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행복 그리고 삶
김옥림 지음 | 미래북
법정 행복 그리고 삶
김옥림 지음
미래북 / 2025년 2월 / 336쪽 / 17,800원
1부. 맘껏 사랑하고 부족함 없이 행복하라
근원적인 ‘나’로 돌아가라고뇌 속에서 우리는 근원적인 ‘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인간의 밑천은 선의(善意)와 성실 이것뿐이다. - 법정, <너는 성장하고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실패를 겪게 된다. 취업의 실패, 사업의 실패 등 온갖 실패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그런데 실패를 하고 나면 ‘자신이 못나서’라는 자괴감에 빠져 자신은 물론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들 중엔 실패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도 있다.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실패는 성공과 늘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바라는 대로 잘 된다면, 인생의 참맛을 알지 못한다. 실패의 쓴잔을 마셔봐야 참된 인생의 맛을 알게 되고, 행복에 대해 알게 됨으로써 가족과 세상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
실패는 인간에게 고뇌의 늪과 같다. 하지만 그 고뇌를 생산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고뇌를 이길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법정 스님은 고뇌를 이기는 비결은 ‘선의’와 ‘성실’에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실패에서 오는 고뇌는 선의와 성실로써 극복할 수 있다. 그랬을 때 근원적인 ‘나’로 돌아가게 된다. 선의와 성실은 반드시 갖춰야 할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품성인 것이다.
사는 일이 기쁨이 되게 하기무슨 일이든지 흥미를 가지고 해야 한다. 그래야 사는 일이 기쁨이 된다. 내가 하는 일 자체가 좋아서 하는 것이지 무엇이 되기 위해서 해서는 안 된다. 좋아서 하는 일은 그대로 충만된 삶이다.- 법정, <여기 바로 이 자리>
“일을 즐겁게 하는 자에게 세상은 천국이지만, 일을 의무로 생각하는 자에게 세상은 지옥이다.”이는 명작 <모나리자>로 유명한 르네상스 시대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한 말이다. 흥미를 갖고 좋아서 하는 일은 힘들어도 재밌고, 오래도록 해도 질리지 않는다. 좋아서 하는 일은 싫증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하는 일은 흥미도 없고 힘들고 짜증만 난다. 흥미를 갖고 좋아서 하는 일은 생산적이고 창의적이어서 결과 또한 좋은 법이다. 이에 비해 마지못해 하는 일은 지루하고 비생산적이고 비창의적이어서 결과는 언제나 밋밋하고 초라하다.
흥미를 갖고 일하기 위해서는 첫째, 이왕 하는 것 기분 좋게 시작하라. 기분 좋게 하다 보면 흥미를 느끼게 된다. 둘째,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라.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하면 자신도 모르게 흥미롭게 일하게 된다. 셋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라.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과 같다. 이 세 가지를 마음에 새겨 실천한다면 그 어떤 일도 흥미를 갖고 좋아서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사는 일이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자신이 하는 일에 흥미를 갖고 기분 좋게 일하라.
매 순간이 기적, 우리는 기적을 사는 것이다우리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 같지만 이는 하나의 기적이고 커다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법정, <한반도 대운하 안 된다>
이 지구상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일이 일어난다. 땅이 갈라지고, 태풍이 몰아치고, 테러가 일어나고, 수많은 사건 사고로 아까운 생명들이 삶과 이별을 한다. 이런 일들은 매일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이며 은혜로운 일인가.
그런데 대개의 사람들은 이에 대한 감사함을 모른 채 당연히 여긴다. 우리는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기적’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 기적 속에서 꿈을 꾸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꿈을 이루는 것이다. 하루도 기적이 아닌 날은 없다. 매 순간순간이 기적에 살고, 기적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에 대해 더욱 감사하며 살되, 현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불평불만 대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려움을 이겨냄으로써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그렇다. 기적은 기적을 부르고, 기적 속에 모든 것은 이루어진다. 이는 ‘무변(無變)의 진리’이다.
2부. 사람이 사는 집은 따뜻하다
사람이 사는 집은 따뜻하다사람이 살아야 집도 함께 숨을 쉬면서 그 구실을 하는 모양이다.
- 법정, <봄 여름 가을 겨울>
안동에 갔을 때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고택에 가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쓸고 닦은 덕분에 집은 깨끗하고 운치가 있었으나, 따뜻한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사람의 숨결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집은 따뜻함이 느껴진다. 사람들의 숨결이 살아 흐르기 때문이다.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물건 또한 더 정이 가고 더 애착이 간다. 숨결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야 집도 활기차 보이고,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포근하게 느껴진다.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면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은 하루 종일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던 집이 품고 있던 온기를 풀어놓으며 맞아주기 때문이다.
집도 오랫동안 사람이 없으면 외로움을 타고, 그리움을 탄다는 걸 난 느낀다. 단 며칠 동안이라도 집을 비웠다 돌아오면 좋아라 하며 웃는 집을 느낄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고 보면 집은 단지 안식하고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숨결’이 살아 흐르는 생명체인 것이다.
사람들이 사는 집은 따뜻하다. 사람들의 따뜻한 숨결이 강같이 살아 흐르기 때문이다. 안식할 수 있는 포근한 집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라.
부끄러움이 없는 뒤끝이 산뜻한 사람개나리나 옥매 같은 꽃은 필 때는 고운데 잎이 퍼렇게 나와 있는데도 질 줄 모르고 누렇게 빛이 바래지도록 가지에 매달려 있다. 보기에 측은하고 추하다. 그러나 모란이나 벚꽃은 필 만큼 피었다가 자신의 때가 다하면 미련 없이 무너져 내리고 훈풍에 흩날려 뒤끝이 산뜻하고 깨끗하다.- 법정, <봄 여름 가을 겨울>
사람들은 세상을 떠날 때 크게 두 가지 모습을 보인다. 하나는 뒤끝이 산뜻하고 깨끗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인생을 후회 없이 산 사람으로,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이 없고 가치 있게 산 사람이다. 그러나 뒤끝이 흐리고 더러운 사람은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많고, 무가치하게 산 사람이다. 그래서 후회가 많은 사람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명약관화하다. 적어도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예의이고, 자신이 태어나 살았던 세상에 대한 감사함의 표시이다.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아쉽게도 누구나 한 번뿐인 인생을 산다. 그래서 우리는 부끄러움이 없게 깨끗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그런 인생을 살라. 그런 인생이야말로 스스로를 축복하는 행복한 인생이다.
청소의 의미와 그 안에 담긴 묘리(妙理)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하는 청소란 단순히 뜰에 쌓인 티끌이나 방바닥과 마룻장에 낀 때만을 쓸고 닦아내는 일만은 아니다. 쓸고 닦아내는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들 마음속에 묻어 있는 티끌과 얼룩도 함께 쓸고 닦아내는 데에 또 다른 의미와 묘리가 있을 것이다.- 법정, <봄 여름 가을 겨울>
더럽혀진 집을 보면 몸과 마음이 찝찝하고 불쾌한 생각이 든다. 더러우면 칙칙하고 무거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를 빨아 구석구석 닦아내게 된다. 청소를 하고 나면 말끔해진 방처럼 마음이 맑고 산뜻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마치 마음속에 있던 답답한 그 무엇이 싹 씻겨나간 느낌이다. 이렇듯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처럼 상쾌하고 기분 좋은 일은 없다.
법정 스님은 ‘청소는 단순히 티끌을 쓸어내고, 때만 닦아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청소를 하면서 마음속의 티끌과 때도 닦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청소란 치우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비워내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청소를 할 땐 청소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몸과 마음을 닦는다고 생각하라. 그러면 청소는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닦아내는 거룩한 의식처럼 여겨질 것이다.
3부. 자신을 삶의 중심에 두기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우리들이 어쩌다 건강을 잃고 앓게 되면 우리 삶에서 무엇이 본질적인 것이고 비본질적인 것인지 스스로 알아차리게 된다.- 법정, <다시 채소를 가꾸며>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삶의 본질’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삶의 본질은 ‘인간다운 내가 되는 것’으로서 삶의 본질을 지키면 인간다운 나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면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유익함을 주고, 생산적인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삶의 본질을 잃게 되면 비본질적인 삶을 살게 된다. 비본질적인 삶을 살게 되면 인간에 대한 도리를 잃고, 비도덕적이고 비양심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는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무익할 뿐만 아니라 비생산적인 삶을 살게 된다.
삶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서는 첫째, 도덕적으로 자신을 무장해야 한다. 둘째,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 셋째,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 넷째, 양심적으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다섯째, 날마다 기도와 묵상을 통해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한다. 여섯째, 자비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일곱째, 진정성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삶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일곱 가지를 마음에 담아 그때마다 실천해야 한다. 인생을 가치 있게 살고 싶다면 삶의 본질을 지켜라. 삶의 본질을 지키며 산다는 것, 그것은 가장 근원적인 것이면서도 가장 이상적인 삶의 목적인 것이다.
좋은 책을 읽고 내 삶으로 만들어라좋은 책을 읽으면 그 좋은 책의 내용이 나 자신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때 문자의 향기와 서권(書卷)의 기상이 내 안에서 움트고 자란다. - 법정, <책에 읽히지 말라>
독서는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가 아니다. 독서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지혜를 구하고, 정서를 풍부하게 하여 바른 인성을 기르게 함은 물론 교양미를 지니게 하는 반드시 필요한 ‘지적수단’이다. 그래서 아무 책이나 읽는 것은 옳지 못하다. 몸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영양소와 같이 마음과 정신을 맑고 바르게 하는 책 즉, 양서를 읽어야 한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책을 읽었다고 해서 독서를 잘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책을 읽은 후에는 반드시 책 내용대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살아있는 독서며 내 삶으로 만드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율곡 이이는 이렇게 말했다. “독서를 하는 데 있어 입으로만 읽고 마음으로 느끼지 아니하며, 몸으로 행하지 않으면 그 글은 다만 글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 율곡 이이의 말처럼 입으로만 읽고 마음으로 느끼지 않고, 읽은 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독서라고 할 수 없다. 읽은 것은 상황에 맞게 활용해야 독서는 빛을 발하게 되고, 그로 인해 삶을 보다 지혜롭게 살아가게 된다. 여기에 바람직한 독서의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가치성을 지닌 책이야말로 진정한 양서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사는 세상과 조화를 이루는 삶만족할 줄 모르고 마음이 불안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 법정, <무소유의 삶>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늘 생동감이 넘치고 표정이 밝다. 무슨 일을 하든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다. ‘아니오’라는 말보다 ‘예’라는 말을 즐겨 말한다. 어디를 가든, 어디에서든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자신이 있음으로 해서 세상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늘 우울해하고, 표정이 어둡다. 무슨 일에서든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다. ‘예’라는 말보다 ‘아니오’라는 말을 즐겨 쓴다. 어디를 가든, 어디에서든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남이 도움을 요청해도 거부하길 잘한다.
이렇듯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과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마인드 자체가 완전히 반대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세상과의 조화를 이루며 살지만,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못하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 그것은 곧 자신을 위하는 일이며 행복하게 하는 일이자,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사는 세상에 대한 의무인 동시에 예의인 것이다.
4부. 안락한 삶보다는 충만한 삶을 살아라
안락한 삶보다는 충만한 삶을 살아라중요한 것은 안락한 삶이 아니라 충만한 삶이다.
- 법정, <생각을 씨앗으로 묻으라>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풍요롭고 ‘안락한 삶’을 살기 바란다. 어떤 사람들은 안락한 삶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도 한다. 안락한 삶은 물질이 바탕에 되어야 하기에 양심을 저버리는 일도 서슴지 않고, 편법을 쓰는 등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돈 버는 일에 집착한다.
물론 안락한 삶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안락한 삶을 산다고 해도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안락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잠시도 물질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만한 삶’은 안락한 삶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충만한 삶은 물질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즉,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통해 만족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삶인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음악을 통해서 충만함을 느끼고, 나눔과 봉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눔과 봉사를 통해서 충만함을 느끼고, 기도와 명상을 좋아하는 사람은 기도와 명상을 통해서 충만함을 느낀다.
이렇듯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은 안락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적은 것과 작은 것에서도 얼마든지 자신을 충만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저마다 마음속에 자기만의 별을 품기밤하늘에 별과 달이 없다면 얼마나 막막하고 아득할까. 우리 마음속에 저마다 은밀한 별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그 삶 또한 막막하고 황량할 것이다. - 법정, <별밤이야기>
캄캄한 밤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별’을 보고 있으면 동심의 세계에 사로잡히곤 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순수함의 세계로 이끄는 것은 ‘별’과 ‘어린 왕자’, ‘여우’와 같은 소재를 바탕으로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 즉 ‘동심’의 세계를 통해 깨달음을 준다는 데 있다.
‘꿈’, ‘사랑’, ‘행복’ 등을 말할 때 흔히 별이 비유되는 것은 별이 순수함의 상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의 별이 있다. 그 별은 각자에게 삶의 기쁨을 주는 대상이기도 하고, 의미이기도 하고, 꿈이기도 하다.
그런데 마음에서 별이 사라진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마음은 완악하고 교만하며, 배려와 양보를 모르고, 부끄러운 일을 하고도 부끄러움도 모르고, 타인의 아픔에 조롱하고 비난을 하는가 하면, 사사건건 남의 일에 간섭하고 비판을 멈추지 않는다. 이는 별이 사라짐으로 인해 그 마음속에 ‘악한 마음’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별을 잃었다면 다시 마음속에 ‘별’을 품어야 한다. 별이 있는 마음은 삭막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