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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읽는 과학적 시선

모토무라 유키코 지음 | 미디어숲


세상을 읽는 과학적 시선

모토무라 유키코 지음

미디어숲 / 2025년 3월 / 240쪽 / 18,800원





1. 박사가 사랑한 기생충



흰 가운을 벗고 턱시도를 두르는 날


2019년의 노벨화학상은 리튬이온전지를 개발한 요시노 아키라 씨에게 돌아갔다. 리튬이온전지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전기 자동차 그리고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에도 탑재되어 모바일 문명에서 빠질 수 없는 어둠의 강자다.

내가 생각하기에 문명의 이기를 낳은 과학자나 기술자야말로 ‘어둠의 강자’다. 아침에 일어나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고 우리가 약속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것도 전부 그들 덕분이지만, 우리는 평소에 거의 의식하는 일이 없다. 애초에 그들 스스로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들의 의지를 활활 타오르게 하는 것은 감사의 말보다 당장 눈앞에 놓인 연구 과제다. 호기심에 이끌려 무아지경에 빠지는 일, 머지않아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이 곧 그들의 기쁨이다. 세간의 주목이나 보상은 나중에 따라오는 것이다.

보상 중에서도 노벨상은 각별하다고 봐도 좋다. 1901년에 창설된 이후 걸출한 과학자들이 이 노벨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수상식은 매년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에 스톡홀름에서 열린다(평화상은 오슬로). 턱시도나 드레스를 차려입은 수상자들은 친족이나 내빈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메달과 증서를 받는다. 수상식이 끝나면 장소를 옮겨서 국왕이 주최하는 만찬회가 밤늦게까지 이어진다.

전 세계에서 1,300명 정도만 참가할 수 있는 특별한 밤. 나는 취재를 하러 딱 한 번 참가한 적이 있다. 취재자들에게도 최상급 드레스 코드가 요구된다. 롱드레스를 입긴 하지만, 컴퓨터나 자료가 든 무거운 가방과 카메라를 바리바리 싸든 모습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그래도 원고를 전송하고 나서는 만찬을 즐겼다. 메뉴는 전채요리, 메인요리, 디저트로 딱 3가지다. 여기에 최고급 샴페인 동 페리뇽 한 잔을 곁들인다. 요리와 요리 사이에는 여러 가지 볼거리나 수상자의 연설이 들어간다. 가짓수는 적지만 1,300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전부 다 서비스하려면 이게 최선일 거다. 이날을 위해 발 벗고 달려온 셰프들이 솜씨를 뽐낸다. 요리를 테이블로 옮기는 일은 공모에서 뽑힌 국민의 몫이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 이벤트는 스웨덴의 국민 행사다. 이튿날 아침에 현지 기사에는 직전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만찬회의 메뉴와 그날 공개한 여왕의 드레스 이야기로 자자하다. 찬란하게 빛나는 한 주를 마친 수상자들은 각자 나라로 돌아간다. 동 페리뇽과 드레스는 없지만, 다시 자극적인 연구 인생의 막이 오른다.

‘갑툭튀’가 제일 무섭다


과학 기자에게 노벨상이란 해마다 한 번 찾아오는 축제와 같다. 게다가 연구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널리 알릴 절호의 찬스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시차 문제 때문에 일본에서는 저녁 시간에 발표가 난다는 점이 꽤 골치 아프다. 이튿날 조간신문에 실릴 난해한 과학 문제를 밤사이에 알기 쉽게 정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카데미상은 누가 최종 후보에 남아 있는지 미리 알 수 있다. 그런데 노벨상은 선정 과정이 외부에 새어나가지 않도록 ‘철통 보안’을 자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몇십 명이나 되는 후보군에 맞게 일일이 원고를 만들어 준비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갑툭튀’ 수상자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2002년에 화학상을 받은 다나카 고이치 씨가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노벨상 웹 사이트에 뜬금없이 나타난 ‘Koichi Tanaka’라는 이름. “누구야?”, “원고도 안 써 놨는데, 어디 소속의 누군지 찾아내!” 곧이어 다나카 씨가 교토의 시마즈 제작소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부랴부랴 번호 안내 서비스에서 알려준 홍보과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고 전화를 받은 남성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귀사의 다나카 고이치 씨가 노벨상에 선정되셨습니다.”남성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했다. “네? 저희 다나카요? 그게 누구죠?”

얼빠진 대화가 오가는 사이에 홍보과에 있는 모든 전화가 불난 듯 울려댔다.



나중에 들었는데 이날은 시마즈 제작소의 ‘야근 없는 날’이었다. 사무실에 혼자 남아 있던 부장도 마침 귀가하려고 정리하던 참이었다고 한다. 당사자인 다나카 씨는 그 당시 수상 소식을 알리려고 자신의 책상으로 직접 걸려 온 국제전화를 받고 매우 당황했다. 순간 누군가 장난을 치는 건 아닌지 의심했다고 한다.

그는 단백질 분자를 분해하지 않고도 분석하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공적을 인정받아 수상하게 됐다. 박사도, 관리직도 아닌 마흔셋의 기술자가 갑자기 세계 무대로 끌려 나온 것이다. 기자회견은 물론, 전철을 타고 통근할 때도 항상 작업복 차림인 그의 ‘수수함’에 많은 사람이 친근감을 느꼈다.

큰 화제가 되지는 않았으나 다나카 씨는 기자회견에서 중요한 결의를 표명하기도 했다. “기술을 발전시켜 의료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퇴근길에 잠깐 약국에 들러서 혈액 한 방울만 가지고도 어떤 질병들을 앓고 있는지 그 자리에서 진단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당시에는 ‘에이, 되겠어?’라는 생각을 하면서 듣고 있었는데, 다나카 씨는 약속대로 소량의 혈액만 가지고도 치매나 암을 조기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현실로 만들었다.

연구자들에게 노벨상 수상은 단지 ‘통과점’일 뿐이다. 외부 요인에 꿈쩍하지 않고 몰두하는 연구 자세에 진정한 노벨상의 가치가 있는 건 아닐까?

고분(古墳)을 투시하다


2020년 1월, 역사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뉴스가 보도되었다. 야마타이국의 여왕 히미코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던 나라현 하시하카 고분의 내부를 투시하는 실험이 시작되었다는 뉴스였다. 이 가짜 뉴스 같은 소식은 놀랍게도 진짜였다.

하시하카 고분은 왕족과 연관 깊은 유적이라는 사실을 이유로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아무리 학술이 목적이라 할지라도 무덤을 파헤치는 발굴 작업은 꺼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눈앞에 고분이 있으면 그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 것이 인지상정. 그렇다면 투시를 해 보자.’ 이런 흐름으로 이어져 작업이 시작되었다.

투시하는 눈의 역할은 우주에서 떨어지는 ‘뮤온’이 담당한다. 뮤온은 소립자다. 지구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선들이 비처럼 쏟아진다. 그중 일부가 대기와 충돌하여 뮤온으로 변신하는데, 사람이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사방 1m 땅 위에 1분당 1만 개나 떨어진다. 사람의 몸은 물론이고 바닥과 아스팔트, 두께가 1km나 되는 암반조차도 죄다 통과할 수 있다고 한다.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뮤온의 투과력은 물질에 따라 다르다. 관찰하고 싶은 물체를 통과한 뮤온을 특수 필름으로 받아내면, 불에 쬐었을 때 글씨가 나타나는 종이처럼 진한 곳과 연한 곳이 떠오른다. 그 결과물로 내부 구조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건강 검진을 받을 때 많이 쓰는 엑스선 사진도 같은 구조를 사용한다. 엑스선의 투과력은 뮤온만큼 좋지 않지만, 인체 정도는 식은 죽 먹기다. 몸에 상처를 입히지 않고 뼈나 폐 속 상태를 알 수 있다.

2017년에는 이집트에 있는 쿠푸 왕의 피라미드를 뮤온으로 투시한 결과가 영국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되었다. 이를 통해 중심부에 총길이가 30m나 되는 미지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혹시 그 공간에 왕관이 놓여 있는 건 아닐까? 상상은 점점 부풀어 오른다.

일본에서는 화산을 투시해서 지하의 마그마 웅덩이 크기를 추산하거나 지진을 일으키는 지하의 단층 구조를 밝혀내는 연구가 활발하다. 직접 파내려고 하면 거액의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뮤온을 이용하면 그런 수고도 절약할 수 있다. 실제로 사고를 일으킨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에서도 방사선이 강해서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는 2호기의 원자로 내부를 이 기술로 투시해 녹아내린 연료의 모습을 파악했다.

바이러스, 지나치게 똑똑한 ‘하숙인’


『집주인과 나』라는 만화 에세이가 2019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개그맨과 하숙집 주인의 모습을 따스하게 그려낸 만화다. 가족도 연인도 아닌 사람과 한 지붕 아래에서 유지하는 절묘한 거리감이 보는 사람까지 흐뭇하게 만들어 인기를 얻었다.

온 세상을 소란스럽게 하는 바이러스도 사실 그런 존재이다. 바이러스는 식물, 인간, 동물, 세균 등 모든 생물에 기생한다. 따지자면 생활이나 식사를 일방적으로 숙주에게 의존한다는 점에서 하숙인보다는 더부살이에 가깝다. 바이러스는 생물의 몸 안에 멋대로 들어와서 세포 수가 늘어가는 구조에 편승해 자기편을 늘린다. 그렇게 해서 세력을 확장하고, 가끔은 숙주를 점령할 때도 있다. 숙주가 죽는다는 걸 안 순간 다른 숙주로 갈아타서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이게 바이러스다.

과학자들은 의학 역사 속에서 소중한 가족이나 가축을 괴롭히는 의문의 병원체의 정체를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바이러스를 발견한 사람은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다. 물론 정체를 알아낸 것은 아니다. 광견병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세균이 아닌 광학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무언가’를 원인으로 지목했고, 이것을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19세기 말의 일이다. 그 후 100년 남짓 동안 바이러스에 관한 연구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20세기에 전자현미경을 발명하면서 바이러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고, 바이러스의 DNA나 RNA를 해독할 수 있는 기술을 발명한 것이 바이러스 연구에 크게 기여했다. 그 결과, 성질이나 다양성과 더불어 의외의 측면도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세균에 선옥균과 악옥균이 있는 것처럼 바이러스에도 인간에게 유익한 ‘선옥 바이러스’가 있다는 것이다.

임신한 여성은 타인(남편)의 유전자를 절반 물려받은 태아라는 이물을 10개월 동안 태내에서 기른다. 이 경우 일반적으로는 면역이 작용하여 이물을 배제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 이유는 임신을 하면서 만들어진 특수한 막 덕분이고, 놀랍게도 그 막은 먼 옛날에 인간에게 옮겨 온 바이러스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렇게 보면 바이러스는 더부살이는커녕 인류의 번영을 든든하게 받쳐 주는 존재다.

바이러스 생명의 역사는 30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서로 방해하지 않고 가끔은 상부상조하는 거리감을 지킬 수 있는 한, 바이러스로부터 배울 점은 크다. 단, 숙주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형태를 바꾸고 종에서 종으로 옮겨 다니며 비행기나 배를 타고 바다도 건널 수 있으니 그 지혜가 가끔은 버겁다. 부디 현명하게 어울리는 법을 밝혀냈으면 한다.

박사가 사랑한 기생충


‘특이하고 제한이 없으며 매력적이다.’

메구로 기생충관. 기업가 빌 게이츠가 칭찬한 이 사설 박물관은 도쿄도 메구로구에 있다. 40평 정도 되는 전시 공간에는 국내외의 기생충 표본이 나열되어 있다. 성인 남성의 장(소장 또는 대장) 안에서 8.8m까지 성장한 조충과 이를 정교하게 재현한 확대 모형 등 독특한 전시물들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내가 도쿄에서 살기 시작한 25년 전, 처음으로 방문한 박물관이 이곳이었다. 괜히 무서운 걸 보고 싶은 마음에 찾았는데, 집에 갈 때는 친근감이 생겼다. 젊은이, 커플, 고령자, 외국인 여행자 등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빌 게이츠도 일본을 방문했을 때 개발도상국의 공중위생을 보기 위해 바쁜 일정을 쪼개서 들렀다고 한다.

소장 중인 표본이 6만 점 이상이고 세계 유수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이 박물관은 가메가이 사토루 박사가 사재를 털어서 설립했다. 마을 의사로 생계를 꾸리면서 개관의 꿈만 꾸다가 진료소 건너편 목조 가옥에 ‘메구로 기생충관’이라는 간판을 내걸었을 때가 1953년이었다. 전시품 고작 몇 점만 가지고 시작한 일이었다.

인류와 기생충의 관계는 그 역사가 매우 길다. 고대 이집트의 미라에서는 주혈흡충이 발견되었고,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의학서 『의심방』에는 기생충 아홉 종류와 구제 방법이 적혀 있기도 하다.

기생충은 원래는 기생한 대상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평화로운 생물인데, 다른 동물을 마지막 숙주로 삼았던 기생충이 실수로 인체에 흘러들어오면 골치 아프다. 아프리카 등의 개발도상국에서는 3대 감염증인 말라리아와 더불어 하천 맹목증, 필라리아병 등 기생충 때문에 생기는 병이 지금도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가메가이 박사는 그런 기생충의 생태를 널리 알림으로써 일본의 위생 환경을 향상시키고 싶었다. 환자에게서 구제한 기생충과 더불어 박제업자에게 받은 동물의 내장을 해부해서 차츰 표본을 늘렸다. 그는 ‘아무튼 모든 열정과 금전을 기생충관에 바쳤다.’라며 자서전에서 회고했다.

지금도 항상 연구원들이 의미있는 연구 성과를 내보내고 있다. 교육이나 계발로 돈을 벌면 안 된다는 견해를 고수해 입장료는 무료다.

사실 박사는 개성 넘치는 기생충의 세계에 매료되었다. 조충은 몸의 마디마다 생식기를 가졌으며 하루에 몇 cm씩 쑥쑥 성장한다. ‘일본쌍고리기생충’은 유충 두 마리가 합체해서 마치 성충 한 마리인 양 살아간다. 박사는 오래도록 베일 속에 꽁꽁 싸여 있던 수많은 수수께끼를 밝혀내는 데 인생을 걸었다.

현재의 사무장인 가메가이 세이치 씨는 박사의 손자다. 그는 ‘맹렬히 열정적인 사람이었다’라며 할아버지를 회고했다. 다섯 살 되던 해의 봄에는 장난감도, 그림책도 아닌 작은 밭을 선물 받았다고 한다. ‘어린이 밭에 대해 알려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씨앗은 직접 뿌릴 것. … 부디 조금이라도 생명을 기르는 즐거움을 맛보길 바란다. 메구로 할아버지가.’

작은 생명에 마음을 기울이라니. 자연을 이해하고 ‘과학을 즐기는 마음’을 키우라는 소망이 배어난다. 기생충관을 매일 같이 드나들며 무아지경으로 현미경을 들여다보던 아이가 연구자로 성장한 사례도 있었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분명 기생충과 함께할 것이다.’ 그는 굳센 결의로 자서전을 마무리했다. 뜻은 계승되었고, 기생충관은 2023년에 70주년을 맞이했다.



2. 숲, 장작, 그리고 사람



피어라, 져라, 인간의 뜻대로


‘사쿠(핀다)’라는 동사에 밝은 울림을 가지는 접미어 ‘라’를 붙인 사쿠라(벚꽃), 일본의 국화(國花)이며 봄의 상징이다. 꽃 한 송이 한 송이는 가련하지만, 활짝 피면 가지가 휠 정도로 현란하다. 푸른 하늘 아래 봄 안개 속에서 희미한 빛을 두르듯 피는 모습도, 미련 없이 떨어지는 모습도 좋은 정경이다.

100종류가 넘는다는 벚꽃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품종은 왕벚나무일 것이다. 에도 시대에 소메이 마을에서 태어난 원예 품종이다. 기르기 쉬운 데다가 어린나무에서도 꽃이 피기 때문에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근래에 유전자 해석을 통해 조상이 에도히간자쿠라와 오시마자쿠라의 잡종인 것으로 특정되었다. 그리고 전국 각지의 왕벚나무가 거의 같은 조상을 가졌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매우 한정적인 원종 집단에서 꺾꽂이를 반복해 퍼져 나갔다고 한다. 몇천 그루, 몇만 그루의 왕벚나무가 한꺼번에 피었다가 한꺼번에 지는 것도 원래는 같은 개체이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가지를 잘라서 땅에 심으면 뿌리를 내리고, 원래 나무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복제 개체로 성장한다. 생물학에서는 이것을 ‘클론’이라고 부른다. 동물에도 클론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가 일란성 쌍둥이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을 한 후 그 수정란이 우연히 2개로 분열되어 각각 개체로 성장하는 것이다. 같은 DNA를 나눈 쌍둥이는 각각 상대방의 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우연이 아닌 인위적으로 클론 동물을 만드는 기술은 20세기 후반에 확립되었다. 복제하고 싶은 개체의 세포에서 유전 정보(DNA)가 채워진 핵을 꺼내고 미수정란의 핵과 교환한다. 전기 자극을 계속 주어 분열하는 상태로 만든 후, 수양부모의 자궁에 넣어 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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