치 우리가 한때 분노했던 민족을 두 세대가 지난 뒤에 다시 만나는 것과 같다.

세월이 지나도 그들은 여전히 프랑스인이지만, 그때 그 사람들은 아니다.



■ 사랑은 서로 달라지며 결국엔 사라진다


그는 10년 전 사랑했던 사람을 이제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한다.그녀도 예전과 같지 않고, 그 역시 이미 변했다. 한때는 그도, 그녀도 젊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그때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어쩌면 그녀가 여전히 예전 그대로였다면, 그는 지금도 그녀를 사랑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 불행을 걱정하다가 결국 만족을 잃는다


우리는 너무나 불안해서, 지금의 상태가 망가지면 어쩌나 걱정하느라 어떤 것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실제로 많은 일들이 그렇게 무너질 수 있고, 과거에도 종종 그렇게 무너져왔다.

그러나 불행을 미리 걱정하지 않고, 지금 주어진 행복을 기꺼이 누릴 줄 아는 사람은 진정한 요점을 깨달은 사람이다. 그 요점이란 바로 ‘멈추지 않는 흐름’에 몸을 싣는 것이다.



■ 넓게 조망하며 조금씩 아는 것이 더 유익하다


우리는 모든 것을 완전히 알 수 없기에, 오히려 모든 것을 조금씩 아는 쪽이 더 낫다.

한 가지를 깊이 파고드는 것보다, 세상을 넓게 조망하는 보편성이 더 큰 가치를 지닌다.

이런 식의 보편성은 지식 속에서도, 삶의 태도 속에서도 가장 아름답다.



물론 깊이와 넓이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나는 이 보편성을 택하겠다.

세상도 그것을 알고, 자주 그렇게 선택해 왔다.

그런 점에서 세상은 때로 놀라울 만큼 올바른 판단을 내린다.



■ 능력 있는 사람일수록 차이를 먼저 알아본다


능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독창성이 존재하는지를 안다.

반면 평범한 사람은,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거의 알아채지 못한다.



■ 세상의 모든 창조는 원형을 모방한다


자연은 스스로 변화하면서, 그 변화 속에서 본래의 질서를 되풀이하고 모방한다.

인공은 자연이나 이상을 모방함으로써,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낸다.

자연은 안에서부터 밖으로, 인공은 밖에서부터 안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결국 양쪽 모두, 어떤 ‘원형’에 접근함으로써 자기완성에 이른다.





3장 소유는 우리를 정말 행복하게 만들까?



■ 행복을 갈망하지만 죽음과 비참함은 회피한다


비참함 속에서도 인간은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고, 오직 행복만을 원한다.

그리고 행복을 바라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러려면 죽음을 피해야 할 텐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인간은 그런 생각 자체를 회피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죽음과 비참함, 무지를 치유할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애써 그런 생각들을 외면하기로 한 것이다.



■ 유흥은 즐겁지만 비참하게 만든다


비참한 인간을 위로해주는 것은 오직 유흥뿐이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비참함이다.

유흥은 무엇보다도 사고를 방해하고, 우리를 모르는 사이에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유흥이 없으면 우리는 지루함에 빠지게 되지만, 그 지루함은 더 근원적인 탈출구를 찾도록 이끈다. 유흥은 분명 즐거움을 주지만, 그것은 자각하지 못한 채 우리를 서서히 죽음으로 데려간다.



■ 기분전환 없이는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


우리가 삶에 몰입하는 이유는 기분전환을 통해 잠시나마 비참함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달 전 아들을 잃고, 소송에 시달리며 아침까지도 괴로움 속에 있던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여섯 시간 전부터 사냥개가 쫓는 멧돼지가 어디로 지나갈지에 온 신경을 쏟고 있다.지금 그는 행복하다. 이처럼, 슬픔에 잠긴 사람도 오락에 몰두하면 잠시나마 행복해진다.



반대로, 아무리 행복한 사람이라도 기분전환 없이 오래 머물면 곧 슬퍼지고 말 것이다.

결국 기분전환이 없으면 기쁨도 없다. 기분전환이 있으면 슬픔도 없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 더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그가 더 많은 기분전환 수단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태를 지속할 수 있는 권력과 자원도 가졌기 때문이다.



■ 완전한 휴식은 인간에겐 고통이다


열정도 없고, 일도 없고, 오락도 없고, 몰입할 대상도 없는 상태.

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 상태만큼 인간에게 참기 어려운 일은 없다.

그때 인간은 자신의 허무와 무력함, 소외감, 결핍, 종속성을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영혼의 가장 깊은 밑바닥에서 권태와 우울, 슬픔, 분노, 절망 같은 감정들이 하나둘씩 기어 나올 것이다.

■ 애착을 끊으면 권태가 찾아온다


우리가 정든 일이나 삶의 자리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때 느끼는 권태!

예컨대 한 사람이 가정에서 평온하게 살아가다가 마음이 끌리는 여자를 만나거나,

혹은 며칠 동안 흥겹게 놀고 나서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복귀하면,

그는 어김없이 허탈감과 비참함에 휩싸이게 된다.

이런 일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아주 흔하게 벌어진다.



■ 확신도 기쁨도, 끝내 우리 것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진리를 갈망하지만, 그 안에서 발견하는 것은 늘 불확실뿐이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비참함과 죽음뿐이다.

진리와 행복을 외면할 수는 없지만,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고, 그 어떤 기쁨도 끝내 붙잡을 수 없다.이 갈망이 우리 안에 남아 있는 까닭은, 그것이 곧 우리의 벌이며,

우리가 얼마나 높은 데서 떨어졌는지를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 행동의 근원은 결국 욕망과 힘이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결국 두 가지, 욕망과 힘에서 비롯된다.

욕망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만들고, 힘은 우리가 원치 않아도 움직이게 만든다.





4장 인간이 만든 질서의 불완전함과 허상에 대하여



■ 우리는 단지 확립된 것을 정의로 여길 뿐이다


정의란 결국 이미 확립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가진 모든 법은, 그것이 이미 확립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정의로 받아들여진다.

법이 정의로운 것이 아니다. 단지 법이 확립되었기에 정의로 여겨지는 것이다.



■ 타인에 대한 존경은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태도다


진정한 존경이란 “당신을 위해 불편해지겠습니다”라는 태도다.

겉으로는 과장되거나 허황된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사실 이는 매우 현실적인 정의다.

존경이란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나는 당신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불편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비록 그 불편이 당신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도, 나는 기꺼이 그것을 감내하겠습니다. 게다가 이런 태도야말로, 어른과 상층을 구별하는 데 필요한 장치이기도 하니까요.”

만약 존경이 아무 불편함도 없는 편안한 행위였다면, 누구나 모두를 존경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른’과 ‘고위층’을 더 이상 구별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존경은 본질적으로 불편한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사회적 위계를 드러내는 기준이 된다.

■ 인간과 문명의 흐름은 전진과 후퇴를 반복한다


인간의 본성은 언제나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한 걸음 나아갔다가 다시 물러서고,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기를 반복한다.

열이 났다가 오한이 드는 병처럼, 전진과 후퇴는 하나의 흐름 속에서 교차하며 나타난다.



오한은 열이 얼마나 강렬한지를 보여주는 징후이듯,

인간의 후퇴 역시 전진의 깊이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세대를 거치며 이어지는 인간의 발명도 이와 같다.

또한 세상에서 선과 악이 교차하는 방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



■ 과도한 자유는 억압보다 더 해로울 수 있다


자유가 지나치면, 그것은 오히려 억압보다 더 해로울 수 있다.

필요한 모든 것을 가졌을 때, 우리는 오히려 아무것도 갖지 못한 것처럼 방황하게 된다.





5장 생각하는 갈대! 비참함과 위대함 사이의 인간



■ 생각하는 갈대, 그래서 인간은 존엄하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다.

그를 쓰러뜨리는 데 온 우주의 무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증기 한 줄기, 물방울 하나면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인간을 짓누른다 해도, 인간은 여전히 우주보다 고귀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의 죽음을 알고, 우주가 자기보다 강하다는 것도 인식하지만,

우주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존엄은 바로 ‘사유’에 있다. 우리는 이 사유를 통해 자신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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