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살 만하니?
임민수 지음 | 미다스북스
베트남에서 살 만하니?
임민수 지음
미다스북스 / 2023년 9월 / 256쪽 / 19,000원
1장. 나의 베트남 주재원 생활을 시작하게 만든 긍정의 신호
베트남 주재원 생활, 그 시작의 신호어려움은 그 시작을 생각하게 한다.
나는 또다시 베트남 생활의 시작을 생각한다. 벌써 7년이 되었다.
“3년 정도 생각하면 될 거야. 그 후에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해줄 테니까 잘 생각해 보라고, 자네에겐 좋은 기회가 될 거야. 해외에 다녀오고 나면 분명히 더 좋은 포지션으로 근무할 수 있을 거네.” 한 임원의 권유를 받고 베트남에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 3년은 진즉 지났고, 이제 그분은 회사에 없다. 그렇게 지금은 퇴사하고 없는 한 임원과의 면담을 마친 지 2주 만에 베트남 남부의 경제도시 호치민에 도착했다. 출장으로 먼저 베트남 법인을 체크해보고 오라는 말에 처음으로 2주간의 베트남 방문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근무할 회사는 호치민의 떤선녓 국제공항에서 2시간을 더 들어가는 동나이성의 한 공업단지에 있다. 1월인데도 30도를 넘는 습하고 뜨거운 날씨였다.
공항에서부터 2시간이 걸려 베트남 법인의 공장에 도착한 뒤, 베트남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유창하지 않은 나의 영어 실력으로 더듬더듬 인사를 한 다음,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한 직원과 만나게 되었다. 키가 작고 까무잡잡한 얼굴을 한 푸른색 작업복을 입은 남자 직원이었다. 이름이 끄엉이라고 했다. 강하다는 뜻이라고 설명을 한다. 아마도 한국식 한자로 말하면 ‘강(强)’이라는 글자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끄엉은 과거에 한국에서 일한 적이 있었고, 그때 한국어를 배운 덕분에 통역 겸 생산팀 중간 관리자로 근무하고 있었다. 공장 건물을 함께 돌면서 보니 끄엉은 한쪽 다리를 살짝 절고 있었다. 사무동 건물 옆에 있는 작은 쉼터에 잠시 앉아 얘기 좀 하자고 했다. 그렇게 끄엉의 한국 생활에 대해 얘기하다가 난 끄엉이라는 이 직원을 한국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 끄엉! 우리 한국에서 만난 적 있는 거지?” 난 반가운 마음에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네. 맞습니다. 그때 IFC에서 만났어요.” 끄엉이 하얀 윗니가 드러나게 웃으며 맞다고 확인해 주었다.
나는 대학시절부터 취업하고 3년 정도가 되던 때까지 국제친교센터(IFC; International Friendship Center)라는 봉사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약 5년 정도 봉사를 하면서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온 근로자들과 함께 여행도 다니고, 한국어 공부, 미용 봉사 등의 일을 도왔다. 그 단체에서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끄엉이라는 친구를 만났다. 끄엉은 한국의 한 비닐 제조업체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대답을 늦게 한다는 이유로 한국인 사장한테 몽둥이로 맞아 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불법체류 사실이 드러날까 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다리를 절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때문에 끄엉은 한국 남자가 소리를 지르면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곤 한다.
‘15년은 된 것 같은데, 이렇게 베트남에서 다시 만나다니? 그리고 비록 서로 다른 나라이기는 하지만, 수년간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니? 이건 분명히 내가 여기 베트남에서 근무하게 될 운명인가 보다. 그래, 이건 나에게 보내는 어떤 사인 같은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와 끄엉을 연결시켜준 IFC에 매월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2주간의 출장을 마치고 한국 본사에 복귀했다. 15년간 한국에서 근무하던 나는 베트남 법인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매출이 적고, 좀처럼 수익을 개선하기 힘든 상황이다. 내 친한 직장 동료들은 절대 베트남에 가면 안 된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직원들의 무덤이라고 소문난 곳이라고 했다. “거기 알잖아? 해외 법인 살린다고 직원들 보냈다가 그만두게 하는 곳이야.” 틀린 말이 아니었다. 베트남 법인에 나가서 잘된 케이스가 많지 않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베트남 출장 기간 중에 끄엉을 만난 일을 생각했다. 그리고 하늘에 물었다. ‘이거 나에게 보내는 신호 맞는 거죠?’ 물론 이 신호만으로 베트남에 들어온 것은 아니다. 나도 여러 계산을 했고, 가능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 후에 들어오게 되었다. 하지만, 그 모든 계산의 변수 옆에 이 사건은 긍정의 작은 상수로 붙어 있었다.
그 후, 나는 7년째 여기 베트남에서 지내고 있다. 어떤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믿고 따라야 하는 신호가 있다. 그리고 이 신호를 믿고 선택한 것이 옳은 결정이었는가에 대한 긍정의 대답을 하기 위해 나는 오늘을 살아간다.
너무나 좁은 베트남의 한인타운하루는 예배시간 전에 교회 현관에서 안내를 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주보 받아 가세요.” 이렇게 말하며 교회 입구에 서 있는데, 10년 전 즈음에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만났었던 한 후배가 내 앞을 지나간다. 얼굴은 그대로인데 덩치만 변한 것 같다.“어?” 깜짝 놀란 나는 비명에 가까운 감탄사를 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0년간 연락이나 왕래가 없었는데, 갑자기 여기 베트남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뭔가 현실감이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생각했고, 희박한 확률의 다중우주 어딘가로 갈려져 나온 기분마저 들었다.“어? 형님! 안녕하세요.” 내 후배도 깜짝 놀란 분위기다.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우와~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 여긴 어쩐 일이야?” 난 반가운 얼굴로 후배에게 악수를 청했다.“전 얼마 전에 여기로 발령이 나서 왔습니다.” 내 악수에 응답하며 명함을 건넨다.
그 후, 이 친구의 가족과 여행도 다니고 서로 의지하며 해외 생활을 하고 있다. 여기 와서 더욱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이 참 좁다.
베트남의 최대 경제도시인 호치민에는 약 1천만 명의 인구가 있다. 그중에 한국 사람의 수는 인구의 1%가량인 9만 명 정도이다(재외동포 현황 2021, 외교부). 이들 대부분은 한국 본사에서 파견 나온 회사의 주재원들, 그리고 현지에서 한국 회사에 채용된 사람들이다. 결국 이들은 몇 년 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더욱 빠르게 정보를 얻고 근무하기 쉬운 장소에 밀집되어 살게 되는 것 같다. 한인들은 거의 호치민의 ‘푸미흥’ 그리고 ‘안푸’라는 동네에 모여있다. 이렇게 해서 정말 좁디좁은 한인들의 세상이 생겨나게 되었다. 여기서 지낸 지 일 년쯤 지나니 한국행 비행기를 타거나 내릴 때는 꼭 아는 분과 인사를 하게 된다. 심지어 비행기 바로 옆 좌석에서 이웃분을 만나 한국에 같이 갔었던 적도 있었고, 베트남 다른 도시의 관광지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건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닌 것 같이 되었다. 심지어 한국에 잠시 들어갔다가 경부고속도로 안성휴게소에서 호치민에 사는 이웃을 만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너무 빈번해서, 꼭 시트콤 세상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고 와이프와 얘기하기도 한다.
처음 베트남에 도착한 날, 한국 자원봉사 단체에서 만났던 베트남 친구를 베트남 지사에서 직원으로 다시 만났던 당시에도 이런 생각을 했지만, 이러한 일들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해외에 나와서 이런 우연을 더 많이 경험한다는 것은 분명히 나에게 주는 어떤 징표가 아닐까? ‘아직은 내가 옳은 길에 있다는, 그러니 아직은 여기서 돌이키지 말라는 사인’.
2장. 굴러들어온 주재원은 텃세를 당하기 마련
베트남 시골의 마피아 vs 한국인 주재원이번에도 용역회사를 변경했다. 내가 와서 일 년 동안 벌써 두 번째 바꾸는 용역회사다. 몇몇 거래처로부터 컴플레인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거래처가 우리 제품을 실으러 화물차를 가지고 공장으로 들어와도, 용역회사에 뒷돈을 주지 않으면 빨리 출고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용역회사를 바꾸는 중이다. 이 과정 중에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이 하나 있다. 용역회사를 바꿔도 중간관리자는 바뀌지 않는 것 같았다. 붉은색의 쉐보레 콜로라도를 타고 다니는 키가 작은 중간 관리자는 계속 남아 있는 것 같다. 무언가 이상했다. 생산부 직원에게 물어봤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생산 매니저는 좀처럼 말해주지 않는 것 같아, 생산부 직원들 여러 명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그중 한 명이 제보를 한다. “용역회사를 계속 바꿔도 저 사람은 안 바뀝니다.” 생산부 직원이 대답한다.
“무슨 소리야? 왜 저 사람이 안 바뀐다는 거야?”
“사실은 저 사람이 사장인 거예요. 용역회사를 바꾸자고 하면, 저 사람이 또 다른 자기 부하를 사장으로 앉힌 회사 계약서를 가지고 올 겁니다. 사실 이 동네 용역회사들은 대부분 저 사람하고 관련되어 있다고 보면 되는 거예요. 저에게 들었다고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특히 생산 매니저한테 말하시면 안 됩니다.” 베트남에 와서 또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이놈의 촌동네 아주 지긋지긋하다.
“법인장님, 저희도 한국 용역회사 한번 써 볼까요?” 나는 법인장 사무실로 들어가서 생산부 직원에게 들은 얘기를 해주었다.“한국 용역회사는 비싸지 않을까? 그리고 호치민 시내에서 불러야 되잖아. 이 동네까지 올지 모르겠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인 또 다른 조건들을 고려해 보자는 법인장의 말이었다.“한번 연락은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회사 밖에서 생산 매니저 후보도 면접을 좀 보겠습니다.”“그래. 그건 알아서 해봐.”
다음번 용역 계약 연장 시즌이 되었을 무렵, 생산 매니저를 불러서 용역 단가 인하를 요청하자고 얘기했다.“다른 한국 회사들 단가를 조사해 보니까, 조금 더 인하할 수 있는 여지가 있겠어. 이번에 단가 인하를 요청하는 게 좋겠어.” 생산 매니저에게 얘기했다.“그러면 용역 회사가 계약 연장을 안 할 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다음 주까지 중요한 생산이 있잖아요. 그전까지는 얘기 안 하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생산 매니저는 용역회사 편을 든다. 내 앞에 앉은 생산 매니저의 손목에는 그전에 안보이던, 금색 시계가 채워져 있다. 이전에 용역회사 사장이 차고 있던 시계와 같은 것이었다.“시계 좋아 보이네. 새로 산 거야?” 생산 매니저의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네. 싸게 팔아서 하나 샀어요. 비싸지 않아요.” 생산 매니저는 애써 웃으면서 이야기한다.“그래. 아무튼 용역 사장한테 용역 단가 인하 안 하면 계약 연장 안 하겠다고 말해.”
다음 날, 용역 직원이 모두 출근하지 않았다. 또 생산 매니저도 출근하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는다. 총무 매니저에게 보고를 받고 나는 수첩을 집어 던졌다.“야! 이거 뭐야? 왜 아무도 출근 안 하는 거야?”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고, 총무 매니저에게 통역을 하며 내 옆에 서 있던 여자 직원은 깜짝 놀라 눈물을 흘렸다.“생산 매니저와 용역 사장한테 계속 연락하고 있습니다.” 총무 매니저가 대답하며 밖으로 나갔다.
오늘 법인장은 외부 출장이라 사무실에 없다. 내가 해결해서 생산을 진행시켜야 한다. 오후에 용역회사의 사장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회의실의 내 맞은편에 앉은 용역 사장은 본인의 서명이 된 서류를 나에게 건네며, 계약을 해지하자고 했다. 왠지 거만해 보이는 태도를 보인다. 나는 그 두 장의 서류를 받아서 사인을 한 뒤에 한 장은 그에게 건네고, 나머지 한 장은 내 수첩 사이에 끼워 넣었다.“정말 계약 해지하는 거죠?” 생산 매니저와 같은 번쩍거리는 금색 시계를 찬 용역 사장은 통역 직원을 통해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나에게 계약 해지 여부를 거듭 확인한다.“네, 쌍방이 합의해서 계약 해지한 거니까 이제 나가세요.” 나는 용역 사장에게 당당하게 얘기했다.용역 사장 표정이 조금 이상해졌다. 그는 나의 통역 직원에게 내 수첩 사이에 있는 서류를 다시 꺼내 달라고 한다. 나는 계약서가 끼워져 있는 수첩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사장님, 이제 내일부터 저희와 일하시면 됩니다. 법인장님한테도 얘기해놨고, 여기 현지 용역업체와는 정상적으로 계약 종료했어요. 바로 가능하시죠?” 나는 지난 몇 주 동안 연락하던 호치민에 있는 한국 용역회사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음 날 생산 매니저가 출근시간 전부터 사무실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어제 왜 출근 안 한 거야? 용역회사 파업한다는 건 알고 있었어?” 생산 매니저에게 물었다.“용역이 파업하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용역회사 사장이 무서운 사람이거든요. 저보다는 임 부장님이 잘 해결하실 것 같아서 일부러 자리를 피했습니다.” 생산 매니저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댔다.“응. 그럼 당신도 이제 회사 나오지 않아도 돼. 저기 사무실에 남자 한 명 앉아 있지? 저 사람이 오늘부터 생산 매니저로 일할 사람이니까 이제 나오지 마.” 나는 몇 주 동안 계속 회사 밖에서 생산 매니저 면접을 보고 있었고, 그중에 한 명에게 어제 연락을 했었다. 그는 오늘부터 출근할 수 있다고 대답을 했고, 지금 우리 사무실에 앉아 있다.
우리 회사가 도시에 있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이 뒤로도 이와 비슷한 사건들은 계속 있었지만, 그 횟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총을 들고 찾아온 거래처 사장님‘아! 이번 달은 매출도 적은데 대금 회수는 또 왜 이렇게 안 되는 거야? 돌아버리겠네.’ 정말 매출이 지독하게 안 되고 있었다. 종종 베트남 직원들과 경비실 옆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면, ‘오늘은 물건 실으러 차가 몇 대나 들어오나?’ 경비 옆에 앉아서 세보기도 했다. 또 자금은 얼마나 빡빡한지, 내가 돈만 많이 있으면 회사에 좀 넣어주고 싶을 정도다. 특히나 이번 달이 어렵다. 얼마 전 끝난 세무조사에서 두들겨 맞은 게 있어서 더 힘든 것 같다. 며칠 동안 베트남 매니저와 자금 계획을 여러 번 돌려보고, 이리저리 궁리를 해봐도 현금 회전에 여유를 찾기 어렵다. ‘이번 달 대출 만기만 잘 넘기면 다음 달부턴 좀 여유가 있을 것 같은데, 은행에 연락해서 조금만 미뤄달라고 부탁해 볼까? 아니면 한국에 연락을 해볼까? 딱 이번 달만 넘기면 되는데 말이야.’ 난 일이 잘 안 풀리면 계속 걷는다. 그렇게 하루 종일 사무실을 왔다 갔다 걷고 있는데, 직원들이 왜 이렇게 돌아다니냐며 심란한 일 있냐고 묻는다. “아니야. 그냥 소화가 좀 안 돼서 그래.”
그때, 나에게 보고할 게 있다며 매니저 한 명이 찾아왔다. 채권 잔액 문제로 다투던 거래처의 소송에서 우리가 승소했기 때문에 며칠 후면 돈이 들어온다고 한다. 이 정도 금액이면 이달 자금 걱정은 더 이상 안 해도 되겠다. ‘앗싸! 솟아날 구멍이 다 있다니까.’ 총무 매니저 롱(Long)이 미리 연락해서 거래처가 제날짜에 자금을 송금하겠다는 다짐까지 받아놓았다. ‘완벽해.’
‘근데 뭐지?’ 오늘이 그 약속한 날짜인데 거래처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 “다시 연락해 볼래?” 롱에게 또다시 주문했다. 수차례 전화한 끝에 통화하는 소리가 들린다.“연락됐어? 뭐래?” 빨리 대답하라는 다급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늘 은행에 못 가서 미안하다고 내일 꼭 송금한다고 합니다.” 롱이 대답한다.
“뭐야? 낮에는 계속 연락 안 받다가 은행 문 닫으니까 연락이 되네. 이거 좀 이상한데.”
“그래서 내일 아침에 Agri Bank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그래 잘했어. 내일 나도 같이 갈까?”
“아닙니다. 제가 갈게요. 아! 같이 가고 싶으시면 같이 가셔도 됩니다.”
“그래, 내일 출근했다가 같이 나가보자.”
그리고 다음 날, 분명히 지금 이 시간이 맞는데, 은행으로 오지도 않고 연락도 안 되고 있다. 총무 매니저는 내 옆에서 계속 초조하게 또 전화를 돌리는 중이다.“롱! 됐고, 그 사람 집 전화번호 알아? 집으로 연락해 봐.”
“다른 직원한테 물어봐서 집으로 전화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