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프게 한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 모티브
나를 아프게 한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모티브 / 2025년 5월 / 216쪽 / 17,800원
Chapter 1. 왜 당신은 상처받지 않아도 될 말에 아파하는가
나를 아프게 한 건 나의 해석이다가끔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에 “왜 저런 말을 할까?”, “저렇게밖에 말을 못 하나?” 생각하며 한참을 되묻던 날들이 있었다. 그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매여 있고, 그 말에 대해 반박할 말을 속으로 되뇌며 내가 옳았다는 걸 증명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옳았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괜찮아지고 더 웃어야 했겠지만 실제로는 생각할수록 아팠고, 떠올릴수록 짜증만 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보면 나는 상대방의 말을 계속 곱씹으며, 아닌 것에 아니라고 얘기하기보다는, 그것을 내가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의 말에 반박할 것들을 찾으며, 내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계속해서 시간을 쏟고 있었다.
로마 16대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외부의 일로 인해 괴로움을 느낀다면, 그 고통은 그 일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당신의 판단 때문이다. 그리고 이 판단은 당신이 언제든지 거둘 수 있다.” 처음엔 이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를 괴롭힌 말은 분명히 그 사람에게서 왔고,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말이 옳고 옳지 않고의 문제보다, 내가 그 단순한 말에 어떤 무게를 부여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조금씩 깨달았다. 말은 그저 말일 뿐이다. 내가 받지 않으면, 어떤 말이든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강아지가 아무리 짖어도 내 마음에 어떤 해를 끼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나는 강아지에게 계속 조용히 하라고 화를 내며 같이 짖고 있었던 것이다. 길을 지나가다가 짖는 개를 보고 나도 같이 짖는다면 목적지에 절대 도착할 수 없다. 이처럼 나도 상대방의 말에 반응하며 그곳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타인의 말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깊이로 받아들이느냐는 온전히 나에게 달려 있다. 그 말이 내 안에서 커지고 무거워질수록, 내 마음의 중심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타인의 말을 듣고 바로 받아들이기보다 나에게 정말 그런 점이 있는지, 나의 잘못이 있는지 먼저 확인하고 아니면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누구의 말도 나를 흔들지 못하도록 말이다. 의자를 보고 의자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것이니까. 그런데 의자를 보고 책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그냥 무시하게 된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누군가가 내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때 ‘아, 오해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그런 일을 겪을 때 논쟁을 하려 하지 말고, 그냥 무시하길 바란다. 타인을 깔보라는 말이 아니라, 소중한 시간을 잘못된 해석으로 낭비하며 상처받지 말라는 말이다.“내게 상처를 준 건 상대의 말이 아니라, 나를 의심하게 만든 내 해석이다.”
영혼은 생각의 색으로 물든다좋은 사람을 만나면 단순히 그 사람과 함께 했던 것들이 ‘좋았다’가 아니라 내 생각이 확장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여태까지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내 생각이 정말 협소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래서 최대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려고 노력한다. 한 기사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캐나다 퀸스대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평균 6천 가지 이상의 생각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중 약 80%는 부정적이거나 반복적이고 쓸모없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이 분석은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면 어렵지 않게 체감할 수 있다. 유튜브나 SNS만 봐도 평범하고 단조로운 것보다는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것에 더 쉽게 눈이 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긍정적이고 따뜻한 생각을 떠올리기 위해 애써야 하며, 나의 생각을 확장하는 것들을 계속해서 접해야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영혼은 당신 생각의 색깔로 물든다.” 즉, 영혼은 내가 품고 반복하는 생각에 따라 그 색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그도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따라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던 것이다. 우리도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외부에서 오는 말은 내가 받지 않으면 되지만, 내 안에서 반복되는 생각들은 그것들로 나를 채우게 되고 그 생각은 곧 나의 태도와 행동이 된다. 무엇보다 사람은 이해관계가 맞지 않으면 친해지기가 어렵기 때문에 나의 생각과 비슷한 사람들하고만 친해지게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생각과 말을 하게 된다. 그럼, 그 틀 안에서 변하지 않는 사고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공통 관심사가 게임이라면 매일 게임 얘기를 하게 될 것이고, 사업이라면 매일 사업 얘기를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생각일지라도, 그 생각이 누군가에게 쉽게 상처 주는 말이나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면 무심코 말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부정적인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면 왜 내가 이 생각을 계속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계속 내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이라면, 아마도 내 안의 어떤 상처나 과거의 일들이 트라우마로 인해 그 말에 반응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잠시 멈춰서 자신에게 조용히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그 생각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말이다.
생각은 곧 말이 되고, 그 말은 나의 인성을 만든다. 그러니 자주 부드러운 말과 다정한 태도를 떠올리도록 노력하자. 그것이 쌓이고 반복되면, 우리의 영혼은 그 색으로 물들게 될 것이다. 한 번 칠해진 색을 다른 색으로 바꾸려면 최대한 원하는 색으로만 색칠하는 방법밖에 없다. 사람도 잘 안 바뀐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어떤 생각을 품을지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나의 생각이 나의 색을 만드는 것이다. 하루하루 내 안에서 길러지는 생각의 색을 더 신중히 선택해 보길 바란다.“당신의 영혼은 당신 생각의 색깔로 물든다.”
타인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라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반드시 거쳐야 할 세 가지 고비가 있다. 첫 번째는 건강이고, 두 번째는 외로움이며, 세 번째는 사람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는 건 ‘사람’이라고 한다. 몸이 아프면 병원을 가고, 외로우면 다른 것들로 채울 수 있지만, 인간관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상대의 감정이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기에 더 힘들고, 한 번 생긴 오해는 쉽게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단순히 한 사람과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그로 인해 내 자존감이 흔들리고, 세상을 대하는 시선까지도 흐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달랐다. 그는 사람과의 갈등 앞에서 감정보다 이성을 앞세웠다. 겉으로 드러난 말이나 행동보다, 그가 왜 그런 말을 했고 그런 태도를 취했는지, 그 ‘기준’을 들여다보려 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가 무엇을 선이라 믿고, 무엇을 악이라 여겨 그렇게 판단했는지를 먼저 생각하라.”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삶과 경험, 신념에 따라 옳고 그름의 기준을 갖고 살아간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 기준은 더욱 단단해지고, 때로는 고집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 많은 사람들은 쉽게 관계를 끊거나 ‘손절’을 선택한다. 하지만 아우렐리우스의 말처럼, 그 사람의 기준에서 잠시 생각해보려는 노력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더 깊이, 더 다르게 바라보게 해준다. 설령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라 해도,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 역시 자신만의 기준 안에서 옳다고 믿었기에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과정을 생략한 채 감정적으로 단절을 택한다면, 앞으로도 인간관계 속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차이와 갈등을 이겨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단순히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라,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를 한 번쯤 묻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게 질문을 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만의 기준을 잠시 내려놓게 된다. 그래서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를 용서하라. 그리고 네가 애초에 그런 기준을 두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들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은 무조건적인 용서를 하라는 뜻이 아니다. 상대방의 행동이 내 기준에 어긋났더라도, 감정적으로 미워하거나 분노하기보다 먼저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지라는 의미다.
세상은 내 기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 또한 각자 자신만의 삶의 방식과 생각으로 말하고 행동한다. 그렇기에 아우렐리우스의 말처럼 우리는 타인을 미워하기보다 조금 더 여유 있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후회 없는 관계를 맺고 끊을 수 있다. 만약 정말 상대하기 힘든 사람을 마주했다면, 분노로 맞서거나 관계를 끊기 전에 잠시 멈추어 그 사람의 입장에서 한 번쯤 생각해보자.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고비를 지혜롭게 건너는 현명한 방법이다.“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가 무엇을 선이라 믿고, 무엇을 악이라 여겨 그렇게 판단했는지를 먼저 생각하라.”
Chapter 2. 당신의 가치를 의심하지 마라
내 삶에는 내 속도가 있다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원래 황제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당시 로마의 황제 자리는 단순히 가문의 명예를 잇는 일이 아니라, 로마 전체를 책임지는 국가 경영자의 자리에 서는 일이었다. 친자식이라고 해서 능력 있고, 인품이 좋은 건 아니었기에 나라를 지켜야 할 책임감 앞에서는 혈통보다 역량이 더 중요시됐다. 그래서 로마 황제는 신뢰할 수 있는 인물, 정치적 준비가 된 사람을 교육하고 경험을 쌓게 했다. 로마에는 특별한 전통이 있었다. 바로 양자 제도다. 친자식이 아니더라도 국가를 이끌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면 자식으로 삼아 후계자로 키우는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그랬다. 그는 로마 귀족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철학과 문학, 법률을 배우며 자라났다. 특히 스토아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그의 성품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눈에 들었다. 하드리아누스는 다음 황제인 안토니누스 피우스에게 조건을 내걸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양자로 삼아 직접 키우라고 했다. 그렇게 그는 열일곱 살에 황제 후보가 되었다. 하지만 그 자리까지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는 그 후로 무려 23년 동안 정치와 행정을 배우고 군사 경험을 쌓으며 스스로를 단련했다. 또한 집정관(로마의 최고 행정·군사 책임자)을 세 번이나 역임하며 로마의 실무를 직접 익혔고, 수많은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했다. 그 시간들은 그를 황제의 그릇에 맞게 만들어 주었다.
결국, 그는 마흔의 나이에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로마는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고, 삶을 통해 자격을 증명해낸 사람에게 황제의 자리를 내어주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조급한 마음이 들 때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는다.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해도, 곧 사라지고 또 다른 일이 그 자리를 대신하며, 그것도 곧 사라진다. 일어나는 모든 일은 태초부터 그렇게 되기로 예정된 일이다. 일어나는 모든 일은 반드시 그렇게 일어나야 하는 방식대로 일어난다. 주의 깊게 본다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우리도 조급해질 때마다 이 문장을 떠올려야 한다. 요즘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이다. 조금만 정보가 늦어져도 타인과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럴수록 남의 발걸음에 조급해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내 걸음이 느리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내가 더 오래 준비하고, 더 깊게 쌓아가야 하는 시기이다. 빠르게 앞서가는 삶이 전부가 아니다. 아우렐리우스처럼 오래도록 단단하게 버텨야 하는 삶도 있다. 다 각자만의 때가 있는 것이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강인하고 빠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했다. “자신의 본성에 맞는 것을 받는 데에 피곤함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고통스러운 것은 오직 본성에 어긋나는 일뿐이다.” 즉, 내가 옳다고 믿는 길을 따라 사는 삶은 피곤하지 않으며, 잘못될 수 없다는 뜻이다. 괜히 다른 사람의 속도를 따라가느라 나를 잃는 것보다, 나만의 시간을 살아가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내 삶의 속도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 느린 걸음이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일지 모른다. 지금의 정체기가 나중에 나의 끈기를 만들어주고, 지금의 슬럼프가 중요한 순간에 이겨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경험이 될지 모른다. 그러니, 나만의 의미와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포기만 하지 말고 묵묵히 걸어 나가는 사람은 언젠간 자신만의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자연은 서두르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것은 제때 이루어진다.”
내가 정말 잘 살고 있다는 증거누구나 한 번쯤은 억울한 순간을 겪게 된다. 열심히 한 일, 선한 마음으로 한 행동에도 험담과 오해를 받을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옳은 행동을 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어쩌면 질투일지도 모른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선한 일을 하고 욕을 듣는 것은 제왕다운 일이다. 네가 선한 일을 하고 있다면, 그에 대한 비난을 견뎌라.” 이것은 리더들에게 정말 중요한 말이다.
진정한 리더는 무슨 일을 하든 좋지 못한 말을 듣게 되어 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아우렐리우스는 옳은 길을 걸으면서도 욕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세상은 원래 바른말을 하면 미움을 사고, 올바른 행동을 하면 손가락질을 당한다. 그런 시선을 두려워해 자신의 길을 포기하는 사람은 패배자가 되었다. 욕을 듣는다고 해서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것을 내가 정말 잘 해내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자.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용기고, 진정한 리더십이다.
세상의 시선은 바람처럼 흔들리지만, 나의 신념은 뿌리처럼 단단해야 한다. 험담은 곧 사라지고, 진실은 결국 드러날 것이다. 세상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선택만을 좇다 보면, 우리는 결코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없다. 차라리 불편한 말을 듣더라도, 묵묵히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깟 시선과 욕이 무서워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무엇을 하든 어디서든 끝내 성공할 수 없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고, 당당하다면 포기하지 말고 담대히 나아가길 바란다.“네가 선한 일을 하고 있다면, 그에 대한 비난을 견뎌라.”
Chapter 3. 모든 관계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네가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너의 태도를 바꿔라누구나 살다 보면 관계로 인한 불편함을 겪게 된다. 누군가의 태도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을 마주할 때 우리는 답답함과 분노를 느낀다.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감정 소모는 더 커진다. 실망과 불편함 속에서도 참아내는 것이 배려이고 성숙한 태도라고 생각하며, 이해되지 않아도 억지로 받아들이려 애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런 불편함을 무조건 참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분명하게 상황을 구분하라고 조언한다. 지금 이 상황이 바꿀 수 있는 일인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일인지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네게 일어난 일을 바꾸는 것이 네 힘으로 불가능하다면, 네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에 대한 너의 태도뿐이다.” 즉,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억지로 바꾸려 애쓰기보다, 우리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이는 인간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마음가짐이다. 맞지 않는 상대방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을 바꾸려고 하기보다, 그에 대한 내 반응과 태도를 돌아보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