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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을 쓰는 시간

김진한 지음 | 메디치미디어


헌법을 쓰는 시간

김진한 지음

메디치미디어 / 2025년 2월 / 432쪽 / 24,000원





제1부 법과 정치 이야기



법 이야기


법이란 무엇인가:
법은 일반인들의 관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법률은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로 쓰여 있고, 그 법을 적용하는 판결은 암호와 같은 문장들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법의 문제는 법을 공부한 사람들만이 생각할 문제라고 치부된다. 그러나 만일 쉽지 않다는 이유로 법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정치 권력은 자신에게 편리한 결정을 법의 이름으로 자유롭게 내릴 수 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사이에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결정을 내리고, 집행할 수 있는 것이다.

[법은 의견에 불과하다] 법철학 과목 시간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사실’과 ‘당위’에 대해 설명하셨다.“‘사실’은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것, 감각으로 느끼고 확인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지금 창밖에 보이는 것들이 바로 전형적인 사실들입니다. 지금 비가 온다. 교정에 나무가 서있다. 어제 정문 앞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이런 것들이 사실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오감으로 감각할 수 있습니다. 반면 ‘당위’는 세상의 모습이 어떠해야 한다는 가치이고 판단입니다. 옳다 그르다를 포함해 사람들마다 생각과 양심에 따라 다양한 판단을 하는 것이 당위입니다. 각자의 생각에 따라 다양한 의견들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진실과 거짓은 없습니다. 법학이란 이런 당위를 공부하는 학문입니다.”

그동안 법률, 판례집, 법학 서적에 담겨 있는 학자들의 학설은 당연히 정답이고, 당연히 진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의견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놀라운 깨우침이었다. 같은 풍경을 본다고 해도 어떤 틀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 법학에서는 사실이 아닌 당위를 공부한다. 당위는 ‘무엇이 옳다’, ‘무엇이 정의롭다’는 판단이고 의견이다. 법률은 입법자의 의견이며, 판결이란 법관의 의견이고, 법학자의 학설이란 법학자의 의견이다.

법은 무엇으로 세상을 규율하는가?:
[일반적인 결정으로 정해놓은 규정] 국가 공동체의 문제를 일반적, 추상적인 규범으로 결정해놓은 것을 법이라고 한다. 일반적이고 추상적이라 함은 개별적이거나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2017년 5월 28일 밤 10시. 서울 동대문구 광장고등학교 앞에서 음주운전을 하던 김돌돌 기사가 혈중알콜농도 0.4%의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어 운전면허를 취소당했다.

운전면허 취소를 명하는 법은 일정한 기준 이상의 음주운전을 한 사람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지 특정인 김돌돌에게만 부여된 처분이 아니다. 그리고 그 규범은 2017년 5월 28일 밤, 서울 동대문구에만 적용되는 법이 아니라 시간, 장소,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적용되는 법이다. 개별적인 누구를 정해놓지 않고 모두에게 적용되는 기준, 구체적인 상황에 영향받지 않고 모든 경우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바로 일반적, 추상적인 것이다.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규범으로 법을 제정하는 이유는 반복적으로 처리해야 될 문제에 대해 일률적으로 처리할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결정을 내리기 위한 여러 가지 복잡한 고려를 수천, 수만 번 반복해야 한다. 법에 적용될 사람이 누군가, 어떤 상황인가에 따라서 그 기준이 수시로 바뀐다면 법은 유지될 수 없다. 바뀌고 변동되는 기준에 의해 불이익한 결정을 받은 사람은 그 결정에 승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규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기준을 변경하지 않고 모든 사람과 모든 경우에 그대로 적용하고 집행해야 한다.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법이 제정되면 사람들은 그 법과 자신들 계획과의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 어떤 행위를 금지하는 법이면 그 행위를 하지 않으려 노력하게 되고, 이익을 주는 법이 있으면 그 조건을 채우려 노력하게 된다. 국가권력이 일일이 알려주고, 겁주고, 강제하고,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해 법의 규정을 고려한 행동과 판단을 하게 된다. 일반적인 법의 제정을 통해 권력은 자신들의 결정을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예측하고 계획할 수 있다.

[법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법의 강제력은 그 정당성을 어디에서 가져올까? 신과 신의 대리인인 사제가 절대적 권력을 갖고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 시대에 법을 제정하는 힘은 신의 의지에 있었다. 신으로부터 직접 명령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제가 신이 제정한 법을 인간들에게 전달하면 그것으로 그 법은 정당성을 확보했다. 군주가 절대적 권력을 갖고 있던 시대에는 법의 힘과 정당성이 군주의 현실적인 무력과 왕위의 계승으로부터 나온다. 정당하게 왕위를 계승받은 군주가 제정한 법은 곧바로 정당성을 확보했다.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자는 바로 국민들이다. 국민들은 주권자로서 최고 권력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은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로 구성된 의회가 제정한다. 의회는 수많은 대표자들이 함께 모여 신중한 토론과 엄격한 절차를 거쳐 법을 제정한다. 그리하여 국민의 대표들로 구성되는 의회가 만드는 법에게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렇다면 국민들의 대표가 만든 법은 자동적으로 옳고 정당한 것일까?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은 법이 없고 감시하는 사람이 없다 해도 나쁜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듯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 도저히 지킬 수 없다고 호소하는 법들이 있다. 이런 법들을 볼 때 우리는 법의 정당성에 대해 갈등하게 된다.

법이 항상 정의와 공평을 실현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그 반대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무엇이 정당한 법인지 확정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은 각자 무엇이 옳은지 자신들의 의견을 갖는다. 사람들의 다른 의견에도 불구하고 법은 자신의 효력을 관철시킨다. 일부 사람들이 법의 내용에 반대한다고 그 법의 효력을 부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법의 효력을 부정하려면 법의 내용을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법을 공정한 것으로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이 정치다. 같은 의견을 갖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법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그 노력의 결과로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질 수 있다.

법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법학은 당위의 학문이기에 학문으로서의 법학은 당위에 집중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당위의 법만으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법은 사실과 만나야 작동한다. 법이 사실을 만나게 하는 과정을 법의 적용이라고 한다. 사례를 들어보자. 우리나라에서는 살인죄의 법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250조 1항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이 법에 따르면 사람을 살해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 법이 작동하는 과정, 즉 살인범을 처벌하는 과정을 통해 법의 작동방식을 알 수 있다.

[1단계: 법]

우선 대전제로서의 법이 있다. 살인죄의 규정에는 ‘사람을 살해하는 것은 옳지 않으므로 금지한다’는 첫 번째 당위의 판단, ‘사람을 살해한 사람에 대하여 벌을 부과해야 한다’는 두 번째 당위의 판단이 포함되어 있다.

살인죄의 조문에는 여러 조건들이 포함되어 있다. 법조문은 일종의 압축파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실제 그 파일을 써야 할 때에는 그 압축파일을 풀어 우리가 알 수 있는 형태로 전환시켜야 한다. 형법 제250조 1항의 ‘사람을 살해한 자’라고 하는 압축파일을 풀어보면 우선 피해자가 사람이어야 한다. 사람이 아닌 동물이라면 살인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사람을 ‘살해’해야 한다. 사람을 다치게 한 것은 살해가 아니다. 그리고 살해가 되려면 사람을 죽이려는 마음과 의지가 필요하다. 사람이 죽었다는 결과가 있지만 실수로 저지른 행위는 살인죄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2단계: 사실]

법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법에 정한 조건에 부합하는 사실이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이웃의 애완견을 죽였다고 하자. 애완견 주인에게는 가족만큼 소중한 존재였다 하더라도 가해자는 살인죄의 벌은 받지 않는다. 사람을 살해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에 정한 조건에 해당하는 사실이 아닐 경우에 법은 작동하지 않는다. 법에 정한 조건의 사실들은 증거에 의해 엄격하게 증명되고 확인되어야 한다. 추측이나 주장만으로는 진실한 사실이라는 점이 확정되지 않는다. 법정영화를 보면 증거나 증인의 진술을 두고 소송의 양 당사자들이 공방을 벌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것은 사실이 진실한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다.

[3단계: 법의 작동]

3단계는 법이 작동하는 단계다. 현실에서 발생한 사실들이 법에 정한 요건에 들어맞으면 그 법에 규정되어 있는 효과가 발생한다. 드디어 법이 작동하는 것이다. 자연법칙은 자연이 그 효과를 만들지만, 인간이 만든 법은 국가권력이 그 효과를 실현시킨다.

2017년 5월 9일 저녁 7시.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골목길에서 장갑돌이라는 사람이 오송송이라는 사람을 칼로 찔러 살해했다. 목격자들이 증언했고, 갑돌이 본인도 고의로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범행에 사용한 칼도 발견됐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살해했다는 법의 요건에 부합하는 사실들이 증거에 의해 확인됐다. 살인죄라는 법의 요건을 충족시킨 것이다. 이제 국가권력은 그에 대해 살인죄에서 정하고 있는 형벌을 부과할 것이다. 그것이 법이 정한 효과다. 이처럼 법이 제대로 작동하는 데에는 법과 사실이 모두 필요하다. 둘을 잘 구분해야 법을 공정하고 정확하게 작동시킬 수 있다.

법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가?:
[‘의견’이 ‘사실’이 될 때] 나는 어느 날 누군가에 대해 나쁜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그가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으로 그에 대한 나의 의견은 확정되어 버린다. 다음부터 그가 하는 일은 모두 나빠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서 일어난 나쁜 일들은 모두 그가 저지른 일로 생각하게 된다.

2013년 영화 <7번방의 선물>은 이러한 예를 잘 보여준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주인공 용구가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망사건이 발생하는 장면을 영화 카메라와 함께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용구가 얼마나 딸을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었던 관객들은 용구가 억울하게 사형선고를 받자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그 영화 속에는 용구에게 이빨을 드러내며, 너 같은 사람은 죽어도 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경찰이 현장검증을 위해 사건 현장인 재래시장으로 용구를 데리고 갔을 때, 시장에 있던 이들은 수갑이 채워져 경찰에 끌려다니는 용구를 범인으로 확신했다. 그래서 폭언을 했던 것이다.

용구의 억울함에 눈물을 흘리며 가슴 아파하던 영화의 관객들과 용구에게 폭언을 한 시민들은 사실 같은 사람들이다. 우리들의 친구, 친지, 이웃들이다. 차이를 만든 것은 각자가 파악하고 있는 ‘사실’이다. 사실은 이렇게 무서운 차이를 만들어낸다. 공정한 판단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의견’으로 ‘사실’을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다. 어떤 의견을 갖는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로 맡겨져 있다. 하지만 사실의 판단은 자유가 아니다. 사실은 진실이라고 하는 하나의 사실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악한이 등장한다.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아 자신의 침대에 누이고는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그만큼 잘라내고,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억지로 침대길이에 맞게 늘여서 죽였다. 그 침대의 이름은 ‘당위의 의견’이며, 그 침대에서 희생당하는 행인들의 이름은 ‘진실’이다.

우리들은 마음속에 프로크루스테스 침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의견에 따라 진실을 바쁘게 해치운다.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그 침대를 방치했다가는 언젠가 우리 스스로의 진실마저 희생 제물로 삼게 된다. 그 침대를 그대로 둘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부숴버려 더 이상의 진실의 희생을 막을 것인가? 신화 속의 프로크루스테스는 행인들을 해치우던 침대 위에서 같은 방법으로 종말을 맞았다.

법은 완전하지 않다:
국민들이 주권을 갖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은 국민 또는 선출된 대표들의 다수결의 합의로 만들어진다. 법이 제정된 것은 그 내용이 옳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다수가 그런 의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법으로 제정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의 대표가 제정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옳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장애인들은 정부의 허가 없이 결혼할 수 없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만이 선거권을 가질 수 있다’,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지 않는 사람만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법이 만들어져 집행된다면 과연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잘못된 법이 초래한 피해와 손상은 어떤 자연재해보다도 심각하다.

편견과 이익으로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이 사람이다. 입법자 역시 편견과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민들의 대표에게 법의 내용을 결정할 권한이 있지만 그 결정은 오류가 없는 결정이 아니다. 많은 경우 불공정한 선입관과 준비되지 않은 성급함으로 결정한다. 법은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창조물일 뿐이고, 부족하고 평범한 인간들을 닮은 인간 능력의 분신이다.

이제껏 확인한 바와 같이 법은 그 내용으로 불완전하고, 사실은 진실과 너무도 거리가 멀다. 그 두 개의 불완전한 톱니바퀴를 휘어진 축으로 연결해 작동시키고 있는 것이 법의 장치이니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다. 결함 있는 기계를 완전하다고 믿고 작동시키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다. 법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법이란 진리이며, 어떤 경우에도 관철을 멈추어서는 안 되는 선(善)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법은 가장 위험한 장치로 변질된다. 법을 작동하는 사람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은 법은 결함투성이 기계라는 사실이다.

정치 이야기


정치란 무엇인가?:
공동체의 중요한 의사결정과 그 과정을 ‘정치’라고 한다. 누가 어떤 내용의 권력을 행사할 것인지, 공동체의 문제를 누가 어떻게 결정하고 해결할 것인지, 잘못된 결정을 어떻게 수정할 것인지, 그 책임을 누가 어떻게 질 것인지 등, 이 모든 공동체의 결정과 그 결정 과정이 정치다.

정치인들은 정치를 통해 공동체의 삶을 나아지게 할 것이라 약속한다. 그런데 정치가 공동체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것과 관계없는 경우가 많다. 함포고복(含哺鼓腹)이란 고사성어는 정치에 관한 이상향을 제시한다. 최고의 태평성대에 백성들은 임금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도 없었으며, 배불리 먹고 발로 땅을 구르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렇다면 최선의 정치란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는 것, 사람들을 그대로 두어 자신의 타고난 행복과 삶을 누리도록 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정치적 결정들:
[로마의 대농장 라티푼디움의 딜레마] 이탈리아반도의 일부를 차지하는 작은 국가에 불과했던 로마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본래의 영토보다 몇십 배나 큰 식민지로부터 온갖 생산물이 공물로 실려왔다. 각지에서 붙잡혀 온 전쟁 포로들은 로마인들의 노예가 되었다. 로마인들은 그들의 노동으로 농장을 경영하고 건축을 했으며, 최고의 기술자와 풍부한 노동력으로 공업생산도 풍부했다. 생산과 소비가 넘쳐났고 경제는 날로 성장했다. 그렇다면 로마 시민들도 부유해졌을까? 그렇지가 않았다. 오히려 농촌에서 농작물을 가꾸던 시민들이 대지주의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많은 로마 시민들은 국가에서 나누어주는 빵을 얻어먹기 위해 도시로 나와 도시 빈민이 되었다. 새로이 얻은 생산의 10퍼센트만 시민들에게 주어도 모두 여유롭게 살 수 있었을 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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